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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잔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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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생각 독서 모임에서 선정된 책. 내가 선정한 책이고 제비뽑기에서 당첨됐다. 만약 선정 안 됐다면 평생 안 읽었을 책이다. 궁금하지만 역사 서적을 찾아 읽는 건 너무 힘들다. 국가가 잊은 존재들의 삶의 기록이라기에 사할린에는 어떤 사람들이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사실 책 초반에 이 책이 사할린에 남아있는 ‘일본인’의 이야기라고 쓰여있어서 당황했다. 나는 줄곧 일제 강
"사할린 잔류자들" 내용보기
읽기 전 생각 독서 모임에서 선정된 책. 내가 선정한 책이고 제비뽑기에서 당첨됐다. 만약 선정 안 됐다면 평생 안 읽었을 책이다. 궁금하지만 역사 서적을 찾아 읽는 건 너무 힘들다. 국가가 잊은 존재들의 삶의 기록이라기에 사할린에는 어떤 사람들이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사실 책 초반에 이 책이 사할린에 남아있는 ‘일본인’의 이야기라고 쓰여있어서 당황했다. 나는 줄곧 일제 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넘어가 여전히 살고 있는 한국인의 이야기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독서 모임에 제안한 책이 선정되어서 더 아찔했다. 내가 간략하게 설명했던 내용과는 달라서 모임원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컸다. 그러나 그 일본인의 뿌리에 한국인도 있음을 알게 된 후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성을 여러 번 바꾸어 가며 대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현재진행형 이야기였다.

 한국 전쟁 이후 북한과 남한 중 한 국적을 선택해야 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북한을 선택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몰랐는데 분단 전 북한 사람들이 한국에 방문해서 비자를 연장하려고 하면 고국의 영예를 위해서 북한으로 오라는 문구도 함께 발송되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도 사할린을 선택한 조선 사람들이 그곳에서 패전 후 줄곧 살고 있던 일본 사람(국적은 소련)인 사람들을 만나 결혼하여 대를 잇고, 러시아 국적을 얻은 채로 일본에 영주 귀국하는 등 세 나라를 자주 오가는 사실도 신기하다. 글을 읽으면서도 도대체 뭐가 뭐지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사람의 말로 인해 정의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혈통과 정체성을 지녔다. 이 구절에서 전직 축구선수 정대세가 생각났는데 검색해 보니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조선적이고 덕분에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재일 교포 3세 중에 사할린에서 영주 귀국한 세대의 후손도 있을 거로 생각하니 주변 교포 친구들이 좀 달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기회가 되면 조심스레 그들이 일본에 머물게 된 이유를 물어봐야겠다.
  비록 일본이 우리나라에 가해국이었지만, 항복 후에 갓난쟁이 아기부터 노인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죽임당하는 일본 민간인은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국적을 떠나 인간이 인간을 해하는 행위가 역겹다고 생각했다. 이 구절에서는 가미카제가 떠올랐는데, 강제 동원된 조선인을 제외해도 자살을 위해 양성된 아주 어린 일본 비행사들이 수뇌부의 압박에 억지로 탑승해야 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그리고 그 비행사들은 10대에 불과했다고. 그들은 단지 패전한 국가의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나라를 위해 자살해야 했고, 등에 업은 아이를 잃어야 했고, 가족과 떨어져야 했다. 온갖 이유를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전쟁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패전 후 당시 일본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으나, 전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구절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조선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일본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들으면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이름이다. 나의 친할머니 역시 해방 직전인 1944년에 태어나셨기 때문에 이에 영향을 받은 존함을 가지고 계신다. 어릴 때는 할머니의 이름이 그저 웃기고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 할머니들의 이름 중에 ‘자’로 끝나는 이름은 모두 일본 사람들이 부르기 쉬운 ‘코’ 발음이라고 한다. 우리 할머니의 ‘춘자’라는 존함은 곧 ‘하루코’가 되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이러한 이름들이 절대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앞서 나왔던 사람들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만나 서로를 위해 상대 국가의 언어를 배우는 등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호의적이었고, 대부분이 일본으로 영주 귀국했다. 그러나 내가 만약 당시 사람이었다면 바로 ‘최명자’ 같은 사람이었을 것 같다. 아무리 일본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도 내가 편히 살고 있는 거처를 떠나 일본으로 영주 귀국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비록 최명자는 끝끝내 일본으로 영주 귀국했지만 나도 한국 생활을 많이 그리워했을 것 같다. 물론 현대인으로서 일본인 배우자와 함께 일본에서 지낸다면 생활 등을 위해서라도 일본어를 배우겠지만 말이다.
 내가 ‘한자’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중학생 때였다. 친한 친구가 엑소의 중국인 멤버를 좋아하게 되어, 당시 중국어를 배워서 멤버에게 중국어로 편지를 쓸 것이라는 큰 포부를 가졌었다. 그 친구와 함께 도서부에 들어간 덕분에 함께 중국어를 공부하자는 말에도 선뜻 동의하게 되었다. 당시 어떤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어 교재를 사서, 매일 점심시간마다 학교 도서관에서 교재를 들여다봤다. 물론 친구는 일주일도 넘기지 못했으나, 나는 중국어가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내 호기심이 노력으로 바뀌었고, 그 노력 속에서 부모님은 재능을 발견해 내 중국어 공부를 칭찬하고 지지해 주셨다. 덕분에 관련 고등학교로 진학해 10대 때부터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고, 중국을 비롯해 대만, 태국, 미국, 일본 등 각국 현지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매년 한 번씩 혼자서 해외여행을 갈 만큼 시야도 넓어졌다.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중국 등 각국 친구를 사귀면서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흡수했다. 그 점에서 나는 “귀국한 나라라고 해서 반드시 그곳에서 ‘여행을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내 국적도 그렇다.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국 친구만 사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학 경험이 없는 주변 한국 사람들이 매일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신기해하지만, 내 강점을 이용해 다른 나라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내 삶의 또 다른 일부가 되었다.
 사할린 아파트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불과 작년까지도 1945년 이전 출생인 어르신들만이 살고 계신 것 같다. 사할린 탄광 강제노역으로 러시아에 오래 사셔서 아직도 문화적 이질감을 겪고 계신다고 하는데, 해방 이후 쭉 한국에서 사셨던 나의 친할머니이신 당신조차도 여전히 일부 단어를 일본어로 쓰시는데 어르신들은 오죽할까. 정책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그들의 후손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귀국 정책이 외면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 교육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략적으로 귀국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고 덤덤하게 쓰여있지만, 그들이 스스로 방법을 개척한 것이지 국가에서 편의를 제공해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실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교수님이랑 이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또 메일 보내면 대학원 끌려갈 것 같으니 참아야겠다.

읽은 후 생각 첫 장을 넘기자마자 재미없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밉다. 읽을수록 많은 교훈을 주는 책이었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실제로 인물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고, 기회가 된다면 잔류자들이나 영주 귀국한 사람을 실제로 만나서 더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다. 일본에 자그마치 35년을 빼앗겼던 나라 사람으로서 나는 당시의 모든 한국 사람이 혐일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한국어와 일본어를 배우고, 배우자를 위해 한국 사람이 일본으로 영주 귀국하는 등의 실제 생활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또, 아무리 가까운 나라지만 러시아와 한국, 일본의 언어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거처를 이동하면서 새롭게 언어를 배운 사할린 잔류자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나는 영어나 중국어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픈데, 낯선 환경에 뚝 떨어져서 언어를 배워야 했으니 그 고충을 충분히 공감하고 헤아릴 수 있다. 만약 내가 중국어 대신 일본어를 배웠다면 아마 일본에서 유학했을 것이다. 지난겨울 도쿄에 다녀온 후 일본에서 짧게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4번째 일본 방문이었지만 이런 생각은 처음이었다. 아마 그 이유는 번역기에만 의존했던 지난 여행들과는 달리 코로나 시기에 일본 친구들과 전화로 교류하면서 일본어를 많이 배웠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중국에서도 아마 중국어로 의사소통하고 현지인들과 교류하는 부분에서 큰 문제를 느끼지 못해서 문화적인 방면으로 적응이 쉬웠던 것 같다. 국가에 귀속되지 않는 삶이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 공감이 가는 책이다. 첫 장을 읽었을 때의 실망감과는 달리, 책을 다 읽으니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한다. 결은 다르지만 나도 앞으로 이주 노동자가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책으로 인해 그들이 왜 사할린에 살게 되었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왜 사할린에 잔류하게 되었고, 또 다른 이들이 왜 사할린을 떠나게 되었는지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은 기분이고, 초국가적(transnational) 삶의 궤적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h*****m 2025.07.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