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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분, 이라고 지인은 저자인 민경구 교수를 소개했었다.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중에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 보니, 다른 창세기 책도 많은데 굳이? 하면서 사지 않고 있다가, 1-2달 전까지 생명의 삶으로 진행하는 큐티 본문 중에 창세기 해설이 너무 탁월하고, 인사이트가 많아서 감탄했던 적이 있다. 누가 해설을 했는지 찾아보니, 민경구 교수님의 글들 이었고, 미루고 미뤄 장바구니 밑 부분으로 내려간 민경구 교수님의 '다시 읽는 창세기'를 구매하게 되었다.
참 후회가 된다. 왜 이렇게 미루다가 샀는지, 요즘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는 차근차근 결과로 내어놓는 학자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결과와 노력 속에서 참으로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창세기에 드러나는 약자에 대한 관심과 보호를 부각한다는 점과, 익숙하게 한국교회가 만들어왔던 이미지의 해석들에 대해서 공시적 관점을 통하여 한국적 토양에 의해서 해석되어 온 본문을 역사적 사실 속에서 해석하여 본문을 바라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상대적으로 두껍지 않은 책의 두께가 아쉬울 정도로 정말 좋은 책이고, 늦게 만난 것이 너무나 아쉬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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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창세기를 처음부터가 아닌 거꾸로 읽어보자는 저자의 주장이 신선합니다. 각 장마다 ‘토의를 위한 질문’을 제시하네요 ?-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벌로 노동을 하게 된 것일까? - 인간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홍수 심판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심판 이후의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 아브라함이 소명을 받은 장소가 정말 갈대아인의 우르일까? - 하갈은 ‘첩’이라고 부르고 라헬은 ‘아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 롯의 아내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 한글 성서에서는 왜 하갈과 이스마엘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 이삭을 제물로 바친 사건과 예루살렘 성전 건축의 연결점은 무엇인가? - 딸 디나가 강간을 당했는데도 아버지 야곱은 그저 잠잠했다. 그는 그 사건을 통하여 어떠한 유익을 누렸는가? - 레아는 정말 야곱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을까? - 창세기 저자는 어떤 의도로 요셉 이야기 중간에 유다와 다말 이야기를 배열했을까? 생각해보 못한 인물들과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읽으니 유익했습니다. |
| "다시 읽는 창세기"는 저자 민경구가 창세기의 본문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창세기의 여러 에피소드를 현대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하며, 각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탐구합니다. 저자는 고대 문맥을 철저히 고찰하고, 이를 통해 창세기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훈들을 제시합니다. 이 책은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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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에서 밝히듯이 이 책은 성경을 어떤 관점으로 읽느냐에 따라 전통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소위 ‘서술하는 시대’와 ‘서술되는 시대’를 구분하기를 원한다. 서술하는 시대는 말 그대로 책을 기록한 시대이다. 반면 서술되는 시대는 성경기록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말한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사실 성경은 그렇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소위 편집자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한국교회는 이런 ‘편집'이라는 말만 들어도 자유주의신학과 연결시킬 정도로 매우 경직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 두 시대를 구분하는 듯한 표현들이 매우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오늘날에도 ~하였더라”, "그런 점에서 볼 때 진정으로 성경을 있는 그대로(보수적으로?) 보길 원한다면 굳이 이런 용어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이 책을 읽을 때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창세기를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기록으로만 보느냐 아니면 문학적 요소를 가진 또다른 장르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로서 도저히 한 발자국도 양보할 수 없는 엄청난(?) 보수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저자의 또다른 해석들이 매우 불편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창세기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저자의 의도에 따라 문학적 기교가 가미된 것으로 볼 때 우리의 시야는 확장될 수 있다. 그 점을 고려해서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저자는 창세기를 역대기적 시각으로 읽는 시도를 한다. 굳이 말은 하지 않지만 창세기가 역대기 시대에 쓰여졌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이렇게 보는 듯하다. 백번 양보해서 최소한 그 시대에 편집되어졌다면 그 당시의 사람들의 이해를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역대기 마지막에 기록된 부분, 바벨론유배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에게 모세오경중 첫번째 책인 창세기는 어떻게 읽혔졌을까? 궁금하다. 이 부분을 고려해보면 더욱 출애굽과 유사한 모티브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창세기를 보면 더욱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열린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서 우리 성경에는 말라기 예언서가 마지막에 위치하지만 히브리성서에는 역대기가 마지막임을 주목한다. 신약의 관점으로 구약을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구약의 번역이 잘못된 것은 신약의 관점으로 구약을 해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하갈이나 이스마엘에 대한 부분을 들어 설명한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아마 독자들도 직접 표현은 안했지만 이스마엘을 어떻게 봐야할 지 고민스럽고 찜찜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각 주제마다 달린 부록은 우리가 이 책을 읽다가 가질 수 있는 의문들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좀 더 자세히 쓰고 싶었는데 이정도만 쓰고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면 부록을 읽으라는 메시지 같아보인다. 실제로 본문만 읽어도 우리가 얻는 새로운 정보의 양은 매우 많다. 그런데 부록을 읽으면 본문을 읽다 가지게 되는 의문점들을 풀 수 있게 도와준다. 예를 들어 창3:5절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라는 부분은 원래 삼위일체의 하나님중 하나같이 되었다는 전통적 해석이 있다. 원어로 볼 때 다른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래서 "뱀과 같이 되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과 같이 된 것과 뱀과 같이 된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보다 더 커보이지만 부정적 의미를 띠는 문맥의 흐름상 꼭 무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형상"이라는 단어를 원어로 파악해서 우상과의 연관성을 찾아보려고 했다. 번역본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부분이다. 사탄에 대한 부분도 그렇다. 뱀과 사탄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당연시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다른 해석의 여지를 준다. 구약에서 사용되는 사탄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대적자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원어를 바탕으로 착실히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어 이 부분에 반론을 제기하기는 힘들 정도이다. 또한 전통적인 이해로는 죄의 근원을 선악과로 보지만 저자는 그보다는 좀더 원어에 바탕을 둔 수사적 기교, 즉 언어유희로 파악하고자 한다. 이런 시각으로 볼 경우 선악과는 인간이 스스로 지혜로움(선악과)을 원했지만 결국 어리석음(벌거벗음)으로 전락하게 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경우 죄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따라오게 된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죄의 한 단면처럼 볼수도 있기 때문이다. 뱀은 이 세상에 죄를 가져오게 한 존재라기보다는 죄는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성향이고 그것을 초래한 도구로써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지 죄, 악의 근원에 대해서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노아에 대한 부분도 그렇다. 노아에 대해 우리는 당대의 의인이라는 표현때문에 의인의 모델로 많이 본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볼 수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소위 ‘자기극복'으로 결국 신 인류가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출바벨론의 입장에서 아브라함 이야기를 읽으면 더욱 흥미롭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간 사건은 앞으로 있을 이스라엘의 애굽살이(바벨론 살이)를 미리 엿보게 한다는 것이다. 창15:13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객이 될 것이라는 예언도 하신다. 그들의 나그네 삶을 예상할 수 있다. 창12장(그랄왕이 사라를 취한 것)과 달리 창20장에서 아비멜렉이 사라를 건드리지 않은 이유는 중간부분인 15장에 나온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다. 사라가 자식을 낳았을때 그 자식의 정체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안되지 않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꿈을 통해 아비멜렉에게 경고하신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또한 갈대아 우르에서 ‘갈대아’라는 단어는 바벨론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그래서 15장에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내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바베론에게도 희망과 격려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표상이기에 그들에게도 충분히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롯의 이야기도 그렇다.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는 내용을 13:10절 ‘애굽땅’같았다고 하는 부분을 근거로 출애굽이나 출바벨론하는 세대들에 대한 메시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롯아내 이야기가 창세기에 갑자기 왜 나올까 생각해볼 때 전통적 해석에 따라 롯 아내의 인간적 욕망으로 해석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이런 해석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마음을 시원케 해주었다. 각 챕터마다 다 이야기할 수 있지만 여기서 줄이자. 이제서야 이 책의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먼저 삽화에 있다. 컬러가 아니라서 그림을 제대로 확인하기 힘들다. 원래 명화를 컬러로 봐야지 흑백으로 보는 경우는 없다. 아무튼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분명 눈여겨 볼 부분들이 많은데 이 책에서는 작고 흑백이라서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 저자는 이 성화를 통해 도움이 되기를 바랬겠지만의 잘 반영이 안 된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컬러로 잘 나왔다면 분명 흥미롭게 유심히 살펴볼 부분이 있었을텐데 흑백이라서 그냥 대충 쳐다보고 말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수고는 나중에 하는걸로~~ 또다른 아쉬운 점은 원어를 바탕으로 해석의 근거들을 제시하기 때문에 원어에 전혀 이해가 없는 분들은 쉽게 넘길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쉽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신학생이나 목회자가 아니면 원어가 나오면 그냥 넘어가며 불편해 할 수도 있다. 내용상으로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어떤 주제들은 이야기를 하다 만 느낌이 드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바벨탑 사건에 대해서 10장과 비교하며 문제제기를 하는데 결론은 내지 않는 느낌이 든다. 10장은 긍정적 흩어짐을 말하고 있고 11장은 부정적 흩어짐을 말하는데 그렇게 기록한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더 파고들지 않고 끝내버린다. 물론 지면의 한계로 한 주제만 더 파고들기는 힘든 부분이 있어 그랬을 것이라 이해는 된다. 아무튼 비유하자면 스끼다시가 너무 좋아 메인요리를 기대했는데 안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챕터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우리의 성경에 대한 찜찜했던 부분들을 속 시원히 긁어주는 부분이 많다. 또한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저자의 문제제기가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우 당연하게 보았던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다. 앞으로 목회자로서 성도들을 가르칠 때 이 부분에 주의해서 가르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