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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선비, 학산(鶴山) 신돈복(辛敦復, 1692~1779)이 보고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기록한 <학산한언(鶴山閑言)>의 일부다. 저자인 신돈복은 24세(1715년)에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했지만, 71세(1762년)에야 종9품 벼슬인 선릉참봉(宣陵參奉)을 제수 받고 73세(1764년)에 음직(蔭職)1)으로 종8품 벼슬인 남도봉사(南都奉事)를 지낼 정도로 벼슬 운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30세(1723년)부터 68세(1759년)까지 낯설고 신기한 이야기, 즉 스스로 ‘시시한 이야기[閑言]’라고 칭한 것들을 모아, 이를 정리하여 <학산한언>이라 이름 붙였다.
여기에는 신선(神仙)의 사적(事績)은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신비롭고 기이한 각종 현상처럼 유학자라면 기겁할 얘기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나서 그 이유를 당당하게 ‘이상한 것, 낯선 것’이라는 제목의 글로 남겼다. “공자께서 ‘괴이함’과 ‘무력’과 ‘패란’과 ‘귀신’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칠 만한 게 못 되기 때문일 터이다. 천지 사이엔 없는 게 없다. 그런데 그 중 익숙하게 보이는 것들만 정상이라 하고 자주 안 보이는 것은 이상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태평광기>를 지을 때 재상 이방(李昉) 등은 모두 이름난 신하였다. 천하 고금의 일을 널리 수집하여 기록하고 편집하여 바친 것이지, 어찌 잡스러운 일을 갖고 임금을 인도한 것이겠는가? 임금으로 하여금 천지 사이의 인정(人情)·물리(物理)·유명(幽明)·변화를 두루 알아 문밖을 나서지 않고서도 모든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니, 그 뜻이 깊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관건은 예(禮)를 갖추어 요약하는가 이다.2)”라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바로 이 책의 정체성이 담긴 부분이다.
나아가 그는 ‘귀신은 있다’라는 글에서 “주자(朱子)는, “사람이 죽으면 그 기운은 곧바로 흩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제사에서 귀신과 교감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 그런데 세속에서는 귀신이 없다는 게 정론(正論)이라고 함부로 말한다. 이것이 어떻게 진정한 앎이겠는가?3)”라고 했다. 이는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절대시했던 주자(朱子)의 말을 들어 “ ‘괴이함’과 ‘무력’, ‘패란(悖亂)’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귀신’은 조물주의 자취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설명4)(한)” 주자(朱子)의 주장을 반박한 셈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18세기 조선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쓴 부분에는 유학자로서의 자세가 짙게 드러나 있다. 예를 들면, <춘향전>이 떠오르는 열녀(烈女) ‘길정녀’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 ‘길정(吉貞)’이 서녀(庶女)와 고아라는 이중의 족쇄를 차고 하늘이 점지해 준 인연인 서생 신명희(申命熙)의 첩이 된다. 하지만 남편이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상태에서 그녀의 숙부의 수작에 휘말려 신관 사또의 첩이 될 운명에 처한다. 그러나 그녀는 칼을 들고 이에 격렬하게 저항한 끝에 돌아온 남편과 백년해로하게 된다.
이보다 더 유교적 가치관이 강조된 ‘호랑이 만난 무인’ 이야기에 이르면,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개연성을 말아먹고, 서사 구조도 파괴한다. 인동(仁洞)의 무인이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호랑(虎狼)이라는 산적에 의해 말에서 끌어내려지고 가슴팍을 밟혔으며 장검(長劍)에 위협까지 받았다. 알고 보니 과거 무인이 어렸을 때 화를 내어 여종을 매질하다가 죽였는데, 호랑의 모친이 바로 그 여종이었다. 그러니 호랑이 어머니의 복수를 하려고 무인을 죽이려고 한 것까지는 개연성이 충분했다. 은(恩)과 원(怨) 사이에 갈등을 겪다가 무인을 살려주었다는 결말이었다면 이해가 가지만, 갑자기 주인의 목에 종복(從僕)이 칼을 겨눴다는 이유로 자결하는 것은 아무래도 뜬금없는 전개요, 소위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제가 듣기로 주인님께선 제 어미를 죽이셨지만 돌아서서 후회하시고 매 기일마다 음식을 차려 제사를 지내 주셨다 했습니다. 이 은혜 또한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인이 노비를 죽인 일에 어찌 노비가 보복을 한단 말입니까? 그저 마음에 맺힌 깊은 설움을 한 번쯤 씻어 내고 싶었습니다. 지금 벌써 주인님의 목을 조르고 시퍼런 칼을 휘둘렀으니, 주인님을 해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한결 풀렸습니다. 노비가 되어 주인을 능멸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죄는 용서받기 어렵겠지요. 쉰네는 이제 주인님 앞에서 죽겠습니다.5)” 어쩌면 이렇게 ‘정명(正名)’으로 대표되는 신분사회의 명분론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 책이 전해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기에는 기이(奇異)와 현실은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이지만 저자에게는 그것이 동일하게 비춰졌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에 이인(異人)과 신선(神仙)의 기이한 이야기와 일상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인간의 이야기가 같이 실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즉, “이 세계 너머의 존재들과 당면한 현실의 모습을 동시에 다루는 작업은 언뜻 모순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신돈복에게 이 둘은 앎의 지평을 넓힌다는 점에서 동일한 의미를 지녔다. 그는 낯선 것을 익숙하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기록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들의 시야를 넓히고자 했다.6)”
이러한 발상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신돈복은 “28세에 조선과 중국의 다양한 도가서를 참조하여 <단학지남(丹學指南)>을 엮었으며 이 책에서 유불선(儒佛仙)의 회통(回通)을 주장했다.7)” 뿐만 아니라 50여 종의 문헌을 참조하여 <후생록(厚生錄)>이라는 농서(農書)도 집필했다. 이처럼 신돈복은 귀신처럼 자주 안 보이는 존재뿐 아니라 현실세계에도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졌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두 가지는 굳이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눌 필요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편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여우의 시’라는 글에서 길 잃은 선비를 잘 대접한 과부 모녀를, 딸이 시 한수 잘 지었다고 도깨비장난을 하는 여우나 삵[살쾡이]의 변신으로 간주한 부분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물빛 깨끗하고 [水色淨] 산빛 아득해라 [山色遙] 절은 맑은 옥경 마주하고 [寺臨淸玉馨] 중은 저물녘 다리를 건너네 [僧渡夕陽橋] 심양에 배를 대니 기러기 드문드문 [舟泊?陽歸雁少] 동정호 단풍잎은 다 져서 쓸쓸하네 [洞庭楓葉暮蕭蕭]8) “스산하고 쓸쓸한 느낌이 묻어나는 시는 종종 ‘귀신의 시’라고 불렀다9)” [p. 42]고 하지만, 스산하고 쓸쓸한 느낌이 묻어나는 시를 지은 이가 한두 명이 아닌데, 그들이 전부 귀신이나 요괴란 말인가? 단지 나이가 어린 여자가 조속하게 이런 시를 지어서 여우나 살쾡이의 변신으로 간주했다면, 8세에 ‘팔세부시(八歲賦詩)10)’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이이(李珥, 1537~1584)도 사람이 아닌 귀신이나 요괴인가? 1) 조선시대의 경우, 2품 이상의 관료 혹은 실직(實職) 3품 관료의 아들, 조카, 손자, 사위, 동생에 한하여 음서(蔭敍)의 자격이 주어졌고, 이들도 문음취재(門蔭取材)라는 별도의 시험에 합격해야 관직을 받을 수 있었다. 2) 신돈복, <이상한 것, 낯선 것 - 학산한언 선집>, 정솔미 옮김, (돌베개, 2019), pp. 36~37 3) 신돈복, 앞의 책, p. 45 4) 신돈복, 앞의 책, p. 252 5) 신돈복, 앞의 책, p. 148 6) 신돈복, 앞의 책, p. 7 7) 신돈복, 앞의 책, p. 255 8) 신돈복, 앞의 책, p. 41 9) 신돈복, 앞의 책, p. 42 10) 林亭秋已晩 / 騷客意無窮 [숲에는 가을이 저물어 가매 / 시인의 시정은 그지없어라] 遠水連天碧 / 霜楓向日紅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 단풍은 햇빛 따라 불타올라라] 山吐孤輪月 / 江含萬里風 [산에는 둥근 달이 솟아오르고 / 강에는 끝없는 바람 어려라.] 塞鴻何處去 / 聲斷暮雲中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 저무는 구름 새로 소리 끊겨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