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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의 '자본' 은 전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 격화되고 결국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였는데, 혁명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영국과 프랑스 등 자본주의가 발달한 곳이 아니라 농업 기반 사회였던 러시아 제국에서였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칼 맑스에 대해 공부하거나 '자본' 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북한에 동조하는 것으로 판단해 경찰서에 끌려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자유롭게 읽어볼 수 있게 되면서 칼 맑스에 대한 전기나 '자본' 완역본 또는 해설판도 많이 출판되고 있네요. '디어 맑스' 는 일반적인 책들과는 형식이 조금 다릅니다. 보통 전기는 시대 순으로 평이하게 서술되는 것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평생 친구이자 동지였던 엥겔스가 맑스의 삶을 회상하는 것처럼 쓰여 있네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맑스 자네는 무엇을 했었고, 우리 사이에 그때 어떤 일이 있었지 등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엥겔스가 없었다면 맑스도 '자본' 을 완성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아무리 친구라도 해도 평생을 일방적으로 도와주기 쉽지 않았을텐데 엥겔스는 자본가였던 아버지의 영국 멘체스터 공장을 이어받아 사업을 하였네요. 비록 그는 자본가를 비판하는 입장이었었지만요. 덕분에 맑스는 금전적으로 특별한 수입이 없어도 빠듯하지만 집필에 몰두할 수 있게 됩니다. 돈이 부족해 친구에게 부탁하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나오기도 하네요. 세계에 미친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의 삶은 무척 어려웠네요. 당시 프로이센 출인이었는데 프랑스나 벨기에 등에서 추방되면서 여러 나라를 전전해야 했고, 나중에는 무국적자로 살아갑니다. 귀족 출신인 예니와 결혼하였는데 자식을 많이 낳았지만 그중에 몇은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해 어릴때 죽기도 합니다. 이미지 때문에 차갑고 냉철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가족에게는 따뜻하였고, 딸들의 결혼 생활을 보면서 사위들에 분노를 느끼기도 하네요. 평생 동안 공부하고 집필하면서 드디어 '자본' 1권을 탈고합니다. 일생의 역작이었던 책이 나오면서 그 뿐만 아니라 엥겔스도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 같네요. 하지만 폭발적인 반응과는 달리 처음에는 무관심에 가까울 정도로 반응이 없었습니다. 결국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도 알제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의 책으로 인해 세계가 바뀐 것을 알게 되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칼 맑스의 전기를 읽는다면 좀 더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사실 관계 뿐만 아니라 생각이나 기분 등 인간적인 면도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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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프로세스로 이 글을 작성하니 자꾸 ‘맑스’라는 이름이 표준어가 아니라고 빨간색 줄이 그어지네요. 이 책의 첫 각주에 따르면 Karl Marx를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표준어로 쓰면 ‘카를 마르크스’로 적어야 한다고 해요. 실제로 이렇게 쓰니 빨간색이 사라졌어요. 저자는 한국 밖으로 나가 ‘카를 마르크스’라고 발음하면 알아듣지 못하지만 ‘칼 맑스’라고 하면 쉽게 대화가 통한다고 해요. 더구나 이 책은 칼 맑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엥겔스가 쓴 정겨운 글의 번역문이기에 표준어가 아니지만 발음대로 ‘칼 맑스’라고 적었다고 하고 저도 적극 동의해요. 저자는 이어서 이하 모든 각주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에 추가했다고 하며, 영문 원고를 입수한 경위는 작품의 곁가지이기에 생략한다고 단언하고 내용을 이어가고 있어요. 물론 이 책은 엥겔스의 감추어진 영문 원고를 번역한 책이 아닌, 국내에 드문 소위 그럴 듯하게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새로운 장르 소설인 ‘팩션’이에요. 더구나 ‘칼 맑스’의 일대기를 엥겔스가 ‘맑스’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한 평전이자 팩션이죠.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칼 맑스의 삶과 사상을 친구 엥겔스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했으며 기본 콘셉트는 ‘수염 없는 맑스’라고 해요. 이 책에는 엥겔스와 맑스의 정말 진한 우정 그리고 트리어의 미인이자 귀족가문의 딸이었던 예나와 유대인인 맑스와의 사랑이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폐해를 겪고 있던 시대에 저항했던 맑스의 사상과 함께 듬뿍 담겨 있어요. 마침 올해가 맑스가 태어난 지 200년이 되는 해라 맑스에 대한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어요. 유럽 전역에 혁명의 기운이 넘치던 1848년 나온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첫 문장 “유럽에는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그것은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는 이후 세상을 바꾸는 커다란 외침이 되었고 세계사를 파란만장한 격랑으로 이끌었어요. 소련을 비롯한 인류의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의 실험에 자의로 또 대부분 타의로 참가하게 되었고 제대로 된 맑스의 실천이 아니라는 비판과 함께 그 실험은 거대한 비극으로 끝나버렸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맑스의 이름이 아직까지 호명되는 건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성찰이 여전히 유효하였고 그러한 성찰과 비판으로 소위 ‘수정’ 자본주의나 유럽 북구식 사회주의가 대두되어 오히려 자본주의의 생명이 연장되는 현상을 낳았기 때문일 거예요. 이처럼 맑스가 현대 공산주의의 병폐들 때문에 그 원흉으로 여겨지고 탄압받아왔지만, 경제적 불평등, 실업, 빈곤 등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마주한 오늘날 그 한계를 해결하는 열쇠 중 하나로 요즘 다시 재조명 받고 있기도 해요. 우리가 잘 모르는 그리고 알아야할 맑스에 대해서 재미있게 읽어가면서 알 수 있는 귀한 팩션이라 가볍게 그러나 현실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서 읽어보시면 좋을 듯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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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아무 정보도 없이 이 책을 읽었을 때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맑스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하는 엥겔스가 화자가 되어 맑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게 때문이죠. 진짜 엥겔스가 쓴 글인 줄 깜박 속을 뻔할 정도로 엥겔스 자신과 맑스에 대해서 정말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맑스에 대해서는 공산주의 즉 맑시즘의 창시자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엥겔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맑스의 친구로서 더 유명합니다. 이 책도 그러한 견지에서 맑스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엥겔스가 맑스에게 보내는 편지 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엥겔스는 맑스의 단순한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맑스주의의 최초의 유포자라는 수식어가 있듯이 엥겔스라는 이름은 언제나 맑스와 나란히 언급되는 데, 대작인 <자본>의 1권만 완성하고 사망한 맑스의 유고를 정리해서 <자본>의 제2권과 제3권을 편집하고 가필한 사람이 엥겔스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절판되어 있던 맑스의 저작이나 소책자나 입수하기 어려운 신문기사를 복원하고 편집 그리고 해설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맑스 저작의 번역에 대한 감시 및 맑스의 유고와 장서에 대한 관리를 했다는 점 등에서도 맑스주의의 실질적인 대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엥겔스의 부단한 노력으로 맑스주의가 사람들 입에 회자되게 되었고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엥겔스는 맑스와 한 몸을 이루는 인물처럼 엥겔스 개인이 독자적으로 전해지기 보다 맑스를 언급하면서 말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부분부분 언급되고 있듯이 엥겔스는 한 사람의 독립적인 뛰어난 사상가 이면서 맑스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생활을 하고 다른 사상을 지녔던 인물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혁명에 대한 관계라는 점에 있었다고 합니다. 맑스가 어디까지나 논단 안에서 혁명 논의를 전개한 데 반해, 엥겔스는 1848년 엘버펠트나 바덴 봉기에 총을 들고 직접 참가했습니다. 또 맑스는 혁명의 열광을 언제나 냉정한 눈으로 분석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삼고 있었지만, 엥겔스는 혁명에 참가하는 것에 마음 쓰고 있었습니다. 즉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오히려 엥겔스가 더 활동적이고 열정적이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맑스와 같이 ‘라인 신문’을 속간하는 등 런던에서 활동하던 엥겔스는 맑스와 같이 재정적 빈곤에 직면한 엥겔스는 부친이 공동으로 경영하는 회사 '에르멘 앤드 엥겔스 상회'에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엥겔스는 사실상 맑스의 재정적 정신적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맡아 엥겔스의 실리적 세계와 이상의 세계라고 하는 이중생활이 시작하게 됩니다. 엥겔스의 이러한 희생을 바탕으로 맑스는 대영박물관과 서재로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이러한 양상은 약 20년간 계속되게 됩니다. 이처럼 이 책은 맑스에 대한 엥겔스의 편지글로서 맑스 전기처럼 보이지만, 제게는 오히려 맑스에 가려져 잊혀졌던 엥겔스의 존재를 드러내는 글로 보입니다. 실질적으로 주인공이었지만, 그늘에 가려 조연의 역할밖에 할 수 없었는 그런 수많은 역사적 존재들처럼 말이죠. 이 책을 통해 어렵기만 했던 맑스와 엥겔스에 대해서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맑스와 엥겔스와 그 시대를 느껴보려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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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의 사진을 보면 전형적인 유럽형의 외모를 가졌다. 덥수룩한 수염에 약간 근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아이들이 보면 울음을 터뜨리며 무서워 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면 실제 칼 맑스의 모습은 어땠을까? 자상한 아버지였을까? 로맨틱한 남자였을까? 고집불통인 학자였을까? 동시대에 살아보지 못해 칼 맑스에 관해서라고는 전해지는 이야기나 책에서밖에 만나지 못했다. <디어 맑스>역시 그런 종류의 소설이다. 실제의 칼 맑스가 아닌 우리가 상상하고 짐작하는 칼 맑스의 이야기가 상상을 뚫고 스토리로 만들어졌다. 우선 이 소설 <디어 맑스>를 읽으려면 '엥겔스'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야 한다. 엥겔스는 맑스이 친구이자 변증법과 사적 유물론의 창시자이고 노동자 계급 운동의 지도자였다. 그리고 <디어 맑스>에서 맑스에게 편지를 쓰고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다. 엥겔스는 친구 맑스에게 편지를 쓴다. 오랜만의 안부를 전하면서 오래전 그들이 20대때를 떠올린다. 맑스와 엥겔스는 방황하던 20대 시절을 함께 보냈다. 엥겔스의 편지로 본 맑스의 20대는 부친의 죽음과 아내 예니의 사랑은 맑스의 베를린 대학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아내 예니는 누나의 친구이자 맑스의 친구의 누나였다. 사교계에서도 유명한 집안의 예니를 사로잡은 맑스는 똑똑하지도 않았고 책만 읽는 불평불만 많은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런 예니와 약혼 7년만에 결혼했지만 무직이었던 맑스는 결혼식에서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서 신혼여행을 마칠 즈음엔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여동생의 결혼이 못마땅했는지 예니의 오빠는 맑스에게 공직을 제안한다. 당시 예니는 임신을 하고 있어 맑스의 가장으로의 의무는 중요했다. 하지만 맑스는 안정적이고 명예까지 따른 관료의 길을 거절한다. 그런 맑스에게 운명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당시 영국의 산업문명이 일어나고 있었고 맨체스터의 대규모 파업을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부두 좌우로 늘어선 건물의 행렬에 압도당했고 긴강감마저 감돌았던 그 행렬에서 노동자들의 눈빛을 본 것이다. 씩씩하게 정치에 참여하고 월급 삭감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보며 감동받은 것이다. 맑스는 노동자들을 보며 약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 차별, 폭력과 테러의 배후로 비판받아 마땅한 자본과 권력에 대해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이렇게 맑스는 노동자들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한다. <디어 맑스>는 물론 허구이고 상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상함으로 맑스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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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지 말아야지. A4 한 장을 내 생각으로 채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누군가 밤을 새우고 날을 거듭하며 썼을 저작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내 의견'을 쓴다는 게 얼마나 불손한가.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던 시절이다. 모든 것이 심드렁하기도 했고, 모든 것이 의미없는 것 같았다. 대관람차를 타고 하늘을 천천히 떠오르고 빙그르르 돌며 저 아래 세상의 사람들, 집, 나무, 자동차, 그것들이 장난감처럼 보이는 시절.
10년 가까이 쳐박아 두었던 책들을 정리했고, 100여 권은 YES24의 바이백으로 보내고 나머지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은 종이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졌다. 다시는 책을 사지 말아야지. 이것도 소유욕이다. 명품 가방을 사대는 사람들과 뭐가 다를까. 한 권을 품에 안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은 그것과 다르지 않은거. 버릴 때 너무 힘들기도 하고. 트렁크에 가득 싫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다짐하고 다짐했다.
잃어버린 대출증을 다시 발급 받고 서가를 몇 바퀴 돌고 눈에 뛴 이 책. 표지 그림이 재미있었고, 단촐한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몇 해 전에 청소년들 눈 높이에 맟춘 마르크스 책을 읽고 너무 재미 있어 당장 [자본]을 이어 샀다. 그 자본은 며칠동안 내 손에서 뒹굴다 오랜시간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다행히 이번 쓰레기장 이주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디어 맑스를 읽으며, 후반부로 갈 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저 [자본]을 빨리 읽어야 하는데, 읽고 싶은데,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마음이 가시기 전에 펼쳐 봐야하는데, 그런 조급함.
디어맑스를 읽으며 몇 번이나 저자 이름을 확인했다. 책을 읽다 맨 앞장의 표지로 돌아가 저자 이름을 확인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그럼에도 저자가 너무 궁금했다. 그 이름을 꼭 외워두고 싶었다. 문장 문장이 감탄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만들었을까. 마치 맑스와 엥겔스가 된 듯한 착각이 들만큼 어쩌면 이렇게 감성적인 표현을, 이성적인 표현을 적절하게 잘 그렸을까.
너무 재밌어서 화장실을 못 갈 정도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는 시간을 빼고 내내 책을 붙들게 만들었다. 맑스의 삶을 마치 영화처럼 보여줬다. 최근에 끝난 '미스터 썬샤인'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문체가 약간 고풍스러워 그랬을 수도 있겠다. 중간 중간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었다.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맑스에서 인간, 그리고 나 자신에게 눈길이 가는.
디어맑스를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하나는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어하는 친구가 생각났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선은 딱 여기까지다라고 말했는데, 그게 아마도 상처가 되었을 텐데, 나는 꼭 그래야만 했을까. 또 하나는 벗어난다고 포기한다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그냥 도망일 뿐이라고 말하는 내 마음 속의 목소리다. 안 될 것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돌아섰는데, 그게 도망인 것 아닌가라는 물음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괴로움이 이 책을 읽으며 행간에서 나를 잡았고, 문장 마디 마디에서 나를 아프게 찔렀다.
여전히 책장 저 꼭대기에 얌전히 앉아 있는 [자본]을 다시 읽어 보겠다. 나를 괴롭히는 두 가지가 자본을 끝내는 시점에는 해결이 되어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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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라고 이야기한다면 인문학에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대부분 아는 사람입니다. 아니 모든 사람이 칼 맑스에 대해서 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인류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입니다. 사회주의는 자본론에서 그리고 공산당선언에서도 드러나다시피 만인의 평등을 꿈꾸던 사상이었습니다. 그런 맑스와 함께한 엥겔스가 맑스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이야기였습니다. 디어 맑스는 칼 맑스의 인생을 한눈에 볼 수 있게끔 구성해둔 책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상을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칼 맑스의 자본과 공산당선언이라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범죄가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불과 20년채 되지 않아 칼 맑스가 이렇게 친근한 존재로 우리 대중앞에 선다는 자체가 상전벽해를 느끼게끔 해준 책이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피케티 21세기 자본을 봤던 적이 있습니다. 그 사회는 칼 맑스가 자본론을 적던 시절과는 다른 시절이지만 소득격차는 그 당시보다 더 심해졌다는 생각을 받기 충분하게끔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칼 맑스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산자계급. 가진 건 아이들밖에 없다는 로마의 계급에서 비롯된 프롤레타리아는 어느새 칼 맑스에 의해서 노동자계급 혹은 혁명의 주체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칼 맑스의 고장 독일은 현재 사회민주주의를 가미한 정책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은 사회주의에 대해서 그리 달갑게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배척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 꽃은 소비에트 연방공화국 즉 소련에서 꽃을 피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정말 어마무시한 사상은 틀림없었습니다. 하지만 디어 맑스는 그저 옆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친근한 말투로 일관하였습니다. 친근한 말투라 오히려 읽기에 더욱 좋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딱딱한 사상책은 싫은데 그래도 맑스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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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맑스 『디어 맑스』를 받아들면서 학창 시절에 칼 맑스의 『자본론』라는 책을 빌려다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가 주장했던 것들이 그렇게 감명 깊게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이 있었나 싶다. 왜냐하면 당시 그 책을 읽는다, 쉬운 듯 하면서도 너무나 딱딱하고 재미가 느껴지지 않았다고나 해야할까?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나니 새삼 반가웠다. 책의 구성은 “”1부 악마가 된 랍비, 2부 알려지지 않은 걸작“ 총 2부로 목차가 구성되어 있다. 맑스의 자본론은 자본의 속성과 축적의 비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했던 기억과 함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 정치를 하는 사람,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 직장을 다니는 사람, 대학생들, ...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한 번쯤을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시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대학 때 교수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맑스가 말하던 공산주의가 이 세상에 정말 실현된다면, 그것은 정말 지상의 낙원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러나 소련에 레닌이 천명했던 공산주의는 맑스가 이야기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레닌과 그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공산주의는 맑스의 공산주의가 아닌, 변질되어버린 사상이라던 말씀이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다. 이 책은 맑스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덥수룩한 그의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을 모니터로 들여다보면서 참 우아한 남자다란 생각을 한다. 수염을 그렇게 멋스럽게 길러 자신의 풍모를 당당하게 세상에 드러내며 사는 그, 자본론을 읽어보면 참 많은 생각들로 가득 찬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 까마득해지는 것은 나만일까? 그는 정말 자본주의를 너무도 잘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등하지 못한 분배, 부익부, 빈익빈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 이명박에 의해 불평등 분배로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는 생각에 놀랄 놀자이다. 거기다, 금수저, 은수저, 흑수저란 자본주의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분류하는 유행어가 확산되고 있는 대한민국에, 그가 나누던 계급의식, 그것 또한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서 소름이 끼칠 정도란 생각을 한다. 길고긴 글을 엥겔스가 친구 맑스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맑스의 사상을, 자본론을 다 이야기하는 듯해서, 술술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엘겔스가 “내가 만일 달라이 라마라면, 자네는 붓다일거야”라는 한마디에 기절초풍이었다. 사실 진짜 맑스의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가난한 자의 고민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밑바닥에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그런 책을 그는 정말 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맑스는 붓다이다란 엘겔스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엥겔스와 칼 맑스는 <공산당선언>을 공동 집필했단다. 엥겔스는 맑스의 뒤에서 경제적 지원을 했고, 맑스가 죽은 뒤 『자본론』에 대한 해설을 통해 이 책에 관심을 쏟게 하고 이 책이 그들의 성서라는 생각을 불어넣은 사람이 바로 엥겔스란다. 두 친구는 공동의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 의존하면서 서로 격려하는 사이였다.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변혁>(1978년) 책으로 맑스의 사상을 선전하는데 기여했는데, 엥겔스 혼자 이 책을 썼단다. 이 책은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 맑스가 차지하고 지위를 빼앗으려고 위협한 베를린대학교 교수 카를 오이겐 뒤랑의 영향력을 분쇄했다. 맑스가 죽은 뒤 맑스의 사상에 관해 제 1의 권위자로 활동했단다. 어떤 학자들은 엥겔스가 맑스의 사상을 왜곡했다 말하지만, 정작 맑스 본인은 엥겔스 때문에 자신의 관념과 견해가 중요하게 왜곡되었다 느낀 적이 없었단다. 맑스가 엥겔스 부인 메리가 죽었는데도 무심했던 것을 서운해 이들의 우정에 위기가 찾아왔었으나 맑스가 엥겔스가 나중에 리지와 살 때, 알뜰살뜰 리지에게 인사말을 붙이면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단다. 엥겔스와 맑스는 맑스가 죽을 때까지 서로 사상을 공유하는 친구로서, 맑스에게 엥겔스는 경제적 지원을 해줬고, 맑스의 사상을 대중화하는데 힘썼다. 맑스가 죽은 후에도 그의 사상에 대한 제 1 권위자가 되었다. 두 사람의 우정으로 태어난 맑스의 『자본론』은 어쩌면 성서만큼이나 지구에 살아가는 사람이란 생명들에게는 축복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 책장을 덮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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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맑스
한때 '칼 마르크스'라는 이름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시절엔 그의 이론이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의 희망인듯한 분위기였던것 같은 시절이었답니다. 그시절엔 모든 사람이 이사람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죠. 그의 이론은 세상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릴 혁명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세상엔 아무리 이론과 논리가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가능성면에서 뒤쳐진다면 그것은 그냥 이론으로 끝날뿐인것이죠. 지구상을 뒤덮을것같던 사회주의 이론도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문제점들이 하나둘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를 끝내는 이지지 못하고 몰락해버린것이죠. 현실과 이상의 차이랄까요?
아무튼 이책은 그이론을 전세계에 알린 '칼 맑스'의 일대기를 그린 이야기입니다. 전기문이라고 해야할지 소설이라고 할지 알쏭달쏭하기는 하지만 저자가 우리나라사람인 '손석춘' 논설위원이라 소설로 보아야하지 않을까 생각이듭니다. 하지만 작가 이름만 숨기고 이책을 읽는다면 자전적 소설로 느껴질것 같네요. 이책은 마르크스에 대한 이야기지만 제3자인 엥겔스의 시선에서 엥겔스가 쓴 마르크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에 대한 객관적인 모습들을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네요. 각종 자료와 사료들을 잘 정리해서 마치 진짜 엥겔스가 마르크스에 대한 일대기를 작성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들 정도로 객관적인 사실을 잘 표현한것 같네요. 작가의 많은 사전 준비와 자료 분석이 무척이나 돋보입니다. 또 우리는 그저 마르크스나 공산당선언이라고하면 뿔달린 빨간색 괴물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의외로 알지 못했던 면을 알게된것 같네요. 마르크스가 종교는 아편이라고 주장했다는데 정작 본인은 개신교인이라는 사실,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또한 헌신적이었다는 것등 소소한 인간적인 면을 통해서 그도 뿔달린 괴물이 아니라 한사람의 인간이었을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네요.
소설이면서도 전기같은 이책을 통해서 마르크스의 다양한 모습들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던것 같네요.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이책은 분명 국내작가의 글인데 불구하고 그에대한 설명이 전혀 없네요. 작가의 작품설명이나 의도등이나 다른 작가들의 평론등이 함께 실렸다면 좋았을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목: 디어 맑스
저자: 손석춘
출판사: 시대의창
출판일: 2018년 4월 24일 초판 1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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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에너지가 넘치는 책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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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라든가 지음(知音)의 고사에서 잘 보듯, 서로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아껴 주며 존중하는 친구 간의 우정은 동서고금을 초월하여 우리의 심금을 울리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