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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북극곰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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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론을 읽는 시간: 길거리의 악사, 무대를 만나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시즌5'. 두 참가자가 기타를 메고 나온다. 한 명은 길거리 공연을 수도 없이 했던 친구고 다른 한 친구는 공연 경험 없는 친구다. 둘은 저마다의 실력으로 멋진 하모니를 보여주었지만 겉으로 보면 일명 ‘버스킹’이라고 하는 거리 공연 경험을 가진 친구가 더 흥이 나 보인다. 그런데 심사위원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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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론을 읽는 시간: 길거리의 악사, 무대를 만나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시즌5'. 두 참가자가 기타를 메고 나온다. 한 명은 길거리 공연을 수도 없이 했던 친구고 다른 한 친구는 공연 경험 없는 친구다. 둘은 저마다의 실력으로 멋진 하모니를 보여주었지만 겉으로 보면 일명 ‘버스킹’이라고 하는 거리 공연 경험을 가진 친구가 더 흥이 나 보인다. 그런데 심사위원인 가수 이승철이 이런 평을 한다.

“ 버스킹도 너무 많이 하다보면 안 좋은 습관들이 많이 생긴다.”

인터넷 서점 블로그에서 블로거로 활동하면서 내가 쓰는 글은 일종의 ‘버스킹(busking)’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거리 공연을 하듯 자유로운 공간에서 글을 쓰는 구속됨이 없고 내 자신을 더 잘 드러내는 느낌이긴 하지만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이 부족하다. 그만큼 깊게 생각하고 퇴고할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평을 읽는다는 것은 잘 연출된 공연 한 편을 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의 문학작품들과 그에 관한 전문가의 비평을 함께 볼 수 있고, 틀 잡힌 글을 보며 나의 습관을 반성하고 다잡기도 한다. 다른 장르가 아닌 평론에 대한 서평을 쓰는 과정은 문학 작품을 감상하고 다시 그에 대한 비평을 이해하고 또 다시 내 것으로 체화하는 ‘3중 거름체’를 거쳐 가며 시나브로 마음이 조금은 자라나 것 같은 쾌감을 준다.

 "비평가는 자신의 모든 재능을 淪臼�, 그가 느낀 즐거움을 자신의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그 텍스트를 읽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다시 말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읽었던 대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전력해야 한다.’는 J.P.리샤르의 말을 오래 간직하고 있다.”(p.7)

 저자는 평론가로서 자신이 이행할 의무를 이렇게 새기는 사람이었다. 비평집을 읽을 때 간혹 텍스트를 쪼개고 분석하는 데 몰두해서 비평가 스스로를 글 속에 숨기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적어도 박상수의 비평집 <귀족 예절론>에는 그 어떤 비평집보다 텍스트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과 철학, 평론가의 목소리와 마음이 잘 묻어난다. 그래서 독자로서 나는 시작부터 저자에 대한 경계를 조금 느슨하게 할 수 있었다.
 저자가 그의 목소리가 아니고서는 텍스트를 읽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장치는 ‘귀족예절론’이라는 책의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을 감상할 때 중요한 두 가지의 요소는 미(美)와 윤리이다. 그런데 쾌락, 낭만, 순수함을 품은 미의 가치를 ‘귀족’으로, 도덕, 질서정연함, 선구자의 길로 통하는 윤리의 가치들을 ‘예절’이라는 아주 세련된 단어로 치환해 놓았다. ‘서글픈 다정함, 사람이라는 눈물’, ‘죽은 아이가 꾸는 태몽’, ‘병적 환상, 앓으면서 쓰는 시’, ‘더 나빠질테다’와 같이 일상적인 단어나 짧은 문장으로 이뤄진 소제목들은 독특하고 명랑하다. 다루는 내용의 무게와는 상관없이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이 가볍고 내미는 손은 다정하고 유머러스하다. 평론계에서 굵직한 대가들이 아닌 젊은 평론가들의 글을 읽는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이다.

2. 귀족예절론

 저자는 2005년 전후를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적 시장주의가 확산되는 묘한 시기라고 정의했다. 우리의 시인들이 ‘선배 작가’라고 불리는 것까지 포함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와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했다.
학부시절 국문과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낭만은 위험하다. 무섭다. 경계해야 한다.”

 만 열 아홉의 내게 낭만은 로코코풍의 명화 프로고나르의 <그네>처럼,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꽃밭에서 그네를 타는 귀부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아름답고 풍부하고 충만하며 꽃향기에 취하게 하는 그 무엇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위험하단다. 낭만은 나쁜가? 그에 대한 대답은 이 책의 첫 장, ‘fragile(세련된, 깨지기 쉬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독자와 작가가 글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라면 그는 이 장에서 시인과의 ‘만남’을 모티프로 평론을 쓰는 독특한 형식을 택했다. ‘fragile’에서 저자는 ‘무가당 담배클럽(박정대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허구적 공간)’을 무대로 삼아 여러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을 만나고 대화하고 참여한다. 길을 가다 때로는 약속을 잡아놓고 ‘무가당 담배’를 태우며 기다리고, 또 만나고 토론한다.

“당신들은 이 도시의 리얼리즘과 이 말도 안 되는 몽상을 구별할 필요가 있어요!”
“흥분하지 말아요, 뭐, 어, 대략 그랬다, 는 얘기요.” (굵은 글씨는 서정학, <귀를 막아라> 중에서) (p.39)

 한동안 리얼리즘에 경도되었던 나의 눈과 귀, 한순간 낭만주의자의 이 능청스러움 앞에 스르르 감기고 흘러내린다. 순수한 펜대로 이야기 하는 망상, 허무함, 깨지기 쉬운 그 유리 같은 세련됨에 녹아내린다. ‘뭐, 어, 대략 그랬다’ 지 않는가? 도시적 리얼리즘 앞에 도시적 우수는 자칫 망상이나 사치스러운 감정소비처럼 비춰지기 십상이지만 저자는 ‘귀족’이 ‘예절’에 순응해야 한다든가, 반대로 ‘예절’이 ‘귀족’에 맞게 희생되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구사하지는 않는다. 다만, 감정적 귀족주의가 갖는 능청스럽고 순수한 면을 부각하기도 하고 윤리의 상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표출하는 젊은 시인의 미래에 대해 염려하기도 한다. 그 중 어느 하나 때문에 다른 한 쪽이 가려지는 비애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이다.

 비윤리적이면 비윤리적일수록 미감은 더욱 증가한다. (중략) ‘인간 동물’은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파국을 두려워하지 않고 훨씬 더 신나게 시를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이런 방식으로 더 나가도 될까? 이 시인은 ‘선배’와 ‘기원’의 영향을 넘어서서, 독창적인 자기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p.285)

 저자는 2005년을 전후로 등장한, 예절을 덜 고려하고 귀족주의를 한껏 드러낸 우리의 시들을 감상하는 데 ‘자유의지’와 ‘인간동물’의 개념을 끌어왔다. 어쩐지 하나를 긍정하면 다른 하나를 부정해야 하는 대립항 같은 개념 사이에서 시를 바라보았다. 예전의 정형화된 시에서 벗어나 감정을 과잉적으로 폭발시키는 현대시들을 바라보며 과연 인간에게 완전하게 통제 가능한 ‘자유의지’란 존재하는 것인지, 동물적 감각을 분출하는 이 시들을 문학사적으로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 제시해 놓았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는 ‘나르시시즘’이자 ‘감정의 귀족주의’란 새벽녘, 취중에 쓴 글처럼 통제 되지 않는 호기로움이자 언젠가 깨지게 마련인 쾌감 같은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르-’로 시작하는 두 단어 ‘나른한 나르시시즘’에서 남우세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이현승과 이상욱의 우아한 나르시시즘적 시를 ‘댄디즘’으로 정의하며 놀랍게도 ‘절제’를 이야기 했다. 시끄러운 대도시, 경쟁으로 치닫는 병목현상에서 느리게 걷거나 한 걸음 뒤로 빠져 낭만에 젖고자 할 때는 열패감이 아니라 초연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들의 시에는 오만과 과시가 아닌 경쟁에 대한 강한 거부, 자기 통제에 대한 쾌감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보들레르의 ‘댄디즘’으로부터 끌어온 저자의 해석을 보며 불명료함과 동물적인 감각, 기존의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벅참, 공허함에서 비롯된 새로운 시적 표현들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핍을 채우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결핍을 채우고 싶지 않다는 또 다른 ‘잉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3. 봄날의 북극곰을 좋아하세요?

 새삼스럽게 문학과 예술은 이해하기 편하자고 하는 작업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예술의 속성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신뢰하기 어려운 기억처럼 불명확하다. 저자는 그것이 명확한 것이 되길 바라기보다 그 불명료한 허구를 인정하고 포기하는 것이 시에 대한 ‘예의’이자 ‘극복’이라고 했다. 나는 ‘隨處作主 立處皆眞(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곳마다 다 참이라)’이라는 경구를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살기 이전에 내가 나의 주인이 되기까지가 수행이고 고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상수의 <귀족예절론>은 꽤 일관되게 고행자를 위로하는 책이다. 정체성을 찾는 삶 혹은 반대로 당기는 대로 사는 삶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마치 ‘예절’에 집착하다 자기 안의 ‘귀족의 피’를 희생시키는 것에 대한 경계를 준다. 완전한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되, 최대한 세련되게 주인처럼 살아보라는 위로 같다.

 평론은 시나 소설, 수필에 비해 훨씬 논리적이고 형식적인 틀을 갖춘 장르이다. 국어교육론에서는 정서적인 감흥을 일으키는 글만큼 설득력이 강한 글에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평론을 읽는 쾌감은 대체로 일일이 감상하기 어려운 최근의 우리 문학 작품들을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그것들을 평론해 내는 강한 논리와 철학에 감동하게 되는 데 있다. 평론의 내용만큼이나 평론의 형식을 읽는 것은 그간 내 편한 대로 써 온 ‘날 글’들을 조율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작품을 감상하는 룰은 어때야 하고 그러기 위해 내가 쌓아야 할 소양은 무엇인지, 근거 있는 판단과 어느 한 쪽으로 경도되지 않는 평가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배우게 된다.

 “글을 읽고 쓰지 않았다면 다른 어처구니없는 일에 정신이 팔린 채 영영 ‘북극곰’이 되어 표류했겠죠. 녹아 없어져버렸겠죠. 책을 들고 나가면 되잖아요. 세상으로 여러 권 책을 들고 나가서 읽다가 가끔은 깔고 앉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북극곰을 기억하는 아기 토끼씨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나의 ‘글’과 나의 ‘봄날’을 모두 놓치지 않을 수 있기를! 그게 제가 생각하는 올바름이고 쉽지는 않겠지만 그게 저의 꿈이에요. (p.463)

 특히 <귀족예절론>은 국어시간에 버겁게만 느껴졌던 시들에 대한 전에 본 적 없는 새롭고 신선한 해석들을 보여주었다. 감정적 귀족주의와 선배들의 도덕주의 사이에서 어느 것이 옳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전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 비중을 두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작가는 ‘글’과 ‘봄날’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금 내 품에 쏙 안길 수 있는 아기 토끼와 TV광고에서나 볼 법한, 먼 곳의 북극곰을 잊지 않는 삶. 어쩌면 저자는 최근의 우리 시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면서 김소월이나 서정주, 김수영이나 황동규 쯤에서 멈춰버렸을 지도 모르는 우리 기억 속의 시사(詩史)를 ‘쭈욱-’ 이어서 우리의 시단이 이토록 파격적이고 풍부하게 채워져 왔음을 은근하고 영민하게 자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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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제20회 우수문학도서 독서감상문대회 수상작발표 (11/29)>

http://www.for-munhak.or.kr/idx.html?Qy=notice&nid=498

 

 문학나눔에서 주최하는 우수문학도서 독서감상문대회 수상작이 발표되었습니다.^^

 예전보다는 참여하는 회원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지만, 올해처럼 '문학나눔사업 폐지'론이 나오는 때에는 이런 대회 하나, 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올해는 수상하지 못했지만 덕분에 읽고 싶었던 평론 한 편 읽고, 서평 한 편 남길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수상하신 분들의 글 읽으면서 '대리만족'하렵니다.^^

 내년에도 문학나눔이 폐지되지 않고 21회 대회를 이웃님들께 소개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j*****n 2013.11.2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