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깡이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책은 봄날에 차에 내려앉은 송진가루처럼 다 읽은 뒤에도 여운이 쉽게 가시질않는 " 송진 " 입니다.
![]()
![]()
이책의 이야기는 소녀가 이끌어간다. 하지만 이 소녀가 살아있다는걸 아는사람은 가족밖에없다. 왜냐하면 이 소녀는 이미 사망신고가 되어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녀는 학교도 바깥세상과는 단절된채 오로지 아버지가 알려주는대로만 살아간다. 사냥을하고 물건을 훔쳐오고, 다들 그렇게 하는줄 알았고 그게 당연하다 생각하며 자랐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는 쌍둥이 동생 카알이였다. 늘 함께였고 그녀가 무서움에 떨때 용기를 준 사람도 동생뿐이였다. 동생 앞에선 용기를 낼수있었고 버틸수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아버지에 대해 이해를 할수 없었다. 아버지는 물건을 버리는것을 끔찍이도 싫어했고 그게 무엇이든 집안에 보관했다. 죽은 동물 시체던, 죽은 자신의 자식이던 말이다...
![]()
아마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을 나가버린 형, 그리고 쌍둥이 중 한명인 카알의 죽음까지... 떠난건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에게 소중하고, 지키고싶은 것들이 떠날수 없게 모두 모아두고 묶었으며, 세상과 단절시키는게 사랑이라 생각한거 같았다. 자신의 딸도 더 큰 세상을 알면 자신의 품을 떠나버릴까 걱정했기에 학교를 보내지 않았고, 죽은 사람처럼 위장을 했다. 자신의 소중한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외로운 늑대처럼 자신의 외딴섬을 지켜갔다.
![]()
아버지도 너무 불쌍했지만 그의 부인도 너무 불쌍했다. 살이쪄서 이층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볼펜도 살에 파묻혀 겨우 잡는 등치를 자랑하는 그녀 역시 처음부터 그랬던것은 아니였다. 아마 살이 그만큼 찌게 된것도 아버지의 잘못된 사랑이 만든 결과물은 아니였을까? 하루종일 누워있지만 딸을 걱정하고 나중을 대비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겨놓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자신은 이렇게 살지라도 딸만큼은 이 외로운 섬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사랑이 느껴져 더 애절했다.
이 책의 제목인 송진은 외부의 자극이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상처를 치료하며 작은 크기의 죽은 동물들을 그모습 그대로 보존한다고 한다. 아마 아버지가 그 많은 쓰레기 더미에서도 유독 송진가루를 아끼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라서 그런건 아닐까? 자신의 소중한 가족을 외부자극이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자신이 겨우 부여잡고 있는 외로운 마음을 치료해주며 죽었지만 보내줄수 없는 가족의 모습을 살아있던 때의 모습 보존해주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
책을 다 읽어갈때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보단 그가 너무 불쌍해보였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걸 다 잃어버린 그를 채운건 송진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이 리뷰는 서평단 모집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예전에 서평단 신청하고 받은 책인데 이제야 읽었다. "아빠가 할머니를 살해하던 날, 하얀 방은 완전 깜깜했다."라는 무시무시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은 어린 딸 리우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중간중간 엄마 마리아가 리우에게 쓰는 편지와 아빠 옌스의 과거 이야기가 나오면서 어떤 끝을 맞이하게 될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래서 옌스 호더는 그토록 원했고, 또 그토록 사랑했던 또 다른 아이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식으로 잃고 싶지 않았다.
옌스 호더는 세상의 그 무엇도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다.
살아있는 딸을 사망신고해서 죽은 사람으로 만들고,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뒤 마당에서 화장하는 등 옌스의 행동은 비정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아빠가 자신의 세상 전부인 리우에게는 아빠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가족을 더 이상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옌스. 그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한편으론 짠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긴 하다. 한 사건을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바라봐서 더욱 실감 나고 몰입해서 읽게 된다. 집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애썼던 옌스는 마리아와 함께 영원히 그 자리에 남는다. 과연 옌스는 그 끝에 만족할까. 대답은 들을 수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상황에서 삶을 이어갔던 옌스라면 그 끝도 슬퍼하지 않을 것 같다. 리우 역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없이 고립되어 살았기 때문에 다른 애들과 다르다. 그리고 그런 리우의 모습이 결말에서 가장 충격적이게 드러난다. 내가 받았던 충격을 그대로 받고 싶다면, 꼭 스포 없이 읽길.
|
|
1. 일반적이다, 보편적이다, 평범하다가 아니면 다 이상한건가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으면 난 이상한게 되나요, 세상의 틀과 기준과 삶의 방식이라는게 나에게 있는 그대로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전 이상한 사람이고 심지어 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건가요, 이 세상을 살고 인간의 삶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사람의 영역에서 그들처럼 보여져야 대우를 받고 인정을 받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되요, 조금은 다를 수도 있고 조금은 독특할 수도 있고 조금은 동떨어질 수도 있는 수많은 나와는 다른 누군가가 나의 주변에 심지어 나조차도 그런 사람이 될 지도 모르는데 그들이 쉽게 어울리고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처럼 여겨져야하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대중이라는 공동체에서 외면하고 몰이해를 하게 되면 자꾸만 소외되고 배제되어 자신만의 세상속으로 숨어들게 되는 인간의 속성에 대한 고민이 생깁니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과연 나는 나라는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나의 가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가하는 뭐 그런 고민거리죠,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넌 왜 다른 아이들처럼 하지 못해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넌 왜그러니, 남들처럼 인사도 잘하고, 하고싶은 말도 똑똑하게 제시하고, 원하는 것도 편안하게 말하지, 왜 맨날 혼자만 있니, 만날 친구가 없니.. 허구헌 날 집에만 있으면 뭘하려고 해도 주변에 사람이 다가올 일이 없겠다야, 그러지말고 나가서 놀아, 그러지말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아, 그러지말고 어디 모임이나 그런데 좀 나가고 그래, 답답하고 짜증스럽고 내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우리 조금만 아이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시선을 바라봐줍시다.. 2. 인간 사회의 대다수의 문제는 함께하고 공동체로서 서로 부딪히면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 발생하죠, 수없이 떠들어댄 독후감의 내용속에서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늘 관계의 마찰속에서 벌어지는 일때문에 수많은 고민거리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제가 읽고 즐기는 소설속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죠, 인간은 그런 존재입니다.. (헉, 다음 이어쓴 독후감 전체가 다 날라가따, ㅠㅠ) 함께 살아가야되는 존재들인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혼자이고 싶은 욕망 또한 있습니다.. TV 프로그램중에서도 '나는 자연인이다'같은 프로그램이 그렇죠, 많은 사라들과 세상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지치고 고통스러워서 자신만의 세상속으로 고립되어 사는 인생을 우린 나름의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합니다.. 세상의 최소한의 문명적 이기만 주어진다면 홀로 고립되어 자신들만의 세상속에서 자유롭게 편안하게 자신의 가족들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요, 하지만 언제나 인간은 스스로 조차도 혼란스러운 내면을 보유한 특이한 존재이기에 늘 문제가 생깁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각자의 생각과 성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나 혼자 산다라는 개념이라면 뭐,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이길 바라지만 내 가족들마저 고립된 삶에 묶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도 원하고 택한 삶일테지만 그 삶의 끝이 항상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그렇게 부럽게 바라보는 고립된 생활이 막상 하려니 두렵지는 않을텐데 말이죠,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글래스키상을 수상한 서스펜스 스릴러소설 덴마크의 작가 에느 리일의 "송진'입니다.. 3. 대단히 극악스러운 상황을 천진무구한 아이의 시선으로 드러냅니다.. 리우라는 어린 여자아이는 자신의 할머니가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죠, 그것도 자신의 아빠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라는 점이 이 작품의 광기적 상황과 아주 암울한 내면을 시작점부터 그려낸다는 것이지요, 서스펜스 스릴러소설의 수상작다운 시작점이라고해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 작품은 크리스마스를 며칠 남긴 시점에서 시작하여 할머니의 죽음 이후 이 가족의 과거로 돌아갑니다.. 할머니 엘세와 아빠 옌스가 살던 어린시절이죠, 옌스는 실라스 호더의 둘째 아들입니다.. 본도와 떨어져 홀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호더 가족은 본도에서 필요한 가구나 목재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죠.. 형인 모웬스와 옌스는 목수인 아버지 실라스를 도와 조촐한 호더 가족의 행복한 삶이 이어집니다.. 본도에서도 실라스의 목수일을 좋게 바라보고 항상 일거리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목수에게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관도 만들게 되죠, 아버지 실라슨 죽음이라는 것에 매혹된 사람입니다.. 형인 모웬스는 그것과 무관하게 외향적이고 사회적 심성을 가졌지만 옌스는 아버지의 그런 암울한 내면의 심성을 닮은 것이죠, 아버지와 옌스는 그런 자신들의 공유로 서로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생각적 공유를 가집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영원한 삶의 모습처럼 보여지는 개미가 갇힌 호박을 옌스에게 선물하죠.. 많은 송진이 굳어 오랜시간 지나 만들어진 호박은 과거 미리를 만들때 사용되곤 했죠, 실라스와 옌스는 그런 죽음에 대한 그들만의 생각을 공유하지만 어느날 아버지 실라스가 번개를 맞고 갑작스런 죽음을 당합니다.. 그리고 옌스에겐 그를 이해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형인 모웬스는 고립된 섬에서 가출을 하고 사라지고 엄마인 엘세는 자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죠, 조금씩 옌스는 자신만의 세상속으로 문을 닫아걸기 시작하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엘세가 들인 가정부인 마리아만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쌍둥이를 낳게 되죠, 카알과 함께 할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리우를 말입니다..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요, 4. 전반적인 연결이나 구성이 상당히 쫀득쫀득하다는 표현을 해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 서사가 아주 잘 연결되어 상황이 주는 소설적 이미자와 재미가 상당히 뛰어납니다.. 특히 리우라는 어린 여자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과 그들의 부모의 삶과 자신의 주변의 이야기는 아이의 단순하면서도 긍정적이고 생기 넘치는 또래의 시선과는 대단히 반치되는 이미지입니다.. 아이가 이해하는 세상은 그 눈높이의 세상인게죠, 하지만 독자들의 대다수가 성인인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다릅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의 삶이 보이죠, 작가는 이러한 시점과 시선의 변화를 챕터와 상황과 배경속에서 조금씩 달리 합니다.. 이들의 가정에게 주어진 삶의 이면과 진실을 그릴때에는 전지적 작가의 시선이 주효하고 현재의 삶의 모습과 공감을 위해서는 아이인 리우가 바라보는 그들의 세상이 중요하죠, 하지만 중심은 리우입니다.. 과거의 호더가족의 삶과 이야기로 이어져온 홀데트섬의 고립된 세상은 리우가 또다른 아이만의 세상으로 변화되어 나아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는 아이인거고 그 중심에는 자신의 아빠 옌스가 만들어가는 그만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이 지켜야만하는 가족에 대한 집착과 광기가 우선입니다.. 이들은 고립되고 사회에서 멀어져 외떨어진 곳에서 자신들만의 삶을 구축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완전히 세상속에서 떨어져나갈 수는 없죠, 어떻게해서든 그들은 세상과 사람들과 통할 수 밖에 없고 그러한 세상과의 연결은 옌스가 가지는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과거 자신과 아버지가 느꼈던 아주 작은 그들만의 틀속에서 편안함을 찾던 그 감성이 끊임없이 그를 가두는 강박과 집착으로 변질되어버린 것이죠, 5. 시작점부터 나타난 소설의 어두움을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옌스가 보여주는 암울함과 고립된 자아의 은둔적 감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답답함과 함께 일반적이지 않음으로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듭니다.. 하지만 리우라는 아이가 있죠, 아이는 독자들이 이 작품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단히 현실적이면서 우리네 인생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비이성적으로 보이더라도 이것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일반적이진 않지만 이들의 가족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으로 이해를 시킵니다.. 만일 리우라는 아이가 바라보는 그들의 세상속 시선이 없었다면 독자인 우리들은 흔한 주변의 삶이지만 이들은 이상하고 괴기스럽고 비이성적이고 문제가 있는 삶이라고 치부해버릴 지도 모를 일입니다.. 흔하지만 가까이 다가가기 싫은 그런 삶의 모습, 사실 이 작품속의 옌스 호더와 그 가족의 모습은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습니다.. 어느순간 사람들은 그들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호더 가족을 잊어버리죠, 그리고 옌스는 자신만의 세상속에 갇혀버립니다.. 자신의 엄마, 자신의 형마저 자신의 삶과 생각과 심리를 외면해버린 것이죠,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알아준 마리아와 자신의 아이들에게만 자신과 동일해야한다고, 그래야만 버림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고립과 은둔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였던 셈이죠, 그리고 그 울타리를 아무도 넘어오지 못하게 그는 방어벽을 칩니다.. 사실 이러한 옌스의 반복되는 모습과 암울한 이야기 진행은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일정부분 지리한 상황으로 보여집니다.. 리우에게 자신의 성향과 상황과 의도를 강요하면서 어린 아이가 세상에서 단절되게끔 해버리는 부모로서의 행위는 감정적인 거부감까지 들게 되죠, 하지만 엄마의 편지와 세상과의 가느다란 끈을 이어나가고 아직 세상을 모르고 자신만의 영역속에서 살아가는 리우의 하얀 백지의 빈 공간은 후반부의 반전과 함께 또다른 세상의 올바른 판단을 이끌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6. 서사가 좋습니다.. 이중적 시선이 느껴지는 관점이 주는 매력도 다분하지요, 어리고 세상을 아직 모르는 천진한 여자아이의 세상속의 눈높이가 주는 또래의 생기넘치는 세상의 이야기와 이제는 자신과 주변을 닫아걸고 고립시키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어두움과 고독과 고립적 두려움으로 강박과 집착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갇혀버린 성인 부모의 눈높이가 독자들로 하여금 객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공감을 불러주는 역할을 합니다.. 소설은 이들의 삶과 주변의 이야기로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혀 이어져가지만 독자들은 그들의 삶과 리우의 이야기에 매혹적으로 집중하게 됩니다.. 홀로 떨어진 아름다운 섬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북유럽의 차디찬 자연적 이미지가 주는 입체감이 아주 두드러진 작품이기 때문에 독자로서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린 압니다.. 이러한 세상속에 갇혀서 살아가는 주변의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말이죠, 수백수천만의 인간의 도시속에서도 홀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가정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리우가 바라보는 세상의 눈높이를 공감하게 됩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에게 둘러싸인 울타리속에서 세상을 바라보지만 조금씩 그 자신의 부모만 바라보던 눈은 성장함에 따라 주변으로 돌리게 되죠, 옳고 그름은 그렇게 조금씩 아이를 세상속에서 제대로 살아가게끔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또다른 측면에서 부모라는 존재들은 어린시절 새하얀 백지의 아이의 공간속에 그들이 겪고 살아온 세상을 대입하려합니다.. 아이가 바라보는 부모의 눈은 세상의 모든 것입니다.. 부모가 바라보는 아이의 눈속에 자신이 아는 세상만 담아두고 아이의 눈을 묶어두면 아이는 자신의 공간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나와 같은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의 생각, 나의 사상, 나의 삶은 나의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만 유일한 것이기에 강요하거나 요구하거나 묶어두려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뭔말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우린 부모로서 아이를 잘 키울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죠, 옌스 부부도 그러길 바랬습니다.. 옌스의 부모들도 그러길 바랬죠, 하지만 인간은 다 다릅니다.. 그것만 명심하면 됩니다.. 안되면 말고, 땡끝
|
|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서스펜스,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글래스키상 수상작<송진>은 사랑과 광기에 얽힌 그로테스크한 삶의 진실을 어린 소녀의 천진난만한 시각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한 작품이다. "아빠가 할머니를 살해하던 날, 하얀 방은 완전 깜깜했다." 송진의 화자 '리우'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은 물론 사망신고된 여자아이다. 리우의 집은 쓰레기장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온갖 고물과 잡동사니들이 쌓여있고, 엄마는 살이 너무 쪄서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며 침대에 누워 지낸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을 쓰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던 엄마는 살이 찔수록 말수가 줄어들었고 끝내 거의 말을 하자 않게 되었다. 리우는 쌍둥이 남동생 카알과 대화하는데, 카알은 갓난아기 때 이미 죽었는데 리우에게만 보이는 '보이지 않는 친구'다. 아빠 옌스는 아들을 잃은 이후에 리우에 대한 집착이 커져 리우를 집안에 가둬놓고 싶어 한다. 리우를 학교에 보내자고 하는 어머니의 의견에 어머니를 살해하고 리우를 사망신고한 채 곁에 둔다. 옌스는 잘생기고 촉망받던 소년이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쓰레기까지 집에 쌓아두는 저장강박증 환자로 변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커졌다. 아버지로부터, 형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아들까지 자신을 떠난 건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떠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엄마는 말야. 우리 가족의 삶을 동화 같다고 해야 할지, 공포물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쩌면 양쪽 다일 것 같지 않니? 다만 바람이 있다면 너만큼은 동화 같은 삶이라고 생각해줬으면 한다는 거야." 옌스는 딸에게 어둠이 고통을 대신 가져간다고 가르쳐주었다. 그 말이 전부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는 밤이 되어 내려앉은 어둠이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 안아주면 평소보다 훨씬 편안함을 느꼈다. 기억 속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던 그 느낌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관 속에 누워 자신을 꼭 안아주었던 아빠의 손길, 목덜미에 전해지던 따사로운 숨결, 갓 손질한 신선한 나무 냄새. 그건 이해와 믿음, 안전을 의미했다. "왠지 몰라도 함께 있으니 더 좋은 것 같았다. 우리 셋이 함께. 쌍둥이 남자 형제랑 여동생, 그리고 나. 모두 죽은 사람들끼리. 단, 셋 중에 사망신고가 된 건 나 하나였다."
"엄마한테 말하고 싶어요."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 속삭였다. 단단하고 시커먼 돌멩이 같은 아빠의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도 없었다. 반짝이지도 않았다. 전혀 아빠의 눈동자 같지 않았다. 그냥 싸늘한 돌멩이 같았다. "안 돼." 아빠의 대답이었다. "넌 여기 있어. 아빠 금방 돌아올 테니까." 리우가 심하게 왜곡된 현실 속에서 사랑받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세상을 어린아이답게 순수한 눈길로 바라보며 비극적인 서사를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된다. 아이는 올바른 것을 보고 밝게 자라야 하는데, 어둠이 편안함과 선량함을 의미하고, 빛이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함으로 여기는 이곳의 생활. 긴장감과 불안함이 고조되며 진행되는 서사는 북유럽의 단순하면서도 깔려있는 우울한 기운을 내뿜는 게 아닐까. 자신을 틀에 가두려고 하는 아빠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리우의 성장통이 미묘하면서도 재미를 자아낸다. |
|
쓸쓸하고 아름답다. 매서운 바람이 떠오르는 북구의 고립된 한 섬에서 한 가족이 산다. 아빠, 엄마, 나 그리고 카알. 나와 카알은 쌍둥이 남매다. 나는 여자아이치곤 힘이 센 아이 리우고 카알은 말이 없는 남자아이다. 남매의 할머니는 아빠의 손에 살해된다. 그러니까 아들이 어머니의 숨을 끊어 놓은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이 아이의 시점에서 담담하게 서술된다.
이 가족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소설은 리우의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의 모습으로 지내게 되었는지를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보여준다. 리우의 할아버지 시절부터 할머니가 살해되는 날까지. 그리고 그 가족이 어떤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지까지. 이야기의 중심은 리우의 아빠 옌스 호더다.
작가 에느 리일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선 「송진」이 첫 작품이다. 이 소설로 작가는 2016년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서스펜스/범죄소설에 수여하는 글래스키상을 받았다. 「송진」은 덴마크에서 2015년에 출간됐고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다. 자국내 첫 작품인 「리셀레예에서 온 도살자」(2013)를 발표했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실력을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작가의 이전 작품을 본 일이 없는 나에겐 그저 낯선 작가일 뿐이었다.
「송진」은 기대 이상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줬다. 충격적인 도입뿐 아니라 이야기가 흘러가는 동안에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한 마지막 순간도 흥미로웠다. 서스펜스/범죄소설 분야의 작품임에도, 심지어 같은 분야의 유력한 상까지 수상했음에도 작가의 문장은 부드러운 서정이 담겼다.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는 ‘송진’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옌스 호더는 일생을 통해 느꼈던 결핍을 물건을 모으는 일로 보상받고자 한다. 가까운 섬의 이웃들과도 점차 연락을 끊고 자기 가족들만의 세계를 만들고자 한다. 자신이 쌓아 만든 세상을 외부로부터 차단하고 시간조차도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이. 옌스 작업실의 모래시계는 ‘모래가 양쪽에 정확히 반반씩 나눠진 채로’ ‘먼지와 기억 속에’ 잊혀져 있다.
딸에게 아빠의 세상을 넘어서는 것은 무엇도 가르치지 않고 싶어했지만 리우는 모래시계안의 모래가 흐르는 모습을 보고 싶은 아이다. 아빠 옌스의 행동을 살피고 그가 한 말들을 곰곰이 되씹어본다. 리우는 숲 속에서 스스로 지혜를 터득하는 아이다.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번 떠난 것은 무엇이든 되돌릴 수 없다고 믿는 아빠, 그리고 숲의 순환처럼 모든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딸이 함께하는 시간은 처음부터 파국을 예고한다.
아빠 옌스가 집과 집 주변에 물건을 쌓아 자신만의 장막을 건설하는 동안 엄마 마리아는 자신의 몸 내부에 움직일 수없는 성을 만든다. 먹고 또 먹는 동안 마리아의 몸은 집의 일부가 된다. 마리아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옌스를 사랑했다. 그와 함께 한 고통의 세월 때문인지 변해가는 옌스를 이해하고 언젠가 자신에게 끼칠 해를 고스란히 떠안고자 한다. 하지만 딸아이만은 지키고 싶어한다. 목소리마저 잃어가는 마리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딸을 위한 도움을 요청한다. 옌스와 마리아는 자신들만의 천국에서 영원히 거할 수 있을까. 사랑하지만 자신을 옭아매는 부모와의 삶에서 리우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작가가 묘사하는 저장강박의 현장은 그야말로 숨이 막힌다. 사용하기 위해 물건을 곁에 두는 게 아니다. 오직 그곳에 두기 위해 물건을 모은다. 언젠가 꼭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핑계로 물건이 집의 주인이 되고 결국은 집을 집어 삼킨다. 물건을 모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물의 마음에 연민이 일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쓰레기 속으로 함께 매몰돼 가는 그 가족의 처지가 슬프다.
결국 아이를 구하는 것은 작은 관심이다. 더럽고 구질구질하다고 눈 돌려버리지 않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눈길 말이다. 작가 에느 리일은 스스로 고립을 자처한 이의 삶을 묘사한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피폐해지는지 도덕성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을 가족 간 살인을 다룬 범죄소설로만 보기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폭이 넓다. 자연에 대한 이야기, 부모자식간의 애증에 대한 이야기, 험난한 가정 환경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가진 아이의 생존기까지 이야기의 겹이 두껍다.
숨 가쁜 사건의 연쇄로 가득 찬 범죄소설과는 다른 서스펜스를 느끼고 싶은 범죄물의 독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
|
'송진'을 읽으면서 계속 떠올렸던 생각은 정신질환은 유전되는가'였다. 아버지에서 이어져 오는 어떤 '낌새'는 환경적인 측면에 의해서 키워지는 것인지 역시 당뇨같은 병력처럼 DNA같은 것에 붙어서 새겨져 내려오는 것인지 생각했다. 정신병력이 유전된다는 말은 얼마나 위험한가. 송진은 한 가족의 네 세대에 걸친 이야기다. 홀데트 섬에 외따로 사는 호더 가문의 옌스는 조용한 아이었다. 그의 아버지 실라스는 솜씨가 좋은 목수였고 약간의 저장강박도 있었다. 실라스와 옌스에게는 둘만의 비밀이 있었는데, 실라스가 관을 만들때면 그 안에 둘이 함께 들어가 누워 여러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딱히 나쁠 일 없는 어찌보면 부자간의 유대가 돈독해지는 시간으로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아버지의 깊은 내면을 더 파고들어간 듯한 옌스에게는 딱히 좋은 영향을 주는 시간이 아니었던 듯하다. 실라스가 개미가 들어간 호박을 간직했던 것처럼 옌스도 그만의 호박을 만들게 됐다.
누군가를 잃어버린다는 경험은 어떤 영향을 끼칠까. 옌스가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하게 된 것은 자신 주변 사람들을 전부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냈다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어떤 경우는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딸 리우와 떨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엘세를 죽이게 만들었다. 옌스는 형제는 모웬스와 여러모로 다른 성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럴 때마다 그의 운명이 불행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 같아 불편했다. 옌스를 두고 '결국 미치게 될 거야' 라며 그런 운명으로 몰아가는 느낌이랄까. 책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티비 시리즈에 나오는 인물이 떠올랐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FBI 수사관인데 그는 마음속 깊이 자신이 정신분열을 앓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에게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이 불길한 '낌새'는 유전과 성장 환경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대를 이어 이어지는 것일까.
최근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이 과학저널 '네이처 유전학'에 발표한 13만 가족과 그 구성원인 48만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질병간의 유전적 유사성이 환경적 상호관계보다 강하지만 신경정신 질환의 경우 비슷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살아남은 아이, 리우를 떠올렸다. 테디베어를 소중히 끌어안은 소녀의 안에 분명 옌스의 그림자가 들어있다.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홀데트 섬에서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은 채 어둠만을 달리다 자란 소녀, 리우에게 정상적인-평범한 삶이 가능할까?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 부분은 꽤 교묘했다. 리우가 태어나 자라온 환경을 깊숙히 보여주면서도 가끔씩 그 애의 안에 뭔가 다른 것이 빛나고 있는 것처럼 여지를 주었다. 다른 아이들과 대화해본 적 없는 어린 소녀, 죽은 쌍둥이 남동생과 대화하며 자란 소녀는 한편으로 할머니의 팬케이크를 기쁘게 먹는 소녀이고, 의문을 갖고 생각하며 행동할 줄 아는 소녀였다. 리우도 어둠을 가졌을까, 그 애는 옌스가 모든 것을 담아 키워낸 또 다른 호더 중 하나가 아닐까. 리우를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계속해서 바뀐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부분이 다 불쌍한 영혼들이지만, 여기서 가장 나쁜 사람이 있다면 마리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호더 가문의 가장 유일하고 가냘팠던 희망의 존재는 그녀였으리라. 그녀를 사랑하게 됐을때만 해도 옌스의 삶에도 희망이 보였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만, 옌스같은 사람을 사랑하기로 했다면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방식 말고 다른 길도 생각했어야 했다. 그저 어린 리우에게 몰래 편지를 좀 쓰는 것 같은 불확실하고 소극적인 방법말고.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어린 아이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마리아도 정도와 방향이 다른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일까 싶어진다. 침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살이 쪘다는 것은, 거기에도 어떤 이유가 있을테니까. 혹은 옌스의 외모는 둘째치더라도 섬에 들어와 그와 사랑에 빠진 일도 그녀 안에 어떤 '낌새'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짐작을 하게 한다.
솔직히 말한다면 존속살인같은 심각한 문제들도 있지만, 옌스를 대표하는 가장 큰 특징인 '저장강박증'은 좀 흔한 문제다.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나오지않는가. 그 특유의 나레이션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간 집안엔 발 디딜 틈이 없다. 세상에 어르신, 지내시기는 괜찮으신 거예요?"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리고 병적일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특히나 노인층에) 정도만 다를 뿐 흔한 저장강박을 가졌다. 쇼핑백이나 포장종이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것이나, 서랍안에 언젠가 쓸 일이 있을거라 기대하며 오래된 물건들을 넣어 두는 것처럼, 누구나 조금쯤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호더 가문의 '낌새'로 저장강박을 묘사할 때마다 속으로 '덴마크에서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이 없나봐' 생각했다. 아마 벌써부터 방송국에서 홀데트 섬으로 찾아갔을텐데 말이다.
"어둡고 악마적인 동시에 사랑스럽고 생명력이 가득한, 뇌리에 깊이 박히는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평에 혹해서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봤는데 어휴, 너무 더러워서 찾을 수가 없었다. 로엘이 호기심과 또 묘령의 소년을 위해 호더 가문이 살고 있는 그 집에서 버틴 것이- 이층까지 올라갈 결심을 한 것이 대단할 정도로 더럽고 역겨운 환경이었다. 이런 비슷한 느낌으로 편해영 작가의 '사육장 쪽으로' 라는 책이 떠올랐다. '송진'이 흥미로웠다면 이 책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방향성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비슷한 것 같다. 로엘이 혹 아동성애자는 아닐까 의심하는 시간도 있었다. 예민함과 또 생각 이상의 호기심과 관용이 그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방향으로까지 전개되지 않아서 찝찝함을 좀 덜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 남아 있지만 때로 시간이 문제인 결말도 있다. 리우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계속해서 염려하며 책을 덮었다.
|
|
송진 살짝 특이하고 처음보는 조합의 소설 덴마크 작가 + 스칸다나비아 서스펜스/범죄소설 + 어린 소녀 시점 + 남다른 가족사 + 블랙코미디(?) 찰리 채플린이 그랬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의 설정은 흡사 세상에 이런일이,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탐사추척 프로그램의 소재같다. 좁다란 땅을 통해 큰 섬에 이어져 있는 작은 섬 홀데트, 목수인 아버지 옌스 호더, 옌스의 딸 리우, 울타리가 쳐진 농장과 작업실이 있고 자그마한 숲도 딸려 있는 이 집은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기 딱 좋은 설정이다. 리우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부모는 사망신고를 해논 상태이다. 아버지는 일종의 정신병 증상 같이 온갖 고물과 잡동사니들ㅇㄹ 집에 쌓아 둔다. 2층 침실에서 누워 지내는 엄마는 초고도 비만이라 침대에 누워지내며 말도 못하게 되었다.
책의 첫 페이지에 아버지가 할머니를 살해한 이야기가 나오고 중간중간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삽입되어 이 괴상한 스토리의 힌트를 준다.
책의 제목 송진에 대해 언급한 대목도 있다. 송진이란건 신기한 거라고 외부의 자극이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상처를 치료할 뿐만 아니라 작은 크기의 죽은 동물들을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보존한다.
아빠는 아들 카알을 잃은 이후로 리우에 대한 집착이 커져 리우를 바깥 세상에 내보내려 하지 않는다. 리우의 사망신고를 한 것은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딸 리우의 시각으로 아빠의 이상한 생각과 행동들이 서사되고 이 소설을 읽는 과정은 왜 저 가족은 저런 상황인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멀쩡했던 청년이었던 아버지 옌스가 왜 이렇게 기괴한 사람이 되었는지, 왜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살아 있는 딸 리우를 컨테이너에 숨어 살게 하고, 태어나자마자 죽은 딸을 송진으로 방부 처리해 컨테이너에 보관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엄마의 편지 중 중요한 대목 엄마는 말이야, 우리 가족의 삶을 동화 같다고 해야 할지, 공포물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쩌면 양쪽 다일 것 같지 않니? 다만 바람이 있다면 너만큼은 동화 같은 삶이라고 생각해줬으면 한다는 거야. |
|
첫 한문장이 강렬했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죽이셨을때... 라고 아무렇치(?) 않은 느낌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니, 아 이거 막장에 의한 막장을 위한 뭐 그렇고 그런 소설이구나.. 라는 느낌. 심지어 책 글씨도 빽빽해서 읽기 버겁겠다는 생각을 먼저 한 책. 근데, 읽어갈 수록 뭐랄까...... 이 범죄집단(?) 소녀의 집안이 어느정도 왜 이해가 되면서 불쌍해 지기 까지 할까? 사실 북유럽 소설은 그리 자주 접할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느낌도 좀 생경해서 호기심이 강하게 다가왔을 때 책을 들었는데, 첫부분 진도가 안나가서 좀 고생을 할려나보다 했는데, 읽어 볼 수록 이 기이한 집안에 대한 호기심이 동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책장 넘기는 속도가 꽤 빨라 졌었다. 왜 빨리 안 읽었나 몰라.
<송진> 이란 책 제목은 말 그대로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액. 그 액을 받아서 정확하게 어디 쓰는지 모르지만 예전 저장고나 그런 것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는 썩지 않기위해 덧 바르는 식으로 쓰지 않았나 싶다. 미이라 제조 얘기에 나오는 거 보니..... 우리나라는 식기에 혹여 발랐나? 이래저래 지식이 짧다보니 언뜻 들은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고.... 이 책에서 의미하는 송진은 가족의 지킴, 보존에 대한 것일까? 그들만의 사랑에 대한 것일까? 혹은 추억에 대한 것일까? 줄거리를 요약하기도 꽤 쉽지 않은 이야기가 촘촘한 책이었다. 본도 큰 섬이 있고, 거기 외따로 떨어진 한 작은 섬. 마치 전세낸 듯 그들 한 가족이 사는 곳. 어릴적에는 솜씨 좋은 아버지로 인해 꽤 소문이 자자해 여러가구들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도 많았고, 크리스마스 트리등도 특이하게 만들어서 파는 등 잘 살지는 못해도 나름 오손도손 살았던 가족. 특히나 아버지는 관을 잘 만들었다. (우리나라말로는 짰다고 해야하는건가.) 그리고 아버지는 그 관에 둘째 아들과 들어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좋아했다. 큰 아들은 사업적 성격이 강하고 활발했지만 숲을 살아하고 조용한 둘째 아들은 또 그 나름대로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 후, 이러저러한 일들도 둘째 아들이 그 섬에 살게되고 결혼을 하게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는 섬.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 되었고, 쓰레기더미가 된 집과 너무 뚱뚱해져 버린 엄마, 그리고 밤마다 마실을 나가 필요 물건을 가져오는 부녀의 삶. 그건 명백히 방임이고 범죄이며, 살인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들에게 잘 못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을 간섭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 그곳은 그야말로 그들이 아니면 무인도라도 해도 좋을만큼 그들만의 리그였으니까.... 그속에서 자라는 소녀는 당연히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고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보다 그 적응력에 그저 놀라울뿐...
뭔가 일이 일어날 듯 하면서도 자연스레 흘러가 버리는 시간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는 정상적인 사람(?)으로써 둘째아들, 즉 그 아이의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롯이 자기들만의 세상이 되었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는 소통하는 법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배우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 속에서 자신은 행복하다고 그리고 자신의 가족들 역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니....... 어떤것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도 없는 그런 삶속에서 끔찍하게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아빠는 그렇다쳐도 아이는... 아이는 왜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읽으면서 치를 떨었고, 어떤것이 사랑이라는 것인지 다시 또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떤 글로 표현 할 수 없는 느낌의 책이라고 해야하나... 일단 이해 안되는 가족이고 아빠이지만 왠지 또 그렇게 이해가 안되지도 않는 이상한 가족의 이야기였던 책이다.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묵직한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
|
커다란 본도 너머에 있는 작은 섬 홀데트에 사는 호더 가족. 솜씨 좋은 목수였던 아버지 실라스 아래에서 형제 모웬스와 옌스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와의 교감으로 충만했던 막내아들 옌스는 어린 시절 누구보다 잘 생기고 총명한 아이였지만 예기치 않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삶에 균열을 느낀다. 그 후 자신의 삶에 들어온 것은 '그 무엇이라도, 그 누구라도' 그를 떠나서는 안됐다. 물건들을 원상태 그대로 보관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옌스는 자신의 관리 하에 들어온 모든 물건들에 끈끈한 유대감을 느꼈고, 누군가 그 관계를 깨려 들 때마다 두려움마저 느꼈다. 가족도 예외는 될 수 없었다. 마리아와 결혼한 후 얻은 쌍둥이 남매 중 아들을 사고로 잃은 후 어린 딸 리우에게는 평범한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생활을 보내도록 해왔다. 동물 가죽을 벗기는 법, 덫을 놓는 법, 숲에서 길을 찾는 법, 그리고 밤에 조용히 눈에 띄지 않고 움직이는 법.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기묘하고도 섬뜩하게 가족을 보호하려는 남자,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소녀의 시선에서 꾸밈없이 드러낸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빠가 할머니를 살해하던 날, 하얀 방은 완전 깜깜했다'라는 충격적인 첫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자발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이어나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가족 안에 내재되어 있는 단절, 방치, 왜곡된 사랑, 정신분열, 저장강박증, 절도, 살인, 은폐 등의 이야기가 어둡고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한 소녀의 시각에서 서술되면서, 글을 읽어내려가면 뒤따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느 정도 반감시켜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 어른의 시선에서 보면 당연히 잘못되었고 굉장히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이 리우의 입장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그래왔고 다른 환경을 접할 기회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시작은 옌스가 그토록 사랑했고 교감했던 아버지 실라스를 갑자기 잃은 충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죽음 이전에는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삶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추억과 감정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를 잃음으로써 비틀어져버린 것이다. 거기에서 비롯된, '자신의 것'으로 인식된 그 무엇도 잃고 싶지 않다는 강박증이 가족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친 것인데, 이것이 그 동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여겨지는 나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건 그냥 범죄. 리우를 자신과 아내에게서 떨어트려 놓으려 했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밤이 되면 리우와 함께 다른 가게나 집에 있는 물건을 몰래 가져온다. '사회'가 더 이상 자신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리우의 사망신고를 위조하고, 아이에게는 그 어떤 교육이나 좋은 것들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접하지 못하게 한다.
의문스러운 것은 평범하고 이지적이었던 옌스의 아내 마리아가 어떻게 '그 지경'까지 갈 수 있었는가다. 쌍둥이 남매를 출산하고 얼마 후 아들을 사고로 잃었고, 그 후 옌스의 의견이나 주장에 동조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데 작품 안에 드러난 그녀의 편지글이나 서술로는 그 간의 과정을 알 수 없어 조금 답답했다. 아들을 잃은 고통과 슬픔은 정말 십분 이해하지만 남아있는 딸 리우를 위해 다른 방법을 찾을 생각을 전혀 못했나. 마리아라는 인물은 리우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장치인 동시에, 리우를 옌스 집안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함정이다.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서술되었다는 점 때문인지 계속 리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조용하고도 기괴한, 마음을 옥죄어오는 듯한 불안감과 정체모를 두려움. 옮긴이는 작품을 따라가다보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고 있는 저자의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다고 했는데, 이건 독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는 한 남자의 광기와 어긋난 사랑이 어떤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스릴러 소설로 다가왔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헉!'하고 숨을 들이쉬었는데, 소설임에도 리우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궁금하고 걱정됐다. 부디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는 말기를, 그 광기를 제발 잊어주기를 바라게 된다. 독특하면서 언짢은 소설. 그런데도 읽기가 멈춰지지 않는 작품.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 지 궁금하다 |
|
왠지 몰라도 함께 있으니 더 좋은 것 같았다. 우리 셋이 함께. 쌍둥이 남자 형제랑 여동생, 그리고 나. 모두 죽은 사람들끼리. 단, 셋 중에 사망신고가 된 건 나 하나였다. p.206
리우는 본도(本島)에서 떨어진 작은 섬 홀데트에서 엄마, 아빠와 살고 있다. 리우에게만 보이는 쌍둥이 카알과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빠가 죽인 할머니를 제외하고 말이다. 섬에는 리우네 가족만 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들을 간섭하거나 방해할 수 없었고, 우체부를 제외하면 방문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할머니의 죽음이 본도로 알려질 일도 전혀 없었다.
리우는 밤에 아빠를 따라 픽업트럭을 타고 본도로 가서 물건을 구해온다. 뒷문이나 창고 문을 잠그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부녀는 많은 물건을 쉽게 훔칠 수 있었다. 그리고 리우는 나이가 들면서 아빠만큼 그 일을 잘하게 됐고, 때로는 작은 체구를 이용해 쉽게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빠가 점점 집 밖을 나가지 않게 되자, 나중엔 리우 혼자 다녀오기도 한다. 그렇게 가져온 물건들은 모두 집안과 밖에 잔뜩 쌓아두고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쓰러뜨리지 않게 잘 피해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가지고 온 음식은 엄마가 대부분 먹어서 그런지 엄마는 점점 살이 쪄서 나중엔 침대를 벗어날 수조차 없게 된다.
홀데트는 리우의 아빠 옌스가 태어난 곳이었다. 그곳에서 옌스의 아버지 실라스와 어머니 엘세, 그리고 형 모웬스와 화목하게 살았었다. 성실하고 솜씨 좋은 목수인 실라스가 아들들에게 나무와 관련된 모든 일을 가르쳐 사업을 이끌 정도로 성장했을 때, 갑자기 번개에 맞아 사망했다.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했던 옌스는 절망한 나머지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학교에도 가지 않으며 됐고, 장남 모웬스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끌었다. 그리고 어머니 엘세는 갑자기 떠난 남편 때문인지 두 아들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모웬스는 홀데트를 훌쩍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며 매달 편지로 돈만 보냈다. 엘세가 나이가 들고 병이 나서 더 이상 집안일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가사도우미로 섬에 오게 된 사람이 리우의 엄마 마리아였다. 옌스와 마리아가 깊은 관계가 되면서 엘세는 그녀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아기가 생겼기 때문에 급하게 결혼을 하게 된다.
아직 어린 리우의 시점으로 시작되어 아빠 옌스의 과거와 가족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어진 게 소설의 초반이었다. 화목했던 옌스의 가족이 아버지의 사망 이후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해체되고 변하게 되어 그다음 세대인 리우에게는 어떠한 형태로 전달되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엄마는 말이야, 우리 가족의 삶을 동화 같다고 해야 할지, 공포물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쩌면 양쪽 다일 것 같지 않니? 다만 바람이 있다면 너만큼은 동화 같은 삶이라고 생각해줬으면 한다는 거야. p.21
송진은 옌스 호더를 매혹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치유와 보호, 보존의 기능. 하지만 동시에 살상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p.102
아버지의 부재가 옌스에게 미친 영향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만약 엄마가 옌스에게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더라면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 말이 많지 않았던 옌스를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옌스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게 되고, 밖으로 통하는 출구가 되어줬을 수도 있는 마리아마저도 홀데트에 눌러앉게 되면서 리우도 여느 아이들과는 다르게 생존 중심의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것은 못해줄망정 친구 하나 없이 위험한 곳에서 혼자 놀게 하면서 집 안팎에는 온갖 잡동사니를 쌓아두고 제대로 먹지 못하며, 나중엔 학교에 보내지 않기 위해 거짓 사망 사건까지 만들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옌스는 원래 홀데트에서 살았으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마리아마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리우의 쌍둥이 형제 카알의 사망으로 몸도 마음도 망가져버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
리우와 옌스의 과거를 오가며 진행되던 소설은 어느 순간 본도에 있는 펍을 물려받은 로엘의 시점이 등장하면서 그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리우의 문제가 해결되는 모습이 완전히 다를 수 있었는데, 다행히 그는 분노보다는 연민의 감정을 먼저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리우의 미래에 희망이 엿보였다. 하지만 해결되는 과정은 로엘을 힘들게 했고 리우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리고 결국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끝을 맺고야 말았다. 리우의 미래를 생각하면 잘 된 일일지도 모르지만, 정서적인 면에서는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덴마크 출신 작가의 북유럽 소설이라 하여 여태 읽어본 스릴러 소설처럼 차갑디 차가운 내용일 거라 예상했지만, 아이의 시점을 주로 보여주고 있어서 그런지 천진난만한 순수함이 돋보였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여태 지켜본 아빠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엔 상당히 섬뜩했다. 그 행동이 마치 옌스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아이는 평범하게 키우는 게 제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