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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50권, 한기 42, 서역 경영과 외척·환관의 발호입니다. 이전 권 등씨의 집권이 끝나도 외척의 발호는 여전하고 환관까지 더해진다는... 암울한 예상을 하게 하는군요.
태후의 사촌동생 등강은 권력을 줄여야 한다고 했지만 태후는 따르지 않고, 심지어 본인 집안의 옛 비녀를 꾸짖었다가 원한을 사서 분노한 태후에 의해 면직당하고 족보에서까지 이름이 파입니다. 고대 기준 족보에서 쫓겨나는 게 보통 일이 아닐텐데;; 어쨌든 태후가 죽고, 홍수와 가뭄이며 이족의 침입 따위를 잘 막아냈다...고 기록됩니다. 안제가 부모와 조모를 추존하는데, 제지술 발명으로 유명한 채륜이 두후의 명으로 안제의 조모 송귀인을 모함했던 과거 때문에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는 것이 눈에 띄는군요. 그리고 등씨 일족... 안제는 어린 시절 총명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성장하여서 덕스럽지 못해져서 점차 태후의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유모 왕성이 황제를 폐하고 다른 사람을 추대할까봐 태후를 열심히 모함해왔고 태후 붕어 후에는 등씨 일족을 모함해서 일족이 자살하거나 먹지 않다 죽거나 합니다. 사실 태후나 황후에 기대어 권력을 얻은 외척이 총애를 잃거나 사후에 몰락하게 되는 것 자체는 흔한 일이지만, 태후의 섭정이 안정적이었던 데다 등씨 일족도 엄청나게 죄를 저지르진 않은 것 같고... 심지어 등씨 일족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건이 '증거도 없고 심문도 없이' 처리되기까지 해서 신하들이 억울함을 고하자 안제가 받아들입니다. 이어지는 안제 집권기 이야기를 보니 등태후 집권기가 차라리 나아보여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초반에서 대신들의 삼년상을 허가했는데 후반에서 이내 근절했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이 때만 해도 삼년상은 나름 아름다운 뜻이었겠지만... 삼년상이 악습이 되어갔던 걸 보면 좋은 제도도 마냥 좋을 수는 없고, 나쁜 제도도 처음부터 나쁘지만은 않았구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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