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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정말로 재밌는 소설을 보았습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글 또한 단조롭습니다. 하지만 그 재미는 간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책을 왜썼는지가 본문에 나오는 소설은 처음봤습니다. 너무나 적나라하게 자신의 알몸을 보이는 느낌이라 조금 아쉬운 면도 없진 않았지만 그게 또 이 책의 매력인거 같습니다.
주인공이 겪는 최상과 최악의 상황을 모두 그려내며 헐리우드라는 장소적 배경을 너무나도 극명하게 그려냈습니다.(라라랜드에 나오는 헐리우드와 상당히 대비된 면이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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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피쳐를 재밌게 봤으나, 뭔가 주저하다가 이 책을 다시 잡게 되었다. 약간 더 세속화된 그리고 헐리우드식 스토리에 최적화된 폴 오스터라고나 할까? 뭐라고 이야기를 하던지, 더글라스 케네디는 글을 재밌게 쓰는 작가다. 인정. 적지 않은 작가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소설화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예전에 읽은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도 그렇고, 폴 오스터 역시 그렇고. 하루끼나 겐자부로도 그렇고. 국내 작가들도 다른 작가들, 출판계 이야기를 쓰는 것... 특히 극작가들의 경우는 우디앨런의 작품들에서도 종종 보이는 듯 하고. 그런 작품들의 특징은 절반을 훌쩍 뛰어넘게 알지 못하는 작가와 감독들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다는 것. 게다가 언젠가부터 실존인물들을 언급하는 소설들이 많고, 그런 것을 읽다보면 픽션과 사실을 혼동하게 된다. 한때 포스트모던적이라고까지 불리던 기법들... 그런게 이 작품에선 아주 재미나게 얽혀있다. 뭐... 빅피쳐에서는 더 모르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들이어서 마찬가지 스타일에 대한 감흥이 달랐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백만장자 이야기... 그런것도 뭐 꽤나 일반적인 소재들이라고 하겠다.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백만장자, 그러나 어쨌거나 욕심쟁이였다는 이야기. 그것 역시 무난한 소재다. 그런 이야기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있게 그려나가는 내러티브라고 할까? 그게 이 작가의 강점이 아닌가 싶다. 재미나게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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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테이션 - 더글라스 케네디 여름 휴가 시즌을 맞아 아무 생각없이 흥미진진하게 읽을 만한 소설을 찾다가 <빅픽처>를 재미있게 읽었던 생각이 나서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 중에서 하나를 고른 것이 이 <템테이션>이다. 특유의 이야기 전개와 유머가 있긴 했지만 <빅픽처>정도의 재미가 있지는 않았다. 하루 이틀 시간 떼우기 좋은 정도의 소설. [ 책속으로 ] 우리 사이가 정상궤도에 들어선 양 안도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결코 제 궤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지난 10년 동안 우리 부부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쉬지 않고 올라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분 나쁜 생각은 ‘사실은 이 모든 상황을 내가 바란 건 아니었을까?’였다. 나는 내 성공이 못 미더워 스스로 실패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이런 몰락을 몰고 온 장본인은 바로 내가 아닐까?’ 매튜 심스는 ‘아무 이유 없이 나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며 나를 설득하려 애썼다." 그렇다. 내 이야기에도 악당은 있다. 나를 함정에 빠뜨리고, 깔아뭉개고, 그 다음에는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은 악당. 그리고 그 악당의 이름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진정한 악당은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무엇일까? 우리가 궁극적으로 다다를 곳은 어디일까? 그것이 가장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우리는 ‘그 어디’에 다다르기 위해 몇 년 동안 애쓸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침내 그곳에 다다랐을 때, 모든 게 발아래에 있고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마지 않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 불현듯 낯선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정말 내가 어디에 다다르긴 한 것일까? 아니, 그저 중간 지점에 다다른 게 아닐까?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성공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저 멀리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목적지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 또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종착지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겠나? 그런 생각들 속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은 하나였다. ‘우리 모두가 필사적으로 추구하는 건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이다. 그러나 그 확인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새로운 성취를 이루면 또 다른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이 모든 걸 그대로 지켜낼 수 있을까? 모래처럼 손아귀에서 슬며시 빠져 나가는 건 아닐까? "아니죠. 댁이 스스로 초래한 일이죠. 댁이 샐리 버밍엄을 택해 가정을 버렸어요. 댁이 내 초대를 받아들였어요. 댁이 내 제안을 받아들여 이백오십만 달러에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어요. 댁이 맥콜을 향해 날카로운 칼을 뽑아 들었어요. 댁이 내 아내한테 빠지기까지 했죠. 그 모두가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모두 댁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에요. 나는 아무런 장난도 치지 않았어요. 댁이 스스로 선택한 일에 희생된 거예요. 인생은 그런 겁니다. 누구나 선택을 하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상황이 바뀌고요. 그게 바로‘인과율’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내린 결정 때문에 나쁜 일이 생기면 늘 남 탓을 하는 버릇이 있어요. 상황이 안 좋았다거나 사악한 사람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조목조목 따져보면 진정 탓할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걸 알게 되죠.” 모든 인생 이야기에는 위기가 있다. 세상 모든 일은 결국 이야기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에는 필수적으로 위기가 포함된다. 분노, 갈망, 기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삶에 대한 실망,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고 상상하는 삶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절망. 이런 위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우리는 위기를 통해 믿게 된다.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걸 믿게 되고, 모든 게 그저 순간에 불과한 거라 믿게 되고, 자신이 하찮은 존재에서 벗어나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무엇보다 우리는 위기를 통해 깨닫게 된다. 싫든 좋든 우리는 누구나 나쁜 늑대의 그림자 아래에 있음을,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는 위험 아래에 있음을, 우리 스스로가 자신에게 행하는 위험 아래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위기를 가장 높은 곳에서 조종하는 자는 누구인가? 누구의 손이 우리를 조종하는가? ‘신’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상황’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편, 지금의 위기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그가 그 모든 위기를 조종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을 탓하고, 어머니를 탓하고, 직장 상사를 탓한다. 그러나 어쩌면, 정말 혹시 어쩌면, 자기 자신이 그 모든 위기를 조종했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들었다. 노트북컴퓨터의 검은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중년 남자. 지금 들고 있는 책과 달리 111년쯤 뒤에는 분명 이곳에 없을 중년의 남자 거울 같은 것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날마다 자신을 엄습하는 질문, ‘이 세상 속에서 나는 누구일까? 나라는 존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오리무중의 질문에 시달리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질문을 던져도 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지금의 나처럼. 그래도 답 하나는 얻을지 모른다, 역시 지금 내가 스스로를 타이르며 말하는 것 같은 답을. 그런 불가능한 질문들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자. 모든 게 헛되다는 생각도 잊자.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하고 상상하지도 말자. 과거를 짊어지자. 달리 어쩌겠는가? 치료약은 하나뿐이다. 다시 일에 열중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