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리 교수의 얘기는 내가 죽음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과 이미지들을 다른 느낌으로 형상화 시킵니다. 평소에 내가 죽음에 대해 막연히 느끼던건 차갑고 외로우며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리 교수의 책을 읽고 좀더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죽음을,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인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보통 책을 사면 혼자 읽고 그냥 보관해 놓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고 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싶더군요. 그래서 친한 친구들에게 자진해서 빌려주는 거의 유일한 책입니다.^^; 무료한 일상에서 차한잔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삶에 대한 감사와 타인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따스함이 배어있는 죽음을 느껴보는 것, 어떠세요? |
|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미치 앨봄의 노교수였던 '모리 교수'의 죽기 전 마지막에 남겼던 말들을 잠언집으로 만든 이 책을 드디어 읽어 보게 되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스승과 제자의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한 인생수업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이 책은 순수히 모리 교수의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는데, 특히 모리 교수가 루게릭 병을 앓고 있었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아서인지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삶을 의미있게 살고자 한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즉 우리들에게 어떻게 죽는 지 알면 어떻게 살지 알 것이라고 알려주는 그의 메시지를 통해서 무엇을 건질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아직은 죽음이란 문제에 대해서 생소하기만 하다. 이 사실 자체가 문제일 것이다. 주변에 고인이 된 사람들도 있고 슬퍼하기도 해보았지만 아직은 나랑 무관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죽음이란게 요즘 세상에는 꼭 나이가 들어서만 죽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고로 인해서 젊어서 죽기도 하고 정말 언제 죽을지 알수가 없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생소한 것일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데 말이다. 모리교수의 메시지들을 생각하자면, 죽음은 두렵고 무서워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죽는 순간까지 후회없이 사는 게 결국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죽어야 할 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다. 죽는 순간 외롭지 않으려면, 덜 후회스럽지 않으려면 모리 교수의 말처럼 자기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고, 주변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가 더 실천해야 할 문제들은 많이 남아 있다. 사실 지금 당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도 많다. 내 나이에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엔 벅차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제 내 심장의 시계가 끊어질 지 모르지만 좀 더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더불어 잘 살아가기 위해서 소중한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좋은 말들이 많았지만,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 심오한 모리 교수의 철학을 다 이해하긴 아직은 무리인 듯 싶다. 그렇지만 모리 슈워츠란 교수에 대해서 두 권의 책을 통해 이제 어느 정도 제대로 알게 된 점이며, 그는 위대한 스승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
|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곧 그런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만다. 자신이 죽음과 동떨어져 있고 자신에게는 그런일이 닥치리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이다. 나역시 그러했다. 스무살을 갓 넘긴 난 죽음은 아직 내게서 멀리 떨어진, 아직은 삶의 끝을 생각하기엔 이른 나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 책은 루게릭 병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둔 한 사람의 자서전이자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수업같은 것이다. 그는 근육들이 굳어지는 병에 걸려 남의 도움없이는 살아갈수 없는 그런 처지에 처해있다. 그리고 곧 죽음을 맞이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는 삶의 희망을 가지고 있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시간을 만끽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만약 그런병에 걸렸다면 그 처럼 삶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을까? 삶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을까..? 죽음에 직면하여 그의 삶속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좀 더 자신에 대해 잘 알수 있고 자신을 사랑해주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의 끈이 더 끈끈히 이어져 오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인상깊은구절] 난 그냥 남들의 도움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남들의 도움을 만끽하겠어. 나는 남에게 의존할 때의 즐거움을 맘껏 느끼겠어 |
|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리'에 대해 얘기해서 사실 나는 그가 누구인지가 궁금했다. 모리 슈워츠. 94년 루게릭 병에 걸려 95년 11월 죽을 때까지 죽음에 직면한 사람의 심리 상태를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동시에 죽음을 두려움과 공포로 바라보지 않고 담담히 삶의 한 부분으로 껴안는 태도를 보여줘 감동을 준다. 그러나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얘기되는 것은 그 이전까지 그가 평생 소외받고 고통하는 이들을 살아왔고, 그의 인격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가장 연약한 육체의 상태에 직면해서도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따뜻함을 잃지 않았으며, 자신의 감정변화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압도되지 않았다. 나는 그를 겸손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 같다. 그의 조언 하나 하나가 지금도 생생하다. [인상깊은구절] 훌륭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언제라도 죽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죽음에 임박하면 목적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끝이 가까웠다고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 작자 모리 슈워츠는 유대인이며 뉴욕의 빈민가에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새 어머니의 사랑 안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미국 매사추세츠 윌트햄에 있는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1994년 루게릭(몸이 서서히 굳어져 마지막엔 호흡할 수 있는 근육까지 마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는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는 그 병과 함께 1995년 11월 4일 숨을 거두었다. 이 책은 그의 온 몸이 마비되어 죽음에 이른 그 순간까지 쓴 책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 멀지 않다는 생각을 즐겁게 간직하십시오.' 곁에 늘 함께 하였던 나의 벗들.. 그러나 죽음으로 작별해야 했던 성민이와 희국이 그리고 재곤이. 한 명씩 한 명씩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세상을 떠났다. 죽음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며 의식의 노력조차 없던 나에게 그들은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화두를 던지고 갔다. 키가 자라는 순간까지, 성장하는 나에겐 죽음은 단지 정점 뒤에 오는 꺽임의 마지막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성장의 정점에 이르고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으며 이젠 육체의 노화마저 느끼면서 내 주위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죽음을 알아간다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상실감, 아직 뭔가를 끝내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아픔 때문에 울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울다 보면 나는 마침내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죽음을 잊고 살기에 자신의 육신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고, 세상에서 아직 충분한 사랑도 하지 않았는데 모든 사랑을 마친 것처럼 포기하며, 이웃을 향해 원망의 소리를 듣는 행동을 서슴치 않았던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아무리 남을 거부하고 자신만을 위하며 산다 해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거부할 수 없다. 더우기 늘 바쁜 현대의 세계는 죽음에 대한 망각을 부채질 한다. 하지만 그 죽음에 대한 준비는 전생애를 걸어도 부족할 만큼 큰 의미로 다가온다. 각자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매일 매일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게 되면, 그래서 그러한 것들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면, 이러한 두려움은 자신도 모르게 연민과 사랑에 대한 의식을 가지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삶과 사랑과 죽음에 대하여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를 깨이게 하며 결코 작은 순간도 소홀히 살 수 없음을 알게 한다. 젊기에 한없이 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짧은 삶이 너무 무책임할 것이다. 죽음의 그늘 속에 내일은 없다. 그저 죽음에 대한 준비만이 내일이다. 이 책이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은 모리 슈워츠 교수가 자신의 죽음을 그대로 바라보면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가끔 영화를 통해서나 책을 통해서 접근하는 것은 삼자를 통하여 서술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모리의 경우는 달랐다. 서서히 죽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죽음에 대한 의미를 자신의 체험으로써 서술하였다. 단지 자신이 언젠가 죽을 거라는 의식만 가지고 쓴 것이 아니라 직접 죽음의 정해진 시간 안에서 서술한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죽음을 향해 가고 있고 또한 그러한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의식 못하고 살거나 그런 죽음을 부정하려 들며 회피하려고 하였다. 죽음을 적대시하는 것은 모리의 표현처럼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지 않고 여타의 자연과는 다른 존재라는 그릇된 인식을 가진 데서 온다고 본다. 하느님이 주신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서 죽음은 죄악으로 생각하였고 죽음은 저주로 생각되었다. 세상을 살려고만 하였지 궁극적으로 우리의 근본에 깔린 죽음을 생각하거나 화해하며 살았던 적이 있던가? 모리 슈워츠, 그는 우리가 아주 처음 듣는 특별한 말들을 하거나 명언들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죽음에 대한 직시이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눈물이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삶을 얻는 철학만이 그의 새로움이었고 진리였다. 죽음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나에게. 온갖 부정적인 의미들로 가득차 있던 나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끔한 그의 글은 평생 가까이 두고 읽어야 할 소중함이 되었다. 그의 마지막 글에서처럼 죽음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참다운 삶과 죽음의 길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법을 배우십시오. 죽는 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죽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