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시절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제목으로 읽었던 책. 검색을 해 보니, 이 책의 제목은 <젊은 베르터의 고통>,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슬픔>등으로 바뀌어서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베르터', '로테' 등으로 표기되니, 처음 몇 장을 읽을 때는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은지가 수십 년이 지났으니, 줄거리만 생각날 뿐 구체적인 문장들은 까맣게 잊은지 오래 되었다. 더군다가 이 책의 구성이 주인공이 베르터가 친구인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이었다는 것은 더 더욱 생각이 나지 않는 부분들이다. 얼마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학창시절에 읽다가 포기했던 그 작품에서 소중한 것들을 건져 냈듯이,<젊은 베르터의 고뇌>도 처음 읽는 책인듯이 새롭게 다가온다.
![]() 괴테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문호로 만들어 주었던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그가 25살의 나이에 약 4주간에 걸쳐서 쓴 '불멸의 고전'인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파우스트>가 그의 전 생애를 걸쳐서 죽기 직전까지 60여 년에 걸쳐서 씌여진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집필기간에 있어서만은 대조적인 양상을 보여 주는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것을 느꼈을까? 아마도, 베르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순수한 사랑, 절대적 사랑을 열망하는 그 부분만을 부각해서 읽었을 것이다. 무도회장으로 가기 위해서 마차를 타고 간 곳에서 우연히 만난 로테. 이런 사랑은 한 눈에 반한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로테에게 약혼자가 있었기에, 그리고 소설이 전개되면서 그녀가 유부녀가 되기에 그 사랑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더 가슴에 절절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 내 마음은 온통 그녀의 자태와 목소리, 일거수 일투족에 쏠려 있었다. 그녀가 장갑과 부채를 가지러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야 비로소 나는 예기치 않은 황홀경에서 깨어날 시간 여유가 생겼다. " (p.p. 34~35) 그런데, 베르터가 로테를 사랑하게 된 마음의 깊은 곳에는, 그녀가 죽어가는 여자 친구를 보살피는 모습에서 고운 마음씨를, 그리고 엄마없는 동생들에게 빵조각을 나누어 주는 모습에서 모성애를 느끼게 된 것도 사랑의 화살이 꽂히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녀는 어디를 가든 고통을 덜어주는, 아니 행복을 가져다는 주는 천사처럼 보였을 것이다. " 인간에게 행복을 안겨 주는 것이 다시 불행의 원천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p.84)
그런 반면에 로테는 베르터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의 사랑을 받아 들이지 않고, 약혼자와 결혼을 하고, 남편인 알베르토와의 단란한 가정을 이룬다. 그것은 알베르토의 촉망받는 인물, 안정적인 생활, 그리고 로테의 엄마가 죽기 전에 한 약속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혼한 로테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베르터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베르터는 잠시 그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직장을 얻지만, 그곳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이 내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때로는 인생의 즐거운 광경이 다시 어렴풋이 되살아나는 것 같지만, 그것은 한 순간일 뿐이다! 그런 몽상에 잠겨 있을 때면 억누르기 힘든 어떤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만약 알베르트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나는! 그래. 그러면 그녀는.... 나는 줄곧 이런 망상에 휘돌리다가 마침내 아찔한 심연의 가장자리까지 가서야 몸을 떨며 뒷걸음치곤 한다. " (p. 130) 소설의 2부의 앞부분은 베르터의 이런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베르터가 느끼게 되는 신분차별에 대한 감정, 로테의 남편인 알베르토는 안정적인 사회활동을 하는데 반하여 자신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열등감 등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여주인을 사랑한 머슴의 살인사건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참담함. 그것 역시 베르터를 자살로 몰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소설 속의 시대에는 신분적 차별이 있어서 그로 인한 사랑의 슬픔도 여주인과 머슴의 사랑으로 표현된다.
괴테가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쓰게 된 배경에는 작가의 실제 체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의 친구인 예루잘렘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하여 권총 자살을 하게 되는데, 이 부분은 소설 속의 여주인을 사랑한 머슴이야기와 베르터가 마지막에 권총 자살하는 내용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괴테의 친구도 약혼자가 있는 여자를 사랑했고, 자살하기 위해서 사랑하던 연인의 약혼자의 권총을 빌려서 자살한다. 그리고 괴테가 이 소설을 쓰기 직전에 지독한 실연의 아픔을 맛 보았다고 한다. 친구의 죽음, 자신의 실연은 고스란히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 담겨지니, 약 4주 간의 집필기간으로도 이처럼 훌륭한 한 편의 소설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며칠 전에 읽었던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실리어 블루 존슨 ㅣ 지식채널 ㅣ 2012>을 떠올리게 한다.
![]()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괴테가 소설 속에 '빌헬름'이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어서 쓰고 있지만, 베르터가 보내는 편지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2부의 중간부분 이후에 어떤 편집자가 베르터의 마지막 편지를 중심으로 자살을 시도하고자 하는 베르터의 죽기 며칠 전의 일상과 베르터의 편지를 부분 부분 맞추어 나가는 기법을 쓰고 있다. 그러나, 편지란 주고 받는 것이기에 보내는 편지만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베르터의 일기와 같은 형식을 갖추고도 있고, 아니면 베르터의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는 독백처럼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기법이 오히려 이 작품을 더 빛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그녀가 눈 앞에 있고 이미 결혼한 운명이고 나의 운명에 연민의 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타버린 뇌수에서 마지막 눈물을 짜낸다. 인생이라는 무대의 장막을 걷어 올리고 퇴장해 버리자 ! 그러면 모든 게 끝난다 ! " (p.p. 171~172)
아마도 나는 이 책을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 시점에 읽었을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베르터와 로테의 사랑에 가슴이 아팠을 것이니,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책 속에 담긴 세세한 내용들을 거의 읽어 내지도 못 했을 것이다.
흔히 유명인의 자살을 접하면서 사회적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대중들이 있을까 해서 나오는 말에 <베르터 신드롬>이나 <구루미 선데이>가 있다. <베르터 신드롬>이란 이 소설이 출간된 이후에 소설 속에 나오는 베르터의 옷차림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베르터의 권총자살을 모방하는 자살자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 사람의 죽음이후에 나오는 자살을 이르는 말이다. 이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지만, 참고로 <Gloomy Sunday>도 있다.
(사진출처: Daum - 1999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그 영화 포스터)
이 노래를 들어 보았다면 상당히 우울한 느낌이 든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 노래는 1933년에 헝가리에서 표된 곡으로 이 곡을 듣고 전세계에서 수백 명이 자살을 하여 '자살찬가', '자살송가'라고도 한다. 1935년에는 헝가리에서 레코드 발매 8주만에 187명이 이 노래를 듣고 자살을 했으며, 세계적인 레이 벤츄라 오케스트라 콘서트장에서는 이 곡을 연주하던 단원들이 권총 자살을 하기 시작하여 연주자 전원이 자살을 하는 사건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 곳을 작곡한 레조 세레스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고층빌딩에서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어떤 소설이나 음악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 대한 일화로는 나폴레옹이 열렬한 독자였다는 것도 유명하다. 또 나의 일화로는 1940년대 후반에 풍선껌이 대박이 나면서 형성된 기업인 '롯데'그룹의 그룹명이 신격호 회장이 감명깊게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불멸의 고전'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 책의 제목이 '슬픔'이 아닌 '고뇌'가 된 것을 주의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슬픔'이 아닌 '고뇌'란 그만큼 베르터의 내면의 사고를 중시한 것이 아닐까 보아진다. 이루지 못한 사랑만이 아닌, 그 시대의 젊은이로서 느낄 수 있는 사회적 편견에서 오는 모멸감,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데서 오는 상실감 등까지 폭넓게 읽어내야 할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이번에 '창비 세계 문학' 으로 새롭게 11권의 책 ( 10편의 소설)이 출간되었는데, 시리즈의 1권에 해당하는 책이다.
![]() 창비에서는 '예술성, 문학성, 대중성을 겸비한 고전을 재평가' (출판사 글중에서)하기 위해서 '창비 세계 문학' 1차분을 시리즈로 펴낸 것이다. 뜻있는 독자들이라면 언젠가 읽었거나, 읽지는 않았지만, 너무도 잘 알려져서 읽은 듯이 착각하는 세계 문학을 다시 한 번 접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널리 알려진 괴테의 고전이 ‘젊은 베르터의 고뇌’라 제목을 달리해 출판 되었기에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보았다. 책꽂이에 먼지를 흠벅 뒤집어 쓴 채 누렇게 바란 책이 왠지 손이 가질 않았는데 문고판 크기에 부족한 부분들이나 번역의 오류를 바로 잡고 편지글의 형식을 그대로 살린 이번 판은 번역에 공들인 흔적이 엿보이는 책으로 그리운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편지글의 형식을 빌리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며 밤새 붙이지 못한 편지를 또 얼마나 썼던지, 베르터의 흉내를 내던 젊은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다고 자살을 옹호하거나 미화시키는 것은 작가인 괴테 자신도 원치 않던 일이였으나 당시에는 베르터의 옷차림을 따라한다던지 권총자살을 하는 것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한 때 책의 출판이 금지 되기도 했었다고 하니 유행은 누가 시킨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시대의 흐름이지 싶다. 하물며 사랑이야 오죽할까.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 시절 첫사랑의 경험은 그야말로 순수하고 아름답다.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기에 더욱 애틋하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게 아닐까. 나이가 들어 흰머리가 하나 둘 생겨도 첫사랑의 가슴 뛰던 감정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마음 한켠에 고이접어 묻어 두었던 내 첫사랑의 기억을 끄집어 내서 청춘, 젊음이란 단어와 나란히 첫사랑의 픗픗함과 끊어오르는 생동감, 그리고 감출 수 없는 정열을 이 책들 통해 느낄 수 있다.
괴테에게 명성을 안겨준 이 작품이 불과 14주 만에 완성되었으며,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졋다고 한다. 괴테가 법학 공부를 마치고 고등 법원에서 실습할 때 법관의 딸 샤로테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상처를 안고 괴테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를 기다리는 건 친구의 부인에게 연정을 품은 그의 동료였던 예루살람의 자살 소식이였다. 결국 두 젊은이의 실연의 아품은 한 편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
|
고전은 읽긴 읽어야 하는 데 언제가 읽겠지 하면서 미루게 되는 그래서 사놓고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게 마련이다란 인문학 강사의 말이 공감이 간다.
왠지 다 읽은 것 같아 이름은 꽤나 친숙하다. 괴테도 젊은 베르테르도 그렇고 언젠가 꼭 읽겠지 했는데 이미 30이 훌쩍 넘고 40대가 코 앞인 이 시점에 들어서야 그 날이 오고 말았다.
제목도 낯선 <젊은 베르터의 고뇌>(2012. 10 창비)는 오래된 책인냥 파스텔톤의 비교적 두껍지 않다. 고전을 고를 때 어떤 출판사냐 내지 번역이 어떤지 먼저 눈에 들어오게 마련인데 엄밀하고 적확한 번역으로 새롭게 탄생한 고전이라는 띠지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읽기도 전에 짧은 상식으로 로테는 굉장히 이뻤을 거야 베르터는 키도 훨친하고 잘생긴 훈남이었겠지 마치 사랑은 그런 자격이 있는 이들의 것이니까 라고 혼자 짐작하고 상상했다.
역시 제목이 슬픔보다는 고뇌가 맞는 어울린다. 시작부터 베르터는 25살의 나이가 그렇듯 고민에 고민으로 시작해서 끝날때에도 이루지 못할 사랑과 로테에 대한 사랑을 고뇌하다가 생을 마감하니까.
발하임, 그녀 로테를 만나게 된 그곳에서 베르터는 한눈에 그녀를 보고 반한다. 여덟이나 되는 동생들에게 일일이 빵을 떼어주는 모습에서 사촌들과 그녀가 나눈 대화를 듣고 솔직하고 다정한 그녀의 모습은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를 볼 수록 빠져드는 베르터, 한쪽에서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은 그녀를 만나고 온 하인의 얼굴과 뺨, 저고리 단추와 외투의 옷깃에 그녀의 눈길이 닿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생각될 만큼 간절하다.
고민에 빠진 베르터는 결국 그녀를 떠나지만 다시 돌아간다. 이미 눈치를 챈 그녀의 남편(베르터가 떠나 있는 사이 이미 부부가 된) 알베르트는 그녀에게 충고하고 서먹해진 로테에게 베르터는 절망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글을 낭독하고 미처 고백하지 않은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정한 로테의 태도이다. 그녀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유서가 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겠다는 절박한 젊은 베르터는 알베르트에게 빌린 권총으로 자살을 한다.
놀라운 사실은 이 글이 자신과 직장상사의 아내를 사랑했던 친구의 자살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과 무엇보다 서술방식 자체가 날짜를 적은 서간체 소설이기에 마치 읽는 이에게 호소하는 듯 하기에 주인공의 처절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달 된다는 점이다.
고전한 편을 읽어서 기분이 좋은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인간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구나 새삼 느끼게 된 1+1의 효과까지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
|
한 젊은 남자가 한 젊은 여자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이 얼마나 눈부시고 아름다운 일인가. 한데 그 여자에겐 이미 정혼자가 있다. 부적절한 관계라 할 수 없는 삼각관계지만 18세기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젊은 남자 베르터의 생은 환희와 고통의 세계를 오간다. 때문에 슬픔이 아닌 고뇌인 것이다. 로테를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기에 괴로워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베르터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사랑이 전부라고,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내 사랑이 상대의 사랑에 비해 너무 크다고 생각했기에 사랑을 강요하는 어리석은 시절이었다. 활화산 같았던 그 감정들이 지속되는 시간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과 고통을 안다고 조금은 말할 수 있다. 한데 과연 그 고통을 아는 게 맞을까, 나는 그가 아닌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슬픔이 아니라 고뇌가 맞는지도 모른다. 한 여자를 사랑했기에 그녀를 원했고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가진 게 많지만, 그녀에 대한 생각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나는 이렇게 가진 게 많지만, 그녀가 없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버린다.’ (144쪽 - 10월 27일 저녁 일기)
스물다섯살의 청춘이 쓴 글이라 그럴까. 아니면 실화를 바탕으로 쓴 글이라 그럴까. 괴테는 순수하면서도 여린 베르터를 온전히 책 속에 담았다. 닿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절함과 비통함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친구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와 일기 형식은 비밀로 존재되어야 할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겨 로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베르터의 심경은 어땠을까. 죽음만이 그 사랑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은 건 분명 어리석지만 아무도 그를 탓할 수 없음이 더 슬프다.
로테를 잊기 위해 그녀를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 일에 몰두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지만 그에게는 단 한 사람 로테만이 필요했다. 베르터에게 로테는 천사였고, 전부였다.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에게 어떤 결함도 없었기에 베르터는 더 좌절했는지도 모른다. 알베르트와 베르터, 그리고 로테는 한편으로는 우정이라는 이름의 가장 안정적인 삼각구조의 형태를 보여주지만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불안정하며 위태로운지 말이다.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변하는 베르터의 감정 묘사가 탁월하다.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결말이라 지금까지 사랑받는 건 아니겠지만 그만큼 강렬하게 폐부를 찌르는 소설이다. 그렇게 때문에 사랑의 열병을 앓는 이에게는, 사랑이라는 덫에 빠진 이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설사 그들이 죽음 그 이상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책 제목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이 책을 번역한 이는 독일어 발음에 충실하게 베르테르를 베르테로 슬픔이란 단어대신에 고뇌라고 책 제목을 <젊은 베르테의 고뇌>라고 하였다.
사실 제목은 많이 들어밨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한 괴테요. 이 작품은 괴테의 대표작중 하나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작품 <파우스트>은 읽어봤으나 <젊은 베르터의 고뇌>은 읽어보지 못했다. 그저 제목만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당연히 내용도 알지 못했다. 만약 어설프게라도 내가 책 내용을 알고 있었다면 조금은 지루했을지도 모르지만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읽어서 그런지 내용은 재미 있었다.
책의 형식은 편지 형식을 하고 있다. 보통 편지 형식이라 하면 수신인과 발신인이 있어야 하지만 이 책은 친구에게 보내는 주인공의 편지인 발신자의 편지로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부분이 약간 아쉽다. 친구의 답장 글도 있었으면 내용이 더 재미있었을 텐데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게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인지 아니면 자신의 일기인지 헷갈이게 하는 글도 있지만 뭐 읽기에는 불편이 없다. 책의 주된 내용은 주인공인 베르테가 약혼자가 있는 로테라는 여성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이 점점 커져 주체할 수 없게 되자 결국에 비극적인 선택을 한다는 내용이다. 책 내용이 전부 베르테의 짝사랑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베르테가 로테를 잊기 위해 취직한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베르테는 여기서도 곧 좌절을 맛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베르테는 일도 사랑도 다 실패한 것이다. 그 결과는 더 비참하고 말이다. 내 나이 젊은 시절에는 나도 그랬다. 사랑에 힘들어 하고, 직장생활에도 부당한 일을 당해도 억울해도 꾹 참고 일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내 나이로 본 젊은 베르터은 답답하고, 한심하고 끈기 없어 보이도, 사랑이 뭐 별거라고 목숨을 바치나 그런 생각도 든다. 이게 아마도 세월의 흔적일 것이다.
한 젊은이의 고뇌를 그린 작품을 지금이나 옛날이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것은 어쩜 지금은 많은 젊은이들이 짝사랑에 힘들어 하고 직장 생활에 힘들어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즉 지금 이순간에도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
|
사춘기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책을 사 주신다 해서 함께 서점에 갔는데 그 때 눈에 띤 것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우선은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한 남자의 순애보가 내 마음을 자극했다. 그리고 두껍지 않아 읽기에 큰 부담도 없어 보여 이 책을 골라들었다. 당시 내가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도서출판 ‘오늘’에서 펴낸 책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사춘기 소녀의 마음에 썩 와 닿는 내용은 아니었고, 일독을 하고 책장 깊숙한 곳에 꽂아둔 채 잊고 지냈다. 그런데 최근 ‘민음사’나 ‘문학동네’가 아닌 ‘창비’에서 세계문학전집의 출간 소식이 들려왔고 그 첫 번째 책이 <젊은 베르터의 고뇌>였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제목과는 달라서 조금 어색하긴 했으나 이 제목이 곧 ‘창비’가 앞으로 펴 낼 세계문학전집의 출간 의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테의 이 작품은 워낙 유명해서 읽지 않았더라도 내용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모처럼 다시 읽은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로테를 향한 베르터의 가슴 뛰는 사랑과 그 사랑을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괴로움이 느껴졌다. 마침 낙엽이 지는 가을이라 그런지 감수성을 물씬 자극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또한 십대 때는 미처 느낄 수 없었던 베르터의 심경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되어 마치 새로운 책을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제목과 표지가 모두 바뀌었으니 새로운 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베르터가 친구인 빌헬름에게 편지로 자신의 일상을 세세히 전달하는 서간체 형식의 이 작품은 스물다섯 살의 청년 괴테가 쓴 첫 장편소설이다. 작품 속 베르터는 실연의 아픔에 허덕이는 괴테 그 자신이자, 약혼자가 있던 여인을 사랑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친구이다. 그래서 괴테는 베르터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영시켜 더욱 생생히 묘사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편지 형식이라고는 해도 일방적으로 베르테르가 보내는 편지만 담겨 있어서 편지보다는 일기를 읽고 있는 느낌이 더 강했다.
새롭게 바뀐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작품 해설이었다. 역자인 서울대 독문과 임홍배 교수의 자세한 작품 해설은 이 책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을 뿐 아니라 책의 제목에 대한 역자의 뜻도 알 수 있었다. ‘슬픔’보다는 더 깊은 고통이 서려있어야 했기에 ‘고뇌’가 더 적합했다는 것. 여기에 베르터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인다면 이 소설이 일본을 거쳐 국내에 들어왔는데 ‘베르터’가 일본 특유의 발음인 ‘베루테루’로 읽혀 전해졌고 이것이 국내에는 ‘베르테르’로 정착되어 지금까지 책의 제목이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번역 출간된 대부분의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 작품이 어떤 제목으로 불릴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렇듯 원작에 충실한 번역과 현대적인 감각, 그리고 독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창비’의 세계문학전집. 비록 후발주자지만 앞으로의 독자적인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
|
* 이 감상문에는 해당 책의 내용이 다소 포함되어 있어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세계문학전집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어떤 출판사의 전집을 읽을까 살펴보던 중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 출판사 블로그에서 <창비세계문학 리뷰대회>가 진행 중인 것을 발견했다. 창비세계문학 중 원하는 도서를 읽고 리뷰를 남기는 것인데, 무려 1등 수상자에게는 창비세계문학 1~78권 전권이 증정되었다. 오래전부터 꿈꾸었던 세계문학전집 세트를 책장에 배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 리뷰할 책을 고심 끝에 결정하고 구입해서 읽었다. 나는 창비 세계문학 전집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작년에 코엑스에서 매년 개최하는 서울국제도서전을 갔다가 창비 출판사 부스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분명 새 책인데 새 책 같지 않은, 마치 옛날부터 책장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자주 꺼내 읽어서 표지가 하얗게 바래져버린 빈티지(Vintage) 느낌의 표지가 다른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과 다른 매력을 풍겼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진도 찍어두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리뷰할 창비세계문학 작품은 바로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터의 고뇌>이다. 지금까지 세계문학전집을 한 번도 읽은 경험이 없어서 어떤 작품을 읽고 리뷰하면 좋을지 선택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 때 문득 떠오른 생각. 최근 세계문학전집에 관련한 여러 Q&A 유튜버 영상들을 보다가 '세계문학전집의 첫 번째 작품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나요?'라는 질문에 '기획의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을 선택한다'는 답변을 본 적 있다. 그렇다면 창비도 첫 번째 작품에 기획의도를 잘 반영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2012년 세계문학전집의 후발주자로서 첫 시작 작품이 중요했을 것이기에 첫 번째 작품을 더더욱 고심해서 결정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창비세계문학1번,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선택하였다. 실제로 이 작품은 괴테의 초기작이자 리얼리즘의 시초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며, 일본식 발음 '베르테르'를 원어에 가깝게 '베르터'(Werther)로 번역하는 등 과감한 제목과 번역을 채택하여, 작품의 본질을 고민하여 만들겠다는 창비세계문학의 기획의도, 포부가 잘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771년 변호사로 개업하고 2년 뒤, 업무상 머물게 된 베츨라르에서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된다. 1774년에 쓴 소설 『젊은 베르터의 고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는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터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774년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1794년부터 독일문학의 또 다른 거장 실러와 우정을 쌓으며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1795-1796) 등의 걸작을 내어놓았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1. 익숙하지 않은 책 이름 <젊은 베르터의 고뇌>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알고 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또 다른 책이 나온 줄 알았다.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름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원어인 독일어 본래 발음을 살려서 창비는 이번에 번역을 새롭게 했다. 주인공의 이름을 '베르테르'에서 '베르터'로 표기를 바로잡았고,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요동쳤던 극심한 감정(사랑의 좌절, 인간적인 소통의 부재, 신분 차별로 인한 모멸감 등)들을 다 담아내기에 '슬픔'보다는 ‘고뇌’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되어 번역에 차이를 두었다고 한다. 실제로 원제에 쓰인 독일어 단어 ‘Leiden’이 복수형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며, 사전적인 의미 역시 ‘슬픔’보다는 ‘고뇌, 고통, 괴로움, 수난’ 등을 가리킨다. 2. 서간체 소설 이 작품은 서간체 소설이다. 주인공 베르터가 친구 빌헬름에게 보냈던 편지들로 구성이 되어있고, 후반부에 편집자가 등장해서 부족한 부분을 서술해 주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이 서술되는 부분은 적고 어쩌면 베르터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독백으로 서술된 부분이 상당하다. 이러한 독백과 같은 서간체 형식에서 어쩌면 베르터의 고독함과 고뇌가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3. 저자의 경험을 녹여낸 소설 괴테가 25살에 발표한 이 소설은 그 시절 괴테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한 소설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약혼자가 있었기에 단념할 수밖에 없었던 괴테의 쓰라린 사랑 이야기와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비운의 사랑 이야기를 동기 삼아 불과 4주 만에 이 소설을 완성시켰다. 연예인들의 자살이 잇따를 때마다 검색창에 1순위로 올라가는 말이 있다. 바로 '베르테르 효과'. '베르테르 효과'란 자신이 닮고자 하는 이상형이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를 모방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 네이버 국어사전 나는 여기서 말하는 '베르테르'가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에서 나온 것인 줄 몰랐다. 실제로 이 소설이 나왔을 당시 독자들에게 일종의 베르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니 얼마나 괴테의 작품이 베르터와 같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울렸을지 상상해본다. 처음에는 베르터의 다이어리를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날짜마다 구분되어 있는 편지들은 베르터가 보낸 내용만 있을 뿐 어떠한 답변이나 회신에 대한 내용은 없다. 그리고 베르터가 친구 빌헬름을 얼마나 믿고 의지했는지 편지를 쓰는 내내 본인의 감정을 너무 솔직하게 담아낸다. 사랑하는 여인 '로테'를 처음 만난 날 보낸 6월 16일 자 편지는 무려 6장을 차지하였으니 분량이 긴 편지을 쓴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편지에서 들뜸과 행복함이 묻어 나왔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벌써 세 번이나 펜을 내려놓고 말안장을 채비하여 밖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말을 타고 나가지 않기로 다짐을 했는데, 그러면서도 수시로 창가로 다가가서 아직도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다네.... <젊은 베르터의 고뇌> 1부 중 그랬던 베르터가 로테에게 약혼자(알베르트)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지더니 결국에 후반부에서는 조울증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 내가 초반부에 알던 베르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감정에 취해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래서 베르터에게 칼같이 선 긋지 못하는 로테의 태도가 이해 될 듯하면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로테도 베르터를 마음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약혼자에 대한 배려와 자신에게 구애하는 베르터 사이에서 그녀도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의 병은 결국 베르터를 죽음까지 내몰았다. 베르터가 죽음을 결심했을 때 로테의 손에 죽고 싶다고 했는데, 자신이 자살할 때 사용하려고 알베르트에게 빌려온 권총을 마지막으로 로테가 손질하여 주었다는 하인의 말을 전달받고 총에 입을 맞추는 베르터가 너무 불쌍했다. 세계문학이라고 하면 고전소설이 대부분이기도 하고, 당시의 문화나 시대적 배경 등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항상 읽으려고 결심해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읽기 전부터 어려울 거야 하는 두려움과 내가 온전히 작품을 감상하지 못할 거라는 느낌이 강했고, 내가 전문가도 아닌데 이 작품을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을 스스로 가졌던 것 같다. 이번 창비세계문학 리뷰대회를 준비하면서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다. 나와 같은 독자들은 첫 작품이 중요했을텐데, 이 작품은 순수하게 남의 연애소설 훔쳐보듯이 집중해서 볼 수 있었고, 후반부에 실려있는 작품 해설도 너무 쉽게 해설이 되어있어서 어려움 없이 잘 읽었다. 내가 읽으면서 느꼈던 주인공들의 감정선이나 시대배경 이해가 제대로 된 건지, 저자가 의도한 바를 작품에서 잘 캐치했는지 작품 해설을 읽으면서 보다 더 넓고 깊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러한 것이 세계문학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닐까? 이번 기회를 통해 세계문학, 고전소설이 어렵다는 나의 생각을 깰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다른 더 많은 창비세계문학 작품들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모든 청년들은 베르터처럼 사랑하기를 원했고, 모든 처녀들은 로테처럼 사랑받기를 원했다. ― 괴테
|
|
읽는 내내 주인공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까 주인공은 답답해도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베르터, 베르테르는 남편이 있는 여자 로테를 사랑한다. 로테도 베르터를 좋아하지만 어디까지나 친구로서다. 너무 사랑하고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그 고통을 참지 못 해 결국 이사를 간다. 하지만, 이사를 가고 새로운 직업을 얻지만 그곳에서도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뛰어 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 결국, 사랑의 한계와 신분적 한계는 한 명석한 젊음이를 자살로 내 몬다. 작품을 읽는 내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 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답답함을 벗지 못 했다. 주인공의 답답함에 답답해하는 독자만 남았다면 이 작품은 그저 그런 작품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다 읽고 마지막 자살 장면에서 주인공의 자살 장면을 보면서 혹시 그의 절망은 우리의 20대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20대가 아니라면 인생의 어느 한 순간 우리가 방황하는 한 순간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괴로운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 사랑은 또 한편의 현실 너머로 가는 돌파구일 수 있다. 여기서 베르터가 로테와의 사랑을 도피처로 삼았느냐,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그렇지 않을까. 어느 정도의 도피, 어느 정도는 그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는 모순이 혼재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사실 특별한 내용은 없는 작품이다. 베르터는 로테 주변을 계속 머물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끝까지 작품을 놓을 수 없었다. 좋은 작품이다. |
|
▣젊은 베르터의 고뇌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익숙해 있다가 조금은 달라진 제목에 먼저 눈길이 갔다. 거의 20여 년만에 다시 읽어보니 20대에 읽었던 느낌과는 또 다른 감동을 받게 된다. 아무래도 그때는 이 작품의 주인공 ‘베르터’처럼 청춘의 시기였기에 나의 독서도 그만큼 감정적이거나 격정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그 시기에 나는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책에도 심취해 있었었다.) 그런데 이제 40을 넘긴 중년의 나이에 다시 읽어보니 “슬픔”보다는 “고뇌” 쪽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에도 동의하게 된다. 삶의 길이 하나가 아니듯,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 또한 한 가닥이 아니라 여러 가닥이고 모양이나 굵기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여러 갈래로 교차되면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간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이라는 열병을 앓는다. 그리고 또 한 번쯤 이별의 아픔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베르터가 보여 준 사랑은, 어쩌면 너무도 절대적이고 너무도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기에 가능한 사랑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라디오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장 정 일
장정일의 이 시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무도 쉽게 만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별하며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사랑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친구에게 보내는 서간의 형식을 취한 이 소설은, 철저하게 ‘베르터’의 독백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간의 형식이긴 하지만 편지를 받는 대상인 친구 ‘빌헬름’의 답장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고 있음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옮긴이도 그 점을 고려하여 철저하게 베르터의 독백체로 번역을 하고 있는데, 이 점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라 여겨진다. 독백이란 한 사람의 인물에 의해 행해지는, 누구로부터도 방해받거나 매개되지 않는 다소 긴 발화를 말한다.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참모습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나의 이 가슴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이며, 이 가슴만이 모든 것이 샘솟는 원천이다. 모든 힘, 모든 행복, 그리고 온갖 비참함의 원천인 것이다. 아, 내가 머리로 아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이 가슴만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125쪽- 베르터의 이 고백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의 결과물이다. 상류층의 오만과 위선,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경계지우는 당시 사회의 모순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있는 지성적인 이미지의 베르터는, 동시에 로테로부터 시작되는 아주 작은 울림에도 결결이 가슴을 앓고 격정적으로 감정의 물결에 휘둘리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중 누가 감히 베르터의 이러한 격정에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베르터의 마지막 선택은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갈구의 마침표와도 같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에 베르터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이 잇따라 결국은 ‘금서’로까지 지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이 책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서 ‘격정’과 ‘극단’을 읽을 것이 아니라 ‘순수’와 ‘열정’, 그리고 ‘진심’이 아닌가 싶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아니면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의 첫 만남. 그 소중한 시간으로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고요히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마음으로, “젊은 베르터의 고뇌”와 마주하기를 권한다.
|
|
아, 내가 머리로 아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이 가슴만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p.125
고뇌라 함은, 이런 것이 아닐까? 보여줄 수도 보일 수 없는 것.. 그래서 오로지 자기만이 가지려 하는 것. 그러나 그것으로 인한 기쁨과 슬픔 또한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 되는 것.
그동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번역되어 읽혀왔던 이 책을 창비에서 다시 번역하여 세계문학시리즈로 출간했다. 슬픔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베르터의 감정이 "고뇌" 라는 말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전해오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세계문학시리즈를 여는 첫 번째 책..
아주 오랜전에 읽었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사랑을 하기도 잃기도 했던 경험들을 떠 올리며 베르터의 마음을 살짝 엿보고 왔다.
시대와 신분을 초월하여,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있었으며, 또한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나.. 모두의 사랑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질 수 없어 더욱 열렬해질 수도 있으며,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하루 하루 고된 나날을 보내기도 할 것이다.
첫 눈에 반한 로테, 순수하고 순결하기까지한 그 모습에 한 눈에 반한 베르터이지만 단지 첫 인상이 아름다웠다는 것만으로는 그 마음이 오래가지 않았을 것이다.
다분히 감상적이고 이지적인 베르터와의 교감이 가능했기에 베르터의 마음에 뿌려진 씨앗이 나무가 되어 자라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단순한 플롯으로 구성된 금지된 사랑이나 그것이 열렬한 사랑이 될 수 있으며 현재까지 읽혀지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경험하며 살아가는 그 사랑이 단지 일대일의 대응 관계처럼 완벽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설레는 마음과 보고픈 마음을 주는 그 사랑이 가져다 준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그녀도 느끼고 있다고 느낀 베르터가 한 선택의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혹은 없다의 얘기를 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이러한 사랑, 이러한 충직함, 이러한 정열은 결코 문학으로 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랑은 우리가 교양이 없고 거칠다고 일컫는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살아 있다. 그 반면 교양이 있다는 우리 같은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불구일 뿐이다! -p. 134
빌헬름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중 여주인과 새 머슴 사이의 사랑 이야기에 관한 베르터의 생각이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사랑이라 얘기하는 그 모습에 또한 교양이 있다는 우리 같은 사람의 비겁함을 본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우리는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 꾸미고 숨기고 계산하고..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윤리적인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게 윤리적일 수 있는가라고 베르터는 묻는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규율과 규칙의 잣대 안에 허락된 사랑의 모습만이 진실한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묻는다.
사랑의 본질이라 하는 것은 그저 마음 속 깊은 정열. 그것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베르터가 로테의 결혼이후에 얼마나 윤리적인 사랑을 택하려 노력했는지, 그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로테의 결혼이후 베르터는 로테를 떠나 궁정에 들어가 일을 한다. 그리고 C백작의 신임과 B양과의 교류를 통해 나름대로는 치유를 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C백작의 초대로 참석한 귀족들의 모임에서 당한 수모를 통해 그는 당시 신분의 질서의 모순을 느끼며 또한 굴욕감을 느낀다.
아, 이 답답한 가슴에 숨통을 틔우고 싶어서 나는 수백번도 더 칼을 집어 들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혈통이 고상한 말은 너무 심하게 몰아대어 혈압이 솟구치면 본능적으로 동맥을 물어뜯어 숨통을 틔운다고 한다. 나도 종종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동맥을 열어젖혀 영원한 자유를 얻고 싶다. --P.120
이라고 말하는 그는 궁정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은 다시 로테의 곁으로 간다.
아마도 베르터는 그가 말했듯이 로테에 대한 마음이 남매지간의 우애와 다를 바 없다고 위장하고 꾸미고 또한 그 순결하고 순수한 로테와 어찌해 볼 요량 없이 그저 바라만 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테와 나눈 격정적인 키스이후, 로테도 베르터도 이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의 사랑이 가득 담긴 두 눈을 본뒤, 베르터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사랑에 빠져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단지 슬픔이란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는 고뇌했을 것이다.
그가 말한 것처럼 교양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절대 할 수 없는 그 사랑을 위해 그는 가슴은 끊임없이 고뇌했을 것이다.
이제, 그는 갔다. 로테와의 사랑과 추억이 담긴 파란색 연미복을 입고, 그렇게 로테의 손길이 닿은 권총으로 자살했다.
가슴의 피를 쏟아내며 썼다는 괴테의 말처럼 베르터도 피를 흘리며 죽음의 저 편으로 갔다. 그의 사랑을 고스란히 가지고 말이다.
절대적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며.. 그는 그렇게 그의 사랑을 지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젊은 그가.. 했을 그 고뇌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쉬운 사랑은 없다. 또한 쉬운 선택도 없다.
그것이 어떤 모습을 가진 사랑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 사랑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 역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혹은 각 개인이 해야할 고뇌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