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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 시작하기 현재의 자본주의가 처한 한계점에 대한 대안 논의가 이 책의 주 목적이다. 요즘 보고 있는 책의 주종이 이 내용이다.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딱 지금 이 시점에 희망보다는 우울함, 암울함을 떠올리는 경제 단어인 불황, 공황이 전망되고 있는 이 시점에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세계금융 위기 및 경제위기를 통해 실패한 것으로 입증된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소개한다. 그 대안이란, 자본주의를
제어함으로써 다시 인간을 위해 기능하는 경제를 만들어내고, 노동력이 단지 대기업과 금융산업의 이윤극대화를
위해서만 투입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민주화되어야
하며, 기회의 균등과 연대성을 바탕으로 공존하기 위하여 사회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프리드리히에버트 재단이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며…]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개의 문구로 집약하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와 ‘아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르는걸 모른다고 하는게 참으로 아는 것이다’이다. 책
앞부분에서 저자들이 반영했다고 말하는 두 개의 포인트가 결론적으로 얼만큼 실행력있고 대다수에게서 동의(지지)받을 것인지에 대해서 강한 의문이 든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비판 또한 받았다. 두가지 주된 비판이 있었은데, 괜찮은
경제체제라면 피룻적으로 갖추어야 할 두가지 특징에 우리가 너무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경제성장 일반의 문제였으며, 또 하나는 특히 ‘어떠한 경제
성장인가?’라는 문제였다…지금 경제성장이라는 주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지구 온난화, 전
지구적 경제침체, 국경을 초월하는 경쟁의 심화 등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사회적 생태적 안전과 국가 간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를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복잡한 임무에 착수해, 전 지구적 요구와 일국적 차원의 여러 역량을 모종의 현실적 장치 속에 결합함으로써
그 모순 중 얼마간을 해소할 수 있는 성장 활로의 청사진을 고안하려고 노력하였다]
경제위기의 원인 최근 위기는 금융이라는 특정 영역에 한정하기에는 포괄적이고 그 주된 원인은 국가내부/ 국가간 거대한 불균형으로 인식한다. [지금 경제의 불안정성은 금융과
관련되어 있지만, 금융체제의 불안정성이라는 협소한 문제를 넘어서는 최소한 두 가지 다른 차원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각국 경제 내부의 여러 다른 부문들 사이의
불균형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둘째, 국제적 불균형 또한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치솟아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예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중국, 독일, 일본이 경상수지 흑자를 생각해보라. 이러한 두가지 불안정성 말고도 지난 몇 십년간 진행되어 온 시장자유주의의 세계화로 인해 소득과 임금의 불평등이
벌어져, 그 결과 지난날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야만적
자본주의의 시대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 배경으로는
1970년대 석유파동 속에서 독일과 일본의 생산성 향상과 199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의
생산성 향상, 그리고 상대적으로 고정비용이 높은 미국의 생산구조를 원인으로 삼아야겠다. 우리나라도 최근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정치권에서 대두되고 있다. 이
추상적인 말은 다시 말하면 평등의 문제이다. [불평등의 증대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여러 사회 사이에 또 그 내부에 부당하다라는 정서가 촉발되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다. 이는 사회적 신분 이동의 가능성을 가로막고, 사회의 건강은 물론 나아가 생산성에까지 부정적인 충격을 가한다…한
사회 내에서 누구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도 있고 사회적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인제 사실상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사회 내의 신분 상승을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곳은 불평등이 큰 영국이나 미국의 자본주의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평등지수가 더 높은 스칸디나비아의 북유럽 나라들이다. 이는 자본주의를 재구상하는
데 중요한 혜안을 가져다주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에는 또 다른 문제들도 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천연자원은 제한되어 있다는 부동의 사실과 생태적
난제들을 도외시한, 대단히 독특한 종류의 기술과 생산과 소비를 증대시켰다.]
위기에 대한 분석 칼 폴라니는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하였다. 비록 시장이
경제와 사회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토지, 노동,
화폐 만큼은 엄격한 규제하에 묶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노동시장, 금융시장, 환경의 순환 과정들은 모두 그가 쓴 표현대로 악마의 맷돌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르티아 센도 비슷한 관점을 피력하면서 시장이 자유의 원천이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열매를 맺을 수 있으려면 한편으로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보장하는 제도와 규제들이 존재하는 한편 시장의 행위자들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줄 물질적인 필수조건들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 정부가 제공하는 틀 없이도
시장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미망을 내버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의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주의 황금시대가 무너진 이유는, 당시의 모든 조류의 좌파 정치운동
세력 가운데 어느 누구도 전통적인 제도들을 경제적 안정성과 양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지면서 이미 시장자유주의적 변화로 향하는 길이 닦여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시장자유주의로의 전환이 실제로 나타난 것은 대처와 레이건의 선거 승리였다. 이 둘은 모두 낮은 물가인상률과 특히 근본적인 시장자유주의적 개혁에 전적으로 기초한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다시 말해, 60년대부터 심화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전통적 케인지안의
해결 방법이 무력화되고 서유럽에서의 노동운동의 신장 속에서 그동안 수세였던 보수세력은 이론적인 강화(신고전학파의
통화주의, 공급경제학)와 노동계의 권력 신장에 따른 혼란과
구심점 약화 등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 그 틈을 넓히고 거기에 자신들의 이론과 권력을 유효적절하게 퍼부었고 이는 아주 강력하게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시장자유주의가 내놓은
의제를 보자. 한편으로는 금융부문, 노동시장, 기업 문화에 대한 깊숙한 개입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전에 공공의 책임으로 여겨졌던 영역들을 사유화하는 것을
양대 축으로 삼는 일련의 구조조정을 아우르고 있다. 규제완화 그리고 금융시장의 역할 확대 등은 기업
경영의 개념에 대한 변화와 깊게 결부되어 있다. 또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규제를
더욱 완화했을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자유무역체제를 창출하기도 하였다. 노동시장에서는 노동조합의 약화를
목적으로 규제완화 조치가 단행되었고 이와 나란히 국유기업들이 사유화됐고 여기에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던 회사들도 포함됐다. 마지막으로 복지국가에는 지극히 해로운 요소들이 있다는 주장이 유포되었고 그런 비난의 대상이 된 요소들을 해체하는
작업이 개시되었다. 이 의제는 단지 미국과 영국에서만 열성적으로 추진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선 많은 다른 나라들 또한 이러한 의제를 현실에 실현하였다.] 그런 이유로 해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나타난다. [미국
부동산 거품이 꺼져가면서 부동산 대출 또한 점차 악성 부채가 되어갔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원인은
다른 모든 것들 이전에 부동산 금융의 경쟁 심화 때문이었으며, 이는 정상적인 은행 규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 각종 주택담보대출 금융기관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것에서 그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월스트리트의 투자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유동화증권과 부채담보부증권을 구매함으로써 이 회사들에 대한 재융자를 보장해주었다. 앞에서 말한 독특한 위험관리모델과 회계원칙들 때문에 신용은 엄청난 크기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 자산 거품의 시기에 부동산 가격이 장기간 심지어 영원히 올라갈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적이었던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다가 초기의 이자율을 낮춰준다던가 상환의 시작 시점을 미루어 준다든가 하는 온갖
종류의 유인책들이 덧붙여지면서 미국의 가계들은 부동산 대출에 더욱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게 되었다. 자기
스스로의 자본과 담보는 전혀 요구되지 않았다.] 지나간 상황을 되돌아보면 매우 단순하다. 규제, 통제, Governance등이 자기의 이익극대화라는 탐욕에 대한
방어 기제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다. 그럼 왜 우리는 자꾸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수많은 투기 역사는 20세기 이전에도 이미 발생했고, 그 사기 내용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돌이켜보면 말도 안되지만 그게 유용한 정보로서 통용되는 그 시점이 분명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기행각의 규모가 커질수록 거기에 빌붙어 먹고 살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고, 어느 순간인가 이게 아니다 싶어도 나 혼자 되돌릴 상황이 못된다고 판단하거나
망해도 다 같이 망한다는 식의 논리로 사람들을 탐욕에 빠진 미치광이로 만들어버린다. 다시 저자들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금융시장의 체제 위기가 멈춰지지 않은 이유 분석을 살펴 보자 [첫째, 그림자 은행 체제의 여러 제도들은 규제가 덜한 한편 위험에
대한 지향성이 높다. 헤지펀드, 투자은행, 그밖의 여러 공격적 투자가들은 전통적인 은행들보다 더 큰 위험부담을 지는 기관들이다…둘째, 또한 전통적인 은행체제에서도 체제 위기의 위험이 커졌다. 비교적 규제를 많이 받는 상업은행들도 이 그림자 은행 체제와 긴밀하게 하나로 엮여 있었기 때문이다. 상업은행들은 자본 충족 요건을 회피하기 위해 특수목적회사들을 세웠으며, 그렇기
때문에 서브프라임 위기가 터지자 상업은행들 또한 자기들의 특수목적회사들을 구하기 위해 금융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셋째, 은행들은 수익에만 혈안이 되어 움직였다. 자기자본수익율은 25%를 표준으로 하며, 이것이 시장이 기대하는 바이기 때문이라는 도이치방크의 선언이다…넷째, 국제적 자본이동은 자유화되고 일국 금융시장은 규제가 완화되면서 금융체제 내부의 경쟁 압력이 극적으로 증가하였다… 다섯 번째 측면은, 바젤 II라는
은행감독시스템 그리고 공정가치회계의 새로운 역할을 통하여 은행을 규제하게 되면서 그 결과로 금융시장의 기능과 등락이 경기순환의 방향과 일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세계금융체제와 통화의 추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한 나라의 금융체제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책의 큰 가치라고 한다면, 그동안 당연시해온 ‘주주가치 극대화’의 반성과 비판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무비판적으로, 경영에 있어서는 일종의 이념이나 종교처럼 생각했던 이 단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주주가치는 특히 앵글로 색슨 식의 경영개념으로서
래퍼포트가 ‘주주가치의 창출: 사업 실적의 새로운 기준’에서 만든 말이다. 이 개념은
1980년대 미국에서 인수 합병 붐이 지속되는 기간에 적대적 기업인수로부터 자기 회사를 보호해야 할 필요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회사의 시가총액을 증대시키고 경영을 오로지 주주들의 이익에만 복무하도록 종속시키는 것을 방법으로 택하고 있다. 이는 주주들의 투자에 대한 평균 이상의 수익을 제공해야 하는 사업 경영의 틀이다. 경영진은 오로지 주주들에게만 책임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곧 그 회사의 주가를 같은 부문 경쟁사들의 주가와 비교하는
것을 경영 성패의 척도로 삼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인센티브 구조로서 경영진은
보수의 일부로 스톡옵션과 이윤에 기초한 보너스를 지급받게 된다. 주주가치 자본주의는 경영자들을 대단히
부자로 만들어 주었으며 동시에 이들을 기업 가치를 올리라는 끊임없는 압박 상태로 몰아넣었다.] [주주가치라는
원리의 발전은 노동조건에 있어서도 탄력성을 더욱 심화하는 방향으로 가져왔으며, 기업 조직의 특정한 기능을
다른 회사들로 아웃소싱 해버리거나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단일한 기업 내부에서
수행중인 기능을 따로따로 넘겨받은 회사들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것 a라고는
다른 기반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같은 선상에서 효율적 기대가설과 같은 식으로 인간 이성에 대한 기대수준 극대화를 가장한 교묘한 (유사) 사기 이론에 대해서도 케인즈의 주장을 바탕으로 반박 이론이
나온다. [케인즈의 방향을 따라가보면, 각종 자산 시장은
그저 기대와 예측에 의해 추동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그러한 기대와 예측이 어떤 식으로든 기초여건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는 가정 따위는 하지 않게 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기초여건에 대한 정보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뚜렷이 정하기도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할 뿐더러, 설령
정한다해도 경제행위자마다 그것들을 다르게 평가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기대와 예측이라는 것은
그 기초가 대단히 취약하고 위험한 것이다.] [이들(신용평가회사, 금융규제당국)은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가정, 그리고 금융시장의 체제위기는 점점 더 복잡한 수학적 위험관리모델들의 도움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해
움직였다. 그림자 은행 체제, 즉 정규 은행체제 뒤에서 작동하면서
거래를 수행하는, 규제없는 은행 체제가 허용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 근본적으로 안정적이라는 명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최근 몇십 년간 규제를 바라보는
지배적 관점은 위험계산모델을 통하여 체제 위기까지 포착하여 회피하는 게 가능하다는 그릇된 믿음에 기초하고 있었다.
미시경제적 단위들을 분석하여 그 결과를 그대로 전체 경제에 외삽할 수 있다는 가정은 경제학의 기본적 원리들과 배치되는 것이다. 미시경제 위험관리모델은 한마디로 체제위기를 포착할 수가 없다.] 통제되지 않고 날뛰던 탐욕과 이기심의 경제체제에 대해서, 위기가
발생하고 심화되면서 각국은 대응책을 마련하고 규제에 들어간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고, 대응이란 결국 국가 구성원의 부담으로 귀결지어진다. [하지만 이
모든 조치(각국 정부의 경제 위기 대처)에는 하나의 공통적인
결점이 있었다. 경기부양 패키지를 실행하든 아니면 금융체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은행들을 살려주든 어느
쪽이나 우선 정부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전 세계 경제 활동의 거친 하락은
정부의 세금 수입에도 큰 타격을 주었기 때문에 정부의 예산에 더 구멍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세계경제가 1930년대에 견줄 만한 심각한 공황으로 빠져드는 것도 큰 비용을 초래하겠지만,
이런 사태를 피해가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경제체제가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졌다, (케인즈 식으로 말하면) 지금까지의 경제 연속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엄청나게 증폭되어진 것이다.
개선의 방향성 그렇다면 새로운 경제 모델이 가져야 할 방향추는 어디로 놓여져야 할까? 저자들의 견해는, 조금 망막하긴 하지만 분명 방향은 정해져 있다. [첫째, 이 모델은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해야 한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고 에너지의 기초를 재생에너지 쪽으로 돌려야 하며, 그
밖에도 생태다양성의 감소와 같은 여러 문제적인 상황 전개를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이 모델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한 성장 과정이 자산시장 인플레이션 혹은 뒤따라오는 디플레이션으로 위협받지 않으면서도, 개별 부문들이나 전체 경제에 과도한 채무를 지게 해 필연적으로 또 다른 위기를 발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이 모델은 혁신을 장려해야 하며 따라서 생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술발전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노동생산성을 올리고 또 만인의 물질적 번영가능성을 증대시키는 기술발전 또한 장려해야 한다.
셋째,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인구 집단들이 사회 진보에 참여하고 또 그 혜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소비, 생산 등 경제 활동에 대한
중간자의 개입과 통제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경제와 사회 전체의 이익이라는 견지에서 소비수요와 투자수요에
대한 장악을 조화되게 조정하는 일이다. 부채가 계속 증가하는 위험한 경향을 발생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만족할 만한 수요 증가를 꾸준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일정한 틀을 강제해야 할 뿐 아니라 경제에 개입해야만 한다] 마치 주나라로 돌아가려는 과거 유학자들을 떠올린다. [2차
대전 이후의 규제된 자본주의가 성공을 거두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는 소득증대와 비교적 평등한 소득 분배를 통해 노동자들의 집단적 구매력을 증가시킨
데 있다. 이제 그 옛날 모델을 다시 혁신적으로 재생시켜야 함이 분명해지고 있다] 자본주의가 창출한 소득 불균형, 실업의 문제는 노동시장
자체가 갖는 문제라기 보다는 수요 측면에서 찾고 있는 케인즈의 견해에 의존한다. [우리는 높은 실업
그리고 이에 충분히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원인은 다른 무엇보다도 재화시장의 수요 문제에 있다고 본다. 시장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결과, 노동시장에는 장기적으로 긴장이 계속될 위험이 존재한다.]
마무리: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도 준비 저자들은 지금의 위기가 불황, 공황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있고 만약 최악의 시나리오가 온다고 했을 때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논의한다. [공황과
위기는 더 급진적 변화의 기회를 받아들이는 창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사실상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확산돼왔던 모든 교조들과 이해관계들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해준다. 또 한걸음
물러서서 지난 몇십 년간 우리의 경제 체제가 이렇게 많은 점에서 심한 결함을 안게 되었는지를 깊이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많은 이들이 시장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삶의 질이 악화되고 말았다. 많은
이들의 삶이 더욱 불안정해지고 또 많은 이들이 사회적으로 배제됐다. 일자리와 사회보장제도는 갈수록 금융시장의
숱한 광풍에 노출되었고, 경제위기와 이로 말미암은 새로운 경영방식들은 사람들의 직장생활과 삶 자체를
날로 더 심하게 헝클어놓고 말았다. 이는 도덕적으로도 심히 모욕적인 일이지만, 이 책에서 우리가 제시하는 것처럼 경제적으로 보아도 생산성을 심각하게 망치는 일이다. 사회구성원의 대부분이 날로 극심해지고 통제가 불가능해지는 시장의 변덕에 제 목숨이 걸려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 수는 또 날로 더욱 늘어나고 있다. 사회의 응집력은 사람들의
뜨뜻미지근한 무관심과 가중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위태로워졌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모든 수준에서 세계화를 더 잘 규제하자는 것은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상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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