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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을 구분할때 언어를 사용하는지가 아마도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엄 촘스키는 "인간의 언어는 구문이라고 하는 일련의 규칙에 따라 상징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하는 체계다. 구문이야말로 언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언어는 문화적 영향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내재적 능력이기 때문에 다른 종에게 언어를 가르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행동과학자로 유명한 스키너의 제자인 허버트 테라스는 어린 침팬지를 사람의 가정에 입양시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양육하여 언어는 인간에게만 내재된 능력이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라는 이론을 입증하려고 했다. 태어나자 마자 어미 침팬지로부터 떨어져 사람처럼 키워진 어린 침팬지 '님 침스키'(노암 촘스키의 패러디)가 바로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이다.
'님'은 일반가정에 입양되어 인간 아기들과 형제같이 자라며 사람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었다. 화장실을 사용했고 설겆이를 돕기도 하면서 가족의 일원으로 자랐다. 님은 수화로 100개 이상의 단어를 학습했고 몇 개의 단어를 연결해서 문장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프로젝트 님'을 정리하여 『사이언스』에 발표한 테라스는 님의 수화가 과학자의 동작을 따라하는 것에 불과하여 프로젝트 님은 실패라고 선언했다. 노엄 촘스키가 옳았고 스키너가 틀렸다. 단어를 점차 복잡한 구조로 결합하고 문장을 만들어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인간 아이들과 달리, 님은 단어를 강조하기 위해서만 신호를 결합했을 뿐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새로운 조합을 만들지는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역설적이게도 실패를 인정한 테라스는 학계에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다른 학자들의 유인원 언어연구와 실험에 사용된 침팬지들은 종말을 맞았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님은 그가 태어났던 오클라호마의 영장류 연구소로 보내졌고, 영장류 연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운영비가 부족하게 되자 그는 간염과 AIDS 백신을 연구하는 생의학연구소로 보내지기까지 했다. 그에게 헌신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구출되었지만 블랙뷰티 동물 보호소에서 반쪽 인간과 반쪽 침팬지로서의 험난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식물도 감정을 느낀다는데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가장 닮았고 사회적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는 침팬지에게 어린 시절 부모와 결별하고 연구자들의 필요와 사정에 따라 끊임없이 거주지와 보호자가 바뀌는 생활은 님에게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님이 단지 침팬지가 아니라 인간과 같은 영장류로서 그가 느낄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좌절감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읽는 동안 가슴이 먹먹하게 만든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고 사람과 같은 식탁에서 요구르트와 케잌을 먹던 그가 좁은 우리에 갇혀 사료를 먹게 되었을때 그와 형제처럼 자랐던 제니는 "찰스 디킨스 소설 같았어요. 우리가 녀석을 왕자로 키웠는데 이렇게 돌려보내면 거지가 될테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를 돌보았던 이들도 침팬지를 양육하면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곤란들로 가정이 파괴되거나 경제적으로 큰 곤란을 겪었고, 님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이 책은 님 침스키라는 침팬지의 일대기이기도 하지만 그를 둘러싼 연구자, 동물보호자들의 인간 드라마이기도 하다. 실험실에서 사용되고 폐기되는 다른 동물들과 축산용으로 사육되는 동물들의 현실을 생각할때 님은 상대적으로 나은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님 침스키라는 이름과 성을 가진, 너무나 특별한 침팬지의 삶은 동물의 복지,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까지 관심을 확장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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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동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성격이다. 지금도 극진한 동물사랑은 행해본적이 없다. 싫어하는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조금 무서워하는 편이다. 그래서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그런 내가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이사가면서 개와 소를 매일 보고 살게됐다. 가끔 먹이를 주는 정도였지만 어느샌가 동물에게도 성격이라는게 있다는걸 알게됐다. 낯설고 괜히 겁내는 내게 먼저 선뜻 다가와주고 애교를 부리는 녀석이 있는데 그것 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래서 때론 너희들이랑 말이 통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라고 푸념을 하곤 했다.
동물이 말을 이해하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것은 서로 다른 종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호기심이다. 하지만 그것을 풀자고 태어난지 얼마 안된 어린 침팬지를 실험대상으로 정하고 사람의 가정에 던져넣어 사람의 생활방식을 강요한것은 어떻게 보아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불쌍한 새끼 침팬지는 태어난지 열흘만에 어미의 품에서 떨어져나와 인간들의 품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님 침스키' 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프로젝트 님'은 그렇게 시작됐다.
기가 막히지만 정말 실행된 프로젝트 덕분에 님의 일생엔 커다란 굴곡이 생겼다. 처음 입양되어서는 님도 행복했을 것이다. 정말 사람인듯 친자식인듯 님을 사랑하고 함께하게 되어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사람처럼 교육받고 생활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연구비때문에 종료되고 난 후로는 사람들로부터 버려지면서 여기저기 떠돌고 험난하게 생활해야했다. 마지막 안식처 블랙뷰티에서 샐리를 만나서야 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님은 커피도 마시고 잡지도 보며 수화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신기하고 이슈가 된 것은 사람이 아닌 침팬지가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해도 본능적인 습관은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침팬지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어디까지 바랐던 것일까. 호기심을 충족하는데에 정말 이런 방식밖에 없었던 것일까 싶었다. 님이 평균수명보다 한참 못미치는 나이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죽은것이 너무 안타까웠고 어릴때 프로젝트때문에 잘못 길들여진 식습관과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때문인듯 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동안 다른 동물들의 사정도 간간히 언급되었는데 여전히 마음이 안좋았다. 서로 다른 개체간의 교류는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은 이제 없어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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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책 제목 그대로 님 침스키라는 이름을 가진 침팬지 한마리의 일생 이야기 이다. 님의 출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이 난다. 사람의 일대기 비슷하게 쓰여졌는데 가장 큰 차이점 하나는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모든 일생이 주인공 님이 아닌 남=인간에 의해서 좌우 되었으며 단 한번도 스스로의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님의 일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람 마음데로 멋데로 가지고 놀다가 버리다" 딱 어울릴 것 같다.
태어나자 마자 동물도 사람과 유사한 언어능력을 가질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대상으로 선정되어 다른 침팬지들과 분리되어 인간의 가정에서 키워졌다. 사람을 엄마이자 동족으로 알고 사람의 집에서 사람처럼 먹고 자며 자랐다. 사람의 아이처험 수화를 통해 대화할 수 있게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매일 일정시간 언어교육을 받았다. 아무리 침팬지를 좋아하고 사랑해도 자신의 자식을 포기하며서 까지 돌볼 수는 없는법. 결국 침팬지의 인간 엄마는 둘다를 가질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침팬지를 사랑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게 침팬지 대신 자신의 아이를 선택한다. 인간의 가정에서 버림받고 연구가치가 떨어지면서 연구자에게 버림받고 다른 침팬지들 처럼 약물실험 대상으로 팔려갔지만 유명세덕에 다시 살아나 보호소로 옮겨져 삶을 연명하다 죽은 님의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님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이야기의 시작부터가 그러하다. 님에 대한 이야기가 맞나 책의 순서를 다시 넘겨볼 정도로 한동안 님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우선 영장류연구소를 비롯한 침팬지 영장류 연구의 현황이나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갈등장면들을 상세히 설명해준다. 중간중간 님이 옮겨지는 상황에서도 그저 단순하게 님의 이야기를 하는것이 아니라 주변상황을 거의 보고서 수준으로 설명해 놓았다.
님의 농락당한 삶과 인간의 만행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저자는 글에서는 감정을 상당히 억제하고 있다 마치 중립적인 입장으로 신문기사를 쓰듯이 담담하게 사람들이 연구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만행을 글로 적고 있다. 그저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준다. 철저하게 감정이 배제된 다큐멘타리를 보는 느낌이다.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
이 책에서는 님과 함께 다양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이 모습들이 등장한다. 침팬지를 생명체로 존중하며 사랑하는 사람들, 그저 실험실 비이커 하나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들, 기관의 이미지 회복을 위해서 필요할때만 사랑하고 그럴듯한 핑계로 내치는 사람들, 동물의 권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
사실 님보다 더 불쌍한 수많은 침팬지들이 책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독극물 실험에 사용되는 연구소의 침팬지들... 지금은 옛날 처럼 마구잡이로 수많은 대형 동물들을 이렇게 처분하지는 않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소형 포유류들은 인간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용되고 폐기처분된다. 극단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약회사의 돈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극단적인 견해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희생되는 동물들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는건 어디까지 해야하는걸까 판단이 어렵다. 지구에 살고 있는 다른 수많은 생명들을 희생시켜 인간의 수명만을 늘리는 행위자체는 과연 옳은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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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인간이 될 뻔한 한 침팬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이름은 바로 '님 침스키'라는 침팬지이다. 님 침스키? 왠지 어디선가 많이 들어봄직한 낯선 이름은 아니다. 이 이름으로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미국의 유명한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교수이다. 실제로 님 침스키라는 이름은 노엄 촘스키의 이름을 빗대 붙여진 이름이었다. 인간만이 주주의자 중 심리학자인 허버트 테라스가 침팬지를 통해 노엄 촘스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보편적인 문법이론으로 유명한 MIT의 언어학자이다. 그로 인해 언어는 학습될 수 있다는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타격을 받았다. 이에 촘스키에게 침팬지가 학습을 통해 언어를 배우고 주체적으로 문법을 실제적으로 구사할 수 있다것으로 촘스키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컬럼비아 대학 심리학과 교수 테라스가 나섰다. 이것이 프로젝트 님이 탄생된 배경이었다. 프로젝트 님에 앞서 침팬지를 통한 연구는 많았고 침팬지를 일반 가정에 입양해서 인간아이처럼 키우면서 수화를 가르친 예도 있었다. 그래서 프로젝트 님은 태어난지 며칠되지 않은 침팬지를 일반 가정에서 일반아이들 처럼 키워서 언어, 여기서는 미국식 수화를 가르친다는 목표에 따라 프로젝트가 준비가 되었다.
결론을 우선 말하자면 프로젝트 님은 실패하였다. 님은 제일 먼저 인간의 가정에 입양되어 인간의 아이들과 함께 인간처럼 자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나 점차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되었다. 첫째 영장류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비 지원이 안된점. 둘째로 입양한 가정에서 점차 자라나는 침팬지에 대한 관리의 문제. 셋째 연구대상인 침팬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문제 즉 연구의 대상으로만 볼 것인지 님에 대한 애정 및 복지에 대한 문제로 인해 프로젝트 님의 총괄자인 테라스와의 마찰 등이었다. 특히 세번째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 었다. 여기서 우리는 연구 대상 동물에 대한 처우에 대해 하나의 질문을 받게 된다. 연구대상 동물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다분이 윤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특별히 님의 경우는 어려서 부터 수화를 배웠기 때문에 곧잘 사용하는 수화가 수십단어를 넘었다. 단 촘스키가 말한대로 문법적으로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단어로서 표현은 가능하였다. 그런 과정 중에 님을 돌보는 많은 사람들이 님에게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감정적 애착이 연구에 일부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하였고 때론 연구의 자료를 모으는데 오류로 작용되는 부분도 있었다. 프로젝트 님이 시작될 때부터 그런 감정적 애착을 가진 그룹과 단순히 연구대상으로서의 동물로 대하는 그룹의 마찰이 프로젝트님의 제일 큰 패착이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하지만 이 문제는 테라스가 챔팬지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발생된 불가피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과정 속에서 프로젝트가 시작할 때 부터 마칠 떄까지 님의 보호자가 세번이나 바뀌게 된다. 저마다 자신만의 이유로 프로젝트 님을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연구대상 동물과는 달리 영장류 동물들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이에 대한 감정적 변화가 크다.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님은 재정상의 문제로 이곳 저곳으로 팔리게 된다. 마침내 마지막으로 동물 보호소인 블랙뷰티 농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마지막 생을 마감하기전 님과 제일 친한 사람은 블랙뷰티 농장관리자 번이었다. 그는 10년간 님과 함께 블랙뷰티 농장에서 지냈다. 님이 심경폐색으로 사망한 뒤 가진 추도사에서 그의 말이 앞서 프로젝트 님을 진행하던 사람들의 태도보다 더 와닿았다. 물론 그가 프로젝트 님과는 다른 조건에서 님을 대했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P388 번은 님에 대한 자신의 깊은 애정을 말했다. 그는 님이 침팬지임을, 인간이나 실험대상이나 그 어떤 도구도 아닌 침팬지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번은 님을 10년 동안 알고 지냈다. 매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나눠 먹거나 밤에 숨을 홀짝였다. 그들은 눈짓이나 몸짓을 통해 자신의 기분을 서로에게 전했다.
가끔 우리 주변에 버려진 애완견들 이야기들이 들려 온다. 그 애완견들은 주인들이 자발적으로 좋아서 키우기 시작한 동몰, 반려견들이다. 간혹 잃어버려서 유기된 견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애완견들 보다 실제 버려진 유기견들이 더 많다고 한다. 자기가 좋다고 키운 동물을 자신의 사정때문에 그냥 버린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이다. 40년전 님이 의학실험용 침팬지로 램시프로 팔려갔을때 침팬지 하나를 구하고자(물론 프로젝트 님으로 인해 유명세를 탄 침팬지 였으므로) 많은 동물애호가, 언론, 님의 지인들이 나서서 구명운동을 한 미국과 비교해 본다면 아직도 우리는 동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낮다고 할 수 있겠다. 동물애호가들이 개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문화를 탓하기 보다 먼저 자신의 키우던 애완견을 유기하는 부분부터 먼저 개선하여야 하지 않을까라고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1973년 영장류 연구소에서 님이 태어남, 태어난지 2주만에 뉴욕의 스테파니 라파지의 가정에 입양됨 1976년 스테파니가 입양을 포기함. 컬럼비아 대학내 델라필드로 프로젝트 님의 연구장소를 옮김. 보호자가 앤 페티토로 바뀜. 1977년 앤페티토가 대학원 공부를 위해 프로젝트에서 하차함. 보호자가 조이스 버틀러로 바뀜. 1977년 9월 프로젝트 님이 끝남. 영장류 연구소로 다시 돌아와 우리에 갇혀 지냄. 1979 11.23 테라스 프로젝트님 연구 결과 발표. 1982년 영장류 연구소 재정문제로 님이 의학 연구소 램시프에 팔려감. 지인들, 동물애호가 및 언론의 지속적인 반대로 인해 1개월 만에 다시 영장류 연구소로 돌아옴. 1983년 블랙뷰티 목장으로 님이 이전 됨. 1990년 마지막 보호자 번이 블랙뷰티의 새로운 관리자로 일함. 2000년 님이 심경 폐색으로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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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사람과 침팬지는 무엇이 다를까? 침팬지는 사람과 같은 행동과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싶을까? 과연 인간의 조상은 누구일까? 침팬지는 서로간의 소통은 무엇으로 할까? 등등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책에서도 알려주는 바와 같이 침팬지와 인간과의 유전적 차이는 단 3-4%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단 3-4%의 유전적 차이가 이렇게 외모 뿐 아니라 내면의 중요한 부분의 차이를 만드는것일까? 그럼 3-4%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면 침팬지도 인간과 같은 모양과 내면을 가질 수 있을까? 이것은 아주 어렵고도 황당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침팬지는 사람과 많이 닮았고 지능도 우수하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동물중의 하나이다. 최근에는 많은 반려동물들이 사람들의 사랑과 보호로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반면에 사람들의 배신으로 버려지기도 한다. 이로 인해 동물 보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그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개와 같은 동물의 경우 식용으로 사육되고 팔려나가는 실정 또한 언론을 통해 그 실정이 밝혀지고 있다. 이책을 읽으면서 동물과 사람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가장 큰 차이는 무리를 이루면서 사고하고 소통한다는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사회적 생활을 한다는것.... 이전의 다큐멘터리는 제인구달의 책을 읽어보면 침팬지 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그들만의 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침팬지의 경우 소리와 행동으로 소통하고 반려 동물들도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그들의 소통 수단을 알 수 있다면 동물들과도 교감을 할 수 있을것이라는 것이 본 도서가 알려주는 바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과 가장 유사하기에 그들의 생각과 의도를 알아 인간의 근본적인 언어의 발생과 기원에 대해 알라 보고자 실시한 프로젝트중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던 실험중의 하나였다. 노엄 촘스키는 현존하는 인류 언어학자로서 언어의 기원과 발달 과정을 연구한 저명한 학자이다. 인간의 등장과 더불어 오늘날의 인류가 가지는 언어는 수천가지에 이르지만 이러한 언어들이 만들어진 계기는 의외로 간단하다는것으로 소리와 몸짓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점 고정된 형태의 언어로 발전하였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문자가 만들어졌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문자의 기원과 언어의 생성에 대한 고대의 기록 아니 기록하지 못하고 그림으로만 전해졌던 것을 다시 해석한다는것은 너무나도 어렵기에 현대에는 동물을 이용한 기원을 밝혀보고자 했던 실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것이 님 프록젝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초기 이 실험이 시작될때 노엄 촘스키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고 그 결과를 기다렸을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침팬지는 사용할 수 있는 언어? 언어라기 보다는 수화를 배우고 이를 이용할 수 있엇다는 결론에는 도달 했으나 이 또한 100% 신뢰를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것으로 확실하게 이론으로 정립하기에는 부족한 실험이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본능에 의해 살아가게 되고 그 본능에 의해 모든 행동이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할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본능도 교육에 의해 보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기에 우리에게는 문자와 언어를 통한 교육이라는것이 중요해지고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함으로서 사회적인 강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자기 만족이라는 큰 보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침팬지의 경우는 본능이 새로운 의식을 받아들이는것을 방해하는것 같다. 아무리 수화를 통한 언어 습득을 위해 노력을 하더라고 본능적인 의식이 우선하기에 많은 단어를 습득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가지게 되고 그럼으로서 더욱 인간과의 차이는 분명해지는것같다. 사람에게 있어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영장류에 속하지만 점점 성장하면서의 행동은 동물들이 가지는 행태를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하는것 같다. 또한 애완 동물로서 취급하는데 큰 어려우을 가지고 있어 새끼의 경우에는 많은 사랑을 주기도 하지만 동물적인 습성에 의해 감정 표현에는 뛰어나지만 감정의 조절이 어렵과 자연에서 생존하기 위한 힘이 좋아 커 갈 수록 다루기 힘들어지는 모습을 나타낸다. 인간과의 소통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대상이 된 님 침스키는 사람으로 키우고자 했으나 결코 사람이 될 수 없었으며, 이를 수행함에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보호로 농장에서 심장폐색으로 죽을 때까지의 생을 감동적으로 서술한 다큐멘터리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책으로 사람과 동물의 관계 특히 동물도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중요한 종족임을 확인하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비록 인간의 욕심에 의해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고 사랑도 받았지만 실험용으로 침팬지를 비롯한 많은 동물들이 사용되고 폐기된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 아프게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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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로젝트 님'이라는 영화의 원작으로 침팬지가 인간의 말을 배울 수 있을까라는 인간의 이기적인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이야기 할라치면 응당 우선적으로 되돌아오는 질문은 '그래서 정말 침팬지가 인간의 말을 배웠던거야?' 정도일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그런 과학적 호기심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집어들었지만 마지막에 가서 창피해졌다. 이 책은 '말하는 침팬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님 침스키'라고 이름 붙여진 침팬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생후 2주만에 어미품을 떠나 인간에게
미국의 행동심리학자 허버트 테라스는 침팬지에게 말을 가르치기로 했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던 '촘스키'의 주장을 뒤엎겠다는 생각으로 침팬지의 이름도 '침스키'라고 붙인다. 침스키는 태어난 지 2주도 되지 않아 인간의 실험을 위해 실험실로 입양된 것이다. 무려 98.7%나 인간과 DNA가 일치하는 침팬지인데 인간과 같아지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초반의 실험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2개월부터는 수화를 가르쳤는데 이 역시 잘 따라해 큰 기대를 받았다. '마시다'라는 수화나, '더 많이' '주다' 같은 신호를 하게 되면서 실험자들은 고무된다.
하지만, 이때까지가 침스키의 삶이 빛났던 시기이며 동시에 인간이 침스키에 애정을 보여주던 시기였다. 침스키가 성장하면서 몸에 내재돼 있던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를 버거워하기 시작하고 최초로 그를 입양한 라파지 가족과 헤어지게 된다. 델라필드 별장에서 계속 되던 실험은 그의 공격성과 연구비 확보 부족으로 다시 4년 만에 중단된다. 그 후의 침스키의 삶은 집을 잃고 떠도는 노숙자의 삶과 같았지만, 한 가지 더 비참했던 것은 자신의 종족들과 어울리는 방법까지 몰랐다는 사실이다. 타고난 친화력이 그를 여러 곳에서도 안착하게 했지만 그는 결국 침팬지의 평균 수명을 고작 반 채우고 세상을 뜬다.
여전히 우리만을 위한 동물
침스키의 실험이 만약 대성공을 거뒀다면 어땠을까? 그는 모든이의 관심 속에 대접 받으며 화려하게 삶을 마감했을까?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역시나 별다를 것 없는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물론 연구비 지원이 계속 이뤄졌다면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겠지만 그저 침스키는 우리 호기심을 채워준 침팬지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침스키의 삶보다는 그의 실험결과만이 중요했던 참가자들은 그들의 비인간적 행위를 인류의 발전을 위한 과학을 위한 것이라고 자위했다. 물론 님의 삶을 위해 희생한 이들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저자의 의도는 보편적인 인간의 이기심을 자극한다.
왜 강아지를 키우냐고 주변에 물어보면, '나도 별로 강아지 안 좋아 했었거든. 그런데 키워보니까 집에 가면 반가워 해주는 건 강아지 뿐이야.'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게 너무 싫었는데 강아지들이 반겨줄 때 너무 좋아.' '가족 같지. 아니 가족이지. 하는 짓도 너무 귀엽고.' 주인이 회사에 간 10시간 여를 혼자 기다리던 강아지는 화내지도 않고 주인이 오면 꼬리를 흔들며 달라든다. 아무리 큰 소리 쳐서 뭐라하도 내 품을 파고 들고, 화를 내도 무서워 하면서 내 눈치를 살핀다.
침스키가 버려진 이유는 '야생성' 때문이었다.
∴ 동물은 본성을 버리고 인간에 충성할 때만이 비로소 친구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공생(共生)
사실 '프로젝트 님'은 전제부터 큰 모순을 안고 시작됐다. 우리가 침팬지의 말을 배울 수 없듯이 침팬지도 우리 말을 배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최근 동물의 언어, 문화, 인지력 등을 연구하는 추세는 일방적인 주입이 아니라, 동화를 통해서만이 진정 인간이 동물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애완동물을 사랑한다면서 아파트에서 쫓겨날까봐 성대를 수술한다거나, 행동반경을 줄이기 위해 꼬리를 자르는 것이 과연 동물을 위한 일일까. 우리 틀에 맞는 동물을 원하는 인간을 위한 일일까.
이 책이 과학도서라고 접근하는 나 같은 사람은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에 결국은 뜨끔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험의 성공이 아니라, 공생의 성공이다.
번은 님에 대한 자신의 깊은 애정을 말했다.그는 님이 침팬지임을, 인간이나 실험대상이나 그 어떤 도구도 아닌 침팬지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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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김성규 저 '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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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그거. 혹성탈출이냐?”
혹성탈출이라. 아, 그 영화를 말하는 건가? 갖은 고생 끝에 지구에 돌아왔더니 링컨 동상에 원숭이가 앉아있더라는. 그 영화 참 충격적이었다. 어릴 적 봐서 줄거리는 가물가물 하지만 그 엔딩 장면만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금요일 밤, 저녁도 못 먹고 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가던 길이었다. 벅스 차트에 오른 가요를 무감각하게 틀어놓고는, 일차선을 밟았으면서 속력을 내지 못하는 소렌토와 깜빡이도 안 넣고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이차선 모닝을 욕하면서 떠들다가 문득 조용해지자 언니가 물었다. ‘요즘에는 무슨 책 보냐?’ 사람처럼 키워지고 수화를 배운 침팬지 얘기를 읽고 있다고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 언니가 영화 얘길 꺼냈다.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해서 아니라고 또 한참을 실랑이 하다가 핀잔만 들었다.
“너 그 영화 안 봤어?”
얘기를 듣다보니 언젠가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본 것도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혹성탈출’의 프리퀄로 제작되었다는 그 영화. 그러고 보니 개봉 당시에 꽤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로 자주 광고를 때려댔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보러 갈까 어쩔까 생각하다가 결국 못보고 말았던 영화였다. 내가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얘기하자 언니는 신나게 영화 줄거리를 읊어댔다. 듣다보니 혹성탈출의 시저는 프로젝트 님의 님 침스키와 닮은 꼴 이었다.
“맞아. 그 영화에서도 수화하는 침팬지가 나와. 고릴라였나?”
꼬꼬마 시절 주말의 명화로 ‘혹성탈출’을 봤을 때는 어린 머리로도 ‘거 참 말도 안 되네. 어떻게 침팬지가 사람처럼 군담? 영화는 영화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머리가 크고 난 지금은 오히려 다른 생각을 한다. 님 침스키의 생애를 추적한 책을 읽고 난 뒤라서 그런 건지 어쩐지, 현실에 기초하지 않은 판타지는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그리고 그 현실에서는 종종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 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됐다. 사람처럼 판타스틱하게 엽기적인 동물이 또 있을까?
인간은 오랜 세월동안 스스로를 동물과 철저하게 차별화된 존재라고 생각했다. 노엄 촘스키의 언어 이론 또한 그런 전통적인 관념의 연장선상에 있다. 오직 인간만이 정형화된 문법구조를 가지는 언어를 사용하며, 그러한 능력은 인간종에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본성(언어학자 스티븐 핑거는 ‘언어 본능’이라고 칭했다)이라는 그의 주장은 언어학계에 지배적인 이론이다. 이 말은 곧 비인간종은 문법 규칙을 기반으로 한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말이 되는데, ‘언어는 학습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행동과학자 F.B. 스키너의 이론과는 상이한 것이었다. 결국 스키너의 주장은 촘스키의 그늘에 가려져 이론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고 말았지만 촘스키의 이론에 도전하는 후배 학자들은 스키너의 주장을 지지했다. ‘프로젝트 님’ 또한 언어는 학습될 수 있다는 스키너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실험이었다. 인간과 DNA가 98.7% 일치하는 침팬지에게 언어를 가르쳐 언어가 어떻게 학습되는지 관찰하고자 한 것이다. 실험 대상이 된 침팬지에게는 ‘님 침스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노엄 촘스키의 이론에 대항하는 실험의 실험체에게 붙여진 상징적인 이름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행동심리학자 허버트 테라스는 침팬지 ‘님 침스키’에게 말(수화)을 가르치고 스스로 구사하도록 훈련시켜서(수화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노엄 촘스키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함과 동시에 인간과 비인간의 과학적이고 의미 있는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프로젝트 님’은 거창한 목표를 갖고 시작됐고 성공 가능성도 높게 점쳐졌다. 이제까지의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여러 가지 창의적인(혹은 엽기적인) 실험들이 훌륭한 선례로서 참고자료를 충분히 남겨 주었고, 그 시대는 연구를 장려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 실험은 결과적으로 동물에게 인간의 생활방식을 강요할 수 없으며, 인간화된 침팬지라도 인간사회에서 인간과 섞여 함께 살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만을 분명하게 입증했을 뿐이었다. 님이 두뇌 용량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님은 인간 가족과의 생활에 높은 적응력을 보였고, 비교적 빠른 속도로 여러 가지 표현을 수화로 익혔다. 학습한 표현을 스스로 수화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님은 자랄수록 야성적인 본능을 감추지 못했고 그로 인해서 실험 계획당시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입양가정의 사정으로 최초 입장자가 님을 파양해서 새로운 부모를 찾아야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몸집이 커져갈 수록 난폭해져 가는 님과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입양가족들과의 마찰에 연구비 지원 확보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기도 전에 프로젝트는 종료되고 만다.
님 침스키는 27년을 살았다. 생후 10일 만에 실험을 목적으로 인간 부부의 가정에 입양된 이후로 인간과 어울려 인간처럼 생활하고 인간의 말을 배우며 ‘인간화’ 되었던 기간은 4년. 그 이후 23년의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프로젝트 님이 진행되는 4년 동안 님은 화제의 인물이었고 이 기발한 실험에 열광했던 대중의 스타였지만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후의 님은 금방, 쉽게 잊혀졌다. 저자는 생후 4년까지의 님의 기록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4년 이후의 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23년 동안의 님의 일생도 추적했다. 실험에 쓰인 동물들의 말로가 어떤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은 실험 도중에 죽거나 실험이 끝난 이후 또 다른 실험에 활용되기 위해 다른 시설로 보내진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대게 기록되지 않는다. 프로젝트 님이 중단된 이후 출생지인 오클라호마 대학 영장류연구소로 되돌아온 님은 연구소의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또다시 뉴욕대학 영장류약물외과연구소로 보내진다.(이곳은 동물 생체 의학실험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 보호소로 보내졌고 지난 2000년 그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침팬지는 평균적으로 50년을 산다고 하는데 27년을 살다 간 님은 요절한 셈이다.
보호소 시절 님은 프로젝트 당시 받았던 동화책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님은 보호소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수화를 했지만 대게는 무시당했다. 님의 수화는 끝내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고 보아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정말 그가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기고 있었는지, 그래서 부모로 여기며 사랑하고 따랐던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괴로웠는지, 인간과 떨어져 우리에 갇혀 지내게 되어 외로웠는지 아니면 그저 인간과 생활하던 시절 배운 손짓을 습관처럼 반복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침팬지 치고는 짧은 생을 살다 간 것으로 미루어 보아 4년간의 프로젝트로 인해 뒤틀려 버린 정체성으로 인해 남은 생동안 내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뿐이다.
지금이야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대번에 영화 같은 이야기라고, 영화에서 볼 법한 이야기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동물 실험 무용론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고, 동물의 인권을 주장하는 활동적인 운동가들도 많이 있다. 비인간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때도 인간의 시선이 아닌 그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행위와 생태와 습성을 이해하고 해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연구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프로젝트 님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다면 상당히 잔혹하도록 무식하고 터무니없는 실험이다. 하지만 이 실험이 시작된 것은 1973년으로 그 이전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한동안은 이런 유의 실험들(혹은 이보다 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엽기적인 실험들)이 인간과 DNA가 유사한 침팬지를 대상으로 행해졌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심지어는 돈벌이를 위해 실험에 희생된 침팬지는 님뿐만이 아니었다.
저자는 17세기 인간이 아프리카 밀림에서 침팬지의 무리를 발견하고 그들을 대륙으로 들여야 전시하고 사육하기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인간이 침팬지가 인간과 놀랍도록 유사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이후의 일들이 프로젝트 님의 실험체 님 침스키의 사례를 중심으로 전한다. 인간이 될 뻔했던 침팬지 님 침스키는 결국은 인간도, 침팬지도 되지 못했다. 실험이 실패한 것은 님의 야생성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무지함 때문이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침팬지를 실험체로 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님 침스키가 살았던 1970년대 보다는 덜 경악스러운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배경은 여전히 인간은 동물과는 차별되는 존재이며 인간 이외의 동물은 하등하므로 인간의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고전적인 관념에 지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일부의 동물 애호가들의 과격한 시위로는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인간이 될 뻔했던 침팬지, 님 침스키』는 감상에 젖는 책이 아니다. 시종일관 차분하게 프로젝트 님에 대해서, 실험체로 선택된 침팬지의 생애에 대해서 그리고 침팬지를 이용하는 실험들에 대해서 소개할 뿐이다. 이 책을 읽고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인간적인 실험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읽어낸 것은 인간의 대책 없는 오만함에 대한 혐오였다. 인간 스스로에 대해서조차도 무지하기 때문에 그 무지함을 다른 비인간종을 이용해 연구하려 하고, 그것에 대해 어떠한 자책감이나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오만함이 어떤 사건을 만들어 내는지 알려주는 아주 일반적인 예가 바로 님 침스키의 사례일 것이다.
“그래서 그 님이라고 하는 침팬지가 폭동이라도 일으키는 거야? 영화에서는 그러던데.”
실험이 중단되고 침팬지가 결국 보호소로 보내진다고 얘기하자 언니가 어느새 님 침스키를 영화의 주인공 시저와 동일시하며 뒷이야기를 물었다. 모른다고 대답했다. 언니가 한번 읽어보면 알 거라고. 그러자 언니가 시시하다며 자기도 영화 결말을 이야기 해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주말에는 DVD라도 빌려볼까, BTV에서 아직 그 영화 해주는지 모르겠다며 이야기 하다 보니 어느새 차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배가 많이 고팠다. 책을 생각하다가, 님 침스키와 닮은 침팬지가 나오는 그 영화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아 졌다. 그냥 보지 않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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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아들고서 한참을 생각했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으면 동물과 관련된 개인적 경험은 자연속의 먹이사슬같은 동물적 생태보다 더 잔혹한 일들이 많았기때문이다. '생명'이라는 말 앞에 얼마나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왔던가 하는 경험적 안타까움은 누구에게나 있을만치 자주 그리고 태연하게 벌어졌고 이어져왔다. 이성적이라는 말과 합리적이라는 말의 거부감은 그런 동물들의 생명을 '목적화'하고 '수단화' 하는데 크게 기여한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 그 감정을 또렷이 마주하게 할 프로젝트를 소개한 책이 있다. 인간의 '언어'에 대한 종우수성을 반박하고자, 순수한 연구목적 혹은 지식에 대한 이기적 열망으로 인간과 유사한 침팬지를 인간화하여 언어를 가르친다는 '님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패기가 충만하고 지적탐구심과 젊은 과학자의 의협심 그리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 부재의 객기마저 더해 진행된 이 프로젝트의 희생양은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린 침팬지 님이다. 이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음에도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어린 침팬지가 그저 자연히 제 영역에서 사는 이름없는 무명의 자연생명체이길 바랐다. 죽어나가는 연구실의 다른 동물들의 경우 이름대신 알수없는 일련번호가 붙고 실험에 이용되다가 '폐기'되는 현실에 비추어 나은 형편이 아닌가 하겠지만 책을 읽어나가면 읽어나갈수록 동물의 '인간화'에 대한 실험도 후자와 별 다를바 없을 정도로 잔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님은 언어적 기호수단인 수화를 하고 신문을 보고 인간아이처럼 옷을 입으며 학교를 다니고 생일파티를 열지만 그 모든것이 님을 위한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순화된 일상에서도 님은 충동적인 하지만 자연스러운 동물적 본능을 숨기지 않았으며 연구를 진행하는 이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을 안겨주게 된다. 자신들의 틀안에서 원하는 성과가 보이지 않자 그들은 님을 쉽게 외면하기에 이르른 것도 애초에 동물을 사람화 시키려는 그 시도는 너무도 큰 심리적 만족감을 담보로 시작했기에 초래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실험과정을 전반으로 님에 대한 애정으로 일관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단지 '도구'로써 마주한 인간들은 님을 동물적 수준에서 인간화로 격상시킨다는 착각에 이르고 실행함으로 인해 인간의 이성적 사고의 한계를 더욱 부각시키게 된다. 이성이라고 일컫는 지성은 생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음을 자백하며 유기하는 데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 비양심적인 합리성 또한 고백하는 꼴이 되고 만것이다. 감정을 '관찰'하며 일지에 남기는 그들의 눈에 님은 인간을 닮은 침팬지에 머물러 있다는 위선마저 명명백백히 드러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감정이 이입되는 대상은 님을 돌보는 인간들이 아니라 인간들의 보호와 교육이라고 일컫는 '폭력'에 노출된 님이었다. 님의 공격성 때문에 어떤 사람은 얼굴을 물어 뜯기고 집안의 가구가 부숴지고 행패로 인해 모든 것은 엉망이 되기도 했다. 이런 패악적 행태앞에 분명 행위자는 님이었지만 피해자가 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교도, 교화와 같은 단어에 포함된 폭력성이 동물적 본능, 생사의 본능에서 비롯된 폭력성과 같지 않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면 어느 것이 더욱 악의성을 담는지는 명백해진다.
인간이 될 뻔했던 침팬지라는 타이틀은 그러하기에 좋은 의미로 와닿지 않는다. 서커스단 공연에서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코끼리를 보면 처연해지는 이유와 같다. 인간의 우수한 혹은 열등한 부분을 규명하기 위해, 또는 인간을 위한 어떠한 증명을 위해 다른 종의 생명을 이용하는 행태는 합리적이라고 주장을 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인간적 이성을 뜻하지 않는다. 그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것 또한 인간을 우선시하는 오만함에서 기인하지만 그렇다고 앞선 과학자와 희생된 동물들의 실험으로 얻게된 그리고 내가 누리게 된 혜택에 대해서 부정할 용기도 없다. 단지 바라건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동물을 수단으로 삼는 행태를 인간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동등한 '생명'으로 바라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담담히 경과적 사실을 나열하며 저자는 감정적 단어를 언급하지 않으며 어떠한 개인적 판단도 하지 않고 님 프로젝트가 있기까지의 배경, 경과과정, 님 이외의 다른 침팬지들에 대한 보고를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드러냈다고 본다.
님에게 있어 시간이 가혹했을만치 인내의 시간이었지만 그가 남긴 행적과 그가 보여준 몇가지의 모습에서 그가 인간으로 되기위한 훈련으로 인해 인간적인 도출해냈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을 것이며 버려졌다는 감정'에 괴로워하는 것은 인간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을것이다. '인간적'이란 말에 좀 더 따스함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 외의 것들에게서 오는 게 아닌지 곰곰히 생각하게끔 만들어 준다. 님의 '인간적' 감정은 보편적 생명의 감정이라는 것을, 그것을 잊고 사는 것은 되려 인간이라는 것을, '동물적'이라는 단어의 어감은 생각보다 낮은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님이 수행했던 일련의 인간화행동이 마침내 문화적 지성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즈음 우리는 안타까운 결말을 마주한다. 본능을 억압하고 애초에 그렇게 '교화'되어 키워졌다 한들 그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기에, 자기답지 않음은 결국 수명의 반을 잠식했고 이리저리 떠돌며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운명을 살아야했던 님은 심장마비로 급작스럽게 떠난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인간의 오만함과 잔인함을 '인간적'의 한 면임을 우리는 분명히 인정해야하며 그것을 되폴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님을 알아야 한다. 님을 기억하며 짐지워진 책임감을 거부해서도 안된다는 깨달음에서 '인간적'이라는 말의 위험성을 동시에 경계해야 함을 지적한다. 물론 좋은 책은 그러한 교훈을 던지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깨닫게 도와줄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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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간이 될 뻔했던 침팬지 님침스키'라는 제목과 함께 침팬지가 자신의 이름을 쓰고 수화를 하고 신문을 보고 숟가락, 포크를 이용하여 식사를 하며 설겆이를 하는 일러스트로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럼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건데 과연 내용은 무엇일까? 눈치가 빠르다면 세계적인 언어학자 '놈 촘스키'의 이름과 한 끗다른 '님 침스키'라는 이름과 함께 표지의 일러스트만으로 이 책의 내용이 침팬지를 이용한 언어실험에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어릴때(생후 며칠내)부터 인간의 가정에서 키워진 침팬지에게 수화 환경을 조성해줌으로써 종간의 대화를 시도한 실험중 하나인 '님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히 '님 프로젝트'에 관련한 내용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유인원 언어연구의 배경과 님 프로젝트의 배경, 님의 출생과 성장과정, 프로젝트의 과정 및 프로젝트 이후의 님의 생활들을 통해 실험동물들의 삶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언어는 환경에 의해 습득가능하다는 '스키너파'와 언어는 인간의 타고난 능력이라는 '촘스키파'와의 대립에서 스키너파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 그래서 어머에게서 태어난지 며칠되지도 않아 인간의 가정에 입양되어 자신의 종족은 보지도 못한채 인간의 가정에서 인간처럼 키워진 님, 하지만 계속되는 인간들의 배신과 함께 프로젝트의 종료로 영장류연구소로 다시 돌아와 생전 보지 못했던 자신의 종족과의 새로운 삶을 살아야했고 나중에는 인간을 위한 약품개발을 위한 제약사로 팔려가 실험대상 동물이 되었다가 가까스로 되돌아온 후에는 텍사스의 블랙뷰티 목장에서 쓸쓸한 삶을 살다가 심장마비로 죽어간 님의 일생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라 불리는 언어, 인간만이 사용한다는 언어로 인해 우리 인간은 우등하고 동물은 열등하다는 인식으로 우리가 그들에게 참으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너무 많이 저지렀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우리의 목적때문에 인간세계와 아생의 세계에 한 발짝씩 걸친 침팬지는 어느 세계에서도 만족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들이 단지 인간과 가장 닮은 동물이라는 점 하나로 실험동물이 되어야 하는 그들의 삶또한 우리가 무엇으로 보상해주어야 할지... 물론 그 당시에 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였던 때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변병으로 돌리기엔 우리들이 그들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어찌보면 딱딱한 학술서로 저술될 수도 있었던 내용을 님의 드라마틱한 인생내용을 통해 재미와 함께 우리들에게 동물의 권리와 복지, 그리고 그들과 같이 나아가야할 우리들의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