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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계를 부수는 사람이다. 고리를 끊는 사람이다. -8쪽('요요'-김중혁)
관계라는 것, 어떤 의미를 부여함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이 관계라는 게 모순의 접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가 마냥 좋을 때의 관계는 한없이 아름답고 영원히 지속할 불가항력적인 것이 되지만 반대의 상황이 되면 그날로 파국으로 치닫는 무서운 위력을 갖고 있기도 한 게 우리네 관계 아니던가. 지금도 나는 내가 모르는 새에 무수한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과연 이 중에 끝까지 이어질 관계는 얼마나 될까. 알기 어려운 물음이다. 답은 나도 모르는 거니까. 살아봐야 아는 거니까.
해마다 출간되는 문학상 수상집을 읽는 건 나에게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다. 항상 새로운 기법이 보이고 새로운 소재가 보이고 새로운 시선과 다양함이 있기에 신선함을 만끽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느끼지만 수상집은 조금 어렵고 난해하다. 단편 모음집이라는 건 차치하고라도 여러 작가의 작품이 한데 어우러져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특히 이번 13회 이효석 문학상 작품집이 그랬다. 특정 주제나 소재를 통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므로 작품마다 와 닿는 정도의 차이가 극심했다. 알아먹기가 너무 어려워서 몇 날 며칠을 같은 페이지만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느라 읽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다 읽었으나 내게로 온전히 당도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기수상자이신 이기호 작가까지 포함한 이 9명의 기성작가들, 다 처음으로 만난다. 작품은 소장하고 있으나 아직 펼쳐보지 않은 작가도 더러 있고 이름만 익히 들어온 작가들도 있다. 기존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기에 좋았던 점은 아무런 기대와 익숙함 없이 작품 그대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삶의 근간이 되는 '시간과 관계'를 이야기하다.
여러 작가의 작품이 실린 책에서는 표제작(대상)이 아니라도 눈에 띄는 작품이 으레 있기 마련인데 이번 수상집에서는 단연 김중혁의 <요요>가 발군이었다. 수상 작품 대부분이 모호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김중혁의 작품은 '시간'이라는 잡을 수 없는 그래서 쉽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서 이야기를 명징하게 이끌어갔다는 게 가장 와 닿지 않았나 한다. 주인공 차선재는 독립시계제작자이다. 임신 때문에 본의 아니게 결혼하게 된 부모는 선재가 중학교 2학년 무렵 이혼을 하게 되고 그는 아버지와 둘만 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출생 비화를 알고 있었던 차선재는 부모의 관계, 이혼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 여긴다. 부모로부터 '부정否定'당한 존재로 여기고 그때부터 철저한 고립상태가 된다. 아버지와의 단절, 친구들과의 단절, 관계를 부수고 고리를 끊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가 몰두한 곳은 분해된 시계 속의 완벽한 세상이었다.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세상이 아닌 자그마한 시계 조립 속에 똑딱똑딱 사람을 살게 하는 시간의 세상을 본 그의 인생엔 오로지 시계만이 '관계의 이어짐'으로 다가온다.
요즘은 손목에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나 또한 시계를 하지 않은 지 오래다. 거추장스럽다 생각 들 때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휴대폰이라는 게 전화, 시계 역할을 다 해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계를 지칭해 남성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가장 마지막 단계라고도 하던데 난 여자라서인지 시계에 크게 관심은 없다^^. 아무튼 시계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시선이 가는 물건이다. 시계는 시간을 흘려보낸다. 반복적인 시침, 분침 운동으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끊임없이 째깍거릴 뿐이다. 이 흐르는 시간이 인생이고 그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를 시계 속에 투영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 <요요>다. '요요'는 추억 속의 장난감이다. 한때 드라마를 통해 큰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던 요요는 알다시피 실로 연결된 플라스틱 공이 손목스냅을 통해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그 반복적 놀이를 즐기는 장난감이었다. 요요의 반복적 행위는 우리의 관계와 닮아있다. 무수히도 많은 관계가 형성되고 또 와해되고는 한다. 관계라는 건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고 가까워졌다 싶으면 또 저만큼 멀어져 가기에 참 알 수가 없지만 요요란 장난감은 실이 끊어지지 않는 한,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있다. 관계를 되돌리고 싶지 않다면 실을 끊어버리는 것 또한 한 방법이겠지만 다시 잇기는 어려우니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음을 <요요>를 읽으며 상기하기도 했다.
'시간'과 '관계'. 인생은 시간이 흐르는 과정이고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가는 불연속, 불확실의 총합체이다. 굳이 소재의 일치성을 찾자면 총 10편의 단편은 대부분 시간과 관계의 스펙트럼을 오가고 있고 그에 따라 수반되는 '상실'을 다루고 있다. 시간+관계+상실=삶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그건 어느 소설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설 대부분이 우리의 인생을 대변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8명의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시간 안에는 사람이 탄생하고 소멸하기까지의 궤적을 구구절절 쫓는 단편도 더러 있고 삶에 내재해있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따라오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이 스며있다. 하지만 선정 작품들의 개성과 실험성만 너무 중요시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심사평에서는 이 단편들이 요즘 한국소설의 흐름과 쟁점을 잘 보여준다 했지만 일반인에게 와 닿기에는 괴리가 있다. 한 예로 김태용 작가의 <알게 될 거야> 같은 경우 끝까지 읽어도 잘 모르겠더라. 차라리 '알려고 하지마' 또는 '궁금해 하지마'가 제목이었다면 알려 하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고 속편한대로 납득이라도 되었을 텐데. 마지막 '만나서 얘기하자' 라고 끝맺음을 하셔서 말인데 제발 작가님과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란 말이 있듯이 소설이라는 게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가 있으나 단지 독자의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조금 덜 어렵고 조금 덜 난해했으면 참 좋겠다 싶다.
마지막으로 김중혁 작가의 수상소감이 무척 인상 깊었기에 몇 자 옮겨본다. -시간에 대해 알 수 없어서 좋다. 오리무중이라서 좋다. 소설가는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모르는 사람이다. 시간 속에 살지만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계속 더 멀리 모를 생각이고, 백리무중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계속 허우적거릴 생각이다.- 흐르는 시간을 잡지 못해 바동거릴 게 아니라 태연하게 마주하며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즐기는 것도 꽤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다. 김중혁 작가의 말처럼. 너무~ 안일한 생각인가? 그래도 난 복잡한 것 보다는 단순한 게, 미리 다 알고 가는 것보다는 설렘을 갖고 허우적거리는 게 더 사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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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얼마 전에 접한 이기호 작가를 빼면 처음으로 접하는 낯선 이름과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신선할 수도 있지만, 또한 읽기의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수상작인 [요요]는 최근 한국 단편 소설에서 보기 드물게(어디까지나 내 기준이고, 내 시야의 한계점일 수 있음을...)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깊이가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첫 도입부 "나는 관계를 부수는 사람이다. 고리를 끊는 사람이다." 에선 나를 겨냥한 듯 섬뜩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억울하다고만 여겼던 내게서 풍겨지는 그 무엇에 대해 김중혁 작가의 그 소절이 나에게 절묘하게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지금까지 지울 수가 없다.
스스로가 관계를 부수는 사람으로 단정짓는 최선재는 그래서 부모님의 이혼이 자신의 그러한 특성 때문이라 생각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성장하게 된다. 친구들과의 관계,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어김없이 관계를 부셔버리는 선재의 모습에선 선재가 자초한 것이라기보다는 관계 맺기의 서투름을 언뜻 보게도 된다. 관계 부수기에 타고난 선재지만, 시계에 대한 집착은 과히 남다르고 평생을 자신만의 생각 속에서 자신만이 생각해 낸 시계를 만드는 일을 선택하게 된다. 남들과의 관계 맺기에 힘들어 하는 선재에겐 혼자서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를 구축하는 삶이 훨씬 더 진지하고 진실된 것 같다. 평생을 시계 제작이라는 한 우물만 파게 되는 선재에겐 사랑 또한 서투르고, 그 사랑마저 어떠한 연유로 고리를 끊어버리게 되고 만다. 곁에서 보게 되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이지만, 정작 선재 자신은 동요하는 자신을 추스르고 오로지 시계 제작에만 몰두한다. 마치 아무리 자신이 세상과의 좋은 관계 맺기를 원해도 세상이 마치 선재의 그것을 밀어내기라고 하듯이 시계라는 세계에만 집중하고, 삶의 전부로 여긴다. 자신이 사랑하는 애인 장수영을 놓치기 싫어 그녀와의 관계를 보다 오래 이어가고 싶어서 택한 거리 두기식의 사랑방식이 오히려 그녀와 선재가 더 빨리 헤어지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지하지 말았어야 할 자리에 너무나도 진지해져 버린 선재의 서투름에 아무튼지 답답하지만, 안타까움도 함께 따라갔다. 훗날 장수영의 근황을 우연히 알게 되고 다시 만나기로 시도해 보지만, 운명을 그러한 두 사람을 비껴가듯 그들에겐 만남의 시간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대학생 때 헤어지고 30여 년 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뒤, 조우하게 되는 두 사람에게선 안타깝게도 그 시간의 간극을 좁히기가 요원해 보인다. 그러면서 그녀를 위해 제작하려고 했던 시계 'Station'을 서랍 속에 넣어두고, 그녀가 선재에게 했던 말, "그래,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아" 라고 되뇌이면서 '요요' 라는 새롭게 제작할 시계 이름을 생각해 내게 되는 선재이다.
나를 포함해 종종 세상사에선 타인과 세상과의 관계 맺기에 실패하거나 서투른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겐 어떠한 문제가 있어서 그러한 것보다는 상대방에게서 관계 맺기의 오류를 찾으려고 하고, 억울하다고 하소연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남들 보기엔 마치 독불 장군 같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얘기하고, 상처라고는 받지 않을 듯 여기게 만드는 지경까지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서투름에서 상처를 받고 뒤에서 아파하는 이들이 또한 그들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소설 속 선재를 통해 점점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관계 맺기에서 받았던 상처로 인해 일정한 거리 두기식의 관계들만 고집하게 되는 외로운 그들을 보게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2012년 이효석 수상작품집엔, '요요' 이외에 8편의 추천 우수작과, 기수상작품인 이기호 작가의 '而丁' 이 실려있다. 작품 하나하나가 수작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새로운 기법과 소재를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몇몇 작품에선 단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너무 의식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작품이 있어서 살짝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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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ㅡ요요 나는 게임이나 머신등은 잘 다루지 못한다. 기껏해야 테트리스도차 어찌나 숨가쁘게 여겨지는지.. 요요는 다양한 멋을 내는 친구들도 있던데 묘기에 가까운 아니, 이른 바 묘기 . 라고 해야겠다. 그런 이야기려니 싶지만 요요 ㅡ에서는 멋지게도 요요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똑딱똑딱 시계를 만지는 남자와 그의 시간을 어긋나 가버리는 여자가 나올뿐이다. 한때 많은 것을 함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꿈꿨을 여자. 내가 달려가면 어디든 기다릴 것만 같은 여자. 그 여자와 그 남자 사이에 가느다란 줄하나를 연결하고 빛이나는 형광빛 요요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가 시계를 만지게 된 계기는 그저 정확하고 안정된 세계 라서 일거다. 시간이란 녀석은 속절없이 정직하니 ...누가 망가뜨린다해도 쉽게 무너지거나 쉽게 손상될 것이 어니란 생각에서 였겠지. 자신은 불행하게도 관계를 파괴하는 인물이니까.. 그런데 ..그가 시계를 만지자 그 시계의 세계는 그 만을 위해 공간이 존재했다 사라졌다 멈췄다 흘렀다 하는것을 나는 느낀다. 세상은 수수께끼 같아서 스스로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형질이나 자신이 부여한 의미가 변한것을 밖에서 알려주기 전까진 모를 때 가 많다. 이 책 속의 주인공 남자가 그런게 아니었나..싶다. 뭐 ㅡ어떤가 ..결국 망가지기 보단 반복하는 메트로늄 같이 왔다갔다 일정구간만 다녀갈 뿐 이라도...닿지 못해도 그것으로 족하다면 그걸로 된거라고 생각한다. 시계를 새로 해야겠다 ㅡ 무음의 시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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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계를 부수는 사람이다. 제 13회 수상작 요요의 첫문장이다. 이 한문장이 마음을 훅 치고 들어왔다. 겉보기에는 화목해보이지만 가족의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다. 그 갈등의 크기가 그 속의 자녀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진주는 원래 이물질이 조개의 부드러운 몸 속으로 들어가서 만들어진다. 사람의 마음 속도 마찬가지다. 가족 간에도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를 마음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냐에 따라 진주가 될 수도 있다. "요요"에는 남자 주인공 차선재의 부모님이 중학교 때 이혼한다. 선재는 자신 때문이라 생각한다. 부모님이 혼인 전에 선재를 가졌기 때문에 다툼이 있을 때마다 들은 말이 "선재만 없었으면"이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자신을 부정했다. 그 말을 듣고 있어야하는 선재의 마음은 어땠을까? 선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외삼촌이 시계를 사주었다. 아버지와 살던 선재는 아버지가 오기 전에 방문을 걸어잠궜다. 단절된 시간 속에서 그는 시계를 분해하고 조립했다. 결국 그는 시계제조공학과로 진학한다. 그곳에서 장수영을 만난다. 그들은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방학이 되고 그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녀와 다시 단절된다. 그 후 그는 회사를 거쳐 독립시계제작자로 활동한다. 장수영이 이메일을 보냄으로 다시 연결된다. 그녀를 위한 시계를 만들어서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려했지만, 아버지의 병으로 가지 못한다. 시간은 흐른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아버지로 인해 사랑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 누구나 사람관계에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자기만의 세상이 있을 것이다. 그 깊이가 느껴진다. 단편소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다른 세상이 보였다. 수상작품집의 묘미다. 배스킨라빈스 같은 책이다. 여러가지 맛을 볼 수 있다. 바질, 에바와 아그네스, 알게 될거야, Q.E.D., 밤의 한가운데서, 우리의 약속이 불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엘리, 상행, 이정 방금 나열한 것은 배스킨라빈스 메뉴판과 같은 것이다. 이 책에 들어있는 작품들이다. 조해진작가는 EBS책읽어주는 라디오에서 만난 이후로 책으로 자주 뵙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막바지. 마음에 와닿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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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중혁이란 이름을 단번에 기억이 나게 하는 작품은 <악기들의 도서관>이다. 면접장에서 서로 역할을 바꿔보는 장면은 나를 떨어뜨린 면접관의 모습의 난처해할 모습이 생각나 그래서 통쾌하기까지 해서 재미있었다. 에세이집 <뭐라도 되겠지>와 <좀비들>은 유머러스함과 동시에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엿본 느끼게 할 만큼 관심이 높은 작가다.
그의 <요요>라는 작품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에 선정이 되었다는 소식에 뒤도 안보고 달리듯 읽었다. 제목은 한때 장난감이자 유행했던 그 요요가 생각나지만 실은 기계식 시계의 이름이다. 주인공 차선재는 자신의 존재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된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고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시간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시계에 몰두하게 된다.
아버지와 둘이 살던 주인공은 지방에 있는 한 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거기서 우연히 어느 명사의 강의 포스터앞에서 그를 찍는 여학생 장수영을 만난다. 그녀와의 아름다운 추억도 잠깐 그녀가 겨울방학과 동시에 연락이 끊기고 그는 군대를 가게 되면서 둘의 인연은 끝나보인다. 한장의 편지와 함께 사라진 그녀와 먼시간을 돌고 돌아 우연히 메일을 받게 된다. 용기를 내어 그녀를 찾아가기로 한 차선재는 갑작스런 아버지가 쓰러져 결국 그녀가 있는 베를린에는 가는 것을 포기하고.. 전시장을 찾은 수영과 만나 다시 만날 약속을 한뒤 그가 만들기로 했던 시계의 이름을 요요로 바꾼다. 나쁘지 않아. 그래 나쁘지 않지.
시간을 돌릴수 없지만 흐르는 시간역시 머무르게 할 수 없듯이.
이번 수상집을 통해 반가운 작가는 <당신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의 최진영작가이다. 워낙 처음작품이 강렬한 나머지 다음작품을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된다는 지인의 강력추천에 단박에 사서 읽었던 작품이었다. 나역시 다소 직접적인 표현역시 거부감이 있었지만 다 읽은 후에 소녀가 겪은 모든 일들이 롤러코스터 같았지만 우리가 지녔던 사회적 편견이 어디까지일까 자문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작품<엘리>는 스물여덟살인 주인공이 50살먹은 코끼리와의 동거, 영화를 찍기 위해 그만의 훈련과정까지 웃으면서 그전에 진지한 모습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만들만큼 읽었다.
<백의 그림자>의 작가 황정은의 <상행>는 친구와 친구어머니와 함께 떠난 가을걷이 여행(?)을 마치 로드무비를 읽은 느낌이었다. 일손이 부족한 한적한 시골마을에 사는 두 노부인과의 일과는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슬픔이 그리고 쓸쓸한 가을날이 연상되었다.
신인이라고 할 수 없는 작가들의 모음집이다. 이름이 생소한 작가라고 해서 무조건 신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이번에 처음 접해 본 작가라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되는 작품집이다. 책을 덮으려는데 책날개에 그동안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이 연도순으로 나열이 된 것을 보게 된다. 아 나는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싶은 생각이 동시에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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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작품을 접하면 항상 고민스럽다. 우선 수상작이라면 어느정도 보장되는 완성도와 새로운 작가를 만난다는 반가움이 든다. 하지만, "좀 어렵지 않을까?", "이해할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같이 든다. 후자의 경우, 이해하지 못할경우 왠지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는 불쾌감이 약간 같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이번이 처음 접하는 것이다. 이효석 문학상에서 추구하는 특징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결론부터 말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에도 미리 결론부터 꺼내보려 한다. 이효석 문학상의 느낌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무게감"이었다. 수상작도 추천우수작도 모두 새로운 소재와 낯선 상황들이 많았다. 그래서 흥미로왔고, 재미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 낯설었고 또 어떤 작품도 당황스럽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어떤 작품은 재미있게 다가왔고, 어떤 작품은 어려웠다. 여러 작품들이 각각의 개성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뽑내고 있으니, 아마 책을 읽는 독자에 따라서 각각 다른 느낌을 받을 거라고 본다. 아마 나와는 다른 느낌을 가지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보지만, 개인적인 느낌을 간단히 소개해 볼까 한다.
우선 수상작인 <요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요요"는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많이 들었던 단어일 것이다. "되돌아온다"는 의미를 가진 "요요"라는 단어는 이 소설에서 "시간"이라는 단어와 "그리움"이라는 단어와 함께 하고 있었다. 김중혁 작가는 즐겨 듣는 POPCAST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패널로 출연하셔서 낯설지 않은 익숙한 작가이다. 그리고, POPCAST를 계기로 그의 최근작 <좀비들>을 읽었다. 이번 요요라는 작품도 그의 색채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오히려 과거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시계, 영상, 요요라는 단어가 섞이면서 좀더 일상적인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러나 결론은 김중혁 작가의 작품 다웠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즐거움은 없었으나, 그래도 꽤 만족스러운 수상작이었다. <바질>은 수상작가의 자선작인데, 꽤 독특했다. 버려진 바질의 복수극이라고 평해야 할까?, 꽤 재미있게 읽었다.
김성중 작가의 <에바와 아그네스>는 시간의 흐름이 독특했다. 에바와 아그네스의 감정선의 절제가 아름답긴 했지만, 아쉽기도 했다. 가장 문제가 되고 난해한 작품은 김태용 작가의 <알게 될거야>이다. 솔직히 책을 읽었지만, 알수 없었다. 미안함과 함께 불쾌감이 동시에 들었다. 박형서 작가의 <Q.E.D.>는 이과생이었던 내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수학적 논리들이 펼쳐지는 작품이 꽤 독특하면서도 즐겁게 읽혔다. 조해진 작가의 <밤의 한가운데서>는 슬픔이 가득한 소설이었다. 망한 한국도 J도 모두 슬프게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최진영 작가의 <엘리>는 엘리라는 코끼리와 주인공의 아프리카로의 여행이야기는 꽤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황정은 작가의 <上行>은 아흔 할머니의 생이 가슴 저미는 감동이 있는 수필같은 느낌으로 다가와 감동적이었다. 마지막 기수상작가 자선작인 이기호 작가의 이정(而丁)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아픔이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색채의 작품들이 있다. 나에게 어렵게 다가온 작품이 어느 누구에게는 감동과 놀라움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처럼 한권의 책에서 많은 작가를 만날수 있는 기회를 책을 좋아하는 작가라면 놓치지 않을거라고 본다. 이 책에 오른 모든 작가들의 수고와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축하드리며 마무리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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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러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 출간된다. 유명 작가의 장편을 만나는 재미도 크지만 이렇게 뮨학상 수상작이 실린 책은 수상작과 추천 후보작품들 을 동시에 만나수 있어서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 13회 이효성 문학상 수상작으로는 김중혁 작가의 '요요'가 선정 되었다. 시계를 만드는 차선재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지켜 보면서 자신을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를 부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차선재다. 결혼전 차선재를 임신했던 어머니의 말끝마다 "선재 때문에..."가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차선재의 부모님은 이혼하고 차선재는 아버지와 둘이 살게 되지만, 차선재에게 집은 잠을 자기위한 공간 정도의 의미가 되었다. 자기방에 들어박혀 차선재는 선물받은 시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대학도 '시계 제조공학과'로 진학한다.
차선재는 어느날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장수영이란 여학생을 알게된다. 장수영을 좋아하는 자신을 못미더워 하면서도 차선재는 점점 장수영을 좋아하는자신을 어떻게 하질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장수영은 먼곳으로 떠난다. 무척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중년의 차선재에게 외국에 있는 장수영이 메일을 보내온다. 차선재에게 장수영은 마치 요요와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손에 잡힐거 같으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는 존재 말이다.
요즘 이혼이 흔해져서인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는 이혼이 심심치않게 등장한다.김중혁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었는데, 주인공인 차선재도 부모님이 이혼한 경우다. 작가는 주인공 차선재의 우울한 성격에 대해 제대로 묘사했다. 그나마 차선재를 사회의 낙오생으로 전락시키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수상작 '요요' 다음으로 김중혁 작가의 '바질'이란 작품이 나온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바질'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작품이다. 바질은 허브종류인데, 식충식물처럼 묘사한 것이 그렇다. 작품에선 식충식물이 아니라 지구 끝까지라도 쫒아올 악마처럼 표현 했다. 표현은 작가의 자유지만 지나치면 독자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것 아닐까.
문학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모델인 주인공이 당연하게(?) 성형수술을 선택하는 것이나 내전국으로 취재를 떠나는 기자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작품의 소재가 되니 말이다. 수학의 파이와 그걸 풀어 나가는 노트를 만든 여자의 이야기 「Q.E.D」,도 독특한 이야기로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작품들도 모두 나름의 색깔을 지닌 좋은 작품이었다. 특히 조현의 「우리의 약속이 불속에서 이뤄지기를 기도했다」, 코끼리와 함께 사는 이야기 「엘리」 는 글이 참 맛깔스러웠다. 남로당 이야기가 나오는 이기호의 '이정'을 읽으면서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 라는우리의 현실을 잠깐 생각해 보았다. 이제 늦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는 길목이다.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보내는 가을밤은 웬지 낭만적이다. 저 혼자 돌아가던 보일러 소리가 나를 현실로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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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 선생님을 기리기 위한 이효석 문학상이 올해로 제13회 수상작품집을 냈다. <요요> (2012, 김중혁 외 8인 지음, 문학의숲 펴냄)는 수상작인 '요요'를 포함하여 김성중, 김태용, 박형서, 조해진, 조현, 최진영, 황정은, 이기호 작가의 작품들을 실었다. 김중혁 작가는 2000년에 '펭귄 뉴스'로 데뷔했으며 꾸준하게 작품집을 내서 인지도를 높였고, 김유정 문학상, 젊은작가상, 올해의젊은예술가상 등을 수상함으로써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번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인 '요요'는 시계제작자인 선재의 평생을 담은 이야기이다. 제목이 '요요'가 된 까닭은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 나온다.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 영원을 향해 직선으로 흐르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요요의 시간으로 하자'(38쪽)라는 선재의 말에는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선재의 부모님은 결혼 전에 선재를 임신함으로써 결혼했고, 부부 싸움 때마다 나오는 자신의 이름을 들으면서 선재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게 된다. 끝내 부모님이 이혼하고 선재는 아버지와 살게 되지만,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시간과 존재의 무의미함을 대신한 것은 시계 분해와 조립이었다. 그렇게 선재는 시계제조공학과에 진학했고, 그 대학에서 첫사랑이 된 장수영을 만났고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그의 삶에서 사라져 버리고, 선재는 의미를 담은 시계들을 만들면서 그녀를 생각한다. 그리고 앞의 의미를 담은 '요요', '돌아갈 수 없지만 그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38쪽)은 순간을 담은 시계를 스케치하기 시작한다. 수십 페이지라는 적은 분량에 한 사람의 인생을 오롯이 담아낸다는 것이 단편소설의 매력이리라. 이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선재의 고적한 삶에,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한 장수영의 차가움에, 떠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슬며시 돌아온 그 천연덕스러움에 깊이 빠졌다. 가장 가까운 이들이 상대에게 남기는 상처는 얼마나 큰가. 새벽 세 시에 홀로 깨어 있는 것처럼 쓸쓸한 이야기가 마음 아팠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그의 또 다른 작품 '바질'은 헤어진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유럽에서 사 온 바질이 괴식물이 되어 사람을 덮치고, 그렇게 사라진 연인을 찾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 남자의 이야기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낸다.
추천 우수작이 실린 김성중, 김태용, 박형서, 조해진, 조현, 최진영, 황정은, 이기호 작가 중에서 이전에 다른 책으로 만났던 일이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더 반갑게 다가왔고 이전 작품과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눈여겨보게 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김성중, 조해진, 최진영, 황정은, 이기호)와 환상적인 이야기(김태용, 박형서, 조현)를 다양한 형식과 분위기로 독자들에게 건네고 있었다. 이들의 작품도 앞으로 꾸준히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단편소설의 즐거움을 누린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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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문학, 장르문학 가리지않고 두루두루 다양한 소설을 섭렵하기를 좋아한다. 물론 재미만을 생각하자면 순문학 보다는 추리 소설 등에 더 손길이 가기는 하지만. 조정래, 황석영,박완서 작가님들의 책 역시도 그에 못지않게 좋아한다.
중학교때던가, 한국문학전집을 사주셔서 정말 그 자잘한 글씨에도 불구하고 날을 새워가며 빼곡한 그 활자들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꽤 길고 긴 중장편들이었는데도 정말 재미있었다. 추리 소설 등은 루팡을 제외하곤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가 어른이 되어서 지금에서야 읽고 있지만 말이다.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또한 참신한 작가의 새 글을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읽어내려갔다. 김중혁님의 요요. 13회 수상작인 이 글부터 우선 눈에 들어왔다. 작가의 또다른 단편인 바질이 웬지 좀 현실에서 갑자기 그로테스크한 비현실로 넘어가는 과정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면, 요요는 좀 가슴아픈 청년의 인생사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아이 앞에서 절대 해서는 안될 말. 부모가 서로 자신들이 맞지 않는 책임을 아이 핑계를 대고, 아이는 평생을 부모의 이혼이 자신의 책임인양 십자가를 지닌채 살아간다.
관계를 부수는 사람. 누가 어린 소년을 이렇게 만들었던가. 소년이라고 억지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을리가 없다.
방에 틀어박혀 살던 소년은 자신의 공간에서 시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며 그 완벽하고도 세밀하 공간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소년의 곁을 지키는 아버지는 소년이 자신을 떠나가려 함이 안타까웠지만..가족 등 주변인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는다. 철저히 소년에게 초점이 맞춰져서 이야기가 진행이 되었다.
일부러 시계를 전공한다는 핑계로 지방의 대학에 진학을 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을 준 여자친구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오지 않는 것으로 다시 못 올 상처와 충격을 먹고 만 이제는 청년이 되어버린 소년. 이제 청년은 시계 기술자에서 독립 시계 제작자가 되어서 자기만의 작품을 제작하며 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의 상대였던, 이유도 제대로 모른채 사라져간 여자친구와 만날 기회를 두번 정도 가졌으나 처음에는 자신의 가정 사정으로 못 만나고 말았고 또 수십년이 흐른 후에 잠깐, 아주 잠깐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고요히 흘러가는 시계 속의 시간처럼. 소년의 사랑도 그렇게 아쉽게 흘러갔지만, 상실만을 이야기한다기엔 충분히 아름다운 그런 이야기였다.
조해진 님의 유리를 예전 다른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던 지라, 이번에 나온 밤의 한가운데서를 읽으며 반가움을 갖기도 하였다. 사실 작가분 얼굴이 낯익어서 혹시? 하고 찾아봤던 것인데, 유리의 내용 자체도 아픔이 컸기에 밤의 한가운데서는 그런 아픔이 많은 이야기가 아니길 바랬다.
박형서님의 QED, 증명완료는 숫자가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온갖 수학 이야기로 가득 채워지는 이야기였다. 머릿 속의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들이 종이 위에 펼쳐지는 듯한 그런 이야기랄까. 다소 갑갑함을 느끼게도 되었지만 수십년을 허비한 주인공이었어도 결말만큼은 자신의 인생에 충실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모두 다 개성이 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읽기 어려운 거부감이 드는 이야기도 끝까지 읽어내었고, 익숙한 작가의 이름이 나오면 반가운 생각으로 읽기도 하였다. 이렇게 새로운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만나볼수있다는 즐거움이 있어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반갑게 읽게되는 것인가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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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문학작품상이 있고, 그에 따라 해마다 수상작품집이 나온다. 수상작품집을 읽는 것은 우리의 문학이 어느 길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들이 생각하고 있는 문학의 갈 길과 심사위원들이 생각한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혹은 치열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생각이 만나는 지점에서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는 왜 올해는 이 작품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올해의 수상작인 [요요]는 독립시계제작가가 된 차선재의 시간을 보여준다. 자신이 주변 사람들의 관계를 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던 어린 시절부터 시계조립을 즐겨왔던 그는 시계제조공학과 1학년 때 그녀를 만난다. 완성되지 않고 분해되어있는채로 서럽 속에 간직된 시계처럼, 그녀와의 사랑은 그의 시간 속에서 결코 끝나지 않는다. 원 안의 시계침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움직임을 계속하면 우리의 시간은 흐른다.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계침, 그렇게 흘러가야만 하는 시간. 작가는 요요라는 제목을 어떻게 짓게 되었는가를 독자들에게 설명해줌으로서 자신의 장치 속으로 독자들을 적극 끌어들인다. 시계가 그렇게 자꾸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들의 사랑은 다시 가까워질 듯 하다가 다시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질 듯 한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갔다는 것을 그렇게 사랑도 시간 속에서 흘러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는 것을 전제로 또 많은 이야기를 한다. [요요]는 누구나 옛 시간 속에 묻어둠직한 첫 사랑이야기를 소재로 우리 곁에 영원히 흐르고 있는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
만년필로 원을 그렸다. 원 속에 새로운 시간이 흐르게 하고 싶었다. 다이얼과 문자판을 그려넣은 중에 제목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제목을 생각하지 않고 번호만 붙인 작품만 만들었는데, 갑자기 제목이 떠올랐다. 그래, 요요로 하자,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 영원을 향해 직선으로 흐르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요요의 시간으로 하자. 그래, 나쁘지 않아. 나브지 않아.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아. 차선재는 만년필로 새로운 원을 그렸다. (p.38. [요요] 중)
수상작가 자선작인 [바질]은 [요요]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헤어진 연인의 집 앞을 매일 오가는 남자는 어느 날 그 집 뒤의 언덕이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고 구청에 신고를 한다. 결국 구청직원과 그는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신들을 막아서고, 옛 연인을 끌고가서 자신들의 아지트에 숨겨둔 바질줄기와 사투를 벌인다. 작고 연약한 허브 씨앗이었던 바질 순이 어떻게 집 뒤의 언덕으로 갔는지는 과감히 생략하고 작가는 느리게 흐르던 일상에 갑자기 폭풍과도 같은 판타지적인 속도와 급박함을 가미한다. 바질은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의 욕망이 만들어낸 꿈 속의 이야기일지, 우리 생태를 파괴하는 많은 외래종 식물 중의 하나일지 모르지만, 때로 우리의 삶은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사태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고, 자신이 헤어나오지 못할 함정에 스스로 빠지기도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