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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와인통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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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끊임없이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혹자는 이것을 두고 홀로코스트 산업이라고까지 표현한다. 하지만 역사적 기록이나 그 당시 사진 등을 보면 홀로코스트 혹은 쇼어 등이 일어난 장소의 참혹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산업이란 표현을 사용할 정도라면 그 이후 얼마나 많이 다루어졌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세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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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끊임없이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혹자는 이것을 두고 홀로코스트 산업이라고까지 표현한다. 하지만 역사적 기록이나 그 당시 사진 등을 보면 홀로코스트 혹은 쇼어 등이 일어난 장소의 참혹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산업이란 표현을 사용할 정도라면 그 이후 얼마나 많이 다루어졌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세계적으로 이슈화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일제나 친일에 대해 이 만큼 다루어졌을까? 우리는 이제 그만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가자고 말한다. 좋다. 맞다. 앞으로 나가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그럼 과연 누가 이 과거를 진솔하게 진심을 담아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나? 용서 이전에 필요한 것이 빠진 상태를 생각할 때 ‘과거는 미래를 향해 울리는 경종’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반복을 생각할 때 더욱더.

 

이 만화는 기존 홀로코스트나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이야기와 조금 궤를 달리한다. 헝가리 유대인 엄마 에스텔과 딸 리사의 참혹한 여정을 다룬다. 이 여정의 시작은 그렇게 나쁘지 않지만 독일군이 그 마을에 오게 되고 그녀의 미모를 탐한 장교가 등장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여기에 독일군을 쫓아내고 진주한 러시아군까지 가세하면서 그녀는 생존을 위해 몸을 내던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군이 갑자기 죽으면서 눈보라치는 상황에서 달아나야 한다. 이런 여정을 거친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낸 고마운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녀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도 등장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작가는 단순한 흑백과 컬러라는 색의 구성으로 어둡고 아픈 과거와 밝은 현재를 대비시킨다. 이 구성을 금방 이해하게 된 것은 색뿐만 아니라 윤곽에서도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많지 않은 분량이다. 단숨에 읽힌다. 기존의 2차 대전 유대인과 다른 이야기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자신들의 삶의 바탕인 신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신들이 와인통에 산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한 은유지만 가슴 한 곳을 파고들어 그들이 느낀 절망이 와 닿는다. 생존을 위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줄 때 그 현실에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읽다가 느낀 점 중 하나는 리사가 아이와 함께 낯선 사람의 집 문을 두드릴 때 그녀를 흔쾌히 모녀를 받아들인 것은 남자다. 왜일까? 그녀의 미모 때문이라면 다른 수작을 부렸을 텐데 그것은 없다. 열악한 환경에서 여자들이 좀더 현실적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만난 사람들 때문일까? 이것은 다시 앞으로 돌아가면 바뀐다.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인물은 집주인 남자고 그녀를 도와주는 주변 사람은 여자다.

 

내 눈이 맞다면 연필로 그린 만화다. 선으로 표현된 감정은 분명하고 풍경은 섬세하다. 수많은 학살의 와중에 생존했다는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다 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녀가 생존을 위해 그 마을과 집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녀의 정체를 알거나 정복자로 온 군인에게 어떤 비참함을 당했는지 보여줄 때 그녀의 강인한 생존력과 희망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 과정과 풍경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여운을 남기면서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해설에서도 나왔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가 보여준 행동은 큰 충격이다. 평화가 찾아온 가정에서 잊고 있던 폭력의 기억이 아이를 통해 드러날 때 그 섬뜩함은 정말 대단하다. 작가와 엄마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임을 생각할 때 그 기억을 벗어났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물론 프리모 레비 같은 경우도 있지만.

f***2 2012.12.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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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홀로코스트가 아닌, 한 모녀의 생존기.
"유대인의 홀로코스트가 아닌, 한 모녀의 생존기." 내용보기
어둠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 빛도 마찬가지야... 내가 사랑했던 강아지는 예쁜 눈 위에서 죽었어... 강아지 옆에 있던 눈은 빨갰어. 여기는 추워. 너무 추워...                                                                                             -'우리는 혼자였다' P.69 -   너무나 춥고 어두운 시절, 엄마는 딸을 위해 빛이 되었고, 그 딸의 손을 절대 놓지
"유대인의 홀로코스트가 아닌, 한 모녀의 생존기." 내용보기

어둠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 빛도 마찬가지야...

내가 사랑했던 강아지는 예쁜 눈 위에서 죽었어...

강아지 옆에 있던 눈은 빨갰어. 여기는 추워. 너무 추워...

                                                                                            -'우리는 혼자였다' P.69 -

 

너무나 춥고 어두운 시절,

엄마는 딸을 위해 빛이 되었고, 그 딸의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

'우리는 혼자였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강제수용소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죽음을 위장하고 도망쳐야 했던 어느 모녀의 실제 경험담을 그린 작품이다. 연약한 그 둘은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사람들의 매정함 속에서 수많은 위험과 죽음의 고비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엄마는 딸 리사를 위해 그 무엇이라도 기꺼이 감내하며 (예전처럼)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견디고 견뎌낸다. 그 어두웠던 시기, 아주 희미하지만 따뜻했던 '빛엄마'는 딸 아이 리사의 손을 잡고 눈보라를 묵묵히 헤쳐나간다.

 

 "나에게 웃음과 용서를 가르쳐주신 어머니께 바칩니다."

점보, 엠티브이, 디즈니 등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한 미리암 케이틴의 그림은 정말로 매혹적이다. 때로는 그 어떠한 칼날보다도 날카롭게, 어둠보다도 더 암울하게, 그리고 지옥보다도 더 혼란스럽게 당시의 상황을 그림으로 옮겼다. 이 매혹적인 작품의 그림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작품 안에 있다. 이제는 스스로가 엄마가 된 미리암 케이틴이 자신의 엄마가 그 시절 자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그리고 있다. 1940년대에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작품 한컷한컷에서 엄마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를... 하지만 스토리 전개는 담담하다. 마치 제3자의 입장에서 그리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 모두는 느낄 수 있다. 그녀가 어떤 심정으로 그려나갔는지를 말이다...

 

어린 아이가 바라 본 세상, 평생동안 계속된 트라우마

'우리는 혼자였다'의 메인 테마는 복합적이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혀있지는 않다. 테마들이란 '유대인 박해', '모성애', 그리고 '폭력과 야만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인데, 이들은 모녀의 여정과 함께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끔찍하고 참혹하게 표현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폭력과 야만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이때의 경험으로 어린 리사는 세상이란 공포와 어둠, 그리고 차가움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그것은 평생동안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신이 존재했다면 왜 이 사악한 세상을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어려운 문제를 이 작품 '우리는 혼자였다'를 통해 독자들에게 의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폭력과 야만'에 맞서 싸울 것을 당부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이제는 박해자라고? 아니거든, 멍충아!

역자인 해바라기 프로젝트의 활동이 흥미롭다. 전작은 기 들릴의 '굿모닝 예루살렘'이었는데,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근무하는 아내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1년 체류한 경험을 그린 그것에서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즉, '유대인 = 시오니스트'로 인식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주고 있다. 더 나아가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307-308페이지에서는 "단지 몇 문장만으로 이 학살자들을 언급하는 것은 다른 이에게 왜곡된 사실을 전하려는 자들에겐 아주 유용한 방법이지 싶다"라고 꼬집었으며,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헤브론에서 함께 평화롭게 공존했다는 사실을 기억에서 지우는 편이 분명 더 유용할 것이다"라고 반성을 촉구했다. 유대인들 전체를 싸잡아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독도문제나 과거사 문제를 놓고 일본인들 전체를 매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엄청난 폭력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는 혼자였다'는 유대인의 관점에서 유대인 박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 미리암 케이틴의 의도는 아주 심플하다. '모두가 생각하자. 앞으로 그러지 않기 위해서'. 보편적인 입장에서 인종주의, 더 나아가 폭력과 야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한국에 이 작품이 소개된 것은 강건너 불구경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앞으로 다가올 인종주의나 제노포비아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반성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a*******o 2012.10.23.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