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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소위 80년대에 대학생이였던 그들이 운동권이였다는 이유로 다른사람들을 배척하고 가르치려들고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하고 그런 당당함이 어디서 나오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나는 그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싶었다. 이 책은 나에게 확실하게 도움을 주었다. 직장생활 내에서 심지어 사회모임에서도 그들은 내가 대학 다닐때 이런 썰들을 늘어 놓으며 훈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실재로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알지못한다. 하지만 전해내려오는 옛날이야기 듣듯이 조금조금씩 변형만 있을뿐 재생산되는 레퍼토리의 뿌리는 같다. 그들은 지금 tv만 틀면 나오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이 이끌어가는 세상이 되었다. 절대 타협하지않는 그들이 80년대 민주혁명을 이끌었다는 타이틀로 정계에 진출해있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서 정치를 할까? 답은 이 책이 주고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있지만 이 책은 확인시켜준다. 우리에게 더 이상 신념과 열정을 강요하지말고 시대의 흐름을 잘 타고 누려온것들을 지키려말고 헬조선,떠날수만 있다면 떠나고싶은 대한민국에서 떠나지않고 살수있도록 이제부터라도 무엇을 해줄수있겠는지 묻고싶다. |
| 김정훈, 심나리, 김향기 작가님의 386 세대유감 : 386세대에게 헬조선의 미필적고의를 묻다를 읽고 남기는 리뷰입니다. 추천받아서 읽어보게 된 작품입니다. 386세대가 뭔지, 어떤지 잘 알아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한번 더 읽을 가치가 있는 것 같아서 한번 더 읽어보려고요~ 그리고 글 자체가 재미있게 쓰여져서 읽을 때도 좋았습니다. 잘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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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소위 80년대에 대학생이였던 그들이 운동권이였다는 이유로 다른사람들을 배척하고 가르치려들고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하고 그런 당당함이 어디서 나오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나는 그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싶었다. 이 책은 나에게 확실하게 도움을 주었다. 직장생활 내에서 심지어 사회모임에서도 그들은 내가 대학 다닐때 이런 썰들을 늘어 놓으며 훈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실재로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알지못한다. 하지만 전해내려오는 옛날이야기 듣듯이 조금조금씩 변형만 있을뿐 재생산되는 레퍼토리의 뿌리는 같다. 그들은 지금 tv만 틀면 나오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이 이끌어가는 세상이 되었다. 절대 타협하지않는 그들이 80년대 민주혁명을 이끌었다는 타이틀로 정계에 진출해있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서 정치를 할까? 답은 이 책이 주고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있지만 이 책은 확인시켜준다. 우리에게 더 이상 신념과 열정을 강요하지말고 시대의 흐름을 잘 타고 누려온것들을 지키려말고 헬조선,떠날수만 있다면 떠나고싶은 대한민국에서 떠나지않고 살수있도록 이제부터라도 무엇을 해줄수있겠는지 묻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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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랬다. 또 누군가는 내가 다 해봐서 안다고도 했다. 또또 누군가는 알바비를 떼여 보는 것도 값진 경험이랬다. 일본에서는 코로나도 인생의 값진 경험이랬다. 그렇다. 젊은 세대는 그래도 싸다. 늘 게으르고 무능하고 10새끼다. 나이가 차도 부모 등 쳐먹기 바쁘다. 88만원에 만족하며 알바를 전전하며 빈둥거린다. 모험심과 자립심이 없다. 그래서 중동으로, 해외로, 나라가 텅텅 빌 정도로 떠나지 못한다. 안정적인 공무원에 목숨을 건다. 결국 가진 것은 포기다. N포 세대. 별 수 있는가. 우리를 그렇게 정의한 사람들이 기득권이고,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다. 권한은 없고 의무만 잔뜩 이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데, 앞으로 가질 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가진 세대라지만 부모세대 보다 나아질 기회가 없는 최초의 세대. 그것이 지금의 세대다. 이 책이 반가웠다. 젊은이 개새끼론에 대항해서 우리에게 어른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언어를 주었기 때문이다. 감히 386세대 개새끼라고 말할 수 있게 했다. 이러면 꼭 ‘너는 부모에게 그런 말을 하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우선 나는 댁과 같은 부모님을 둔 적이 없다. 거기에 우리 보모님은 그런 이득을 대부분 취하지 못한 분이다. 두 번째로 이해한다. 사람은 자기를 욕하면 당연히 싫다. 반대로 젊은이들이라고 아니었겠는가. 다만 그들에 대항하고 반박할 언어와 힘이 없었을 뿐이다. 386세대는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우리 사회의 전반을 휘어잡고 있다. 그들의 논리와 언어가 너무도 공고하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어린아이의 푸념으로 비친다. 그래도 표는 필요하고, 돈은 벌어야 한다. 그러니 불만 갖지 말고, 청년 비례로 공천 몇 개 줄게. 청년 정책? 그래 예산 배정해 줄게. 그래 너희들이 돈을 써야지. 몇 개씩 던져줄 뿐이다. 우리가 똥개인가? 뼈다귀 몇 개 던져주는 그런 집지키는? 개새끼 눈에는 개새끼만 보이는 법이다. 그러니 나 역시 그렇게 부를 수밖에. 그렇다고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치고 박고 싸우자는 건 아니다. 책 제목대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고통스럽고 소모적이다. 하지만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특히 누군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했다면, 어떤 이가 상대적 피해를 받고 있다면 말이다. 그 인과를 분석해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반복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세대가 피해자라는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남이가로 덮어둔 결과가 어떠한가. 이대로라면 우리 세대 역시 미래 세대에 빨대를 꽂고, 부모 세대가 했던 과오를 물려줄 뿐이다. 그 결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 않은가. 모자란 자원을 두고 아귀다툼을 하는 사회는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굳이 빨갱이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그런 사회에는 빨갱이가 넘쳐나게 될 것이다. 아니 그런 사회를 만들고, 방조한 사람들이 빨갱이가 아닐까.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선의에 기대하기도 어렵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괴물과 싸우다보면 나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버린다. 늘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뭐 어쩌란 말인가. 아무소리도 하지 말고 그냥 우리 차례가 올 때 까지 앉아서 기다려야 하나?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싸우지도 기다리지도 못하는 우리는 어찌해야 하면 좋단 말인가. 누구라도 좋으니, 다음 논의가 어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게 된 당신과 나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p.25)”를 기다린다. ------------------------------------------------------------ 부디 이 책이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게 된 당신과 나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를 안겨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p.25 명실공히 386세대는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을 주무르고 있다. 생애 주기로 봤을 때 50대가 가장 무르익은 시기라 한다면 당연한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50대의 사회적 역할이 무거운 만큼 시대와 함께 사회 주도 세력은 끊임없이 교체된다는 사실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운동을 전후해 20대부터 사회적 목소리를 키워온 386세대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앞 세대가 쓸쓸히 퇴장한 자리를 넘겨받은 뒤 40대에도, 50대에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30대, 40대의 그들에게 주어졌던 자리가 지금의 30대, 40대에게는 대물림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p.38 386세대가 오롯이 자신들의 희생만으로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쟁취했(p.56)다고 믿는 것은 오만한 채권자적 태도다. 1987년 거리에는 80년대 학번을 가진 20대 대학생만 있지 않았다. ... 민주화는 살아남아서 현재의 사회 중심 세력이 된 386만의 전리품이 아니다. 기성세대의 지원과 시민들의 저항, 죽음으로써 역사가 된 적지 않은 386 동료들이 함께 모여 거둔 성공이다. 그러므로 20대가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p.57)에 눈감는다고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왜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연봉 높은 대기업 정규직 취직에 열을 올리는지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 p.58 ‘청년을 위한 정치’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청년을 위한 예산은 이름만 거창하게 붙었다 결국 쪼그라들고, 정치 신인조차 키우지 않고 있다. p.58 망탈리테(mentalite)란 사회를 특징짓는 한 이난 집단의 습관적 사고 양식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집(p.67)단심성을 통해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행동을 꿰뚫어 볼 수 있다. p.68 386세대에게 그런 코호트 효과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로, 군사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자부심을 꼽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배양된 조직화 능력, 함께 어깨를 걸고 밀어붙이면 끝내 이뤄낼 수 있다는(p.70) 낙관주의도 빠뜨릴 수 없다. 반면에 괴물과 싸우면서 닮아간 권위주의, 자부심이 변질돼 나타난 우쭐함과 함께, 실행보다 말이 앞서는 공허함도 386세대 안에서 풍겨난다. 앞서 말한 교조적 성향도 코호트 효과에 따라 드러난 특징이다. 그러나 가장 큰 특징은 따로 있다.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오랜 기간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p.71 386세대는 당시 1인당 평균GDP보다 20% 더 높은 월급을 받았지만, 80년대생은 20% 더 낮은 월급을 받은 것이다. 그만큼 사회가 인정하는 청년 노동의 대가가 형편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p.103 지난 20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80년대생들을 채용해 월급 주면서 일을 시키는 상사의 대부분이 60년대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요즘 청년 노동의 대가를 386세대가 산정한다. p.103 시대는 세대를 규정한다. p.112 시대가 부여한 운은 세대마다 달랐다. p.112 386세대가 장기 집권의 서막을 성공적으로 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능력이 유독 특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성공은 시대적 요행 외에도 윗 세대의 정치적 고려, 그리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즉, 시대적 상황이 그들의 빠른 성장을 견인했다고 할 수 있다. p.122 세대란 시대를 넘어서는 존재할 수 없다. 세대는 시대 위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p.122 실패의 경험 없는 승리에 대한 확신,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강고한 투쟁력, 타협하기 어려운 상명하복의 교조적 문화, 다른 목소리를 포용하지 않는 적대적 계파주의가 이른바 386 DNA로 자라났다. 자나 깨나 민주주의를 원했던 386세대가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남을 수 없는 한계는 이런 DNA 때문이 아닐까. 당시 이들은 피와(p.148) 눈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노력했을 뿐, 민주주의를 즐겁게 향유하는 법을 익히지는 못했다. p.149 故 성유보(민주화운동가)의 1987년 민주화 성공 요인 정치적 리더십의 역할 2. 민주개헌이나 독재타도 혹은 고문반대와 같이 간명하고 보편적 목표를 대중에게 제시(p.171) 3.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와 미국의 압력 등 외부 조건이 맞아떨어짐 4. 학생운동이 대중노선으로 선회 p.172 과거의 헌신으로 오늘의 영광을 보상받는 것이 정당한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모든 세대는 각자 살아가는 시대의 무게를 나눠서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p.175 학원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평등하게 대학 문턱을 넘었던 386세대가 지옥 같은 입시 경쟁 체제를 만들어낸 셈이다. p.214 386세대의 부동산 불패 신화가 독재정권의 정책 덕분이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박정희 정권이 만든 청약제도와 분양가 상한제, 그리고 노태우 정권의 주택 200만 호 건설정책과 1기 신도시 계획의 합작품이 386세대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돈이 부족하다면, 주택금융규제의 완화 흐름이 이를 보완해 주기도 했다. 부동산 정책의 3종 세트인 공급과 금융, 세제 가운데 세제를 제외한 나머지 2개는 특혜에 가까웠다. p.241 이 정도로 노동시장이 유연해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사회안전망이 갖춰져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과는 질 낮은 일자리의 양산, 그리고 더 나은 계층으로 올려주는 사다리 붕괴로 이어졌다. p.270 직업에는 귀천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고용에는 확실히 있다. ... 그리고 고용의 귀천은 세대별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p.281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당신이 보고자 하는 그 변화 자체가 되어라. -마하트마 간디 p.283 꼰대는 갑질, 헬조선과 맞닿아 있다. 이들은 모두 공정하지 않음을 문제 삼는다. 왜 공정하지 않은가. 걸핏하면 ‘법대로 해’를 외치지만 법과 제도가 원칙대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쁘고 급하면 언제든 우리 사회 ‘갓길’에서 전력질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기득권들이 너무도 많다.(p.287) ... 스스로가 저항의 대상이 되는 게 무척이나 낯선 꼰대들은 이들의 ‘법대로 해봐’ 정신에 움찔하지만, 결국 ‘요즘 것들은...’이란 푸념으로 사태를 마무리 짓는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라는 말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들을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p.288 세상의 절반과 다른 절반이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세상에서 저출산은 필연이다. p.300 386세대는 일종의 이익집단적 성격을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는 특히 386세대가 한 사회의(p.325) 제도를 만드는 정치 영역에 일찌감치 진출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386세대의 삶이 녹록하지 만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빈곤율 40%가 넘는 부모 세대와 체감실업률이 30%에 육박하는 청년 세대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 사회안전망 구추과 분배정의 실현을 외면하고 노동 없는 이익, 즉 지대추구에 몰두하며 살아온 과거의 시간들에 대해 책임져야 할 운명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p.326 먹고사는 걱정을 덜게 된 데에 산업화세대가, 민주화 달성에는 386세대가 유독 큰 주인의식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이 이 지경에 이른 데에 더 큰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세대가 있을 터다. p.329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세대라 할 수 있는 386세대를 바라본다. 가난과 전쟁 탓에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운 부모 세대 등에 올라타 독재자가 허용한 효율과 성장의 과실을 맛보며 10대를 보내고, 두 번째(p.329) 독재자가 교육의 평등을 설파하며 내건 교육개혁조치의 수혜로 20대를 열었던 386세대. 이어 반독재자가 내민 200만 호 아파트 건설 카드와 청야공장 덕에 일찌감치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얻어 중산층에 진입했으며, IMF 외환위기의 파고조차 비껴간 운 좋은 세대. 시대가 선사한 거듭된 운을 실력이라 믿으며 불운한 뒷세대에게 ‘우리는 안 그랬다’며 ‘노오력’을 강조하는 이 사람들 말이다. p.330 털끝만큼의 권력이라도 있다면 한 톨도 낭비할 수 없다는 집착,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경계가 흐릿한 지대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염치, 결국 불의보다 불이익에 민감해진 우리 사회 양심의 모습을 386세대는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 정도쯤이야’ 하는 허술한 양심의 벽은 지난 30년간 시대가 부여해준 호의와 그 속에서 이룬 성공스토리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건 반칙이야’라고 외치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p.362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부를 만한 변화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공유경제, 인공지능, 테러리즘, 성평등, 개인과 국가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 어느 것 하나에 익숙하지 않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나 “너희(p.367)들이 뭘 알아”로 표현되는 실패 경험 없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발붙일 자리가 없다는 말이다. 패러다임 전환은 한마디로 ‘단절’이다. 단절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가보지 못한 길을 가며 오류를 끊임없이 개선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p.368 1987년도에 그들이 패러다임 전환적 승리를 거둔 것은 그들의 눈이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에 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람은 남은 생의 길이만큼 내다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386세대는 새 시대의 첫차가 먼 미래를 내다보며 출발할 수 있도록 구시대 막차의 마지막 칸을 붙든 고리를 끊어야 한다. p.368 인간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가해자의 성격을 띤다. 이슬을 먹고 살지 않는 한 어떤 생명을 빼앗아야 생존할 수 있다. 자신이 가해자임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어떤 윤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후지이 다케시(일본인 한국 현대사 연구자) p.375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라고 후지이 다케시는 덧붙여 설명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가해자는 없고 온갖 종류의 피해자들만 난무하는 사회에서 책임이 설 자리는 없다. 우리 사회는 늘상 가해자가 명백한 사안이더라도 피해자의 귀책 사유를 찾는 데 혈안이 된다. p.376 이 모든 게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사회적 기본권, 즉 사회권의 범위 안에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약속이다. 사회권은 이를 유린당하고 있는 우리의 청춘을 붙들어줄 기둥이며, 인간다움을 지켜줄 보루다, 이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는 주체가 국가든 특정 세대든 간에(p.390) 배려나 양보를 기대하지 못한다면 저항의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저항은 당사자가 할 때 가장 힘이 세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싸워주지 않는다. p.391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은 30여 년 전 386세대가 눈물 흘리며 바랐던 그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바랐던 혁명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라면, 세대 독점의 해소는 비록 늦었지만 혁명의 완결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이제는 혁명의 열정을 뽐내는 주체가 아니라 염치와 배려의 미덕을 풍기는 혁명의 지원군으로서 말이다. p.395 70년대에서 80년대에 사회의 향방을 놓고 벌어진 이 오래된 갈등은 21세기에 오히려 더욱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이 갈등은 좀 넓게 틀을 잡고 보면 한국식 진보(뭐가 진보인지는 잘 모르겠다.)와 한국식 보수(도대체 성조기를 흔드는 외국 보수를 본 적이 없다!)의 이념전쟁처럼 보인다. 그러나(p.397) 개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보면 먹고살고 승진하기 위한 개인들의 처절한 생존투쟁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싸움은 아무리 강렬해도 별로 새롭지는 않다. 70년대와 80년대에 기원을 둔 과거 회상적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느 쪽이라도, 소수의 승자가 많은 것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 20대로서는 자기의 게임도 아니고, 재미도 없다. p.398 세력으로서는 이제 한국에 남은 게 별것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3김 시대가 결국 두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나서야 종료된 것처럼, 386 시대가 그들끼리 돌아가며 마지막까지 버티는 것 아니겠는가. p.424 몇 년 전의 ‘헬조선’의 눈총이 유신시대에게로 갔다면, 이제는 386에게 갈 차례다. 유신세대든 386이든, 획일성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자, 그럼 해법은 뭘까? 쉬워 오비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다양성이라는 방향이 거의 유일한 해법이 아닐까. 과잉, 과소 대표의 해소와 지역, 세대, 젠더 등의 변수를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부드러운 방법이다.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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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과거 역사에 대한 책들은 자주 읽으려고 하는데, 그만큼 현실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 현실 사회의 문제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고민해볼 수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386세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고, 세대갈등에 대해서도 좀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인 것 같습니다. 배경지식을 늘린뒤에 다음에 한번 더 읽어봐야 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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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추석이 다가온다.
올해 추석에도 이런 말을 한 번은 듣지 않을까.
"요즘 젊은 애들은 너무 형편없어."
요즘 젊은이로서 그들에게 뭐라 변명하고 싶었지만, 딱히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오직 먹고 사는 걱정을 하는 동안에 그들은 '자유', '민주주의' 와 같은 거창한 것들을 위해 투쟁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명절에는 그들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이 책 덕분이다.
그들이 젊었을 적, 지금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큰 가치를 위해 싸웠던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그들은 큰 가치를 위해 싸운 대가를 톡톡이 받았다.
그들은 아무 대가 없이 나라를 위해, 큰 가치들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생색내지 말아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