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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작가의 다른 책들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장편인데 단편같은 가벼움과 유머가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공감이 많이 간 인물은 트럼펫 연주자의 아름다운 아내였다. 남편의 외도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직접적인 티는 못내는 여자인데, 타인에게 불안감을 표현못하면서 속으로 곪는 사람 같아서 왠지 모르게 동정과 공감이 동시에 생겼다. 가장 이해가 안가고 의중이 파악안되는 인물은 미국의 돈많은 늙은 사업가였다. 간호사와 갑자기 왜? 결말에서 의사를 갑자기 왜?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까진 알겠는데 선하기만 한 인물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
| 체코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인간관계의 아이러니와 욕망, 두려움, 불신 등 여러 감정들 얽힘을 교묘하게 풀어내는 소설이다. 어떤 인물은 자신의 매혹을 통해 타인을 지배하려 하고, 또 다른 인물은 사랑을 통해 자신을 구원받으려 하지만 끝내 자기기만에 빠진다. 서로 다른 동기와 계산이 겹겹이 쌓이면서 관계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결국 누구도 의도한 결말에 도달하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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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라. 대부분의 소설 얼개는 넷이다. 남자와 여자, 여자의 남자와 그 남자의 여자. ‘이별의 왈츠’를 읽고 나서 혼자 판단으로 해보니 그렇다는 거다. 유명한 트럼펫 주자 클리마, 온천장에서 일하는 간호사 루제나, 체코의 삶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떠나기로 결정한 야쿠프, 그의 옛 친구의 딸 올가. 공간 배경은 아름다운 골짜기로 둘러싸인 작은 온천 도시다. 마치 화염에 휩싸인 듯하다. 아이를 갖지 못한 여성들이, 온천 요법으로 자식을 얻길 기대한다. 어쨌든 남자 하나에 여자는 아홉 꼴인 사실은, 온천장에서 불임 치료를 위해 이곳에 온 부인들을 담당하는 젊은 미혼 간호사 루제나를 화나게 한다. 아니다, 화나게 하는 이유는 따로 존재한다. 벌써 육 주째 그게 없어서다. 트럼펫 주자 클리마는 공연을 위해 이곳 온천 도시를 방문한 사실이 있다. 파티에서 온천장에서 일하는 간호사 루제나를 만난 사실도 있다. 같이 하룻밤을 보낸 후 프라하로 돌아간 사실도 물론 있다. 루제나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되고 클리마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때부터, 루제나와 아이를 떼어 버리려는 클리마의 혼연의 노력이 시작된다. 그 숙명적인 밤에 자기가 루제나를 임신시켰을 거라, 생각할 만한 어떤 타당한 근거도 없었으므로. 그 반대로 그는 자기가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다고 오히려 확신한다. ‘먼저 클리마는 루제나를 신뢰와 사랑과 다정함으로 감싸야 한다. 자기 아내와 이혼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그녀에게 약속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들의 멋진 미래를 그려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 멋진 미래를 위해 그녀에게 낙태를 간청한다.’ 이 방안이 현재 상황에서 비교적 유일하게 확실한, 그 젊은 여자의 애정에 호소하는 방안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이 작품에서 이별이라는 단어보다, 눈물겨운 클리마의 루제나와 아이를 떼어 버리려는 그 노력의 끝이 가리키는 결말이 가장 자극한다. 베르틀레프는 말했다. “여자를 유혹하는 거, 그건 어떤 바보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관계를 끊을 줄도 알아야 해요. 바로 거기서 그 사람이 성숙한 남자인지 알아볼 수 있는 거죠.” 베르틀레프는 말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태아를 죽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베르틀레프는 말했다. “아이란 바로 그 예상할 수 없는 것의 진수지요. 아이란 예상할 수 없는 것 자체예요. 당신은 그 아이가 무엇이 될지, 당신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모르는 겁니다. 그 아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죠.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단지 절반만 사는 셈이에요.” 트럼펫 주자가 말했다. “그래요. 저도 인정합니다. 상황이 어떠하건 전 그녀에게 낙태를 강요할 겁니다.” 이러한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도 어떻게 싫어하는 결심을 하도록 루제나를 유도할지 그 해답을 찾아내는 건 무척 어렵다.
한편 또 하나의 얼개는, 푸른 알약 한 알과, 오래전 고향을 떠났던 야쿠프다. 올가는 처형당한 친구의 달로 당시 일곱 살이었고, 야쿠프는 그때 그 어린 고아를 자신이 돌보기로 결심했다. 그 올가가 머무르는 온천 도시를 찾아온다. 이 작품의 셋째 날이다. 체코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떠나기로 결정한 후, 작별 인사를 하러 들른 야쿠프는 친구인 산부인과 의사 슈크레타를 만난다. 불임 치료 전문 의사인, 그리고 온 세상 사람을 모두 형제로 만들 야심을 품은 의사이다. 수년 전 그 누구도 내게 주려고 하지 않았던 알약을 슈크레타는 주었다. 야쿠프는 이 나라를 떠나야 하는 지금, 결코 더 이상 그 약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서, 그 약도 이 나라에 속한 거라서 모두 여기 두고 가고 싶어서, 그 알약을 돌려주겠다는 결심을 하였지만. 올가를 만난 자리에서 야쿠프는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접힌 얇은 종이를 꺼냈다. 그가 그것을 펼치자 연한 파란색 알약이 나왔다. 뭐냐는 올가의 물음에 독약이라고, 감옥에 갔다 온 이후, 적어도 자신의 죽음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고, 또 그 방법과 때를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많은 일들을 견뎌 낼 수 있어서, 부탁했는데 슈크레타가 직접 만들어 주었다고, 그리고 그에게 이 약을 돌려줄 거라고 대답한다. 야쿠프가 이 약의 내력에 대해 털어놓은 이 세상 유일한 존재인 그녀이다. 하지만, 사소한 실수거나 운명의 장난은 넷째 날에 일어나고야 만다. 야쿠프는 아직 반쯤 남은 자기 술잔을 들고, 유리창을 통해 붉게 물든 공원 나무들을 만족스레 바라보았고, 그 나무들은 마흔다섯 해라는 자기 평생을 던져 넣은 불길 같다고 되뇌었다. 우연히 테이블 위로 시선을 돌린 재떨이 근처에 그녀, 루제나가 잊고 간 약통을 발견했고, 그는 약통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을 뿐이다. 호주머니를 뒤져 둘둘 말린 종이를 꺼내 펼쳐, 자기 알약을 살펴보니, 그녀가 잊고 간 약통 속 알약보다 조금 더 진해 보였다. 그랬다. 그의 것은 약간 더 짙었고 좀 더 작았다. 그랬다. 그는 약통에 알약을 같이 넣었다. 그랬다. 그때 올가가 테이블로 다가왔고, 야쿠프는 재빨리 약통을 닫아 재떨이 옆에 놓은 다음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랬다. 루제나가 돌아와 약통을 발견하고 손을 뻗었다. 그랬다. 올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야쿠프는 자신이 모르는 한 여자에게 방금 독약을 줬으며 그녀가 언제든지 그 약을 삼킬 위험이 있다는 걸 생각 하고 있었다. 그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던 것이다. 그 일은 그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났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클리마를 붙잡아야 하는 루제나, 루제나를 낙태시키려는 클리마, 새 삶을 찾아 떠나려는 야쿠프, 아버지뻘인 야쿠프를 유혹하는 올가. 야쿠프는 단지 자기 자신의 양심 앞에 하나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루제나를 찾기 시작하지만. 루제나는 베르틀레프의 품에서 마지막 관능의 숨결을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다섯째 날, 그날 루제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옅은 파란색 알약 통에서 한 알을 꺼내 삼킨다. 그리고 그날, 올가는 침대에 누워 있다. (옆방 라디오는 잠잠했다.) 그녀가 볼 때 야쿠프가 루제나를 죽였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은 그녀와 슈크레타 의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건 확실했다. 그가 왜 그런 일을 했을까, 그녀는 아마 그 이유를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공포에 찬 전율이 온몸에 흐른다. 하지만 곧이어 (우리가 알다시피 그녀는 스스로를 잘 관찰할 줄 알았다.) 그녀는 그 전율이 감미롭다는 것, 그리고 그 공포에는 자만심이 가득 차 있다는 걸 확인하고 스스로 놀랐을 뿐이다. [뒷이야기] 이 작품은 현대의 살아있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인 우리의 삶을 마치 모자이크처럼 정교하게 수놓으면서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1978년에 출간, 유럽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로 망명 후 소설가로서의 성공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화가 너무나 급작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체코 안에서 작가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나는 프랑스를 작가로서의 조국으로 선택한 겁니다. 내 책들이 먼저 나온 곳은 파리였고 나로서는 그 상징적 의미를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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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쿤데라의 소설 중 가장 통속적인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해프닝 같기도 하고 소동 같기도 하면서 쫄깃한 긴장감도 있어 재밌게 읽었다. 인기 많은 트럼펫 연주자 클리마, 온천장에서 일하는 간호사 루제나, 남편을 의심하는 클리마부인, 루제나만 바라보는 프란티셰크, 공산당 지도자였던 야쿠프, 처형당한 친구의 딸 올가, 온천장에서 일하는 의사 슈크레타, 자~ 다시, 적당히 바람피며 즐기는 클리마, 임신으로 팔자 고치려는 루제나, 남편의 모든 행동을 외도로만 해석하는 클리마부인, 바보 같은 프란티셰크, 외국으로 떠나려는 야쿠프, 아버지의 친구를 유혹하려는 올가, 자신의 정자를 불임 환자에게 주입하는 슈크레타, 여기에 임신과 푸른색 독약이 얽히며 이야기는 골때리게 흘러가는데... 드라마로 만들 법한 찌질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클리마는 낯설지 않고 남자 하나 잘 꼬셔서 팔자 고치려는 루제나도 익숙하다. 전형적인 인간 군상들인데 이야기는 아주 재밌게 흘러간다. 황당함마저 느껴지는 이야기에 쿤데라가 쓴게 맞나 싶다가도 삶은 농담 같고, 유머 같고, 황당한거지 싶다.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다들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그림 같은데 쿤데라가 말하는 삶이 건네는 농담이 여실히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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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1 그러나 질투의 고통은 그와 반대로 공간 속을 돌아다니지.않고, 마티 팽이처럼 단 한 점 주위를 맴돌았다. 어떤 분산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이 (더 외롭고, 또한 더 성숙한 다른) 미래의 문을 열어 주었다면, 남편의 부정으로 받는 고통은 어떤 미래도 열어주지 않았다. 부정을 저지를 육체라는 (끊임없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단 하나의 이미지와 단 하나의 비난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었다. 어머니를 여의었을때 그녀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책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질투에 사로잡혔을 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