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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369. 도스토예프스키 - (삶이 곧 소설이었던 도스토예프스키)
"살림지식총서 369. 도스토예프스키 - (삶이 곧 소설이었던 도스토예프스키)" 내용보기
밖에 나갈 때면 항상 가방에 책 한 권은 꼭 넣고 가야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챙겨가서 가방에서 한 번도 꺼내지도 못한 채 다시 집에 온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가능하면 얇은 책을 챙겨 가야 가방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저것 담긴 가방에 책까지 넣으니 어깨에 너무 부담이 되곤 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먼 곳을 갈 때 책을
"살림지식총서 369. 도스토예프스키 - (삶이 곧 소설이었던 도스토예프스키)" 내용보기

밖에 나갈 때면 항상 가방에 책 한 권은 꼭 넣고 가야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챙겨가서 가방에서 한 번도 꺼내지도 못한 채 다시 집에 온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가능하면 얇은 책을 챙겨 가야 가방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저것 담긴 가방에 책까지 넣으니 어깨에 너무 부담이 되곤 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먼 곳을 갈 때 책을 챙기지 그렇지 않으면 멍하니 서서 스마트 폰만 들여다보며 별로 필요도 도움도 안 되는 뉴스만 들여다 볼 때가 많았다. 요즘 스마트 폰으로 전자책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 스마트 폰을 손에 들면 책보다는 인터넷만 더 보게 되곤 했다.

 

요즘은 별로 먼 곳을 가지 않더라도 유치원이나 학원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러 가거나 아이들과 외출을 할 때면 순간순간 비는 시간이 생기곤 했는데, 그럴 때면 가만히 서서 할 게 없으니 멍하니 있다 그냥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아이들을 데리러 가거나 외출을 할 때도 가방에 작은 책이라도 챙겨가기 시작했다. 그러면 아이들 하원 시간보다 조금 일찍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나 하원 길에 아이들이 놀이터로 달려간다 하더라도, 책을 읽으며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이 책은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방에 넣고 갔다가 다 읽게 되었다. 겨울 한파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감기로 병원을 찾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 대기시간도 길고, 우리 아이들 감기가 생각보다 심해서 이것저것 검사까지 한 덕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 모든 삶의 이야기가 그의 소설 속으로 굽이굽이 흘러 들어갔다. 물론 어떤 작가의 글에도 자기 삶의 경험은 묻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만큼 삶의 체험이 강하게 스며든 작가는 드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고난과 그 극복의 드라마이다. 부친의 살해, 체포와 날조된 사형, 사베리아 유형, 그를 평생 괴롭힌 간질병, 도박의 유혹, 끝나지 않는 경제적 압박..... 그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살았으며, 삶이 곧 소설이었던 작가였다.

- <도스토예프스키> p4 중에서 -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던 우리 아이들의 감기의 원인. 첫째는 폐렴, 둘째는 독감이었다. 그리고 첫째를 입원시키며 아이와 함께 갑작스럽게 시작 된 병원 생활 속에서 얄팍하지만 깊이 있던 이 책은 나의 작은 위안이 되어 주었다. 이 작은 책 속에 담긴 도스토예프스키의 심한 굴곡 진 삶은 나의 힘겨움을 훨씬 더 작게 여길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아무리 힘들다 한들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삶은 파란만장 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듯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고난과 그 극복의 드라마”였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대단한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삶에 대해 잘 몰랐던 나로서는 그의 삶을 알아가는 것 그 자체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곳이 다른 곳도 아니고 병원 입원실이었기에 왠지 모를 공감을 넘어서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위장병, 루마티스, 신경발작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폐쇄적인 감옥생활을 했던 도스토예프스키. 나중에는 죽을 때까지 간질병을 앓으며 병마의 고통에 시달렸던 그. 이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 도스토예프스키와 감히 비교할 수는 없는 없다. 하지만 병원 입원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어린 환자의 보호자로서 자유가 제한된 채 환자를 밤낮으로 끊임없이 돌봐주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그가 겪었던 삶에 공감을 했고 또 그보다 나은 나의 삶에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이 책에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형, 나는 기운을 잃지도, 정신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서의 삶이든 그것 역시 삶이고, 삶은 우리들 자신 속에 있는 것이지 결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재난이 몰아닥친다 해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흔들이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바로 거기에 인생의 과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략) 지금 이 순간, 나는 과거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기꺼이 사랑하고 포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죽음과 대면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할 때가 되어서야 그런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과거를 되짚어볼 때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었는지요. (중략) 삶은 행복입니다. 매순간이 행복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p28 중에서 -  

밤에 개최된 문학 축제에서 그는 푸슈킨의 시 <예언자>를 낭송했다. 완전히 지쳐버린 그는 약하고 낮은 목소리로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또 다시 홀은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고, 다시 한번 황홀경에 빠진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러시아 문학 전체가 그 ‘예언자’를 추앙했다. 푸슈킨 기념행사에서의 연설은 위대한 러시아 시인에 대한 깊은 사색의 열매이자, 작가 자신의 피 끓는 열정의 유언이었다. 물론 ‘인류의 완전하고 보편적인 형제애’에 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온 삶의 에너지를 다해 슬라브주의자와 서구주의자들을,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과 민중을, 그리고 러시아와 유럽을 서로 화해시키는 유언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p84 중에서 -  

작가는 아이들을 침대 곁으로 오게 하여 성서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읽게 하고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얘들아, 지금 방금 들은 얘기를 절대로 잊지 말아라. 주님에 대한 끝없는 믿음을 간직하고, 그분이 항상 용서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라. 나는 너희들을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내 사랑은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인간을 향한 주님의 무한한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살다가 혹은 죄를 짓는다 해도 주님에 대한 희망을 결코 버려서는 안 된다. 너희들은 그분의 자녀들이다. 마치 너희 아버지를 대하듯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라. 그분께 용서를 구하면 그분은 돌아온 탕자를 보고 기뻐한 것처럼 너희들의 회개를 기뻐하실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p85 중에서 -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많은 찬사가 따라 다닌다. 천재 작가, 미래를 꿰뚫어보는 예언자, 신비주의자, 뛰어난 직관의 보유자,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 실존주의 철학자.... 모두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작품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떤 연구가가 그의 문학을 울창한 원시림과 깊은 동굴, 그리고 심연으로 이루어진 신비경이라 했던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 <도스토예프스키> p87 중에서 -

       

가끔 아이 엄마들과 모여 아이들 키우며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가끔씩 내뱉는 말이 있다. 그동안 힘들었던 거 이야기하면 책 한 권은 나온다고 말이다. 요즘은 일반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많은 이들이 겪는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이 나오는데 누구도 쉽게 겪을 수 없는 일들을 겪은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떠했을지. 안타깝게도 그가 겪은 일들은 다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일들이었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일이라든지, 사형직전까지 갔던 일, 중노동을 했던 수감생활, 자식의 죽음, 도박 중독, 질병의 고통 등 그가 겪은 일들은 하나같이 힘겨운 일들이었다. 이 중 하나만 경험해도 삶이 힘겹게 느껴졌을 텐데, 그는 이 모든 걸 다 경험했으니 그의 힘겨움이 오죽했을까 싶다.

 

그가 이러한 극한의 일들을 경험했기에 그가 자신의 작품에 다른 사람들은 쉽게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을 담아낼 수 있었겠지만, 분명한 건 그 누구도 이런 삶을 원치는 않았으리라는 것이었다. 설사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위대한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누구도 원치 않았을 삶을 산 그. 그래도 그에게 하나의 행복이자 축복이었던 것은 그가 이러한 모든 고통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이렇게 큰 고통을 겪은 것도 그의 유일한 능력이자 축복이었던 글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글에 대한 욕망과 재능이 없었더라면, 군인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그는 힘겨운 경험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의 이름이 지금처럼 여러 세기를 거쳐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는 못했겠지만. 작가로서는 크게 성공하고 인정을 받으며 행복했지만, 한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고통과 힘겨움으로 불행했을 그. 너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세계가 인정하는 작품을 남긴 대단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그가 자신의 삶을 평할 때 행복했다고 여길지 불행했다고 여길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삶은 불행했다고 여기려는 순간, 그가 꾸며진 사형을 모면한 뒤 자신의 형에게 남겼던 편지 구절이 생각났다. “삶은 행복이고, 매순간이 행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는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자신은 자신의 삶은 행복했다고 말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를 생각하며,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병원 생활을 조금 더 쉽게 이겨낼 수 있었다. 내가 겪는 이 힘겨움은 지금 이 순간 일뿐만 아니라, 지나갈 힘겨움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길다 해도 일주일이면 아이는 병원에서 퇴원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런 뒤에는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은 조금 힘겹겠지만, 병원에서 퇴원을 한 뒤에는 병원에서 있었던 힘겨움이 나의 생활에 더 이상 영향을 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병원에서의 힘겨움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겪었던 경험을 떠올려봤을 때 내가 겪고 있는 것들이 그보다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이고 별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내가 겪은 것이 이 정도의 일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 해야 한다고 여겨졌다.

 

 

극심한 가난과 죄의 심연, 미칠 듯한 도박의 흥분상태와, 끓어오르는 욕망,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과 수치심, 사지가 뒤틀리는 간질의 고통, 사랑했던 자식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아픔, 그는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꼈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했다. 때문에 그는 가난한 자와 소외받는 자, 정신질환을 앓는 자와 수치심에 괴로워하는 자, 격렬한 욕정과 욕망에 시달렸던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천재이기 이전에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었던 한 ‘작은 인간’이었기에, 우리는 그에게서 ‘큰 작가’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은 아닐까.

- <도스토예프스키> p89 중에서 -

      

한동안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읽으며 마음보다는 머리를 채우려고 했던 나에게 이 책은 때론 마음을 채우는 것이 머리를 채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마음을 채우는 것이 내 삶을 훨씬 더 겸허하게 바라보게 해줌으로써 나와 내 주변을 살피며 하루하루를 보다 소중하고 행복하게 여기게 해주니 말이다. 그저 유명한 작가로만 여겼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같은 삶이 담긴 이 책을 보며, 유명하기만 한 그의 작품이 아니라 작은 인간의 삶이 담긴 그의 작품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보게 되는 시간도.

 
 
 
 
 
- 연필과 지우개 -
s*******r 2016.02.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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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스토예프스키
"[서평] 도스토예프스키" 내용보기
고전과 문학에 취약한 탓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딱히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에 대해서도. 그랬기에 이 책은 나에게 그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 오늘날 그의 작품이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의 소설이 지닌 '다층성' 때문일 것이다. 그는 소설가였지만, 무수한 사상가들이 그에게서 심리학자, 정신병리학자, 범죄학자,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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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문학에 취약한 탓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딱히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에 대해서도. 그랬기에 이 책은 나에게 그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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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그의 작품이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의 소설이 지닌 '다층성' 때문일 것이다. 그는 소설가였지만, 무수한 사상가들이 그에게서 심리학자, 정신병리학자, 범죄학자, 그리고 신비주의자적인 면모를 발견한다. 이런 접근이 가능한 것은 인간 영혼을 날카롭게 투시했던 그의 시선에는 양립 불가능한 요소들이 동시에 포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P. 4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질 못했기에 이 말에 제대로 공감을 할 수는 없었으나, 그의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고 꾸준히 연구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그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좀더 파고들어 인간적인 도스토예프스키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버지 살해, 사회주의 심취, 사형 체험, 수감 생활, 여인에 대한 열정, 도박, 가난, 파산, 간질, 푸슈킨에 대한 사랑>이라는 열 개의 키워드로 그의 인생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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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에 읽었던 < 살림지식총서 셰익스피어 http://blog.naver.com/kindlyhj/220618793970 >처럼 도스토예프스키의 몇 작품을 간략한 줄거리와 함께 소개를 해주었더라면, 그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자꾸 등장하는데, 읽어보질 못해 잘 모르다보니 그저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쉬웠다. 누굴 탓하겠는가. 그의 유명한 작품들을 안 읽어본 것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을.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어떤 배경으로 탄생을 했는지를 알게되니 새삼 그의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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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문학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극한적인 고뇌를 다루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 자신이 그와 같은 처절한 상황에 휘말렸고 그러한 병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한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만약 그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단란한 가정에서 건강한 몸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갔더라면, 아마도 그는 비극적인 작품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 P.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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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살해되었다는 비극에 이어 사회주의 심취로 인한 사형 체험, 그로인한 혹독한 수감 생활과 이때부터 시작된 간질증상은 그에게 커다란 인생의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문학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의 고통과 시련이 문학적으로 큰 빛을 발하는 이런 아이러니라니.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살아숨쉬는 듯한 생생함으로 메세지를 전달해주고 있는 것은 작가 본인이 체험한 극한의 경험들 덕분이었다. 사형까지 체험한 작가가 또 누가 있으랴. 하지만 그의 시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랑이라 여겼던 여인들과의 쉽지 않았던 감정 교류와 반복적으로 이어졌던 도박의 유혹, 허영심과 과시용 소비로 인한 가난과 연이은 파산은 그의 삶을 항상 힘겹게 만들었다. 이런 그의 인생에도 커다란 행운은 존재했다. 바로 25살이나 어린 두번째 부인 안나와의 인연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말년에 그나마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이 여인의 내조와 헌신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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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가난과 죄의 심연, 미칠 듯한 도박의 흥분상태와 끓어오르는 욕망,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과 수치심, 사지가 되틀리는 간질의 고통, 사랑했던 자식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아픔, 그는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꼈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했다.  - P. 88

 

대부호라 불리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문학적 측면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마주하고 보니 그의 인생은 한편의 비극적 장편소설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비극적인 고통은 대체 얼마나 다양한 걸까. 그 비극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는 빛을 발하고 있는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지만, 작가 본인으로서는 그리 행복했던 인생이라 할 수 없기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지금은 비록 얇은 책 한권으로 그를 만났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그의 작품 속에서 그와 만나봐야겠다.   

 

k******j 2016.02.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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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문학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문학" 내용보기
작가를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다른 작가의 경우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는 그 말이 딱 맞아떨어질 것이다. 그의 작품은 바로 그의 삶에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살림지식총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의 질곡과 영광의 순간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작가 박영은은 러시아 문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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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다른 작가의 경우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는 그 말이 딱 맞아떨어질 것이다. 그의 작품은 바로 그의 삶에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살림지식총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의 질곡과 영광의 순간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작가 박영은은 러시아 문학도로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도스토예프스키'를 바로 내 옆에 있는 '친구 도스토예프스키'로 인식될 수 있도록 그의 문학세계를 대중의 언어로 재조명하는데 관심이 있다고 한다. '살아있는 인간'으로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숨을 불어넣고 싶은 작가의 의도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그동안 도전만 외치고 중도에 포기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에 다가가고 싶게 만든다.


박영은이 그려서 우리 앞에 데려온 도스토예프스키는 아픔을 품고 살았던 인간이었다. 또한 자신의 광기와 열정의 소용돌이를 다스리지 못해 괴로워했던 모순 투성이 인간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겸손하고 따뜻한 인간이길 원했다. 이 모든 삶의 이야기가 그의 소설 속으로 굽이굽이 흘러 들어갔다. 이런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부친의 살해, 체포와 날조된 사형, 시베리아 유형, 간질병, 도박, 파산, 푸쉬킨에 대한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다. 


살해당한 아버지.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만, 다혈질적이고 신경질적이었다. 그래서 온 가족이 그 앞에서 떨었다고 한다. 의처증이 있었던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들까지도 자기애인지 의심했다. 교양과 품위가 있고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와 달리 거친 행동과 신경질적이었던 아버지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성격의 일부분을 물려준 듯하다. 그러던 아버지가 그에게 앙심을 품은 농부들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함구만 하다가 생의 마지막 작품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비로소 아버지에 대해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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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심연을 응시했던 사형 체험 토스토예프스키는 한동안 공상적 사회주의에 심취해있었다. 그는 그 활동으로 붙잡혔다.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이렇게 붙잡힌 이들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연극'을 꾸민다.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돌아 온 도스토예프스키는 강렬한 체험을 한다.

'오늘 죽음과 대면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할 때가 되어서야 그런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과거를 되짚어볼 때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었는지요.(중략) 삶은 행복입니다. 매 순간이 행복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체험은 <백치>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

사랑, 도박, 광기 그리고 간질병.

유부녀를 사랑했고, 그녀의 남편이 죽자 그녀와 결혼을 하지만 곧 실망하고 방황하던 도스토예프스키. 그는 그녀가 죽고 다른 여인과 사랑을 하고 결혼에 이르지만 도박에서는 헤어나지 못한다. 그런 남편을 듬직하게 지켜주던 어린 아내는 남편의 간질과 아들의 죽음 또한 지켜봐야 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지금도 여전히 '대작가'인 것에는 이 어린 부인의 도움 덕분이지 않았을까?  

c******2 2016.02.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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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 박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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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 박영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그는 죽음을 통해 오히려 '참으로 사는' 신비를 그대로 드러냈다. 인간의 고통은 먼 훗날 돌이켜보면 큰 영광으로 빛을 발한다고 했던가? 만일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많은 고통을 몸소 겪지 않았다면, 이 고통의 산 증인이 아니라면, 등장인물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의 목소리와 그 내면의 울림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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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 박영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그는 죽음을 통해 오히려 '참으로 사는' 신비를 그대로 드러냈다. 인간의 고통은 먼 훗날 돌이켜보면 큰 영광으로 빛을 발한다고 했던가? 만일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많은 고통을 몸소 겪지 않았다면, 이 고통의 산 증인이 아니라면, 등장인물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의 목소리와 그 내면의 울림이 이처럼 생생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 올 수 있었을까? 만일 그가 편안한 환경에서 이상세계를 염원하며 단순히 도덕적 가르침을 설파하는 성자였다면, 그의 주인공들이 이렇게 팔딱팔딱 살아 숨 쉴 수 있었을까?” - <본문 88쪽>

저자는 ‘난해한 철학과 사상의 벽에 갇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대작가이기 이전에,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으면서도 자신의 십자가를 담담히 지고 갔던 한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를 알리는 이야기로 쓰고 싶었다.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살았으며, 삶이 곧 소설이었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생의 한가운데에 서서 그 질곡과 영광의 순간이 작품에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평범한 글로, 평범한 모든 이에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라며 이 책을 소개한다.

저자는 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아나톨리 김의 우주론 연구 -상승과 변형의 시학-」으로 박사학위 받음. 역서로는 표도르 솔로구프의 시집 『불타는 원』. 논문으로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타난 도스토예프스키의 신비주의와 만유재신론」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 구축된 중세 성사극의 지형도」 「니콜라이 표도로프 사상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술적 반향」 등 다수가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다혈질적이며 신경질적인, 그리고 의처증이 심한’ 의사인 아버지와 온화한 어머니 사이에서 러시아력으로 1821년 10월 30일에 태어났다. 교육열이 높았던 아버지에 의해 육군 공병학교에 입소를 하였지만, 다음해 ‘농부들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는다. 이 일로 후에 우울증과 간질에 시달리던 그는, 쉰이 넘은 나이에 얻은 아들 ‘알료사’를 간질로 잃는다.
그러나 그에게 ‘간질’이 끔찍한 고통만은 아니었으며, 자신의 사상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백치(1868)>를 통해 밝힌다. 일시적으로 의식이 육체를 떠나는 일종의 ‘탈혼 상태’는 ‘황홀경’을 경험하게 하였다.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1845)>의 호평과는 달리 뒤이어 출판된 <분신(1846)>에 대한 혹평에 실망한 그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페트라스키 회>에 출입하다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이러한 정황은 훗날 <악령(1872)>라는 또 하나의 소설을 탄생시킨다.
당시 황제였던 ‘니콜라이 1세’에 의해 ‘가짜 사형 집행’을 경험하게 된 그는 ‘죽음을 목격했다 살아난 인간의 감격’을 <백치(1868)>을 통해 표현한다.
그리고 ‘생매장된 채, 관에 들어가 있던 세월’로 비유하기도 한 ‘시베리아 징역생활’의 끔찍한 기억은 ‘무수한 작품 캐릭터가 태어나는 산실’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사상 역시 ‘새로 태어나는 분기점’이 되었다. 이후 <죽음의 집의 기록(1861~1862)과 <죄와 벌(1866)>의 소재로도 사용된다.

<미성년(1875)>,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 <작가일기>등을 집필하며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린 - 그의 마지막 10년부터 죽음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까지 - 그의 사고의 큰 얼개를 구성하던 ‘전일(全一)사상’은 ‘푸슈킨 동상제막식 기념 강연’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자연과학의 진화론에 입각하여 지구의 역사와 인류의 미래를 이해’한 ‘블라지미르 솔로비요프’와 ‘니콜라이 표도로프’의 사상을 표현한 ‘페테르손’의 글을 통해 ‘아버지의 책임’과 ‘아버지에 대한 자식들의 의무’를 동시에 강조하며, 인류를 하나의 운명으로 엮는 ‘거대한 가족’으로 보는 주제의식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또한 그는 제막식에서 푸슈킨의 표현을 빌려 “오만한 인간이여, 자기 자신을 낮추어라. 무엇보다도 먼저 자존심을 버려라”라는 말로 러시아가 당면한 분열의 문제에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라는 ‘수식어’와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작가의 이름에서 풍겨지는 슬라브어 특유의 ‘날카로움’, 그리고 ‘인간 존재론적 문제와 인간 성찰’을 다룬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중량감’이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그’를 외면하게 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만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가 겪은 아픔과 고통이 모두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자와 소외받는 자, 정신질환을 앓는 자와 수치심에 괴로워하는 자, 격렬한 욕정과 욕망에 시달렸던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아직도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책장 속에 그의 작품들을 ‘고이’ 간직한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150년 전 그가 죽음의 목전에서 느낀 ‘매 순간이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감정을 위해 노력하고 자신과 타인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인생모토를 우리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h******1 2016.02.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