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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2000년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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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KBS에서는 국권 침탈 100년을 맞아 8월에 한국과 일본의 2000년의 관계사를 5부작 역사다큐멘터리로 다룬 바가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다큐멘터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의 입장에서 여전히 일본을 '멀고도 가까운 나라'로 지칭하고 있다는 점과 최근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이는 두 나라의 관계를 감안하여 한번쯤 살펴볼 필요성이 느껴진다. 특히 최근 일본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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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0년 KBS에서는 국권 침탈 100년을 맞아 8월에 한국과 일본의 2000년의 관계사를 5부작 역사다큐멘터리로 다룬 바가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다큐멘터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의 입장에서 여전히 일본을 '멀고도 가까운 나라'로 지칭하고 있다는 점과 최근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이는 두 나라의 관계를 감안하여 한번쯤 살펴볼 필요성이 느껴진다. 특히 최근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고 대변하는 자칭 한국의 지식인들이 뉴스의 일면을 장식하는 상황에서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한 통찰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의 내용이 대중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적어도 이 책의 내용은 우리가 알아야 할 한일 관계에 대한 최소의 역사적인 지식으로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과 일본, 2000년의 숙명]5개의 키워드로 한일 관계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부분을 주목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된다.

 

 1. 인연(因緣)

 고대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문물을 전파하는 관계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하여 일본에 비하여 한국이 우위에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는 한국의 관점에만 의미를 부여한 것이어서 자칫 고대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고대사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645년 6월 12일, '소가노 이루카'에 대한 암살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기에 우리는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암살된 인물은 일본의 야마토 정권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그가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 출신이라는 점이다. 즉, [삼국사기]에 백제 문주왕이 일본으로 파견한 목협만치(木?滿致)가 일본의 소가 지역에 정착하여 '소가노 마치'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호족으로 자리를 잡고 그 후손들이 일본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게된다.

 

 소가씨는 백제 출신으로서 백제의 지원을 통하여 일본에 각종 문물을 전파하면서 힘을 얻게 된다. 백제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불교는 단순히 종교가 아닌 종합적인 문화라는 관점에서 이를 중개한 소가씨는 자연스레 일본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소가씨 집안은 592년 11월에 그들을 적대시하던 일본의 스슌 천황을 죽일 정도로 위세를 얻게 된다. 소가씨 집안의 이러한 활동은 한반도의 정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두 국가의 인연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백제의 지원과 문물 전파를 통하여 백제 출신의 소가씨가 큰 힘을 발휘하지만, 618년 건국된 당이 한반도를 위협하자 일본 조정은 내심 당과의 교류를 반대하는 소가씨에 대한 불만을 갖게 되고, 결국 645년 신라 출신의 도래인인 '나카토미노 가마타리'에 의하여 소가노 이루카가 암살당한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정쟁은 한반도와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당시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교류와 소통을 통하여 오랜 세월 문명의 빛을 주고받은 인연(因緣)으로 설명하고 있다.

 

 2. 적대(敵對)

 1274년 여몽 연합군에 의한 1차 일본 정벌과 1281년의 2차 정벌은 일본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다. 이민족의 일본 본토 침공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이 정벌에서 일본은 여몽 연합군의 강력한 공격에 의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훗날 그들이 '가미카제'라 부르는 태풍이 없었더라면 일본은 몽골의 수많은 정복 대상 중 하나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무쿠리고쿠리'(몽골군과 고려군을 일컫는 표현)라는 말과 함께 공포심을 드러내면서도 적대감을 보여준다. 특히 몽골보다 고구려에 대한 적대감은 한반도에 대한 적개심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후 고려에 들끓었던 왜구의 침략 역시 이러한 적대감의 발로로 볼 수 있음을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고려 입장에서는 사실 억울한 부분이었다. 몽골과의 전쟁으로 지칠대로 지친 고려는 오히려 몽골의 일본 정벌을 중간에서 막으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고려 역시 몽골의 일본 원정이 시작된다면 그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1419년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도 사실상 명나라의 영락제가 일본 왜구에 대한 대대적인 정벌을 천명함에 따라 조선이 과거 고려처럼 원정을 빌미로 중국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선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지적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고려와 조선의 이러한 사례를 본다면 서로에 대한 적대(敵對)는 결국 그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았지만 중국이라는 제3의 세력에 의하여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전쟁들을 통해 형성되면서 두 나라가 '공포'라는 상처를 차례로 주고 받았으며, 그 상처를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 증오를 택하였던 것이다. 서로를 '무쿠리고쿠리'와 '왜놈'이라고 부르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이제 반드시 서로 물리쳐야 하는 적대(敵對)의 관계가 형성된 것이었다.

 

 3. 공존(共存)

 일본의 대마도 도주는 자신들을 왜구라는 해적으로 대하는 것에 억울함을 내비친다. 그들이 분명 노략질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상인으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당시 조선과 일본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타당성을 찾아볼 수 있다. 왜관을 중심으로 일본과 교류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그들은 해적질 보다는 교류를 통하여 안정을 꾀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과와 더불어 조선은 신숙주가 [해동제국기]를 통하여 일본과의 교류를 통하여 두 나라의 안정을 꾀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본에 대한 외교정책의 지침으로 정착하게 된다. 조선으로서도 일본에게 구리를 수입하고 면포를 수출하는 관계가 내부적으로도 도움이 되었기에 두 나라의 공존(共存)은 말 그대로 서로에게 이익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왜관을 중심으로 한 왜인들의 증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삼포왜란'은 바로 이러한 관계의 한계와 더불어 종말을 가져온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훗날 '임진왜란'은 물론 나아가서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강제 합병으로 이어지게 된다.

 

 4. 변화(變化)

 서로에 대한 적대(敵對)감을 청산하지 못한 채,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보여졌던 공존(共存)의 관계마저도 흔들리면서 두 나라의 관계에서 보다 구체적인 행동에 영향을 준 것은 바로 변화(變化)를 통한 차이였다. 일본은 우연히 포르투갈 상인이 가지고 있던 조총의 위력을 깨닫고, 무려 1억엔을 주고 조총을 입수하여 그것을 대량 생산하여 일본의 전국시대의 전투 양상을 완전히 뒤엎어 버린다. 1574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그 강대한 다케다 가문의 기마 군단을 오다 노부나가는 조총을 3단으로 배치하여 섬멸함으로써 전투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그에 반하여 조선의 지식인층은 정신 수양과 도덕적 완성에 몰입하면서 성리학의 연구에 힘을 기울이게 된다. 즉, 16세기 조선은 일본과는 달리 정신문명의 안정과 완성을 추구하였기에 결국 조총은 조선에서 잊혀지게 된다. 물론 조선에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그 변화(變化)의 기회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555년 5월, 조선에 귀화를 요청한 일본인 평창진은 조선 명종에게 조총을 바치게 된다. 조선 역시 조총을 처음 접했을 때, 일본과 같이 큰 관심을 보이게 된다. 귀화를 요청한 평창진의 요청은 물론 그를 당상관에 임명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기존의 총통보다 정교하면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인 조총을 조선 내부에서도 제작하여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당시 조선 조정이 보유한 철의 양이 거의 없는 상태였고, 절의 종을 녹여서라도 제작해야 한다는 입장을 불교에 빠진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이 거부하면서 조총은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곧바로 임진왜란에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변화(變化)의 양상은 훗날 일본이 미우라 안진이라 불리우는 영국인을 귀화시켜 그들의 선박 건조 기술을 활용하면서 쇄국정책을 진행하면서도 일정 부분 무역을 통하여 서양과 교류를 하였던 것에 반하여 조선에 표류한 하멜을 그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일본과 달리 노비처럼 대우하여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서도 우리는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5. 대결(對決)

 청산되지 못한 서로에 대한 적대(敵對)변화(變化)를 통한 준비는 결국 둘의 관계를 대결(對決) 양상으로 치닫게 된다. 사실 '대결(對決)'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일방적으로 한국이 일본에 당하는 역사가 펼쳐지게 된다. 일본이 서양의 위협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은 이미 메이지 유신의 초기부터 언급되는데, 이는 결국 앞서 언급한 오랜 기간 한일 관계에 따른 결과물로서 일본은 '운요 호 사건'(1875년)을 기점으로 한반도에 대한 침탈을 가속화한다. 사실상 한국 입장에서는 '대결(對決)'이 아닌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한국과 일본, 2000년의 숙명]은 위와 같이 5개의 키워드를 통하여 한일 양국의 관계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두 국가의 오랜 관계의 역사를 5개의 키워드로 설명한다는 것은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수긍하면서 새롭게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부분도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불교는 단순히 종교가 아니고 종합적인 문화였습니다. 불교가 들어가면 건축을 비롯해 기와 제작과 채색, 쇠를 다루는 기술과 문자, 사상들이 종합적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입니다. (중략) 불교 문화의 전수를 통해 소가씨는 피지배층, 혹은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호족에 대해서 자기들의 우월성을 과시하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 일본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얻어 유지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 p. 38 中에서 -

 책 속의 위 내용을 접한다면 백제의 일본에 대한 불교 전파가 단순히 종교를 전파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또한 여몽 연합군에 의한 일본 정벌 및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왜관 설립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밀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을 읽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갈등이라는 파국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상황이 역사를 통하여 어떻게 이어진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심지어 이 책에서 말하는 인연(因緣), 적대(敵對), 공존(共存), 변화(變化), 대결(對決)의 키워드에 더하여 현재 한국 내부의 반일과 친일의 대립을 연상케 하는 부분은 우리 내부에 분열(分裂)이라는 키워드마저 추가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양국간의 관계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과 분석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최근들어 단순히 근대화와 자본주의 측면에서 일제 통치 시기를 일정 부분 옹호하면서 심지어 거기에 편승한 친일파를 시대에 적응한 인물이라는 평과 함께 항일 투쟁에 나선 인물들을 비하하는 몇몇 의견들이 등장한 것도 어쩌면 한국과 일본의 200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관계에 대한 정확한 분석 및 인식이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해 본다면 우리로서는 이 책이 다루는 내용에 대하여 좀더 주의를 갖고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g*******7 2019.09.23. 신고 공감 14 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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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식에 숨겨진 악마의 디테일 - 한국과 일본, 2000년의 숙명
"역사인식에 숨겨진 악마의 디테일 - 한국과 일본, 2000년의 숙명" 내용보기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이나 불가사의한 요소가 세부사항에 숨어있다는 의미로 흔히 쓰는 표현이다. 복잡하게 설명하여 얼핏 보기에 그럴 듯하고 합리적이라 여겨지는 주장이더라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의도적으로 숨긴 실체를 꿰뚫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그릇된 주장과 믿음을 이용해 사람들을 호도하고 속여 자신의 이익
"역사인식에 숨겨진 악마의 디테일 - 한국과 일본, 2000년의 숙명" 내용보기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이나 불가사의한 요소가 세부사항에 숨어있다는 의미로 흔히 쓰는 표현이다. 복잡하게 설명하여 얼핏 보기에 그럴 듯하고 합리적이라 여겨지는 주장이더라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의도적으로 숨긴 실체를 꿰뚫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그릇된 주장과 믿음을 이용해 사람들을 호도하고 속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혹세무민과도 일맥상통한다.

 

  '한국과 일본, 2000년의 숙명'은 한일 양국이 고대이래로 이어온 애증과 은원관계를 고찰한 책이다. 아스카 문명을 발원시킨 백제의 선진문물과 백제계 지배계층이 주도한 양국 교류의 역사로부터 여몽연합군의 무자비한 일본 침공으로 인한 적대관계, 왜관과 통교의 공존시대, 임진왜란과 정한론으로 이어지는 대결과 침탈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난 2천년간 이어져 온 친선과 대립이 반복된 양국간 역사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허심탄회하게 소통하여 공존, 공생이 미래를 열어 나가자는 결론을 제시한다. 식민지배를 당한 한국도 대승적 차원에서 일본과 친선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속내가 있을지라도 일견 반박할 논리가 하나 없는 깔끔한 내용이다. 

 

  책을 읽은 후 필자는 이 책에 숨겨진 악마적 디테일을 찾고 싶었다. 일방적인 피해를 당한 한국인으로서 식민시대 아픔의 굴레에 벗어나지 못한 채 일본과 끝없는 갈등과 대결을 벌이자는 취지가 아니다. 양국 근대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식민지배와 수탈의 역사를 극복하고 선린과 공영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싶어서이다. 진정한 공생에 필요한 전제조건을 명백히 정의함으로써 양국이 각자의 길에서 노력해 나가야 할 길을 밝히려는 차원이다.

 

  '무쿠리고쿠리'. 일본인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 잔혹함을 말할 때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이다. 몽고군과 고려군를 의미한다. 여몽연합군이 일본 규슈를 토벌하면서 잔인하게 양민을 학살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대 일본 문명을 이끌어 주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선진문물과 인적 교류가 이어진 삼국시대 이후, 일본이 한국에 대해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게 된 결정적 원인이 여몽연합군의 일본 침탈에 있다는 해석이다. 삼국시대에 왜구 피해가 없었던 반면 여말선초 격변기에 왜구가 극심하게 창궐했던 주장을 하며 원인이 고려에 대한 복수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역사 인식이라면 한민족이 임진왜란과 정한론에 근거한 일제가 저지른 조선병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논리에 이르게 된다. 평범한 질문만으로도 이를 반박할 논거가 꽤 많다. 왜구는 한반도 뿐 아니라 중국동남부, 태국, 베트남까지 진출하여 약탈했다. 한반도에 대한 원한때문이라면 태국과 베트남, 중국이 일본에 저지른 원한이나 침략은 무엇인가? 또 삼국시대 출몰한 왜구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까? 기실 일본 중앙정부가 규슈와 혼슈 해안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때 지방세력 주도하에 왜구가 창궐했다는 해석이 타당하다. 이런 점에 근거하여 무쿠리고쿠리를 숨겨진 악마라고 칭하는 것이 결코 침소봉대는 아닐 것이다. 

 

  고대 이래 한일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거론되는 역사학자들 중에 눈에 띠는 이들이 있다.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와 동북아역사재단 이재석 박사이다. 김현구 명예고수의 임나일본부 해석은 사뭇 논쟁적이고 복잡한 사안이다. 그는 재야 소장학자 이덕일과 법적 소송까지 진행한 바 있다. 김현구 교수는 임나일본부의 핵심은 임나일본부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점령했는가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목라근자가 야마토 왜의 지원을 받아 한반도 남단에서 임나(가야)를 구원했더라도 목라근자가 백제장군이라는 점에서 임나를 백제가 경영했으므로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이재석 박사는 동 소송에서 김현구 교수 측 증인이었다. 그는 당시 야마토 정권이 철제무기를 무장하지 못하여 야마토 정권이 임나일본부를 경영할 능력이 없었다거나 목라근자가 누구의 명령으로 신라와 가야지역을 평정하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김교수가 임나일본부 자체를 부정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증언하여 사실상 김현구 교수를 지지한다.

 

  형식논리로는 김교수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일본이 한반도 남단에 임나일본부를 경영했다고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의 주장은 임나백제본부설에 가깝다. 그렇다면 김교수는 식민사관이 아니라 이에 맞서 싸운 민족사학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뭔가 찜찜하다. 그는 목라근자에게 신라와 가야를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린 자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목라근자의 아들 목만치가 이 책에 나오는 소가노 마치와 동일인이며, 소가노 일족이 천황마저 갈아 치우는 야마토 정권의 핵심 지배층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목라근자와 그 후예들이 임나를 경영했다는 그의 해석은 꽤나 위험하다. 비록 그가 의도치 않더라도 백제계 도래귀족인 소가노와 야마토 정권이 임나를 경영했다는 주장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간접적 임나일본부설이다. 이덕일은 바로 이러한 논리적 결함을 지적한 것이다.

 

  동북아연구재단은 정부의 후원을 받아 중국 동북공정에 맞서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 역사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설립된 연구단체이다. 이 재단은 한반도 강역에서 독도를 제외하고 4세기까지 한반도에 백제와 신라가 존재하지 않는 지도를 만들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삼국시대를 기록한 삼국사기 사료마저 부정하고 임나가 가야라는 주류 사학자들의 주장을 가감없이 인용했기에 재야사학자들은 고대사를 바로 세워야 할 동북아연구재단이 식민사관에 경도되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오늘날 일본을 이끄는 천황과 정, 관, 재계를 이끄는 계층의 다수가 백제계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본 천황마저 일본으로 도래한 백제 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인정한다. 일본 지배계층이 백제계 출신이라면 우리와 가까운 관계인데 한국에 대해서 왜 이다지 적대적일까?  처음에는 선진문물을 한반도에서 전수받았다는 역사, 문화적 열등감, 이로 인한 자격지심, 삐뚤어진 경쟁의식때문이라 막연히 여겼다.책을 리뷰하기 위해 예전에 읽었던 몇 권의 책을 다시 들쳐보면서 일본 지도층들이 갖는 혐한론, 정한론의 근원적 배경에 동이족 역사 그 자체에 뿌리가 있다고 해석하게 되었다.

 

  동북아 역사는 漢族의 중국과 대립해온 북방민족의 역사이다. 중국역사에 등장하는 동이족은 단지 오늘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韓民族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동이족은 중국 화북, 만주, 몽고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고대 동북아에 근거했던 북방민족을 통칭한다. 우리 한민족은 여진족, 몽고족, 선비족, 거란족 등과 함께 동이족을 구성하는 한 분파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떠할까? 일본열도에 역사시절 이전부터 토착민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한반도 도래인이 세운 여러 세력들이 고대일본과 토착민들을 지배하면서 서로 경쟁하였다. 일본 고대 야요이 문화와 아스카 문화, 고분시대는 가야, 신라, 백제에서 전수받은 문물로 비롯되었다. 초기에는 가야와 신라계가 주도했으나 후기에는 백제계가 일본을 지배했다. 야마토 정권은 사실상 백제왕족 출신 천황과 백제계 귀족의 연합정부였던 셈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야마토 정권의 실질적 지배자였던 소가노 일족은 백제의 목씨 귀족이다. 소가노 이루카를 죽인 나카토미노 가마타리는 신라계로 추정된다. 결국 고토쿠 천황과 나카노오에 황태자, 나카토미노가 연대해서 소가노를 죽인 것이다. 백제계 천황이 신라계 호족을 등에 업고 일으킨 친위 쿠데타이다. 결국 소가노 살해사건은 같은 백제계 출신임에도 정권의 명운을 놓고 왕권과 신권이 쟁투한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림 - 백제왕실과 일본천황가 계보]

  출처 : 대쥬신을 찾아서, 김운회

 

  문주왕 이래로 백제 왕족 중 일부가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가의 계보를 이어왔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하자 일본에 있던 백제 왕족 부여풍이 백제로 건너가 복신, 흑치상지와 백제부흥운동을 이끌었다. 이들이 원군을 요청하자 덴치 천황은 대규모 군사를 보내지만 백강에서 허무하게 패한다. 아마도 덴치 천황이 대규모 원군을 파병한 이유는 본국인 백제멸망과 동항렬인 의자왕의 복수를 하고 싶었서 였을 것이다. 

 

  백강 패배로 백제멸망을 거스를수 없게 되자 백제계 천황은 처음으로 일본이란 국호를 쓰며 백제와의 관계 지우기에 나선다. 한편 백제를 무너트린 신라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게 되는데, 필자는 오늘날 한일 양국 애증의 뿌리가 나당 연합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를 향한 원한이지 않을까 해석한다. 사실 백제는 부여를 이은 적통이다. 고조선이 한나라에 멸망당한 후 고조선을 잇는 주도세력으로서 부여가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구려가 발원하여(대륙)부여 일족을 점령하면서 고구려와 백제는 역사, 혈연적으로 적대관계를 갖게 되었다. 만주와 요동에서 세력을 잃고 한반도로 몰린 백제를 달리 표현하면 반도부여이다. 반도부여의 일부세력이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토왜, 즉 열도부여를 이끄는 중심세력이 되었다. 열도부여 세력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뿌리인 반도부여를 멸한 신라야말로 같은 하늘아래 살 수 없을 공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인식이 일본 지배계층 면면에 이어져 온 결과가 오늘날 혐한과 정한의 뿌리가 아닐까 싶다.

 

  신라가 원흉이었다면 신라가 망한 이후로 고려, 조선, 대한민국에 걸쳐 왕조와 국가가 바뀌었음에도 정한론이 이어져 온 것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나? 이 점에 이르자면 필자가 진단하는 역사 해석이 편협할 수 있음을 미리 전제한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고려를 이끈 개성세력만의 단독 정권이 아니었다.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후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신라와 힘을 합쳤고 신라 지배계층이 자연스럽게 고려를 이끈 중심세력으로 부상했다. 조선도 마찬가지이다. 신진 사대부뿐만 아니라 고려를 이끈 권문세족 상당수가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참여하여 그 세력을 조선으로 이어 나간다. 한편 조선병탄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대표적 친일파 중 한 명이 이완용이다. 이완용이 조선 후기를 이끈 집권당 노론의 영수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세계 어느 역사에서도 자기나라를 다른 나라에 고스란히 갖다 바친 나라는 없다. 대개의 경우 최소한 군사적 대항을 해보지만 압도적인 무력에 맥없이 굴복하더라도 말이다. 이런 친일파들이 식민시대를 이끌고 해방 이후에도 살아 남았다. 어쩌면 우리역사는 기실 통일신라를 이끈 기존 지배세력들이 왕조와 국가가 바뀌는 변혁의 시기에도 살아남아 면면히 지배력을 이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또한 천황을 중심으로 고래의 역사관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처럼 고대의 적대관계가 오늘날까지 한일 양국의 무의식속에 이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전술한 동북아역사재단의 역사지도나 김현구 명예주장의 학설을 직접적으로 식민사관이라 하기엔 부족한 점들이 상당히 많다. 이덕일 소장이 주장하는 바에도 어느 정도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중국, 일본의 고대사료들을 종합하여 고증하면 역사적 진실을 추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본서기를 근거로 한 김현구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한반도 남단에서 백제와 일본 연합군이 신라를 침략하고 7가야를 평정한 기록이 공히 기록되어야 한다. 특히 피해 당사국인 신라와 가야기록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그러나 일본서기에서 신덕황후가 신라를 침공하고 가야를 평정하였다고 기록된 같은 연도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국의 사서 어디에도 신라, 가야가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는 기록이 나와있지 않다. 일본이 아닌 백제가 임나를 경영하였다는 김현구 교수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신라, 가야를 평정하여 임나를 구원한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임나가 가야라는 이론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비록 그가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했다 하지만 임나가 가야라는 그의 해석이 비록 그가 의도하지 않았을 지라도 일본 학계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오용될 수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싶다. 

  

  주류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한사군과 고대 한민족이 경영한 국가의 강역에는 국내외 사료상에서도 많은 허점이 있다. 한반도에서 고구려와 백제는 남북에 위치한다. 그러나 중국 위서에서는 고구려의 서쪽에 백제가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륙부여의 근거가 될 만한 기록이다. 단재 신채호, 북한 역사학자 이지린, 한국 윤내현 교수이 그려내는 고조선은 우리가 교과과정에서 배운 상식과 너무나 다르다. 역사학 관점에서는 사료와 고증으로 치열하게 논박이 되어야 할 이슈임에도 주류 사학자는 몽상가 내지 사이비, 유사학자라고 비하 혹평하며 상대조차 하지 않는다. 주류사학자들이 스스로를 역사학자라 여긴다면 재야 사학계가 제시하는 고대 상고사의 異論에 대해 응당 학문적 논쟁으로 진지하게 맞서야 할 일이다. 

 

  톰 크루즈가 열연한 '라스트 사무라이' 영화에서 메이지 유신 세력에 저항하고 천황을 복위시키려는 우국지사가 등장한다. 사이고 다카모리이다.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라스트 사무라이를 본 관람객들은 최후 결전인 세이난 전쟁에서 청렴결백한 사이고 다카모리와 그를 따르는 사무라이가 분연히 칼을 들고 일어나 근대식 기관총에 맞서다 장렬히 산화하는 라스트씬을 보며 비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이코 다카모리야 말로 유신 3걸 중 가장 극단적으로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을 펴다 실각한 메이지 유신의 주체였다. 근대 일본에서 처음으로 정한론을 주창한 이가 요시다 쇼인이다. 그에게 사사받은 사츠마, 죠슈번 출신 제자들이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주역이 된다. 유신3걸과 조선병탄을 이끈 이토오 히로부미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현재 아베수상과 과반 이상의 내각, 그리고 자민당의 최대세력은 정한론을 추종하는 일본회의라는 극우단체 출신이다. 이들에게서 진정한 과거사 사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반일종족주의가 화제이다. 저자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실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아시아를 침탈한 일본이 주장하는 바를 그대로 답습한 궤변이 하나의 진실로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낄 지경이다. 이 시대에 역사 지성은 정말 사라진 것일까?

 

  역사를 규명하는 작업은 일차적 자료에 대해 철저하고 객관적인 검토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학자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역사의 공정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역사의식과 역사관에 배치되는 한이 있더라도 사료와 사실에 입각하여 추론하고 해석해야 한다. 어쩌면 유시민이 지적한 대로 공정한 관찰과 해석이 현실에서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는 체 게바라의 말이야말로 역사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理想이라고 말하고 싶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p*****7 2019.09.22.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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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를 배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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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역사를 만들어왔던 일본의 경우, 지난 한 세기 동안 무력으로 얻은 승리가 영광이었을지는 몰라도 지금에 와서는 결국 큰 짐이 되었다. 그 짐을 벗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역사의 동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262쪽)    지난 한달동안 정치권의 이슈가 뉴스를 집어 삼켰다. 그런데 그 직전까지는 일본의 경제 침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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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역사를 만들어왔던 일본의 경우, 지난 한 세기 동안 무력으로 얻은 승리가 영광이었을지는 몰라도 지금에 와서는 결국 큰 짐이 되었다. 그 짐을 벗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역사의 동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62)

 

 

 

 

지난 한달동안 정치권의 이슈가 뉴스를 집어 삼켰다. 그런데 그 직전까지는 일본의 경제 침략이 시사 문제의 단연 으뜸 주제였다.

그때 밤을 지새워가면서 많은 컨텐츠를 봤던 기억이 난다. 열대야 속에서.

 

같이 분개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사이다 같은 시원한 발언들에 함께 통쾌해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유머러스한 사람들의 글에 참 마음이 따뜻했었다.

봉오동 전투를 보면서 다시금 전투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고 이제 곁에 이 책을 두고 읽었다.

 

KBS에서 2010년에 국권침탈 100년을 돌아보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걸 책으로 펴냈고 지금 재개정판으로 나온 책.

한국과 일본, 2000년의 숙명이다.

 

 

특별역사다큐 제작팀은 일본과 우리나라 곳곳을 오가면서 한국-일본 양국의 역사를 5부작으로 제작하였다.

 

일본의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20세기까지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두 나라의 관계를 돌아보았다.

 

단편 단편은 들어본 역사이지만, 아무래도 정리되지는 못했던 역사.

한국-일본의 관계사라는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어서 너무도 유익했다.

한국사, 일본사 이런 식으로만 접근했었는데 또 다른 관점으로 읽을 수 있었다.

 

서기 645년에 죽기까지 100년 동안, 일본 황실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던 귀족이 있다.

소가노 이루카 가 그의 이름이다. 그는 백제계 일본인이었다. 도래인 이라고 한다.

백제의 목씨 성이 일본 도래인이 되면서 소가씨가 되었다. 소가씨 가문은 백제로부터 선진 문물을 직접 전달받았다.

이후에 백제가 고구려, 신라와 전쟁을 할 때 백제는 소가씨를 통해서 일본에 참전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소가씨를 중심으로 100년동안 이룩한 일본 고대의 문화는 여러 가지 문물을 남겼다. 이는 현재의 시점에서도 매우 뛰어난 사찰과 유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책은 일본서기를 비롯한 일본의 역사 서적, 삼국사기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역사 서적을 통해서 예전 발자취를 쫒았다.

이후에 고려시대에 양국의 관계를 여러 사료와, 교수, 전문가의 인터뷰로 알려준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구한말의 개화기로 이어지면서 일본이 침략주의를 체택하게 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하였다.

 

영상인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풀어냈는데 가독성이 매우 높았다.

마냥 쉽지만은 않은 과거사, 묵직한 주제이지만 그래서 수월하게 읽혔다.

 

일본 쪽에서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아 왔는지, 그것을 일별할 수 있는게 제일 좋았다.

 

조선시대에 조정대신들과 학자들이 일본을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알수 있음도 좋았다.

비록 왕조 말기에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지만, 그 이전까지 지혜롭게 대처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있었다.

 

신숙주는 해동제국기라는 책을 통하여서 이렇게 적었다.

 

이적(夷敵)을 대하는 방법은 밖으로의 정벌에 있지 않고 내치(內治)에 있으며,

변방의 방어에 있지 않고 조정에 있으며, 전쟁에 있지 않고 기강을 진작하는 데 있다고 들었습니다.

(158)

 

 

물론 조선 시대에

중국과의 국경에서 오랑캐와, 남해에서는 왜적의 출몰에 끊임없이 방어하며 소탕했다.

 

외부의 적의 침입에 그때그때 대응하는 것이 1차적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멀리 바라보면서 대책을 세우고자 했던 선조들이 존재했다.

 

신숙주의 시각은 지금의 관점에서 효용성과 통찰력이 있어서 놀라웠다.

 

2000년의 역사 속에서 우호적인 때도 있었지만 19세기 후반 일본은 야욕을 드러냈다.

그 이전에 서로 교류했던 기억은, 잔혹한 침략 지배로 완전히 잊혀졌다.

 

최근에 일본에 대한 무언가를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이분이 등장한다.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 그분의 통찰력과 조언들이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뼈 때리는 진실을 전해주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인상깊었던 교수님의 한 마디가 이거였다.

서로가 서로를 배워야 합니다.”

 

이 책 한국과 일본, 2000년의 숙명을 읽으며 몇 차례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백제, 고구려, 신라의 역사를 상대적으로 잘 모른다는 것이 그 하나였다.

 

또한 조선의 역사를 내부적으로만 보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중국, 일본과의 관계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KBS 국권침탈 100년 특별역사다큐 제작팀.

책의 서문과 에필로그를 대표해 적은 저자들의 글들이, 하나하나 와 닿았다.

한편으로 뼈 아프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적으로 전망할 수 있게 하였다.

 

제목은 좀 부담스러울지 모르지만

다큐를 기반으로 하였어서 이해하기 쉽다.

그렇게 두껍지도 않아서 한번 꼭 일별해 보면 좋겠다.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2000년 역사 속에서 평화가 가능했던 때는 적대를 적대로 되갚지 않고 한국이 주도하여 공존의 틀을 만들었던 시기였다.

일본이 한국에게 멀게 느껴질 때일수록 한국이 먼저 일본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는 경제, 군사, 문화등 모든 면에서 한국이 일본에 뒤지지 않은 힘을 확보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100년 전 우리가 당한 강제병합의 아픔을 다시 겪지 않는 길이 아닐까.

-KBS 국권 침탈 100년 특별기획 제작팀


YES마니아 : 로얄 b********5 2019.09.12.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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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한일관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내용보기
2010년 8월, 국권침탈 100주년을 돌아보며 KBS가 기획한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기해왜란"이라고 불릴 만큼 한일 양국의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현 상황에서 한일 관계를 돌아볼만한 역사적 사실들을 담았다. 우선 우호와 적대는 별개의 것이 아닌 한 몸이라 말한다. 그 때문에 아무리 적대적인 상대라도 절대로 관계를 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위협적이고
"한일관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내용보기

2010년 8월, 국권침탈 100주년을 돌아보며 KBS가 기획한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기해왜란"이라고 불릴 만큼 한일 양국의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현 상황에서 한일 관계를 돌아볼만한 역사적 사실들을 담았다. 우선 우호와 적대는 별개의 것이 아닌 한 몸이라 말한다. 그 때문에 아무리 적대적인 상대라도 절대로 관계를 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위협적이고 적대적인 나라일수록 적극적, 능동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이 책에서는 한일 양국간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 설명하고 있다. 우선 삼국시대 백제에 닥친 국난을 타개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바다를 건넜던 백제인이 아스카에 정착해 일본 제1의 귀족으로 성장한 이야기를 다룬다. 고대 일본을 100년간 실질적으로 통치하며 백제와 교류하여 선진 문명을 일본에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당나라가 고구려 등을 압박하자 커다란 위기 의식을 느낀 일본은 한때 신라와 우호적인 관계도 맺어보지만 백제를 지원하기 위해 백강 전투에 군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어서 1274년 일본을 침공한 고려와 몽고 연합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기억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뿌리 깊은 적대 관계의 시작이었다고 언급한다.



일본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면 무쿠리고쿠리가 온다는 말을 한다는데, 무쿠리고쿠리는 몽고군과 고려군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그 정도로 일본은 고려를 원나라와 하나로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원나라보다 더 나쁜 이미지를 고려에 부여해 나중에는 고려 침공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여몽연합군이 일본 정벌에 실패한 이후 한반도 연안에는 왜구들이 들끓기 시작했는데, 조선은 왜구를 제압한 후에도 관직 제수 정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왜구를 관리했다고 한다. 왜관을 설립하는 등 평화로운 교역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삼포왜란과 임진왜란 등이 이어진다. 조총을 도입해 중세봉건 시대를 마감하고 서양의 여러 기술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일본과 달리 조선은 서양인들이 가진 기술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본의 정한론에 속수무책으로 나라를 잃게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의 맨 마지막에는 일본의 경우 역사적으로 내부의 정치, 경제적인 위기가 고조될수록 그 시선을 외부로 돌린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할 만큼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있고 정치 또한 마찬가지라면서 21세기 정한론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언급하고 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d****o 2019.09.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