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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상상력이 좋은 길 안내자가 되기를 바라는 책
"생태적 상상력이 좋은 길 안내자가 되기를 바라는 책" 내용보기
‘스피노자의 거미’란 거미를 관찰하던 스피노자의 만년에서 비롯된 제목이다. 저자는 제한된 자원이 소수의 생물에 의해 독점되기보다 비교적 고르게 배분되어 다양한 생물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계의 원리를 자연의 민주주의라 부른다. 저자는 환경생태학자다. 생물학이 세포나 분자 수준에서 생명현상을 다룬다면 생태학은 보다 긴 호흡으로 생명의 신비를 노래한다.   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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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거미란 거미를 관찰하던 스피노자의 만년에서 비롯된 제목이다. 저자는 제한된 자원이 소수의 생물에 의해 독점되기보다 비교적 고르게 배분되어 다양한 생물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계의 원리를 자연의 민주주의라 부른다. 저자는 환경생태학자다. 생물학이 세포나 분자 수준에서 생명현상을 다룬다면 생태학은 보다 긴 호흡으로 생명의 신비를 노래한다.

 

홉스는 나의 어머니는 쌍둥이를 출산했다. 나와 공포를이란 말을 했다. 공포는 홉스의 어머니가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을 침략하는 것에 놀란 것을 두고 이르는 말로 이로 인해 홉스는 조산아로 태어났다. 홉스는 왕과 국교를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하려 한 왕당파와 의회를 통해 시민의 권리를 옹호하는 의회파 사이의 극심한 대립과 전쟁을 경험하며 공포의 시대를 벗어날 이성적 묘책을 궁리한 홉스의 화두를 이야기하며 저자는 자신의 책의 핵심 질문과 홉스의 이야기가 연결된다고 말한다.

 

홉스 같은 근대의 기획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자연은 실제로 항구적인 전쟁 상태인가?”(44, 45 페이지) 홉스는 인간 본성상 항구적인 전쟁 상태는 불가피하므로 사회적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는 개인의 권리를 위임받은 강력한 주권이 필요하다고 보았다.(187 페이지) 제한적인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개체들 중에 주어진 환경 조건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개체가 살아남는 것을 찰스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약자가 항상 경쟁에 져서 완전히 도태된다면 지구상에는 소수의 강자만이 남아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구한 진화 과정에서 생물다양성은 감소하지 않고 증가하였다.“(47 페이지)

 

네덜란드의 유대인 이민자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무신론자라는 죄목으로 유대인 사회에서도 추방당한 스피노자는 유럽이 주도한 근대적 질서의 모순과 혼동을 자신의 개인사 속에 구현했다.(54 페이지) 스피노자가 태어난 해는 1632년이다. 이 해에 서양 근대사에서 이름을 남긴 인물이 여럿 태어났다.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현미경을 개발한 레이우엔훅,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르, 존 로크 등이 그들이다. 17세기는 어떤 시대였는가? 중세적 현상으로 생각하기 쉬운 마녀사냥이 최고조에 달한 때가 바로 17세기다. 독일의 30년 전쟁이 일어난 때도 17세기다. 네덜란드의 17세기는 공화주의자 더빗을 살해하고 왕당파를 추종했던 네덜란드 대중의 광기와 노예적 이성의 시대였다.

 

경제 버블의 원조격인 네덜란드의 툴립 피버(tulip fever)17세기에 일어났다.(한국사 이야기여서 그렇지만 17세기 조선에서는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기해예송, 갑인예송,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 등이 일어났다.) 1675년 페르메르가 숨을 거두었다.

 

2017년 세상을 떠난 존 버거는 발렌티너의 렘브란트와 스피노자를 인용하며 같은 시기에 암스테르담에 살았던 두 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교회의 권위에 저항하며 싸웠다고 말했다. 렘브란트가 파산 선고를 받은 해에 스피노자는 유대교회에서 추방당했다. 1656년에 일어난 일이다. 스피노자가 거미를 관찰하며 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들뢰즈는 스피노자가 파리를 잡아먹는 거미를 보며 죽음이라는 환원불가능한 외재성에 대해 사색했을 것이라 말했다.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동물을 먹이로 삼지만 사는 동안에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에 억압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리라. 스피노자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거미뿐 아니라 자연의 다양한 질서를 관찰하여 체계적인 생태 이론을 정립한 위대한 생태학자가 되었을지 모른다.(85 페이지)

 

허버트 스펜서는 적자생존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복잡한 다윈의 이론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 복잡한 이론이 쉽게 이해되는 장점은 있지만 적자생존으로 단순화된 진화론은 자연뿐 아니라 인간 사회를 항구적인 전쟁터로 오인하게 할 위험이 있다.(91 페이지) 다윈과 게오르기 가우스가 생물 간의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궁극적으로 알고 싶어 한 것은 경쟁배제 자체보다는 경쟁을 넘어선 공존의 비밀이었을지도 모른다.(102 페이지)

 

간디는 자신이 정말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받는 것도 도둑질이라 말했다. 그의 이 말은 스피노자의 신 즉 자연을 생각하게 한다.(177 페이지) 그 자체의 필연성에 따라 존재하고 작용하기 때문에 자연에는 넘치는 것도 모자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스피노자는 어둠을 직시하고 어둠 너머 어렴풋이 비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까지 누구도 진정한 인간해방과 절대민주주의를 상상하지 못했기에 스피노자의 사상은 네그리의 말처럼 너무 이질적인 야성적 파격이라 할 수 있다.(179 페이지)

 

홉스가 자연상태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대립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계약을 통해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고 보았다면 로크는 인간은 자연상태에서도 개인의 권리를 상호 인정하는 사회를 인정하는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187 페이지) 오직 계약을 통해서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끝내거나 타고난 권한을 신장시킬 수 있다고 믿은 사회계약론자들과 달리 스피노자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묘사한 자연상태에서 개인들은 하나로 결합할 때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권리를 집단적으로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192 페이지) 기득권 세력이 보이지 않는 발로 뛰어다니며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는 인간 사회보다는 자연생태계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더 잘 작동한다.(219 페이지) 홉스가 자연상태에서의 혼란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절대권력을 가진 왕권을 옹호한 것과 달리 스피노자는 개인을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다중의 지배를 꿈꾸었다.(224 페이지)

 

다중에 의한 자율적 사회 구성은 전통적인 계급론의 관점으로는 잘 파악되지 않는 개념이지만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다중은 실체를 드러냈다. 저자는 사회의 올바른 구성 원리를 고민하던 스피노자에게 거미 관찰이 영감을 준 것처럼 자연에서 얻은 생태적 상상력이 한계에 봉착한 근대적 민주주의의 대안을 찾아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 안내자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243 페이지) 이제 프레데리크 로르동의 정치적 정서를 읽어야 할 순서다.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정이란 전통적 이원론을 전복하고 변용과 정서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스피노자에 대해 전하는 책이다.

이달의 사락 m******1 2020.0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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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인류의 패인은 자연을 저버린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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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금 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자원의 분배가 극심하게 쏠려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소수의 독식이 일상화된 오늘날의 불행한 사람들과 부자유한 감각은 자본주의가 중심이 되는 세계의 질서를 의심하게 했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빛좋은 개살구였고 실패한 게 다 들통났는데 다른 궁리를 좀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그 선택지로 공산주의를 주장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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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금 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자원의 분배가 극심하게 쏠려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소수의 독식이 일상화된 오늘날의 불행한 사람들과 부자유한 감각은 자본주의가 중심이 되는 세계의 질서를 의심하게 했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빛좋은 개살구였고 실패한 게 다 들통났는데 다른 궁리를 좀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선택지로 공산주의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그 새로운 방식을 찾는 데 자연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책에 담긴다. 흔히들 자연이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원리가 가득한 야만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생태계에 그렇게 수많은 종이 공존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가 채택한 자본주의 사회와 자연의 논리가 다르다는 증거이다. 경쟁과 공존을 아우르는 생태에 대한 이해가 우리에게 하나의 해답이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접근이다. 자연의 방식은 경쟁이 아니라 공존이다.

『스피노자의 거미』 는 사상가들의 입장과 역사, 그리고 생태과학적 지식을 융합하여 이러한 주장을 공고히 한다. 철학 책도 아니고, 경제학 책도 아니고, 정치학 책도 아니고, 역사 책도 아니고 생명과학 책도 아닌 것이다! 초학제적 도서다. 스피노자는 신이란 인간들이 생각하는 절대자의 모습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라고 주장하였고, 무언가에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증오하지 않고 단지 세계를 '이해'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세계를 끝없이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떤 이론을 펴기보다 끊임없이 세계를 이해하고 이해한 내용을 저술하려고 했을 것 같다. 이해를 하면 말해야 할 것들이 따라오지 않았을까.

책은 스피노자가 거미끼리 싸움을 붙이거나 파리를 거미줄에 던져놓고 그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는 일화로 시작한다. 스피노자의 철학과 생태학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강조하는 것은, 자연과 민주주의의 교집합을 추적하는 일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지금 더 나은 세계를 위한 발걸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인간을 이해했다면 인간에게 안 좋은 방식을 이렇게나 오래, 열심히 강화하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해보려고 한 적이 있을까. 그러고 난 뒤에 그들을 위한 규칙을 만들었을까.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을 이해해보려고 하는가. 이해도 안 하고 배려만 하고 있지 않을까. 무엇을 기준으로 행동하고 결정하는가. 아는 것도 적으면서. 인간을 위하는 일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이해한 상태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한치라도 더 이해하려고 하는 것. 마찬가지로 자연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면 자연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을 위한 새로운 것들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과 다양한 사람을 넘어다녀야 한다.
x****9 2026.01.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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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철학을 넘어 날카로운 통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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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고립과 추방 속에서 렌즈를 깎으며 생계를 이어가던 노년의 스피노자.그는 종종 거미줄에 파리를 던져 넣고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관찰하며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누군가에겐 기이한 취미나 잔인함이지만, 환경생태학자인 저자는 이 장면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위기를 돌파할 생태적 상상력'을 읽어냅니다.이 책은 생태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근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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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고립과 추방 속에서 렌즈를 깎으며 생계를 이어가던 노년의 스피노자.

그는 종종 거미줄에 파리를 던져 넣고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관찰하며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겐 기이한 취미나 잔인함이지만, 환경생태학자인 저자는 이 장면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위기를 돌파할 생태적 상상력'을 읽어냅니다.

이 책은 생태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근대적 이성'과 '약육강식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규정했던 홉스의 시선으로 세상을 봅니다.

홉스에게 자연은 공포의 대상이었고, 그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리바이어던'이라는 강력한 주권자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정말 항구적인 전쟁 상태" 일까요?

만약 다윈의 자연선택이 오직 '강자의 생존'만을 의미했다면, 지구상의 생물 다양성은 시간이 갈수록 감소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진화의 과정에서 생물 다양성은 끊임없이 증가해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민주주의입니다.

자연은 소수가 자원을 독점하기보다 고르게 배분하여 공존을 꾀하는, 홉스의 공포를 넘어서는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것이죠.

스피노자가 거미를 보며 웃었던 이유는, 그것이 누군가를 지배하려는 '폭력'이 아니라

자기 보존의 본능인 '코나투스'가 작용하는 자연스러운 질서임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의 가장 날카로운 통찰 중 하나는 거미와 정복자(콩키스타도르)를 비교하는 대목입니다.

  • 거미의 포식: 거미가 파리를 잡아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요에 근거한 행위입니다. 이는 생태계의 나쁜 만남일 뿐, 파리의 자유를 영구적으로 종속시키거나 노예로 만드는 내적인 죽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 인간의 정복: 반면 16세기의 콩키스타도르는 황금이라는 탐욕을 위해 원주민의 삶 자체를 파괴했습니다. 저자는 이들을 외래 침입종에 비유합니다. 기존 생태계의 근간을 뒤흔들고 수탈 구조를 만드는 외래종처럼, 정복자들은 이성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했습니다.

    • 관련하여 영화 '미션'을 추천드립니다. :)

더 섬뜩한 것은 이 'IT 콩키스타도르'들이 21세기인 지금도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들이 인공지능과 인터넷을 무기로 전 세계의 부를 독점하려는 모습은, 17세기의 약탈적 본성이 기술의 옷을 입고 부활한 것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경고는 매우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책은 스피노자의 거미에서 출발해 철학, 생물학, 역사 등 보다 더 많은 우리 사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모든 이야기는 결국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콩키스타도르(정복자)가 되고 싶나요, 아니면 거미가 되어 타자와 조화를 이루고 싶나요?



근대적 이성이 내뱉은 독단과 탐욕에 지친 분들이라면,

기존의 철학 지식을 보다 더 넓게 확장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이 책이 제안하는 '생태적 상상력'을 즐겨보시길 추천드립니다.

j********9 2026.0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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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거미, 그리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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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책의 여정은 스피노자의 독특한 취미에서부터 시작한다. 스피노자는 말년에 종종 거미를 찾아 서로 싸우게 하거나 파리를 거미줄에 던져 넣고는 구경을 했다고 한다. 이 거미구경은 스피노자의 기이한 취미에 불과했을까?거미가 서로 싸우거나 먹이를 잡아먹는 모습을 보며 스피노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자신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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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책의 여정은 스피노자의 독특한 취미에서부터 시작한다. 스피노자는 말년에 종종 거미를 찾아 서로 싸우게 하거나 파리를 거미줄에 던져 넣고는 구경을 했다고 한다. 이 거미구경은 스피노자의 기이한 취미에 불과했을까?
거미가 서로 싸우거나 먹이를 잡아먹는 모습을 보며 스피노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자신이 비판하던 당대 유럽 사회의 지배자와 거미를 비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엉뚱한 질문을 떠올리던 중에 문득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하게 되었다. 스피노자가 살았던 시대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근대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자연생태계에서 관찰되는 갈등 상황과 비교해보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이었다. - 11p
 어쩌면 스피노자는 거미의 모습으로부터 당대의 세계를 통찰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러한 상상력을 확장하여, 오늘날 근대 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는다. 바로 거미, 다시 말해 자연생태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이 책은 근대에 대한 해결을 찾는 여정으로서, 구체적으로 다음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근대를 이성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가?
2) 자연생태계의 자원 배분은 민주적인가?
3) 거미와 콩키스타도르는 어떻게 다른가?
4) 자연에서 대안적인 자원 배분의 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과학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다시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이성의 힘을 믿게 된다. 하지만 신문과 뉴스에 나오는 과학계의 빛나는 행보와 달리, 우리의 주변은 여전히 이성의 빛이 비치는지 의심하는 사례가 끊임없이 나온다. 지구 평평론자를 위시한 음모론이 판치고, 도덕보다 경제적 이득이 우선시 된다고 저자는 다양한 사례들을 언급한다.
‘근대를 이성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은 근대가 이성과 폭력이 마치 샴쌍둥이처럼 한 몸으로 붙어 있었던 모순의 시대가 아니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 35p

 저자는 이러한 근대의 폭력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존재로 16세기 남미를 유린한 에스파냐의 정복자, '콩키스타도르'를 지목한다. 그들은 새로운 땅에 정착하려는 농부가 아니었다. 오직 황금을 위해서, 황금만을 위해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들, 가령 원주민을 착취하고 학살하는 행위들이 자행되었다. 
[생태학 노트 1] 콩키스타도르 vs. 외래 침입종
에스파냐와 다른 유럽의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식민지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은 외래 침입종(invasive species)이 강한 천적이나 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지역에서 서식지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 124p
 저자는 이들의 행태를 ‘외래 침입종’에 비유하며 다양한 생물종들의 사례(e.g. 아프리카귀화꿀벌, 가을군대벌레)를 든다. 이들은/ 단순히 토착종들의 자리를 빼앗는 것에 그치지 않고, 토양의 질소 함량을 변화시키는 등, 기존 생태계의 근본 자체를 뒤흔들었다. 이는 정복자들이 원주민 사회의 기존 구조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수탈 구조를 만든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외래 침입종과 인간 정복자의 행보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둘의 차이는 폭력의 유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생물학적 외래종은 보통 천적이나 경쟁자가 없는 빈 땅(생태학적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유럽의 정복자들은 이미 원주민이 살고 있는 땅을 차지해야 했다. 그렇기에 인간의 사례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비교가 제시된다. 스피노자가 관찰한 ‘거미’와 유럽의 정복자 ‘콩키스타도르’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거미가 파리를 잡아먹는 것은 인류처럼 폭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차이를 생존을 위한 ‘필요(need)’와 ‘탐욕(greed)’에서 찾는다.
 스피노자의 시선에서 거미가 파리를 잡아먹는 행위는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자연스러운 성향, 즉 ‘코나투스(Conatus)’의 발현일뿐이다. 거미가 파리를 먹는 사건은 자연의 먹이사슬에서 일어나는 피할 수 없는 '나쁜 만남'일뿐이다. 거미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취한다. 하지만 콩키스타도르는 달랐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계를 모르는 거대한 탐욕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켰다. 바로 상대를 굴복시켜 노예로 만드는 ‘내적인 죽음’을 강요하는 폭력이다.
이처럼 거미와 파리의 관계는 자연의 먹이사슬이 초래하는 피할 수 없는 "나쁜 만남"일 뿐이지, 주인과 노예와의 관계처럼 피지배자의 자유와 생명 자체를 지배자의 의지에 종속시키는 "내적인 죽음"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스피노자는 파리를 잡는 거미를 관찰하며 생물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자연의 법칙에 대해 사색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 84~85p

 이성에 의해 가려졌던 약탈적/폭력적 본성은 이젠 과거의 유물로 사라진 것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경고한다. 16세기 정복자들이 동인도회사 같이 무력을 앞세운 제국 기업가였다면, 오늘날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들은 인터넷과 인공지능을 무기로 전 세계의 부를 독점하려는 21세기 IT 콩키스타도르로 볼 수 있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을 이용해 전 세계인의 일상과 심지어 화성까지 정복하려는 독점 기업가들은 21세기 글로벌 자본 제국의 ‘IT 콩키스타도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 162p
그렇다면 우리는 이 탐욕의 폭주 기관차를 멈출 수 없을까? 저자는 다시 자연으로 눈을 돌린다. 힘센 포식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할 것 같은 자연계에서, 어떻게 수많은 생명이 공존하며 ‘자연의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는지 그 비밀을 파헤친다.



 스피노자의 철학(본 서평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책에서 홉스 등의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들이 많이 언급된다)과, 다양한 생태학적 사례(이러한 사례들은 [생태학 노트]에 자세하게 설명된다)를 책에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설명만 들으면 아마 복잡하고 어렵고 기묘한 책을 독자는 상상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잠시만 생각해 보자. 왜 이러한 책이 나왔을까?
 저자는 자기 분야만 파고드는 현대의 전문가들을 바보 천재라고 꼬집으며, 복잡한 사회 문제를 풀기 위해 스피노자의 철학과 생태학을 엮는 '통섭'의 지혜를 구한다. 이 기묘한 여정의 끝은 결국 공존이다. 저자는 자연이 강자의 독식이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며 다수가 살아남는 '자연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사회의 올바른 구성 원리를 고민하던 스피노자에게 거미 관찰이 영감을 주었던 것처럼, 자연에서 얻은 생태적 상상력이 한계에 봉착한 근대적 민주주의의 대안을 찾아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 안내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 243p
 스피노자의 거미가 알려준 지혜는 지금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오늘날은 자본주의 외의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시대이다. 그런 시대에 생태적 상상력으로써 근대부터 오늘날을 조망하는 이 책은 필히 소중한 책일 것이다.
j*******o 2026.0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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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배분의 실마리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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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이 합리적인 배분을 만들어줄 거라는 근대의 낙관이 무너진 지금, 나는 자본주의의 경쟁이 사람을 계속 불안하게 만들고, 그 불안을 핑계로 폭력과 약탈까지도 어느새 어쩔 수 없는 일처럼 정당화해버리는 과정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살아남아야 하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라는 말로 설명되지만, 그 말이 반복될수록 인간이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느낌
"자연에서 배분의 실마리를 발견하다" 내용보기
‘보이지 않는 손’이 합리적인 배분을 만들어줄 거라는 근대의 낙관이 무너진 지금, 나는 자본주의의 경쟁이 사람을 계속 불안하게 만들고, 그 불안을 핑계로 폭력과 약탈까지도 어느새 어쩔 수 없는 일처럼 정당화해버리는 과정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살아남아야 하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라는 말로 설명되지만, 그 말이 반복될수록 인간이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스피노자가 거미줄을 바라봤다는 이야기가 유난히 강하게 남았다. 거미줄에 걸려 아등바등하는 파리, 먹이를 두고 미묘하게 경쟁하는 거미들. 그 장면이 단지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대항해 시대의 팽창과 정복—콩키스타도르의 욕망을 떠올리게 했다.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직선처럼 밀어붙이던 믿음이 결국 맹목적인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것도, 지금의 세계와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이해로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인간성의 중심은 순수이성이나 도덕적 이상 같은 게 아니라 코나투스에 있다. 인간은 자연 밖의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고,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힘으로 움직이며, 그 힘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형태가 욕망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정념으로 작동하고, 언제나 미완의 상태로 흔들리는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자연을 단순히 약육강식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자연에도 일종의 배분이 가능하게 만드는 질서가 있다고 말하고, 그 핵심을 다양성에서 찾는다. 같은 땅에 살아도 개화 시기나 필요한 빛이 다르면 서로를 완전히 밀어내지 않고 공존할 수 있듯이, 인간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결핍도 자원이 모자라서 라기보다 모두가 같은 걸 욕망하도록 조정되어서 더 커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붙잡게 된 결론은 이거다. 해결의 실마리는 타자에 대한 동일시의 욕망—남처럼 되고 싶고, 남이 원하는 걸 똑같이 원하게 되는 그 갈망—에서 빠져나와서, 각자가 자기 자신이 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게 뭔지, 내가 살 수 있는 방식이 뭔지를 찾는 순간, 경쟁은 조금 다른 의미로 바뀐다. 결국 인간이 추구해야 할 건 경쟁에서의 승리라기보다, 각자의 살 길을 찾아내는 생존이고, 그런 생존이 가능해질 때 분배도 조금은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스피노자가 거미를 보며 떠올린 것도, 사회계약의 한계 같은 제도 비판만이 아니라, 그 와중에도 인간성을 보존한 채 살아남는 ‘생존’의 정의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남는다.
j*************6 2026.0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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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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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친절하고 도움되는 책! 자연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을 과거와 현재로 풀어낸다. 스피노자뿐 아니라 다양한 학자와 개념이 나오지만 그 또한 친절하게 설명되어 입문자에게 추천함. 우리 모두 인생에서 한 번쯤은 좌절하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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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친절하고 도움되는 책! 

자연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을 과거와 현재로 풀어낸다. 스피노자뿐 아니라 다양한 학자와 개념이 나오지만 그 또한 친절하게 설명되어 입문자에게 추천함. 
우리 모두 인생에서 한 번쯤은 좌절하는 것이 순리다
s***********2 2026.0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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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협동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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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거미》는 적자생존이라는 현대 사회의 지배적 신화에 날카로운 의문을 던진다. 저자는 자연이 결코 승자독식의 전쟁터가 아니며, ‘니치(Niche)’라는 틈새를 통해 자원을 분배하고 공존한다는 생태학적 통찰을 제시한다. 홉스와 루소 등 근대 사상가들의 이론을 가로지르며, 이성이 아닌 공포와 비이성으로 점철된 근대성의 이면을 파헤친다. 특히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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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거미》는 적자생존이라는 현대 사회의 지배적 신화에 날카로운 의문을 던진다. 저자는 자연이 결코 승자독식의 전쟁터가 아니며, ‘니치(Niche)’라는 틈새를 통해 자원을 분배하고 공존한다는 생태학적 통찰을 제시한다. 홉스와 루소 등 근대 사상가들의 이론을 가로지르며, 이성이 아닌 공포와 비이성으로 점철된 근대성의 이면을 파헤친다. 특히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가 촘촘하게 엮인 연결망적 관점은 우리가 왜 무한 경쟁보다 상호 협동을 택해야 하는지 논리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파편화된 개인이 늘어가는 시대, 이 책은 서로의 생존권을 존중하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과 ‘함께 살기’의 가능성을 깊이 있게 탐색한다.
y********2 2026.01.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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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경쟁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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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적자생존’이라는 익숙한 통념을 뒤집으며, 자연이 유지되어온 방식은 경쟁이 아닌 공존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스피노자의 사유에서 출발해 생태학과 근대사, 자본주의 비판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인간 사회의 구성 원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승자 독식이 당연한 질서처럼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각자가 자기 자리를 찾아 살아가는 ‘적소생존’의 관점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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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적자생존’이라는 익숙한 통념을 뒤집으며, 자연이 유지되어온 방식은 경쟁이 아닌 공존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스피노자의 사유에서 출발해 생태학과 근대사, 자본주의 비판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인간 사회의 구성 원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승자 독식이 당연한 질서처럼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각자가 자기 자리를 찾아 살아가는 ‘적소생존’의 관점은 위로이자 질문으로 다가온다. 자연을 통해 사회를 사유하는 이 책은 우리가 너무 쉽게 받아들여온 경쟁의 논리를 낯설게 만들며, 공존의 가능성을 오래 생각하게 한다.
t*******y 2026.01.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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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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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무도한 사람을 보면 “동물적 본능을 따른다”고 말한다. 자연은 이성적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 영역으로 여겨지고, 인간 사회는 그 자연을 극복한 합리성의 산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자연보다 더 합리적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간만이 지닌 비이성, 욕망 등이 그러한 삶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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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무도한 사람을 보면 “동물적 본능을 따른다”고 말한다. 자연은 이성적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 영역으로 여겨지고, 인간 사회는 그 자연을 극복한 합리성의 산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자연보다 더 합리적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간만이 지닌 비이성, 욕망 등이 그러한 삶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박지형의 『스피노자의 거미』는 근대 사회를 떠받쳐 온 두 가지 기본 가정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자원 분배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연 생태계의 자원 분배 방식과 이를 비교함으로써 우리가 다른 방향을 사유할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사회와 경제의 작동 원리를 다시 바라보고자 하는 이들, 그리고 현재의 불평등을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이는 데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f*********6 2026.01.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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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그리고 스피노자의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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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거미” 의미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지만, 주제로까지 나올 줄 몰랐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기대 이상의 글이다. 외국 번역본에서나 볼듯한 짜임새 있고 찾아볼 거리가 많은 중간마다 어딘가에서 사색을 즐겨야 할 정도로 많이 손이 가고 읽는 내내 오래 걸리지만 새로운 황홀함을 지속해서 알려주는 책이었다.   처음 의문 제기가 되는 ‘근대를 이성의 시대라고 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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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피노자의 거미의미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지만, 주제로까지 나올 줄 몰랐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기대 이상의 글이다. 외국 번역본에서나 볼듯한 짜임새 있고 찾아볼 거리가 많은 중간마다 어딘가에서 사색을 즐겨야 할 정도로 많이 손이 가고 읽는 내내 오래 걸리지만 새로운 황홀함을 지속해서 알려주는 책이었다.

 

처음 의문 제기가 되는 근대를 이성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가?’, ‘자연생태계의 자원 배분은 민주적인가?’, ‘거미와 콩키스타도르는 어떻게 다른가?’, ‘자연에서 대안적인 자원 배분의 원리를 찾을 수 있을까?’의 논의될 질문에 대한 설명은 읽을만해 보인다. 이후는 관련 기초지식이 없다면 아마 많은 부분 멈춤이 일어날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다른 의미의 멈춤이었지만 쉽게 진도가 나가진 않는다. 앞선 어려움 때문이라면 나열된 학자를 제외하고 그 내용과 흐름 위주로 읽기를 권한다. 생각보다 높은 개연성으로 인해 별 어려움 없이 저자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쉽다. 다만, 깊이 있는 저자의 생각을 알고자 한다면 되도록 언급된 학자들의 저서도 함께 찾아보면 좋을 거 같다.

 

작가를 따르되 되도록 ‘5. 세계화의 먹이그물은 꼭 여러 번 살펴보기를 바란다. 시장과 배분의 원리에 대해서는 많은 매체와 다양한 도서에서 언급되고 분석된 부분이지만, “스피노자의 거미에서 만큼은 차분하게 묘사되고 다른 면까지도 상세히 알게 된다

 

한동안 고대·중세·근대라는 언어 자체에 혐오감을 느껴왔다. 그렇게 즐기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찬양했던 지식이 이 순간 살아가는 나를 더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적용하지 못하고 사유할 공간도 적게 느껴질 만큼 차라리 관련 유튜브 영상만 찾아서 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에 대한 매력을 갖지 못했다. 알고 있는 게 불편한 지금에서 스피노자의 거미는 다시 지식의 소중함과 사유의 즐거움을 알려준 은인이다. 고맙게도 읽기에 오래 걸린 만큼 새로운 지식 체력을 장착한 느낌이다.

 

오랜만에 자연과 환경에 있어 세밀함이 더해진 풍족한 도서를 접해서 진심으로 행복했다.

 

e****i 2019.10.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