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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그 의미가 선뜻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저자가 페미니즘의 의미에는 공감하지만, 스스로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밝히는 것을 주저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페미니즘의 당위성을 인지하고 있음은 물론, 실제 삶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프롤로그’에서도 자신을 ‘글 쓰는 페미니스트’라고 소개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제목의 의미는 저자가 주변 사람들, 특히 저자의 남편을 비롯한 남자들에게 건네는 메시지라고 이해했다. 저자는 사람들에게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모든 사람들이 독립적인 개체로 차별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명확히 설명 안 되는 불편함에 대하여’라는 부제 역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어왔던 남성중심의 제도와 습속에서 드러나는 ‘여성들의 불편함’을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기존의 문화에서는 ‘여성들의 불편함’을 남성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측면이 강했다. 따라서 여성의 권익 향상은 그동안 누려왔던 남성들의 기득권을 하나씩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기득권의 상실’로 인해서 이른바 ‘여성혐오(여혐)’라는 현상이 발생했으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남성혐오’도 생겨난 것이라 하겠다. 극단적인 ‘남혐’ 혹은 ‘여혐’이라는 현상이 지닌 문제점은 이미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여겨진다.
사실 ‘혐오문화’는 대체로 개인 혹은 집단에 가해지는 극단적인 정서로 표출되기에, 그 안에 내재된 제도와 문화적인 문제들은 간과되기 쉽다. 때문에 문제의 본질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개인과 개인 혹은 집단과 집단의 문제로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되는 남성중심의 문화에서 여성들의 권익 향상은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경우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현실적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이는 그동안 견고하게 작용했던 남성중심의 문화가 바뀌는 과정에서, 그러한 상황을 ‘기득권의 상실’로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서 실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논하고 있다. 전체 3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목차는, 저자가 겪었던 문제들을 소개하면서 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해야 하는가를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이해되었다. ‘너와 이야기하면 나는 예민한 여자가 된다’라는 첫 번째 항목에서, 저자는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면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쉽게 하는 농담이나 ‘남성이 만든 보편 사회’는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저자의 경험과 이 사회의 남성중심적 문화를 일깨우는 것으로 논하고 있다.
두 번째 항목의 ‘나의 평범한 한국 남자친구’는 이미 대부분 남성중심 문화에 익숙한 존재이기가 쉽다고 말하고 있다. ‘젠더이슈, 말할 때마다 싸운다’는 내용은 아마 대부분의 연인들 사이에 한번쯤은 겪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세 번째 항목의 제목처럼 ‘네, 저는 예민한 여자입니다’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실상 남성들의 입장에서 ‘예민한 반응’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여성들의 권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정당한 반응'인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당당히 상대로 하여금 ‘예민한 여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행동을 실천하고 있으며, 그러한 행동이 예민하지 않게 받아들여질 때 진정으로 ‘성평등’으로 진입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은 그동안 여성들이 살아오면서 느꼈을 ‘불편함’과 ‘예민함’에 대한 보편적인 내용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러한 생각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그동안 뿌리 깊게 자리를 잡아왔던 남성중심의 관습에 대해 분명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적어도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 최소한의 '성평등'의 인식을 지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이해된다. 특히 결혼이라는 제도로 인해 여성들에게 발생하는 ‘경력 단절’의 문제는 단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제도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페미니즘의 근본 목적은 남성과 여성을 떠나, 모든 개인이 독립적인 주체로 활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차니)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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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기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재직 중인 회사의 상사 때문이었다. 마흔한 살의 미혼남이었는데 나이가 많은데 결혼을 안 한 여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면 성격이 이상하거나 외모가 별로라는 것이다. 정작 본인도 미혼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후배직원들이 여럿 있는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얘기를 하곤 했다.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건 처음엔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인가 하고 넘겼지만, 여자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직장 내에서 여직원들한테 끼를 부리거나 주말엔 사교모임을 나가서 여자를 만나곤 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여자를 좋아함과 동시에 혐오한다는 게. 여성이든 남성이든 이성은 필요하지 않은가? 그런데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했다. 그래서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겼고,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과 여성이 모두 잘사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박은지 저자의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을 선택하게 되었다.
□ 소개 저자가 평소 평범한 일상에서 문득 낯선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들에 관해 설명하고 어떤 방향으로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불편함을 해결해나가야 할지 이야기한다.
□ 느낀점
처음 1장을 읽고 나서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첫 번째 감정은 책의 내용에 대한 공감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잘못된 페미니즘을 접했다는 사실이었다. 두 번째 감정은 내가 의식을 했든 하지 않았든 남성으로 살아오면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 낯섦이었다. 예를 들면
□ 추천 흔히 세상의 여자가 절반 남자가 절반이라고 한다. 이성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다른 성별이란 이유로 멀리한다면 세상의 절반의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직장에도 여자 후배와 여자 선배들이 있고, 가정에는 여동생과 내년에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다. 이렇듯 내 주변에 이성인 여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여성들이 남성의 고통을 직접 겪을 수 없듯이 남성 또한, 여성이 겪는 고통을 직접 겪을 수 없다. 생물학적이든 사회학적이든 말이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여자친구를 여동생을 직장 후배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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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
이 책은
이 책은 30대 여성의 시각으로 본 현재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페미니즘 현황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저자의 목소리 하나, 먼저 들어보자.
남아선호사상이 만연해 있던 옛 시대에 비하면 세상이 느리게나마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30대 젊은 부부 세대에서 “여자가 이래야지” 하고 권위를 세우는 남편은 많지 않다. 함께 집안일을 나눠 하고, 육아에 동참하고, 시댁과 아내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 남편들도 많다. (49쪽)
이런 경향, 이런 추세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어떨까 <문제는 여전히 그것이 ‘고맙고 특별한’ 풍경처럼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런 게 특별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으니, 현재, 남녀평등에 관한 추세 변화는 아직 저자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저자의 목소리가 이 책에 담겨있다.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들
남녀의 시각 차이가 어떤지 잘 보여주는 말이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남자는 무심코 이런 말을 던진다. “그게 뭐가 어때서?” 그런 남자의 말에 여성은 어떻게 반응할까? “그걸 왜 몰라?”
이 책을 읽으면서, 남녀의 차이가 바로 그런 말로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 : “그게 뭐가 어때서?” 여 : “그걸 왜 몰라?”
혹시 이 책을 남녀가 같이 읽고 있다면, 이 말을 활용해서 서로의 시각을 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 이 책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가 각각 기준으로 삼아온 세계가 다르다는 사실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자주 “그게 뭐가 어때서?”라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왜 몰라?”라고 분노에 차 반문했다.> (7쪽)
그 다음을 읽어보면서, 여자들끼리는 어떤 말이 등장하는가 살펴보자.
<여자 친구들끼리는 ‘왜 그거 있잖아’하면 다들 깊게 공감하는 문장이나 상황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남편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
‘왜 그거 있잖아’라는 말은 남녀간에는 통용되지 못하는 것일까 앞으로 이 말이 남녀간에도 통용되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남녀의 차이, 서로 강 건너 등불(?)
(결혼후) 우리가 살고 있던 세계가 다르다는, 우리가 세상을 보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이토록 다르다는 실감을 그때 불현 듯 하게 된다. (113쪽)
내가 남편과 살면서 놀란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예민하게 듣는 그 모든 문장들이 남편에게는 나만큼 날카롭게 꽂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165쪽)
개념 정리. : ‘여성 혐오’
저자는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여성혐오의 범위를 공부하고 인지하는 것이라 한다.
여성혐오는 사전적인 느낌의 ‘증오하고 싫어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현상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다. (106쪽)
저자는 여성혐오의 예로, 여성의 한계를 긋거나, 성적 대상화 하거나, 모성을 의무화하고 신성화하는 흔한 일들을 모두 여성혐오로 규정한다.
밑줄 긋고 생각해 볼 말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남이 해주는 거, 그게 연애다. (25쪽)
차별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주체는 차별을 당한다고 여겨졌던 쪽이 되어야 한다. 인종 차별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백인이 선언한다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53쪽)
다시, 이 책은? 페미니즘은 왜 필요한가
저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서로에게 원치 않는 역할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온전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더구나 한 쌍의 남녀로서 손을 잡고 걸어가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페미니즘이 필요했다. 또한 이 아슬아슬한 지렛대 위에서 홀로 균형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도 페미니즘 한 조각을 내 삶에 끌어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세상을 바꾸거나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을 위해서였다.> (9쪽)
이 말에서 내가 페미니즘 책을 읽고, 내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세상을 바꾸거나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또한 그들(여성들)의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을 위해서도 아니고 (여성과 남성 모두인) 우리들의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을 위해서였다.
일상의 어느 면에서나 남녀 차별이 있네 없네 하는 말이 나오지 않게 되어, 남녀를 의식하지 않게 되는 것, 그게 진정한 페미니즘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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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딱 내 마음 같다. 나 또한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 책이 읽고 싶었던 것일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책에서 말하길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 하면 예민하고, 불편한 사람으로 치부된다고 말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한들 여자들은 여전히 불안하고 불편하다. 여성들을 노리는 흉흉한 범죄는 물론이고,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시댁에 가서도 몸과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그리고 임신 또한 여자에게 무척 불리한 일이다. 여자의 몸에서 거쳐 나온다는 이유로 출산과 육아는 모두 여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남자들은 출산과 육아를 쉽게 생각하며, 자신들은 돈을 벌어 온다는 이유로 주도적으로 참여 조차 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나 또한 무척이나 예민한 여자라는 게 명백해진다. 페미니스트까진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벌써부터 다가오는 명절이 갑갑하고, 답답해질 뿐이다. 그래도 저자처럼 당당하게 내 생각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표현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책 속에서 나의 마음을 흔드는 접어두었더니 굉장히 많았다^^;;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 당당하게 나의 생각을 밝힐줄 아는 여자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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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라는 글자를 떠올려보면 같은 여자로서 관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입장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성의 평등과 권리에 대한 것이니 그냥 간과하지 못하겠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 정확히 설명 안 되는 불편함에 대하여 [박은지 / 생각정거장] 왠지 이 책의 제목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페미니스트면 페미니스트지 페미니스트까진 아닌데 그 뒤에 몬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보였다. 페미니즘 관련 책인데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 저자가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지 궁금해 읽어보게 된 책 #페미니스트까진아니지만 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 곳곳에서 불편하게 드러나는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때론 뭐지? 하면서도 바로 나서지 못한 순간도 떠올랐다. 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말들과 분위기라 이 말이 여성을 낮추는 표현인데도 난 아무렇지 않게 있었구나 하는 부분도 있었다. 불편하지만 명확히 설명이 안 된다는 글이 이처럼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라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운 점을 저자는 책에서 이야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시시콜콜하게 그 상황마다 다 화를 내고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 하루도 싸우지 않고는 못 살 테고, 이야기를 한 여성만 이상해질게 뻔하니 말이다. '여성혐오'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말 맘충, 김여사, 무개념녀.... 저자도 언급했지만 이에 대해서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듯 사용된 게 아닐까 싶다. 운전에 서툴거나 미숙하면 왜 다 김 여사가 돼야 하는지 개념 없이 행동하는 사람에 왜 굳이 성을 붙여 무개념녀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그 표현이 불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표현된 영상이나 기사를 볼 때 어떤 상황을 이야기하는 건지 그려지는 게 정말 화가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 역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런 점을 생각해볼 때는 페미니즘이 필요하구나 싶다. 아주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말... 아줌마. 나도 아줌마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난다. 결혼한 여자를 뜻하는 말이니까 맞는 호칭이려니 싶었지만 왜 이리 기분이 나쁘던지...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아주머니라는 표현을 하는 사람보다 아줌마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부분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들.. 어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아줌마'라는 표현이 아주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는 걸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 표현이 어떤지도 모른 채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는 게 참 안타깝고 속상하다. 반면 책을 보면서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주어지는 남성, 여성, 며느리, 가장의 역할에 대해서는 좀 이해하고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물론 저자는 이 부분을 하나씩 고쳐가야 앞으로 이 부분이 더 나아질 거란 이야기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놓고 생각할 때는 난 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고 가정경제를 이끌어 가려면 가장의 역할과 양육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할 거고 그 부분에서조차 페미니즘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부부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다. 하나하나 고쳐가는 건 좋지만 아이들 키우며 먹고살기도 버거운 게 현실이기에 말이다. 책을 읽으며 공감도 하고, 또 다른 입장으로 바라보기도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뭔가 불편한 기분이 든다. 여성을 낮추어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 모습에도 그랬고,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본 부분조차도 익숙해진 탓인지 이해해보는 걸 어떨까 생각을 하기도 해서 말이다.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세상을 바꾸거나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을 위해서였다. 지금 우리 사회가 페미니즘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든, 나는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바가 결국 우리가 서로의 자유와 행복을 침해하지 않고 건강하게 어우러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p.9 中- 책을 다 읽고 났는데 마음이 불편한 건 참 오랜만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을 만나보며 그동안 지나쳤던 여러 상황들에서 생각이 깨어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힘들겠지만 이 책을 통해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터 하나씩 고쳐나간다면 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상황들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일에서든 사람이라는 두 자만 등장했으면 좋겠다. 남성, 여성이라는 말로 구분 짓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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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선택과 자유는 평등한 것이다. [이런 분께 권함] 페미니즘을 알고 싶은 분, ....... [느낀 점] 사실 개인적으로 요즘 자주 언급되는 '페미니즘'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 이게 당당하게 할 말은 아니지만,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반응이 불편한 이들이 있다면 양해를 구한다. 필요는 결핍에 대한 반응이다. 난 이 영역에 대한 결핍을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나의 태도가 페미니즘을 부추기는데 일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부터 알아가 보려고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이고, 알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래야 욕을 먹더라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고, 욕하는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알고 싶어하니 궁금해졌다.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길래 사회적인 문제까지 확대되기도 하며, 보이지 않는 미묘한 불편함들이 존재해야 하는지... 인터넷 사전에서는 '페미니즘'을 이렇게 정의한다.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 그리고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자유와 권리의 확대,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자유, 권리, 평등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보니 차별, 불평등, 억압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이것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해결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해결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데 있다. 그래서 저마다의 입장 차이에 따라 경계설정이 달라진다. 이것이 갈등의 시작점이라고 생각된다. 상대의 입장이 아니라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다보니 어긋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명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미묘하고 애매하다. 어쩌면 이런 이해조차도 사회구조 속에서 성별의 차이로 인해 겪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미묘하거나 애매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너무나 명확한데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미묘함과 애매함, 예민함의 경계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여성의 입장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차별, 불평등, 억압 등을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아리송하기도 하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기는 한데 너무 막연한 느낌인 것도 있다. 나도 비슷하게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이런 것도 불편해 하는구나' 싶은 것도 있다. 무관심했기에 무지했던 부분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겨우 이 정도로 차별, 불평등, 억압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동안 모른 채,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의 벽이 두텁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성중심 사회 속에서 남성이라는 이유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은 채 살아도 됐기 때문에 갖게 된 무지의 결과이다. 내가 느끼는 당연한 것을 누군가는 당연하지 않게 느낄지 모른다는 걸 염두해 두지 못했던 무관심의 결과이다. 책 한권 읽었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무지와 무관심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 갈 수 있는 계기는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가장 가까운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으로 작은 깨달음을 실천해 봐야겠다. 당장 무엇이 달라질지 알 수 없고, 이 실천이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올렸던 서로의 벽이 조금이나마 낮아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잘은 모르지만 페미니즘은 논쟁점은 "선택과 자유"인 것 같다. 나의 선택이 누군가의 평가에 의해 제한받지 않고, 내가 누리고 싶은 자유를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제한받지 않는 것. 이것은 성별을 떠나 누구나 원하는 기본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작동이 안 되니까 문제가 되는 거다. 이 문제의 중심에 오래된 문화, 사회적 관습이 존재할 수 있다. 전에는 문제가 안 됐어도 지금 문제가 된다면 해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들이 사용되길 기대해 본다. 간혹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사람들로 인해 선량한 다수의 사람들이 피해를 볼 때가 있으니 말이다. 나도 천천히 시작해 봐야겠다. 나의 도전이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 이 리뷰는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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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친구들과 휴가를 보냈다. 차를 타고 이동중에 갑자기 친구의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며 시작되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목차에 그때 이야기한 내용들이 꽤 있어서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궁금했다. 표지에 있는 '명확히 설명 안 되는 불편함에 대하여' 라고 적혀있는 문구와 함께 쉬워보이는 것과 반대로 어려워보이는 가로막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책에서는 제목처럼 '페미니스트라는 기준'에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의 잦은 검증중에 하나가 되어버린 '페미니스트'이다. 책에서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머리를 짧게 하고다닌경우나, 화장을 잘 하지 않았거나,브래지어를 입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라고 의심한다. '페미니스트'가 한국 사회에서 이야기가 나온건 최근 몇년인데, 그 전부터 그랬던 사람들부터 연예인을 따라하나, 혹은 편함을 선택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생겼다. 계속되는 무더위에 계속 더위먹고 힘들어 긴 머리를 잘랐더니 '너 페미니스트야?'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책에서는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도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닌데' 라는 말을 서두에 붙이며 조심스레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고 말한다. 이유는 '타이틀을 다는 순간 사회 운동하는 사람인것 같고, 모두를 납득시킬만한 답을 내놓아야 할 것같고, 두렵기 때문이다'고 한다. '페미니스트에게 향해지는 그 모든 날카로운 공격들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보이는것에 두려움이 생긴것같다. 휴가를 같이 보낸 친구는 우리에게 '불합리'한 부분을 얘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페미니스트'를 부정부터했다. 이는 '불합리함을 말하기도 전에 '워마드가 니며, 남성혐오를 하지않는다.'고 먼저증명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는점이다.' 고 말한다. 이러한 부분에대해서 책에선 '김치녀, 된장녀 같은 단어는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고 남초 커뮤니티를 휩쓸고,뉴스에도 등장하는데, 여성들에게는 오로지 남성을 불편하게 하지않는 범위내에서 상냥한 페미니즘만 허락한다.'고 했다. 읽으면서 공감된것이 '김치녀' , '된장녀'등의 단어는 이렇게 문제되지않고 잘 만 쓰여왔는데 타인을 향한것도아니고, 자기 자신을 말할때 사용되는단어가 이렇게 두려움을 갖게한다니... 또한 '남성과 평등한 권리와 안전을 주장하니 메갈이나 워마드라고 불리게 된 것'이라는 책 내용을 보며, 몰랐던 사실을 마주한기분이였다. 책에서는 읽을때마다 생각지 못한 이야기들로 놀라움의 연속이였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자주 겪는 불만에대해서도 반박할수 없는 팩트를 날린다. 저자와 남편의 대화였는데, 너무나 당연한 답이였는데 모르고 있었다. 특히나 나는 4줄에 걸친 짧은 대화를 보고 지인에게 책을 추천했다. 읽어보라고...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도 읽으면서 그동안 '명확히 설명 안되는 불편함에 해서' 생각해볼수 있겠다 싶었고, '페미니스트'인 사람도 읽어봤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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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이렇게 예민해? 왜 너만 불편해 하니? 결혼 전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부터 모든 게 시작되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께서 과일을 내오실 때 나는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같이 과일을 깎거나 뭔가 도와드리려고 안달을 했다. 우리집에선 엄마가 깎아주면 먹던 과일인데 막상 내가 깎으려니 엉망진창이었다. 결혼 전에 명절은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고, 뭔가 잘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집에서 이렇게 하면 매우 칭찬받을 일인데 (니가 왠일이냐?) 시댁에선 아주 자연스럽게 예비며느리의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었다. 내가 나의 최선을 120% 발휘했지만 이것은 칭찬까진 아니고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었다. 그래서 난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고 마음의 문을 많이 닫게 되었다.
지금 연애중이면서 벌써 상대방의 가족들을 만나고 며느리처럼 행동하는 아가씨들을 보면 너무나도 안타깝다. "앞으로 갈 길이 멀어. 넌 좋아서 하는 일이겠지만 먼 미래를 생각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남자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이제 페미니즘일까? 그 의문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82년생 김지영’과 같이 이 책은 나에게 다큐였다. 그냥 내가 겪는 일이었고 내가 하고픈 말, 내가 늘 느끼는 내용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기, 기혼여성으로서 살기, 애엄마로 살며 내가 항상 가지는 의문이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상황속에 함께 있었으나 여자들만큼 느낄 감수성이나 민감성이 결여되어 있고 넌 왜그렇게 예민하냐는 말로 모든 걸 퉁치려 했다. 또한 그 와중에 순종적이며 방긋방긋 웃으며 애교있게 ‘제가 할께요’라고 나서는 다른 여성을 보며 ‘넌 왜 그렇게 못하고 그리 무뚝뚝하냐....’라고 한다. 결국 남자들이 느끼는 페미니스트는 ‘뚱뚱하고 못생긴데다 애교도 없으며 매너있게 잘 해줬더니 받을 건 받고 남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여성’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는 결혼하고 저절로 며느리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며느리로 살아가며 시어머니를 만나는 것에 대해서 막연히 짐작할 뿐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좋으신 분이라도 며느리에게는 어려웠고, 스쳐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가볍게 흘려 들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오랜만에 만나 “며느리 얼굴 까먹겠다”고 웃어도 눈치가 보였고, “우리 아들 얼굴이 왜 이렇게 까칠해졌지?”하고 고개를 갸웃하면 괜히 내가 좌불안석이 되는 것이다. 그걸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선천적인 공감 능력의 문제일까, 아니면 이렇게 눈치 볼 관계가 없었던 탓일까? 후자라면 참 부러운 일이지만, 본인이 겪지 않았다고 다른 이들의 고충을 예민함으로 치부하는 것은 얼마나 무신경한 행위인가. 나는 그가 내게 예민하다고 지적하면, 예민한 것보다 둔감한 것이 더 나쁘다고 반박했다. 사실 결혼하고 나서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바깥에서 오는 압력이 아니라 내 안에서 튀어나오는 의무감이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나를 그렇게 괴롭게 할 줄 몰랐다. 나는 자라오면서 원치 않는 의무에 대해 얼마나 많이 학습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누가 나에게 뭘 시키지 않아도, 누가 나를 욕하지 않아도 나는 며느리였다. 시댁에 가면 뭐라도 해야 할 것처럼 초조했고, 생신이나 집들이 때 잘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해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191쪽~192쪽 발췌)
남혐여혐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결혼한 이후는 동등한 성인이 집안일이든 뭐든 주체성을 가지고 함께 꾸려나가는 게 어떨까 그리고 주변에서는 이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결혼한 남자에게 “아침밥은 얻어먹고 다니니?”라고 묻거나...“와이프 저녁밥 챙겨주러 가야 해요.” 이런 말을 남자들은 회사에서 퇴근하면서 하지 않을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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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선택하게된 책이었다. 작가님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해 본적은 없다고 했다. 요즘 화두가 되는 주제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했다가 이목을 끄는것도 싫고 자신의 일상과 사랑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갈수록 불편함을 느끼는 일상에서 성별로 차별이 일어나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혹은 좀 더 행복해지고자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로 페미니즘에 대해 다루는 책을 쓰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스트를 쉽게 예민한 여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예민함과 불편함을 토로하는 1장과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나 남편 역시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였다는걸 알게된 2장, 다시한번 예민한 여자임을 밝히는 3장으로 나누어져있었다. 수많은 에피중에 기억에 남는걸 꼽아보자면, 낮잡아 이르는 말들이라는 주제가 기억에 남는다. 벙어리장갑이 불편한 이유는 언어장애인을 낮자아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고 아주머니를 낮잡아 이르는 아줌마란 단어도 상대방이 아주머니를 존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때문에 들었을때 썩 기분이 좋지 않은 말이라는걸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엄마란 집안일을 하는 사람 = 집안일은 여자의 몫이라는 뜻이 담긴 집사람이란 단어도 듣기 불편했고, 이외수의 단풍이란 시도 이년 저년 그리고 화냥기라는 단어를 칭하는 여자를 비하하는 단어로 단풍을 표현했다는것에 솔직히 조금은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본인은 그런 뜻이 아니라하지만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고를 하기 때문에 익숙해지다보면 잊어버리고, 잊어버린채로 살아가면 무의식적으로 여성혐오를 사고한다는 작가님의 말을 깊은 공감을 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못한다면 어떤 계층이 예술로 남아있을까라는 질문에 여러가지를 생각해본 챕터였다. 이외에도 책에는 남편들이 밖에서 농담처럼 말하는 유부남으로써의 구속에 대한 실없는 농담들이 불편한 이유라던지, 남자가 만든 사회에 여자들에게 존재하는 유리천장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여자의적은 여자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대한 챕터, 낙태에 대한 고찰, 결혼해도 남자는 어린애이기때문에 여자가 참고 견뎌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작가님의 차분한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들이 많았기에 다시한번 정독하고 내 감상을 정리하고 싶어진 책이었다. 주변에 많은 친구들에게 적극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오랜만에 든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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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즘도 불합리한 얘기를 너무너무 많이 들었다. 어떤 여자는 정말 아들을 낳으니까 시어머니가 고맙다고 했다는둥, 친척언니는 딸만 낳으니까 시댁에서 뭐라고 한다는 둥, 어떤 예능에서도 딸을 낳으니까 시부모가 며느리가 나이가 많으니까 빨리 아들을 낳으라고 했다는 둥,,우리엄마집안도 딸은 공부하지 말고 아들은 서울대 법대에 판사, 건설부장관까지 되게 밀어줬으면서 말이다. 아는 언니도 자기집은 아들을 우선시 한다고 아들이 제사를 지내주니까요,,나중에 시부모랑 문제가 생기면 며느리가 참아야 한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난 강남의 교수아들에 스카이를 나오면 좀 발전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조선시대 얘기를 하는 것을 봤다. 나는 잘잘못이 어디있는지 따져 봐야 하는거지 왜 무조건 참냐고 했다. 과선배는 여자는 25살이나 30살이 넘으면 끝났다고 하길래 선배꼴을 보니까 선배는 지금도 남자로서 끝난 것 같다고 했다. 나보고 넌 강남스타일인데 왜 강남에 안 살아 하길래 오빠는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처럼 생겼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했다. 내가 아프리카사람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그쪽 사람 비슷하게 생겼는데 항상 강남, 역삼동얘기를 수십 번 해서 그랬다. 엄마친구도 결혼을 하면 아들을 낳으라고 아직도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성염색체는 남자의 정자가 결정하는 것이고 자신들이 남자가 아니면서 아들을 우대하고 지금도 어디가 여성상위시대라고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나도 남동생이 공부를 못하고 아빠엄마한테 잘 못하니까 아빠엄마가 나를 우대하지 내가 공부도 못하고 못생기고 했으면 어떻게 대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는 힘이 세고 체력이 좋은 것 말고 여자보다 뛰어난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사회나 주변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다는 식으로 받아 들이고 얘기를 하는지 난 받아들일 수 없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페미니즘은 사회혁명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 가는데 완전히 필요하다. 여자는 어때야 하고 여자는 어떻다는 둥하는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걸 깨고 싶다.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이 심해지니까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했던 배려를 회수하겠다는 협박을 한다. 사람들이 여성은 의무는 나누지 않고 혜택만 챙기고 있다고 한다. 전구를 갈아 주고 자리를 양보해주고 무거운 것을 들어주고 집에 데려다 주었던 것은 다 누렸으니까 그것도 불평등이라고 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막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된 여성 전용 주차장은 역차별의 상징이 되었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 여성들이 안락함을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하지만 조금 더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하는 부분에서는 여기서부터는 남자들의 세계라며 가로막았다. 조직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는 여성은 이래서 안 뽑는다고 하는 텃세가 있다. 여직원이라는 말자체가 남성의 세계에 여자가 들어 왔다는 뜻이다. 여성이 누릴 것만 누리고 의무는 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반론을 펴면 동등한 경쟁을 위해 여성이 받는 제약을 없애는데 관심을 가져 준적이 있는지 저자는 묻고 싶다고 한다. 아직도 텔레비전이나 주변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 보면 여성을 절대로 동등한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항상 역할을 나누고 남자니까 돈을 더 많이 쓰고 여성을 보호하고 책임지길 바라지 않으니 저자는 같이 일하는 남성들과 똑같이 일하고 동등한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회를 갖고 싶다고 한다. 정말 맞는 얘기이다. 여성 인권이 향상되어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을 받는 세상이었다면 데이트 비용의 불균형이 나타날 이유가 없다. 여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굳이 집까지 데려다줄 필요가 없다. 남자들도 힘들다고 하면서 그들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여성들은 지금까지 억압되어 온 자유와 불평등에 대해서 말하고 계속 말하고 있는데 말이다.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남성들은 자신들이 누려온 혜택에 대해서는 논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남성들은 살림하고 며느리노릇하기 싫으면 여자도 집 사라라는 댓글은 봤지만 남자들도 집안일과 육아에 참여하고 처가에 안부 전화도 하고 명절 때 차례 음식 준비하러 갈 테니 여자들도 당직 서고 돈 벌고 집 사라는 취지의 발언은 못 봤다고 한다. 남성들은 양보한 것에 집중하고 어느 쪽으로든 치우친 구조를 바로 세우는데는 관심이 없다. 여성이 동등하게 함께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가 누군가의 것을 하나씩 뺐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개념과 기반부터 다시 세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저자나 저자친구들이 명절 때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전을 부치니까 친척들이 자상한 남편이라고 세상에 저런 남편이 어디있냐고 하면서 시집 잘 온 여자가 된다고 한다. 남자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좋고 자상한 남편이 된다고 한다. 집안 일을 나눠 하는 것은 복덩이 남편을 만난 덕분에 얻은 혜택이 아니라 공정하고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저자가 그런 얘기를 하면 그래도 변화가 되고 있는데 고맙게 여겨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아온다. 저자는 그런 변화가 더디고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불편함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예민한 여자로 취급받는다. 저자의 얘기가 맞는 것 같은데말이다.
집안일이 특별한 역할인 것처럼 화젯거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부모님 세대의 전통적인 성차별이 개선되고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는 하다. 저자의 남편도 자기 정도면 오픈 마인드라고 하는데 보통 이상이라는 데에 동의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건 보통의 기준이 지나치게 낮게 잡혀 있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속담이 있고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것도 있다. 산에 가야 범을 잡는다고 했다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한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 적용되는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것을 믿고 싶은 지의 문제다. 알아서 이득이 되는 상황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모르는 게 차라리 나으면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여자끼리 갈등이 생기면 사람들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떠올린다. 남자들의 싸움에는 남자의 적은 남자라고 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남자들이 싸우면 건강한 토론으로 보는데 여자들이 싸우는 건 질투나 시기의 문제로 치부한다. 남성이라는 것만으로도 여성을 분류하거나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은 여성이 겪는 문제를 여성들끼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한정한다. 그 다툼은 건강하지 않고 남성들은 그냥 방관하거나 판단을 한다. 직장에서 어린 여성을 나이 든 여성이 질투하고 싸우는 것이라는 여적여 프레임을 씌운다. 직장 내에서 남성들은 능력이 좋은 여성이 아니라 순종적이고 예쁜 여성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획득하기 위해서 능력을 키우고 성과를 내면 기가 세다거나 독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여성들에게 사회적으로 허용된 범위는 부족하고 싸움의 무기 역시 한정적이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에서 거쳐 온 많은 여성조력자들도 있었고 자신을 공격했거나 위협했던 남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못되게 말하는 남자들도 많고 못되게 말하는 여자들도 있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것 같지만 때로 우리는 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유난인 것 같아도 예민해 보이더라도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한 말들이 어떤 세상을 믿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저자는 남자가 칭찬한다고 해서 그 칭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쁘게 생겨가지고 성격은이라는 불평에는 예쁜 얼굴을 한 여성은 남성의 감상 대상이기 때문에 마당히 순종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일터에서 여성의 외모나 몸매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저자는 당신의 꽃이 되려고 직장에 있는게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런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칭찬을 받는 것뿐 아니라 칭찬을 하는 것도 너무 어렵다. 난 칭찬을 잘하는 편인데 그것도 조심해야 겠다. 꾸미는 자유나 안 꾸미는 자유는 페미니즘에 신경 쓰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 꾸밈 노동을 거부한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꾸밈 정도를 의식하여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더 이상 꾸미지 않은 것에 대한 창피함, 죄책감 같은 것을 굳이 감당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자신이 입고 싶은 것을 입고 하고 싶은 만큼 화장하는 권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반사적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거나 검열하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 살쪘어라든지 자기관리부족이라고 지적하는 사회에서 탈코르셋은 진정한 의미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스스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갖는 것이 개인의 멘탈문제로 한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이상 너 살쪘어라든지 오늘 화장 안 했어라는 질문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대한 것은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가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나이가 어떻게 되냐,,결혼했다니 아쉽다 등등의 얘기를 들으면서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나도 새벽 2시에 택시를 타본적이 일생없다. 8시만 넘어도 안 나간다. 세상이 너무 무섭기때문이다. 뉴스만 보는데 무서운 상황은 전부 피한다. 술도 안 마시지만 밤에는 아예 안 나간다. 우리가 살아 가는 사회가 문명사회라는 게 맞는지 힘의 논리는 강하고 혼자 사는 젊은 여자는 최약체이다. 혼자 사는 집에서 배달을 시킬 때, 잠결에 문이 덜컹하는 소리를 들을 때 밤중에 택시를 타거나 어쩌다 남성과 밀폐된 공간에 단둘이서 서 있게 될 때 저자의 의지는 힘을 잃었다고 한다. 나도 그렇겠다.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상황에서 틈틈이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웃어줘서, 만만해 보여서 호감을 거절하지 않아서처럼 피해자 쪽에 가해지는 화살들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약자가 주장하는 평등이나 여성이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한 단계마다 벽에 부딪치고 있다.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위해를 가했을 때 같이 분노해야 한다. 약자에 대한 이해, 공감대를 조금만 넓혀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차지 않아야 한다. 그에 대해 논할 때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을 한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면 될 뿐이다. 정치에 대한 논쟁은 항상 예민하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면 친한 사람들과도 논쟁이 붙는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면 멀어지는 수밖에 없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고 그 불편함에 사랑하는 사람과 논의하며 개선하고 싶어 할 수 있다. 저자는 결혼할 때 폐백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폐백은 결혼 순서에 들어 있어서 별 생각없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예의상 해야 것이라고 어른들이 권유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가 의문을 갖은 건 왜 친정 부모님은 제외하고 시댁 부모님만 받느냐는 것이다. 요즘은 양가 부모님을 모두 모시고 폐백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흔하지는 않다. 아버지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 가는 것도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보호받거나 소유되는 대상이라는 오래된 상징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의 남동생은 결혼식장에 아버지와 손을 잡고 들어 가고 신부도 아버지의 손을 잡고 4명이서 같이 들어 갔다고 한다. 저자의 얘기들은 실생활의 페미니트스적인 고민들을 많이 해결해주고 미묘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도 잘 알려준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책글자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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