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에 대한 독특한 관점과 재치있는 표현이 돋보이는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는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 '서세동점의 시작'이라는 타이틀의 1권은 본격적인 이 시기에 대한 역사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한중일 역사'에 대한 각국의 관점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 19세기 이후의 한중일의 세계사를 다루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한중일 세계사'라는 타이틀에 대한 자문으로부터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타이틀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과연 중국과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타이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부분에 대한 설명은 왜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기에 그동안의 역사책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한 부분이기에 흥미롭다. 물론 그 당위성에 대하여 학술적으로 어렵게 설명하고 있는 책들도 있지만, 이 책을 통하여 보여지는 부분은 누구나 쉽게 그러한 것을 깨달을 수 있다라는 점이 돋보인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중일로 표현되는 세계사는 지엽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동아시아의 대국으로서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중국이 맞닿은 국가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러시아, 인도, 서아시아와 같이 다양하기 때문에 한중일의 역사는 중국 역사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떠할까? 동아시아의 가장 끝쪽에 존재하는 섬나라이기에 우리와 비슷한 관점일 수 있지만, 서양에 의한 근대화가 먼저 이루어지면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脱亜入欧)'론처럼 일본의 시선은 아시아 역사의 일부가 아닌 영국, 미국, 프랑스와 같은 제국주의 시대의 열강들로 향해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일본의 행보는 아시아보다는 유럽과 미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그러한 부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중일 세계사'는 한국의 시선에 맞춘 비보편적인 관점일까?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이 책으로 하여금 이 시기의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이유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시기에 한국은 약소 국가로서 열강의 침략과 더불어 결국에는 일본에 합병되는 암울한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암울한 시기가 오히려 한국을 통하여 중국과 일본을 밀접한 관계로 맺어주고 있다는 점이 바로 한중일 세계사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제시한다. 3국의 근대 이후의 역사는 결국 한중일이라는 카테고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기에 한중일 세계사에 대한 3국의 관점은 분명 차이가 있지만, 그에 대한 연구는 필요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그 시기의 흐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라는 점에서 살아있는 역사로도 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서양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19세기 동아시아를 시작점으로 삼고 있다. 1권은 바로 그 시작점에 대한 배경과 진행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기존의 책들과 달리 색다른 표현으로 그러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면테크 전성시대'라는 소제목을 통하여 영국의 확장을 설명하는 이 부분은 영국의 산업의 발전이 어떻게 중국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영국은 면화가 아닌 모직에 주력해 왔다. 면화라는 것은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지방의 목화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이전에 양털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직물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섬유라 할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의 원인 역시 플랑드르 지방의 모직 산업과 관련이 있다라는 부분과 후일 영국에서 발생하는 인클로져 운동 역시 바로 이러한 모직 산업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면화가 수입되면서 영국은 인도로부터 그 원료를 수입하여 그것을 가공하여 수출을 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결국 산업 혁명을 촉발하게 된다. 면화로부터 실을 얻고, 그 실로 옷감을 짜야하니 자연스럽게 방적기와 방직기가 개발되고, 이로 인하여 점점 공장화가 이루어지면서 영국에는 산업 혁명이 도래하고, 영국이 만든 면직물은 인도에까지 진출하게 된다. 결국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영국의 면직물에 의하여 자국의 면화 산업이 몰락을 초래하고, 영국은 자신들이 생산하던 면직물을 팔기 위하여 중국으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중국에 대한 영국의 무역이 그들의 예상과는 판이하게 흘러갔다는 점이다. 중국으로부터 차와 비단을 수입하면서 자신들의 면직물을 중국에 수출하려는 그들의 계산은 애초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공장화를 통한 대량의 영국 면직물이 중국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여 충분히 자신들의 수입을 만회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였으나, 인도와 달리 중국의 면직 산업은 비록 가내 수공업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중국의 막대한 인구를 감안한다면 그 생산량은 영국의 생산량을 초과함으로써 오히려 저렴하였기에 영국은 심각한 무역 불균형을 마주하게 된다. 여러 나라들로 분리되어 제대로 통제되지 못한 인도와 달리 중국은 청나라에 의한 강력한 중앙 집권화로 인하여 기계로 면직물을 생산하던 영국을 가내 수공업으로 오히려 압도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무역 불균형을 타파하기 위하여 영국은 바로 아편을 생각해낸다. 사실 아편전쟁은 역사상 가장 비도덕적인 전쟁으로 일컬어진다. 당시 영국에서는 아편을 피우는 것이 합법이었다고는 하지만, 중국에서는 그러한 아편을 금지하고 있었기에 영국이 중국으로 아편을 수출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와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은 영국과 달리 그러한 아편 수출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영국 홀로 주도적이었다라는 점에서 역시 비판을 피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중국에 군대를 파견할지의 여부에 대하여 고민하던 영국의 모습은 내부적으로도 아편 수출에 대하여 부담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국 외무부 장관인 파머스턴의 적극적인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강경한 입장은 결국 이 비도덕적인 전쟁의 발발로 이어지게 되고, 중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임칙서 이후의 파견된 대신들의 무능으로 인하여 결국 영국에 굴복하게 된다. 다만 영국의 목적은 중국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무역의 판로 대상이라는 점에서 청나라는 새로운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물론 이 시기는 고난의 연장선이긴 하지만. 기존의 역사서와는 달리 면직 산업이 어떻게 아편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상세한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산업 혁명 - 제국주의 - 서세동점'이라는 흐름을 좀 더 상세히 묘사하고 있기에 도움이 된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의 상황은 간략하게나마 난학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쇄국 정책을 고수한 에도 막부의 외교 정책을 통하여 일정 부분 해외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기에 훗날 개항의 과정과 연계하여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아직 출간되지 않은 시리즈의 3권의 가제가 '국화와 총'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내용들은 3권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
|
우리는 아직도 역사의 범주를 '한국사'와 '세계사'로 가르며 한국사는 '나라안의 역사'를, 세계사는 '나라밖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이는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식민사관의 그릇된 인식'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제는 힘으로 우리 나라를 강제병탄하면서 우리의 모든 것을 왜곡하고 축소하며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었다. 그래서 대한제국을 다시 '조선'이라 부르며 차별과 멸시의 대명사로 만들었으며, 우리 역사의 장면은 '한반도'로 축소되고 말았고, 외세의 위압에 자율적 대항은 꿈도 못꾸고 오직 '타율적 순응'만 하는 식민의 DNA를 갖고 있을 뿐이라며 왜곡을 일삼았다. 이런 시각은 일제의 패망과 함께 순삭했어야 마땅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오늘날에는 우리 역사를 '한반도'라는 작은 그릇으로만 보지 말고, '한반도'라는 세상의 중심에서 세계로 뻗어나갔던 우리 역사의 진면목을 다시금 살펴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면 고대 4대문명과 동시대에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삼았던 고조선이 다시 보일 것이며, 중국세력이 춘추전국시대로 사분오열이 되었을 때 우리도 4국시대를 맞아 군웅할거의 쟁패를 벌였으며, 중국의 혼란을 틈타 팽창정책을 펼쳐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의 면모를 선보였고, 중국이 오랜 혼란을 접고 수당시대를 맞이하자 우리도 똘똘 뭉쳐 통일국가의 면모를 보이며 세계정세의 흐름과 맞물려 역사를 꽃 피웠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그 와중에 중국 이외의 세력과도 연이 닿아서 활발한 외교전을 펼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신라의 청해진과 고려의 벽란도는 아주 사소한 사료일 뿐일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저멀리 인도와 아라비아를 넘어 유럽의 로마와도 맞닿아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아직은 사료가 태부족한 탓에 이들과 어떠한 역사를 맺고 풀었는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우리가 '우리의 시각'으로 세계를 톺아보면 분명히 우리의 영향력이 고작 '한반도' 안에서만 머물고 있지 않았을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전세계가 한국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이 결코 우리 역사가 처음 경험하는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의 근대사에 깊이 영향을 끼친 중국과 일본에서 벌어진 일들을 확대경으로 깊이 들여다보는 동시에 '우리의 시야'를 확 넓혀서 좁게는 동북아시아 삼국을, 넓게는 서구열강세력까지 포함해서 '함께 읽는' 소중한 안목을 선사한 책이기에 매우 뜻깊다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책으로 '서세동점의 시작'이라는 제목이 참으로 솔깃하다.
이 책의 시리즈는 '한국사' 정도는 통달했을 독자 여러분들의 지적 수준을 높이보고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우리 역사'는 쏙 빼고서 '남의 나라 역사'만 주야장천 풀어내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허나 우리가 고등학교 수준의 '한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서구열강이 동쪽으로 밀려들면서 아시아국가 곳곳이 극심한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 차원에서 서구열강이 중국에서 한 일과 일본에서 한 일을 각각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는 조금 외돌톨이처럼 따로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 까닭은 바로 '은'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었단다.
서구열강이 동쪽으로 밀려들어와 가장 게걸스럽게 탐욕의 본성을 드러냈던 근본적인 목적 가운데 으뜸이 바로 '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 중국의 은과 일본의 은은 서양상인들의 주요 품목이 되어 활발한 무역(?)을 일으키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던 셈이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은화'가 아닌 상평통보라는 '동전'을 썼던 탓에 특별한 관심(!)을 덜 받게 되었던 셈이다. 암튼 서구열강은 동양의 은 경제시스템에 당당히 개입을 했고, 자기들 입맛대로 '룰'을 바꾸려 했고, 그 결과 중국은 아편전쟁을 치뤘고, 다음 책에서 다뤄지겠지만 일본은 쇄국정책을 풀고 개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큰 홍역을 치르고 난 뒤에 '근대화'에 접어든 중국과 일본은 또 다른 결말을 맞게 된다. 물론 우리도 말이다. 그건 차차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암튼, 첫 번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바로 '아편전쟁의 흑막'이 낱낱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의 역사책에서 서구열강의 침탈과 근대화의 시작을 이야기하면서 '아편전쟁'은 수없이 강조되었다. 그렇지만 아편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맺게 되었는지는 '도식적'으로 간략히만 전할 뿐, 세세한 전개내용과 뒷이야기, 그리고 감춰진 이야기까지 속속 파헤친 책은 내 기억으로 이 책이 첫 번째 책이 분명하다. 그 전까지의 역사책에서는 그저 대략적인 내용만 반복할 뿐이었다. 더러운 영국이 중국인을 상대로 아편밀매를 했고, 이를 근절시키려는 중국의 당연한 조치에 영국이 전쟁을 일으켜 '난징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강제로 맺게 한 것이 중국이 근대화를 시작하게 된 까닭이었다...라는 내용 말이다.
이걸 이 책에서는 서양상인들이 '은본위제도' 경제시스템에 전세계의 은을 진공청소기로 흡입하고 있던 차에 중국에서는 도리어 영국의 은을 빨아들이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전제를 깔아놓은 다음에, 왜 그런고 하니, 바로 영국이 자랑하는 '면직물'이 중국의 비단에 밀리고 더 값싼 면직물에 발려서 제대로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영국인이 사랑하는 '홍차(밀크티)'를 비롯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에 열광한 덕분에 전세계에서 흡입한 은이 중국산 제품 수입 열광에 의해 중국에 죄다 빨려 들어가버린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아편'을 유통시켜 영국에 막대한 이득을 되돌려 놓을 수 있었다는 스토리를 알게 해주었다. 그 뒤에 벌어진 '임칙서, 아편 퐁당', '영국, 해군 출발', '아편전쟁 발발', '청나라군대, 시원하게 발림', '난징조약, 불평등조약의 시초' 등등이 저절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뿐 아니다. 이 책에는 '아편전쟁의 민낯'을 낱낱히 밝히며, 당시 청나라의 무능과 헛발질, 영국의 탐욕스런 전쟁사, 당시 무기체제의 비밀 등등 알면 알수록 역사적 흥미가 쑥쑥 올라가는 경험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재미는 '결말을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재밌는 역사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심지어 '과정도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역사적인 사건과 사건을 이어주는 '또 다른 역사의 비밀 장면'을 들여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딴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관점'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고 의문을 품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역사란 '정답'이 없는 학문이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이고, 그 해석에 '납득'이 더해지면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납득'이란 개인의 납득이 아닌 '모두의 납득'일 때만 그렇다. 그렇게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을 갖춰야 하며 당연히 학문답게 '보편타당한 근거'로 탄탄하게 역사를 풀어내야만 할 것이다. 이 책도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설득력의 높낮이가 오르락내리락하곤 하는데, 그 역시, 현명한 독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다음 책은 문제의 '태평천국운동' 이야기다. |
|
이번엔 '일본개항'이다. 19세기말, 일본이 쇄국에 이어 개항을 하기까지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청나라가 '아편전쟁의 패배' 이후에 굴육적인 개항과 '태평천국의 난'이란 대혼란을 맞은 것처럼 일본도 실질적인 권세를 누리던 막부가 굴욕적(?)인 개항 이후에 '존왕양이의 대혼란'을 겪으면서 권력의 핵심이 막부에서 일왕으로 넘어가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같은 시기 조선에서도 '세도정치의 폐해'가 극심해지면서 혼란기를 맞이하지만 서구열강의 침략이 '같은 시기' 중국과 일본에 비해 덜했던 터라 말도 못할 정도로 국력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은 '동북아 삼국'이 공통으로 겪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서양의 중세 이전까지만 해도 국력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던 '동북아 삼국'이 몇 백년만에 역전해서 맥을 못추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하루가 멀다하고 피 튀기는 싸움과 함께 '근대화'를 맞이할 만큼 이성이 깨이는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달', 그리고 그 정점이었던 '산업혁명'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서양의 괴력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는데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는 상대적으로 '근대화'가 뒤쳐졌던 탓에 '서양의 제국주의 팽창'을 막을 방도도 찾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문명국'으로 앞서던 동양의 여러 대국들이 차례차례 서양의 제국주의 침략에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맥없이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암튼, 작금의 세계화를 이끄는 서양의 선진국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발빠르게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를 볼작시면, 우리가 얼마나 뒤쳐졌다가 '대역전'을 이루며 앞서나가고 있는지 한 눈에 비교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경험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책 시리즈의 참 매력일테고 말이다. 자, 지금부터 '일본개항'을 소개하겠다.
일본은 일찍이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서 '조총'을 수입하며 서양의 앞선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한다. 허나 서양의 문물과 함께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까지 들어오게 되자 '살아있는 신'이라 불리는 일왕을 모시는 일본인들의 정신적 건강(?)에 심히 해롭다는 결론을 내리고 '쇄국'에 돌입하고 만다. 서양을 향한 유일한 통로는 '네덜란드(화란)'를 파트너로 삼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쇄국을 이어오며 외국인을 철저히 못 들어오게 하였는데, 중국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서구열강의 공격에 맥없이 패배하고 굴육적인 '불평등 조약'을 맺고 후덜덜해진 상황이라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곧바로 태세를 전환하게 된다.
바야흐로 '쇄국'을 철회한 것이다. 당시 일본의 실세는 '막부'에 있었다. 막부를 이끄는 '쇼군'이 지방영주인 '다이묘'들을 다스리며 일본 전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외국인들도 그런 '막부'와 조약을 맺고 이권을 챙기려 했다. 허나 일본은 '막부'가 다스리고 있긴 하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일왕'이 다스리는 '만세일계의 신(神)국'이었기에 쇼군은 일왕에게 승인을 밟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유예기간'을 달라고 한다. 이때가 바로 페리제독이 이끄는 '흑선'이 함포를 발사한 뒤에 서양과 첫 외교를 시작한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일본 내부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던 터라 '외세의 압력'에 개항을 결정했더라도 수월하게 진행될 수는 없었다. 당시 실질적 권력을 쥐고 있던 '막부의 권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왕'에게 충성을 다하며 일본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겠다는 '존왕양이 운동'이 지방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에게 충성하겠다는 것은 '왕조국가'의 당연한 진리이며, 유교국가에서는 으뜸으로 취급받던 자연스런 사상이었지만, 일본은 '일왕'에게 충성을 받치되 '권력의 중심'은 막부의 우두머리인 '쇼군'에게 있었기에 일본의 무사집단은 일제히 쇼군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본의 '이중적인 행태'가 일본의 개항을 맞아 대혼란의 빌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서양의 위협에 막부가 오금을 지리며 무력하게 개항 조약을 맺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자존심'이 짓밟혔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무력한 막부를 탓하고 못난 짓을 서슴지 않는 쇼군을 타도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단숨에 '일왕파'와 '막부파'로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갈라서게 된 셈이다. 여기에 '막부파'는 쇼군자리를 놓고 '개혁파'와 '구세력'으로 갈라져 권력승계 다툼을 벌이게 되니, 개항조약에 사인을 받으러 미국을 비롯한 서구열강들이 찾아올 날짜는 다가오는데, 일본 내부에서는 혼란만 가중되어 해결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질 않으니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실질적인 힘도 '막부'에게만 있는 상황이고 보니, 문명개화가 덜 된 일본은 '닥치고 막부에 충성'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허나 서양의 힘을 제대로 알기는커녕 대충이라도 가늠할 줄 모르던 '일왕'과 '존왕양이 지사들'은 이 기회에 막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막부 흔들기'에 열중했던 것이다. 서양의 강력한 힘을 감지하고 '당장'은 납작 엎드려서 소나기는 피해가자는 현실적인 대안을 실천중이던 막부로서는 답답할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그 와중에 권력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쇼군'이 병약하고 무능한 어린아이들로 명맥을 이어나갔다는 것도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본은 '막부의 나라'였기에 막부는 '내우외환'을 맞아 어찌어찌 버틸 뿐이었다.
한편, 서양은 왜 일본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을까? 아직 영국은 두 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을 치르며 청나라를 요리하기에 바빠 일본까지 넘볼(?)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 사이에 미국과 러시아가 먼저 일본을 선점하려 했는데, 미국은 '고래잡이의 전진기지'로 삼고자 했으며, 러시아는 영국의 눈을 피해 '부동항'을 차지하려고 각각 일본을 최적의 장소로 손꼽았던 것이다. 당시 '고래기름'은 석유가 나오기 전까지 '산업의 에너지원이자 윤활유'였던 탓에 태평양에서 원활한 고래잡이를 하기 위해선 일본에 안전한 정박지를 만들어놓는 것이 미국에게 절실했던 것이다. 반면에 러시아는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으로 정신이 없는 청나라를 대신해서 '연해주 일대'를 러시아가 다스리겠다면서, 어차피 영국이나 프랑스에게 빼앗길(?) 바에야 오랜 친분(?) 관계에 있는 러시아가 대신 차지하는 것이 청나라에게도 이득이 아니겠냐는 해괴한 논리를 펴서, 그토록 염원이었던 '부동항'을 차지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 러시아는 만주를 비롯해서 사할린과 그 아래에 있는 여러 섬들을 차지함과 동시에 일본의 항구를 기착지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약을 맺길 원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일본은 미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는 것으로 시작해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와도 '최혜국대우'를 포함한 불평등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된다. 이후에 펼쳐질 내우외환의 깊은 내막이 곧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에 앞서 4권에서는 '태평천국, 그 이후'가 펼쳐진다. |
|
3권에 이어, 다시 '일본'이다. 지난 3권에서는 일본이 '개항'을 하면서 겪은 혼란을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는 개항으로 인한 일본 내부의 파장과 분열, 그리고 대혼란으로 이어지는 대환장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존왕양이'를 기치로 내건 지사(사무라이)들이 있다. 우리로 치면 벼슬도 없는 시골양반이나 뭣도 없이 기개만 높은 젊은 유생쯤으로 여기면 좋을 듯 싶지만, 이들이 들고 있는 것이 '붓'이 아니라 '칼'을 든 사무라이라는 점이 일본을 대혼란으로 치닫게 만든 근거로 작용하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해진 셈이다. 일단 '존왕양이 지사'에 대한 탄생부터 이야기하련다.
그들의 탄생은 지난 3권에서 자세히 다뤘다. 오랜 평화를 지속했던 일본이 빗장을 닫아 걸고 쇄국을 해왔던 것은 다들 알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오랜 평화는 묘한 '힘의 균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바로 일왕가(천황)와 쇼군가(정이대장군)라는 두 개의 큰 기둥이 일본의 정국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왕은 일찍부터 권세를 잃고, 막부(사무라이 정부)가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 다시 말해, 권력의 명분은 일왕이, 권력의 실체는 막부가 갖고 있는 요상한 일이 벌어진 셈인데, 우리도 고려시대 무신정부가 들어서면서 고려왕을 대신해서 '최씨무신정부'가 60여년 간 실세 역할을 한 경험을 비춰볼 때 그다지 낯선 정부형태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이 요상한 까닭은 그런 형태로 230여 년, 아니 그 이상을 버텨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실세인 '막부'도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여러 개의 '번(지방세력)'으로 나뉘어 '다이묘(지방영주)'가 각 지역을 다스리면서 막부에 충성을 하는 '봉건제 형태'로 지속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왕이 있으나 '충성'은 막부의 수장인 '장군(쇼군)'에게 바치는 형태로 오랫동안 지속해왔단 말이다.
일본이 이런 형태로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유교의 영향'을 덜 받은 까닭이 크다. 같은 시기 중국과 한국의 여러 왕조가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며 '중앙집권제'가 일반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같은 '유교권 국가'였는데도, 일본은 명분과 권력의 향방이 서로 다른 체제로 지내왔던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 평화가 지속되다보니 '권력층의 분화'가 일어나게 될 수밖에 없게 되었으나, 섬나라 일본의 특성상 밖으로 분출하는 것보다 속으로 곪아가는 것을 택하는 방식이 더 자연스러웠던 관계로, 개항을 할 즈음의 '지사(志士)'들이 심취한 것은 바로 '학문'이었다. 다시 말해, 칼을 든 사무라이들이 칼질보다 학문을 파고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파고든 학문은 크게 두 갈래였는데, 바로 '난학(네덜란드 상인들이 주로 전파한 서양학문)'과 '유학(전통적인 동양학문)'이었다.
바로, 이 점을 주목하면서 일찍이 일본이 서양학문에 눈을 떠서 동양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썰을 푸는 이들이 많지만, 이 당시에 '난학 열풍'이 분 것은 사실이지만, 극소수에 불과했고, 그나마 쇄국의 영향으로 외국인(네덜란드인은 제외)이 풍랑으로 일본해안에 떠밀려오면 사형을 시키던 상황에서 대놓고 '서양학문'을 공부하고 있다고 자랑할 사무라이들은 그닥 많지 않았었다. 그보다는 사상적으로 친숙했던 동양의 학문인 '유학'에 빠져드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던 모양이다. 헌데 '유학'이 강조하는 사상은 바로 '충(忠)'인 관계로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유학에 심취하면 할수록 묘한 괴리감에 빠져들게 된다. 다름 아니라, 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옳으냐, 장군에게 충성하는 것은 그르냐..하는 혼란 말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본래 왕족과 귀족이 아닌 '평민계층'이었다. 이들 로열패밀리들이 서로 치고 받고 싸울 때 '무사'가 필요하니, 전쟁을 수행하고 자신을 보호할 칼 쓰는 '싸울아비('사무라이'의 어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함)' 필요했기에 칼 좀 쓰는 이들이 대거 '전문화 과정(?)'을 거쳐 '무사집단'을 형성하였고, 이들이 나중에 무능한 귀족을 썰어버리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일왕을 '바지 임금'으로 만들고서 자신들이 권력행사를 해왔던 것이다. 기왕 권력쟁탈에 성공했으면 스스로 '왕좌'를 차지할 법도 하련만, 섬나라 사람들의 기질이 '조화(섭리)'를 깨는 것을 매우 기피한다고 해서 차마 '왕족'까지 갈아치우지는 못하고, 그렇게 간판은 '일왕(명분)'으로 내걸고서 실권은 '장군(실리)'이 챙기는 형태로 이어왔던 셈이다. 물론, 이를 반대하던 반란세력이 있어 여러 차례 '막부'를 치는 '반막부 세력'이 등장해서 일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도 실행되곤 했지만, 번번히 실패를 하고 '반세력'을 처단했단다. 물론, '간판'은 내비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막부'가 쇄국을 포기하고 '개항'을 선택하니, 뜻 있는 사무라이들이 들고 일어나게 되었다. 이른바 '존왕양이(나라에 충성하고 서양오랑캐를 무찌르자)'를 내세운 것이다. 이는 그만큼 '막부의 힘'이 약해지고 무력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랫동안 평화를 구축해오면서 '막부'는 사실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여러 번'들을 지배하는 구조를 이어왔는데, 페리제독의 함포 몇 방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백기를 든 막부에 대한 실망감이 이만저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못난 막부가 하는 짓이라고는 '권력다툼'과 '내부총질' 뿐이었고, 그로 인해 '민생경제'는 파탄에 이르고, 급기야 서양세력의 꼼수(환수이익)로 인해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엄청나게 오르는 등 민심마저 '막부'를 등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렁해진 '막부'를 향해 가장 먼저 칼을 빼든 것은 '다이묘(지방영주)'들이었다. 특히, 막부와 친하지 않았던 다이묘들, 다시 말해, 막부에게 멸시받던 지방영주들이 먼저 반기를 들어 막부를 공격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물렁해졌다고 해도 막부는 막부. 힘겨운 과정을 통해 '반막부 세력'을 처단하였지만, 이번엔 '일왕'쪽에서 막부를 공격했다. 이것이 좀 묘한데, 서양 세력의 힘이 무서워서, 일단 '개항'에 도장을 찍긴 했지만, 명목상으론 '일본의 대표'는 일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항'을 결정한 막부는 '일왕'에게 사건의 일말을 보고하고 '도장'을 받기로 했건만, 돌연 '일왕'이 도장찍기를 거부하고 나선 것임. 이를 부추긴 세력이 바로 '존왕양이 지사'들이고 말이다. 모처럼 일본이 충성을 바쳐야 할 '방향성'을 제대로 잡긴 했지만, 그 방향이 하필이면 아무런 힘도 없는 '일왕가'였고, 당연히 실세였던 막부로서는 기가 찰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존왕양이 지사'들에게 기름을 부으며 불을 지핀 세력이 바로 '반막부파'였고 말이다.
막부로서는 밖으론 서양세력의 압력에 쩔쩔 맸고, 안으론 '말 안 듣는 세력'이 생겨나 일본을 위기에서 구해낼 '핵심주체'인데도 이도저도 못하는 사단이 나고 만 셈이다. 이를 난제를 풀기 위해 꼼수를 생각해냈으니 바로 '공무합체(일왕가와 막부가가 서로 혼인을 해서 한 가족이 되는 것)'였다. 이는 '명분'과 '실세'가 한 몸이 되는 것이니, 어려운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는 묘수가 될 수도 있었으나, 이는 물과 기름을 하나로 섞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으로 물색없는 핑계만 대려는 꼼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찌 '개항'을 하면서 동시에 '양이(또는 쇄국)'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일본은 늘 이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 했던지라 '핵심관계자'들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물에 물 탄듯, 술에 물 탄듯 어물쩍 넘어가버린다.
하지만 '존왕양이 지사'들은 이런 뜨뜻미지근한 해법에 가만 있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충성'만을 외치며 일본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고, 이런 똘끼를 보이는 시골무사들에게 일본의 민중은 외세에 꿀리지 않는 자긍심을 느끼며 지지의사를 보내게 된다. 여기에 똘끼로 똘똘 뭉친 두 집단이 있었으니 바로 '조슈(長州)'와 '사쓰마(薩摩)' 번이었다. 이 두 개의 번은 일찍부터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서양 학문과 무기를 배우고 익힌 자신감과 더불어 자신들이 일본의 마지막 충의지사라는 자부심까지 갖게 되자. 아주 지독한 '존왕양이'를 내세우며 일왕과 막부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안달을 냈다. 그로 인해 개항 이후 무역을 위해 일본 내에 들어온 외국인 관리와 상인을 향한 무차별 사냥(?)에 나설 정도였고, 막부쪽 사람이라면 암살도 자행하는 등 막가파식으로 '양이'를 실천하곤 했다.
이렇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은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등의 열강들은 군함을 보내 일본에 실력행사를 하려 했고, 막부는 이런 분란이 일본 전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디까지나 '조슈와 사쓰마'의 독단적인 행동이라고 선을 긋고, 열강들이 '그쪽'만 공격하는 것에 '이면합의'까지 하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 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편전쟁'에서 확인되었 듯이 일본이 자력으로 서양함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없음을 직시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에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서양함대를 상대로 꽤나 분전했던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함대를 보내 조슈와 사쓰마를 공격해서 상당한 피해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함대도 큰 피해를 보았고, 특히, 조슈 번은 좁다란 해로를 막아 서양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데 성공함으로써 완전한 패배는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서양도 청 왕조와는 달리 큰 이득이 없는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확대하는 뜻이 없었기에 이쯤해서 물러나는 것(물론, 막부로부터 엄청난 배상금은 챙기고서)으로 마무리하였다.
이제 억울한 것은 일왕에게 충성을 받쳤지만 일왕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이었다. 이에 조슈 번은 일왕이 머무는 '교토(京)'로 억울한 사연을 전하러 군대를 보내고, 막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교토로 오는 길을 막는다. 물론 실질적인 군대를 보낸 것은 '친막부파'였던 지방영주들이었고, 사쓰마 번의 영주는 이번 전쟁을 치루면서 막부가 옳았음을 지지하며 조슈 번에게 칼을 겨누게 되니, 홀로 남은 조슈 번은 외로운 전투를 벌이다 전멸에 가까운 큰 피해를 받고 본진으로 후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리는 듯, 전투중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일왕이 머무는 교토 전체가 불타는 '교토 대화재'로 번지니, 앞으로의 일본 향방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
|
지난 2권에 이어 다시 '태평천국'이다. 각설하고, 태평천국 운동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에 대해서 살펴보려 한다. 서구열강의 힘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던 '청 왕조'가 무너져가는 와중에 안팎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사상을 내세우며 등장한 '태평천국 운동'은 끝내 청 왕조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는 아니었다. 아편은 여전히 중국을 병들게 만들고 있었고, 관료주의의 부정부패는 여전했으며, 외부의 침략에 무력한 대응으로 백성들의 삶은 나락을 전전하게 만들고 삶의 희망을 꺾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 4억 인구의 청 왕조에서 3천 만명이 때죽음 당하고 말았으니 피비린내 나는 전장속에서 백성들의 삶이 비참했을지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1851년부터 1864년까지 무려 14년 동안에 벌어진 비극이다. 전체인구의 약 7%의 피를 부른 이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만 하는 것일까? 주목해야 할 점은 '사이비교주'에게 속아 피해를 당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기간이었고, 너무나도 많은 희생이었다. 그렇기에 '태평천국 운동'을 그저 그런 난리로 치부하기엔 궁금증을 자아내는 점이 너무나도 많다. 먼저 태평천국 운동이 내세웠던 기치는 '반봉건', '반외세'였다. 아편전쟁의 패배로 청 왕조의 무능력이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새로운 세력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이 '하느님의 둘째 아들이 중국인이고, 그가 바로 홍수전이다'라는 사이비종교의 냄새가 물씬 나더라도, 민생을 우선으로 삼고, 남녀평등을 주장했으며, 사회부조리한 정책(변발, 전족 금지 등)에 반대를 분명히 하면서 교인들끼리 서로 궁휼히 여기는 태평천국의 사상은 '초기 사회주의'에 버금갈 정도로 혁신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마르크스조차 초기에는 '태평천국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태평천국 운동'은 중국사회에 보기 드문 '개혁운동'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그러나 남경(난징)을 수도로 삼고 반군을 조성해 청 왕조의 수도인 북경(베이징)을 공격하면서부터 태평천국 운동은 '초심'을 잃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북경 공략이 예상과 달리 실패하면서 운동의 핵심인사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도부의 '권력다툼'이 심화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조차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청 왕조는 애로우 사건이 원인이 되어 '2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며 무능함을 여전히 증명하고 있었지만, 태평천국 운동은 내부갈등을 겪으며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태평천국 운동의 영향력은 건재했던지라 장강(양쯔강) 이남에서 보여주는 위력은 대단했고, 중국대륙의 남동부를 거의 장악하기에 이른다. 서구열강에게도 못난 모습을 보이던 '청 왕조'는 태평천국 세력과의 대결에서도 여전히 못나게만 굴 뿐이었다.
이런 혼란을 틈타 '태평천국 세력'은 힘을 다시 모았고, 다시금 세력확장을 도모하며 내부결속을 다졌고, 동서 양쪽 방향으로 정벌을 떠나게 된다. 이 와중에 '청 왕조'는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에게 밀려 '북경 함락'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직면하고, 황제(함풍제)가 열하로 피난을 갔으며, 보물창고인 '원명원'이 죄다 털리고 방화로 인해 전부 불타버리는 웃지 못할 비극이 벌어진다. 청 왕조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도 '태평천국 운동'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그건 서양세력이 원치 않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목적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차지해 무역으로 이득을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 나게 '청 왕조'를 두들겨(?) 유리한 조약(!)을 얻어냈는데, 이것이 새로운 태평천국 세력의 손을 들어주게 되는 꼴이 된다면, 그들의 이득에 큰 손실이 날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북경을 한창 두들겨패고 있는 와중에도 상해(상하이)쪽에서는 청 왕조를 도와 '태평천국 세력'과 전쟁을 불사한 것이다. 여기서 서구열강들의 속셈이 뻔히 드러나게 된 셈이다. 그들은 '문명개화'를 목표로 전쟁도 불사한다고 하지만, 개뿔,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등쳐먹고 빨대 꽂았을 뿐이었던 것이다. 결국, 중국은 스스로 '근대화의 문'을 열 수도 있었던 '태평천국 운동'을 그저그런 난리로 치부하며 '태평천국의 난'으로 확정짓고 마무리 되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그럼에도 14년간이나 태평천국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져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민중의 각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청 왕조의 지배 아래에서는 살 수 없겠다는 깨우침이 '태평천국 운동'을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고, 이쪽도 저쪽도 살 수 없겠다 싶은 민중들은 비록 '노예 같은 삶'일지라도 외국으로 발길을 돌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는 쪽으로 결론을 내었기 때문이다. 마침, 서구열강에서도 수많은 인력이 필요(특히, 미국)했던지라 중국인의 해외진출을 돕는 방향으로 청 왕조를 압박했고, 이때를 계기로 전세계로 뻗어간 중국인들은 '차이나타운'을 형성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태평천국 운동' 때문에 이 모든 결과를 도출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이견들이 많다. 그 덕분에 '태평천국 운동'에 대한 평가 또한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말이다. 너무나도 많은 피를 흘린 결과치고는 좀 허무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것으로 일단락 지을 수 있겠다. |
|
배운 듯 하지만 안 배운 것과 진배 없을 정도로 깜깜한 '동북아시아의 근현대사'는 <한국사>에서조차 드문드문 배울 뿐, 우리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꺼풀 들춰보면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은 날 것이다. 왜냐면 '배우긴 배웠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 그건 역사는 '단편적'으로만 배울 뿐, '맥락'과 '흐름'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사>는 한반도에서만 일어난 일만 다루고, <세계사>는 백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벌인 일만 써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마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을 가르치고 배우긴 하지만 '암기'하기 좋게 사건이 일어나게된 원인과 결과만을 '요약'해서 시험문제로 다루니, 웬만큼 역사에 통달하지 않고서는 '교과서'만 읽고서 역사의 맥락과 유구한 흐름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역사는 그만 배워야 하지 않을까.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1840년대 한중일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토대로 전세계적인 '움직임'을 들여다볼 수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아편전쟁의 패배의 쓰라림 속에서 민중들의 반란인 '태평천국의 난'이 벌어진다. 일본에서는 이양선과 서양인이 출몰하면 몽땅 파괴하고 죽이는 쇄국을 하면서도 네덜란드 상인만은 출입을 허가하며 서양의 문물을 배우며 '난학열풍'을 벌인다. 그러는 한편, 청이 아편전쟁에서 패배하고 서구열강들에게 쳐발리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개항'을 하기에 이르고, 이런 흐름에 미국이 '태평양시대'를 맞아 고래잡이하는 포경선의 안전한 활약을 보장받기 위해 동북아시아 3국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길목인 일본이 가장 먼저 주목 받고 말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세도정치 시기'의 대혼란을 겪으며 민중들이 핍박 받는 일이 자행되지만, 상대적으로 중일에 비해서 서양의 관심을 덜 받은 까닭에 아직은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오래 가지 않고 격변의 시기를 맞이할 거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2>의 핵심은 '태평천국의 난'을 다룬 것이다. 그동안 역사책에 종종 거론되긴 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까닭에 이 책만큼 자세하고 흥미진진하게 알아볼 수 있는 책이 없기 때문이다. 고작 14년(1851~1864)만에 수억의 인명이 살상 당한 비극을 초래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데도,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접할 수 있는 책이 드물다는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럴까?
태평천국운동은 홍수전이 "나는 상제님(하나님)의 둘째 아들이다"라는 예언을 들었다는 얼토당토 않은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아편전쟁을 겪으면서 대국의 자존심이 꺾인데다가 이후 서양의 침략에 변변한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백성들의 수탈에만 열을 올리는 무능력한 청조정에 대항하고(반봉건), 서양의 침략에 단호히 맞서며(반외세), 사회주의 색채를 띤 '사유재산 금지', '배급제 실시', '남녀평등 정책', '도덕을 앞세운 행정시스템' 등등 시대적으로도 대단히 앞선 사상을 내세웠던 탓에 당시 핍박받던 수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남경'을 점령하고 화남일대를 다스리며 청조정이 있는 북경까지 공략하는 등 청왕조를 뿌리채 흔들리게 만든 역사적인 운동이었다. 그러나 '태평천국의 난'으로 진압되고 만 까닭은 지도부의 분열과 타락으로 구심점을 잃고 오히려 백성들을 수탈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등의 만행을 일삼았던 탓에 '반봉건', '반외세',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수많은 이들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물론, 태평천국운동 이후에 손문(쑨원)이 똑같은 사상으로 중화민국을 건국하기에 이르고, 모택동(마오쩌둥)의 공산당 이념과도 유사한 사상을 내세웠던 탓에 역사적으로도 그 중대한 사건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태평천국이 '종교적 성향'을 내세웠던 것이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된 원인으로 보인다. 왜냐면 종교운동은 성스럽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성공할까 말까인데, 홍수전을 비롯한 왕을 자칭한 지도부가 먼저 상스럽고 부도덕적인 일로 서로 갈등을 일으키더니 끝끝내 저들끼리 치고 받는 과정에 상대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민심을 잃고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다. 용두사미란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이처럼 '태평천국운동'의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가기 마련이라, 한편으론 대단하다고 평하면서도 막장보다 더한 부끄러움에 감추기 급급한 역사로 치부하곤 한다.
이쯤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도대체 그당시 백성들은 '사이비교주'와 다를 바 없는 홍수전과 그 일당의 꼬임에 넘어가 내전을 방불케 한 전쟁에 참여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출했던 것일까? 그건 정부세력(청왕조)이나 반정부군(태평천국)이나 썩을대로 썩어빠졌기 때문이었다. 백성들 처지에서는 조금이라도 먹고 살 희망이 큰 쪽에 붙고 싶었을 뿐이다. 청의 관료들은 서양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면서도 백성들을 수탈하는데에는 도가 텄기에 일찌감치 민심을 잃었고, 그나마 태평천국운동의 초기에는 '살만한 세상'을 꿈꾸게 해줄 것만 같은 기대감이 부풀어 올라 사기충천하였고, 반봉건, 반외세라는 기치를 내세울 수 있었기에 기꺼이 전재산을 걸고 한 판 승부를 걸었던 셈이다. 다시 말해, 백성들은 이쪽에 붙으나 저쪽에 붙으나 굶어죽기는 매한가지라서 큰 고민할 것도 없을 지경이었단 말이다. 그러니 알만 한 사람은 다 알면서도 '사이비교주'의 편을 들어 새로운 세상을 꿈꿨고, 이들을 상대로 큰 공을 세우면 청왕조에서 한 자리 내어준다고 약속을 하니,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쪽이나 저쪽에 붙어서 죽고 죽이는 비극을 연출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심'을 거스른 나라가 잘 된 예가 없으며, 선량한 백성들이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적인 혼란이 지속되면 큰 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 펼쳐지기 일쑤다. 백성이 유랑걸식을 하며 도적으로 바뀔 때 세상은 경천동지의 대격변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역사에도 잘 나와 있다. 황건적이 그랬고, 홍건적이 그랬다. 그리고 서구열강의 침탈에 청왕조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나자 또다시 백성들은 들고 일어날 때를 기다린 셈이다. 그런데 '사이비교주'와 다를 바 없는 인물이 등장해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말았으니 이때 죽은 수많은 백성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태평천국의 난'을 제대로 조명하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또 하나 늘어나게 된다. 특히 '나쁜 역사'는 반드시 반복되고, 역사를 잊은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는 까닭에 딱 걸맞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사이비교주'와 같은 이가 등장해서 '가짜뉴스'로 선동하고, 혹세무민한 일이 드물지 않기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종교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려는 못된 무리를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목놓아 외치는 '종교의 자유'는 온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집단이기주의'와 다를 바가 없기에 관용을 베풀어서도 안 된다. 특히 '광신도 집단의 행패'가 이웃에게 주는 피해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렇기에 애초부터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서는 안 되지만 '사이비의 마수'가 손을 내미는 곳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가 소외를 시키고, 우리에 의해 소외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내 이웃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며 우리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때 사이비가 발을 붙일 곳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태평천국운동은 청왕조 아래서 신음을 하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선 것이 아니다. 백성들의 불만이 들끓던 시기에 혹세무민하며 자신들의 잇속을 단단히 챙기려는 무리가 백성들을 부추겨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다. 그러니 태평천국운동을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내세웠고, 공산주의보다 앞서서 백성(약자)들의 편에 서서 '이른 사회주의 사상'을 펼쳤다는 등 좋은 말로 포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설령, 태평천국운동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하더라도 준비도 안 된 무능한 지도부에 의해 곧바로 무너져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민중의 의식성장'이다. 비록 피바다를 물색하게 만들 정도로 비극으로 치달은 운동이었지만, 훗날 '중화민국'이란 민주주의 국가를 설립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민중들 손으로 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중화민국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고 외세의 침략과 세계대전이라는 소용돌이속에서 공산당이 민중을 장악하고, 공산당이란 독재세력에 의해 중국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리지 못하고, 중국이 '세계 최고'라고만 주입된 무뇌충 집단이 되어 이성을 잃고 야욕만 내세우는 꼴이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태평천국의 여파가 2권에서 끝난 것은 아니다. 4권에서 다시 이어지니 그때 다시 정리하도록 하겠다. |
|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가 벌써 5권째다. 저자 굽시니스트(본명 김선웅)가 오랫동안 열망해왔던 교양 역사만화 작업이다. 원래 2017년부터 시작한 웹툰 연재를 이어온 것이다. |
|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출간된 굽시니스트 작가님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1권 리뷰입니다. 19세기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를 잘 그려낸 책이라 잘 읽고 있습니다. 세계사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다가 다른 분이 추천해주셔서 구입해서 읽었는데 만화 형식이라 어렵지않아서 꾸준하게 읽고 있습니다. 역사 만화다보니 세계사를 어렵게 느끼는 다른분들께도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다음권도 기대합니다!! |
|
책이 출간되자마자 구입해서 읽었다. 1~5권까지 모두 읽었기에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최대한 빨리 읽었다. 물론 역사책은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이기에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는 것이 모순일 수 있다. 여기서 궁금하다는 것은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저자는 만화라는 형식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서 필요 이상의 상세한 지도와 가족 관계도를 제시한다. 이 부분이 이 시리즈의 미덕이다.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구글맵은 전세계 어디든지 찾을 수 있는 좋은 도구이지만, 책을 읽다가 구글맵으로 위치를 찾다보면 어느새 책을 읽지 않고 스마트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그래서 역사책을 읽을 때, 지도가 읽고 있는 쪽(또는 그 페이지 앞뒤로)에 있으면 엄청 고맙다. 물론 어떤 책은 책의 앞부분 또는 부록에 지도를 그려놓고 있지만, 책 읽으면서 넘겨보는 것 조차 귀찮을 때가 많다. 역사책을 읽다보면 누구는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딸과 결혼을 하고... 이러면 머리 속에 관계도이 그려지다가 포기하기도 한다. 역사에서 사건을 이해할 때 혈연 관계가 중요한 요인이라서 꼭 이해해야 하지만 제대로 그 관계를 이해하면서 책을 읽어나가는 것도 노력이 많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나같이 게으른 사람에게 딱이다. 구글맵도 찾지 않게 하고 가족 관계도를 머리 속으로 그려보지 않게도 하기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은 독자를 이해시키고야 말겠다는 저자의 서술 방식과 입가에 미소짓게 하는 유머까지 갖추었으니, 머리말에서 이 시리즈가 20권이 넘을 수도 있어 책 판매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걱정은 기우일 수 있다. 나는 그게 기우이기를 바란다. |
|
서세동점의 시작편. 우리나라와 가까운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함께 다룬다는 점에서 다른 기타 역사서와 차별되는 점이 아닐까 한다. 또 만화 형식을 띠고 있어 재미와 이해도에 있어서도 보통의 역사서와 다른 장점이다. 이 책은 각 국가별로 대표되는 동물캐릭터를 설정하여 19세기 이후 삼국의 역사를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다. 아직 안결은 아니여서 어디까지 다룰지는 모르지만 내심 기대감과 궁금증을 갖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