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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만나는 세월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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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작가의 글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연이어 떠오르는 작가들이 있다. 박완서 작가와 강인숙 작가의 글이 내게는 그러하다. 박완서 작가의 글에 대한 문학 평론, 아마도 그 글이 강인숙 작가와의 첫 만남이었던 것 같다. 이후 간간히 그녀의 글에서 따뜻하게 안부 전해주 듯 만났던 문인들의 흔적들, 그리고 올 봄에 영인문학관에서 있었던 '박완서 1주기 추모전' 등은 두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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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작가의 글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연이어 떠오르는 작가들이 있다.

박완서 작가와 강인숙 작가의 글이 내게는 그러하다.

박완서 작가의 글에 대한 문학 평론, 아마도 그 글이 강인숙 작가와의 첫 만남이었던 것 같다. 이후 간간히 그녀의 글에서 따뜻하게 안부 전해주 듯 만났던 문인들의 흔적들, 그리고 올 봄에 영인문학관에서 있었던 '박완서 1주기 추모전' 등은 두 작가의 오랜 글과 관계를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던 것 같다.

이렇듯 동시대에 좋은 작가와 평론가의 글을 만날 수 있는 감동은 늘 깊이 다가온다.

 

이번에 강인숙 작가의 '문명 기행, 내 안의 이집트' 신간 소식을 들으니, 반가운 마음과 함께 예전 박완서 작가의 '모독(冒瀆)'이란 책이 생각났다. 티베트, 네팔 기행기였던 '모독'은 그곳 소수민족의 삶의 모습과 문화를 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담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삶의 연륜 속에서 빚어내는, 사람과 문명에 대한 노 작가의 시선은 깊은 울림으로 전해온다.

 

'내 안의 이집트'를 읽는 내내 어떤 풍경들이 오버랩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물론, 책의 성격도 다소 차이가 있고, 다른 공간, 역사, 문명, 풍경을 담아내고 있지만, 그곳의 땅을 밟으며 닿는 작가의 눈 길이 순간 순간 마음에 겹쳐지는 것 같았다. 낙타의 모습을 보며 사막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생애를 되새겨 보고, 거센 모래 바람 속에서 긴 세월을 지켜온 고대 이집트문명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한 자 한 자 마음에 새겨지는 것 같았다. 

 

작가의 이집트 여정은 1977년 워싱턴의 '킹 텃' 전시장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이집트 예술품에 매료되어 종일 전시장을 떠나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이 상상 속에서 아른거린다. 아마도 그 시간이 이집트 여정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작가는 오랜 시간이 지난 2008년 12월 8일, 이집트 땅을 밟는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시선을 통해, 이집트 예술의 미학을 다시 발견하는 즐거움도 컸다. 특히, 이집트의 아마르나 예술에 대한 작가의 글은 더없이 반가웠다. 한동안 나를 매료시켰던 아마르나 예술은 기존 이집트 양식과는 다른 미학적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전통적인 이집트 예술에서 나타나는 획일화되고 양식화된 조각이나 그림에 비해 사실적이고 개성적인 양식의 아마르나 예술은 투탕카멘의 부장품 곳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작가가 들려주는 아마르나 예술은 그러한 예술의 시발점이 되었던 곳으로 안내한다. 다신교인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일신교를 주장했던 파라오 아크나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당대 외면받았던 수많은 개혁 속에서 홀연히 빛난 아마르나 예술의 정수에 이른다.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이집트 예술은 대부분 종교와 연관되어 있다. 장제문화가 발달한 것도 이런 영향이 미친 것이다. 죽은 자의 영혼이 환생하여 몸으로 돌아올 것을 생각한 이집트 인들은 육신을 보존하기 위해 미라를 만들었다. 미라와 함께 있는 아름다운 부장품 또한 그들의 재생과 영생을 위한 것이었다. 신성문자 또한 신들만을 위한 신성한 글자였다.

 

작가의 이집트 문명 기행을 따라가다보면, 이러한 종교적인 관념을 중요시 여기는 고대 이집트인의 환경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들은 사막이라는 황량한 환경 속에서 시체가 풍화되어 사라져 버리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시신을 보호하기 위해, 미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 자연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이집트 인들은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연과 함께 어울어지며 고도의 문명을 이어갔다. 고대 이집트의 구조물들이 오랜 세월의 지켜온 것도, 오랫동안 적의 침입 없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사막의 모래바람 덕분이었다. 그들은 그 환경 속에서 고도의 문명을 발전시킨 것이다.

 

'내 안의 이집트'는 제목에서 처럼, 이집트 문명 기행에 좀더 가깝다. 작가는 이집트에서 돌아온 후 4년 간, 이집트 관련 자료를 구해 보며 이집트문명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이집트에 대한 작가의 오랜 시간이 깃들어져서인지, 읽으면서 글의 중간 중간 눈길이 오래 머물러 있었다. 더불어 작가가 나일 강 크루즈를 하며 바라본 하늘의 정경과 사막에서 보낸 밤은 그곳으로 향하고 싶은 내 마음을 더 달아오르게 했다. 

 

책을 덮기 아쉬워, 접어놓은 페이지 몇 곳을 다시 펴본다.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공간과 그녀의 문장들. 

 

"올드 카이로 지역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예스러운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많았고, 여인들의 의상도 이슬람적이 아니다. 골목이 좁은 것도 현대의 카이로와는 차이가 나서 마치 고대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궁으로 다시 회귀한 것 같은 편안함, 모든 것이 느리고 조용하고 아늑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슬람 이전의 카이로를 본 느낌은 새로웠다."

 

이어서 떠오르는, 작가의 시선.

고대의 왕실 도서관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곳에 지어진 알렉산드리아 새 도서관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오랜 세월을 견뎌낸 숭고한 땅으로, 작가의 여정 속으로 다가가 머물게 한다. 

 

"새 도서관의 울트라 모던한 전면 벽에는 전 세계의 문자가 새겨져 있다. 세계의 문자들이 다 모여 그림을 이루고 있는 디자인이 삽상하다. 회색의 요철이 있는 네모난 칸이 무작위하게 수없이 이어져 있는 장대한 벽 속에서 우리 글자를 찾아본다. 전교생이 찍은 단체 사진에서 내 아이의 얼굴을 찾고 있는 기분이다. 동쪽 한 구석에서 '세'자를 찾았고 서쪽 벽면에서 '월'자를 찾아냈다. 누군가가 서투른 듯이 흘겨 쓴 그 글자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시간'이 아니고 '세월'이었다. 그래 '세월'이다. 시계 시간으로는 토막을 낼 수 없는 유구한 신화적 시간의 흐름, 이집트에 있는 것은 그것이다. 5천 년을 같은 양식으로 이어주는 위대한 문명의 끊이지 않는 숨결. 누군지 잘 선택했다."

     

세월... 행간 너머로 느껴지는, '세' '월' 이라는 말을 계속 읊조려 본다. 

k****i 2012.11.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