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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소프의 얼굴을 좋아했다. 그가 찍은 몇 개의 자화상에서 그의 얼굴은 어여쁜 삐에로 같았다. 그의 사진을 논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즐겁게 마주할 수 있는 데에는, 내 취향과 시선이 그 어딘가에 맞물린다는 사실도 있겠지만, 6-70년대 이후 끊임없이 많은 자극을 터트려온 현대예술에 익숙할 대로 익숙한 시대에 사는 사람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플소프의 사진이 지닌 금단, ‘도를 지나침’이라는 도취의 농밀함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이는 ‘논쟁적’을 일정부분 자유롭게 벗어나 그가 선점한 어떠한 아름다움의 자리에서 자태를 뽐낸다. (특히나 유명한 누드, 섹스 장면들 외에 그의 꽃 사진들은 탐미의 날 선 이중성, 탐욕과 그 자체로의 순수성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메이플소프와 그의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뒤로하고,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을유(참 좋아하는 을유)에서 올 여름, 메이플소프의 얼굴이 탁 박힌 메이플소프 평전이 번역되어 나왔다. ‘현대 예술의 거장’의 두 번째 책으로, 받아보기 전까지는 별 생각 없이 그의 사진들과 그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와 자료들이 실려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퍼트리샤 모리스로가 쓴 메이플소프 평전으로, 메이플소프의 사진은 몇 장 없이 그의 삶에 관한 얘기로 가득하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이 책의 온전한 매력은 메이플소프의 사진과 그의 삶이 유행한 방식, 그리고 그것들이 가진 가치를 메이플소프의 시선 외에 그 환경으로부터 이끌어낸다는 점에 있다.
이 평전은 두 가지 측면, 그러니까 메이플소프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담아내며 시간이라는 축을 가지고, 그 주변의 환경들, 즉 동시대의 인물들의 관계, 대화, 사건들을 통해 그 사회적 분위기를 담아낸다. 이를 통해 메이플소프가 일궈낸 그의 키워드들은 그가 살아낸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어우러져 재조합되고 입체적으로 풍성해진다. 저자는 메이플소프라는 개인을 영웅시하지 않으며, 유명한 그의 사랑이야기에 치중하거나 어떠한 극단에 도취되거나 매몰되지 않는다. 쾌락, 섹스, 폭력, 죽음과 같은 격렬한 주제들과 함께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그것들을 그것들만이 가지는 아름다움 속에 온전히 둔다는 것에 이 글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 메이플소프의 작품 없이도 그 키워드들은 보다 넓은 환경 속에서 생동감 있게 살아난다.
이러한 이유로, 을유문화사의 <메이플소프>는 메이플소프와 그의 작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1960-80년대 뉴욕의 현장 일부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할만하다.
#현대예술의거장 #메이플소프 #예술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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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안주적인 1950년대의 기풍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마틴 루터 킹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했다. 존 F.케네디가 암살되며 미국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이상주의적인 관점은 산산이 조각났다. 수많은 사건들이 꾸준히 쌓이다 폭발하며 1960년대를 불러왔다.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당시 대학에서 20대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게이 포르노로 콜라주를 하고, 죽어버린 애완 원숭이를 삶고 살을 발라내 두개골을 남기고, 장신구를 만들었다. 정상과는 거리가 먼 활동들을 하고 다녔다.
그는 시대를 잘 타고난 예술가였다. 1970년에는 여러 사회 운동들과 함께 함께 게이 미학이 문화적 주류에 수용됐다. 또한 당시 초반까지만 해도 미술관은 사진을 예술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던 상황이었다. 메이플소프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의 성향을 세상에 표출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다.
메이플소프를 세 가지 측면에서 이해해봤다. 우선 그의 예술적인 면이다. 그는 사진이 완벽한 매체라고 여겼다.
"(...)내가 어떤 작업을 하는 데 2주를 들여야 했다면, 나는 그 작업에 열정을 잃었을 거에요. 그 작업은 노동이 됐을 거고, 애정은 사라져 버렸겠죠. 사진을 찍으면 곧바로 피사체를 겨냥하게 돼요. 짧은 순간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게 되죠. 그러고는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고요. 사진은 대단히 현대적인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게 해주면서, 여전히 그 소재를 깊이 고민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로버트는 전문적인 사진작가는 아니었다. 그는 기술적인 부분에는 무심했다. 자신의 사진을 직접 인화하지 않았고, 보조 조명도 오랫동안 이용하지 않았다. 대신 오로지 피사체에서 아름다움을 뽑아내는 데만 집중했다. 그는 어떤 사람의 '최고의 모습' 을 포착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고, 꽃이든 성기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어내려고 했다.
![]() 다음으로 메이플소프가 다루는 주제들이 있다. 사람들에게 당혹감과 혐오감을 주기도 하는 그의 섹스/사도마조히즘 사진들은 꽃과 인물화와 함께 그를 대표했고, 그의 명성을 만들었다. 로버트는 포토저널리즘 작가처럼 감시자가 되기보다는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그 분야에 접근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의 사진은 그의 삶이었다. 1970년대는 '집단 전체가 밤마다 집 밖에 나가 섹스를 한다는 개념에 사람들이 중독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그게 나한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기록했어요. 실제로..... 그 사진의 주먹은 일급 미술 패션 잡지 중 한 곳의 미술 책임자의 주먹이에요. 그들은 내 친구들이죠. 내 말은, 나는 얼마나 멀리까지 가느냐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피가 많이 찍힌 사진도 갖고 있어요. 당신이 뭘 주장하는지 요점을 모르겠네요."
그는 강력한 성적 충동 속에서 예술을 뽑아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것이 아마 그의 사진을 포르노보다 예술 쪽으로 기울도록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가 찍는 것이 성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었을 뿐, 그는 성적인 것을 찍어내려고 한 게 아니었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땐 감정을 중단시키고, 냉담하게 거리를 두며 촬영했다.
마지막으로 성공에 대한 그의 미친듯한 욕망이다. 그는 유명해지고 싶었고, 위대한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1970년대에 누구도 평범해지기를 원치 않았던 것처럼, 그는 특별해지고 싶었다. 그는 이기적이었고, 사람들을 잘 주물렀다(manipulate).
로버트는 온갖 예술가들이 모인 '첼시'호텔에서 인맥을 쌓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로프트로 초대했다. 그는 뉴욕의 게이 엘리트와 안면을 트려고 열심히 작업을 해왔다. 그는 돈이 되는 후원자들과 명성이 되는 유명인사들을 항상 만나고 다녔다.
"그에게 사랑은 불가능했습니다. 그가 인생에서 원한 사람들은 부자들, 유명한 사람들, 섹스할 수 있는 사람들뿐 이었으니까요."
메이플소프가 섹스 사진들을 찍은 것도 단지 유명세를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는 사람들이 충격을 받는 것을 동력으로 삼았고, 이는 아이들이 관심끌기 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혹은 현대미술에서는 섹스를 다루지 않으며, 예술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파고들어 자신만의 독창성을 추구하려던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예술가적 기질과 동성애적 성향과 야망과 그것들의 근본적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메이플소프를 이루었다.
메이플소프의 전기는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간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나라의 흘러간 시대라는 이유로, 또한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절대 경험하지 못할 삶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한 예술가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들은 전기를 실감나게 만든다.
그의 사진들은 육체적으로 반사적인 수준에서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삶을 이해하니 이젠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 읽고 넷플릭스에서 본 다큐멘터리 <메이플소프>는 생동감있게 시각적인 부분들을 채워줬다. 이 책을 읽은 지금, 예술을 해야겠다는 생각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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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든 꿈이 있다면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기 위해 뭐든지 해야 한다.” ? 나에게는 사진집을 사모으는 취미가 있는데 가장 맥을 못추는 종류의 사진은 여성 초상과 꽃을 찍은 것들이다. 꽃 사진을 미친듯이 찾다가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알게되었다. ? 그리고 그를 다룬 다큐영화 메이플소프(2016)를 보고 그가 금기시되는 에로티시즘를 다룬 작품들로 유명세를 얻은 작가임을 알게되었다. 남성 누드, 동성애, 사도마조히즘들 다룬 작품들 말이다. 패티 스미스의 <저스트 키즈>를 읽고 메이플소프의 인생이 궁금해지던 차에 이 평전을 읽게 되었다. ?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한 인물의 일대기. 솔직히 읽기 쉽지 않았다. 메이플소프의 유년시절부터 주변 인물들, 그의 예술적 성장 과정과 개인사까지 낱낱히 밝혀낼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밝혀낸 이야기들. 시대적 상황과 그의 정체성과 비뚤어진 내면을 참고하더라도 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메이플소프는 그런 사람이었군, 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 뿐. ? 오랫동안 이 책을 붙잡고 있으면서 느낀 것은 씁쓸함이다. 그가 에이즈에 걸려 죽음이 확실시되고 치솟는 그의 주가와 인기. 오늘날에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더 주목받는 그의 인생과 작품들. 생전 메이플소프가 그토록 바랐던 부와 인기가 사후에야 미친듯이 쏟아져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다. ? 비록 메이플소프는 그의 대표작으로 인정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그의 꽃 정물사진과 초상 사진이 매우 좋다. 이건 그의 다른 작품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가 순수한 예술가인지 음탕한 악마인지 논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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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섹스를 할 때면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려요. 1분 정도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까먹죠. 카메라 뒤에 있을 때 벌어지는 일과 같아요.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걸 까먹어요. <메이플 소프>
항문에 채찍을 꼽은 남성, 성기처럼 찍어둔 꽃 사진, 기상천외한 섹스 사진. 금기시되는 주제들을 과감하게 카메라에 담은 이가 있다. 미국의 사진작가이자 아티스트인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이야기다. 그는 특히 흑인 남성의 누드나 동성애 등 남성의 에로티시즘을 탐구했고, 그의 관심사를 사진에 고스란히 녹였다. 이런 메이플소프의 사진은 대개 외설 시비 논쟁의 중심에 섰는데, 그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대부분 '음탕하다'는 의견과 '솔직하고 순수하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그리고 그 논란은 그가 사망한 지 30여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메이플소프의 작품들은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봤을테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생각으로 사진 작업을 했는지 등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삶에 대해서 다룬 서적이 극히 드물고(메이플소프의 전기 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삶을 다룬 영화 '메이플쏘프'(2016)도 최근에서야 국내에 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메이플소프를 알고 있으며 그의 작품을 주목하지만 의외로 그의 삶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을유문화사에서 선보이는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의 일환으로 지난 7월 발간된 <메이플소프>가 반가운 이유다.
그는 발가벗은 여성들의 사진을 응시하는 걸 즐기는 한편, 자신의 마음이 남성들에게도 끌린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자위에 대해서도 많은 죄책감을 느꼈지만, 자신이 동성애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믿음의 차원을 넘어서는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메이플소프>, 72p
<메이플소프>는 현대 예술의 거장이자, 문제적 포토그래퍼인 메이플소프의 평전이다. 메이플소프의 어린시절부터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메이플소프 본인과 그의 주변 인물들로부터 확보한 방대한 증언을 집약적으로 엮어놓았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동성애를 시작하게 된 계기나 포르노 사진을 찍게 된 사건처럼 메이플소프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은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들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메이플소프>는 단순히 그의 사적인 삶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의 예술세계와 작품도 동시에 조명하며 그의 삶을 균형있게 다루고 있다. 욕망이 집약적으로 발현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그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작품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메이플소프는 영감을 얻으려고 성적인 관계를 이용했다. 그는 포르노그래피를 예술의 영역에 끌어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포르노의 관례를 이해할 뿐 아니라, 자신의 섹슈얼리티도 계속 탐구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메이플소프는 그런 애정행각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메이플소프>, 245p
관습에 도전하고 금기를 깨는 그의 작품 활동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외설 논란 속에서도 그의 작품이 수십년 간 사랑을 받는 까닭은 어쩌면 그가 그의 작품과 전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파격적이고 관습에 도전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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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다 벗어 던진 메이플소프는 “나는 악마다!”라고 여전히 고함을 쳐대면서 알몸으로 23번가를 뛰어가기 시작했다. 로프트에 있던 크롤랜드가 그를 붙들고 위층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크롤랜드가 그를 진정시키려 애쓰는 동안, 메이플소프는 크롤랜드도 악마라고 주장했다. “내가 어떻게 악마일 수 있어?” 크롤랜드는 물었다. 그러자 메이플소프는 대답했다. “너는 아름답잖아. 아름다움하고 악마는 같은 거야.” _182쪽
메이플소프는 훗날 미술 평론가 피터 슈젤달에 의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꽃 정물 사진”을 창작해 냈다는 격찬을 들은 사람치고는 기이할 정도로 꽃에 적대적이었다. 웨그스태프는 1984년에 쓴 에세이에 이렇게 썼다. “우정을 표현하는 구식 제스처로서, 언젠가의 부활절에 메이플소프에게 꽃을 몇 송이 보냈다. 그런데 분하게도, 메이플소프는 딱딱거리는 소리로 꽃을 맞았다. ‘나는 꽃 싫어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꽃에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_342쪽
극단의 아름다움을 탐미하면서도 동시에 증오하고 멀리하려 했던, 기괴하고 충격적이면서도 동시에 극도의 아픔을 뿜어내는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꽁꽁 숨어 있던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던 1970년대 뉴욕에서 활동한 그는 결핍과 성취라는 양쪽의 추 끝에 매달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 심하게 방황한다.
사도마조히즘과 동성애 문화를 충격적인 앵글을 통해 드러낸 그의 사진은 결국 다시금 욕망과 충격이라는 두 단어로 귀결될 만하다.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진솔함이 터져 나와 버렸다고나 할까. 상업성과 예술성 위에서 줄타기를 해온 그를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더불어 그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그녀, 뮤지션 패티 스미스. 메이플소프를 사랑했고 후원했고 본인마저 예술가가 되고자 했던 존 매켄드리. 뉴욕 최고 미남이자 예술사가 새뮤얼 웨그스태프 등등. 향락과 퇴폐, 그리고 창조성과 에너지를 그려낸 70년대 뉴욕 드라마나 영화를 관람하듯 이들의 삶은 아름답다.
욕망이 폭발하던 시절에 그 욕망을 적절하게 폭발할 줄 알았던 그의 이야기가 그의 기획 아래 집필되어 나간 전기 《메이플소프》. 을유문화사의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 중 한 켠을 자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거장 시리즈의 다른 편들도 더없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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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동원과 도덕적 공황은 그 궤적에 법과 정책의 찌꺼기를 남기기도 하는데, 이것이 히스테리가 잦아들고 한참 지날 때까지도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미술과 이미지에 대한 근본주의자들의 공격은 자유 발언에 대한 호소를 넘어서 광범위하고 격렬한 반응을 요구한다.”
캐럴 S.반스가 레이건 시대 보수주의자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공격을 다룬 <문화 전쟁>이라는 글을 쓴 연도는 우연히도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전시회가 취소된 해이기도 하다. 퍼트리샤 모리스로가 [메이플소프: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이 책의 뒤에서 <완벽한 순간> 전시회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연표를 작성한 것은, 이 사건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예술에 대한 검열과 특정 섹슈얼리티에 대한 공격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건이지만, 어쩌면 이는 메이플소프가 해왔던 반항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퍼트리샤 모리스로가 소묘하는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메이플소프의 이야기들은 반항의 연대기이다. 모리스로는 메이플소프와 관계를 맺었던(대체적으로 이상적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주변인들의 방대한 인터뷰와 메이플소프 본인과의 인터뷰, 그리고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는 다양한 텍스트들을 직조해서 이 이야기들을 매력적으로 구성해낸다.
먼저 이 전기에서 주목할 것은, 모리스로가 메이플소프라는 인물을 전적으로 사생활에 연루시켜 전기를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리스로는 메이플소프가 겪어왔던 장벽들과 경험들의 사회적 맥락들을 계속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50년대와 60년대 메이플소프가 겪었던 남성성의 실패에 대한 일련의 경험들은 (그의 지독히도 양가적 성격과 더불어서) 전후 세대 특정 남성성에 대한 사회적 욕망, 특정 육체를 향한 사회적 욕망들과 함께 설명된다.
이런 방법론은 본격적으로 메이플소프가 사진 작업을 했던 시기를 묘사하는 데도 적용된다. 여기에는 오랫동안 ‘사생아’ 취급을 받던 사진의 지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며(책 후반에는 이제 더 이상 사진이라는 매체가 예술의 지위가 아니라는 데 동의할 사람은 없을 거라는 식으로 묘사된다.), 메이플소프가 사진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던 조력자였던 샘 웨그스태프라는 인물도 등장한다.
각 시대 예술계의 상황들, 특히 중심이 되는 1960년대와 70년대의 반항적 분위기를 그리면서 모리스로는 메이플소프라는 작가가 오로지 본인의 천재성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천재성을 담지한 작가라는 신화를 모리스로가 계속적으로 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리스로가 그려낸 메이플소프의 이야기에는 항상 무언가 초과되는 에너지들이 있다.
그것은 메이플소프의 양가적 성격에서 크게 드러난다. 그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혹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형과의 경쟁에서 이기고자) 남성성을 뽐내려고 시도하다가 좌절을 맛봤고, 인종주의적 함의가 짙은 말들을 내뱉으면서도 흑인 남성들의 육체를 탐미했다.(한편으로는, 혐오와 매혹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런 메이플소프의 태도가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죽기 전, 자신이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고 했지만 패티 스미스라는 인물은 (중간에 연락이 끊기기는 했어도) 60년대부터 메이플소프가 죽기까지 우정을 유지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인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이 책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부제이다. 무언가에 대한 강렬한 애착으로 작업했던 메이플소프의 기저에는, 죄의식으로 인한 처벌에의 욕망, 죽음으로의 욕망도 깔려 있었다. 이런 극단적으로 양가적인 성격의 메이플소프와 그의 작품들이 하나의 도그마를 가지고 움직이는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상당히 불편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어쨌든 (메이플소프의 장례식이 그려내는) 어색함과 불편함에서 시작해, <완벽한 순간> 전시의 논란의 연대표라는 또 다른 불편함으로 끝을 낸다. 불편함과 불편함 사이에는, 모리스로가 직조해낸 수많은 사건들과 인물들이 있으며, 거기에 양가적으로 반응하는 메이플소프가 있다. 메이플소프의 이야기를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매혹과 혐오를 동시에 느꼈다. 이 책을 지배하고 있는 양가성처럼 말이다. #메이플소프 #포토그래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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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소프는 당대 사회에서 금기시한 동성애와 마약에 탐닉한다. 나치 하켄크로이츠 악세사리를 달고 다니며 남창으로 일을 한다. 그가 찍은 사진에는 게이가 담겨 있다. 한마디로 메이플소프의 삶과 예술은 일탈이었다. 그의 평전을 읽다보니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대 사회 질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끊임없이 반문하라. 평전의 앞부분 메이플소프가 아버지한테 인정을 받지 못해 갈등을 빚는 장면이 의미심장했다.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이니 아버지와의 대립은 앞으로 그의 생에서 벌어질 사회와의 대립을 의미하는 것처럼 상징적으로 보였다. 그 순간 메이플소프는 경계선에 서 있었다. 경계선을 사이로 세상은 서로 상이한 규칙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경계선에서 그는 세상을 본다. 그가 뛰어넘어야할 모든 규칙과 관습을 직시한다. 지금 메이플소프같은 연예인이 등장한다면 그는 질식당할 것이다. 도덕주의자들이 가하는 폭력. 이를테면 그가 개입된 모든 것에 대한 불매운동, 비난과 비아냥의 SNS 댓글,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들먹이는 청와대 청원, 가족에 대한 공격, 살의가 가득찬 시위, 저주의 기도회, 그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확정하는 루머의 향연. 끔찍하다. 도덕주의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눈물흘리는 그, 고통받고 회개하는 그이고, 그를 발가벗겨 그가 모욕당하기를 요구한다. 그를 에워 싼 도덕주의자들은 자비없는 재판관이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도 그러했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도덕주의자들은 메이플소프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메이플소프를 보자. 도덕주의자들의 주장과 다르게 사실 그의 예술은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에 있지 않다. 메이플소프의 목적은 하나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공격하여 세상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 유익이 되는 것 아닌가.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그가 볼 수 있게 해주는데?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메이플소프의 사진은 게이로 대표되지만 게이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오히려 그는 게이를 사진에 담지 않을 것이라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게이가 아니라 고정관념을 공격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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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소프의 예술적인 신조는 항상 "예전에는 절대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사물들을 보는 것'이었다.' #현대예술의거장 #메이플소프가 지나온 연대를 눈으로 읽는 일, 한 시대를 흔들어 놓고 흩뜨릴 수 있었던 그,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펼쳤다. 미국의 포토그래퍼, 메이플소프는 흑인 남성 누드, 동성애, 에이즈 등 동시대에 금기시되 주제를 끊임없이 사진에 담아냈다. 특히 남성의 에로티시즘에 집중했다. 하지만, 메이플소프를 이렇게 간략한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에 그의 삶과 그가 속했던 시대는 너무나 방대하기도 했고, 격변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메이플소프의 '평전'이 더 반갑게 느껴졌다. 한 사람의 연대를 역추적하며 그가 지닌 예술성, 그가 고군분투해 온 시대라는 '컨텍스트'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집중한 미국의 포토그래퍼'라는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전' 속 컨텍스트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평전은 한 사람의 인생을 번역함으로써, 그 '시대'를 번역해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도전을 받는 메이플소프의 작품이 수십년간 여전히 '논란'속에 있고, '유명'하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편견, 그리고 틀안에서 본능을 가로막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모두가 메이플소프처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관습을 거스르는 예술 행위를 하라는 메시지는 아닐 것이다. 그저, 나의 삶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다고 믿다는 것이 진짜 맞는지 돌아보는 삶의 태도를 말해주는 것 같다. 내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어떤 도덕주의에 사로잡혀, 타인을 판단하고 나를 가두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메이플소프가 동성애자로서, 사진작가로서, 예술가로서 분투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이 모든 역사가 급변하던 시대적 상황과도 정확히 맞물린다. 역사상 가장 아방가르드했던 1960년대의 시대 정신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발견된' 이미지를 다룬다는 이유러, 작가의 상상력과 역량이 덜 개입된다는 이유로 순수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시기 동성애자들의 권리 역시 예술가로서의 사진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이래저래 68혁명이 주장한 인간적인 유토피아는 멀고도 먼 이야기엿다.' 메이플소프의 평전이 유의미한 이유는 '금기의 시대'는 지속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인식할 때에도, 혹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금기'는 세상에 의해 지속된다. 메이플소프는 그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흑백 사진의 대가였지만 그의 인생에서 흑과 백으로 명확히 갈리는 건 결국에는 하나도 없었다. 그의 인생 전체는 탁했고, 잿빛이었으며, 도덕적으로 모호했다. 이런 그의 죽음은 한 시대가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신호탄이었다.' 책을 덮으며 다시 한번 질문해본다. 사회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외설 속에 둘러싸인 메이플소프가 진짜로 '그렇게만' 평가될 수 있는지 말이다. 격정의 시대 속에서 틀에 종용되지 않고, 끊임없이 도발했던 그의 삶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깨부수고 나와야 할 일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답해야 할 것이다. 빛이 나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지 않나. 메이플소프는 그런 어두움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시대에 살았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두운 시대를 지나고 있지 않은가. 밝고 빛나는 세상이라기에 뚫고 지나가야 할 금기들은 너무도 많지 않은자 계속해서 반문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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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의 신실한 카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역설적이게도 금기시되었던 흑인누드, 동성애, 에이즈를 자신의 작품 모티브로 삼았던 로버트 메이플소프. 그의 사진은 죽음의 그림자를 띤 성의 세계였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시대의 얼굴과 감춰진 위선을 폭로하고 있다. 성을 통해 시대의 감춰진 얼굴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던 독서. #메이플소프 #에로스와타나토스 #을유문화사 #독서평이벤트 #1주5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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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전기를 읽는 다는 것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예술가는 특별한 재능과 영감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나의 편견 아닌 편견을 보기 좋게 깨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가진 1% 나은 재능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 재능을 가공하고, 예술적인 감각을 결과물로 발현시키는 것은 엄청난 끈기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메이플소프라는 예술가를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책에 선뜻 관심을 가졌던 것은, 내가 모르는 또 한 명의 예술가의 삶을 관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시각으로 사회와 현실을바라볼까, 그리고 그는 그가 가진 재능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까 더 나아가 나는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어떤 방법을 구현할 수 있을까하는. 솔직히 말하면 그의 삶이 나에게 준 느낌은 ‘회색빛’의 느낌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많은 사진들 속에 그는 ‘화려함’에 균형의 무게를 쏟게 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의 삶은 처연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는 부끄럼 많은 포르노 사진가 같은 느낌도 내게 주었다. 흡사 연예인들중에 의외로 내성적인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그가 에이즈에 걸리고 “명성을 감상할 만큼 충분히 오래 살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야”라고 말할 만큼, 삶의 끝이 어두운 부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에이즈와 폐렴을 앓던 그 시절에 존재감이 예술계에서 두드러졌다. 예술가의 아이러니란 이런 것일까. 1960년대 이런 예술가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외설논란까지 감당했던 예술가 메이플소프. 이상한 시대를 비추는 가장 어두운 별이었던 예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