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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공평한 것은 딱 하나 있다. 바로 죽음이다. 우리가 필멸의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잠시 그것을 망각하면서 살 뿐,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우리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의 죽음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 아마 자면서 죽는 걸 바라지 않을까. 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연명 치료를 받으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안락사의 문제가 생겨났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존엄사라는 이름의 안락사를 원한다. 물론 여기에는 윤리 문제가 필수적으로 수반되기 때문에 그 근원에 대해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스티븐 암스테르담은 아마 우리가 평소에는 외면하고 싶은 그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가상의 도시, 961법안이 통과되어 안락사를 원하는 이들은 모두 넴뷰탈을 통해 죽음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절차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안락사 절차를 번복하면 환자는 다시는 안락사를 요청할 수 없다. 예전에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던 에번이 등장해서 필드에 첫 투입되어 안락사 절차를 진행한다. 안락사를 원하는 젊은 가장 테디의 죽음 앞에서 가족들의 적대적인 감정을 받는 일은 정말 감정이 많이 소모되는 일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유리 같은 멘탈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아닐까.
에번의 어머니 비브는 안락사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아들을 ‘자살 도우미’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어머니 비브 역시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아들에게 언젠가 자신에게 그 절차가 필요해진다면 아무런 가책 없이 “마법의 약”을 사용하라고 주문한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안락사가 공식적으로 허용이 되었다고 해도 불가능할 일일 것이다. 원천적으로 가족은 안락사 어시스턴트에서 배제할 것이다. 아마 스티븐 암스테르담 작가는 이런 장치를 통해 결말 즈음에서 독자를 온통 혼란의 도가니탕 속으로 밀어 넣을 게 뻔하다.
하지만 이야기 구조가 그렇게 단순해서는 안되겠지. 에번이 맡은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게다가 그의 성적 정체성이 놀랍게도 스러플을 하는 게이 간호사라는 점이 더욱 충격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에번은 자신의 파트너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함구한다. 그렇다면 어머니 비브만이 이해가능하다는 것일까.
에번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 자살에 가까운 교통사고로 이승을 떠나시면서 남은 식구들이 먹고 살기에 충분한 보험금을 설계하고 가드레일을 들이 받았다. 과연 그 사고가 보험금을 받기 위한 고의적 자살인지 사고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에번이 그렇게 추측할 따름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극한의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테디나 아이리스에게 자신을 대입해 본다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자명하다. 연명치료를 한다고 해서 다시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길로 에둘러 가더라도 결말은 죽음이다. 그렇다면 예의 고통을 줄이는 게 좀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나 자신의 경우는 그렇다치고, 사랑하는 가족의 경우는 또 어떤가. 치매나 불치병 환자들을 오래 돌본 사람들이 경제적 그리고 육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뉴스들이 미디어에 소개된다. 그리고 죽음 자체는 공평할지 몰라도,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은 그렇지 못하다. 샌퍼드 씨처럼 부유하는 사람은 VIP 개인 병실을 이용하면서 최상의 의료 서비스와 말동무까지 얻으니 말이다. 부에 따른 계급 이슈에 이르기까지 아마 독서 모임의 책이라면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전개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결론은 잘 모르겠다이다. 사실 아직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기도 하고, 존재의 소멸이라는 점이 아마 두려운 모양이다. 아마 모든 이들이 평안한 그런 죽음을 원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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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 웨이 아웃 >의 스티븐 암스테르담 작가님은 전직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러한지 책엔 안락사 어시스던트와 그 외 간호사들, 그리고 환자와 가족들의 마음이 그대로 잘 표현된 것 같다. 읽는 내내 에번의 마음도, 그리고 환자와 그 보호자의 마음도 무척 맘에 와닿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덤덤한 에번의 시선으로 담겨진 이야기는 무척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 나라에도 안락사가 합법화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 나 역시 그러한 때가 오면 스스로가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뒤집어 가족에게 나는 안락사를 허락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많은 혼란에 빠진다. 물론, 환자가 정말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가족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에번도 그러했다. 어머니는 비정형성 파킨슨병을을 앓고 있다. 얼결에 시작하게 된 안락사 어시스던트는 그저 죽고자 하는 환자에게 약물만 전달해주면 되는 일로 그칠 수 없다. 아무리 모르는 타인이라고 할지언정, 마시면 몇 분 후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약물을 상대에게 건내면서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을 수는 없다. 감정을 배제하길 조언받지만, 인간으로서,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가족들의 요동치는 감정변화까지 감당해야 하니 그 스트레스는 말로 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나날이 쇠약해지며 어머니가 안락사를 원한다하여 그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도왔듯이 어머니의 죽음을 마냥 도울 수는 없다.
스스로에 관해서나 그저 공동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안락사는 합법화되어야 하고, 적용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이 들지마는 나의 가족 일이 되었을 때의 입장은 또 다르다. 그러한 생각들이 에번을 바라보면서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던 듯하다. 읽으면서 매우 마음이 무겁기도, 혼란스럽기도 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나의 죽음, 타인의 죽음, 가족의 죽음... 이 모두 각자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감정이 일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러함을 에번의 모습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어쩐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안락사가 합법화가 되고, 그것이 진정 맞는 행위라고 할지라도, 어쩌면 자신의 안락한 죽음(?)을 위하여 타인에게 고통과 영혼의 상처를 남기는 일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아무리 고통받는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고 할지언정, 누군가의 죽음을 돕는다는 건 보통의 인간으로 하기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영혼의 생채기를 전혀 입지 않고, 타인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그저 일이라고 생각하고 타인의 죽음을 돕는 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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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늘 무겁게 다가옵니다. <이지 웨이 아웃>은 가상의 도시에서 '961 법안'이 통과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안락사가 합법화 된다면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어나게 될 일. 주인공 에번은 안락사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된 남자 간호사입니다. 처음 맡은 환자는 41세 건축업자 테디, 현재 치아를 제외한 모든 부위에 암이 전이된 상태로 안락사를 선택합니다. 원래 테디를 담당했던 간호사는 레나였는데, 테디가 안락사를 결정하자 이메일을 통해 그만두겠다는 뜻을 알려왔고 레나의 후임으로 에번이 맡게 된 겁니다. 에번은 지침서에 명시된 대로 넴뷰탈이라는 약물이 든 컵을 들고 있습니다. 테디의 아내와 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에번은 절차에 따른 질문을 합니다. "오늘 죽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이시죠?" (16p) 이때 둘째 딸이 평생 잊지 못할 사나운 눈초리로 에번을 노려보고, 부인은 세상을 원망하듯 입술을 깨물다가 못 하겠다고 소리칩니다. 절차를 중단시킬 만한 갈등상황이라서 에번은 가족 모두가 동의해야 계속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테디는 "약물을 마시길 원합니다. 죽고 싶어요. 오늘. 지금 당장이요."라고 말합니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르고, 에번이 최종 고지사항을 말하기 시작하자 딸들이 다시 사납게 노려봅니다. 에번은 약물이 담긴 컵을 들고 침대로 다가갔다 물러섰다 하는 과정에서 그만 컵을 쏟고 맙니다. 이건 절차상 엄청난 실수라서 당연히 문서로 보고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전과정은 촬영되고 있으나 만약 책임자 네티가 지켜보는 상황이 아니라면 넴뷰탈을 받는 일은 무척 까다롭고 시간이 걸립니다. 당황하는 에번은 쫓기듯 병실을 나오고, 다행히 네티가 약물 컵을 들고 나타납니다. 네티의 도움으로 절차가 다시 진행되고, 이번에는 테디가 직접 에번이 든 컵을 건네받아 천천히 한 번에 마십니다. 테디는 부인과 딸들을 달래면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됩니다. 말기 환자가 스스로 아름다운 죽음을 선택했다고 해도, 환자의 가족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소란이 벌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안락사는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주제입니다. 갈수록 고령 인구가 증가하면서 연명 치료와 안락사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소설을 쓴 작가 스티븐 암스테르담은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라고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문제를 던집니다. 말기 환자가 겪는 끔찍한 고통과 죽음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과연 안락사는 합법적 절차가 가능한가. 주인공 에번은 안락사 어시스턴트이자 노모가 요양원에 머물기 때문에 양측 입장을 동시에 겪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이 옳은 결정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읽는 내내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할 수밖에 없었고, 끝까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가상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인 내용이라서 머리가 지끈거렸던 <이지 웨이 아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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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출판사 / 이지 웨이 아웃 / 스티븐 암스테르담 의미없는 삶을 이어가느냐, 이대로 삶을 끝낼 것이냐. 젊음 앞에 산재해있는 문제들로 안락사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었다. 나는 언제나 젊을 것 같았고 며칠밤을 새도 크게 힘든게 없었을 정도로 체력이 좋았으니 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자체도 없었던 것 같다. 안락사를 주제로 다룬 '미 비포 유'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도 조금씩 자각을 했을 뿐이지 크게 와닿진 않았던 것 같다. 안락사란 그저 나와는 다른 멀고 먼 이야기로 다가와졌던게 사실이다. 그러다 요양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뇌신경을 다쳐 인지는 물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환자들을 보게 되었고 안락사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만약 내가 인지도,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한 사고를 당한다면 그런 상태로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지만 한편으론 내가 만약 가족이라면 내 눈을 바라보고 눈을 맞춰주지 않아도, 나에게 예전처럼 말을 하지 못해도 안락사를 통해 이별을 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하기에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란은 아직도 뜨겁고 사실 두 입장 모두 고개가 끄덕거려질 수 밖에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한가지로 답을 낸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위험한 발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지 웨이 아웃>은 그런 안락사란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복잡한 과정을 통해 안락사 대상자로 선정된 961명, 이들에게는 넴뷰탈이라는 약이 지급되고 이 과정에서 대상자들의 죽음을 돕는 안락사 어시스턴트라는 독특한 직업의 '에반'이 등장한다. 이미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했던 그이기에 죽음 앞에 덤덤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점차 자신이 타인의 죽음 앞에 무덤덤해지는 것도 인간으로 받아들이기 꽤나 힘든 경험임을 에반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됐던 것 같다. 타인의 죽음만을 보던 에반 앞에 파킨스병에 걸린 어머니가 안락사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가 선택한 안락사 어시스턴트라는 직업은 어머니 앞에서 흔들리게 된다. 직업으로 삼으며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들을 보낼 때 에반이 느꼈던 감정은 자신을 낳아 사랑으로 키워준 어머니 앞에 적용될 수가 없었으니 내가 당사자가 됐을 때와 그저 지켜보는 입장이었을 때의 감정 변화가 에반을 통해 잘 전달이 되어 역시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는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주제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던 것 같다. 안락사와는 느낌은 다르지만 요양병원에서 환자들을 보며 드는 다양한 생각과 그럼에도 결론을 쉽게 내지 못하는 답들에 대해 드는 고민들이 에반을 통해 더욱 공감되었던 것 같아 기억에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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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도시에서 통과된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삶에 대한 미래나 꿈이 없는 사람들은 편안한 죽음을 원합니다. 물론 가족들은 반대하거나 미련과 후회 속에 당사자의 선택에 대한 동의를 망설이게 되죠. 그로 인해 갈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가에 대한 실망감을 보이고, 이제 그만 편하게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주인공 '에번'은 안락사 어시스턴트인데요, 처음엔 절차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두렵기만 해요. 절차 방법은 넴뷰탈이라는 액체가 들은 컵을 건네고 죽음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락사를 원하는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절대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고 맙니다. 바로 자신의 감정이 입되는 과정인데요, 죽고 싶은 환자가 컵을 들어 마시지 못할 때에도 절대 손을 대면 안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전 안락사를 찬성하는 쪽이었는데, 이 책을 보니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어요. 떠나는 사람, 남는 가족들의 안타까움, 사망 후 처리해야 할 여러 절차들과 장기 기증까지. 전반적인 내용은 이러하지만 주인공을 통해서 직업적인 시선과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극명한 점은 인상 깊었습니다. 환자로 대할 때와 내 가족일 때의 차이는 정말ㅠㅠ 주인이 느끼는 바라보는 고통과 직접 겪는 고통의 차이가 리얼하게 잘 드러나 있었어요. 인생과 삶이 주는 고뇌도 계속 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 속에서 '에번'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고, 풀 곳이 절실해집니다. 그는 게이에요. 중반쯤에 나오는 3p 장면에서 저는 다소 충격적이었는데요,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고정관념은 없지만 안락사라는 무거운 내용 안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사랑 방식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진지하게 고백해오는 장면에서 주인공은 오히려 물러납니다. 그리고 후회하죠.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도, 함께 하고 싶다고도 못합니다.
어머니와의 애증 관계와 사랑하는 연인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일상에서 마주하는 죽음의 현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고통과 괴로움.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였던 저자의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실감 나고 와닿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의 삶에 감사함을 더할 수 있게 되는 동기가 하나 더 늘었네요.
이걸 드시면 몇 분 안에 잠이 들고 의식을 잃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소생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응급처치도 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은 사망하게 됩니다. ㅡ원하시는 게 이게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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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죽음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나에게 가까이 있음을 아니 늘 내 옆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것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책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그들을 돕는 '어시스턴트' 에반이 있다. 에반은 어린시절 (자살을 가장한)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고 현재 파킨슨 병이 진행 중인 어머니와 살고 있다. 자살 어시스턴트인 에반은 원하는 사람들에 한에서 조건을 갖춘 사람들에 한에서 '넴뷰탈'이라는 약을 처방하고 그것을 환자 스스로 마셔 삶을 종결하는 것을 돕는다. 이 과정은 철저한 관리를 통해 진행되는 일이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에반은 새로운 루트로 재스퍼가 되기를 희망한다.불법적인 자살어시스턴트. 그들은 의뢰자에게 소정의 돈을 받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약(넴뷰탈)을 전해주며 그들의 죽음의 과정을 지켜봐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한 에반이라도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고통없는 죽음을 원했던 어머니는 '넴뷰탈'을 구매해 자신의 마지막을 아들이 함께 도와주길 바라지만, 에반은 결국 어머니를 위한 '지극정성'을 택한다. 존엄사에 대한 이슈는 잔잔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 사회에서도 나타난다. 생명에 대한 권리는 어디까지 일까? 생명의 시작을 선택할 권리가 없듯 생명을 끝낼 권리도 없는 것은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러한 생각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나오는 사람들처럼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경우가 생긴다면 그리고 그런 일이 나 뿐 아니라 나의 가족 중에 생긴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사는게 지옥같은 고통이라도 살아가는게 맞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사소통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식물인간의 경우 그들이 살아가는 그 시간이 정말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환자의 가족들의 욕심과 죄책감으로 빚어진 결과는 아닐까? 존엄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아직도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 가능한 삶의 정의는 없듯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 가능한 죽음의 정의도 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녀가 삶의 마지막에 식음을 전폐한 이유는 본인의 삶과 죽음을 본인이 결정하기 위함이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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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웨이 아웃 저자 스티븐 암스테르담 장편소설책이 도착했다. 이 책은 굉장히 신선한 소재로 풀어져있는데,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저자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풀어낸 인간이 선택한 죽음, 바로 안락사에 관한 소설이다. 안락사를 생각하면서 느껴지는건 더 불행하지 않게 조금 더 행복하게 보내주자라는 의미가 느껴진다. 사람에게 더 아프지 않은 좀 더 행복한 죽음을 선택하는것 , 표면적으로 볼땐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내용으로 풀어져 있을지 기대하며 읽기시작했다. 주인공은 에번, 에번은 안락사 어시스턴트이면서 게이인 남성이다. 이 책의 주를 이루는 안락사는 961법안이 통과되었다는 가상의 도시를 설정으로 풀어져 있는데, 수많은 확인과 엄격한 통제와 본인의 확신에서 안락사 대상자들을 분류하여 적합한 환자에게 넴퓨탈이라는 약물을 전해 주고 그 옆에서 강제도 주입도 아닌 그저 옆에서 죽음을 보고 있는 어시스턴트의 일, 그것이 에번이 일하는 것이다. "안락사 추천은 절차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961법안의 주요 골자대로라면 환자가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안락사 논의를 시작하려면 반드시 각기 다른 상황에서 구두로 두 번 이상 안락사를 요청한 기록이 있어야 했고, 요청이 자발적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 p104 안락사라는 건 환자의 선택일 뿐, 어시스턴트가 강제가 되어선 안되며, 그들의 죽음에 관여해서도 안된다는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인간으로선 참으로 하기 힘든 일을 접하게 된 에버, 안락사를 선택한 환자들과 그들 삶의 이야기, "네 약물을 마시고 죽기를 바랍니다." p172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며 안락사 어시스턴트의 일을 알아가는 에버, 규칙에 대해 또 다른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안락사 어시스턴트의 일은 생명의 존엄성, 환자의 권리에서 끊임없이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엄마 비브, 에버 그리고 아버지의 사고 이야기 게이 커플 론, 사이먼과 에버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있는데 , 묵직한 죽음속에 블랙코미디를 겸비한 내용들이라 조금은 숨쉬면서 읽었던 전개였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죽음에 관한 본질에 대해 이토록 잘 풀어낸 소설이 있었나 싶다. 진지함과 경건함으로 읽던 내 모습에 이 책의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언제 어디서든 삶을 채울 걸 찾아야 해, 현실에 안주해선 안돼" p197 읽는 내내 실제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사회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내 주위의 사람들이 안락사를 선택한다면 나의 선택은 어느 쪽으로 향할까? 독자 스스로 답을 찾길 원하다는 작가의 글엔 무언가 쉽게 대답할 수가 없는 질문이 담겨있었다. 수많은 고민과 죽음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이 책, 앞으로 죽음을 많이 접할 나이가 되어가는 내가 조금은 더 넓게 죽음을 바라본 좋은 경험과 조금은 성숙한 시야를 트게 된 이 책을 적극 추천하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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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도시에서 ‘961법안’이 통과된다. 이른바 난치병 및 암 말기 환자 961명을 대상으로 한 안락사 추천 법안이다. 961이 통과되자, 머시 병원에서는 이에 맞춰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엄격한 프로토콜을 거쳐 안락사 대상에 오른 환자들은 ‘넴뷰탈’이라는 약물을 마시고 죽음을 맞는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완화치료를 담당하던 남자 간호사 에번은 이 프로그램에 안락사 어시스턴트로 지원한다. 그는 병실에서 진행되는 대화를 녹취하고, 환자와 가족의 서명을 받고, 넴뷰탈이 담긴 컵을 환자에게 건넨다. 그렇게 마지막 ‘의식’을 치르고 나면, 시신을 정리해 안치소로 보내고 사후보고서를 작성한다. “내 차례가 되면 네가 그 마법의 약을 가져다줘야 해.” 죽음을 향해 속도를 높이는 사람들, 그중에 엄마 ‘비브’가 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위와 같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사실은 안락사보다는 자살 도우미이다. 작중의 사약(?)인 '넴뷰탈'은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당사자의 손으로 직접 마셔야 한다. 하지만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환자들에 한해서 처방과 동의서에 의해 진행되니까 안락사도 틀린 말은 아니다. 주인공인 에번은 안락사 어시스턴트로써 스스로 죽음을 결정한 사람들에게 치사량의 약물을 가져다주고 지켜보는 일을 하지만 첫 번째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죄책감보다 영웅 심리에 가까운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빨리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번에게는 어릴 적 (자살인지 사고인지 불분명한) 아빠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았고, 엄마와 수시로 이곳저곳 옮겨가며 살아온 것 때문에 어느 한 곳이나 사람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다. 그리고 양성애자이고, 현재는 남자 두 명과 '쓰러플'(세 명이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관계이다. 소수자 중의 소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에번의 심리는 불안정해 보인다. 두 남자와 주기적으로 관계도 가지고 (굉장히! 적나라하게 묘사되므로 호모포비아거나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이 점을 고려하길 바란다) 그들 또한 에번과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에번은 힘들 때 둘을 떠올리면서도 먼저 찾아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제일 힘든 순간에는 둘을 떠날 계획을 한다. 에번의 엄마인 비브는 조금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느껴졌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쾌활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중년이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그런 면에서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에 나오는 엄마랑 비슷한 느낌을 준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비브는, 자신의 몸 상태가 정말로 나빠진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아들에게 '넴뷰탈'을 받기를 원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안락사 당사자와 유가족들은 정말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가족들 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당사자는 빨리 고통을 끝내고 싶어 하지만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자며 우는 유가족, 약을 통한 죽음을 지켜보고 자신도 저렇게 죽고 싶다며 얼굴에 화색이 도는 사람... 만약 이게 내 일이 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일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결말을 읽고, 뻔하지만 죽음은 멀리서 볼 때와 내 주변에 일어날 때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가 합법화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나도 그중 하나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가족 모두의 서명을 받고, 약물이 오남용되지 않게 관리하는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 말이다. 작가의 본업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작중에서 환자를 직업적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은 종종 눈앞의 죽음에 대해 차갑고 무관심해 보인다. 심지어 죽음 앞에서 '이 케이스를 끝내면 내가 벌게 될 돈'을 계산하기도 한다. 이 점이 정말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식하지도 못하는 건강함'이라는 말이 초, 중, 후반에 걸쳐서 여러 번 반복되는 걸 보면 작가는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전체적으로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대부분 이해가 가서 좋았다. '나도 저 사람들 중 하나겠지',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따라갈 수 있었다. 최근에 본 어떤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감정 기복이 심한데 전혀 이해도 되지 않고 이입도 되지 않아서 그냥 감정조절장애가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고 담백한 문체로 감정을 충분히 묘사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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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건강하게 100세를 살다가 아프지 않고 잠자다 죽고픈 마음은 매한가지 일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주변의 많은 사람이 갖가지 질병으로 오랜 병으로 병마와 힘겹게 싸우다 죽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것을 볼때마다 나의 죽음은 저러지 말고 나자신과 그리고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지 말아야 한텐데라는 생각을 가끔씩 하곤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할때마다 일부나라에서 허용하고 있는 안락사가 국내에도 허용된다면 좋지않을까 생각해보곤 했는데, 국내에서 얼마전부터 안락사가 아닌 치료할 수 없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해서 고통을 주는 것을 중단하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존엄사를 허용해 시행하고 있긴 하죠. 국내도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 지고 있긴 하다고 하는데, 병마와 고통스럽게 싸우지만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면 그 고통은 상상이상일 것입니다. 이럴때에는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전 무조건 찬성입니다. 이번에 만난 소설 [이제 웨이 아웃]은 바로 이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말기 환자들을 대상, 약물로 몇 분 안에 환자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락사 어시스턴트입니다. 안락사를 결정하고 약물을 먹고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약물을 먹은 후에는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게 된다고 해도 환자를 소생 시키기 위한 어떠한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안락사 어시스턴트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예기치 못한 직원의 퇴사로 인해 결원이 발생, 임상 간호사였던 그는 지원을 하게 됩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채로 투입. 그러다 보니 일처리를 메뉴얼대로 진행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됩니다. 일을 하면서 환자와 가족에게 하지 말아야 할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녹화가 되고 수행능력 평가를 받습니다. 환자와 가족들이 준비됐든 안됐든 상관없이 약물을 건네주기만 하라는 상사는 그의 실수를 덮어주긴하지만 일을 하면서 그는 자꾸만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일은 결국 스트레스가 되고 힘들어하던 그는 결국 불법적인 어시스턴트가 되어 많은 죽음을 돕게 됩니다. 그러던 중 파킨슨병에 걸린 어머니는 자신의 상태를 잘알기 때문에 안락사를 원하면서 환자의 죽음을 돕던 그는 혼란을 겪습니다. 그는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안락사에 이르게 할것인지, 아니면 다른 상황을 택할 것인지를 보여주며 안락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소설 [이지 웨이 아웃]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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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웨이 아웃>은 가상의 도시에서 '961법'이 합법화된 후 안락사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시스턴트'인 에번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1인칭 소설입니다. 이 책에서 안락사는 인간의 목숨을 약물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끊는 행위를 뜻하는데요, 아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락사는 이 '적극적 안락사'일 듯합니다.
"말씀드렸던 그 약물입니다... 이걸 드시면 몇 분 안에 잠이 들고 의식을 잃습니다. 그리고 3~4분 정도 지나면 심장이 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소생시키기 위한 어떤 응급처치도 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을 사망하게 됩니다. 그동안 가족들과 저는 이곳에 함께 머물면서 당신이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도울 겁니다. 원하시는 게 이게 맞습니까?"(11쪽)
<이지 웨이 아웃>은 기존 영화에서 봐왔던 안락사와는 조금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뭐랄까... 건조함? 네, 맞아요, 무척 '건조한' 감성을 느끼게 합니다. 인간의 목숨을 다루면서도 그저 직업적으로 건조한 에번의 태도에 묘한 괴리감이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 듭니다. 주인공이자 어시스턴트인 에반은, 까다로운 선별 과정을 거쳐 안락사 신청이 받아들여진 환자들에게 '잘 죽을' 수 있도록 다독이고, '약물'을 전달하는 일을 하는 간호사입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친을 잃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파킨스 병에 걸린 어머니 비브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었죠. 그리고 비브는 항상 농담인듯 진담인듯 '그날이 오면 나에게 네가 컵(넴뷰탈이 담긴)을 다오.'라고 말하곤 했었습니다.
고통으로 울부짖던 그녀의 신음 소리에 대한 기억과 평소 불붙은 차 안에서 아버지는 의식이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나를 이 일에 지원하게 했다. 과연 편안한 죽음을 마다할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55쪽)
인간은 그 누구에게도 죽음을 권유할 수는 없으며, 그 누구도 타인의 죽음을 선택해 줄수 없습니다. 죽음과 고통이란 누구에게나 두려운 법이지만 피할수 없는 외통수길입니다. 그 누군들 편안하고 안락한 죽음을 원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내가 유일하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목숨 뿐이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지 웨이 아웃>에서도 안락사를 선택한 환자들은 스스로 약을 마셔야 하며, 만일 어시스턴트가 그 과정에 관여하게 된다면 '살인'이라는 굴레를 벗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죽음을 선택했다고 해도 근육 이상으로 컵을 떨어뜨린다면, '자의'로 약을 마실 수 없다면 그 안락사는 무효가 되어 지리한 신청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환자가 살아 있을지는 미지수지만요.
961법안은 아무나 쉽게 죽음을 맞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당신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입니까? 당신이 죽는 모습을 상상해보셨나요? 당신이 세상을 떠난 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당연히 '젠장'같은 말이 먼저 튀어나올테지만, 일단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로 이어졌다.(17쪽)
<이지 웨이 아웃>은 에반의 독특한 직업과 너무나도 평범한 생활의 한편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삶속엔 언제나 죽음이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타인의 죽음 앞에 무덤덤한 에덤의 모습이 '나와 다른 게 뭐지?'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하지만 그것이 '나'의 일로 닥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요? 내 눈 앞에 불치병으로 고통 받는 가족이 있다면? 그럼 과연 저는 넴뷰탈을 건낼 수 있을까요? 내 가족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은 다른 것일까요?
에반의 일상이 너무나도 건조해서 저 조차도 등장하는 안락사 신청자들에게 무덤덤한 시선을 보내게 된 소설, <이지 웨이 아웃>이었습니다.
당신은 어시스턴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그날 당신의 기분이 슬프건 혐오감으로 가득하건 그런 건 상관없어요. 환자와 가족들이 준비됐든 안 됐든 상관없긴 마찬가지고요. 감정이입을 줄이고 적당히 연기해야 해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거들기만 하는 거죠. 이 말이 분명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거에요. 우리는 컵을 건네주는 일 외에는 거의 필요 없는 존재들이죠.(9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