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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의 이중성, 이원론적 세계관의 기초가 되다
공감,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기분을 같이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개인의 행복을 위해 갖춰야 할 요건이며, 긍정적이고 도덕적인 감정으로 여긴다. 일반적으로 그렇다. 심리상담 등에서는 기본으로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이런 공감능력이 풍부하기에 오히려 비인간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공감의 이중성, 이원론적 세계관을 이해해야만 공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부제 "공감의 두 얼굴"을 제대로 봐야할 것이라고, 다소 당황스럽기도한 공감, 늘 긍정적이고 도덕적으로 여겼던 공감에 내재된 두 얼굴... 인지과학자로서 독일문학자로서 공감의 진면목을 여러 사례를 들어서 톺아보고 있다.
공감은 사람들이 공감해서가 아니라 공감 자체를 위해, 즉,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거나 그들과 동감하기 위해 행동하도록 자극할 수도 있다. 공감이 도덕성을 가진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공감은 편들기를 통해 사안을 극단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때 공감은 올바른 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도 있지만, 또 도덕적으로 잘못된 측면을 희석시키거나 혹은 대안적인 도덕을 근거로 내세울 수도 있다. 공감은 늘 도덕적으로 개입하는 긍정적인 경우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감은 반드시 도덕적으로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공감을 배워야 하는가, 공감을 지닌 인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공감은 대개의 경우 도덕성과 결합되어 있다는 아주 타당성 있는 증거들도 있다. 이는 단순한 논리가 아니라 복잡한 문화적인 실천을 전제로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실천한 것들이라 해도 종종 그 반대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공감 자체에는 개인인 자기 자신의 체험이 훨씬 중요하기에 그런 점에서 공감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감은 반드시 습득하고 장려되어야 한다고 지은이는 믿는다. 다만, 우리는 공감과 관련해서 평화롭고 즐거운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공감의 도덕적 측면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차원, 즉, 공감의 미학과 정서적 측면을 위해 지나치게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공감능력이 반드시 다른 사람을 위한 개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공감의 위험성을 자아 상실, 흑백 사고, 동일시, 사디즘, 흡혈귀 행위 등 다섯 가지 경향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공감은 진화를 통해 발전해 온 인간의 생존 조건이다. 점점 분자화, 개인화하는 사회에서 반드시 공감을 가르치거나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과 사회의 존립은 공감능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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