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는 양적 성장을 얻는 대신 진정한 광기를 상실했다. 아무도 목숨 걸고 교회를 다니지는 않는다. 성도들의 일상적 삶과 분리된, 그 삶에 진짜 관심도 없는 목사들의 추상적 설교에서 진정성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p.142) 성경을 읽어보면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 하다. 이제까지 나는 성경을 4번 읽었다. 지금은 5번째 읽고 있는 중이다. 물론 66권의 방대한 분량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주 조금,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범상치 않다. 구약의 예언서들을 읽어보면 그 스토리의 밀도에 질식해 버릴 지경이다. 위에서 말한 광기는 진정어린 신앙이라 생각한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 신앙이 없는 사람은 애초에 별 관심이 없겠지만 초기 기독교의 모습, 한국에 처음 교회가 생겼을 때 그 교회들의 모습. 그것은 광기였다. 실제로 목숨을 걸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의 요구에 별다른 저항(?)없이 순순히 창씨개명하고 황제를 하나님 위에 놓은 수많은 목사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성도들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과 신앙을 추호의 망설임 없이 맞바꿀 수 있었던 신앙의 결기가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외부에서 ‘개독교’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고 젊은 세대가 교회를 떠나버린 수많은 요인 중 하나로 목사들의 추상적 설교를 찾는다.
이 책 「정치하는 교회 투표하는 그리스도인」은 다소 도발적인 주제와 내용이 담긴 책이다. 흔히 기독교 하면 앞뒤 꽉꽉 막혀 자신들만 아는 이익집단쯤으로 생각할 텐데 기독교 내에서도 이런 정도의 주제를 균형감을 유지하며 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위안이 된다. 앞서 했던 말로 돌아가면 목사들의 추상적인 설교는 정말 문제다. 비록 나는 4번 정도 밖에 성경을 읽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성경의 어느 구절, 어느 구절을 따로 뽑아 상황에 끼워 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절대로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야기다. 스토리가 있고 서사가 있다. 하나의 성경구절에는 앞뒤로 성경구절이 붙어 있다. 그 맥락 속에서 구절을 해석하고 대입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설교 때에는 그것은 간과된다. 구약과 신약을 넘나들며 어디어디라고 보지도 않고 설교하면 ‘이야~ 저 목사님 성경 많이 아시네~’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십일조, 세금문제 등이 아직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세금문제!! 나는 적어도 ‘개독교’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설혹 성경에 ‘세금내지 마라’라고 쓰여져 있다(성경에는 전혀 그런 언급이 없다.) 하더라도 세금을 내야한다고 본다. 매주 강대상 위에 서서 고고한 말 늘어놓고 기복적 축복을 내리는 것이 목사의 일의 다가 아니다. 목숨을 내어놓고 멸망을 선포하고 신의 저주를 전파하는 예언자들의 광기어린 결기가 없다. 매주 딱딱한 교회 의자에 앉아 그 목사의 설교를 듣는 성도들 대부분은 일주일을 전쟁같이 지내다 휴일 아침잠에 취해 교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내일부터 또 총칼은 없지만 그보다 더한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들으며 졸기에 적격인 듣기 좋은 레퍼토리만 늘어놓는다면 교회 본연의 모습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을 대리해 말씀을 선포하는 대리자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성경에 나타난 바른 정치와 지난 대선을 통해 드러난 정치와 결탁한 기독교의 실체, 그리고 며칠 남지 않은 이번 대선에 대한 담론이 담겨 있다. 사실 지난 대선과 이번 대선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워낙 많은 양의 정보와 볼거리가 많은 요즘이라 ‘최소한 기독교계에서도 이런 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하는 정도만으로 만족한다.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폄하하고 조롱하는 뜻으로 쓰는 용어 ‘개독교’가 단순히 어떤 한 시점에 유행병처럼 번진 의미였을지, 중·고딩 들이 하루에도 수백 번 쓰는 용어인 ‘졸라’처럼 별 의미 없이 떠돈 말이였을지가 궁금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기독교가 어떤 연유로 개독교에 이르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내게는 중요한 과제이자 과정이었다.
“‘기독교 정당’같은 것도 기독교인들만 찍어도 몇 표인데 하는, 비례대표제의 유익을 좀 누려보자는 얄팍한 공학적 사고의 산물이었지, 시대를 향한 기독교적 메시지는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p.107) 실제로 모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지난 총선을 앞두고 ‘기독당’을 창당하며 했던 말이다. 몇 만 표 이상만 득표하면 비례 몇 석을 얻을 수 있고,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독당’에 투표하면 원내에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 나름의 시나리오였다. 양으로 지칭되는 성도들을 신의 목적과 영광에 참예시키는 데에 중간 다리 역할을 해야 할 성직자들이 여느 정치평론가가 짤 수준의 정치공학적 고심을 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보기에 목사님을 참 바쁘다. 새벽설교부터 온갖 심방, 수요일·금요일·주일(일요일) 설교 준비에 여념이 없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고 내가 겪은 목사님의 생활이었다. 그런데 비례가 몇 표니, 성도들을 한 표 정도의 정치적 계산의 숫자 하나로 밖에 보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진정한 성직자의 모습인가 싶었다.
“실제로는 현실의 지배 세력과 결탁하여 교회가 자신들의 정치적·사회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저급한 욕망의 배설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p.8) 현대 한국교회가 왜 이토록 보수화·정치화·기복신앙화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모 시사평론가의 말을 그대로 옮겨 소개하고 싶다. [바로 돈 문제입니다. 교회가 부동산·사학 등 재산을 소유하게 되면서 점차 기득권화 된 것입니다.] 아주 심플하지만 폐부를 찌르는 분석이다. 교회가 기업화되고 친교모임 정도로 전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돈 문제이다. 몇 해 전 사학법 개정을 하려고 했을 때 한국교회가 보여 준 패악을 떠올려 보면 자연스레 이해될 것이다. 목사들이 거리로 나와 바퀴 달린 대형 십자가를 끌고 다니지 않나, 스님처럼 머리를 삭발하지를 않나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사학법 개정 반대를 위한 서명을 받기도 했었다. 왜 그랬을까?
돈이다! 돈!
성경에서 예수가 얘기하는 진정한 신앙의 범주에는 ‘돈을 많이들 벌어라!!, 교회를 크게 넓게 멋있게 잘 지어라~~!!, 학교를 많이 많이 세워라~~!!, 대통령은 꼭 장로가 되어라~~!!’따위는 들어가지 않는다. 교회에서 얘기하는 세속(세상, 사회)은 최대한 물들지 말아야 하고 편승하지 말아야 할 신앙의 적이다. 실제로 설교를 통해서 세상에 섞이지 말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정작 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속화되고 그것의 첨병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지난 대선이 있기 전 김진홍 목사는 뉴라이트라는 단체의 대표가 된다. 머뭇거리던 교회표를 지금의 대통령에게 집중하게 한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교회가 세속화되고 기득권화되면서 자연스레 정치권력과 결탁하게 되었다. 당연한 현상이다.
“복음의 모든 면을 설교하면서 당신 자신의 시대가 직면한 문제만 제외했다면, 당신은 전혀 복음을 설교하지 않은 것이다.” (p.149)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했던 말이다. 과연 한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교회 중 몇 개의 교회 설교강단에서 시대가 직면한 문제가 선포될까? 어느 시골에 가도 두 개의 붉은 네온싸인을 볼 수 있다. 교회 십자가 네온싸인과 모텔 간판 네온싸인!! 그만큼 교회 숫자가 많지만 손에 꼽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나는 자신이 없다. 십 수 년간 교회에 출석하면서 고3때 고등부를 담당하셨던 모 전도사님(목사가 되기 전 직책)이 광주5.18과 독재에 대한 얘기를 한 번 들었을 뿐. 기억이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추위와 싸우며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조금만 응시하고 귀를 기울이면 교회라는 곳이 관심과 역량을 쏟아야 할 곳이 넘쳐나는데 주일(일요일) 교회에서는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처럼 뜬구름 잡는 얘기로 가득할 때가 많다. “세상에서도, 직장에서도 영향력 있는 성도가 되십시오. 힘든 시대지만 힘을 내시고 기도하십시오.”라고 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도대체 당장 교회 문을 열고 나가면 도처에 가득한 시대 문제가 있는데 교회 문 안으로만 들어오면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거룩하게 찬송가 부르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행위가 일어난다. 나와 그들이 믿는 신이 나와 그들만의 신인가?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고자 하는 것인가? 교회가 교회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다. 교회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 있는데 유일하게 교회만 이것을 모르고 있다.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모른 채 하는 것인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에게 무턱대고 투표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 중에서는 공식적으로 교회 출석하는 후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난 대선에서 그렇게 장로대통령을 외치던 모 대형 교회들이 요즘은 어떤 말을 쏟아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무슨 명분으로 한쪽으로의 투표를 종용할지 말이다. 제발 좀 신은 신답게 교회밖에 놔두고 그 신을 믿는 사람들은 그 신을 믿는 사람들답게 교회 밖으로 시선을 돌리기를 바란다. 이런 말을 주저리주저리 쏟아내는 나도 마찬가지다.
|
|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가 재선에 성공한 가운데 중국은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우리 역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대선후보 가운데 누가 미국과 중국의 리더십 변화가 초래할 영향과 충격을 면밀히 분석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지 국민은 궁금하다. 세계적인 격변의 시대를 맞아 유권자들이 국가 지도자를 얼마나 잘 고르느냐에 한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 내달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치를 한국의 기독교인은 어느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 한국의 미래를 맡길 인물로는 누가 적합할까?
이 책은 2012년 대선과 한국 개신교회의 정치 참여에 관해 신학자와 현장활동가, 목사, 교수 등 기독교에서 건전하게 활동해 온 이들 16명이 대선을 앞두고 기독교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의견을 모아 낸 책이다. 코앞에 다가온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크리스천들이 필독할 만한 책이다.
기독교는 감리교 장로인 초대 대통령 이승만, 윤보선, 김영삼, 이명박 등을 배출하였다. 하지만 기독교인 대통령이 사회에 빛과 소금으로서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가를 살펴보면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와 미완의 4.19혁명이 5.16 군사혁명을 낳게 한 장본인으로 독재자라는 역사의 오명을 남긴채 하와이로 망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김영삼은 대통령은 재임 중에 IMF 국난을 초래한 대통령으로 한국역사에 오명을 남기고 있다. 또한 그의 아들은 소통령이란 애칭으로 권력을 휘두르며 부정부패의 몸통으로 오명을 남겼다.
이명박은 소망교회 장로 출신으로 그의 개인적 비리와 BBK는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병든 여론의 선택으로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노골적인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교회가 앞장 선 것은 분명하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안 찍는 사람은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 버릴 거야” 라고 설교를 한 청교도영성훈련원 전광훈 목사가 선관위로부터 선거법 위반으로 경고조치를 받기도 했다.
이 책은 한국 개신교가 큰 위기에 봉착했다고 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한국 개신교의 정치적 실패, 더 정확히는 현실 정치 참여의 실패라고 규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한국 개신교회는 그 특유의 우파적인 인식과 태도로 인해 정치 자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치의 영향력 안에 있는 이 땅의 민초들의 삶 자체의 진보와 개선에도 거의 기여를 하지 못했다.”(p.7)고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성서에 나타난 정치의 이념과 가치’에서는 기독교인이 왜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와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평과 의와 인애의 정치, 예수가 정치를 만났던 자리 등을 다룬다.
2부 ‘한국 교회의 정치 참여 실패와 분석, 2007년을 중심으로’에서는 2007년 대선을 중심으로 한국 교회가 왜 정치참여에 실패했는가를 진단한다.
3부 ‘2012년 대선, 우리는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에서는 정의로운 부동산 정책은 무엇이며, 한국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과 한반도의 화해, 평화, 통일의 리더십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 책은 지난 2007년의 개신교의 참담했던 정치적 실패를 딛고, 2012년 새로운 정치적 역할의 모색을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목회자와 신학자, 그리고 신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것으로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