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꾸준하게 열심히 읽는 것도 아니고, 읽고 리뷰를 기막히게 잘 쓰는 것도 아니지만 성실하게 읽고, 찬찬히 쓰는 편이다. 요즘 같은 날에는 내 트레이드 마크인 냥 '성실하게'에 자꾸 태클을 걸고 싶다. 좀 허술하게 쓰고 싶은데, 그동안 습관과 은연중에 쌓아놓은 혼자만의 이미지에 먹칠할까봐 또 생각을 짜내면서 리뷰를 힘겹게 쓴다. 즐겁게 읽어놓고도 쓸 때는 막연한 것, 요즘 내가 앓고 있는 현상이다. 자꾸 읽은 책에 대해 내용과 생각을 펼쳐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피곤하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읽기에 어렵고 심각한 책?들은 일부러 피하려고 한다. 사실은 책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데..... 재밌는 책을 읽어놓고 긴 하소연을 해본다.
2017년 6편의 단편작품을 수록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의 작가가 쓴 첫 에세이집이란 말에 아무런 이유없이 구매했다. 책 <지극히 작은 농장 일기>이다. 처음 만난 작품이 나에게 강하게 남았나보다. 물론 책 속 내용은 아련하다. 순전히 제목 탓이다. 가족에 대한 저마다의 아프고 그립고 즐겁고 힘겨운 기억들이 펼쳐져있어서 먹먹하면서 뭉클했는데. 그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번 에세이집은 유쾌하면서 뭔가 응큼하기도 한 듯 재밌다.
![]()
2,3평 남짓 되는 텃밭의 초보 농부다. 자랑할 것 없는 텃밭에 새내기 농부의 좌충우돌 농사 일기가 펼쳐진다. 작물을 키운다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변수가 너무 많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해도 물과 바람과 볕, 병충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농사 기술은 그렇다치더라도 일일이 제 때 손봐줘야 되는게 가장 신경쓰이는 일이다. 때를 놓치거나 잠깐만 거드름을 피워도 표시가 나는게 제철 농사다. 작가는 2008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가을과 겨울 6개월동안 심고 거뒀다. 물론 심은 것은 많은데, 수확이 영 신통찮다. 그래도 작은 농장을 구획에 따라 일구는 것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심을 작물들에 대해 인터넷과 책으로 공부하지만 실전은 다른 법, 모종을 사서 화분에 심거나, 씨앗을 뿌려 땅에 그대로 심거나 싹이 틔고 열매가 맺히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은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뭉클함이리라. 비교적 쉽고 수월한 작물을 심는다해도 다양한 작물을 심어보는 것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
그럼에도 가장 만만한 작물(키우기 수월하고 비교적 수확의 기쁨이 기대되는) 중 토마토를 겨울임에도 지극 정성으로 키워본다. 토마토? 여름 작물인데, 겨울에?? 안그래도 작은 농장에 한 켠이나마 비닐시트를 덮어주고 터널 재배란 것을 해본다. 실험정신이 초보치고는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비닐 하우스 같은데, 너무 앙증맞다. 이 책에 나오는 몇 컷 안 되는 그림들도 작가의 솜씨?다. 이 책이 사랑스러운 이유다. ㅎㅎㅎ 첫 마음은 한결같다. 애정.... ^^
![]()
모종을 사러 간다. 아주 작은 농장이라서 많이 필요하지 않지만 모종 욕심이 생기나보다. 자전거로 찜해 놓은 2군데를 오며가며 한다. 백화점 가면 휘황찬란 큰 규모에 압도되어 어디에 시선을 둬야할지 몰라서 눈이 휘둥그레지듯 모종도 그런가보다. 짧게 몇 개월의 밭농사니깐 모종 선택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좋은 모종을 고르는게 나중에 수확할 때의 기쁨을 배가시켜 줄 것이다. 줄기가 굵고 마디와 마디의 간격이 좁을수록 좋다고 이론적으로는 말하는데, 찾기가 쉽지 않다. 잎은 크기보다는 윤기, 두께, 혹은 벌레가 먹지 않았는지가 중요하고, 쉽게 말해 호리호리한 체형보다 땅딸막한 체형이 바람직하다고 썼는데.... 딱 그림과 같다^^
![]()
몇 년을 농사지어도 채소는 여전히 모르겠다고 한다. 모르니깐 더 재밌는거라고. 10년 뒤 2017년의 농사 일기를 보니 이해가 된다. 가을겨울의 농사를 지었으니 10년 뒤에 봄여름의 농사를 지었다. 심을 채소 종류도 더 많아지고, 저절로 기대하게 된다. 농장이 10년전보다 넓어졌다. 뭔가 모르게 작물들도 알록달록 색깔만큼 풍성해진 느낌이다. 무 순무 누에콩 가을가지... 영 먹거리로는 인기없는 작물이고, 겨울이란 패널티도 적용되었다. 여름의 농장에는 토마토 수박 오이 가지 멜론까지..... 넓은 장소를 필요로 하는 채소들도 포진되어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초보 농부의 겸손이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기분탓일까? 넓고 깊고 해박한 지식은 아니지만 재밌게 농장을 소개해줬다. 아기자기한 아주 사적인 자잘한 즐거움을 선물해줄 것 같은 그런 농장, 당장 1평이라도 아니 스티로폼 포도상자만큼 터무니없이 작은 텃밭이라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거슬러 봄여름가을겨울까지 다 구경시켜줬는데, 입담이 그림만큼이나 재밌고 소박하다. 작가의 첫 에세이집은 성공이란 느낌이 든다. 이젠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농장 일기'를 쓴 작가란 이력이 붙을 것 같다.
2장, 3장에서 농장 일기말고 지극히 좁은 지역밖에 여행하지 않은 작가의 사사로운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과 잡지나 신문에 실렸던 저자의 산문 및 소품집이다. 재밌는 이야기도 재미없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참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이야기도 특유의 입담으로 재밌게 표현하는 매력적인 사람이 있는데, 딱 이 작가가 후자의 경우에 속하는 것 같다. 별스럽지 않은 사적인 일상들인데도 큭큭큭 웃음이 나온다. 깨알 개그를 훅~ 치고 들어오듯이. 마흔 살에 갑작스레 소설을 쓰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멀쩡한 직업도 없이 광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들은 공감이 된다. 투덜대지만 성격 겁나게 쿨한 척 느껴지는 이 아저씨가 좋아질려고 한다.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