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리뷰 총점
A total recall on Total Recall
"A total recall on Total Recall" 내용보기
폴 버호벤의 1990년작은 확실히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었다. 화성의 표면에 던져졌을 때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체내 압력 상승으로 풍선처럼 터져 죽는 게 먼저인지, (엄연한 물리적 사건 진행의 결과인) 동사(凍死)가 먼저인지 하는 문제는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는 순수 액션 서사의 관점으로 볼 때 말도 안 되는 엉터리 해프닝의 연속이었음에도(일일이 열거
"A total recall on Total Recall" 내용보기

폴 버호벤의 1990년작은 확실히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었다. 화성의 표면에 던져졌을 때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체내 압력 상승으로 풍선처럼 터져 죽는 게 먼저인지, (엄연한 물리적 사건 진행의 결과인) 동사(凍死)가 먼저인지 하는 문제는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는 순수 액션 서사의 관점으로 볼 때 말도 안 되는 엉터리 해프닝의 연속이었음에도(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가장 진지한 사실주의 오락물이나 되는 양 당대 관객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더 놀라운 건 '까려고 작정을 한' 관객의 눈에도 1) 일단 보는 내내 재미 있고, 2) 재미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뭔가 숨은 심오한 의미가 있어 보이게 만드는 놀라운 연출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 영화가 블랙 유머의 거대한 체계를 거의 실물에 포개어지고 남을 만큼 숨기고 있었음은 내가 이전에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다. 액션 SF인 척 하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늘어 놓는 능청과 관객 모독이면서도 여태까지나 아무도 눈치 못 채게 하는 그 장인의 해괴한 재능과 취향이 주는 마력 때문에, 그 영화에 대한 컬트적 집착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중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중반인가에 한국어판으로 완역되어 나왔던 필립 K 딕의 단편집에 그 이름을 빌려주기도 했던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와 그 1990년작 영화를 지나치게 연관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어리석은 자는 소설과 영화 사이에 무슨 순위를 매기기까지 하던데, 어이 없는 바보 인증에 불과하다). 버호벤은 그 단편을 모티브로 삼아 생판 다른 자기 이야기를 했을 뿐이며, 그 시도는 완전히 성공하여 세월이 20여년 가까이 흐른 지금의 평가로, ('왕국'까지는 몰라도)그 자신의 조촐한 백작령 하나를 만들었다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바로 그 산물이, 프로덕션 측에서 공식적으로 리메이크라 표방한, 그리고 제목과 주된 설정이 동일한 이 2012년작 '토탈 리콜'이다. 백작이 성을 건축할 무렵에야 온갖 구린 자재 동원과 투박한 공사판의 소움이 난무하는 혼란의 시절이었고 그 산물이었지만, 그 모든 말썽과 불명예가 망각 속으로 묻히고 아련한 추억만 그 윤곽으로 남은 지금에서 보면, 이제 그 기원을 까맣게 잊을 만큼 번듯하고 훤칠하게 자란, 그러면서도 아비의 이목구비를 빼닮아 그 겪은 신산을 헛되이하지 않겠다는 듯 공언하고 다니는 자랑스러운 2세를 이처럼 세상에 내놓기도 하는 셈 아닐까.


2세는 2세고 아비는 아비일 뿐이라, 나는 스토리라인상의 설정이 뭐가 어떻게 바뀌고 어디서 살짝 뒤집어졌다는 묘수, 혹은 실착에 대해서는 일일이 거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리메이크는 복사가 아니며, 그렇다고 리빌딩이 되어야 할 필연적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배경이 화성이 아닌 지구로 바뀌었다는 점에 대해 현실주의 색채가 강화되었다거나, 혹은 분석적 성격을 분명히했다는 프레임적 논의도 절실한 건 아니다. 영화 제작이 건축 하청 작업이 아닌 바에야, 딱히 어떤 용도와 기획 의도가 시방서대로 분명히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로 보아 적절한 감동을 주고, 그럴싸한 모양새를 완결적으로(즉 원작이나 영향을 준 그 무엇과 관계 없이) 독립적인 미학적 효과를 발생케 한다면, 그 영화는 분명 나름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외관상으로, 부유한 가문에서 잘 자란 산뜻한 후손을 보는 것 같아 일단 보는 눈과 마음이 뿌듯하다. 그 설정상의 과학적 타당성을 두고 말들이 많으나, 지상과 지하(지하 세계에 무엇이 있을 것이다, 혹은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는 테마는, 오랜 세월 동안 그 과학적 타당성이 심히 의심됨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 인기를 잃은 적이 없을 만큼 SF의 단골 소재였다. 이 영화가 그런 오랜 이 바닥의 분위기를 일부 반영하는 의미에서 그 FALL 이야기를 많은 무리를 해서나마 좀 넣었기로서니, 변변찮은 물리학 원리 강설을 동원하여 '까려는' 시도는 유치하게 보일 뿐이다. 언제부터 SF가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되었나?) 공간에 쌍대적으로 구현한, 아름답고 치밀한 시각적 배경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20년의 전과 후가, 그 사용(영화 제작) 테크놀로지 면에서, 이만큼이나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는 점, 단지 그것의 확인만으로도 오 헨리의 피조물만큼이나(?) 그 독해, 관전, 관람의 보람이 충분히 있다. 디스토피아의 유토피아적 아름다움을 이만큼이나 실감나게 눈 앞에 펼쳐 보였다는 그 노고 하나만으로 칭찬을 받고 남음이 있다(다만, 아직도 왕성히 활동하시는 노장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너무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이 팍팍 드러나는 게 좀 아쉬울 뿐이다. 배경 DNA만은 아비를 달리[나이 차도 현격한]하는 묘한 후손이 아닌지).


액션은 또 어떤가. 캐스팅 감각은 또 어떠했나. 나는 이 디스크 감상 이전에도, 익히 해 오던 버릇대로 인적 크레딧이 표시된 커버에 애써 눈을 감고 바로 슬롯에 삽입하여 질끈 감상 모드로 돌입하는 수고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전직 알렉산더 대왕이신 콜린 패럴이 나온다는 사실은 너무도 요란하게 홍보가 된 터라 모를 수가 없었지만, 다른 사실은 그 몇 달 동안 기를 쓰고 [예컨대 전철 통행로에 전시된 광고물로부터]시선을 돌리느라 참 웃지 못할 고생을 한 셈이었다). 그래서, 디스크가 돌아가고 몇 분이 지나서야 기본 설정이 크게 변했다는 점(초장에 설명이 나옴), 주연 배우가 제시카 비엘, 그리고 케이트 베킨세일이라는 걸 알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베킨세일이 반드시 이 역을 맡았어야 했느냐에 대해서는 그닥 확신이 안 가지만, 영화 진행 2/3까지만 해도 주인공이 과연 누구인가 할 만큼(1984년작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은 린다 해밀턴의 새라 코너인가, 아니면 아놀드의 그 사이보그인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녀가 몇 년생인지 새삼 확인하고 싶었을 만큼, 그 일품의 액션이 과연 어느 부분에서 대역이었는지 확인할 마음이 가시게 할 만큼, 그녀의 액션은 그럴싸했다. 액션뿐이 아니라, 남편을 맞는 씬에서 'Hey, Doug.'할 때 그 혀짧은(그래서 귀여운) 발음은 나이를 의심케 할 만큼 (짧으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그 비현실적인 바디라인은 역시 나이를 의심케 하나 이번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좌절을 안길 만큼 찐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크웨이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 강렬한 눈빛, 거침없는 커리어우먼(...정도가 아니지만)의 서슬 퍼런 정밀한(영국식 귀족) 발화(코헤이건과의 영통 씬) 등은, 배우의 연기에 감동을 받는 게 아니라, 우월한 존재의 차원 다른 퍼포먼스에 열등감만 키우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소의 불쾌감까지 남길 만큼이었다. 2006년작 '넥스트' 출연 이래 마이너리티의 대변자, 연대적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캐릭터로 대중에 각인된 제시카 비엘은, 스토리상 멜리나가 구현하는 모든 아니마, 아니무스에 정확히 매치되는 이미지로 역시 멋진 캐스팅이긴 했다. 다만 액션이나 그밖의 모든 연기에서, 라이벌 여성역이 뿜어내는 포스에 (스토리와 관계 없이) 압도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본래 '내적인 미'로 어필하는 그녀지만, 물리적 연령으로 거의 10년이나 차이 나는 상대 배우의 총체적 에너지에 눌리고 만 인상이라 좀 안타깝다(비엘이 연하라서 더함). 전작에서도 로리가 멜리나를 찍어누르는 분위기이긴 하므로 이건 그저 설정이 그래서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콜린 패럴이다. 아놀드의 크웨이드/하우저에 웬 패럴? 배우로서의 이미지는 거의 극과 극이라고 해도 무방한 터라, 나는 관람 전에도 이 점이 몹시 궁금했다. 패럴에 대해서는 스톤의 2004년작 '알렉산더' 이래 거의 주목해서 보지 않았기에, 영화를 직접 보기 전까지 이 점에 대한 해명은 스스로 구할 수 없었으나, 시작한지 몇 분이 흐르자 '아, 그렇겠군.'하며 긍정과 이해의 무드가 솟기 시작했다. 가공할 실력과 감각, 피지컬을 갖추었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영혼의 소유자이나, 기억의 조작으로 인해 자신이 누구였는지 잊은 채 '현재의 자신'에만 충실한 채 살아가는 노동 계급 역에, 이 패럴만큼 잘 어울리는 이가 또 누가 있을까? 미스매치라면 차라리 1990년의 아놀드가 미스매치이지, 패럴은 차라리 안성맞춤의 적역이다. 캐스팅에 이 정도 센스와 고뇌의 흔적이 배어 있고, 그 배경에 구현된 테크놀로지가 저 정도씩이나(거의 영화의 배경인 미래에서 온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모던, 아니 포스트모던한데, 영화의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 아닐까? 그러나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어드밴티지가 있는 내게, 이 연상은 차라리 자기 기만에 가까웠다. 영화 흥행 결과가 안 좋았고, 이런저런 사이트의 대중-전문가 평점 또한 수준 이하임은 알고 있는 상태니 말이다.


해답은 역시 패럴에 있었다. 그는 배우로서 좋은 조건을 타고 났고, 게다가 성실하기까지 하다. 이 영화에서 그가 보이는 몰입도나 씬 속에서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감탄과 감동 유발까지는 몰라도 딱히 흠 잡을 데 없을 만큼 깔끔하다. 배점이 세세한 기술적 점수의 합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그는 누구에게건 100점을 받을 만하다. 그런데, 총체성의 관점으로 자유의 전사, 악마에게 영혼의 반을 팔고도 나머지 반으로 세계를 구할 만큼 순일성과 정의감으로 가득한 메시아를 구현함에 있어, 페럴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흉내만 내고 있을 뿐, '그'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데에 총체적으로(말 그대로 totally) 실패하고 있다. 그는 기껏해야 멍한 부품적 노동자, 기술자인 크웨이드이지, 범인에게 영혼을 깨우는 지도자 하우저가 되지 못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1990년작에서 아놀드는 어떠했나? 아니, 패럴이 모든 면에서 당시의 아놀드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대체 못한 점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폴 버호벤에서 찾아야 한다. 1990년작 '토탈 리콜'은, 사실 아놀드나 마이클 아이언사이드, 또 훨씬 통일성 있고 생기발랄한(?) 코헤이건을 잘 소화한 로니 콕스의 노력 따위로 레전드가 된 영화가 아니었다. 본래 연기력과는 담을 쌓은 아놀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그 영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지켜 보면 거의 경기적 트라우마가 치솟아 오를 만한 샤론 스톤은 물론이며, 은근 감독의 보이지 않은 후원을 받은 레이첼 티코틴 역시 '그때 저 영화로 확실히 뜰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 이상의 어떤 크레딧을 주장할 처지는 아니다. 그 영화는, 철저히 버호벤의 내러티브 하나로 성공한 영화였다. 말이 안 되는 걸 말이 되게 만들며, 무의미한 활극을 좌파적 코미디로 이중 서사화한 버호벤의 마력이 있었기에, 아놀드의 코미디(희극 연기가 아닌, 연기 부실이 부르는 실소)가 코미디가 아닌, 우화적 설교로 해석되기까지 했던 것이다. 자, 여기서, 현실 풍자의 컨텍스트를 모두 걷어 버리고, 이 렌 와이즈먼처럼 본격 SF서사 요소만 추출해 내어 새 블럭버스터를 만든다면, 원작의 그 모든 (의도적) 허점은 이제 플롯의 허술함으로 고스란히 치부를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그게 배우의 연기만 보강한다고, 이처럼 예쁜 CG만 덧입힌다고 치유가 될 성질이겠는가? 와이즈만 역시 분명, 거장의 레전드를 보고 연출의 꿈을 키운 버호벤 키드 중의 하나였겠지만(아니라면 이 다소 무리한 기획에 참여할 이유부터가 없다), 원작의 심오한 풍자정신을 간과하고 그 겉모습에만 혹해서 '화장 떡칠'의 바벨탑을 쌓았으니 그 결과가 고작 이 정도에 머물렀던 것. 성형이란 아무리 능란한 민완의 집도를 만난다 해도, 그 부실한 내면의 발현까지 다 덮을 손재주란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블루레이 디스크를 보는 이가 언제나 느끼는 점이지만, 아직까지는 CG가 인간의 감각을 속일 수준이 되지 못하며, 이는 대량의 정보를 담아 속임수나 왜곡 없이 정보를 full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로서는 도리어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 VHS나 dvd의 '그저 적절한' 화질은, '뜨는 CG'의 이물감, 당혹감을 적절히 커버할 수 있다는 장점 아닌 장점이 있었다(흑백 사진의 매력에나 비길까?). 반면 블루레이로 보는 CG는, 그 정교함 못지 않게 부실함까지 낱낱이 폭로되듯 전달되어, '아직은 아니구나, 그럼 너는 대체 언제 나를 넉넉히 기만해 줄까?'같은 묘한 아쉬움으로까지 연결되는 게 보통이다. 이 디스크는 대단 잘 만들어졌으나, 그런 일반적 한계 역시 고스란히 갖고 있다는 점 언급해 둔다. 1990년작 빠돌이들에게는 원작에 대한 애정만으로도 넉넉한 화제를 제공하는 열광의 대상이 될 만하며, 원작에 못 미친다고 지레 속물적 까탈을 떠는 축에게는 '과연 당신이 가장하는 원작에의 사랑은 그 깊이와 농도가 얼마만큼인가?'의 구체적 질의를 던질 여유를 갖게 하는, 그럭저럭 괜찮은 아이템이다(감독판이 뭐가 다른지 궁금한 분들은 질문 남기시길).


s****o 2012.12.30.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