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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론 세이브 이 책은 이 책은 소설집이다. 저자는 이진서, 제 3회 등대문학사 및 제 38회 근로자문화예술제 단편 소설 부분에 상을 받았다. 저자 소개를 보면, 이 책이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으로 보인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소설의 내용을 집약해서 표지, 제목에 덧붙여 놓은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세상을 향해 날리는 중년 아재들의 변명.> 이런 내용들이 이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 8편의 주제가 되겠다. <두 개의 이름> <인중 끊어진 여자> <낚아내지 못한 자를 위한 변명> <블론 세이브> <물의 기운> <메가리 낚시> <굿바이, 리만 브러더스> <다음 생을 기다리며> 위의 작품중 처음 들어보는 말이 있다. 블론 세이브(Blown Save). 무슨 뜻일까 야구 용어다. 불을 꺼야 할 상황에 등장한 구원투수가 오히려 화를 더 키우는 경우를 말한다. 작품속의 설명에 의하면 ‘불을 꺼야 하는 소방수가 방화범이 되는 경우’(81쪽)다. 같은 제목의 소설에서는 불을 꺼야 할 다급한 상황에 처해있는 가장 장백수가 주인공이다. 실직한 상태에서 집안에 불을 꺼야할 정도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 그런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그러니 야구 경기로 설명하자면 구원투수가 되어 마운드에 설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는 과연 나머지 경기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아니면 제목 그대로 불을 끄기는커녕 불을 지르게 될지, 저자는 주인공을 드디어 공을 던지게 하는데, 과연 그가 던진 공은 8편의 소설중 가장 가슴이 먹먹한 상태로 독자들을 이끌어 가는 작품은 <다음 생을 기다리며>이다. 주인공에게 완벽하게 감정이입이 된다. 감정이입을 위해서 이런 가정을 해보자. 로또, 몇 십억을 아니 몇 백억을 단숨에 손안에 넣을 수 있는 로또에 당첨이 되었다. 갑자기 당한 횡재에 어찌할 줄 몰라, 집안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은 채 우선은 그 로또복권을 잘 감춰두었다. 혼자만 아는 곳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갑자기 사고를 당해 죽게 된다. 이럴 때 죽어가는 사람의 심정을 상상해보라. 자기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해 보자. 어찌 할 것인가 그런 상황을 소설적 상상력에 버물어 잘 비벼 놓은 작품이 <다음 생을 기다리며>이다. 그런 사정을 기억한 채로,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 그럼 어떻게 자기 가족에게 알릴 수 있을까 아, 이런 상상력, 좋다 저자의 상상력에 갈채를 보낸다. 다음과 같은 연결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체계적 둔감화 훈련’이라는 게 있다. 흔히들 '체계적 둔감법'이라 부르는 것인데, 심리학에서 불안이나 공포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 먼저 높은 곳을 올라가도록 하는 게 아니라, 1미터, 2미터 하는 식으로 차츰 차츰 얕은 곳에서 점점 높은 곳을 오르게 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 방법을 심리적 상황에 적용하는 게 아니라, 육체적 측면에 적용한다. 기발한 착상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밝히지 못하겠다. 우리나라 상황이 그런 것을 이런 곳에서 드러내어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직은 아닌 듯하다. 차츰 차츰 단계를 거쳐가면 –체계적 둔감화- 언젠가는 그럴 때가 오겠지만, 하여튼 여기선 함구하는게 좋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 119-20쪽을 참고하시라. 다시, 이 책은 소설은 일단 현실에서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공상과학 소설도 미래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현실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가능성 면에서는 동일하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 8편은 거의 모든 나의 경험에 근간한다. 50%의 사실과 50%의 허구, 뭐 이 정도랄까.>라고 밝히고 있으니, 저자가 그려낸 소설속 상황들은 현실 가능성 면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비단 작가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이 소설집을 읽는 독자들 또한 위에 인용한 저자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소설 속 상황이 사실이라는 것, 곧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들은 다만 저자의 창작으로 소설속에서만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소설 밖으로 뛰어 나오는 순간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그게 소설의 힘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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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속 여러 단편들 중에 유독 읽고 싶었던 작품들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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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곤봉 탄생 신화에 여러 설들이 있었지만, 지리산에서 번개 맞아 부러진 박달나무 가지를 꺽어 만들었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마귀가 휘두르는 마곤봉으로 엉덩이를 한대만 맞아도 누구나 대퇴부 뻣속까지 강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p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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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중 끊어진 여자’ 어떻게 성공했나 [리뷰] 『블론 세이브』(이진서 저, 피톤치드, 2018.10.22)
읽다보면 자조적이고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주인공들과 만나게 되는 소설『블론 세이브』(이진서 저, 피톤치드, 2018.10.22). 이 소설집은 총 8개의 단편 소설이 한데 모아져 있다. 저자는 2014년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 속 이야기는 자신이 살아온 삶 자체로 유(有)에서 구성된 소재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묘사가 직접 겪은 일 마냥 생생하고 또 현실감이 있다. 한편으로 저자의 삶이 정말 소설처럼 다채로웠고 안쓰러운 순간도 있었다는 기분에 안타깝기도 했다.
첫 번째 단편 소설은『두 개의 이름』이다.
“‘살인 정권 전두환은 물러가라.’라고 붉은 글씨로 적힌 살벌한 플래카드가 눈에 선했다.”
위와 같은 문장이 적힌 것을 보자 하니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 배경인 듯하다. 그 시절을 겪어온 모든 중장년층은 책의 내용이 수긍이 가겠지만 젊은 층은 아리송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음 문장 때문이다.
“학교에서 매일 맞는 것도 싫은데 대학에 가서도 또 군대에 가서도 폭력에 맞서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들에게 잡혀가면 전두환 대통령이 운영하는 ‘삼청교육대’라고 부르는 다른 대학에 잡혀가서 죽도록 맞고 반병신이 되어 돌아온다고 했다.”
![]() 시대를 가로지르는 이야기
지금은 체벌이 금지된 시대지만 이때만 해도 체벌이란 당연하다고 여기던 시대였다. 저자는 그런 시대를 학생의 눈으로 묘사하며 점차 자신이 사는 학교 지도자와 사회 지도자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구성했다. 그래서 소설『두 개의 이름』은 하나의 개체에 붙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결국 자신이 어느 무리에 속하건 똑같이 엄격하고 무서운 지도자를 만나게 된다는 좀 더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인중 끊어진 여자』라는 소설도 재미있다. 한 남자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여자 복 지지리도 없는 놈’이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한다. 남자는 성인이 되어 결혼 상대자 세 명을 만나고 하나하나 단점과 장점을 비교해 마지막 한 명을 남긴다. 그런데 그 여자는 인중이 코까지 이어지지 않았고 끊어져 있었다. 남자는 어릴 때부터 그런 특징의 여자는 임신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출산이 목적이기에 남자는 여자를 두고 시험을 한다. 몇 달간 관계를 맺지만 진짜로 임신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남자는 여자를 버린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와 헤어지고 점점 잘 나가더니 텔레비전까지 출현해 사업가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임신을 한다. 남자는 임신 문제가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반전적 결말에 재미가 있다. 역술가와 특정 미신적 말에 갇혀서 세상을 보는 사람을 질타하는 주제를 품는다.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언론을 통해서도 우리는 사실과 거짓이 결정된 상태로 살아간다. 오늘날 ‘가짜 뉴스’ 사건이 떠오르는 단편 소설이다.
또 다른 재미있었던 소설은『다음 생(生을) 기다리며』이다. 한 남자가 로또 1등에 당첨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사고를 당해 죽게 된다. 남자는 자신의 영혼이 하늘로 날아가 강아지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모두 지켜본다. 남자는 당첨된 로또 종이가 끼워진 책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소설은 그런 남자의 애타는 모습을 남자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풍자했다. 작가의 삶이 재미있게 재구성된 이야기들
작가의 소설은 기법과 구성이 독특하고 문체는 담담한 편이다. 재미는 있지만 다만 잔잔한 감동은 밀려오지 않는다. 심심풀이로 읽을 만한 이야기들이고 담긴 교훈조차 며칠이 지나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어떤 문장은 설명이 길다. “화면 속 여자들은 그 백인 남자의 ‘바나나’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자기네들끼리 으르렁거렸다. 그것을 서로 물고 빨고, 아주 난리가 났다.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 있는 남자의 얼굴은 흑인 여자의 커다란 엉덩이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 부럽다.“ 는 모든 상황을 묘사로 설명해준다. 그러나 비유는 많지 않다. 또한 저자들이 추측해 읽을 만한 재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곧바로 모니터 전원도 꺼버렸다. ‘아, 이제 시작인데.’ 아쉬움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미 어엿한 성인이지만, 포르노를 떳떳하게 보지 못하는 우리나라 유교적 사고방식을 나는 많이 개탄했다.” 문장을 보자면 불필요한 설명이 문장 꼬리에 달려 있는데, 소설 내용이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설명이었다.
책은 끝까지 읽고 느낀 점은 저자는 야구, 낚시를 매우 좋아하는 듯하다. 이들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또한 저자는 집에서 혼자 컴퓨터나 텔레비전 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좋아하는 듯하다. 주인공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상의 모습이 소설에 그대로 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역동적인 배경이 없는 점은 아쉽다.
인물도 8개의 단편 소설 모두에서 개성이 뚜렷하지 않고 한 인물이 서로 다른 이야기에 나온 듯한 기분이 든다. 그나마 이야기들이 매우 재미있어 다음 소설집이 있으면 구매해 볼 의향은 있다. 소설들은 중년 특히 남성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소재들이 많다. 현재에 지친 이들이 과거로부터의 삶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다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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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읽으면서 어떠한 내용일지 궁금해졌다. 책 한장, 한장 넘기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씁쓸한 현실을 가벼운 위트로 표현함으로써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책 " 블론 세이브 "는 총 8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들의 결말이나 생각을 우리 현실에 비교해보면 마음이 아픈 경우도 있었고 내 삶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경험도, 눈물도 난 경우도 있었다. "두 개의 이름"편을 읽으면서 지금 학생들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80~90년대 생이라면 흔히 경험했던 일들을 저자 이진서는 문장으로 나타내며 다시금 그 때 기억을 떠올리게 하게 한다. 또한, 80년대에 발생했던 일과 오버랩을 하여 우리에게 저자 이진서가 독자에게 주어진 생각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인중 끊어진 여자" 편을 읽으면서 우리가 삶 속에서 말이나 대화에 의해 삶을 얽메이고 벗어나지 못함을 느끼게 되었다. 과연 주인공 나가 선택했던 행위들이나 생각이 옳았는지 나는 마지막을 읽어보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물(水)의 기운"의 편을 읽어보며 흥미와 독창적인 전개,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으며 나가 어떠한 결말을 맞을지 궁금했는데 마지막장을 읽어보며 우리의 삶에서 어떠한 행동을 해야하는지 배울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자 이진서는 총 8개의 단편을 통해 우리에게 삶 속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해야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나는 책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책의 주인공을 통해 배울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과 콩나무 카페"를 통해 피톤치드에서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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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모든것을 지금 현실을 사는 우리라 하더라도 그걸 다 알 수는 없다. 이 책 " 블론 세이브" 는 세상을 향해 날리는 중년 아재들의 변명이라 하듯 어쩌면 왕년을 기억의 장례식이라 폄하하는 저자의 글에 대한 고백이 이제는 넘어야 할 그 무엇인가를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을 통해 현실의 현상들을 가벼운 위트로 넘길 수 있는 고민하고 아파 한다고 달라질 삶도 아니고 보면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길 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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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론 세이브(Blown Save)’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중년 아재들의 현주소를 묵직하게 담아낸 단편 소설이다. ‘블론 세이브’란 야구 용어로, 세이브 조건에서 동점 혹은 연전 당할 경우 마운드 투수에게 주어지는 말이다. 실패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며, 그렇기 때문에 치욕스러운 스러운 명칭이기도 하다. ‘세이브를 날렸다’니, 뜻만 봐도 노골적이지 않나. 대부분 실패한, 또는 실패하고 있는 중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에 정말 잘 어울린다. 그들이, 한번 실패하면 걷잡을 수 없는 암울함으로 이어지는, 그래서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정체절명의 순간들을 맞고 있으며, 그렇게 맞은 순간들에서 실패를 더해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고 짊어져야 할 무게가 사라지는 게 아니고, 현실의 팍팍함 역시 수그러들지는 않는다. 또 다시 블론 세이브를 기록할지언정, 다시 마운드에 서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는 마운드에 설 수 없는 날이 오게 되더라도 말이다. 저자는 그 외에도 이런 식의 비유를 꽤 사용했는데, 다들 왠지 모르게 곱씹게 되는 적절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 공감도 되고, 내가 투영된 것 같은 이야기에선 가슴아픔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자기 경험을 담아 소설집 한 권을 우려먹었으니 이제 자기는 끝이라는 자조적이 이야기를 한다. 끝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이거밖에는 하지 못했다는 회환인 거다. 하지만,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경험이 담기지않은 그저 만들어낸 이야기로 과연 이런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