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일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분이다. 우리 국토, 산하, 문화재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선생님의 책을 보면, 가히 그 정성이 어느 정도되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다시 쓰는 택리지 시리즈>는 정말, 우리나라 강과 산을 샅샅이 훑으며 산하의 역사와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문 교양 지리서가 아닐까 싶다. 도대체 어디를 얼마나 발품 팔아 답사를 다녀야만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다시 말하지만 <다시 쓰는 택리지>는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 역사 지리서라고 해도 전혀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 등을 걸었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곳의 산을 올랐다고 하는데, 그 자세와 정신은 가히 본받고 배우고 싶다. 나 역시 최근에 우리 국토 산하의 매력에 빠져 시간이 나는 틈틈이 우리나라 100대 명산과 명승지를 두루 답사 다니고 있다. 작년에는 제주도 한라산을 백록담 정상까지 두 번이나 올랐고, 인왕산과 북한산 백운대에 올랐으며, 올해에는 대구 팔공산과 비슬산, 강원도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으며, 최근에는 서산 해미읍성을 답사하였다. 서울, 강원, 충청, 경남, 경북은 그나마 자주 다니는 것 같은데, 전라도는 가 본 게 사실상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노래라 해야 할까? 시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 글귀만 생각하면, 녹두장군 전봉준이 저절로 연상된다.
“너는 어떤 학문을 하고 있었는가?” “나는 공맹의 학을 닦았다.” “동학에 언제부터 관계했는가?” “3년 전부터다.” “어떠한 것에 감동했는가?” “보국안민(나라 일을 돕고 백성을 평안하게 한다)”
한 서린 참요만을 남기고 역사 속에 묻혀버린 동학농민혁명은 그 명칭이 여러 가지다. ‘동학난’부터 ‘갑오농민전쟁’, ‘동학혁명’, ‘1894’, ‘갑오동학농민혁명’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명명에 많은 이들이 뜻을 같이 하고 있다. 2018년 봄인가, 마음먹고 거금을 들여 송기숙 선생님이 집필하신 소설 <녹두장군 전12권(시대의 창>을 구입했다. 12권의 방대한 소설이라서 틈틈히 읽고 있는데, 아직 다 읽지는 못했고, 6권까지 읽다가 현재 중단된 상태이다. 반은 읽고 아직 반은 남은 셈이다. 워낙에 스케일이 크고 작가이신 송기숙 선생님의 입담이 좋아서 소설 자제는 굉장히 재미있다. 다만, 소설을 읽으면서 아쉽거나 갑갑했던 점이 바로 녹두장군 전봉준을 필두로 한 동학농민군의 활동 무대였다. 전라도 땅을 가본 곳이 많지 않다보니, 소설을 읽으면서도 도무지 그 지명과 자취가 명쾌하게 연결되지 않고 자꾸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신정일 선생님의 <동학농민혁명 답사기>를 보고 정말 너무너무 반가웠다. 뭔가 간이 심심했던 국에 소금이나 국간장처럼 아주 맞춤한 양념이 가미된 그런 느낌이었다. 신정일 선생의 이 책은 소설 녹두장군과 함께 읽으면 꼭 좋은 자매책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무엇보다 소설 <녹두장군>의 부족하고 아쉬웠던 부분을 채울 수 있다. 1894년 전라도 땅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동학농학혁명 답사기를 통해 그때 그 시절 현장 속으로 가보자 |
|
해파랑길, 변산마실길 등의 여러 길을 제안했고 <다시 쓰는 택리지>로 유명한 신정일 저자의 책을 만났다. 책 표지 왼쪽의 '우리땅 우리강산' 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새삼스럽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갑오년의 역사 속 현장으로 들어가본다. 책을 읽으면 동학농민혁명의 발화와 봉기, 승리와 패배의 과정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늘 시간적 순서에 맞는 건 아니지만, 저자가 농민군의 발자취를 따라 답사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에 대체로 들어맞는 느낌이다. 답사기의 매력은 촛점으로 삼는 주제 외에도 그 땅과 얽힌, 시대를 뛰어넘는 다양한 사연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저자의 입담도 구수하고 해박하다. 다만 보다 더 풍부한 사진 자료와 지도가 들어갔으면 좋겠다.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싶은 순간에 해당의 사진과 지도가 없을 때는 너무 아쉬웠다. 공주 우금치의 동학혁명 위령탑은 박정희가, 정읍 고부의 황토현 기념관은 전두환이 세웠다. 하지만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은 모두 짓이겨져 있으니, 역사의 승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전두환의 조부가 고부 사람으로 동학당이 되어 전봉준을 따라다녔다는 이야기는 귀가 솔깃했다. 광복군 출신의 천도교 교령으로 6.25 때 사단장을 역임하고 외무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최덕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서정주의 외조부와 김지하의 조부가 모두 동학당이었다는 것도 놀랍고, 동양 최대의 미륵불이 있다는 금산사 미륵전을 보러 오는 사람은 불교도보다 증산교 신자들이 더 많다는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전라도 53개 주군에서 유일하게 집강소가 설치되지 않은 나주를 찾아, 무기 하나 없이 적진 속에 들어가 나주목사와 담판을 벌였던 전봉준의 담대함이야말로 가장 감탄스런 일이었다. 호남과 호서의 남북접 양군이 논산에서 만나 본진을 설치했던 곳이자, 손병희와 전봉준이 의형제를 맺었다는 소토산. 이를 찾기 위해 논산 바닥을 헤매고 다녔던 <녹두장군>의 저자 송기숙 선생의 일화는 그 고충의 정도를 잘 보여준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가는 혁명과 역사의 현장들이 몹시도 아쉬울 따름이다. 역사가 얼마나 우연과 필연 속에 자리하는가는 다음의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동학의 2대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은 1898년 4월에 붙잡혀 고등재판소의 판결을 받고 6월 교수형에 처해진다. 당시 판사로 해월에게 사형을 내린 이는 조병갑이다. 조병갑이 누구던가. 바로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고부 민란을 유발시켰던 고부군수 조병갑, 바로 그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까막눈이었던 최시형은 스승 최제우의 죽음 앞에서 맹세한다. "사람이 바로 한울인 고로 사람은 평등하고 차별이 없다. 사람이 인위에 의해 귀천으로 나누어진 것은 하늘의 이치를 거역하는 것이다. 우리 도인은 일체 귀천의 차별을 철폐하고 선사의 뜻에 부응함을 주로 하기 바란다." (253쪽) 사람이 곧 한울인데 이 세상에 귀천이 어디 따로 있는가 라고 가르친 최제우는 두 여종을 딸과 며느리로 삼았다. 그의 뒤를 이은 최시형은 베를 짜고 있는 다른 이의 며느리를 보고는 "이제부터 누가 묻거든 우리 며느리가 베를 짠다고 하지 말고, 일하는 우리 한울님께서 베를 짠다고 하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농민혁명을 가능케 했던 동학 사상을 다시 돌아보고 살펴야 할 이유다. "사람을 섬기고, 자연을 섬기고, 세상의 모든 것을 섬기는, 섬김과 모심을 통해서만 세상은 밝고 건강하게 존재할 것" (251쪽) 이라는 저자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
|
문학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인 신정일작가가 동학운동이 일어났던 성지들과 그당시의 이야기들을 작가의 눈과 발로 걸은 취재기가 지역의 이야기와 동학운동. 이른바 민중이 자신들의 운명과 나라의 부패를 척결하고자 했던 그 덩시의 이야기들을 다시금 되살려지게 하는 담담하게 읽혀지는 취재기이며 여러 사람들에게 잃겨졌으면 하는 책이다. 2019년 현재. 머릿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고 두번째 갑오년이 지난 현재 이미 100주년이 넘은 이 일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와 교훈을 현재까지 주고 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만다 이 한서린 참요가 남기고 최근에 드라마도 방영하기도 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이야기는 일제및 친일파에 의해 주권이 넘어가고 광복후에도 친일잔재를 청산못한 우리의 아픈 현실을 본다면 민중에 의해 우리의 얼을 살리고 생존을 하려했던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했던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최경선등의 최후는 많은 시사점들을 주고 ,작가가 고창소요산. 문사산등 전봉준이나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들의 생가터들과 영광 문수산과 황토현승리와 전주성, 그리고 나주지역의 황룡강 전적지등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작가의 견해와 그 덩시의 이야기들이 백성들의 아픔과 조병갑등 탐관오리들의 박해이야기들을 담담히 이야기해준다. 끝내 청일전장으로 촉발되게한 이들의 운명이 우금치전쟁으로 동학농민혁명의 많은 인물들이 전사하고 지도자들도 토벌군들이 의해 하나둘 스러지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운명이나 목숨을 걸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일어났다는것은 보고 한편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청이나 일본 러시아의 힘을 빌러 결국에는 나라의 운명이 무너진 기득권 일부 및 매국노들의 일화를 되새겨보면 아직도 우리는 이때의 혁명이 끊나지 않은것을 알수 있다. 작가의 발걸음과 이야기들이 많은 울림을 주는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일혀졌으면 좋겠다.
|
|
194. 신정일의 동학농민혁명 답사기
차분하게 글을 읽기가 힘들었다.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우리 조상들의 한서린 혁명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은 마음부터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산보하듯이 동학사상에 관한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발걸음을 옮겨 이 산과 저 산을 넘고 동학혁명의 흔적이 담긴 곳들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가슴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전봉준과 김개남 그리고 손화중이 이끄는 혁명군이 고부에서 혁명의 기치를 들고 일어난 이야기를 할 때 나의 마음 역시 그곳에 있는 듯 하다.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인 저자는 그의 걸음걸음 하나하나를 글로 잘 옮겨 놓았다. 이것 뿐이 아니다. 곳곳에 잊혀져가는 흔적들을 잘 찾아내어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사실 우리는 동학의 역사와 자취에 대해 거의 모른다. 패자의 역사이고 민초들의 항쟁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최근에 이르러 정부에서 동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 무척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더불어 이제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금씩 주제로 다루어지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반 대중들에게 동학혁명에 대해 인지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 같아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런 차원을 넘어 현재의 땅을 밟으며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것이 더 강하고 진한 울림을 전해준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전개와 더불어 이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동학혁명을 오늘에 기록하려 했던 여러 역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곁다리로 이야기해준다. 하나의 에피소드라면 조선시대의 많은 관아들이 이제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학교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책은 한 줄로 넘어갔지만 그 한 줄조차 알지 못했던 나의 역사적 무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또한 동학혁명의 단초를 제공했던 고부군수 조병갑이 결국은 최시형에게 사형을 언도했던 판사라는 사실을 읽으면서 단순한 분노보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체념도 함께 갖는다. 그 이후로도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독립 운동가를 체포했던 일제 경찰은 해방이 되어서도 독립 운동가를 탄압하는 경찰이 되었다. 오늘날도 그렇지 않다는 보장이 없다.
저자의 발걸음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동학혁명의 땅이었던 전라북도에 한정되지 않는다. 최제우를 찾으러 경주 구미산으로도 보은집회를 조명하러, 충북 보은으로 그리고 지리산과 장흥에 이른다. 그 발에 새긴 자국 하나하나가 이 책의 글이요 문장이다. 이 책 한 권이 동학혁명운동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책 한권은 동학혁명운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저변을 넓히고 그 당시의 동학이 세상을 통해 바꾸고자 했던 과제가 오늘에도 똑같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
|
동학농민혁명은 어려서 학교에 다닐때 국사시간에 배운것이 전부일거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녹두장군 전봉준이 다인듯 할만큼 농민혁명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거 같다. 실로 민초들의 투쟁기라고도 할수있으며 답사기 형식이긴 하지만 그 유명한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와는 느낌이 많이 다른 책이다. 저자인 신정일은 일명 도보여행가 라고 한다. 부산에서부터 통일전망대까지의 해안도로를 도보길(해파랑길)로 개발될수 있게 했으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답사기를 출판할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 책은 동학운동의 시초인 최제우를 시작으로 해서 총 17개의 산을 주제로 하여 알려주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책에 나오는 지명들이 대개 전라도와 충청도인 것도 의미가 있는듯 하다. 곡창지대로서와 농민들(소작농)이 많았던 지역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그 현장들을 직접 답사하면서 기록된 이 책은 단순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닌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기리고 오래도록 전승하기위한 목적으로서도 훌륭한 역할을 해내는거 같다. 그래서 역사를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기도 하다. 느즈막히 우리의 고대역사에 관심을 가졌었던 나도 정말 슬프지만 감명깊게 읽어간듯 하다.
|
|
우리는 매일 걷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매일을 걷는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고, 걸었던 곳은 나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우리의 선조들, 우리의 조상들의 생활터전이기도 했다.
그들도 매일 매일 우리가 걸었던 곳을 걸었을 것이다.
거리는 변했을지 모르지만, 산과 바다는 여전히 그대로 일 것이다.
우리가 읽었던 "신정일의 동학농민혁명 답사가"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은 어떤 지역이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갖게 되었다.
우리의 땀을 흘려 일구었던 터전을, 우리 조상들도 일구며 살아왔다. 그들이 일구며 살았던 삶의 터전에 후손인 우리도 땅을 경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후손들도 우리가 밟았던 터전을 밟으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이 살아왔던 이곳,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 우리의 후손이 살아가야 할 이곳에 자유가 없다면 어찌하랴, 조선말에 민족의 단결이 있었다. 그들은 수많은 세월동안 착취와 억압속에서 계급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기본적인 인간의 삶 조차 누릴 수 없는 농민들을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녹두장군이라고 불리는 전병준를 비롯하여 김개남, 손화중의 중심으로 민족 항거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권을 뒤엎고자 함이 아니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면서 봉기하게 되었다. 시대적, 정치적, 강대국들의 패권으로 인해 민족봉기, 동학혁명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과 정신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통해 더욱 민족애가 깊어지면서 계급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는 동학혁명의 정신이 국민들의 마음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책은 동학혁명의 진행 과정들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정신은 지금도 진행형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지역마다 문화가 있다. 지역마다 지역색이 있다. 그러나 동학혁명을 통해 지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가게 되었다.
이 책은 동학혁명의 현장기이다. 까마득하게 잃어버렸던 동학혁명 정신을 혁명지를 답하사면서 새롭게 발굴하고자 하는 저자의 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시대는 변한다. 그러나 시대마다 아픔과 서러움은 잊어서는 안된다. 잊지 못함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우리들의 마음에 새겨야 한다.
발단된 교통으로 슬쩍 지나쳤던 혁명지를 저자의 답사기를 통해 새롭게 나가오게 되었다. 국민들의 마음과 정신을 하나로 뭉쳐 항거했던 현장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지금의 우리는 남북, 동서, 계층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저자의 책을 통해 하나된 민족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
|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조정석이 열연을 한 ‘녹두꽃’이라는 역사 드라마가 방송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 조정석이 나와서도 좋았지만 동학 농민혁명을 다룬 드라마라 더욱 흥미진진하게 보았습니다. 이 드라마 제목인 나오는 녹두꽃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라는 참요에 나오는 위 노래에서 일반적으로 파랑새는 창생(蒼生), 즉 백성을 비유하고, 녹두꽃은 전봉준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요라는 것이 상징적이고 원작자나 원작자의 의도가 명확히 전해지지 않고 어구도 조금씩 바뀌기도 해서 비슷한 게 많은 노래라 해석도 저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녹두꽃이 아닌 '파랑'이 '팔왕(八王)'을 의미하는 것으로 즉 전(全)의 파자로 전봉준을 의미하며 '새'는 민중 즉 동학농민군을 뜻한다는 설득력이 있는 주장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유명한 한 서린 참요만을 남기고 역사 속에 묻혀버린 동학농민혁명은 그동안 부르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이름도 여러 가지였습니다. 당시 조선이나 일본 정부 그리고 일부 유생 측의 입장은 ‘동학난’이라 하여 폭도로 규정하였고 이는 일제강점기까지 공식적인 표현이 될 수 밖에 없었죠. 당연하게도 해방 후는 일제와 봉건주의에 항거한 농민들의 혁명으로 ‘갑오농민전쟁’, ‘동학혁명’, 그리고 최근 주류적으로 일컫는 ‘갑오동학농민혁명’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동학농민혁명답사기’인 것처럼 이 책은 저자가 동학농민혁명의 전적지를 돌아보며 농민군이 탐관오리에 맞서고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자취를 찾아서 기록한 책입니다. 저자는 동학농민혁명 전적지 답사 여정에서 역사의 발자국이 뚜렷하게 찍힌 산들을 만나고, 그 산자락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과 ‘사람이 곧 한울’인 갑오년 농민군의 맑은 정신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길을 나섰다고 합니다.
물론 저자가 가장 먼저 찾아 가는 곳은 전봉준의 고향이자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라는 고부입니다. 고부 두승산 아래에서 19세기에 걸출한 인물들이 태어나고 살다 갔는데,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와 덕천면 신월리 손바래기 마을에서 태어나 증산교를 창시한 강일순이 바로 그들입니다. 저자는 이어 녹두장군과 나주목사의 담판을 지켜본 나주 금성산 그리고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의 산인 경주 구미산 등 17장에 걸쳐 동학농민혁명의 무대를 살펴봅니다.
여기에는 이 태어난 고창 당촌마을 뒷산, 전봉준의 태몽 설화를 간직한 소요산, 황토현 승전을 낳은 무장기포의 목격자인 고창 문수산, 영광에 무혈 입성한 동학농민군의 남진을 지켜본 영광의 진산, 녹두장군과 나주목사의 담판이 진행됐던 나주의 진산, 동학농민혁명의 처음과 마지막을 바라 본 완주 모악산, 호남좌도를 호령했던 혁명가 김개남의 산인 남원 교룡산, 동학농민군의 2차 기병을 바라본 완주 서방산, 동학농민군의 한양 진격을 물끄러미 응원했던 여산 천호산, 동학농민군의 죽음과 부활을 알리는 공주 주미산, 동학농민군의 섬진강 싸움을 바라본 지리산 형제봉 등으로 이어집니다.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인 저자는 1980년대 중반에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해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의 재조명을 위한 사업을 다양하게 펼쳐왔다고 합니다. 이번 책은 동학농민혁명의 전적지를 차례로 돌아보며 농민군이 탐관오리에 맞서고 외세에 맞서 민중과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자취를 기록했는데, 싸움의 승리를 기억하기 위한 전적지 답사서가 아닌, 싸움의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역사 기록서로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주요 장소가 사진으로 생생하게 소개되어 있고, 이 장소들에 얽힌 흥미로운 설화 등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최초로 아래로부터의 근대적 혁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일본군에 의해 제압당했지만 그 정신은 아직도 살아서 우리 후손들에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요즘 다시 동학농민혁명이 있었던 일본이 군국주의의 기치아래 과거의 과오를 뉘우치지 못하고 적반하장으로 구한말처럼 도발하는 이 시기에, 이 답사기를 따라 저도 한번 답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
|
동학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인내천 등도 다들 알 거고, 전봉준이나 동학 혁명 등에 대해서도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근데 동학이 무얼 말하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니까 겉은 아는데, 속은 잘 모르는 거다.
세상에 그런 게 참 많고 많지만, 사실 동학이 그런 것은 좀 아쉽다.
저자는 ‘사람이 한울이라고 설파한 가장 민중적인 사상인 동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보통사람은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니 얼마나 모순인가’하고 안타까워한다.
동학이 영향을 미친 건 평범한 사람들, 당시 고생했던 민초들이다. 그들에게 많은 말, 어려운 말, 복잡한 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인내천, 사람이 하늘이고, 모든 사람 속에 한울님이 계신 거다. 나도 소중하고, 너도 소중하다.
양반 상놈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소중하다. 차별도 없다. 남녀 차별, 신분 차별, 나이 차별 모두 다 무너진다.
단순하고 분명하다.
동학이 뜻을 세우게 된 배경은 억압과 착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넘어서는 새로운 사상+삶이 바로 동학이다.
이 책은 동학 역사 기행문이다. 책 곳곳에 사진이 많은데, 아마 저자가 직접 찍지 않았을까 싶다.
해당 지역에 가서 직접 돌아보며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역사 이야기가 흥미롭게 우러나온다.
저자가 전주 근방에 살기에 전라도 중심으로 책이 펼쳐진다. 아쉽기도 하고, 내가 해야 할 몫이라고도 생각드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강원 홍천 지방의 동학 운동이다.
내가 사는 근방에도 동학공원이 있고, 추모사업회에서 여러 활동도 한다.
어떻게 좀 접목시킬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아직 잘은 모르겠는데, 이러한 책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만들어내는 게 필요해보인다.
나름의 공부를 통해 역사+사상을 익히고, 나도 동학 ‘하다’ 보면 되겠지.
그래, 동학은 아는 게 아니라 하는 거다.
손과 발로 쓴 이 책이 무척 반갑고, 소중하다. 이런 땀과 눈물, 역사가 담긴 책들이 계속 나오면 좋겠다. |
|
얼마전 SBS에서 드라마 “녹두꽃”을 방영하였다. 제목만으로도 생각나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녹두장군 전봉준.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주요 인물. 비록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고 이야기되어지지만 혁명에 참가했던 많은 이들이 의병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고 하니 혁명이 실패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씨가 뿌려져 흙속에 숨겨져 있을땐 그것이 실패인 것처럼 보여질 뿐이다. 흙을 뚫고 새싹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희망을 품게 된다. 동학농민혁명은 그 씨앗을 뿌린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씨앗이 싹을 틔워 의병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럼에도 우리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 그리고 무관심하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시작된 동학이 전라도에서 꽃을 피웠고, 충청도, 강원도, 황해도를 비롯한 전역에서 활활 타오르다가 사라져 간 그 흔적을 찾아 부단히 떠나고 부단히 돌아왔다. 남에서 북으로, 해지는 서해에서 해뜨는 동해로, 내가 찾아 헤맨 길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가 졉혀졌다. 나를 살게 하고 부단히 깨어나게 한 길이여!” - P. 301.
<신정일의 동학농민혁명 답사기>는 문화사학자이자 해파랑길, 소백산자락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을 만든 도보여행가인 저자가 전라도와 충청도의 동학농민혁명의 치열했던 현장을 삼십년간 찾아다니며 취재하고 기록한 역사적 내용을 담고 있는 책으로, 투쟁이 있었던 현장 곳곳의 안타까운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들이 왜 일어서야만 했고, 어떻게 자신들의 혁명을 성취해 갔으며, 결국 어떻게 무너지고 실패하였는지를 상세히 설명해주기에, 그리고 그들의 자취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음을 알려주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고부의 농민 봉기와 무장기포에서 전주화약까지의 1차 봉기는 반봉건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삼례에서 기병한 2차 봉기는 한단계 더 나아갔다. 외세와 맞서 싸운 완전한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P. 169.
역사적으로 진보는 내부의 분열로 무너져간다고 한다. 보다 큰 이상을 위해 조그마한 차이, 조그마한 도덕적 흠결을 양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진보의 영역에서 그 차이, 도덕적 흠결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무엇이 되어 그들을 분열시켜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진보가 있어 민주주의나 인권, 복지 등에서 우리나라는 계속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로의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그 철저함으로 인해 발전 속도가 더디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는 영원히 함께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한 쪽만으로는 날 수가 없으니. 난 개인적으로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 수만 있다면 말이다. |
|
국가도
사람의 일생과 비슷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힘이 약하고 아무것도 갖춰진게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성장해 최전성기를 누리고,
이후에는 쇠락하기 시작하다가 결국 멸망하면서 사라집니다.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면서 오늘날 문명의 기반이 된 로마
제국, 짧은 시간에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광대한 지역을 지배한 몽골 제국, 발칸 반도와 중동, 북아프리카를 지배한 오스만 제국
등은 과거의 영화를 뒤로 하고 이제는 역사 속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국가가 쇠락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쌓인 불만으로 반란이
일어나면서 멸망이 가속화되기도 하는데 조선의 역사도 500여년에 이르지만 말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발생하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