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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군주론이 있다면 동양에는 한비자가 있다. <사기>를 읽다보면,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난세로 춘추전국시대를 꼽는 이유를 잘 알수 있다. 그러나, 난세가 사전적 의미로 전쟁이나 무질서한 정치 따위로 어지러워 살기 힘든 세상을 말하지만, <한비자>의 저자 신동준은 체제가 변하는 시대로 표현한다. 춘추전국시대가 신분세습의 봉건체제에서 능력위주의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으로서 겪는 난세였다면, 지금은 미국이 오랜 세월 G1으로서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이행해왔지만, 새롭게 떠오르는 G2 중국으로 인해 이제는 '팍스 아메리카나'가 아닌 '팍스 시니카'의 도래와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진단하며 새로운 체제로서의 이행과정인 현재를 난세로 보고 있다. 이런 난세에 《한비자》에 더욱 주목하는 이유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마찬가지로 공과 사의 영역을 엄격히 나누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혼란스러운 세상을 통일할 수 있는 방법은 강력한 군주의 중앙집권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신新국부론이라 할 수 있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들은 세계의 불평등과 경제불황의 원인으로 정치와 경제제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런 제도의 문제는 바로 정부(국가)의 실패로 보았는데 이러한 지적은 바로 한비자의 법치사상과 맞닿아있다. 막스 베버가 "합법적 폭력 사용을 독점하는 것이 곧 정부"라고 규정한 후로 이후 정부의 정의로 합법적 폭력기관으로 대변하게 되었는데 시장의 잠재력을 활용하고, 기술혁신을 장려하며, 인재 육성에 투자하고, 개인이 재능과 능력을 동원할 수 있는 경제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화와 다원적인 정치제도가 필요함이 저자들의 주장이었다. 이것은 한비가 난세에는 군권이 신권보다 막강한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군주가 아무리 현명할지라도 나랏일을 혼자 이끌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신하들이 군주를 위해 감히 충성을 다하려 들지 않으면 그 나라는 이내 패망하고 만다. 이를 일러 '나라에 신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한비는 군주에게 사직을 지키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행하라고 충고하는데 하나는 나라를 부강하게 유지하는 부국강병이고 하나는 군권의 신권에 대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제신술이다. 중요한 것은 이 두가지가 군주 개인의 도덕적인 덕목과는 하등 상관이 없으며 이 부분은 유가의 제왕지술과 다른 차이점이다. 역대 왕조의 명군(위무제 조조와 당태종, 청대의 강희제 등)이 겉으로는 유가사상을 내세우면서 속으로 법가사상을 가미한 이유를 외유내법의 통치라고 저자는 말한다.
진시황은 한비의 법치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공과 사를 엄격히 분리하여 난세인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비 사후 2천여 년만에 한비의 통치술이 도치와 술치,세치등 4가시 통치술로 구성돼어 있다는 사실을 1940년대 사천대 교수로 있던 이종오가 최초로 발견하여 이후 노자의 도치, 한비의 '법치'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는 '후흑구국'을 제창하며 서구 열강의 침탈로부터 중국을 보호하는 사상으로서 한비의 법치사상은 난세에 새롭게 떠오르는 리더십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무릇 치국평천하의 길은 반드시 우선 백성을 잘살게 하는 데서 시작한다.백성들이 부유하면 다스리는 것이 쉽고, 백성들이 가난하면 다스리는 것이 어렵다."
글로벌한 경제위기는 바로 민생의 위기로부터 나온다. 민생의 실패는 곧 시장의 실패를 의미하며, 이것은 정치의 실패를 의미한다. 결국 이러한 실패들은 리더십의 부재로 연결되어진다. 리더십의 새로운 창조의 보고로 <장자>를 읽으면서 기존의 장자를 문예와 철학의 보고가 아닌 창조적 상상력을 제공하여 주는 리더십의 보고로서의 장자는 색다른 고전의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책은 리더십의 보고 두번째의 책으로 창조적 경영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추어 난세에 한비자를 읽어야하는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되새겨보게 한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최근들어 주목받는 신국부론이라 칭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 이어 <한비자>를 읽으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의 요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만큼 <한비자>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들의 주장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져 있었다. 이천년이 흐른 뒤에 현 자본주의 국가의 한계점에서 한비의 법치사상이 새로운 패러다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져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동양고전에 주목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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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난세인가? 선뜻 대답하기가 망설여지지만, 20세기 후반 동구권이 몰락한 이후, 승승장구하던 자본주의 사회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고, 그 여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는 것을 보면 난세라 불러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유일무이하던 패권국이 그 힘을 잃고, 대국굴기 하려는 중국과 일본을 앞세워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의 대응을 보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흔히 천하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혼란을 동양에서는 난세라 칭한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난세라면 춘추전국시대를 꼽을 수가 있을 것이다. 난세이었던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각기 자신의 사상으로 천하를 움켜지려 했다. 그러나 난세가 끝이 났을 때, 최후의 승자는 법가이었다. 진시황이 법가사상으로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것이 그 증거이다. 그렇지만 진시황의 급서로 진제국이 멸망하자, 한무제는 유학을 유일한 관학으로 인정하였다. 그 이후, 난세에 통용되던 법가사상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그러기에 난세리더십의 정수를 담고 있는 법가사상의 대표저작인 [한비자]는 천하가 평정된 후에는 금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고전연구가인 신동준씨가 쓴 책으로 기존에 나와있는 [한비자]와는 몇가지 점에서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145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서도 나타나듯이, 한비에 대한 생애론과 사상론을 개괄하여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한비자] 55편 전편에 대한 주석이 실려있어, 기존에 나와있는 [한비자]가 주요 편만을 주석한 것과는 차별을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내용과는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있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맞는지, 어떤지를 내 자신이 판단할 수는 없지만, 좀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먼저, [한비자]가 몇 편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근거가 남아있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원나라 때 발견된 [송건도본]에 따르면 55편으로 되어 있으며, 오늘날 전해지는 것도 55편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 한비의 글인가 하는 점은 여전히 의문시 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제자백가서는 거의 예외 없이 후대인의 가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한비자]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비 본인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한비에 대한 기록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나 사마광의 [자치통감]에만 그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와있는 내용만으로 한비에 대해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가 역사서임에는 분명하지만, 또한 문학서라고 주장한다. 사마천 본인의 감정이 역사적 사건 곳곳에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비가 순자 밑에서 동문수학한 이사의 모함으로 옥중에서 독살되었다는 설은, 위나라 장수 방연이 귀곡자 밑에서 함께 공부했던 손빈을 모함해 폐인으로 만들었다는 설과 함께 정설로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당시 항간의 얘기를 그대로 실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마천이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여 한비와 손빈을 동정했고, 그러한 감정이 그대로 역사서에 개입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마천이 [사기]의 일부 대목에서 후대인을 기만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이고, 이제는 이사에게 씌어져 있는 간흉이라는 누명을 역사적 고찰을 통해 벗겨줄 때가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난세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은 설 곳이 없다. 서양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동양의 [한비자]가 모두 인간의 온갖 이기적이고 추악한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리더십을 강조한 것은 난세였기에 가능했다. [한비자]의 전편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사지변이라고 불리는 공과 사의 영역구분이고, 이는 한비 법가사상의 정화에 해당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사대권과 형벌권을 신하들에게 결코 나누어줘서는 안되고 오로지 군주가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군주전권을 뜻한다. 군권은 공권이 되고, 신권은 사권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유가들이 신권우위를 주장했지만 이는 난세에는 독약이 될 수밖에 없다. 남송과 명, 그리고 조선조가 성리학을 맹신하다 외침에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 그 증거이다. 한비 사상의 공과 사 영역구분은 크게 법치, 술치, 세치, 도치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법가사상을 이야기할 때 법(法), 술(術), 세(勢)의 세 줄기가 모여서 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상앙이 백성들의 사익추구를 막고 나라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법(法)을 강조한 것과, 신하들이 내세우는 이론과 비판을 그들의 행동과 일치시키는 신불해의 술(術), 그리고 군주만이 가지는 유일한 권세를 내세운 신도의 세(勢)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여기에 노자의 도(道)를 추가하고 있다. 그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노자와 한비를 하나의 열전으로 엮은 것은, 한비사상의 뿌리가 노자사상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무위(無爲)를 역설한 노자는 치국보다는 평천하에 초점을 맞추었고, 한비 역시 법가사상을 집대성하면서 도치를 수용하여 법치를 평천하 차원으로 끌어 올렸으며, 이는 노자사상의 정맥이 무치(無治)를 주장한 장자가 아닌 한비로 이어졌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한비사상은 한나라에서 위진 남북조시대에 이르기 까지 비록 유가사상이 통치술의 전면에 내세워졌으나,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송나라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한비의 스승 순자가 패도를 수용하며, 맹자의 왕도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성리학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자연스레 [한비자]도 금서로 묶인 것이다. 우리는 [한비자]를 읽으면서 춘추전국시대의 제후국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어떤 생각들을 하였는지를 살펴보고, 거기에서 오늘날에 맞는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 한비는 군주의 독재를 바람직한 리더십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군주의 독재는 군주가 군신들과 사안을 충분히 검토한 뒤 결단하는 것을 뜻했다. 권력과 지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통치가 불가능함을 지적한 것이다. [한비자]를 읽으면서, 한비를 알아가면서 지금은, 우리는 어떤지를 생각해본다. 역사를 읽으면서 지혜를 얻지 못하면 불행한 과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고전을 읽고, 또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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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난세 리더쉽의 보고 (양장본 HardCover) 한비자를 읽으면서 현재 당신이 기업의 오너이거나 한 팀의 리더라면 기업과 팀을 위한 측면과 사람과 사람의 인간적인 측면을위해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비전적 측면에서 기업과 팀을 위하고 현재적 화합 측면에서 직원과 팀원을 위한 길인가를 다양한 인간군상적 관계들속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비자韓非子가 리더쉽의 트렌드적 측면에서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기업이나 개인 모두 어려운 시기를 마주하는 시기적인 적절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출판사에서 정확하게 시의적절한 의식의 흐름을 읽은것 같아요. 더군다나 요즘처럼 경기침체로 인한 어려움 이 외로 회사나 조직의 수익성을 위협하는 뜻밖의 자연재해나 전염성 질환 등 인적 물적 운영관리의 난세적 상황들을 타개해 나아가는데 무엇보다도 미래를 담보하는 냉정한 판단력이 필요하고 그런 판단을 내리는데 적절한 바로미터가 되리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게 됩니다. 이러한때 21세기 난세적 시대를 헤처나가고자 국내외를 타킷하는 크고작은 기업들과 리더적 위치에서 현실을 반영한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철저히 관리하는 엔트로피적 처세술이 바로 한비자적 리더쉽일 수 있다는 생각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러는 예를 비유로 저자가 살아냈던 예나 21세기 오늘이나 똑같은 비유를 들어 본문에서 인사관리의 어려움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제12장 세난편에서 "사람을 부리는 일 또한 그리 편안하지 않다. 군주가 비록 사람을 부릴때는 반드시 일정한 법도를 기준으로 삼아야하고 진언과 실적을 참조해 이를 확인해야 한다. 일을 시킬때 일도 법도에 맞으면 실행 하도록하고 그렇치 않으면 제지한다. 결과가 진언한 내용과 맞으면 상을 주고 그렇치 못하면 벌을 내린다. 이처럼 실적과 진언을 바탕으로 신하를 장악하고 법도로 아랫사람을 단속하는 것은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을 부리는 일이 어찌 편안할리 있겠는가?."(韓非子 上篇 P. 385)라고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또한 얼마있으면 대한민국은 국민의 민의를 대신해줄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을 예견이나 한듯이 이러한 정치적인 상황을 돌아볼 수 있는 금언도 본문속에 찾아볼수 있는데 이는 제37장 난이편에서 "무릇 다른 사람에게 유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납득시키는게 어렵다는 뜻도 아니고 내 말 주변이 나의 의중을 제대로 들어내는게 어렵다는 뜻도 아니고 대담한 행보로 내 뜻을 모두 펼치는게 어렵다는 뜻도 아니다. 무릇 유세의 어려움은 설득 대상의 어려움을 헤아려 내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그에게 맞추는게 쉽지않은 데 있다."(韓非子 下篇 P. 417)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와같은 정치적 상황이나 소속한 조직 안밖의 양극단 측면에서 끊임없이 도전받는 치열한 업무속에 가장 힘이든 부분은 역시 어떤 사안에대한 결정과 지시, 결단 등 업무적 인적관리 측면이고 이러한 부분들은 한비자 어뎁티브 메뉴의 요소요소들속에서 도드라지는 사례들을 통해 행간에 숨겨진 전체적인 시선들을 독자의 시선으로 잡아주기 때문에 그 가치가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위에 휘둘리지말고 철저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라는 의미를 선포하는듯 합니다. 이는 결코 쉽지않습니다. 타인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쉽지만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불가피하게 코로나19와같은 위기의 또 다른이름으로 발생하는 예측치못한 어려운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과거의 저자는 현재의 독자 여러분들에게 보란듯이 예전에도 어떠 어떻게 견뎌냈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 우리에게 경우에 따라서는 철저하게 냉정하고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견뎌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가장 두려운 존재가 사람이며 실망하고 좌절케하는 존제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한편은 끝까지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어떤 어려움도 혜처나갈 수 있는 존재 또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이 역사적 현장에서 여러 부분마다 공감을 느낄 수 있다. 한비자가 내세운 법술세적 처세술과 때로는 우생마사라는 교훈도 기억하며 어려운 상황속에 마주한 현실들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렛릿비적 한비자의 문장들로 큰 위로와 격려가 되시길 기대합니다. *이 리뷰는 인간사랑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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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신동준/인간사랑/2012 상앙, 한비자 그리고 이사는 법가사상을 이야기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세사람이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바로 이 한비자 일 것입니다. 모든 고전이 다 그렇지만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고서 또 안 읽게 되는 것 중에 둘째 가기 힘든 것이 중국 제자백가의 책들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으면서 한번 읽어야지 생각하다가 거의 10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손에 잡게 된 책 한비자입니다. 신동준 교수님이 대략 5년 전에 이 책을 낸 듯 한데, 최근 올제에서 보급판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최대한 원문을 살린 번역으로 비교적 매끄럽고 시원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본문보다 배경에 대한 설명이 더 많은데 이게 재미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읽었답니다. 법가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엄격한 법의 적용을 강조하여 그 폐단이 만만하지 않았고 법가 사상의 세명의 거두라 할 세 사람 역시 억울하게 참소를 당한 뒤 자신들이 강조한 엄격한 법에 의해 처형된 불운의 학파입니다. 유가가 대세를 이룬 세상에서 잊혀져 버리긴 했으나 지금 민주적이라고 내세우는 나라마다 강조하는 것은 결국 헌법에 입각한 법치주의이니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사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한비자가 강조한 그 시대의 법이란 왕이 백성을 잘 다스리고 백성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호시탐탐 권력과 재물을 노리는 신하를 견제하기 위한 법이지만요. 지금도 권력을 등에 엎고 권력 몰래 분탕질 하는 일이 빈번하니 법가의 사상이 폐기처분하기에는 아까운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법을 어찌 만들까? 언급은 없지만 아마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똑똑한 사람이 왕이 되어 철인 정치를 하는 걸 생각한 듯하고 그런 왕이 법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지혜와 능력은 대를 잇는 것이 쉽지 않으니 결국 한비자의 이 생각도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친 것이겠지요. 그저 제자백가의 한 일파로서 이해하기 위해 읽는 것도 좋지만, 중국 고대에서 전국시대까지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읽기에도 좋습니다. 군데군데 여러 고사성어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도 나와서 깨알지식을 얻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생각보다 즐겁게 읽어서 이분이 번역한 책을 좀 더 읽어볼까 합니다. 사기로 시작할까 싶은데 언제가 될지는 늘 그렇지만 모르겠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