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기억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
"기억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 내용보기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뇌졸중으로 투병하시는 동안 형제들이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들 바쁘게 살다보니 명절과 제사 때나 만나던 것을 보면 갑자기 몇 년이 지나간 셈입니다. 전혀 기억에 없는 오랜 옛날 일까지도 시시콜콜하게 기억하고 있는 셋째를 보면 놀라곤 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저도 한 기억한다고들 했는데, 그 기억들이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기억을 화두로 붙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 내용보기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뇌졸중으로 투병하시는 동안 형제들이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들 바쁘게 살다보니 명절과 제사 때나 만나던 것을 보면 갑자기 몇 년이 지나간 셈입니다. 전혀 기억에 없는 오랜 옛날 일까지도 시시콜콜하게 기억하고 있는 셋째를 보면 놀라곤 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저도 한 기억한다고들 했는데, 그 기억들이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기억을 화두로 붙들고 있는 저로서도 신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J 페페님의 <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이란 단어가 눈길을 끌어 읽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에세이를 써온 그녀는 “(이 책에) 일상의 장소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살던 집, 학교, 동네 수영장, 카페, 식당… 매일 지나던 길, 가족, 친구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8쪽)” 예민한 저자가 남들과 만나면서 느끼게 되는 자신과 남들의 마음에 생기는 상처와 그 치유방법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 역시 ‘기억’에 관심이 많은 듯, ‘최초의 기억’을 내밀었습니다. 리뷰를 적는 이 순간 지나 온 저의 삶 가운데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네 살 터울의 막내가 태어나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다음은 할머니와 외할머니 댁에서 지내던 생각들... 그리고 보니 저자와 최초의 기억을 이야기하던 분이 내놓은 최초의 기억과 같은 것인데, 아마도 동생이 태어난다는 사건은 그 나이에도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기억의 바닥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가 하면 치매에 걸린 환자들을 ‘기억을 읽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은 치매환자들은 기억을 잃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즉 보고들은 것들을 기억의 창고에 들여보내는 능력이 사라진 것이지 이미 기억의 창고에 들어가 있는 것은 여전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보고들은 것 가운데 느낌이 약한 것들부터 기억이 약해져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자는 기억을 지키기 위하여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기록도 즉시성이 있어야 정확한 것이지 시간이 지나면 왜곡될 수도 있습니다.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한 시간과 그 시간에서 얻은 느낌들을 정리해보려던 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과 함께 했던 시간에서 얻은 느낌들은 빠뜨리지 않고 적어보려고 합니다.

 

어느 날 새벽에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눈물이 북받쳤던 저자는 마음을 추슬러서 수영장에 나갔는데, 수영을 하는 동안 다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친지가 주셨다는 위로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울 수 있다는 건 건강한 거예요. 내 나이쯤 되면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나와 오히려 힘들어요.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는 자꾸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거든요. 그렇게 살다 보면 진짜 울어야 할 때에도 눈물이 안 나와서 씁쓸해요.(2341쪽)” 어머니와 이별을 한지 불과 열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탓인지 이야기를 하다가, 심지어는 혼자있을 대도 울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마음을 가라앉히기는 합니다만, 굳이 그런 모습을 남이 어떻게 볼까 걱정스럽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보시는 분들도 이해해주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는 살만큼 살아온 셈이라서 타인의 삶이나 생각에 호기심을 가질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저를 낳아주시고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두 분에 대한 기억이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분에 대한 기억들을 모아두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y*****2 2014.08.26. 신고 공감 4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체념한 기억은 왜 아름다울까?
"체념한 기억은 왜 아름다울까?" 내용보기
가을 하늘이 화창하다. 나의 마음도 가을을 반기곤 한다. 가을은 새로움을 아니 기다린 시작을 예고하는 예감 때문이다. 새로운 시작.   모두 모두 버리고 다시 한번 나를 포옹해 보려 한다. 이젠 피어 오르는 국화 꽃망울을 보며 시작을 느껴 보려 한다. 사각의 이질감이 교차하는 비애감도 구석진 잔재에 묻힌 숱한 흔적들도 나에겐 아랑곳 없다.   오랜 감성의 동
"체념한 기억은 왜 아름다울까?" 내용보기

 

가을 하늘이 화창하다.

나의 마음도 가을을 반기곤 한다.

가을은 새로움을 아니 기다린 시작을 예고하는 예감 때문이다.

새로운 시작.

 

모두 모두 버리고 다시 한번 나를 포옹해 보려 한다.

이젠 피어 오르는 국화 꽃망울을 보며 시작을 느껴 보려 한다.

사각의 이질감이 교차하는 비애감도 구석진 잔재에 묻힌

숱한 흔적들도 나에겐 아랑곳 없다.

 

오랜 감성의 동요도 홀로 버틴 외로움 보다는

나직한 계단아래 던지어 버리고 진정으로 들어서는 감성을 보고싶다.

보이는것 이란 보이지 않은 남겨진 그림자와 같듯

우리내 마음은 마음 깊은 곳에 산다.

 

때론 갈등에 말미에 서성이고 다가서지 못한 초라한 괴멸감에 울곤했다.

진실이란 묘한 것이다.

자신의 이기감을 부추기고 전부하지 않은 형평을 깨트리려 하니 말이다.

인형을 사고픈 가을의 향연.

 

보이지 않은 진실을 경청하며 보이는 것을 삼키어 보련다.

하나의 마디가 지나고 느슥한 너의 골목길에 들어서는 꿈결엔

난 항상 오랜된 환상이 춤을 췄지.

무엇이 상황인지 무엇이 지나 교차하는 오류가 지나곤 했지.

 

그러나 이젠 매직스런 이질감은 버리기로 했다.

순간이라도 작고 나직한 아래계단 잔저리에 머물수 있다면

갇힌 어둠의 감옥보단 훨씬 행복하기에.

만용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갇힌 지하 감옥은 깊고 어두운 차가움만이 흐르지.

나을 흔혼을 고문하는 무서운 답습이 반복되고

감성의 느낌을 마모해 버리지.

그러나 이젠 그 문을 걸어 나오려 한다.

 

한땐 그립고 한땐 무섭게 미워지는 건......

아직도 나에 만용이 춤을 추기 때문이지.

변덕이 심하여 그럴까?

지옥과 파라다이스의 교차하는 혼미한 충돌 때문일까?

 

그러나 미워지는 건 나를 다시 체념으로 몰고 오지만

더욱더 이해의 우물에 비추어 보려 하지.

가을이 지천인 가을의 생동이 온 세상에 펼치어 지듯

마음도 한곳에 만이 머물수 없다는 어설픈 미련과 여운도.

 

진실한 것은 지독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쇠뇌시켜가면서.....

그늘진 구석에 핀 아집의 환생을 돕고 싶지않다.

아직은 다가섬이 더 낯설은 너의 숨결 곁에

질주처럼 피어오르는 가을만이 태연한척 한다.

 

이미 가깝고도 먼 갈등의 셋방에 머문 마음의 고뇌.

그래 여운의 문고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 문을 열면 시련과 환희의 새로움이 열릴 것이다.

타인의 방에 잠이들고.....벽진 칸막이 호흡을 들이쉰다.

 

산소 결핍된 금붕어처럼 거친 숨소리 난해하고

기나긴 어둠속에 나를 삼키는 고행을 산다.

이것이 진실한 지독한 아집스런 관심이나 집념일까?

미움과 증오 아닌 이해의 보이지 않은 관용의 날개깃을 만지려 든다.

 

미움과 증오 또한 다가서지 못한 허술한 규약에 묶이어 지지않길 빈다.

자신에 대한 해방 나로부터 해방되어 날아 오르라.

너는 두가지 구슬을 아름다운 보석함에 간직하고

건너지 못한 칸막이를 갖은 식어버린 심장의 표식 같다.

 

나도 이제 종속적인 아집을 버리면 자유스러워 질 것이다.

군림과 아집은 전부가 아니다.

이해와 관용 그리고 위로만이 완결된 자신을 내려놓을 것이다.

세상 혼자 걷지 않은 이 없으니 고뇌 또한 시련이라 말할수 없다.

 

길이란 길이 있어 걷는 것이고 누군가 흔적을 상충해 가며 걷지만.....

회귀키 위한 걸음인지라 지남도 남김도 애써 기억하려 구속된 삶을 산다.

다 기억 할수 있을까?

그럼 이미 체념한 아득한 기억은 왜 아름다운 것인가?

 

어차피 기억은 흔적을 남기는 아득한 시간의 여운 때문이 아니런가?

전부하지 않더라도 자신에 아픈 시련을 덜어내고 여유로운 온기를 나눠라.

세상은 짖궂게 흔적지며 건너편 기억을 지우는

결정된 운명의 언덕을 넘고 있다.

 

예감....

눈을 감고 회의.

그건 아집 때문이다.

보이는 것만 보아라.

 

보이지 않는것은 지금의 우리의 몫이 아닌지 모른다.

미리 눈물 흘리지 말고 남김에 흔적을 보이지 말라.

지독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부드러운 이해와 위로로써 너의 가슴에 남기어 져라.

 

그래야 영원히 그대 가슴에 오래 남기어 지리라.

흔적은...

아마..나아가지 못하는 족쇄와 같음이다.

이해와 갈등은 항상 충돌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남김 자리에 앉기 쉽다.

 

눈을 감고 지나간 흔적을 생각 마라.

눈을 감고 삼키고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라.

그것이 삶인지 모른다.

자신의 진정한 몫은 남김이 쌓인 잔재만이 비움으로 희석해 나가야 한다.

 

미움과 이해는 한 곳에 있지만 타인의 가슴에 산다.

그러나 마음의 벽을 치진 못한다.

담쟁이 넝쿨처럼 높은 담을 건너 너를 향하기 때문이다.

질주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만이 태연한척 한다.

h*****k 2013.10.17. 신고 공감 2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