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테오-쿨투라_ 최병학 저, 인간사랑 출판사
"테오-쿨투라_ 최병학 저, 인간사랑 출판사" 내용보기
교회(그리스도)와 세상(문화)의 관계에 관한 고민은 기독교와 신학의 역사만큼 오래됐고, 근본적이다. 필자는 문화신학 전공자이다. 문화 전반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신학적, 철학적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회화(테오-아르스)속에서, 영화 속에서(테오-시네마), 사진(테오-포토), 또한 일상 캐릭터와 유행어(대중문화와 윤리)를 통해 문화가 유통되는 과정, 문화 속에 내재
"테오-쿨투라_ 최병학 저, 인간사랑 출판사" 내용보기

교회(그리스도)와 세상(문화)의 관계에 관한 고민은 기독교와 신학의 역사만큼 오래됐고, 근본적이다. 필자는 문화신학 전공자이다. 문화 전반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신학적, 철학적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회화(테오-아르스)속에서, 영화 속에서(테오-시네마), 사진(테오-포토), 또한 일상 캐릭터와 유행어(대중문화와 윤리)를 통해 문화가 유통되는 과정, 문화 속에 내재하고 있는 생각의 틀거리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신앙적으로 모색했다.

저자는 문화 전반을 살펴보며 문화신학의 이름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솔직히 이 책은 어렵다. 물론 지식을 많이 알 수 있다. 인용문도 많고 많은 부분에서 배울 점이 많은데 조금 어려웠다. 특히 종교가 없는 내 관점에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신학과 신앙의 관점에서 문화와 신학의 관계를 고민하는 이들, 또한 문화의 관점에서 종교에 대해 어떤 관계를 설정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통찰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종교와 문화의 대화로 시작한 필자의 테오(신) 시리즈의 3부이다. <테오-아르스:신학과 예술의 만남(2016)>, <테오-시네마:신학과 영화의 만남(2017)>, 그리고 이 책 <테오-쿨투라>까지다.

이 책은 지난 4년간 한국기독신문에 쓴 '최병학 목사의 문화 펼치기'와 인터넷 신문 '에큐메니안'에 게재한 '최병학 목사의 인문학으로 읽는 영화' 등으로 인해 책이 되었다.  

 

책은 눈(目)에서 색깔, 말, 로코스, 말모이(영화 말모이), 기억과 망각, 뇌, 진화심리학 , 인공지능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의 문화와 신앙,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은 인식 할 때 대상 전체를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안다고 할 때 '보지 못하는' 것을 배제하게 된다. 보지 못하는 것, 알지 못하는 것을 타자화하고, 비(非)동일적인 것으로, 반(反)정체성으로 규정하는 인시긔 폭력은 이렇게 눈의 역사와 함께 진행된다. 대지에 발을 붙이고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거대한 눈과 같은 저 로마의 원형 극장을 보라. 『참회록』에서 "눈의 음욕"을 경계한 어거스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세 시대는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삶을 성상과 스테인드글라스, 프레스코화, 목판화 등을 통해 눈에 보이도록 만들었다.

눈의 이성적 능력을 비판한 바울의 가르침(고후 4:18)을 따라 종교개혁가 칼빈은 '믿음이 눈을 감게 하고 귀를 뜨게 한다'고 말하며 청각만이 구원의 영원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했으나, 가톨릭은 성상, 성화, 십자가 이외에도 눈부신 성당, 각종 대회, 축제, 가면, 장관을 이루는 분수 등의 볼거리를 통해 시각문화를 창조했다. (중략)

윌리엄 워즈워스(W.Wordsworth)는 자서전적인 시집 <서곡>에서 이렇게 눈의 폭력을 지적한다. "우리들 감각들 가운데 가장 폭군적인 감각"이며 "그 힘이 잠들 수 있는 어떠한 표면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애통해 한다.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 역시 바깥을 향한 육체의 눈은 언제나 진정한 실체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실체를 볼 수 있는 것은 내면을 향한 눈이며 이러한 눈은 신의 은총으로 가능하다가는 것이다. "그대, 천상의 빛이여 마음속에 빛나라. 그리고 마음의 모든 능력을 비추어라. 거기에 눈을 심고 거기서 모든 안개를 말끔히 거두어 내라.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내가 보고 말할 수 있도록." ---p.18 ~ 19

 

이 책은 이렇듯이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선인들의 이야기와 저서의 인용 등을 통해서 읽다보면 유식해 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부는 레짐과 당신들의 천국이다.

양극화, 갑질과 졸질-마름을 넘어, 펭귄 프로젝트로 부터 이슬람 혐오하는 우리, 인터레그넘 시대, 성서와 민주주의, 가짜뉴스, 전쟁과 마지막 어린양:종말론과 어린양 신학, "미투"까지 나온다.

 

21세기 현재 세계화 시대를 가리켜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인터 레그넘 시대(최고지도자 부재기간)의 시대라고 말한다. 성서의 역서 가운데는 출애급(과 서사시대까지)라고 볼 수 있다. 이것에 대해 조지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통해 이 시대를 보여준다. 디스토피아를 다룬 <1984>에서 오웰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들이 우리를 몰락시킬 것을 두려워했고, 헉슬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우리를 몰락시킬 것을 두려워 했다 라고 말한다

 

조지 오웰은 "고통(외부적 압박)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한다. '1984'에서 우리는 외부나 압제에 지배당할 것을 두려워 했다. 누군가 서적을 금지시킬까 두려워했다. 통제로 인해 문화가 감옥이 될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올더스 헉슬리는 "'즐거움'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통제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차고 넘쳐나는 정보와 지천에 깔린 오락거리로 인해 사고능력이 저하된 수동적인 존재가 될 것을 두려워했다. 둘 다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해박한 지식, 인용하는 문장에 혀를 내두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독서의 깊이가 상상을 초월했다.

또한 독서를 통해 저런 문장을 끌어올리려면 그 독서는 진정한 자신만의 독서로 만든 경지였다.

 

보수의 몰락과 오늘날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도 읽은 책이지만 박노자 교수의 <비굴의 시대>에서 지금 한국사회는 "전례없는 더러운 시대"라는 말. 사회적 연대의식은 증발하고 저마다 자신과 몇 안되는 피붙이 잇속만 추구하고, 타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각자도생의 사회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정의한다. 아프지만 맞는 말이다.

사회개혁, 검찰개혁, 부유층개혁, 사학비리개혁, 사이비 신학 교회 개혁, 재계 개혁 뭐 손 안대야 할 것이 없다. 1948년 건국후 70여년만에 여말이나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을 보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반대한느 자유한국당에 故노회찬 의원은 이렇게 촌철살인의 말을 했다. "정확한 얘기죠. 아니, 동네 파출소가 생긴다고 하니까 그 동네 폭력배들이 싫어하는 것과 똑같은거죠.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라는. 그가 그립다.

잘못은 정당하게 처벌 받고 다시 돌아와도 되는 것을.

 

저자는 1부에서는 개념의 정의를 들어왔다면 2부에서는 좀 더 사회참여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마지막에 시원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내부에서 이렇게 비판하고 하는 건전성이 좋다. 물론 우리나라는 내부비판자에 정말 무서우리만큼 무서운 보복 또는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만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종교적, 정치적 색채가 조금 있는 책이라 색안경을 끼고 봤지만(물론 나는 저자의 정치관에 대체로 동의하는 입장이기는 하다) 굉장히 해박한 지식에 엄청난 독서로 책을 썼다.

 

이 책에 나오는 인용이나 책만 보는 것만 해도 좋은 일인 것 같다.

문화와 종교의 관점에서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저자의 전작도 궁금해졌다. 기회가 되면 읽어볼 수 있기를.

 

* 인간사랑의 출판 정신이 빛나는 책입니다. 책의 분량도 많고, 어려운 또 생각해야 할 부분도 많아서 진도가 더디게 나갔지만 비교적 성실히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d*****2 2019.11.03. 신고 공감 5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기도교적 관점에서 문화를 바라보기
"기도교적 관점에서 문화를 바라보기" 내용보기
문화라는 것은 한 사회를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틀이다. 그런데 그 문화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문화에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잘못된 부분도 이것이 문화라고 주장하면 그것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의 분위기이다. 분명히 우리 눈에는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인 것도 일단 '문화'나 '흐름'이라고 명명하면 더 이상 그것을 판단하기가 힘들다
"기도교적 관점에서 문화를 바라보기" 내용보기

 

문화라는 것은 한 사회를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틀이다. 그런데 그 문화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문화에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잘못된 부분도 이것이 문화라고 주장하면 그것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의 분위기이다. 분명히 우리 눈에는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인 것도 일단 '문화'나 '흐름'이라고 명명하면 더 이상 그것을 판단하기가 힘들다. 그것을 판단하는 순간, 그 사람은 요즘 흔히 말하는 '꼰대'나 '도덕군자'로 매도된다. 그러기에 문화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문화의 더 무서운 부분은 그것이 종교나 사상까지 변질시킨다는 것이다. 어떤 종교나 사상도 문화 속에 들어가면, 그 가치관 속에 동화되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문화를 비판한다는 것은 무척 예민하고 신중한 일이다. 마치 아차 실수하면 생명줄을 끊어버릴 수 있는 위험한 수술이나 전선 하나 잘못 건드리면 기계 전체가 폭파될 수 있는 위험한 작업을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테오-쿨투라]라는 이 책을 읽으며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서도 리뷰를 쓰기가 무척 망설여진다. 이 책을 읽고 어디까지 문화를 비판하고, 또 이 책에서도 한 쪽으로만 치우친 종교적인 관점을 어디까지 비판해야 할지 무척 난감하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글을 써간다.

 

[테오-쿨투라]는 신이나 신학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테오'와 문화를 의미하는 '쿨투라'가 합성된 의미이다. 기독교적 신학의 의미로 사회 문화를 바라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테오-아르스]나 [테오-시네마]와 같이 신학적인 관점에서 예술이나 영화를 바라보는 책들을 출간했었다. 이 책 역시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 현대의 문화를 진단하고 있다. 물론 그 관점이 기독교 신학에서도 진보적인 관점에 속한다. 그래서 주로 이 사회의 양극화의 문제는 약자에 대한 차별이나 학대 등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비판하는 내용이 많다.

 

저자는 이 책 초반에서 기독교는 곡선의 종교라고 말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세계는 직선의 세계라고 말한다. 효율성과 속도를 중요시하는 문화이다. 그런 문화가 기독교 내에까지 침투해서 기독교를 변질시키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아날로그의 여유로운 곡선'을 디지털의 빠른 직선'으로 만든 것이다. 디지털의 직선은 자동화와 가속화를 상징한다. 모든 '실재적인 것'은 4차원을 가지고 있지만, 디지털화를 통해 차츰 4차원에서 움직이는 입체는 조각품의 세계(시간 없는 입체)-그림의 세계(깊이 없는 평면)-텍스트의 세계(평면 없는 선)-컴퓨터화된 세계(선 없는 점들)로 요약되는 자동화와 가속화, 그리고 디지털화의 추상 게임을 시작한다. 이렇게 파시스트적인 속도로 변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양적 성장은 당연하고, 더 많은 양을 획득하려면 더 빨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속도를 내야 한다. 이처럼 속도와 양적 성장과 목표 지향적인 직성의 가치관이 오늘 화살처럼, 창처럼 사회와 세상과 교회와 교인들, 특히 목회자들에게 몰아치고 있다. (P 13)

 

이런 디지털의 빠른 직선들이 온갖 문화에 침투해서,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만들고, 차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런 직선적인 사고관은 단순히 디지털 문화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내일을 향해 달리는 인간의 본성이 이런 획일적이고 별적인 문화를 만드는 근간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의 진화심리학적인 책들이 최근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어서 나 역시 몇 권 읽게 되었다)

 

"인간 지화와 불행의 출발점은 '내일 보자!'이다."라고 진화생물학자인 다니엘 밀로는 말한다. 그는 여느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징을 찾다가, 호모 사피엔스가 어느 날 문득 '내일'이라는 개념을 떠올린 것을 주목한다. 그리고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오늘만 사는 동물'의 낙원에서 추방 당했으며, 돌연 아프리카를 떠나게 되었다. -중략- 그러나 인류는 내일이라는 상상을 발명한 이후 삶에서 항상 불확실한 미래를 염두에 두느라 만성적인 불안과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준비와 계획'이라는 개념을 다시 떠올렸다. 상상된 미래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축적'과 '잉여'가 탄생했고, 이윽고 호모 사피엔스는 '과잉'의 소용돌이라는 현세의 지옥에 빠지게 되었다. (P 73-75)

 

저자는 이런 시각으로 현대의 차별적인 문화, 특히 한국 사회의 차별적인 문화를 비판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하는 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직접 대면하는 매우 실제적인 것들이며 동시에 예민한 문제들이다. 양극화 문제, 비정규직 문제, 미투 문제, 최저임금이나 소득주도성장 분제, 테러 문제 등 하나같이 폭탄을 해체하는 것처럼 어렵고 힘든 문제들을 저자만의 예리한 시각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는 것은 기독교 정신이다. 저자는 기독교와 그리스도는 타인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섬기고 낮아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부분은 4세기의 수도사인 텔레마쿠스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생 세상을 등지고 수도만을 했던 텔레마쿠스는 늙어서 죽기 전에 세상을 보기 위해 당시 세상의 문화의 중심인 로마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개선장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검투 경기가 열리는 것을 관람했다. 텔레마쿠스는 이 장면을 보고 자신이 죽기 전에 세상에 나오게 한 신의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이 싸움을 말렸다. 그 결과 그는 죽임을 당했지만, 죽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싸움을 멈춰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이 책에 이야기하는 저자의 요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결국 종교란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세상으로 나와 세상의 잘못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했던 것은 저자의 방대하고 깊이 있는 사상이다. 단순히 종교적 시각으로만 문화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 과학, 소설, 영화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문화와 종교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시각이 흔히 어떤 책들에서 보이는 시각이 아닌, 저자만의 독특하고 예리한 시각인 것들이 많다. 그러기에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얼마나 많은 독서와 사색을 했는지가 느껴진다. 물론 이런 철학 사상, 특히 발터 베냐민이나 데리다, 들뢰즈, 지젝과 같은 현대철학자를 인용하는 부분에서는 난해한 부분이 많아 인문학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독자들이 읽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영화적인 부분은 우리가 흔히 보는 대중적인 영화들을 통해 현대 문화를 진단하기에 많은 부분 공감이 간다. [위대한 개츠비]나 [블레이드 러너], [루시] 같은 이제는 거의 고전급으로 취급받는 명화부터, [말모이]나 [남한산성], [군함도] 같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한국 영화들도 소개한다.

 

이 책은 많은 사회적인 갈등과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그런 갈등과 문제들 속에서 약자들을 품는 것이 바로 기독교 정신이라고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관점에 매우 공감을 한다. 그러나 또한 한편으로 고민이 되는 부분은 우리가 약자나 많은 사람을 품으면서 또한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나 국가나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교는 약자를 품어야 하지만, 또한 약자의 반대편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 안에서는 약자와 강자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가치관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종교가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에 접근을 할 때나 무척 조심스럽고 예민하게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견해이다. 자칫하면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한 도구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부분을 공감하게 하고, 또 많은 부분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다.

i*******3 2019.09.25. 신고 공감 2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