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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선택인진 모르겠으나 어쩌면 최선에는 가까운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기 대선을 치른 후 일단 겉으로는 평온해 보인다. 정권이 달라진다 하여 180도 모든 게 변할 리도 없거니와,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과 더불어 본래 지닌 성향이 빚어낸 문제들은 여전함에도 그러하다. 과연 이 평화가 얼마간이나 지속될 수 있을까. 정권 말기에 다다르기도 전부터 시작되던 레임덕이 이번에는 언제 즈음 우릴 찾아올까가 궁금해진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참으로 급격하게 발전해왔다. 전 세계에서 유래 없을 정도로 속도 내어 경제를 일으킨 우리이기에, 외국인들도 알아듣는다는 “빨리빨리”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요즘 같은 날씨엔 힘들다. 인간이 개발한 기계가 알아서 척척 모든 일을 해주면 정말 편리할 거 같다. 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돈으로 사람을 사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끔찍하다고? 힘든 일을 나 대신 해줄 사람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돈은 좀 들지 몰라도 힘든 일들로부터는 일단 해방 가능하다. 밋밋한 삶보다는 다이내믹한 삶, 기분 좋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자극도 있으면 고맙다. 적잖은 시간 동안 우리는 이른바 ‘빠르고 편리하면서 뽀대(?)까지 나는 나라’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왔다. 조금이라도 느리다 싶으면 성을 냈다. 무료한 것보다는 차라리 자극적인 게 낫다는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고자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효율성’을 입히기 시작했다.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형태의 삶들을 그렇게 현실로 만들어갔다. 이상하게도 삶의 만족도는 비례해 상승치 않았다. 오히려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만 갔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난 몇 년의 경험이 이 의문을 해소해주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대다수가 명확히 인지했으리라 본다. 언론사 ‘한겨레’에 몸담고 있는 저자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글에는 여러 장르가 존재한다. 신문에 실리는 글은 적시에 진실을 담아내는 것을 생명처럼 여긴다고 많은 이들은 알고 있다. 헌데 기자도 인간이다. 인간이 하는 일이 대개가 그러하듯 기사에도 인간인 기자의 생각이 조금은 담기기 마련이다. 사설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짙다. 책에 수록된 글들은 여느 기사체에 비하면 무미건조함이 덜했다. 일부는 페이스북 등에 개인의 생각을 자유로이 적은 것이었다.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나는 시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언론사에 몸 담고 있는 이의 직업적인 고뇌 또한 글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종이 신문이 조만간 사라진다는 말이 돌던 시절도 있었다. 당장 신문이 사라질 거 같진 않으나 예전에 비한다면 위력이 많이 줄어든 것만은 사실 같다. 나도 그러하거니와 많은 이들이 요샌 인터넷에서 기사를 접한다. 디지털미디어부 등의 부서가 언론사에도 신설됐다. 언론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사람들의 클릭(선택)을 부를 수 있을 법한 제목을 뽑아내야만 하는 아슬아슬한 작업이 하루에도 수 차례 반복된다. 더 많은 이들이 부디 제목에 낚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마냥 욕심으로만 치부할 순 없을 것이다. 죄를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의식하고 나서 그런지 글을 읽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측은지심이 일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도 대통령직을 유지하던 한 인물에 대한 감정치고는 너무 과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의 시대를 살고 있는 딸은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주목 받았던 한 인물과 연관된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런 말을 해서 유감이지만 태도가 애초에 글러먹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쩌다가 우린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선이라고 하기엔 감당해야만 하는 대가가 지나쳤다. 앞으로도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상처를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또한 흔히 발생하는 교통사고에 불과하다며 폄하했던 목소리만큼은 잊지 않으련다. 평범을 꿈꾸던 이들에게 이마저도 사치임을 가르치려 들었던 나쁜 정권.
정치적인 이슈가 다수 포함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는 즐거웠다. 아무래도 내 자신이 적잖이 타인의 삶을 엿보는 오지랖, 나쁘게 말하자면 관음증적 성향을 타고난 모양이다. 작가 김훈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거장은 보통 인물이 아님을 실감했고, 아사다 마오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는 감정에 얽매여 미처 보지 못했던 한 인간의 비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그렇게 내 단면적인 삶이 부피를 지니기 시작했다. 글, 참 묘한 힘을 지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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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님이 한겨레신문사 사회부 기자를 하셨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