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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필요한 시간 서평 『믿는다는 것의 과학』(휴먼사이언스.2012. 20,000원) 과학자는 ‘믿음’을 어떻게 정의할까? 생물학적·신경심리학적으로 믿음은 뇌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실이라고 가정하는 ‘지각, 인지, 또는 감정’이라고 한다. 또한 개인의 믿음 체계는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서 수용한 정보의 영향을 받는다.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믿음들은 의식화되지 못하고 쉽게 잊힌다. 이러한 지각, 인지, 감정 및 사회적 합의라는 네 개의 영역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믿음들을 만들고, 비교·평가하도록 해준다. 그런데 만약 당신의 믿음들이 진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지각하고 인지한 것을 통해 감정을 형성한다. 이러한 감정적 반응이 신경에 기억의 형태로 흔적을 남기게 되고 이렇게 쌓인 기억을 토대로 사람들은 믿음을 형성한다. 일부 학자들은 기억을 신경적 믿음의 한 형태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억은 근본적으로 구성적 과정이라 왜곡과 실수에 취약하다. 때문에 믿음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카그라스 증후군은 자기의 옆에 있는 배우자가 실제가 아닌 배우자의 모습으로 위장한 가짜라고 믿으며, 심지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까지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믿는 장애다. 또한 코타르 증후군 환자는 실제로 자신이 죽었으며 걸어 다니는 시체라고 믿는다. 또한 실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광고는 믿음을 교묘히 활용한 대표매체다. 특히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환상과 욕망을 건드릴 때 더욱 그러하다. 대중과학지에 게재된 한 광고는 ‘단 4분’만에 할 수 있는 완벽한 유산소 운동을 소개했다. 이는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 광고는 ‘유산소’라는 정의의 허점을 이용했다. 유산소의 뜻은 신체에 산소를 공급하는 일련의 활동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어떤 움직임이든 우리는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광고에서 노리는 점은 4분 동안의 유산소 운동으로 마치 20분 이상의 운동을 한 것 같은 효과를 볼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믿음’은 오류가 있을 수도 있으며, 사실을 과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정보 하나하나에 의구심을 갖고 진위를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제대로 믿을 수 있는 걸까 『믿는다는 것의 과학』은 앤드류 뉴버그와 마크 로버트 윌드먼이 공동으로 집필한 자연과학 책이다. 앤드류 뉴버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부설 병원 방사선-심리치료과 부교수이며 종교학과 겸임 조교수이자 영성과 마음 센터장이기도 하다. 또한 마크 로버트 월드먼은 로스앤젤레스 로얄라 메리마운트 대학교 겸임 교수이며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영성과 마음 센터에서 부선임 연구원으로 있다. 글쓴이는 인간의 뇌는 ‘믿는’ 기계이고 우리의 모든 체험은 믿음들의 깊이와 질에 영향을 주며 이런 믿음들이 없다면 세상을 살아갈 수조차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왜 믿는지 이해하려면 우리 몸에서 실제로 믿는 마음이 생기는 부분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뇌를 연구했다고 한다. 책은 책 읽기에 앞서, 1부, 2부, 3부, 나가는 글로 구성되어있다. 각 부는 뇌는 어떻게 우리의 현실을 만드는가, 도덕적 인간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신과 믿음 그리고 뇌로 이루어져있다.
사람들이 올바른 믿음을 가지려면 책에서는 해결 방법 중 하나로 부단히 경계하고 신중하도록 평소 자신을 훈련하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철학적 회의론을 통해 우주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했다. 이는 모든 실체를 절대로 완벽히 알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즉 ‘회의’하는 마음과 열린 자세로 모든 것을 바라봐야 한다는 말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회의론을 비관론이나 불신과 동일시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회의론자는 자신의 믿음이 사실인지 아닌지 조심스레 확인해 보는 사람을 뜻한다. 회의론자는 편견이 없다. 양쪽 의견 모두 수렴할 준비가 되어 있다." -P31 사람은 모두 잘못된 기억과 잘못된 믿음에 빠지기 쉽다. 기억은 조작되거나 뒤죽박죽 뒤섞여서 잘못된 내용을 포함하기도 하며 우리는 그것을 굳게 믿기도 한다.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예외일 수 없었다. 〝1980년 선거운동 기간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후보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일화를 자주 인용했다. 비행기가 폭격을 당하자 조종사는 낙하산 탈출을 시도했지만 부하 한 명이 부상이 심해서 뛸 수 없었다. 이 때 “걱정마라, 우린 함께 간다.”라고 조종사가 말했다. 레이건은 이것이 실화라고 믿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러나 이는 실화가 아닌 영화<긴급착륙>의 한 장면이었음이 나중에 드러났다.〞-P174 이렇듯 사람들마다 얻은 정보와 뇌가 신경학적으로 해석하고 통합하는 방식이 다르며, 여러 가지 믿음이 존재한다. 그 ‘믿음’ 또한 불완전한 기억으로 쌓아올린 위태한 모래성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각자의 믿음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결론이 아닌 ‘최상의 가정’임을 인정하고, 진실을 확인하려는 회의적 태도를 길러야 한다. 살면서 더 현명하게 믿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믿는다는 것의 과학』을 읽고 ‘회의’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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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다 뭐다 난무하는 시대에 근본적으로 뭔가 설명되지 않은 허전함이 있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건, 물론 신경과학적인 용어들로 설명되는 전전두엽,해마, 측두엽이 있지만 어쩔수 없이 믿음수 밖에 없는 믿음들로 현실을 해석하며 믿고싶은데로 살아가는것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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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야 하는가? 믿어도 되는가? 그렇다면 믿지 않는가? 믿지 않는 것에 대해 편안한가? 불가지론자인가? 죽기 전엔 결정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에서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신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 앤드류 뉴버그가 Born To Belive(믿는다는 것의 과학)으로 돌아왔다. 재밌는 건 동일한 그의 이전 연구가 종교가와 무신론자를 비롯한 회의론자들에게 동시에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는 데 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그동안 발전된 뇌과학과 뇌 활동 사진의 발전으로 더욱 과학적으로 더욱 신경학적으로 종교, 더 나아가 믿는다는 것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그는 내적 종교 활동 중 깊은 몰입의 단계에서 경험하는 강렬하고 초월적인 경험을 통해 종교와 믿음이 가진 본질을 과학적으로 파헤친다. 기도의 끝에서 신과 만나는 경험을 하는 수녀, 오랜 수행의 끝에서 해탈의 경지를 경험하는 불교인, 그리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명상을 통해 우주와 만물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초월적 경지에 이르는 무신론자 세 사람이 보여주는 그들만의 신, 혹은 믿음. 그것을 발달된 과학이 예술처럼 빚어낸 뇌 사진 fMRI를 통해 드러난다.
명상할 때의 신경학적 변화는 지각과 감정 언어에 대한 일반적인 처리 과정을 중단시켜서 그 체험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롭고 통합적인, 지워지지 않는 현실로 만든다. 실제로 이런 상태의 체험이 주는 강렬함음 수행자에게 세상에 대한 평범한 자각을 넘어서 특별히 높은 단계의 현실이 존재한다는 의식을 주기도 한다.
방위 영역이라고 부르는 두정엽은 주위 환경을 3차원으로 창조해내는 방식으로 감각 정보를 해석 한다. 만약 두정엽에서의 활동을 의식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면 아마도 자각의 일시적인 정지나 상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수녀와 불교도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결과는 이들이 명상하는 동안 두정엽 활동을 자유롭게 감소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두엽은 열 명의 사람들이 같은 지각 경험을 하고서도 열가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든다. 수녀들에게 명상동안의 사진은 그들의 뇌에서 신의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반면 불교도들에게는 그들의 수행이 존재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순수한 자각의 경지에 도달하게 해 준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내적 평화의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시상은 유입되는 감각 정보를 뇌의 여러 부분ㅡ 전두엽에 있는 고도의 인지 처리 중추를 포함ㅡ으로 다시 내보낸다. 명상을 하면 일상적인 지각은 변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도 시상은 정상적인 체험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이러한 해석은 대부분 이런 체험을 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발전시켜온 믿음 체계에 근거한다.
우리가 특정 믿음이나 대상에 초점을 맞춰서 명상을 할 때 편도체는 이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자율신경계가 가동 되기 시작하면 시상은 모든 것이 실제로 느껴지도록 해 준다. 이 정보는 전두엽으로 돌려 보내 주고 거기서 의식에 인지된 후 우리의 믿음에 알맞게 재해석된다. 해마는 그 경험을 장기적인 감정 기억으로 깊이 새겨진도록 돕는다.
가장 주목해볼만한 사실은 이 두 종교인과 비슷한 뇌사진 결과가 무신론자의 무아의 경지 경험 과정 중에서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인들의 영적 체험이 뇌의 특정한 신경 처리 과정일 수 있으며 그런 경험을 세속인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제시하였다. 누구에게나,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는 나의 영역이 안에 있다.
이 밖에도 믿음에 대한 뇌신경학적 근거를 찾기 위해 뇌의 각 부분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많은 철학적 성찰과 과학적 고찰을 함께 담아 내고 있다.
뇌는 원인과 결과를 두개의 요소로 나눠 만일 ~하면~ 한다의 각본으로 단순화해 인지한다. 단순화 일반화 하는 신경 처리 과정은 생물학적 특성이다. 하나의 대립쌍이 성립되면 뇌는 쌍을 이루는 양자 모두에 감정적 편견을 부여한다. 대상이나 사람 관념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놓으면 하나는 선호하고 다른 하나의는 반감을 갖게 된다. 우리는 본래 생물학적으로 사람들을 집단으로 나누고 그들을 분류하고 정형화하며 그런 다음엔 그들을 차별적이고 편파적인 방식으로 평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 수준에서 안면 인식 같은 처리 과정은 뇌의 전체론적 기능에 크게 의존한다. 전체론 적으로 생각할 때는 믿음을 분석하고 비교하고 계량하고 정당화 할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그저 옳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체론적 사고는 언어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신은 측정할 수도 부분으로 환원할 수도 없다. 고대 히브리어로 문헌에 따르면 신은 명명할 수도 없다. 신을 명명하지 않는 것은 세상의 모든 대상에 이름을 붙이려는 뇌의 추상화 기능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 만일 무엇인가를 지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신의 능력이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면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기적을 찾거나 다른 증거를 찾아 다닌다. 적어도 뇌가 정상으로 기능하는 한 미지의 것을 무조건 믿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뇌과학 관련 책에서도 많이 다루는 내용이어서 그리 새롭지는 않지만, 기억과, 잠재의식의 처리 과정, 뇌가 발달하는 시기에 받은 영향에 대한 글 다시 새겨 읽게 된다.
많은 경우 기억에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야기에서 기억이 만들어진다. 기억은 서로 뒤섞여서 혼동되기도 하고 가끔 세부적으로 잘못된 내용을 포함 시키기도 한다. 이런 잘못된 정보의 조각들이 새 기억속으로 부호화되고 후에 다시 회상되면서 재차 변화되어 마침내 더 정확하게 지각했던 이전의 기억을 대체하게 된다.
아이의 뇌에는 특히 논리와 이성 의식 통제를 담당하는 전두엽은 물론 도처에 과잉생산된 뉴런들이 있다. 이 뉴런들의 과도한 연결은 괴물과 요정 수많은 상상이 존재들에 대한 환상과 관련이 있다. 권위에 독점적이고 교리에 엄격한 근본주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 비해 독선적 편파적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자비롭고 관대한 신에 대한 믿음이 아이들에겐 낙천성과 안정감을 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선과 악의 추상적 양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 연속성의 어딘가에 살고 있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추론과 감정 처리가 불가능 하다. 이런 상태에 환자는 감정적으로 과도하게 반등 하거나 전혀 반응 하지 않거나 둘중 하나이다.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수치심 보다는 죄책감이 행동 교정을 위한 의지를 강화 한다.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그것은 의식하기 몇 밀리세컨드 전에 뇌 안에서 전기 활동이 일어난다. 그것은 인간이 곧 갖게 될 생각에 대해 잠재의식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일이 우리의 의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오히려 의식은 이전에 일어난 사건들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의식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 차리기까지 약 0.5초가 소요 된다.
* 이 글의 대부분이 책에서 그대로 가져온 인용이어서, 따로 색깔로 구분하지 않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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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는 것의 과학》(휴머니스트, 2012)은 최신 뇌과학의 연구 성과를 일상적인 경험과 초자연적인 경험의 신경학적 토대를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자아와 타인 그리고 세계에 대해 굳게 믿고 있는 것들의 형성과 믿음체계에 대해 성찰한다.
"인간 의식의 본질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은 마음에 끊임없이 마술을 부려대는, 마법사의 견습생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믿음은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믿음은 문명을 발전시키고 혁명을 주도하고 예술을 창조하고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믿음을 통해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증오에 몸부림치기도 한다. 믿음의 작용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겐 믿음이 있고 또 믿음을 필요로 한다. 믿음은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44-5쪽)
우리의 일상적 믿음을 구축하는 요소로 인지적 믿음이 있다. 인지적 믿음은 추상적 기능, 수량적 기능, 인과추론 기능, 이원적 또는 대립적 기능, 환원론적 기능, 전체론적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추상적 기능은 현실을 추상적으로 범주화하고 명명하여 받아들이는 기능이다. 수량화 기능은 대상과 개념를 수량화하고 행운의 숫자 7이나 죽음의 숫자 4처럼 숫자에 다양한 감정적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이다. 인과 기능은 신경정보를 일련의 원인과 결과로 구성하는 능력이다. 이원적-대립적 기능은 선/악, 흑/백, 남/녀, 그들/우리 혹은 내집단/외집단처럼 대상을 대립되는 쌍으로 단순화하는 신경처리과정이다. 환원론적 기능이 전체를 부분으로 쪼개는 능력, 즉 숲에서 나무를 보는 능력이라면, 전체론적 기능은 부분을 취합하여 전체로 지각하는 능력, 즉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능력이다. 강박장애는 지나치게 환원론적인 뇌에서 일어나고, 무의식수준에서 안면인식과 같은 처리과정은 전체론적 기능에 크게 의존한다. 논리적·합리적·환원론적 처리과정은 주로 좌뇌에서 실행되는 반면, 세상을 통합적이고 연결된 방식으로 보는 능력은 우뇌와 관련된다.
저자들은 아동의 믿음체계가 뇌의 신경발달과 분명히 일치한다고 주장하고 다섯 가지 인지발달단계를 설명한다. 1단계 믿음의 부재, 2단계 규칙을 지키는 법, 3단계 공정하게 행동하는 법, 4단계 사춘기, 혼란과 창조성 발달의 시기, 5단계 지적 성숙과 종교성 저하이다. 그리고 인간의 도덕은 네 개의 원리가 서로 연결되어 구성되어 있는데 생존을 추구하는 유전적 성향, 뇌의 신경 발달, 집단 응집성을 위한 사회적 규범 그리고 옳고 그름과 선악을 판단하는 인지적 성향이 그것이다.
책은 마지막 담론을 뇌가 현실을 왜곡하는 방법에 할애하고 있다. 총 27가지 편견을 소개하고 있는데, 가족 편견, 권위 편견, 매력 편견, 확인 편견, 사리(私利) 편견, 내집단 편견, 외집단 편견, 집단 합의 편견, 편승 편견, 투사 편견, 기대 편견, 마법의 숫자 편견, 확률 편견, 인과 편견, 쾌락편견, 의인화 편견, 지각 편견, 끈기 편견, 잘못된 기억 편견, 긍정적 기억 편견, 논리 편견, 설득 편견, 순위 편견, 불확실성 편견, 감정적 편견, 출판 편견, 맹점 편견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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