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치통감 91권, 진기 13, 각지의 독립정권들. 원제 태흥 2년, 성 옥형 9년, 한 유요 광초 2년, 조 조왕 원년... 한의 주군 유요가 장안에 도읍하고 비 양씨를 황후로 세우고 아들 유희를 황태자로 삼았는데, 비 양씨란 다름아닌 진 혜제 사마충의 황후 양헌용입니다. 중국 역사에서 한 왕조의 황후였던 사람이 다시 다른 왕조의 황후가 된 예는 극히 드문 일인데, 양후는 심지어 '유요는 그를 심히 총애하였는데 자못 나라의 일에도 간여하였다.'라니 대단한 인물임이 짐작이 가네요. 유요가 사마씨 집안사람들과 비교하면 어떤가 하고 물었을 때 "폐하께서는 나라의 기초를 여신 성스러운 군주이십니다. 저 사람은 망한 나라의 아둔한 남자인데 어찌 함께 놓고 말을 하겠습니까? 저 사람은 귀하게 태어나 제왕이 되었지만 한 명의 지어미 한 명의 아들 그리고 자기 자신 세 사람뿐이었는데도 일찍이 이를 비호할 수 없었습니다. 첩은 그 시절에 실제로 살고 싶지가 않았으며 속으로 세상의 남자란 모두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건즐을 받들게 된 다음부터 비로소 천하에는 대장부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라고 답하는데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객관적으로 두 황제의 입지를 비교해도 할만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