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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바리공주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바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기적인 부모(?)를 위해 자신을 내 던지는 모습에서 어떻게 이게 현실에서 가능할까? 설화이고 이야기 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다시 그 책을 읽게 되었다. 부모가 되어 읽는 바리공주 이야기는 애잔함과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런 와중에 바리공주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 나왔다. 바리공주의 설화처럼 해피엔딩이 될까? 아님 효에 대한 지금 우리의 생각을 대변하게 될까? 어떤 이야기로 끌어갈지 궁금해 하며 읽었는데 책을 덮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오면 엉엉 울 수 있는데 그렇게 모진 감정이 휘몰아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난다. 내가 바리였다면, 나는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그 아픈 운명을 어떻게 개척하며 살았을지 상상할 수 없어 눈물이 났다.
연탄공장 사장 부인은 다섯 째 아이를 낳기 위해 산파를 불렀지만 조금 늦어졌다. 사장부인은 아이를 받는 산파에게 저주의 말을 내 뱉는다. 산파는 다섯째 아이를 맡으면서 똑같이 저주의 말을 내 뱉는다. 쌓인 연탄만큼 흔하게 계집만 낳아라, 마지막 아이는 내가 데려간다. 그리고 일곱째 아이를 받던 날 사장부인에게 말한다. “아기를 나한테 던지든지, 다른 이에게 던지든지, 내던져 버려. 정해진 뜻이야.” 그렇게 산파는 아이를 데리고 그 고장을 떠나 친구가 있는 곳으로 이사한다. 그곳엔 산파의 친구 토끼가 있다. 산파와 토끼는 어린 바리를 정성껏 키운다. 한국에서 엄마를 잃은 나나진, 어머니에게 버려져 할머니의 집에서 자라는 청하, 몸을 팔아 가족들 생계를 이었지만 결국에는 버림 받은 연슬 언니 그리고 산파와 토끼의 사랑을 받는 바리. 하지만 그들은 모두 뭔가에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변두리 우리가 흔히 말하는 루저들이 살아가는 곳. 그곳 한 귀퉁이에서 살아 숨 쉬는 그들. 그들만큼이라도 서로 사랑하며 살면 안 되는 것일까?
산파가 데리고 온 바리는 혹시 부모가 찾을까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채 학교도 가지 않고 산파와 토끼에 의해 길러진다. 아이를 키울 때는 모르겠지만 죽을 때가 되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하게 되는 것일까? 바리는 산파에 의해 친부모의 집을 찾게 되지만, 바리는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바리가 그 삶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균형이 깨질 것 같아 그 어떤 말도, 행동도 할 수 없다. 바리는 자신의 가족 들을 등지고 토끼가 있는, 살고 있는 동네로 올 수밖에 없다. 토끼 할머니가 읽어준 이야기처럼 내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거칠고 험한 길을 떠나고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그곳에 내 자리는 없었다. 나는 그들의 고요한 생활을 휘젓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나는 평범하고 반듯한 그들의 삶에 끼어들 자신이 없었다. (114)
버려진다는 것. 사실 상상하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어 버렸다고는 하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감당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나는 부모가 되어 더욱 절실히 느낀다. 내 자식을, 내가 배 아파 난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 그 만한 이유가 있다고 나름 이야기 하지만 아이를 버릴 그 어떤 이유도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후 토끼는 바리 몰래 바리의 부모를 찾아간다. 하지만 사장부인은 자신의 평화로운 삶이 깨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끼에게 돈을 주며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렇게 바리는 두 번 버림을 받았다.
그래서 일까? 바리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다. 간절히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할 때 바리는 그들을 죽음으로 인도한다. 누구보다 편안하고 누구보다 안정된 모습으로 그렇게 죽음을 인도한다. 설화에선 바리가 저승을 다스린다고 했다. 그래서 현대의 바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간절히 세상을 등지고 싶을 때 저승으로 길을 인도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디나 그 능력을 “음”으로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법. 그래서 그녀의 삶은 아프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이끈 대가는 그녀에게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버림받은 기억 말고, 사랑 받은 기억이 더 많았다면 바리는 행복했을 것이다. 누구가의 악담으로 시작된 저주는 바리의 삶을 어둠으로 이끌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자식들에게 효를 교육하기 전에 나는 과연 부모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혹은 창피하지 않은 부모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프린세스 바리.. 제목과는 너무 다른 삶이라.. 많이 아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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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보려 딸을 낳다 낳다 일곱번째로 또 딸이 태어나 버림받아졌던 바리데기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이 어땠는지 영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그런 바리데기의 신화를 모티브로 몇몇 소설들을 읽어보면 바리데기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듯 하다. 신화속의 바리도 그랬나? 아무튼 이 책속의 바리는 간절히 죽기를 원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인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한다는 그런 의미로 이해했다. 아마도 누군가를 죽인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지 영 내키지가 않았는가 보다.
연탄공장 사모에게서 일곱번째 딸을 받아낸 산파는 자신에게 그 딸을 버리라 한다. 그리고 그 딸을 데려다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 오래전 친구 토끼와 함께 바리를 키운다. 그렇게 시작된 바리의 이야기와 기차가 다니며 부흥했던 마을이 노선 폐지로 인해 쇠락해가는 과정과 함께 한 사람들의 삶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오락가락 하는 이야기 구조가 조금 혼란스러울수도 있지만 산파와 토끼의 파란만장한 삶과 바리와 나나진과 청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이야기속에 푹 빠져들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나도 온전한 것이 없는 바리의 생활환경 때문인지 바리는 모든것에 처연히 대처하는 그런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이 책 표지속에 등장하는 그녀의 표정처럼!
고향으로 도망을 온 산파는 친구 토끼와 함께 바리를 애지중지하며 키우게 되는데 그렇게 소원하던 아기였으니 얼마나 이쁘고 사랑스러웠을까? 하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모자란거 없이 자랐던 산파의 교육은 바리를 응석받이로만 만든다. 그 반면 토끼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는 바리에게 글도 배우게 하고 책도 읽게 하고 안되는건 안된다고 똑부러지게 가르친다. 친구였지만 너무 다른 환경때문에 서로 달리 살아온 산파와 토끼는 늘그막에 다시 만나 바리를 키우며 알콩달콩 재밌게 살아갈거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서로의 의견이 사사건건 충돌을 해 둘은 다시 말도 안하는 사이가 되고 산파가 암에 걸려 죽기전까지도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산파는 늘 바리에게 너무 사랑받는 토끼가 싫었으며 토끼는 바리를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는 산파가 못마땅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청하는 바리에게 청혼을 하고 둘 사이에는 아기가 생긴다.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주위 사람들의 축복속에서 살림을 장만하고 데이트를 즐기며 행복해하는 바리에게 어딘지 불안불안한 긴장감이 감도는데 결국 바리가 관여한 죽음의 비밀을 눈치 챈 토끼 할머니로 인해 청하에게 커다란 불운이 닥치게 된다. 바리와 청하가 처음으로 같이 살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을 뿐인데,,, 이제 막 자라나고 있는 배속의 아기를 위해 하늘색 신발을 사고 처음으로 새벽일을 나가는 청하에게 맛을 보장할수 없지만 손수 지은 한끼 식사를 마련했을뿐인데,,, 청하의 갑작스런 사고로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청하가 오르내리던 굴뚝을 매일 찾아가는 바리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우리는 삶의 어느순간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 될때가 있다. 그럴때 죽을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병들고 지쳐 더 이상 살 희망이 없는데도 약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락사를 허용해야하느냐 마느냐의 이야기가 의견이 분분했던것처럼 사람의 생명이란 누군가가 함부로 거두어 갈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죽지못해 산다며 정말 너무도 죽고 싶어 하는 누군가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바리는 어쩌면 우리가 고민만하고 있는 것들을 대신 해결해주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섣불리 죽고 싶다는 심정이 들때 혹시 누군가가 갈비뼈를 스윽 누르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바로 바리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면 그 손길은 부드럽게 그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토닥여주기를 희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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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공주는 오귀대왕과 길대부인의 일곱번째 딸로 태어났지만 아들을 바랬던 왕의 명령으로 버려지게 된다. 바리공주가 열 다섯살이 되었을 때 오귀대왕이 병에 걸리고 바리는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서천 서역국으로 달려가 약물을 구해와 아비를 살리게 된다. 버려진 아이 '바리' 동해의 어느 마을에서 연탄공장 사장네에 일곱번째 딸로 태어난 바리는 제몸으로 생명을 잉태시키지 못했던 산파에게 넘겨져 인천의 수인곡물시장곁에서 키워지게 된다. 고향 친구사이인 산파와 토끼는 평생 자신의 아이를 가지지 못한 몸으로 '바리'를 자신의 아이인양 정성껏 키운다. 섬세하고 차분한 토끼와 저만의 방식으로 거칠게 키우는 산파는 때로를 으르렁 거리지만 두 사람의 사랑으로 바리는 열 다섯 살이 된다. 몸을 팔고 사는 옐로 하우스의 유리들의 뒷수발을 들어주며 약초를 팔아 살아가던 산파는 암에 걸려 바리에게 편안한 죽음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하고 결국 바리는 독초로 산파를 인도하게 된다. 열 여섯살이 되어 토끼에게 자신의 친부모에 대해 알게된 바리는 고향으로 향하지만 상처만 안고 되돌아오게 된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바리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어눌하지만 영혼은 맑고 순수하다. '바리공주'의 설화처럼 무속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은 바리는 죽음이 닥친 인간들을 편안한 저승길로 인도하는 일을 하게되고 비슷한 아픔을 가진 청하와 결혼하게 된다.
'바리'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아픔을 지니고 사는 인물들이다. 지은 죄도 없이 평생 감방에서 썩고 있는 아버지와 자신을 할머니에게 던져두고 떠난 어미를 둔 '청하' 멀리 서해바다 건너 어미를 그리다 참깨자루에 숨어들어 인천에 들어온 '나나진' 사랑을 믿었다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나나진의 어미 '화얌' 제 동생들을 먹이고 살리기 위해 제 몸하나 희생하여 유리가 되었지만 결국 바리에게 저승길로 인도된 '연슬언니', 그리고 스스로 연탄가스를 마시고 자살한 '청하사할머니' 이제 더 이상 철로위를 달리지 못하는 수인선의 궤도에는 아픔을 간직한 인물들의 과거가 새겨져있다. 손님이 끊겨버린 수인곡물시장과 수인선의 낡은 협궤처험 '바리'와 비극의 인물들은 그렇게 잊혀질 것이다. 구정물같은 세상에 불알하나 달지 못해 버려졌던 '바리'는 '청하'의 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 태워버렸던 독초를 다시 만들 꿈을 꾼다. 숨을 틔울 '샘물'을 찾아 나섰던 '바리'는 이제 숨을 끊을 '독초'를 찾아나설 것이다. 쇠락한 시장풍경과 녹슨 기찻길의 흔적을 기억하는 작가는 분명 그 일대를 잘 아는 인물일텐데.. 온갖 약초를 법제하고 간수하는 일들을 어찌 그리 잘 알고 있을까. 지긋 지긋한 현실이 바로 설화속의 서천 서역국이고 제 아비를 살리겠다고 시련을 견뎠던 '바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이 서글프다. 산파할멈이 약초를 찾아 온 산을 헤매였던 것처럼 작가도 꽤나 힘들게 캐고 말리고 법제시킨 공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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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프린세스 바리'
소설속 바리도 연탄공장 사장의 7번째 딸로 태어나지만 여차저차하여 버림을 받게 된다.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들의 질기디 질긴 현실들을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바리공주의 고대설화를 바탕으로 했다하여 다소 신비스러운 스토리를 기대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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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는터라 유명한 문학상 외에 사실 알고 있는 문학상은 별로 없다. 소설 자체를 좋아하지만 부끄럽게도 국내소설이 아닌 외국소설을 더 선호하는 것은 나의 책에 대한 취향이 문학보다는 그저 픽션과 스토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전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문학상의 수상작인 이 책이 내게는 좀 더 깊이 있고 문학 다운 문학을 오랜만에 경험해 볼 수 있는 선물이 되어 주었다.
바리를 소재로 한 책이 언제부터인가 인기를 끄는 듯 하다. 이는 고전문학으로 전승되어 오는 바리공주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그 이야기의 시작부터가 참으로 비극적이라서 <프린세스 바리>의 도입 또한 비극으로 시작된다. 아들 낳기를 그토록 염원하는 연탄공장 사장의 부인에게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신기를 가졌다는 소문의 주인공인 산파가 출산을 도와준다. 그렇지만 산파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딸만 낳는 부인은 산파의 효험을 의심하고 불임인 산파에게 폭언을 일삼는다. 산파는 그런 부인의 마지막 딸을 훔쳐오기로 다짐하게 되었고, 그 일곱번 째인 바리가 산파의 손에 자라게 된다. 산에서 약초를 캐서 치료를 하고 그 돈으로 바리를 키운 산파는 바리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약초에 대한 책을 전수해주지만 바리는 약초가 아닌 독초로서 좀 더 편안히 세상을 떠나고 싶은 이들의 죽음을 도와준다.
버려진 삶을 받아들 수 밖에 없는 바리는 어쩌면 그 시작부터가 비극이었는지 모른다. 스스로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사랑 받지 못한 결과로 평범한 삶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바리의 운명은 실타래처럼 연결되어 있고 한 없이 꼬여있다. 버려졌지만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용감하게 맞서 싸워서 치료해 주는 열 다섯의 바리공주와 달리 바리는 제 친가족을 다시 찾아갔지만 다시 한 번 더 버려졌을 뿐이었다. 비극의 시작이 운명적일 수 밖에 없다면 그 비극의 끝이라는 운명은 스스로 바꿀 수 없는 것일까? 바리공주처럼 바리 또한 비극을 피해 홀연히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났듯 운명이라는 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비참함과 서글픈 운명으로 점철된 삶이더라도 하늘은 오롯이 그렇게만 만들어 준 인간은 없다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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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공주로 태어나 부모에게서 버려진 바리데기 공주는 부모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저승으로 떠났다. 바리는 만신이 되어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했다. 수인선이 끊긴 퇴락한 도시, 인천 기찻길 옆에도 바리가 있다. 문을 열면 바로 앞에 기찻길이, 비만 내리면 집 뒤 동산에서 흙이 쏟아져 내리는 곳, 일반적인 세상의 규칙이나 가치에 대한 교육이 전혀 없는, 자신의 본능적인 감각에 충실한 신비로운 여자. 바리는 산 자가 간절히 죽음을 원할 때, 그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일을 한다. 산파의 약초 냄새, 마른 풀 타는 냄새 같은 것이 느껴지는 문장이 신비로운 바리의 모습을 그려낸다. 전통설화 바리데기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변용한 이야기가 소외와 애환, 상처와 고독, 사랑을 말한다. 바리를 돌봐준 산파 할머니도, ‘유리’로 몸을 팔며 가족을 위했던 연슬언니도, 바리의 남편 청하도 바리를 떠나갔다. 죽은 이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바리의 윤리가 애잔한 감동을 준다. <난설헌>이 첫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던 혼불문학상의 두번째 수상작. 책속에서 : 나는 연슬 언니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지 물었다. 언니는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했다. 언니의 오장을 따뜻하게 만지며 놋대야에 피운 향초가 코와 폐로 스며들게 했다. 나는 연슬 언니를 가능한 짧은 시간에…… 천남성과 초오를 섭취하면 독은 세 시간 정도면 몸에 흡수되어 숨을 멈추게 했다. 그동안 위와 폐가 까뒤집히고 속을 토해내고 손톱을 뽑는 고통과 공포가 따를 거였다. 나는 그 시간을 줄여 언니를 가능한 짧은 시간에 고통 없이 인도하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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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게 된 계기는 예전에 ㅂㅏ리데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어렷을 적!!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읽기 시작을 하엿다 그리고 혼불문학상이라는 수상작을 받은 책이라 하여 호기심도 잇엇으니까 읽는데 신화속 바디데기 이야기가 좀가 독특하고 다르게 표현된 소설이다 기대도 많앗던 터라 읽는 내내 재미 잇게 졸지 않고 볼수 있었다. 신화속 바리데기는 공주라는 신분이며 어릴적에 못생겻다는 이유 만으로 가족들에게 버림 받앗으나
다른 언니들은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바리데기는 해낸다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고난과 역경을 다 이겨내고 약을 구해내고 아버지를 구해내는 그런 내용이 엇다. 이책속 바리는 7번쨰 딸로 태어낫는데 딸로 태어낫다는 이유만으로 버림을 받게 되는. 바리의 부모가 바리를 찾아올까마 두려운 나머지 그림자 인간처럼 살게하는 산파. 학교에 다니지도 못햇던바리 지금껏 같이 살아온 산파의 죽음으로 그녀 혼자서 떠나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되지만
암튼 바리는 힘든 상황속에서 굳굳한 집념으로 잘 이겨나간다 동생들 뒷바라지 해야 햇기에 자신의 몸을 팔았던 연슬을 부끄러워하는 가족들 . 참 ㅠ.ㅠ 불쌍하기도 한
바리누나가 어떤 이유로 수치스런 일을 했어야 했는지 한번쯤 생각해봤더라면 그렇게 처참하게 처량하게 죽음을 생각하게 끔 하지 않앗을 터인데 참 안타깝고 불쌍한 여인인건 확실햇다. 그녀의 일생도 안 됏다 싶다.ㅠ.ㅠ 그녀를 버린 가족들도 너무 하다 싶기도 하고 그리도 꾿꾿히 살아가려는 바리를 보고 새삼 꺠달은 점도 많다 예전에도 봣던 바리데기공주 이야기도 참 재밌게 봣엇는데 이번책도 인상이 많이 남고 조금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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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양의 신화인 '그리스 로마 신화'는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서양의 꽃에 관련된 전설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전설, 설화들은 그리 잘 알고 있지 않은 듯하다. '바리데기'라는 설화를 알고 있는가? 이 설화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황석영'의 <바리데기/ 황석영 ㅣ 창비 ㅣ 2007>를 통해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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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인 '바리'는 탈북소녀인데, 보통의 소녀가 아닌 영혼이나 짐승과도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소녀이다. 중국을 거쳐 런던으로 밀항을 하고, 여러 차례의 어려움 끝에 파키스탄 청년과 결혼을 하게 되지만, 행복은 잠깐 그녀는 미국의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등으로 힘겨운 삶을 살게 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설화 속의 '바리'처럼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면서 용서와 구원의 생명수를 찾아 다닌다는 이야기이다. 황석영 작가의 뛰어난 소설적 감각으로 설화와 초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인종, 종교, 문화, 이데올로기를 넘어 전쟁과 테러가 없는 인류를 만들어 나간다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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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에 읽게 된 '박정윤' 작가의 <프린세스 바리>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황석영의 <바리데기>와는 또다른 느낌의 설화 '바리'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 옛날 옛적에 불나국이라는 나라에 외귀 대왕님이 있었어. (...) 그개 일곱 번째 아기를 잉태했지. 길대 부인 마마는 사내아이를 얻은 꿈을 꾸었다고 오귀대왕께 말했는데, 낳고 보니 일곱째도 공주였던거야 (...)" (p. 169) 그래서? 이 설화에서 처럼, 연탄공장 사장 부인은 딸을 줄줄이 여섯을 낳고, 아들 낳기를 고대한다. 산파가 받는 아이는 아들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산파에게 애를 받도록 하지만, 그것도 효험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낳게 된 일곱 번째 아이는 어미에게 버림받고 산파의 손에 들려서 그 도시를 떠나게 된다. 산파와 그녀의 어릴적부터의 라이벌 관계였던 토끼에 의해서 키워진 바리의 파란 만장한 삶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프린세스 바리>에 등장하는 배경은 수인선이 지나가는 잘 나가던 도시. 공단지역이 있고, 차이나 타운이 있고, 양키 시장이 있는 곳. 그러나 지금은 수인선이 폐쇄됨에 따라 낙후하고 몰락한 도시. 그 도시에는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도시에서 일어나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 그리고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 그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어릴적부터 성장기에 보아 왔던 곳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소설 속의 '바리'처럼 아들을 낳기를 원했던 집안의 아홉 딸 중의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난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바리'처럼 죽음으로 가는 길로 안내하는 능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독초를 다룰 줄은 모르지만, '바리'가 느꼈을 생각들의 일부분을 공유하기도 했던 것이다. " 그들은 아무도 아프지 않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나는 토끼 할머니가 읽어준 이야기처럼 내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거칠고 험한 길을 떠나고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그곳에 내 자리는 없었다. 나는 그들의 고요한 생활을 휘젓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나는 평범하고 반듯한 그들의 삶에 끼어들 자신이 없었다. " (p. 114) 설화 속의 '바리'의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서, 구술자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와 '프린세스 바리'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암울하고 칙칙하고 읽은 후에 느낌이 멍멍하다는 것은 같을지 몰라도 두 이야기가 추구하는 바는 다른 것이다. <프린세스 바리>의 바리는 가장 본능적인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잠시 출생의 비밀을 더듬어서 자신의 가족을 찾아가지만, 그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기 싫어서 말없이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학교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잘 사는 것에 욕심도 없고,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그녀를 가만 놓아 두지를 않는다.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이용하려는 자들도 있는 것이고, 그녀의 행복을 짓밟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행하는 자살 안내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서슴없이 고통받는 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도와주기도 한다. <바리데기>를 읽은 후에도 마음에 개운한 느낌보다는 무언지 모를 앙금들이 가라 앉았는데, <프린세스 바리>도 역시 읽은 후의 느낌이 그리 좋지는 않다. 이 소설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제 2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데, 제 1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 <난설헌/ 최문희 ㅣ 다산책방 ㅣ 2011>때도 그런 생각들이 들기도 했었다.
소설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개운함이나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여운보다는 암울한 삶의 여인들의 모습이 칙칙하게 남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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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제목처럼 바리데기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바리데기 신화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지만, 젊은 작가는 황석영의 바리데기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 볼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바리를 탄생시켰다. 그토록 아들을 원했지만 딸만 내리 다섯을 낳은 연탄공장 사장 부인은 아들만 받았다는 산파에게 화풀이를 한다.
산파는 마당에 틈 없이 쌓아놓은 연탄 기둥에 기대 산모가 퍼부었던 욕설을 되새겼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돈만 밝히기는. 계집만 낳다가 죽어버리길 빌러 갔어요? 엉터리 나무뿌리 달여주곤 돈 받아먹는 주제에. 아기도 안 낳아봤으니 내 고통을 알 리가 없지. 당신 손길 징글징글해. …… 산파는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쌓인 연탄만큼 흔하게 계집만 낳아라, 마지막 아이는 내가 데려간다. (p 23)
옛날 옛적에 불나국이라는 나라에 외귀 대왕님이 딸만 여섯을 낳거 일곱 번째 아기를 잉태했지. 길대 부인 마마는 사내아이를 얻은 꿈을 꾸었다고 오귀대왕께 말했는데, 낳고 보니 일곱째도 공주였던거야. (p. 169) 설화속 주인공처럼 아들을 낳을 태몽을 꾸었다며 남편에게 꼭 이번엔 아들일거라했지만 일곱 번째 역시 딸이였다. 남편에게 아들이엿으나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었다 말하고 버리다는 뜻의 '바리'라는 이름을 세긴 배냇저고리와 함께 아기를 산파에게 보낸다. 산파는 인천 변두리지역, 비만 오면 집 뒤 동산에서 흙이 쏟아져 내리는 기찻길이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작은 방에서 토끼 할머니와 아이를 키운다. 행여 바리를 빼앗길까 싶어 ‘바리’에게 학교 교육은 물론이고 세상물정이나 일반적인 가치에 대한 배우미 없이 그저 겨우 한글만 깨우쳤를 뿐이다. 그저 자신의 본능과 타고난 감각에 의존할 다름인 바리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저승으로 생명수를 찾아 떠난 바리공주 이야기를 들으며 신화 속의 바리공주처럼 부모님이 반드시 자신을 찾으로 올거라 믿으며 살아간다.
열차가 수인선을 오가며 한 때는 호황을 누렸던 이곳도 노선이 폐지된 후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수인곡물시장. 산파와 토끼 할머니의 애정어린 보살핌과 엄마를 만나러 목숨걸고 밀항한 중국인 소녀 나나진의 우정, 굴뚝 청소부 청하와 사랑을 키워가며 바리는 더 이상 바라는 게 신화속 바리는 그녀를 찾아온 부모의 목숨을 구하지만 소설 속 바리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부모를 만나러 가지만 또 한번 부모에게 버림받고 만다. 산파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바리를 약재와 효능에 관해 알려준다. 산파의 죽음, 옐로하우스에 다니던 연슬 언니의 자살, 삶의 막바지에 만난 사랑이 죽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하사 할머니, 시장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인 녹쇠를 따라 간 하얀대문집 영감의 죽음. ‘바리’와 이들의 죽음에 얽힌 사연들을 하나씩 들추어 보면 효성스런 바리대신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고 이용당하지만. 죽고 싶은 이를 죽음에 이르도록 돕는 바리는 바리가 보인다.
“언니. 내가, 내가 도망갈 곳으로 인도해줄게. 내가 죽여줄게.”
소설은 인천 변두리 지역을 배경으로 가장 밑바닥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겨운 모습을 있는그대로 생동김있게 그리고 있다. 외지의 자본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 하루하루 날품팔이 인생의 거단한 삶이 묻어난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보고 “왜 죽지 못하지? 죽기 쉬운데?”라는 바리의 말이 가슴저리게 하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이지만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중고차를 사며 느끼는 소소한 행복, 앞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이라도 미래를 비관하지 않는 밝은 모습을 보며 살면서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되돌아 보게 한다. 수상작이라해서 딱히 찾아 읽는편은 아니지만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된 저력을 엿볼 수 있는 아릿한 감동이 베어져 나오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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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바리 - 박정윤]
우리가 간절히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이 책의 겉모습을 보면 이 책이 혹시 로맨스 소설인가?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프린세스 바리의 그 바리는 이 책의 여자 주인공 이름이다.
<프린세스 바리> 라는 책은 바리데기 신화를 바탕으로해서인지,
바리는 비록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바리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보니 바리가 한편으로는 너무 안타까웠고, 또 너무나 속상해지는 소설이였던 것 같다.
이 책은 처음에는 집중이 잘 안되다가도, 뒤쪽으로 갈수록 정말 흥미진진해지는 소설이였고, 집중해서 잘 본다면 정말 좋은 책임을 금방 알수 있는 소설이였다.
무엇보다도 바리데기 의 신화에서 따온 이야기라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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