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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을 때 나무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까. 산에는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 나무와 동물이 많이 살았겠지. 사람이 늘어나고 산에 사는 동물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때 나무도 많이 베었겠지. 나무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한테도 이것저것 준다. 이것저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뭔지 뚜렷하게 말하기 어렵다. 먹이나 살 곳을 주지 않을까. 사람은 나무로 여러가지를 만든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있지 않은가. 나무가 잘리고 남은 밑둥은 사람이 쉬게 해주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나무가 어느 정도나 있고 얼마나 사라졌을까. 우리나라 전체를 말하면 다 알기 어려울까. 《한국의 나무》(김진석 · 김태영, 돌베개)도 있던데 그 책을 보면 조금 알 수 있을까. 한번 보고 싶다 생각만 하고 아직도 못 보았다. 알았을 때 봐야 하는데 그러기보다 미뤄서. ‘한국의 나무’에는 훨씬 더 많은 나무가 나올 것 같다. 세상에는 사람도 많지만 나무도 많을 듯하다. 나무가 있어서 사람이 어떻게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건 좀 지나친 생각일까. 나무가 많으면 공기가 좋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나무가 많은 산은 평지보다 온도가 낮다. 도시에 나무가 많으면 여름에 아주 덥지 않겠지. 도시는 나무 심을 곳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언제가부터 건물 지붕을 뜰처럼 꾸미기도 했다. 말만 들었지 본 적은 없다. 서울에 그런 곳 많이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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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는 나무
제목이 너무나도 멋스러운것 같습니다. 나무하면 길가에 있는 나무 가로수 산에 있는 나무정도인것 같습니다. 이책은 제목 그대로 서울에 사는 살아가는 나무인데 나무에 대하여 색다르게 표현을 하여 상당히 지나가면서 보는 나무이지만 나무라는것은 1년내내 그모습을 유지하는것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면 나무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변합니다. 나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저도 기분이 좋아합니다. 이책에서는 다양한 나무가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쳐 몰랐던 서울에 사는 나무들 왠지 모르게 다시 한번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한 나무를 보면 나의 마음도 상당히 좋아하고 이름만큼 멋진것 같습니다. 정말로 읽어보면서 훈훈하고 좋은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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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무 되게 크다. 엄청 오래 됐나 봐. 단풍 든 것 좀 봐. 진짜 예쁘다. 고작해야 이 수준이 내가 나무를 보는 감상이다. 띄엄 띄엄 놓인 가로수마저 찾아 보기 어려운 상업지구로 출퇴근하는 내겐, 그마저도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뿐이다. 지난 주말엔 용산엘 갔었다. 박물관 자리까지 걷는 동안, 내년이면 이전될 용산 기지 담벼락 앞에서 금발 소녀가 방금 딴 단감을 먹겠다고 제 아비를 보채고 있었다. 같이 걷는 그가 미국에도 감나무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찾아보니 요즈음엔 미국에서도 미국 감나무라 불리는 감나무가 있긴 한 모양인데, 본래 감나무는 동아시아 태생의 것이라 한다. 와보니 집 앞에도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감나무에 관한 우리 이야기도 생각하니 참 많다. 궁금해하니 이리 정겨운데, 그간 너무 몰라주었나. 집 앞 감나무가 말하는 것 같다. 이제 나를 알아 보겠니? 나무가 얼마나 자랐나 이파리 끝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걸어 다니며 보는 나무 밑동과 가끔 올려다보면 보이는 잎들의 모양을 잠깐 보곤 쉬지 않고 걸었다. 이 책에 소개된 나무들을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나무를 무심코 지나쳤나 반성하게 된다. 일이며 데이트며 할 것 없이 숱하게 걸어 다닌 곳들인데 거기에 그 나무가 정말 있었나 싶다. 올봄 나온 책이니 실정이 달라졌을 리는 거의 없을 텐데. 이제 곧 전문가들도 알아보기 쉽지만은 않다는 겨울 나무들이 즐비할 터. 잎 모양과 색으로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주기엔 두 계절은 족히 지나야 할 마당이다. 그러기 전에 지금이라도 알아봐 주길 기다려왔을 가을의 나무들을 만나러 가야지 싶다. 이런 마음이 들게 하는 저자에 대한 고마움도 크다. 서울 곳곳에 사는 나무들의 사연을 알려주고, 나무를 알아 볼 수 있는 특징들을 짚어주는 저자의 설명은 그녀가 나무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나무엔 죄가 없을 텐데 조상이 온 곳에 대한 감정으로 미움을 받곤 하는 벚나무와 아까시나무도 비중 있게 다루어 주고, 오해를 풀어주려 노력하는 점에서도 그런 애정이 잘 느껴진다. 자연 그대로를 아끼는 사람의 이력의 오랜 영역이 서울 한복판의 잡지회사라니. 이런 정 깊은 마음으로 칼 같은 교정과 마감의 늪에서 살아남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렴풋이 짐작된다. 어느 날 숲을 배우기 시작하곤 직업을 바꿔버린 그녀의 마음은 언제부터 나무를 향해 있었을까. 내가 괜히 숨이 트이고, 부러워진다. 가까이에 있는 나무부터, 찬찬히 살피고 이름을 불러주며 살면, 그녀를 좀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왔을 때, 지하철 3호선 동호대교 아래 잠잠한 한강을 보다가 괜스레 막막해져 소리 죽여 울었다. 잡지기자가 되어 갖가지 잡지를 만들면서야 처진 어깨가 조금씩 펴졌다. 신사동 사거리처럼 정신없이 살며 냉난방기의 가동 여부로 계절을 알았다. 택시기사도 모르는 지름길로 다니고, 고향 사람보다 서울에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늘 배가 고팠다. 빈말과 술수에 놀아날 때마다 허기는 더 심해졌다. "사람은 믿을 게 못 된다"던 이들이 몸소 그 가르침을 깨우쳐주었을 때, 무엇도 밥이 되지 못했다. (14쪽) 언젠가 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웬 중년 남자가 옆에 와 섰다. 연신 담배 연기를 뿜는 통에 마주보기 싫었지만, 신발 밑창의 흙을 턴답시고 나무줄기를 퍽퍽 차대기에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신호가 바뀌려 하자, 그는 손에 든 담배를 방금 차댄 나무줄기에 대고 사납게 비벼 꼈다. 채 꺼지지 않은 담뱃불이 떨어진 나무 밑동에 걸쭉하게 침을 뱉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혹해진 얼굴로 나무줄기를 쳐다보니 스테이플러로 철한 전단지가 철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지난 봄, 경희궁에서 주운 은단풍 씨앗은 그해 여름에 첫 잎을 내더니 올해 봄 돌을 맞았다. 나란한 두 나무를 보며 비애와 환희를 일시에 느낀다. 은단풍은 물망하라는 하늘의 사신인지, 새로 난 잎은 세월을 뒤엎은 배를 닮았다. 은단풍 새잎이 돋아나는 봄, 그 기억을 되새기는 봄이 오고 그 봄이 거듭될 때까지 영영 잊지 말아야 한다. (120쪽) 요즘 사람은 말채나무 가지가 날씬하니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해괴한 소문을 퍼뜨리고, 급기야 자생하는 말채나무 노거수 가지를 모조리 잘라버린다. 2013년 1월, 충북 단양군 금곡리 김모 씨의 밭 언덕에 자생하는 100년생 말채나무와 20~30년생 말채나무 가지를 누군가 몽땅 베어 갔다. 가지 우린 물을 마시면 날씬해진다며 말채나무를 속칭 '빼빼목'이라고 부르는 촌극이 낳은 비극. 차라리 이쑤시개를 삶아 먹을 것이지, 낭창낭창한 회초리로 좀 맞아야 할 사람 많다. (27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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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는 나무]의 저자 장세이와 함께 SNS를 글쓰기 무대삼아, 꾸준히 좋은 글을 쓰는 연습을 하는 글쓰기 수업 [Slow & Strong! SNS글쓰기] 안내 https://www.sangsangmadang.com/lec/detail/380 - 일정 | 2018.04.08~04.29, 매주 (일), 15:00~17:00 장소 |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 강사 | 장세이 작가 · 이야기꾼 · 옥수책빵 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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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우선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있고 서울과 나무를 사랑한다. 나무와 지역의 특징에 대해서 소소하게 풀어나가는 에세이집이다. 그리고 이 작가는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보고 글짓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통장은 자꾸 잔고가 사라지지만 마음은 비만이 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매우 순수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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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출근길에 투덜투덜 의미없이 스쳐 지나갔던 많은 나무들이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특별한 나무였다는게 놀랍고,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지나쳤다는게 미안할 뿐이다.
오동나무를 오동나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고, 가문비 소나무 솔방울을 자세히 보게 되었고, 한그루인줄 알았던 비술나무가 3그루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벚나무는 잎에 꿀샘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어떤 나무도 이제는 예사롭지 않게 볼것 같다.
그리고, 이책은 당분간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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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부분만 읽어도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어떨지 대충 감이 잡힌다. 책을 읽으며 '서울에 이런 이야기를 품은 나무가 있었나'하며 놀라야 할 것 같은데... 사실 나무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작가였다. 일단 서울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과학 시간이나 역사 시간에 나올 법한, 다시 말해서 지루한 내용이 되기 쉬운 나무 이야기를 작가가 자신만의 독특하고 멋스러운 스타일로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작가는 현학적이지 않은데 왠지 아는 게 많은 사람같고, 작가의 글은 일부러 멋지게 쓰려고 애쓴 것 같지는 않은데,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문장과 표현이 많다. 주변에서 흔하게 자주 보기 때문에 이름조차 알지 못하면서도 마치 잘 아는 나무로 착각하는 일이 많다. 이 책을 읽다가 이 뻔뻔한 '착각' 덕분에 발생한 낯뜨거운 기억이 떠올라 혼자 민망해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저자가 '나무 병사'라고 부른 양버즘나무... 아들이 어릴 때 덜렁거리는 나무 껍질을 벗기면서 군인 아저씨 옷 같다며 '군인 나무'라고 했는데, 나는 '아들아 이건 군인 나무가 아니라 플라타너스란다,'라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무식을 작렬시켰던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것을... 다행히 나보다 더 무식한 아들은 엄마의 무식을 당시에 알아채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난감한 기억이 종종 떠올랐다. 나무에 대한 나의 주체할 수 없는 무지가 확인되는 굴욕의 순간인 동시에, 예상치 못한 즐거움 (평소에 궁금해한 적이 없었는데도 어쩌다 알게 된 지식이나 정보가 주는 그런 잔잔한 즐거움)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가지각색 이야기를 품은 나무와 이야기를 잘 뽑아내는 작가가 만나, 재미없어 보이는 나무가 주인공인 재미있는 나무책이 탄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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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해설 공부를 하다 보면 3이란 숫자를 자주 접하게 된다. 궁궐의 3문 3조(三門 三朝: 경복궁의 경우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3재(才: 천지인), 3도(道: 신향로, 어로, 세자로), 3간택(揀擇), 주역의 3효(爻) 등이다. 장세이의 ‘서울 사는 나무’를 접하고 저자가 한 이야기는 나무 이야기이지만 결국 이는 집, 나무, 사람이라는 (변형된) 3재(才)를 이야기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전문서는 3재를 가치를 의미하는 천(天), 법칙을 의미하는 지(地), 주체를 의미하는 인(人)으로 풀었다.(송희식 지음 ‘존재로부터의 해방’ 163 페이지) 3이란 숫자에 눈길이 가서인지 ‘서울 사는 나무’ 역시 서울의 세 곳(길가, 공원, 궁궐)에 사는 나무들을 이야기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 나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집(길가, 공원, 궁궐), 그리고 사람까지 함께 어우러진 드라마이다. 역시 3이란 숫자로 볼 것이 하나 더 있다. 하수(下手)는 꽃을 보고, 중수(中手)는 잎을 보고, 고수(高手)는 잎도 꽃도 없는 한 겨울 줄기를 보고 나무를 구분한다고 한다는 이야기이다. ‘논어’ 자한(子罕)편에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는 구절이 있지만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나무를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숲 해설사인 저자는 ”고백하건대 벚나무를 제대로 모르고 살았다. 이제라고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살아남으려 꿀샘을 만들고 꽃만큼 단풍이 고운 나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안다.“고 말한다.(33 페이지) 길가와 공원의 나무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시민들이고 궁궐의 나무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왕 또는 왕족들이다. 물론 ‘서울 사는 나무’는 길가, 공원, 궁궐 등을 두루 돌아다닌 저자의 관점에 따라 엮인 이야기 모음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헌법재판소에 백송(白松)이 유명하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수많은 이를 죽여 온 동네가 피바다가 되자 이를 덮으려 재를 뿌려 잿골로 불리다가 지금은 재동(齋洞)으로 불린다.(재를 뿌려 덮은 것과 목욕재계의 재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난 5월 27일 미래 유산 해설대회 시나리오 작성을 위해 바로 그 재동 백송을 찾았다. 역사/ 문화, 시민 생활, 나무가 결합된 해설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제시된 대회이다. 이 역시 3재(才)라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백송 말고 가문비 나무도 유명하다. 나무 껍질이 검어 검은피 나무 즉 흑피목(黑皮木)으로 불리다가 가문비 나무가 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가문비 나무는 검다. 저자는 헌재가 하는 일을 두 나무가 희고 검고로 차이나듯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이라 말한다.(76 페이지) 저자가 다닌 다양한 명소들을 보면 체험이 많은 것을 말해줌을 알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수업을 받은 것이 지난 해 12월 두 차례였다. 경희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저자에 의하면 경복궁은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전각이 여기저기 팔려나가고 정전인 숭정전(崇政殿)마저 옮겨진 경희궁은 공원으로 분류되어 서울시의 관리를 받는다.(153 페이지) 숭정전은 경희궁에서 즉위한 정조가 즉위 일성으로 ”나는 사도 세자의 아들“이라 선언한 곳이다. 슈베르트의 ‘보리수(菩提樹)’에 나오는 보리수의 정확한 이름은 피나무라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식물학자가 아니라면 피나무 종류는 매우 비슷하여 거의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다.(204 페이지) 저자는 삼청공원의 나무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224 페이지) 나무 이름을 모르니 부를 수 없고 그래서 아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감한다. 49만여 제곱미터의 거대한 창덕궁은 절반 이상이 후원 곧 숲이며 무려 16,000여 그루의 나무가 살아간다. 그런데 회화나무는 후원이 아닌 대문 앞에 심어져 있다. 중국에서처럼 삼정승(三政丞)을 상징하는 나무이기에 그렇다.(289 페이지) 괴(槐)는 느티나무일 때는 괴, 회화나무일 때는 회로 읽는다. 정조 이야기를 했지만 창덕궁 낙선재(樂善齋)는 정조의 증손자 헌종의 사랑채이다.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白骨)집이다. 연경당(演慶堂)도 그렇다. 단(丹)/ 청(靑) vs 백(白)의 대비는 이해하려만 골(骨)이라니...연경당은 계동마님댁의 모델이다. 저자의 행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종묘(宗廟)행이다. 저자는 종묘도 궁궐이라 말한다. 신들의 궁궐인 신궁(神宮)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종묘는 망묘루(望廟樓)만 팔작지붕이고 정전(正殿), 영녕전(永寧殿), 전사청(典祀廳), 향대청(香大廳), 재궁(齋宮) 등이 모두 맞배지붕이라는 점이다. 맞배지붕은 소박미가 있다. 궁궐은 왕이 살아 있을 때 살던 곳이고 종묘는 사후 영혼이, 능은 몸이 사는(묻힌) 곳이다. 이 역시 3재(才)라 할 수 있다. 종묘 정전은 건물 색이 밝았다가 진했다가 한다. 처음 짓고 난 이후 계속 덧지은 결과다.(368 페이지)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종묘에 들면 재궁 앞 물박달나무를 찾는다고 한다. 저자는 기품도 없고 단정치 못한 물박달나무가 어떻게 종묘에 살게 되었는가를 묻는다. 나는 비무장 지대에 사는 나무들 특히 북의 화공(火攻)에 타는 나무들을 보며 참 기구(崎嶇)한 나무들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험할 기, 험할 구) 종묘 연못에는 향나무가 있다. 초혼(招魂)의 나무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제사 공간의 상징성을 고려한 결과라는 말도 있다. 저자는 “백성 없는 왕이 어디 있던가. 민초의 신산한 삶을 대변하는 물박달나무는 꿋꿋이 신들의 정원에 살며 ‘우리도 기억하라’고 외친다.”고 말한다.(375 페이지) 빵으로 치면 페스트리, 사무용품으로 치면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은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나무가 물박달나무이다. 나무 이야기는 결국 삶의 이야기가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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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한 눈에 보아도 꽤 오래되었지 싶은 은행나무가 있다. 벌레를 심히 먹은건지, 인간이 인위적으로 상처를 낸 것인지 시멘트를 발라놓아 혹 죽은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 보일 때도 있으나 가을이면 어김없이 노란 은행잎을 드리우며 나무는 제 건재함을 만천하에 뽐낸다. 사람들은 나무의 수령을 두고 500년이다, 800년이다 설왕설래한다. 어느 쪽이 사실이건 끽해야 백 년 남짓을 살다 떠나는 우리에 비하면 무한대에 가까운 시간동안 생존하고 있는 게 된다. 침묵하는 나무가 인간의 얼마나 많은 사연들을 보고 접했을지는 알 길 없다. 그러나 너무 흔해 눈여겨 보지 않는 나무들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잘 아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 하필이면 왜 서울이었을까. 험하게 말하자면 중구난방이요, 인간의 손길이 이보다 더 머문 곳도 없을 법한 공간이 바로 서울이다. 고향이 서울이라고 하면 그것도 고향이냐는 핀잔이 돌아오곤 하는 무념무취의 공간 서울. 그 곳에서도 나무가 성장하고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싶어 했다. 그러고보면 도처에 나무는 널려 있다. 아파트 단지만 해도 수백 그루의 나무가 소리소문없이 자라고 있다. 그 나무들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불러 보았던가. 자연에 대한 무지는 둘째치고, 이 나무의 이름이 무엇일까 호기심 한 번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부끄럽다. 아마도 대부분 사정이 같을 것 같다. 밝음이 시작되기 전에 집을 나서고 어두워지고 난 이후에야 겨우 집에 들어오는데 하찮은(?) 나무의 이름 따위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있겠는가! 하지만 나무는 언제 우리 곁에 존재해 왔고, 우리가 살아 있듯 나무 또한 살아 있었다. 익숙하기에 주목하려 들지 않았던 그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폭력인 줄 몰랐던 나의 행위를 폭력이라 정의하는 것과도 흡사헀다. 그렇게 저자의 목소리를 좇아 서울 곳곳을 누볐다. 그녀가 서울에서 보낸 시간은 15년으로 꼭 나의 절반이었다. 허나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세상의 이치인지라 내게는 도통 보이지 않던 나무들이 그녀에게만큼은 선명해도 너무나 선명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무를 만나기 가장 좋은 장소 중 하나는 공원이다. 공원은 도시에서 얼마 안 되는 푸른빛을 지닌 공간이다. 전문가들이 머리를 굴려 조성한 생태계는 완벽까진 아닐지라도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높은 밀도의 생명력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가죽나무, 때죽나무, 양버들, 아까시나무 등. 거의 모든 나무의 이름을 한 번 즈음은 들어보았다. 공원이 모두에게 익숙한 장소인 만큼 그곳에 뿌리내린 나무들 또한 익숙했다. 궁궐은 공원과 더불어 비교적 잘 보전된 자연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서양과 달리 본래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건물을 짓고 조경을 했다. 규모만을 놓고 보면 다른 나라에 밀릴 수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의 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덕궁 후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던 건 재단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을 잘 다스린 덕이 크다. 이 곳을 배경으로 자라나고 있는 나무들은 공원의 나무들보다 낯설었다. 궁에 대해 갖고 있는 경외감이 어쩌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궁 역시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무엇보다도 서울에 있는 궁은 오백 년간 유지되던 조선의 영욕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이다. 망국을 향해 나아가는 조선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 못지 않게 나무의 긴장감도 컸을 듯하다. 그럴수록 나무로서는 보다 화려한 꽃을 피움으로써 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안간힘을 썼던 게 아닌가 싶다. 상대적으로 길가는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자 어떠한 금기도 존재치 않는 곳이다. 신분질서가 뚜렷하던 시절에도 길에는 지체 높은 양반과 그들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노비가 함께 했다. 서로 입장과 생각은 달라도 같은 나무를 바라보았을 순간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다양한 이들과 소통한 결과일까. 거리의 나무들은 형태도 제각각인 것이 인간으로 따지자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 같아 보였다. 여러 나무와의 만남 끝에 비로소 알 듯도 했다. 과대해진 불안정으로 인해 안정을 갈망하는 마음이 여느 때보다도 큰 요즘, 12년간 잘 다니던 잡지사를 저자가 왜 박차고 나왔던지.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감보다도 저자에게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은 심신을 지배하던 독기였다. 나무를 배우고 숲을 만나면서 조금씩 자신이 달라졌다는 저자의 경험을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서울을 벗어나지 않을지라도 도처에 널려 있는 게 나무 아닌가! 나무에 이제껏 무지했다는 사실이 지금만큼은 참으로 부끄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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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딸아이와 궁궐 나들이를 계획하다 우연찮게 이 책을 찾게 되었다. '궁궐 사는 나무' 라는 파트와 그 목차를 본 순간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딸아이에게 어려서부터 읽혀왔던 'Wh*" 같은 백과사전이나 자연도감책이 아니었다. 나무에 대한 기본지식에 인문학적인 작가의 정서와 새로운 사고로의 생각이 덮입혀져있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냥 정보와는 다른 시선으로 나 자신이 나무를 보게 되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야기 해 줄 수 있었다. 부록으로 있던 '삼청공원나무지도'는 뜻밖의 선물을 하나 더 받은 듯하다. 이번의 서울 나들이에는 이 책과 지도를 들고 가서 전과는 다른 산보가 될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