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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 보면, 우리가 주님을 만나려고 노력만 한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얼마나 만나기를 소원하는가의 절실함의 문제와 그분과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는 죄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노력하지만, 정말로 그 주님을 간절히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만나도 되고 안 만나도 되지만, 만나면 더 좋을 것 같기에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성경은 그 사람들을 무리라고 표현합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경험되기를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더 큰 기대와 더 큰 욕망을 가지고 예수를 좋았기에 예수님이 원하는 데로 그들이 삶이 바뀌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중의 몇몇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동조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구경꾼으로 전락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 당시의 무리들처럼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간절히 예수님을 초청하지 않는 마음과 그 자세 자체가 죄로 물든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원래 창조되어질 때부터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날 때 가장 행복하고 의미를 찾으며 목적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하고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간절히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돕지 않으셔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통과 고난 속에서 왜 그렇게 간절히 찾아야만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지 순종할 자세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에도 그들이 고난 속에서 430년간 부르지 않았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찾았을 때 그들을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고통의 강을 건너고 외로운 산을 넘었을 때 비로소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강과 외로운 산을 건너야 함은 우리의 고집과 죄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온전히 포기하고 그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매어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매어달릴 때 여지없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당한 어려움과 문제들은 예수님을 깊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때때로 ‘고통과 외로운 강을 건어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이십니다. -고통의 강과 외로운 산을 넘어 만나는 예수- 중에서
최근의 방송과 설교의 트랜드가 '힐링'이라고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고통과 상처를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본다. 공전의 히트를 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제목도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고통의 문제는 아주 방대하고 해석도 여러가지 이지만, 그 해석들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바로 회복을 위한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그 회복은 바로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자인 하도균교수는 전도의 현장과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현장등 이론과 실제를 소유한 보기드문 학자이며 전도자이다.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헌신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부족함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