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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명의의 대명사는 허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외에도 그 외에도 명의 소리를 들었던 의원이 또 있었는데, 바로 백광현(1625~1697)이다. 그는 작년에 방송됐던 드라마 '마의'의 주인공으로 당대인에게는 신의(神醫)소리까지 들을만큼 뛰어난 의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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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현의 이력은 여러 모로 독특했다. 무관으로 인정받는 인재였다가 낙마해서 부상을 입은 뒤 의원의 길로 들어선 것도 그렇고, 말을 치료하는 마의였던 것도 그렇고, '조선 최고의 외과의사 백광현뎐'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외과의사라는 평을 듣는 것도 그렇다. 조선시대에 유의(儒醫)는 있었지만 무관에서 의원이 된 경우는 드물었을텐데, 거기에 수술이 연상되는 외과의사라니.. 작가가 백광현에게 조선 최고의 외과의사라는 칭호를 붙인 것은 단순한 수식어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백광현은 종기 치료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는데, 그는 다양한 침구를 통해서 환부를 찌르고 그 안의 피고름과 종기의 뿌리를 제거하는 외과적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했다. 보통 의원들이 침술이나 약으로 환부를 치료하려고 했던 것에 비해서, 그는 치료 방식은 당시로선 상당히 과감했던 것이었다.
'조선최고의 외과의사 백광현뎐'을 읽다보면 흥미로웠던 것이, 백광현이 환자를 치료하는 대목들이 사실적이라고 할까. 사용하는 도구나 시술 방법들이 디테일하게 묘사돼 있어서, 치료 현장을 직접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가가 한의사에, 의사학(醫史學)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경력의 소유자인만큼 현업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환자의 상태를 묘사하거나 치료과정에서 현장감이나 사실성이 돋보였고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덕에 흥미롭게 백광현의 일생을 지켜볼 수 있었다.
소설을 쓰기에는 부족한 필력이었지만, 작가는 그런 약점을 극복했다. 한의학에 관한 전문성과 백광현의 일생에 대한 연구, 그리고 드라마 '마의'에 자문의원으로 참여했던 그 경험을 살려 백광현의 삶을 두 권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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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내용 대부분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필력으로 소설적인 재미나 긴장감이 조성된 것이 아니라 그 현실적인 분위기에서 긴장감이 전해져온다.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았던 외과적 방식의 치료이다 보니 그것도 환자가 왕이나 고관대작이었으니 치료방법이 더더욱이 위험해 보인 것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그런만큼 백광현도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시술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던 것이다. 일개 무관에서 어의로, 종1품 숭록대부가 되고, 또 당대에서는 신의로 평가받게 된 데에는 그의 의술이 바탕이 됐지만 그 외에도 정성껏 환자를 대하는 그의 모습도 반영된 것이었다. 그가 의원으로 이름을 떨친 뒤 무인이었던 그의 집안에는 내의원 의관 등 의원이 된 인물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무인이던 시절 사람을 죽이는 검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검을 쓰고 싶다고 한 그의 활인지검(活人之劍)의 소망은 그렇게 임천 백씨 집안에 뿌리 내렸던 것이다.
예전에는 명의하면 중국의 화타와 편작부터 떠올랐는데, 요즘에는 허준에 이어 대장금 그리고 백광현까지, 조선 명의들이 대중들에게도 부각이 되고있다. 우리 역사속 인물이 이렇게 드라마의 소재가 되고 소설로 탄생한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친숙하고 인상깊게 다가가고 기억되고 평가되고 있기에, 지속적으로 시도해야 하는 가치있는 작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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