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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붉은색 표지엔 사람 다리, 새, 그리고 아래엔 로프가 보인다. 약 2주간 이 책을 들고 다녔더니 아내와 회사 직원들이 무섭다거나 '뜨악'하는 반응이었다. 주변의 걱정스러운 눈빛과는 하등 무관하게 난 그저 궁금했을 뿐이었다.
타인에 의한 죽음이나 불의의 사고에 의한 죽음과는 달리 스스로에게 가한 이 죽음에 대한 역사를 보면 어느 사회, 어느 종교에서건 위로는커녕 저주를 내렸었다. 지금은 예전과는 달리 그나마 위로라도 할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 그러나 그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하는 위로의 뒤끝은 죽은 이에 대해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의지박약' '개인적 병리' '정신병'이라는 꼬리표를 달기 마련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그리고 과연 개인적인 문제인가 하는 의구심도 생겼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왜 궁금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서울시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큰 계기일 수도 있고, 그전에는 주인의 흔적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오래된 블로그를 들여다볼 때부터일 수도 있다. 사회로 눈을 돌리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OECD 자살률 1, 2위를 꾸준히 달리고 있는 이유도 궁금했다. 참고로 1위라는 숫자가 실감이 안 난다면, 2018년 기준 총 13,670명이었다. 하루에 대형버스 탑승 인원이(38명), 한 달에 300세대 아파트 전체 주민이(1,200명), 8개월이 지나면 울릉도 전체 주민(1만 명)이었다.
과연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일까. 이 책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은 스스로에게 가한 죽음이 반드시 개인적 병리 현상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책이다. 즉 사회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또 이것이 지금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회 집단의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하고 있기에 역시나 자살은 사회적 문제임이 틀림없다. 왜 사회적 문제일까. 100년 전 뒤르켐은 먼저 개인적 병리 현상이 자살의 원인이 아님을 여러 통계 자료를 통해 규칙성과 비 규칙성을 제시하면서 하나씩 지워나간다. 이 통계자료에 혀를 내두를 정도인데 시대, 지역, 성별, 기후, 기온, 알코올, 시간, 종교, 인종까지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논증한다. 어찌 다 모았을까. 이후 자살의 형태를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순장, 가미카제), 그리고 아노미적(공동의 가치와 도덕적 기준이 없는 혼돈상태)자살로 구분하고 이타적 자살의 형태는 현대 사회에서 배제할 정도로 드문 일이 되었다는 설명을 한다. (간혹 군인집단에서나 겨우 보일 정도)
주목해야 할 형태는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이다. 공공의 가치와 도덕 또는 종교적 규제가 느슨해지는 상황에서, 더구나 크게 사회적 공황의 상태에서 자살이 급증함을 밝히고 있는데, 당시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개발과 진보의 기치 속에 개인의 존엄이 희생되었던 시기와 맞물려있다. 가톨릭에서 종교의 다양한 해석을 인정하는 개신교로 옮겨가면서, 또 가족과 지역의 유대보다는 개인을 중요시하는 개발의 시대에서, 여가보다는 노동과 물질의 시대에서, 사회적 통합이 어렵게 되고 아노미적 자살과 이기적 자살이 증가한다는 뒤르켐. 비교하고 비교하고,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물질적 풍요와 욕망. 100년 전 뒤르켐이 말했던 시대가 지금의 우리 사회와 너무나 흡사하다. 실제 90년대 이전까지 우리의 자살은 드물었다. 뒤르켐이 말한 집단의 강제성(군부독재)이 개인의 이기성을 제어했거나, 또 이때까지는 그래도 가족과 지역 공동체로 묶여 있었거나. 그 지역과 집단 공동체의 가치가 개인의 가치와 보조를 맞추었거나 했겠다. 정확히 90년대 중반부터 우리 사회도, 우리의 자살도 뛰기 시작하더니 98년 IMF 이후 급격히 올라 부동의 1위를 하는 중이다.
해법은 있다. 집단의 관심과 집단의 가치로 개인과 사회 전체의 소통과 통합이다.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개인을 끌어내어 집단의 관심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뒤르켐이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직업집단이다. 이는 노동조합을 일컫는데 그가 말하는 직업집단은 이상에 가까워서 현실성은 떨어진다. 어쨌거나 대책 없는 정부는 버려두고서라도 끊어지고 약해진 개인과 개인사이의 연결 고리를 이어 줄 만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우리 스스로가 꾸준히 꾸리고 참여한다면 개인은 아노미와 이기성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뒤르켐이 말하는 공동가치를 추구하는 직업집단이 해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가 해법이 아니라는 가족이 더 현실성이 있지 않을까. "좋은 대학 못가면 ...." " 언제 취업해서……." 라는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내 아이, 내 형제라는 사람에 더 가치를 둔다면…….
20세기도 되기 이전에 21세기에 일어나는 모든 자살에 대해 얘기하는 『자살론』. 이제 우리는 자살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는 가슴도 따뜻해졌으니, 연애인과 사회 저명인사의 스스로에게 향한 이같은 소식을 듣는다면 그 개인을 이유 없이 비난하지도 그 의지력도 헐뜯지는 말자. 적어도 잠시라도 아파하자. 가능하다면 개그 프로그램도 살려보자. 또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정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인문학 독서를 하자. 그리고 지금 바로 전화기를 들자. "잘 지내?"
<OECD 비교 출처. 유투버>
<통계청 2020.10까지> http://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B34E17&conn_path=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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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 이하라 매우 실망했다. 성차별적 요소가 심해서 보면서 불편해지는 부분이 많았음. 경선식영단어책 이후로 가장 짜증났던 책. 경선식영단어에는 인종차별적 예문과 저질적 학습법 때문에 어떻게 이게 판매율 1위지. 도덕감정론을 비롯한 비슷한 분야의 고전들을 대부분 재밌게 읽었고 집필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여서 오히려 감탄스러운 적이 많았는데 이책은 잘 모르겠음. 통계도 별로 유의미해보이지 않음. 도서관에서 빌려읽는게 나을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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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은 유명한 책이어서 한 번쯤 꼭 읽고 싶었던 책입니다. 극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여겨지던 문제를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본 시선이 돋보입니다. 통계와 치밀한 분석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연결고리를 드러내며 현대 사회에도 중요한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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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은 자살을 사회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예전에는 개인적인 이유로 했던 자살을 했다고 생각했다면, 이 책을 통해 자살이 사회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뒤르켐은 특정한 범주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자살 가능성이 높음을 알아냈다. 여성보다 남성이, 가톨릭 신자보다는 프로테스탄트인이, 가난한 자보다는 부자들이, 기혼자보다는 미혼자들이 자살할 가능성이 높았다. 더욱이 자살률이 전시에는 낮아지고 경제적 변화나 불안정한 시기에 높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책이라고 본다. |
| 거의 15년이 지난 시절의 충동이지만 잊을 수 없는 생각 중에 하나가 자살 충동입니다. 주변의 도움으로 어찌저찌 살아남아 이 책을 읽게 되었네요. 제가 그 충동에서 살아남은 이유를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내 가족들과 친구들의 힘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생각이 틀림없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과학적이란 말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막연한 생각을 확신으로 만들고 결단해서 행동하개 하는 힘이 과학에 있습니다. 이제 과거의 흐릿한 미련을 확실히 정리하고 남을 생은 앞을 보며 살겠습니다. 과거의 미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신 저자님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
| 사회학적 공헌이 매우 큰 프랑스의 '에밀 뒤름켐'! 그의 역작 "자살론"은 이제 고전이 되었지만, 석학의 통계학적 열정과 지혜를 맛볼 수 있는 양서입니다. 19c 열악한 상황에서도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빛난 성과를 낸 자살에 관한 아름다운 연구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