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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 『백내장』 독서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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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내장을 뜻하는 ‘캐터랙catarac’은 그리스어 ‘카나락테스kataraktes’에서 나온 말로, 폭포를 뜻하기도 하고 내리닫이 창살이 드리워진 문을 뜻하기도 한다. 위에서 아래로 드리워진 차단막 같은 것, 그것이 백내장이다.” _ 6쪽 삼년 전 봄날, 우리 엄마가 일곱 살 우리 꼬마에게 물었다. “꼬마야, 날이 흐린가? 왜 이렇게 뿌옇게 보이지?” “응, 날씨가 안 좋아. 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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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내장을 뜻하는 ‘캐터랙catarac’은 그리스어 ‘카나락테스kataraktes’에서 나온 말로, 폭포를 뜻하기도 하고 내리닫이 창살이 드리워진 문을 뜻하기도 한다. 위에서 아래로 드리워진 차단막 같은 것, 그것이 백내장이다.” _ 6쪽

삼년 전 봄날, 우리 엄마가 일곱 살 우리 꼬마에게 물었다.

“꼬마야, 날이 흐린가? 왜 이렇게 뿌옇게 보이지?”

“응, 날씨가 안 좋아. 황사가 심한가봐.”

후에 꼬마에게 그 때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물었다.

“띠또가 슬플까봐.”

띠또(우리 엄마)는 얼마 후 백내장 판정을 받고 수술을 했다.

캐터랙catarac의 어원을 알지 못했던 외할머니는 ‘이 막 좀 걷어내고 싶다’고 하셨다.

막을 걷어내고 할머니는 개안의 신비를 경험하셨고, 라섹 수술을 받은 나 역시 아침에 눈을 떠 벽지의 무늬가 보이는 기적을 체험하였다.

맙소사, 보이다니.


“그 무엇에 비할 바 없이, 예사롭지 않게 파리의 하늘이 파랗다. 전나무를 올려다보며, 나는 전나무의 솔잎 뭉치들 사이로 보이는 조각난 자그마한 하늘의 파편들이 나무에 핀 파란 꽃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참제비고깔의 꽃만큼이나 파란 빛깔의 꽃으로 환한 전나무들!” _ 28쪽

존 버거가 백내장 수술을 받고 경험했던 바 들을 단상으로 기록하였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사진의 이해』 등을 집필했고 미술평론과 사진에 관한 글들을 써온 그에게 ‘본다’는 것은 세밀하고 날카로운 알고리즘의 행위지 않았을까 싶다.

예리함, 정확함으로 단련했을 그의 눈동자에 막이 덮인다.

막 덮이기 이전, 막 덮인 시기, 막 걷어낸 후로 ‘보는 삶’을 나눌 수 있게 된 그는 백내장 수술 전, 후 파란색 팬지를 각각 그림으로 남겨둔다.

“수술 전에 나는 색채를 담아 한 송이 꽃을 그린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그린 꽃은 파란색의 팬지였다. 수술 후에 나는 똑같은 꽃을 다시 한 번 그릴 생각으로 동일한 작업을 시도했다.

이제 그 둘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자. 이에 앞서 실제로 울리고 있는 소리의 떨림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일련의 음악적 선율을 충실하게 기록하려는 사람의 손길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첫 번째 그림에서 나는 그와 같은 나 자신의 손길을 감지한다. 두 번째 그림에서는 음악적 선율의 떨림에 상응하는 빛과 색채의 떨림이 그대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음을 감지한다.

(…) 변한 것은 색깔의 친밀도다. 꽃의 색깔이 내 눈앞에서 있는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_ 50쪽

“경이롭게도, 존재하는 것들의 너무도 당연한 다양성이 나에게 되돌아왔다. 드리워진 내리닫이 창살이 제거된 다음 두 눈은 되풀이하여 계속 놀라움에 전율한다.” _ 62쪽


본다는 것, 어쩌면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다’고 여기고 있는 지도 모를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서른네 살 어느 날, 무언가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있는 나를 인지했다.

이건, 뭐지? 설마.

친절했던 안경사는 나긋한 목소리와 미소로 긴 설명을 했지만 결국은 노안. 서른넷에 노안. 늙은 눈.

열 살부터 안경을 쓰다 라섹 수술로 다시 태어나 (비록 바람부는 날이면 눈물이 좀 났지만) 15년간 아주 행복하게 살아왔다.

이제 연로해지신 눈을 위해 다초점 안경을 쓰고 글씨를 읽으려 눈을 내려뜬다.

바람이 조금 불어오면 사연 있는 사람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며 거리를 걷는다.

본다는 것.

봄이면 어린 연둣빛 산에 감탄하는 것, 풍화하는 벚꽃잎에 넋을 놓는 것, 곤히 잠든 어린 것에 물끄러미 감사하는 것, 너의 살아있음을 확인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

영원히 영원히 내가 하고 싶은 것.

 

m******6 2020.02.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존 버거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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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책을 대부분 가지고 있지만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존 버거의 글은 녹록치 않다. 집중하지 않으면 딴 생각으로 빠지기 일쑤다. 그래서 가장 집중력이 좋을 때 지칠 때까지 읽는데 이 책은 굉장히 짧은 단락으로 이뤄져있어 여러 번 나눠 읽었다.     존 버거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기보다 챕터 하나하
"존 버거의 에세이" 내용보기

 존 버거의 책을 대부분 가지고 있지만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존 버거의 글은 녹록치 않다. 집중하지 않으면 딴 생각으로 빠지기 일쑤다. 그래서 가장 집중력이 좋을 때 지칠 때까지 읽는데 이 책은 굉장히 짧은 단락으로 이뤄져있어 여러 번 나눠 읽었다.

 

  존 버거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기보다 챕터 하나하나가 이뤄내는 그림이 무척 다양하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공간을 드나들 듯, 아니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을 누비듯 그의 글은 언어위에서 춤춘다고 밖에 묘사할 길이 없다.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썼듯이 시각적인 부분, 혹은 그 너머에 관한 글이 대부분이다. 소소하게 수술 경과를 적는가하면 보이는 것을 너머 관념을 새롭게 건드는 글도 있다. 백내장 수술을 하지 않고는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이기에 어렵지만 공감이 가는 글귀들이 많았다.

 

반면 어둠은 종종 사람들이 주장하듯 최후가 아니라 시작에 앞선 전주곡이다. 이것이 여전히 윤곽조차 거의 구분하지 못하는 내 왼쪽 눈이 나에게 말해 주는 바다. (14쪽)

 

  눈에 모든 것을 집중시켜 그간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본다던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에 극단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더 멀리 보려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저자의 짧은 글에 그림을 그린 셀축 데미렐의 그림도 그런 느낌이었다. 무심한 듯 쓱쓱 그려나가는가 하면 눈을 여러 가지 사물로 변형시켜 저자의 글에 부합시키고자 했다. 여러 번 나눠 읽은 이유가 컸지만 저자의 짤막한 글과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이질감이 들거나 어렵다는 느낌이 다분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저자가 백내장 수술을 한 모든 과정을 본 것 같지만 상세함 없이 뭉뚱그려 그러한 사실만 인지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단순히 백내장에 걸려 수술했다가 아닌 백내장으로 인해 변한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랬기에 때론 그의 글에 공감을 하면서도 나와 다른 시공간에 있는 그를 만나기도 했다. 

 

  모든 것에서 글감을 찾아내는 저자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언제가 내가 저자의 글을 온전히 읽을 내공이 되면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기에 현재 절망하지 않으려 한다.



s****m 2014.01.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