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세는 발언의 진실성과 유효성을 보증하는 수행적 담론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맹세는 종교와 정치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맹세든 거짓맹세든, 덕담(축복)이든 악담(저주)이든, 맹세는 언어의 성사(聖事)이고 종교와 법을 토대로 삼는 권력의 성사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특징은 '맹세의 쇠퇴'다. 이는 정치적 위기의 현상이자 동시에 종교적 위기의 현상이기도 하다. 나는 아감벤이 맹세를 일종의 진리효과를 담지한 문화적 구성물로 간주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맹세의 쇠퇴는 일차적으로는 담론이 수반하는 '진리효과의 쇠퇴' 혹은 벤야민의 용어를 빌면 '아우라의 소멸'로 재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아감벤의 《언어의 성사》(새물결, 2012)는 역사언어학적 시각에서 맹세의 의미론적 어용론적 정치적 의미를 재발굴하고 있다. 마치 이 책의 부제인 '맹세의 고고학'처럼 말이다. 기존의 대다수 연구가 맹세를 인간이 신의 복수나 처벌을 두려워했던 인간 역사의 주술-종교적 단계에서 찾은 반면에, 아감벤은 맹세가 주술-종교의 영역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역으로 종교, 법, 과학이 맹세에서 배태된 것으로 간주한다. 아감벤에게 맹세는 주술, 종교, 법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미분화된 통일체, 다시 말해 종교적이고 법적이고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제도로 나타난다. 먼저 언어학적 의미를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맹세는 언어사건이다. 맹세란 어떤 말의 진실성에 대한 보증역할을 하는 발화행위다. 맹세의 중심 기능은 말의 진실함과 신뢰성을 수행적으로 확언하는 데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벤베니스트가 [고대 그리스의 맹세의 표현](1948)이란 논문에서 밝힌 맹세의 화용론적 맥락을 다시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맹세는) 문법상 특수한 선언법으로서, 지지하고 보증하며 증명하지만 아무것도 정초하지는 않는다. 개인적 맹세건 집단적 맹세건 간에 맹세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어떤 약속, 협정, 선언을 다짐하고 엄숙하게 만들어주는 데 있다. 맹세는 유의미한 내용을 지니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 발화 행위를 예비하거나 완결한다. 그것은 사실상 구두로 이루어지는 의식으로서 종종 몸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식의 의식으로 완성된다. 맹세의 기능은 산출된 선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맹세로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나온 말과 발동되는 힘 사이에 수립되는 관계에 있다."(18-9쪽) 1992년에 출판된 파올로 프로디의 《권력의 성사》는 부제가 '서양 헌정사에서의 정치적 맹세'이다. 프로디는 맹세를 정치권력의 성사로 규정하고 있는데, 아감벤은 프로디의 이런 맹세론을 그대로 전유한다.아감벤은 맹세란 생명과 언어, 행위와 말의 결합이 필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이 둘 사이에는 끊임없는 어긋남, 메울 수 없는 틈이 있음을 역설적으로 밝혀낸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존재자로서의 인간에게는 끊임없이 어긋나는 이 둘 사이를 맞물리게 해야만 하는 임무가 존재론적 숙명처럼 주어져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맹세는 “말하는 동물에게 어떤 의미로건 결정적인 요구, 즉 말하는 동물이 언어에 자신의 본성을 걸고 말과 사물(사태)과 행위를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하나로 묶어야만 하는 절박한 요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