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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밖에서 잠들다 신용목 시 사각의 방에는 외미닫이 창문이 달려 있고 밤낮을 보아도 풍경의 모서리는 모두 네 개 날마다 벽지 속에서 길을 잃는 바람이 있다 꽃 단 상여가 고개를 넘는 것은 흔한 일, 건기의 무늬가 덜컹거리며 계절을 넘어가고 밤낮을 돌아도 계절의 모서리는 모두 네 개 중력은 긴 못으로 나를 바닥에 박아버렸다ㅡ이것 이 고행의 형식이라면 어쩔 수 없이 , 우리는 모두 구 원받을 것이다 중천을 그으며 형광등은 마른 모래를 쏟아낸다 꽃 핀 사내가 길을 잃는 것은 흔한 일, 사막 가운데 모래 산이 생겨났다 사라질 때 그 모래시계에 맞춰 우주가 회전하리니 모든 무늬는 기록이다 해와 달의 지문인 바람이 몸 의 문서에 찍어 놓은 얼굴로 누워 이 생과의 계약이 오래 아프리라는 것 밤낮을 살아도 묘혈의 모서리는 모두 네 개 커튼 사이로 어제는 찟긴 치맛자락을 펄럭거리고 창을 열면 한꺼번에 오늘이 쏟아져 들어왔다 p.79 신 용목 시집 < 아무 날의 도시 > 중에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와 나의 꿈과 또 소설의 연계 발레리의 묘비까지는 너무 무거워 들고 올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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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의 생 신 용목 시 창밖으로 검은 재가 흩날렸다 달에 대하여 경적 소리가 달을 때리고 있었다 그림자에 대하여 어느 정오에는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었다 왜 다음 생에 입을 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냐고 그림자에 대하여 나는 그것을 개켜 넣을 수납장이 없는 사람이라고 어김없는 자정에는 발가벗고 뛰어다녔다 불을 끄고 누웠다 그리움에도 스위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밤 신은 지옥에서 가장 잘 보인다 지옥의 거울이 가장 맑다 p.73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막 한은형 소설 속 하석이 그림자 안치소를 생각하듯 그림자를 벗고 넣어두고 찾으러오고 하는 장면 생각이 난다. 그림자를 넣을 서랍 ... 그림자를 잃은 피터팬 그것을 꿰매주던 웬디. 황정은 소설 속 그림자는 불행을 말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나 모두 그걸 혼 처럼 읽는다. 불행이 자주 오면 못이겨 죽으니 결국 죽음과 다를게 없고 시인은 누군가를 보내고 온 모양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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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의 앞선 두 권의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와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서 신용목은 그가 관찰하는 세상을 시간과 공간의 퇴적물로 형상화하고, 그 퇴적층을 통과하는 바람의 결을 말함으로써 퇴적층의 탁본을 떠내는 시인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 시집 『아무 날의 도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것은 오히려 아무것도 퇴적되지 않은, 아니 모든 오래된 퇴적층이 허물어진 도시의 허무와 “허방”(「목련꽃 지는 골목」)이다. 이 도시에서 시인은 실패한 “반란”(「敵國의 가을」)의 결과 “포로”(「포로들의 도시」)로서 살아가는 존재다. (신형철, 「적국에서 보낸 한철-‘포로’로서의 시인에 대하여」)이 도시는 시간도, 공간도, 어느 것도 명명되지 않은 “아무 날의 도시”(「아무 날의 도시」)이며 그렇기에 여기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또한 이 “아무 날의 도시”는 시인에게 “배고픔”과 “절망”의 공간이다. 그러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시인은 다음과 같이 그려낸다.
나는 격발되지 않았다 어느 것도 나의 관자놀이를 때리지 않았으므로 나는 폭발하지 않았다
꽁무니에 바람 구멍을 달고 달아나는 풍선
나의 방향엔 전방이 없다 멀어지는 후방이 있을 뿐
아무 구석에 쓰러져 한때 몸이었던 것들을 바라본다 한때 화약이었던 것들을 바라본다
봄의 전방엔 방향이 없다 다가오는 허방이 있을 뿐
어느 것도 봄의 관자놀이를 때리지 않았으므로 봄이 볕의 풍선을 뒤집어쓰고 달려가고 있다
살찐 표적들이 웃고 있다
- 신용목, 「격발된 봄」
「격발된 봄」에서 “나”의 존재는 “아무 날의 도시”를 벗어나고자 하는 격발이 실패한 화약 같은 것이다. 그래서 관자놀이가 아니라 꽁무니에 바람 구멍을 달고, 밀어내는 바람의 힘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는 풍선처럼 달아난다. 풍선은 후방을 밀어내면서 나아갈 뿐, 전방을 향할 줄 모른다. 마찬가지로 다다르고자 했던 봄은 방향을 상실하고 허방에 빠지고 말 것이다. 볕이라는 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그저 흘러가는 하나의 계절로서 봄은 달려간다. 이러한 ‘껍데기’의 허무는 다음 시에서 반복된다. 빵 봉지 날리는 골목을 지나왔다
누가 알맹이만 먹고 버렸을까 알맹이를 담고, 껍질이 된 누구
봉지를 찢고 빵을 먹었다, 내 몸 빵 봉지가 되어
환하도록 골목을 쓸려다녔다 (목련나무 빈 둥치에 걸려 넘어지다 재개발 담장 붉은 글씨에 찔려 뒤집히다)
빵빵하게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몸 어딘가 쭉 찢어져
아이가 발로 차고 지나갔다 쥐가 뒤집어쓰고 달아났다
누가 봄을 여기다 찢어버렸다 먼지 바닥에 하얗게 쏟아져 걸음걸음 구르는, 누가 봄을 다 먹어치웠다
먹어치워, 봄의 껍데기가 되었다 봉지가 되었다
바람이 나의 봉지였다 바람은, 몸 어딘가 툭 터져 있는 허공
빵 봉지 날리는 골목을 지나왔다
- 신용목, 「목련꽃 지는 골목」
시에서 골목에 지는 목련꽃은 껍데기만 남은 봄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고, 알맹이를 잃은 빵 봉지가 된다. 봉지의 “몸 어딘가 쭉 찢어져”, “몸 어딘가 툭 터져 있는” 부분은 「격발된 봄」에서 풍선의 바람 구멍을 떠올리게 한다. 방향을 상실하고 풍선을 뒤집어쓴 채 달려가는 봄과, 알맹이를 잃어버린 채 골목을 아무렇게나 쓸려다니는 봄은 모두 껍데기의 봄이다. 그리고 알맹이(빵)를 먹어치운 존재는 그 역시 알맹이가 되지 못하고 알맹이를 담고 있는 껍질이 되어 골목을 쓸려다닌다. 그런 ‘나’를 담고 골목을 굴러다니는 바람은 ‘나’의 봉지이다. 여기에는 시간과 공간, 말의 퇴적층 대신에 껍데기의 껍데기의 껍데기가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이 도시는 시인의 지옥이다. 시인이 원하는 나라를 찾으려는 반란은 실패했고, 포로로 묶인 시인은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의 잘려나간 다리처럼 누워”(「오지의 비유」) 있는 존재다. 그러나 또다른 시에서 시인은 “신은 지옥에서 가장 잘 보인다// 지옥의 거울이 가장 맑다”(「만약의 생」)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지옥에 지각했다. (그래, 천국에 美가 있을 리가!)// 한 무더기 깨진 불빛으로 반짝이는 도시에서, 나는 겨우 한 줌의 폐허를 꺾어 왔다.”라는 시인의 산문처럼 시인이 도시에서 꺾어온 폐허는 시인의 구원이자 성찰이며 아름다움이기도 한 것이다. 모든 퇴적을 잃어버린 폐허의 도시에서, 바람이 더 이상 퇴적층의 탁본이 아니라 껍데기가 되는 지옥에서, 시인은 새로운 시를 내놓았다. 그의 새 산문집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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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을 수도 울수도 있지만 신 용 목 시 어둠은 어쩌다 사지를 잃었을까 사방을 더듬어도 몸통만 둥글다 굴릴 수도 던질 수도 있지만 익으면 꼭지가 환하게 타지, 나는 불빛을 그렇게 믿는다 모든 흙이 벽돌이 되거 나 타일이 되거나 기와가 된 이후의 폐허 때로는 붉은 껍질로 떨어지는 허공의 각도로 해와 해와 헬리콥터가 지나간다 나무보다 더 흔들리는 당신의, 가지보다 더 휘청이는 당신의 어둠에 걸어두고 온 나에게 전할 사과를 딴다 안녕히, 웃을 수도 울 수도 있지만 하루의 정수리를 따 둥글게 깎아내는 칼끝을 한입 가득 배어 무는 얼굴로 울 수도 웃을 수도 있지만 안녕히, 빛에게 씌워두고 온 당신에게 보낼 사과를 싼다 상자보다 더 부서지는 나의 포장보다 더 구겨지는 나의, 때로는 하얀 속살로 번져가는 허공의 각도로 달과 달과 인공위성이 지나간다 불빛은 어쩌다 가죽을 잃었을까 사지를 껴안아도 허공만 환하다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있지만 익으면 밑동이 까맣게 타지, 나는 어둠을 그렇게 믿는다 모든 집이 무덤이 되거 나 유적이 되거나 기록이 된 이후의 폐허 p.20 .21 ㅡ시집 : 아무날의 도시 ㅡ속에서 살라오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오늘 선물받은 시집 한 귀퉁이 배어 먹고 물한모금 마시고 누구의 노래였는지 머릿속에선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 가수의 노랫말이 맴을 돌고 있고. 가난한 마음에 넉넉한 인사들을 챙겨주어 웃으며 보낸 하루 고맙다고 ㅡ어떻게 갚아얄지 모를 부채가 늘어서 애정 은행 파산 할 지 모르겠는데... 뭐 ㅡ그래도 누군가 옆에서 괜찮다 해주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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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날'이라는 표현이 재밌다. 그 특유의 어감을 외국에게 설명해 줄 재간이 없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some이든 any든 one이든 다 마땅하지 않았다. 뭐라해야 할까 고민하다 그저 입을 다물었다. 모든 것을 다 알려줄 필요는 없지, 하고.
[ 그것을 후회하기 위하여
나는 후회가 많은 사람이지만 아침마다 눈을 뜬다, 가장 분명한 당위는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을 후회하기 위하여
나무들은 침묵으로 자신을 견딘다. ...후략...]
매일이 남기는 가장 큰 자취가 후회일 것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시였다. 방금 연 입이나, 언뜻 흘린 표정이 잠시를 지나고 나면 금새 후회가 되는 것처럼. 내가 한 일중에 잘한 것보다 후회되는 것이 많은 매일을 보내면서도 여전히 일상은 반복된다. 그러니 시인의 말처럼 살아 있다는 것을 후회하기 위한 삶이 여기 있다. 오늘의 후회는 어제보다 덜하길 바라면서 그것조차 헛되어 후회하고야 마는. 마음대로 읽고나서 그것마저 부끄러워 후회되고야 마는 모든 일들을 떠올리며.
시집은 드문드문 너무나 생생하여 날고기의 선연한 단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불편함을 준다. 좀 더 일상에서 떨어져 있어도 괜찮을 법 한데 사는 것이 어떤 일들을 반복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를 읽을때면 삶에서 얻어낼 수 있는 가장 미려한 순간을 그려주어야 그 덕분에 내 삶도 조금은 시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고 시에 기대하는 부분이 있나보다. 적나라함, 사실적인 순간들이 불편한 때가 종종 있었다. 예를들면 아래의 '공터의 달리기' 나 '내 얼굴은 간신히 매달려 있다' 라는 시처럼 달궈진 불판 위의 고기를 보여주거나, 붉게 익은 심장의 빛깔을 떠올리게 하거나, 종로2가 사케집의 낡고 더러움을 사실적으로 가늠해보게 만드는 것들이 그랬다.
[공터의 달리기
오늘은 당신 마음을 말아쥐고 계주를 하겠습니다. 첫번째 눈사람이 두번째 눈사람에게 두번째 눈사람이 세번째 눈사람에게. ..중략.. 오늘 당신 마음은 따사합니다, 달궈진 불판처럼. 오늘 당신 마음은 붉습니다, 불판의 고기처럼. ..후략..]
[내 얼굴은 간신히 매달려 있다
소나기가 염없이 쏟아지다 번개를 짚고 허리 펼 때, 나는 종로2가 사케집에 앉아 당신 뒤편 판자가 눈 뜨는 것을 본다. ..중략.. 검은 손잡이 코를 잡고 열어볼래? 붉게 익은 심장을 푹, 찔러볼래? 식탁에 얇게 썰어볼래? ..후략.. ]
그 불편함이라는 것이 아름다운 시를 읽다가도 문득 단 하나의 시어에서도 찾아오고, 그럼 이내 마음에 들어 자세히 살피다가도 눈 둘 곳을 잃기도 하고 그런 일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시에게서 기대하는 바가 대체 무엇이길래 거름막으로 걸러지는 것들이 자연히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연시가 말랑하여 읽는 낯을 부끄럽게 만든다고 하지만 그만한 달큰함이 있어야 눈길이 가고, 나름 곱씹을만한 감정의 움직임이 전해져야 좋다고 떠올리는 것 같았다. 결국 충족되지 못한 환상을 채워주는 부분 중 하나로 의지하고 있는 건 때로 심심풀이 식으로 읽는 장르 소설들 뿐 아니라 시에서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이 눈길을 잡는 것을 보니.
[0시의 자오선
어제는 병실에서 자정을 맞고 오늘은 가로수 스치는 차창 안에서 자정을 지난다
그때, 휘익 내 몸을 긋고 간 것 어제와 오늘 사이
1초와 1초 사이, 나를 갈라놓는 것 - 별자리를 긋고 간 것 후략 ... ]
앞의 시도 인상적으로 읽었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는 아래의 '인디언의 땅'이었다.
[ 인디언의 땅
수목원에 간다 나무 사이로 난 길은 사라지고 길 옆에 난 나무를 지나간다
수목원에 간다 숲을 허물고 지은 마을에서 숲이 있던 자리를 밟으며 간다 물을 건너려 산을 등진 고라니처럼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삼식억 년 전에도 우주를 떠돌고 있었을 오랜 그리움을 생각한다
산을 넘으려 물을 등진 버들치처럼
수목원에 간다 나를 키워준 가슴에 팻말을 달고 기다리는 부모를 만나러 간다 부모끼리 저녁을 먹는 마을을 간다
오늘은 먼 고향에 간다 옛 주인의 감옥에 간다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전파는 사라지지 않는다 삼십억 년 뒤에도 우주를 떠돌고 있을 긴 신호음을 생각한다 ]
시가 꽤 낭만적으로 여겨졌는데, 전까지 눈길을 끄는 달큰함의 여부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오랜 시간 사라지지 않는 전파가 어디로도 수신되지 못한 채 고요한 우주를 떠돌고 있음을 떠올린다. 언젠가 보았던 '그래비티'라는 영화 속의 까맣고 막막했던 우주 공간 - 그 무한함 속을 하염없이 떠도는 전파, 그리고 대답없는 침묵 속에서 수신되지 못할 사랑. 그런 부분이 못내 좋았다. 비록 '인디언의 땅'에서 우주만을 생각했다는 것이 이해하지 못한 간극을 만들었다 해도.
읽는 이를 고민케만든 시집이었다. 나말고 다른 이와 함께 읽었다면 같이 손을 붙들고 엉엉 울며 '그래서 대체 어쩌라는 거야' 하고 한탄이라도 했음 속이 시원할.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을 보면 뒷편에 '해설'이 있다. 보통은 해설 부분을 읽지 않으려고 한다. 어떠한 나름의 기록을 남기기 전에 해설을 보고나면 그동안 내가 느꼈던 것들이 미묘하게 다른 방향으로 바뀌게 되는 것 같아 의식적으로 다 쓰고 난 다음에야 보거나, 시간이 없으면 때로는 그저 읽지 않고 넘기기도 한다. -시간이 없다니. 책을 읽는데에 그런 핑계가 가능하기나 할까 싶지만- 창작물은 때론 어떤 오독도 다 감수할 것을 사전 계약을 하고 나오는 것 아닌가 뻔뻔하게 생각해본다. 그런 식으로 오해도 받아보고 하면서 창작물 자체도 성장하는 거라고. 물론 한없이 미안한 감상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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