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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아버지의 부재가 신앙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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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그의 심리학 이론을 세우면서 종교 역시 심리적인 산물로 보았다. 신이란 인간의 욕망이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심리적 결핍이 만들어 낸 허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프로이트의 이론을 현대에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학자가 유명한 진화심리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이다. 그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에서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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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그의 심리학 이론을 세우면서 종교 역시 심리적인 산물로 보았다. 신이란 인간의 욕망이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심리적 결핍이 만들어 낸 허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프로이트의 이론을 현대에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학자가 유명한 진화심리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이다. 그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에서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심리적 필요에 의해서 신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프로이트에서부터 도킨스까지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 근거로 이런 심리학을 주장한다. 현대에는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이런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신을 믿는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며, 신은 나약한 인간이 만든 허구의 존재라고 생각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인간의 심리학적 결핍이 신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런 심리학적 결핍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시작한 책이 폴 비츠의 [무신론의 심리학]이란 책이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저자는 무신론자들의 심리를 연구하는 도중에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무신론자들 중 대부분은 아버지에 대한 부재나 상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고, 이것은 신이나 권위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결함 있는 아버지 가설'이나 '죽은 아버지 증후군'으로 부른다.

"먼저 소위 '죽은 아버지 증후군(dead father syndrome)'을 언급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해 보자, '죽은 아버지 증후군'은 '결함 있는 아버지 가설'을 검증하는 데 가장 분명하고 확인 가능하며 역사적으로도 신빙성 있는 증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죽은 아버지는 두 가지 측면에서 결함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죽은 사람은 당연히 자녀를 양육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버지가 자녀의 생애 중 일찍 죽은 경우일수록 더 심각한 결함 잇는 아버지가 된다. 둘째, 아이들은 부모의 죽음을 흔히 거절과 배신으로 받아들인다. 어린아이들은 죽음을 필연이 아닌 선택 사항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아이가 느끼는 거절감과 배신감의 영향력은 애초에 아버지와 아이가 가졌던 관계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전혀 보지도 못한 아버지의 죽음이 끼치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 애착 관계를 가졌던 아버지의 죽음보다 거절감이 덜하다고 할 수 있다." (P 41)

저자는 이런 아버지에 대한 거절감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대표적인 학자를 프리드리히 니체로 보고 있다. 니체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5세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이것은 니체에게 커다란 충격과 비애로 다가왔고, 기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니체는 아버지의 병약함과 아버지가 믿던 기독교를 연결시키게 된다. 기독교와 기독교 도덕, 기독교 신학의 예수와 하나님에 대한 전반적인 의미에서 니체가 주로 비판한 지점은 이 종교가 '생명력(life force)'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에 니체 스스로 선택한 신은 디오니소스, 생명력에 대한 강렬한 이교적 표현이었다. 따라서 니체가 하나님과 기독교를 거부한 것은 병약한 아버지를 거부한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유명한 여성 폄하와 마찬가지로 초인, 권력에의 의지, 금방의 금수 등을 강조한 니체의 철학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종교가 결코 보여 줄 수 없었던 이상적 남성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노력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P 47)

이외에도 여러 무신론적 사상가나 철학자들이 대부분 아버지의 이른 부재나, 아버지와의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아버지와의 좋은 관계나 화해가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쇠렌 키르케고르이다. 키르케고르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아버지와 아버지가 믿는 신을 외면했었다. 키르케고르는 이런 아버지에 대한 실망을 '심리적 지진'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아버지와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육체의 병에 걸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가 아들과 화해하기 위해 남은 생을 희생하면서까지 아들을 찾아왔다. 그로 인해 그는 다시금 신을 찾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지진이 가져온 일차적이고 즉각적인 결과는 쇠렌이 아버지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난다. 쇠렌은 아버지를 거부하는 동시에 점점 더 큰 원망과 폭력성을 가지고 종교를 버리고 철학을 선택했다. 또한 방탕한 생활에 탐닉하는 것도 심해졌다. 그럼에도 그의 고백을 보면 '나중에 나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 곧 하나님에 대한 반항을 의미했음을 깨달았다.' '순종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는 것도 극단적으로 힘들었다.'라고 되어 있다. 쇠렌의 반항은 1836년에 극에 달했다. 하지만 1838년 5월, 자신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에 그는 연로하신 아버지와 화해했다. 그때 아버지의 연세는 여든두 살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과오와 믿음에 대해 온전히 고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 같다. - 중략 - 아버지와의 화해를 통해서 키르케고르는 그를 유명하게 만든 심리학적 통찰을 보여 주었다. '화해 덕분에 아버지 됨의 완전한 의미가 드러났다. 즉 위대한 전통인 부성, 인간 아버지가 주는 아버지 됨의 의미는 그대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적요된다. 이런 깨달음의 섬광을 통해 키르케고르는 기독교가 진리인 이유는 '아버지가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P 119)

이 책은 몇 년 전에 읽었는데, 당시 이 부분을 읽을 때 사실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도 아들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와 아들의 상처를 품어주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상처 입은 아들을 품어주는 이미지가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이미지일 것이다. 결국 무신론자들에게는 철저한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체계에 따라 신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또는 아버지의 종교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닐까? 그리고 그 상처가 신에 대한 증오와 신을 믿는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은 단순히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의 책이 아닌, 신앙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심도 있게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반면 아버지의 부재나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가 한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해서도 너무나 무섭게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진정한 아버지가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i*******3 2017.07.01.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아버지와의 관계가 신에 대한 스탠스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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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많다. 시간의 힘은 강하다. 개인을 기준으로 한다면 독서는 항상 세월보다 앞선다. 인생은 짧지만 양서는 수없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다독가라 할지라도 거대한 책더미 앞에서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책 중에서 보석과 같은 책을 만날 때는 "인생은 짧고 독서는 길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고개가 절로 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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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많다. 시간의 힘은 강하다. 개인을 기준으로 한다면 독서는 항상 세월보다 앞선다. 인생은 짧지만 양서는 수없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다독가라 할지라도 거대한 책더미 앞에서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책 중에서 보석과 같은 책을 만날 때는 "인생은 짧고 독서는 길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것이다. 어딘가 구석에 숨어 있어 널리 읽히지 않은 책들 중에서 보물을 발견할 때만큼 큰 희열은 없다.

   폴 비츠의 <무신론의 심리학>은 보석과 같은 책이다. 인파가 없는 해변가 끝자락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진주 같은 책이다. 저자 폴 비츠는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로 무신론자들의 삶을 추적해보니 공통적으로 아버지에게 결함이 있다는 놀라운 논증을 시도한다. 부정적인 아버지상이 무신론을 향하는 정신적 토대가 된다는 것인데 저자의 여러 논거들을 훑는 과정은 상당히 재미있다. 출판사 새물결플러스에서 2012년에 번역·출간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일차적으로 '아버지'와 '무신론' 사이의 연관성을 역사적 천착과정을 통해 논증한 데 있다. 니체, 흄, 쇼펜하우어, 러셀, 사르트르, 홉스, 포이어바흐, 프로이트 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철학자들을 논증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책 속에는 대(大) 사상가들의 가정환경과 유년기의 기록과 증언이 생생하게 소개되어 있다. 저자는 신과 종교에 대한 비존재와 불필요성을 역설한 열세 명의 무신론자들의 삶을 추적한다. 그들이 아버지와 어떤 부정적 관계를 맺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사상과 철학에서 어떤 방식으로 신을 기각하게 됐는지 힘차게 논증한다.

   저자는 반대사례인 '유신론의 심리학'도 함께 다룬다. 이는 무신론 철학자의 삶과 반대되는 입장에서 저자의 주장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한다. 저자는 파스칼, 페일리, 윌버포스, 슐라이어마하, 토크빌, 슈바이처, 바르트, 본회퍼 등 위대한 유신론자들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꼼꼼하게 추적한다. 또한 '정치적 무신론자'를 별도로 추가했다.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 히틀러, 모택동의 어긋난 권력의지의 기저를 파헤치고 그 태동에 파괴된 아버지와의 관계가 놓여있다는 것을 논증한다. 그 외에도 남성과 여성이 자신의 논리적 맥락 위에서 각기 다르게 반응한다는 점을 논증하기도 한다. 또한 예외사례(드니로)와 개인적 사례를 더해 논증의 넓이를 크게 확보했다.

   이 책의 주제는 간명하다. 신에 대한 이해가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심리학적 표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무의식적으로 신에 대한 부정을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와의 파괴된 관계(부재, 결핍, 학대)가 유년기의 가정환경은 물론 훗날의 인격형성을 좌우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해소되지 않아 삶을 둥개고 인격이 고장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존재한다. 가정의 상처는 가정 외에서 치유받기가 대단히 힘들다. 현대 교육학과 사회학의 공통된 목소리다. 저자는 이를 무신론과 아버지의 상관관계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신(神)'이다. 커가면서 부모보다 더 큰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어린 시절에 교제했던 부모에 대한 잔상은 그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절대적 전거이다. 아이의 내적 성품은 오롯이 가정에서 결정된다. 여기서 아버지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보편적으로 어머니는 자식과 모생애적 친밀성으로 긴밀하게 맺어져 있다. 반면 아버지는 보다 독특하고 난해한 위치를 점한다. 어머니는 존재만으로 친밀하지만 아버지는 꼭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대개 아들에게 더 그렇다. 유년 시절에 아버지의 부재 혹은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로 자아가 굴곡된 이들을 나는 주변에서 수없이 봐왔다. 그들의 분노는 타자를 겨누고 사회를 향한다. 자신의 현존을 갉아먹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치유되지 않는다. 비극이다. 

   '다윗의 서재'에 자주 방문해온 이웃이라면 내가 '가정'이라는 공동체에 녹록지 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가정학을 공부했고 그 중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해왔다. 관련된 많은 책을 읽었고 주변 지인들과 여러 담론을 쌓아왔다. 나에게 있어 가정은 내 '양심'과 '신앙'과 '책임'을 하나로 집약시킨 단 하나의 천국이다. '가정 행복'이야말로 내 인생 성공의 절대 원칙이자 숭고한 증거이다. 이러한 나의 보수적 가정관은 대부분 기독교 신앙과 가정교육에 기인한 부분이 크다. 그러나 모호하거나 원론적인 선언에 함몰되어 있지는 않다. 이런 배경에서 이 한 권의책은 나에게 무척 소중하다.

   인간은 가정에서 만들어진다. 사회는 개별인간의 본성과 궁극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사회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바꿔 말해서 인간은 사회가 구원할 만한 싸구려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부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류사를 빛낸 여러 철학자들의 삶을 추적하여 여기에 대입해보는 연구는 굉장히 매력적인 주제이다. 그 수고의 연장선상에 이 책의 존재성이 놓여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을 다루다보니 개괄적으로 짧게 훑고가는 방식으로 씌어진 점은 아쉽다. 제시한 거대담론에 비해 적은 분량도 아쉽다. 깊이와 디테일보다는 넓이와 개괄성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다. 이를 감안하면 꽤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일독을 권한다.

YES마니아 : 로얄 g*****o 2017.10.17.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폴 비츠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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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비츠(Paul. C. Vitz)는 사람들이 무신론자가 되는 심리학적 이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종래 심리학은 무신론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치중해 왔으나, 이 책은 역(易)으로 유신론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무신론자가 되는 심리학적 이유를 설명합니다.  종래 심리학이 종교에 대해 주장해 온 내용의 골자는 이런 것입니다. "① 사람들이 어떤 종교적 믿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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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비츠(Paul. C. Vitz)는 사람들이 무신론자가 되는 심리학적 이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종래 심리학은 무신론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치중해 왔으나, 이 책은 역(易)으로 유신론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무신론자가 되는 심리학적 이유를 설명합니다.

  종래 심리학이 종교에 대해 주장해 온 내용의 골자는 이런 것입니다. "① 사람들이 어떤 종교적 믿음을 갖는 데는 심리적인 이유가 있다. ② 인간의 정신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객관적인 실재의 실재성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심리적 이유 때문에 종교를 갖는 것이다. ③ 따라서 신은 없다. 그들은 허구를 믿고 있다. 있지 않은 것을 심리적인 요인들 때문에 믿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심리학은 이 견해를 전제로 한 채로 학문 활동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심리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가 무신론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이에 대해, 오로지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신은 없다는 결론을 논리 필연적으로 도출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타당한 반학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에서 폴 비츠는 사람들이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심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이론을 제시합니다. 폴 비츠는 사람들이 신이 없다는 견해를 고수하게 되는 심리적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제시합니다. 수동적인 무신론자가 되는 이유가 있고, 적극적이고 열렬한 무신론자가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수동적인 무신론자들입니다. 여기서 '수동적'이라는 말은 적극적이고 열렬한 무신론자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수동적으로라도 무신론자로 남는 것은 다시 몇 가지로 분류 됩니다. ① 첫째는, 신이나 종교를 믿으며 착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유아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련되지 못해 보입니다. 현대적인 감각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건강하게 자라난 어른의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마마보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다른 사람들과 동화되고 싶기 때문에 신을 믿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② 둘째는, 종교를 가지며 사는 삶은 많은 자유를 억누르며 사는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가지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런 저런 것들을 하지 못할 우려가 큽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에 내 인생과 내 자유와 내 청춘을 억제받으며 얽매여 살고 싶지 않기에 우리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③ 셋째는, 편안하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이유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다만 이것은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소비하거나 자신의 노동력을 소비하거나 자신의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에 약간 다릅니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신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쪽을 택합니다.

  사람들이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결함 있는 아버지' 때문인데, 이것이 심리학자인 폴 비츠가 제시하는 심리학 이론입니다. 이것은 주로 적극적이고 열렬한 무신론자들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무신론을 신봉하고 주장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론입니다. 폴 비츠가 많은 적극적인 무신론자들의 구체적인 가정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확신하게 된 이론입니다. 물론 폴 비츠는 심리학 이론의 경우는 60 ~ 70%만 들어맞는다 하더라도 매우 훌륭한 이론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종래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한 비판을 합니다. 아버지와 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주로 유대-기독교라고 말합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에게는 온전한 아버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여러 종교 중 '아버지'가 등장하는 종교는 유대-기독교 외에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설명은 수 많은 사람들이 유대-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를 갖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폴 비츠가 주장하는 '결함있는 아버지' 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로이트는 한 개인에게 있어서 신이란, 논리적으로 격상된 아버지 상(象)이라고 주장하는데, 폴 비츠 역시 이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부터는 달라집니다. 프로이트는 이로부터 오이디푸스 가설을 통해, 결론적으로 신이라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신을 심리적인 요인들 때문에 존재한다고 믿으며 살아간다고 설명하는데, 폴 비츠는 역으로 사람들은 신과 자신의 아버지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살아가게 된다는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이론은 실제로 ① 심리학적 분석을 전혀 거치지 않았고, ② 임상실험을 거쳐서 도출한 이론이 아니라는 비판을 합니다. 물론 제가 보기에는, 프로이트 당시에는 심리학이 아직 시작 단계였으므로 심리학적 분석을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은 부당한 것 같습니다.

  폴 비츠는 자신이 왜 이러한 주장을 하게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수많은 예를 들어 길게 설명합니다. 많은 적극적인 무신론자들의 가정사를 살펴 본 결과 그들 대부분은 결함이 있는 아버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결함 있는 아버지'란,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거나, 집에 계시지 않았거나, 아버지에게 많은 도덕적인 결함이 있었거나, 아버지와 심한 불화를 겪었거나 한 경우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사람은 아버지를 통해 기독교의 신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깨지거나 아버지를 싫어하거나,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 아버지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기독교의 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렬히 그것을 싫어하는 경향마저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무신론자들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아래는 제가 표현을 조금 각색한 것입니다.

  "①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지 못했다는 점이나, (프로이트의 가정은 유대인 가정이었는데) 반유대주의에 용기 있게 대항하지 못했다는 점 외에도 많은 결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인이 된 프로이트의 편지를 보면 이런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변태 성욕자였고 그 자녀들은 이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밖에도 많은 도덕적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정도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프로이트가 많은 측면에서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고 싶어 했을 거라는 충분한 증거를 얻습니다. … 프로이트가 성장함에 따라 그의 아버지는 상당히 많은 유대교 경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이트에게 있어 그의 아버지는 종교, 특히 유대교를 상징하고 있었고 또한 약함과 무능함, 어쩌면 변태적 기질까지 의미했는지 모릅니다. 
  … ② 칼 마르크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상당량의 증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아버지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러한 불만은 아버지가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는 어떤 종교적인 확신 때문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의 일원으로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가족의 오랜 전통을 깨트렸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 중 랍비가 되지 않은 첫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르크스의 가족은 외가, 친가 모두 오랜 랍비 전통을 이어 오고 있었습니다.
  … ③ 루트비히 포이에르 바하가 열세 살 때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그들이 살던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여자와 공개적으로 동거하였습니다. 당시 그처럼 공개적으로 가족을 버리는 것은 어마어마한 스캔들이었습니다.
  … ④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무신론자인 마들린 머레이 오헤어(Madalyn Murray O'Hair)의 삶을 들여다 봅시다. … 마들린은 그의 아버지를 정말 미워했습니다. 그 책의 첫 장은 마들린이 자신의 아버지를 고기 칼로 죽이려 하는 끔직한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마들린은 아버지를 죽이는 데 실패했지만 이렇게 소리 질렀습니다. "당신이 죽는 것을 꼭 보고 말거야! 아직 때가 안 됐을 뿐이다! 당신의 무덤을 짓밟아 줄거야". 마들린이 이토록 아버지를 강렬하게 증요한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 그 깊이가 엄청났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 ⑤ 제 아내는 아버지 옆에 앉아 찬송하는 것을 즐거워 했습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십대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와 함께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녀가 열여섯이 된 어느 날, 학교에 있는데 집으로 빨리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살을 했고, 제 아내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아내의 어머니는 심각한 심리적 외상을 입었고 제 아내는 어머니를 돌보아야 했습니다. 외동딸인 아내는 대학에 진학한지 1년 반쯤이 되던 때 자신이 무신론자가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 제 아내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한 것은,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아버지의 자살이 가져다준 충격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습니다. 그간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⑥ 또 다른 사례는 알버트 엘리스 라는 유명한 임상심리학자입니다. 그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종교에 대한 비판을 했습니다. 그는 종교에 대해 정말 비판적이었습니다. 상당히 가혹할 정도였습니다. … 후에 제 친구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고, 아버지는 바람을 심하게 피우다가 결국 가족을 버렸더라고. 어머니는 정신 질환 때문에 생계를 꾸릴 수가 없어서 형과 함께 1930년대 뉴욕 거리에서 스스로 살아 남아야 했지." … 엘리스와 그의 형은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돈을 벌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근처에 있으면서도 그들은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 ⑦ 버틀런드 러셀의 아버지는 그가 네 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아버지를 대체할 만한 다른 인물이 없었습니다. 이 경우는 다소 복잡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결함있는 아버지 역할 이론을 지지합니다.
  … ⑧ 프리드리히 니체도 러셀과 같은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 역시도 아버지를 대체할 인물을 갖지 못했고 그의 삶 역시 제 이론에 잘 들어맞는 경우입니다.
  … ⑨ 장 폴 사르트르의 아버지는 그가 겨우 15개월 때 죽었습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평생 아버지 상과 그의 아버지에 집착했습니다. 그의 전기 작가들은 이것이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온갖 기괴한 방식으로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⑩ 카뮈는 한 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러면서 폴 비츠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 심리학 이론은 돌아가신 아버지나 곁을 떠난 아버지들이 어떻게 무신론의 정서적 기초가 되는지를 비교적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만일 우리의 아버지가 부재하거나 약하거나 때로는 죽음으로써 우리를 버렸다면, 혹은 우리를 방치할 정도로 믿을 만하지 못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학대하거나 기만할 만큼 지독한 사람이라면, 같은 속성을 하늘의 아버지에게 이입하고 신을 거절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신론자가 되는 것은 유행과도 같은 피상적인 동기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매우 근본적이고 불편한 심리적 원천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내가 첨언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자기 육신의 아버지를 동일시하는 것은, (적극적이든 수동적이든) 무신론자 뿐만 아니라, 많은 유신론자들의 경우도 그러한 것 같다는 점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겠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그렇다. 나 역시 내가 우리 아빠와 하나님을 어느 정도 연동시켜 생각하고 있을 때가 있음을 자주 경험한다. 그리고 전도를 할 때도 종종 경험하는 일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기독교를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그리고 기독교에 대해 갖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자주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아버지의 모습이 어떠하든지와 관계 없이, 우리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임을 계속해서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습에 맞추어서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념을 계속해서 교정시켜 나가야 한다.

  이 글은 내가 『세상이 묻고 진리가 답하다』라는 책의 일부로 나온 폴 비츠의 글을 읽고 쓴 것이다. 폴 비츠가 자신의 이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무신론의 심리학』에 보면, 폴 비츠는 역으로 파스칼이나 키에르케고르 같은 유신론자들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세히 쓰고 있다.

YES마니아 : 로얄 y*******w 2014.01.29.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