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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무비69》는 간첩잡으러 산을 뒤지고 다녔던 우리의 60년대를 추억하게 한다. 우리의 산 곳곳에 벽이며 바위나 다리교간 마을 입구 등에 '간첩신고는 113'과 같은 당시의 구호유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동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전단과 에이치아이디 북파공작원, 방첩대가 등장하며 우리를 그 시대로 데려간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전혀 무겁지 않다. 시종일관 문체는 익살을 잃지 않으며, 서글프고 힘겨운 시절을 웃음으로 기억하게 한다. 난 이책을 읽으면서 정말 깔깔깔 웃은듯하다 하지만 단순히 웃고 넘어갈 만한 내용의 작품은 또 아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바라본다면 그 뒤에 숨겨진 묵직한 의미들이 읽는 이의 가슴을 때린다. 그 중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간첩 체크 포인트’는 스무 항목 정도다. - 새벽이나 야간에 산에서 내려오거나 바닷가를 배회하는 자 - 계절과 유행에 맞지 않는 양복을 입고 다니는 자 - 자주 이사하거나 자주 변장하는 자 - 한밤중에 북괴 방송을 듣는 자 - 정부 시책을 은근히 비난하고 북괴를 지지, 찬양하는 자 - 동무, 쟁취, 호상 등 좌익 용어를 무의식 중에 사용하는 자 - 돈을 많이 써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자 하는 자 - 미화 또는 일화를 은닉하거나 바꾸는 자 - 남한의 물가 시세나 지리를 모르는 자 - 야간에 밥이나 식료품을 훔쳐 먹거나 훔치는 자 - 6․ 25 당시 행방불명됐다가 최근에 나타난 자 - 모자 밑까지 기른 머리 - 이북 말씨를 구사하거나 Kg으로 쌀을 구매하는 자 - 등산객 차림으로 산업시설이나 고속도로를 사진 찍는 자 - 사방이 잘 보이는 곳에서 밥을 지어먹는 자 - 검문소를 앞두고 버스에서 내리거나 가족인 척 하는 자 -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금품을 뿌리는 자 - 건전지를 다량으로 사는 자 -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을 많이 쓰는 자 - 공동변소나 다리에 낙서를 하는 자 - 굴뚝이나 빨랫줄에 철사를 매어 라디오를 듣는 자
이 책에 나오는 읍내 중국집 승리 반점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는 고성길은 담뱃값을 잘 모르는 북한 간첩으로 판단하여 방첩대에 신고를 하게된다. 이후, 신고 포상금을 받아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성길은 위 <간첩신고 요령>을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 그리고 동내 주민들중 조금이라도 거동이 수상한 사람이면 바로 신고를 해버렸지요. 그래서 방첩대원들은 10분마다 대기를 해야 했고. 이책에서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도 재밌게 표현하였습니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북한이 간첩을 내려보내지 않은 것을 흔히 7·4 남북공동성명에 따른 신사합의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북한이 간첩 침투를 중단시킨 진짜 이유는 다른 데 는데, 북한은 그동안 한국전쟁 때 월북한 남쪽 출신들 중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교육하여 남쪽으로 침투시켰다. 1950년대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그리고 1960년대 초반만 해도 남쪽 출신들이 그럭저럭 연고지에 정착하거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지만, 북한이 정작 공세적인 대남전략을 펼친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간첩을 보내는 족족 주민들의 신고 등으로 남쪽 당국에 적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1960년대 우리 정부의 간첩색출 작업이 혁혁한 성과를 거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는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대공수사요원이었다. 그들로서는 간첩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꼭 반길 일만은 아니었다. 한홍구 교수의 지적처럼 ‘직업 안보’를 위해 간첩이 필요했던 것이다. 오지 않으면 만들어내기라도 해야 했다! “1960년대까지의 간첩사건을 보면 더러 불순물이 섞여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순도 높은 북한산 간첩이었던 반면에, 1970년대에 접어들면 재일동포, 납북어부, 유학생 간첩 등 ‘메이드 인 재팬’이나 ‘메이드 인 사우스코리아’의, 순도가 팍 떨어지거나 짝퉁 수준의 간첩이 양산되기 시작한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969년에는 이미 이같은 변화의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때였다. 『새드무비 69』에도 이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가방을 잃어버렸다가 되찮은 오씨가 그 안에 들어 있던 돈이 없어졌다며 그 돈을 찾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오씨와 형사가 주고받는 말이 그것이다.
“아니, 차부에서 바로 방첩대에 잡혀 갔대믄서, 그럼 내 가방도 같이 넘어갔을 거 아니오?” “아, 이 아저씨가 정말, 뭘 몰라두 한참 모르시네. 방첩대가 뭐 간첩 잡는 덴 줄 아세요? 거기요, 간첩 잡는 데가 아니라 간첩 만드는 데예요. 국가에서 허가 받은 간첩 공장이라구요. 간첩 공장, 아시겠어요? 내 말대루 돈 얘기는 다시 입 밖에 꺼내지 않으시는 게 아마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을 겁니다.” “간첩 공장이라는 게 뭐요? 여기가 무슨 이북두 아니구…….” “하, 아저씨, 나이 헛 자셨네. 진짜, 진짜 제대로 된 간첩 공장은 서울 가면 따로 있구요. 여기는 거기다 대믄 약과예요, 약과. 거기서는 아예 필요할 때마다 시간 맞춰 딱딱 찍어낸다구요, 찍어내. 간첩을요. 원료가 떨어지믄 아예 외국에서 수입을 해다가두 만들어 낸다구요. 그것두 저 구라파 독일 같은 데서 밀수까지 한다구요. 돈병철이 사카린 들여오는 것처럼요. 아니 헐 말루다가, 아저시두 방첩대 한 번 들어가믄 거물급 고정간첩 되는 거 식은 해장국 먹기보다 쉬워요.”
나는 이대목에서 조금 소름끼쳤던것 같다. 아니 간첩공장이 있다고? 그래도 지금은 없어서 다행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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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신고 포상금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가난한 젊은이의 슬픈 과거 이야기이지만 반공방첩의 기치 아래 무장군인들이 도시를 활보하며 때와 장소,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자행된 검문검색과 강제연행 등 자유가 유린된 절름발이 민주주의를 살아온 세대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 낸다. 한정된 장소와 공간을 설정하여 계급 사회가 보여주는 권위주의와 군정하에서 격어야 하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해학적으로 고발하고자 하는 아직까지 세상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이다. 담백하고 익살스러운 문체가 돋보이며 시대를 통찰하는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