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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동안 잠을 설치는 밤이 많았다. 월요일 저녁 뒤늦게 보게 된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과 그 와중에 알게된 구하라의 소식 때문이었다. 지난 주 찾았던 Love Poem 콘서트에서 아이유는 힘겹게 설리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노래를 부르는 중간중간 그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며 함께 나누었던 추억들이 떠오르고, 공연에 찾아와 노래를 들어주던 날들이 문득문득 생각나 울먹였다. 머뭇거리는 침묵 속에 숨겨진 말들을, 감정을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알고싶다' 지난 편은 설리의 죽음에 대한 취재였다. 설리를 색다른 방법으로 추모하기 위해 '설리와 사귀는 사이었다.'는 허위사실을 했다는 한 유튜버는 '악플 정도로 힘들어할거라면 연예인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찾아간 악플러와 수백 개의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낸 신문사 그 누구도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몰랐다고 했다. 누군가는 '이정도는 견딜 줄' 알았다. 욕먹고 싶지 않으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이 정도'와 '그런 행동'이란 말 사이에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나의 질문에 친구는 문득 '사람들에게 인문학적 성찰이 부족한 게 아닐까?'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나는 왜 존재하는가?', '불완전한 사람들이 왜 이 세상에 존재할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인문학적 고민들을 하게된다.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세상의 목소리 가운데서도 그보다 가치있는 것들을 찾고, 슬픔에 빠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며, 스스로 반성하고 후회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들이 우리에게는 분명 있었는데. 몇 달전 회사 선배가 『돌봄 인문학 수업』을 출간했다. 여러 문학상 수상으로 바빴던 시기라 읽어보지 못하고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문득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육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나보다 약한 존재인 아이를 돌보고 양육하면서 스스로 갖고 있던 인문학적 질문들에 대해 답을 찾고 배워가는 과정을 쓴 글이었다. 자신보다 약한 생명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하나의 주체적인 인격으로 아이를 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이에게 자신과 다른 타인에 어떻게 이해하도록 가르쳐주어야 할지, 세상의 목소리와 달리 살아가는데 정말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가 때때로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서른이 다 되어서야 깨달았다. 내가 사랑받고 자라서 나의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향해서 화를 내기도 하고, 나와 다름을 틀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부족해보이고, 내 기준에 싫은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너무 귀한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식은 중요했다. 그 이후로 나는 왠만한 일에 화를 잘 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인터뷰한 한 악플러의 말이 생각난다. 사회적으로 모두 브라를 착용하는데 혼자 그렇지 않으니 욕을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세상은 때때로 우리에게 못되게 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말고는 삶에서 더 가치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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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인문학 수업 김희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육아를 통한 인문학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 어울리기는 커녕 접점조차 없어 보일 것 같은 두 분야라니. 그런데 읽다 보면서 매료가 되고 울컥하기도 하고 저도 모르게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킥킥거리는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어요. 물론 중간중간 아... 여기는 사회학과 심리학이 나오네.. 좀 재미는 없다...이런 부분도 없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만 무엇이 저로 하여금 이 책을 두 번 세 번씩 펴 보게 했는가를 혼자 곰곰 생각해 보면 역시 접근성의 용이..라는 측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봅니다. 스스로를 노산워킹맘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저자가 어쩐지 낯익어서 가만히 살펴보니 제가 즐겨보던 잡지 베스트 베이비에 글을 연재하셨더라구요 ㅎㅎ 베스트 베이비를 사면 주는 사은품이 잡지 가격보다 더 남는 장사다 싶어 열심히 사서 봤던 기억이 나요 ㅋㅋ 보면서 뭔가 정보를 엄청나게 얻었다기 보다는 밖으로 나가기 어려웠던 시절 하나의 소통의 창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서른여덟살에 딸을 나은 저자의 서문은 시작부터 굉장히 공감이 갑니다.
정말 너무나 공감이 가는 말 아닌가요. 생각해 보면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가 그저 막막하게만 여겨질 정도로... 아파서 보채는 아이를 끌어안고 밤새 서성이다가 (앉으면 다시 깨서 고통으로 보채는 아이 때문에 계속 서 있고) 아이가 지쳐서 떨어지면 저도 의자에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로 비스듬히 기대어 꾸벅꾸벅 졸다가 아이가 다시 울면 다시 일어서서 몸을 흔들며 아이를 달래고.. 그렇게 한 아이가 아프다가 나으면 다른 아이가 아프고 아이와 함께 쪽잠을 자고 정말 지쳐서 쓰러져 자는데도 아이가 엥 하는 소리만 내어도 정말 번쩍하고 일어나 순식간에 아이에게 달려가는 놀라운 그 순간이 큰 아이를 낳고나서 우리 막둥이가 6살이 되기까지 12년을 해 왔다는 사실이 조금은 말도 안되는 것처럼 느껴지긴 해요. 그런데 돌봄 인문학 수업은 단순히 아이를 키우는 삶의 소소한 기쁨이나 슬픔 감동과 분노를 담은 이야기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를 넘어서서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적 사고를 접합해서 내 삶을 조금 더 들여다 보게 하는 놀라움이 있는 책이에요. 저는 일차원적인 사람이어서 딱 그 순간에서 그치고 마는데 저자가 연결시키는 부분을 보면 오...이렇게도 가는구나 싶어 놀랍기 그지 없어요.
저자가 책 뒤쪽에 언급한 것 처럼 엄마가 되고 나니 부동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집값을 결정하는 원인 중 하나가 학군과 학원가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한국 사회에서 (다른 나라에서도 그럴 듯)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로 한국 사회에서는 이 육아의 문제를 사회 전체가 함께 나누고 해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이는 것도 있어요. 다자녀 다둥이 맘들이 좀 더 지원해 주면 좋겠다.. 이런 글들을 보면 댓글에는 감당도 못할 것 뭐 그렇게 많이 낳아놓고는 징징 거리냐.. 이런 비아냥거림이 늘 등장하고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기사 밑에는 결혼하기도 어렵고 아이 낳아서 키우기엔 미래가 안 보인다는 글들이 늘 단골처럼 보이는 것이 현실.... 그런데 저자가 책 사이사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이를 낳지 않아도 이 책을 읽어보면서 함께 생각을 해 보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많이 들어 있어요. 단순히 아이를 키우는 것은 힘들고 돈이 많이 들어!! 이런 징징거림을 떠나서 어떤 '학'과 연결지어서 보여주는 저자의 깨달음이 실린 통찰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모든 장에서 공감이 되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리'가 있지만 잠에 대한 이야기 하나. "우리는 매일 아침 죽음에서 깨어난다" 저희 학교 선생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정말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가시면서 오늘 하루가 또 나에게 주어졌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신다고 해요. 아이들이 잠을 자기 싫어 보채는 이유 어둠이 싫다고 우는 이유 아직 연습이 부족해 내일 다시 깨어나 이 세계로 돌아올지 확신할 수 없는 존재에게 잠은 충분히 두려운 일일 수 있고 그래서 매일 아침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는 기적 같은 순간이라고.. 다이앤 애커맨의 새벽의 인문학.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미뤄두었던 책들인데 이번에 다시 한 번 머리에 기억해 둡니다. 꼭 읽어볼 것!! 그리고....이 한 마디. 아기는, 그리고 세상의 모든 중요한 일은 결코 합리성을 따르지 않는다. 아악!!!!!! 완전 공감되지 않습니까...ㅠㅠㅠ 너무 공감이 되어서 슬퍼요.. 뭐 이건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고통들 가운데서 특히 가부장제의 억압 하에 힘겨운 삶을 살아온 여성이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분노를 느낀다는 부분, 페르페포테와 데메테르 여신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이 분노. 원형적인 분노의 에너지.. 정말 맘카페의 엄마들의 토로를 보면 시월드에 대한 이야기 (저희 시부모님은 좋으신 분들인데도 저도 할 이야기는 많아요...ㅠㅠ) 이 중독되는 강렬한 감정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고백은 저에게 어떻게 하라고 강요하는 부분이 전혀 없는데도 혼자서 뜨끔하더니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반성의 순간을 가져오네요. 그렇게 승화시키려는 마음을 가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 부분에 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 (제 기억으로는 이 분 조선 여행을 하시고 여행기를 남기신 분)가 이 땅의 조선 여인들을 보고 제기했다는 의문의 시의성을 보면 또 아이고 맞아. 이런 동의가 열성적으로 나와요.. 그 말은 이렇습니다. "왜 이 나라에서는 여자들이 빨래도 하고 살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까지 하는가?" 정말이지....한 때 이런 생각을 안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지금은 신랑이 빨래도 돌려주고 널어주고 청소도 가끔씩 해주고 (해 준다는 표현이 거슬리지만 이만큼만 해도 감사할 따름...ㅠㅠ) 또 데메테르의 관점에서 본 것과 페르세포네의 관점에서 다르게 본 이야기 엄마의 구속을 피해갔다는 발상의 전환은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와요, 그래서 이번에 독서모임 책으로 엄마의 말뚝 (박완서 작가님의)을 읽기로 했어요. 리베카 솔닛의 길잃기 안내서도 꼭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 찜합니다. 그 외에 아이와 함께 책 읽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치유와 힐링을 받고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통로가 되어서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은 또 반성과 생각을 하게 하네요 ^^ 이제 읽었으니 본인만의 이야기를 담아보는 칸도 있어요. 10번 글의 주제는 내가 어릴 적 살던 집인데 꼭 오래오래 살지는 않았어도 될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정말 좋았던 혹은 기억에 남고 즐거웠던 집은 평면적인 집이 아니라 여기저기 연결통로가 이어져 있고 빙글빙글 돌면서 탐색할 거리가 많았던 집 같아요. 어린 시절 할아버지 시골집이 그랬고 방 네 개가 횡렬로 연결되어 있는데 또 각 방마다 마루로 나오는 문과 뒤뜰로 가는 문이 있고 다락까지 있어서 사촌들과 신나게 놀았던 그 집!! 우물도 있어 괜히 그 안을 들여다 보면서 벌벌 떨었던..;; 뒷간도 있어서 거기 빠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한 번 가기가 그렇게 싫었던 추억의 집이네요. 또 계단이 엄청 많고 계단마다 방들이 여럿 있던 엄마와 저희 자매를 예뻐해 주시던 다른 할머니 집도 즐거웠구요. 관리는 잘 못할 것 같아 걱정이지만 마당이 있는 3층집에 참 살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해요. 3층은 분명히 더울테니까 테라스 잘 해 놓고 1층에는 피아노와 악기가 있는 방이 있고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볼 수 있는 환한 주방과 연결된 거실 비오는 날에도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실내 베란다..썬룸이라고 하나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따스한 추억을 주고 그 추억에서 또 조금의 힘이라도 받을 수 있음 좋겠다...그런 바람은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힘드니깐 ㅋㅋㅋ 그냥 여기서라도 잼나게 뛰어 노는 것으로 추억을 쌓아라 하는 조금은 나쁜 엄마..;;; 딴 길로 빠졌지만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 소설가님의 추천의 말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그렇게 결국은 나로 귀결되는 다소 이기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이기적이지 않은 생각. 그래서 돌봄 인문학 수업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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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인문학 수업/김희진 지음/위즈덤하우스 아이를 낳고 기르다보면 성인이 되었어도 미처 깨닫지못한 부모님의 희생과 감사를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다. 사회생활을 잘하고 자기관리를 잘하는 것이 출산양육과 별개인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이다. 아이 한 명을 기르는 것이 정말 크고 대단한 것인데 신기하게도 아이가 낳기만 하면 절로 큰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고백하자면 나역시 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하는 정도로 시간이 해결해주는 부분이라 여겼다. <돌봄인문학수업> 저자처럼 좋은 학생, 사회인 그리고 좋은 아내가 되고자 한적은 있어도 좋은 엄마는 커녕 ‘엄마’가 된다니... 더 신기한 건 그랬던 마음이 아이가 찾아와 심장소리를 확인한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아이에게 맞춰진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좋은 엄마 강박증은 또다른 시련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해진, 좋은 엄마가 되려는 노력의 부작용,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 것 같다는 자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향에서의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129쪽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3가지로 나쁜 것이 아닌 불완전한 부모가 아이를 망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과 사회가 과거에서 지금까지 엄마라는 이들에게 강제한 듯한 부담과 책임만큼 돌봄 생태계를 작동하게 만들고 강화하는 것, 마지막으로 돌봄과 관련 좋지 않은 시대흐름을 끊어내는 것이다. 돌봄이라는 것이 출산양육을 경험한 부모들에게만 해당되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임신기간내내 사소하게는 대중교통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하지 못하는 임산부들의 통곡은 두말하면 입알만큼 관련 책 리뷰를 통해 여러번 말해왔다. 다만 이전까지의 책이 ‘여자에게만’이라는 사실적이나 제한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성별보다는 각 개인의 사고변화, 사회시스템의 문제를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인문학을 공부하고 인문학 책을 만들어오면서 집단성과 개인성,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공동체와 개인이라는 주제에 깊이 매료되어왔다. 특히 인간의 성장이 어떻게 충돌하고 어떻게 화해하는지에 관한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답을 찾아가고 싶은 문제이기도 하다. 155쪽 책을 읽으면서 내 아이를 생각하는 것은 물론 과연 나는 ‘돌봄’을 얼마나 제대로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계속 자문하며 읽었다. 만약 내가 아이가 없었거나 출산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전공서적을 이해하는 차원에서의 독서였을 것 같다. 그러니 더 많은 이들이 이와 같은 책을 자주라도 만날 수 있게 양육하느라 잠을 못자는 현실이지만 이렇게 리뷰를 적는다. 우리는 ‘돌봄’을 무시하고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인문학 책을 늘 곁에 두는 편집 일을 한 저자는 자녀를 기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기쁨, 어려움 그리고 아이를 기르면서 퇴화되었던 고유의 감각을 생생하게 몸으로 느낌을 인문학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자녀의 탄생과 수유, 수면독립과 같이 초보자 엄마들이라면 순간의 황홀감과 그 이후에 오는 어려움에 공감할 것이며 일과 자녀 양육 모두를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직장맘, 최근 이슈가 된 젠더감수성 문제와 남녀성차, 원가족 특히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 등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내용들을 저자의 시각으로 풀어낸다. 책이 예쁘고 편집 및 구성이 좋다 살구 빛 바탕과 간결한 일러스트 표지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문장을 각 파트가 끝난 부분에 강조하고 있어 내가 주목했던 구절과 만나면 읽을 때 기쁨이 배가 되며 그 구절을 음미하게 된다. 주변 엄마들과 인문학 공부 때 읽었던 책을 소개하며 충분히 공감할 내용들을 아니라 비판적 관점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저자에 대한 일부 파트 딴지! 174쪽<사립 유치원과 국가의 양육책임>파트에 딴지를 걸까 말까 고민했다. 왜냐하면서 책 전체로 보면 매우 작은 파트이고 책의 내용은 대체로 좋았기 때문이다. 유아기관은 더 이상 맞벌이나 특별한 사유가 있는 부모들이 이용하는 기관이 아니다. 일부 부모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아이들은 기관을 통해 사회생활을 배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이 선택한 기관을 최선이라 여기기 때문에 불신보다는 신뢰한다. 오히려 기관에 맡기는 부모들은 기계적 신뢰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한국 유치원 비리사태는 그 동안 원에 보내는 부모의 막연한 불안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한 경우다. 저자의 자녀가 유년기를 이미 다 보냈기에 당사자가 아닌 구경꾼의 입장이라 아쉬웠다. 내게 인상 깊은 구절 돌봄이 “둘이 함께 추는 춤” 즉 상호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양육자와의 ‘동화’와 ‘분리’를 통해 스스로를 형성하는 동안, 돌보는 사람도 그에 영향을 받고 변화한다 가운데로 태어나 기계적 균등함에 집착했던 내가 서로 다른 두 아이를 기르면서 기계적으로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부분이다. 삶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창조하는 것이 더 쉽고, 예술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쉽다. 예술과 삶은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 안에서 내 통일의 책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바흐친의 예술과 책임 중257쪽 개인적으로 탸사튜더를 존경하는 이유와 같다. 이 책엔 늦깎이로 시작한 박완서 작가와 윤석남 작가의 사례가 소개된다. 유한부인들이 아닌 양육과 생계까지 책임지면서도 예술성을 꽃피우는 통합적인 삶을 지향한다. 공허하지도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단단하게 살아낼 수 있는 강인함과 내면의 아름다움이 흘러나와 그 아름다움을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공유한다.
감상 책은 가독이 쉽지만 내용이 가볍지 않다. 저자 개인의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자녀를 기르는 부모라면 공감할 이야기와 만나며 단순히 같은 부모로서의 공감대 확인이 아닌 나와 자녀 그리고 당신과 우리로 확대된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인간은 자신의 일과 자녀양육을 함께 고민하는 주체가 된다. 부모가 되면 자녀의 돌봄과 자녀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책임에서 회피하든, 조력자의 도움을 얻든 말이다. 돌봄을 받았던 사람에서 돌보는 주체가 되면서 타인에 대해 이전보다 확장된 태로도 수용할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지만 돌보는 경험만으로 확대되지는 않는다. 경험을 내적으로 성찰하는 깊은 과정들이 필요한데 그런 사유의 과정들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참고한 책들을 따라 읽으며 반복적으로 보게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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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돌봄 인문학 수업 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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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출판사의 편집장이기도 한 저자 김희진님은 자신이 노산 워킹맘이 되고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 몰랐던 돌봄의 의미와 가치를 이 책을 통해 알려주는 돌봄 인문학. 저자는 지금까지 읽고 공부한 인문학이 힘든 육아의 과정을 견뎌내는 데 힘이 되고, 거꾸로 돌봄의 경험이 인문학적 통찰과 영감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도 아이의 엄마로써 다른 엄마들에게 육아의 힘든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돌봄과 인문학을 전달하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아이의 탄생에서부터 수유, 단유, 수면교육, 양육 등 유아기부터 유년기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겪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얘기들을 담았다. 아무리 육아 관련 책을 읽어도 직접 부딪혀보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육아에 관한 내용들. 저자만큼은 아니어도 우리 부부도 육아 관련 서적을 몇 권 읽긴 했지만 책 속에서 해답을 얻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저 큰 틀의 이해만 있을 뿐, 우리 가족에 맞게, 우리 아이에 맞는 육아법은 스스로 경험하며 깨달아 갔다. 이 책에서 저자가 얘기하는 것들 중 대부분의 것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겪는 것들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면 된다는 내용은 없다. 그저 육아에 지친 엄마들을 보듬어 줄, 서로 공감하는 내용들이 전부다. 육아에 지친 엄마들, 곧 엄마가 되는 분들이 읽으면 너무나도 좋을 그런 내용들이다.
책 표지의 "아이들 돌보며 겨우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게 만든다. 나 또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 자신도 한층 배워가고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있기에 나도 있는 것이고,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나도 성장함을 느낀다. 오늘도 육아는 힘들지만 기분이 좋다.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는 글입니다. #돌봄인문학 #육아 #인문학수업 |
![]() ![]() ![]() 아기를 안고 재우면서 한 몸처럼 붙어있는 내 모습을 보니 마치 왈츠를 추고 있는 남녀의 모습같았다. (물론 남자인 아기는 내 품에 쏘옥 안겨있어 여자인 엄마의 발걸음대로 움직였지만) 이 책의 저자 김희진님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돌봄을 “둘이 함께 추는 춤”이라고 정의했다. 상호적인 행위, 그것이다. 육아전문가가 아닌 필자의 글에서 내 모습을 많이 발견했다. 지금 출산한 지 막 일년이 되어 가는데 이분은 7년동안의 악전고투 끝 지금은 다른 엄마들의 발가락을 수준의 육아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니 나는 멀어도 한참 멀었구나 싶었다.
요즘 내가 제일 힘든건 아직도 수면 부족이다. 필자는 ‘이렇게 부당할 정도로 황당한 환경이라니, 아예 안 자버리고 말겠어!’ 라는 반항적인 태도를 취했다지만 난 그런 반항을 할 정도의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체력이 저질이었다. 아이가 밤수유를 한창 할때는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새벽 1시에도 깨고, 4시에도 깨고 도무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 아침만 되면 좀비같은 내 얼굴을 거울로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수면 패턴은 아주 양호해졌지만 이 또한 이앓이를 시작하면서 또 다시 바뀔 예정이라 두렵다. 이 책에선 필자가 <울지 않는 늑대>라는 책을 읽고 깨달은 수면 통찰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인간의 수면 습관이 생물학적인 본질이기보다는 역사적인 굿어물이라 주장하는 이야기였는데 매우 위안이 되었으며 동지애도 생겨났다고 했다.
여러 인문학적인 텍스트가 곳곳에 삽입되어 있었다. 아기를 돌보는 돌봄이라는 경험이 결국 인문학적 통찰과 영감을 제공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필자의 육아경험과 다소 전문적이기까지 한 인문학적 도서의 내용들이 함께 수반되어 있어 나의 지적 욕구를 자극한다. 참 읽기 좋았다. 응원받는 기분이었고 많은 위로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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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인문학수업
한 엄마가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이야기를 주제별로 풀어썼다 누구나 처음 엄마가 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썼고 엄마라면 대부분 공감가는 이야기들이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때의 느낌을 잊지못한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아기였고, 티비에서 보는 귀엽고 순하기만 아기를 낳는줄알았다 눕히면 자고 말도잘듣고.. 그리고 나역시 그런 순한 아이를 우아하게 돌보는. 화 한번 안내고 우아한 엄마가 될거라 생각했다. 길에서 떼쓰고 소리지르며 우는 아이들을 보며 내아기는 안그럴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키우지도 않을거라 믿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나름 태교도 했고 진통시간도 길지 않게 순산을 했다. 병원에서 조리원에서 아이를 안고 행복해하며 집에 오고서는 그때부터는..내가 생각한 육아는 아니었던것같다. 작가도 이야기했지만 늘 고민의 연속이었다 모유수유와 분유수유부터 잠과의 싸움 ㅠ단유, 그리고 기관생활까지.. 하나하나 양육에 있어서 양육자의 결정권한이 참 많았다. 육아 엄마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카페나 블로그를 찾기도 많이 찾아보고, 책을 읽기도 많이 했던것 같다.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과 낳은 후 가치관이나 생활패턴이 많이 변한점도 이야기한다. 드라마나 예능을 즐겨보며 주말을 맞이했던 예전과 달리 아이를 낳은 후 미디어의 노출을 줄이고자.. 사실.. 있으면 내가 편하자고 미디어 노출을 많이 해줄것 같았기에 텔레비전을 없앴다. 거실의 책장화를 실현화하였고, 작가도 플라스틱 장난감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은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역시 플라스틱 장난감을 들이지않았다. 어찌보면 아이가 할것이 없고 , 놀게 없어서 책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앉아있을바에 책이라도 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가져왔고, 아이에게 책이 놀잇감이 되는.. 책을 즐길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나도 아이를 좀 더 알고자 읽었던 육아서에서.. 이제 거실에서 인문학 서적이나 경제서적을 읽는것을 스스로 보면서 아이를 돌보면서 나에게 이런 영향을 끼치는구나 새삼느낀다. 돌봄 인문학 수업.. 돌봄에 있어서 인문학적으로 나에게 깊은 무언가를 알려주고, 육아에 있어서 방향성을 보여주는 그런책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했다. 그러기엔 정보적인 면보다는 공감위주로 읽었던 책이었던 것 같다. 육아를 통해서 깊어지고 성장하는 부모를 위해 쓴 책이라는 돌봄 인문학 수업. 아이를 돌보면서 괴로울때도 외로울때도 있지만, 육아를 통해 얻어지는 것도 많고, 나만 이런것이 아니었구나.. 동지애를 느낄수 있는 그런 따뜻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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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아이를 발견하는 내 자식…돌봄의 인문학 [서평] 『돌봄 인문학 수업 (인간다움에 대해 아이가 가르쳐준 것들)』(김희진, 위즈덤하우스 2019.08.30.)
직장인이자 늦깎이 초보 ‘육아맘’이 아이를 돌보면서 자신을 깨닫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전공했으며,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꾸준히 인문학을 많이 연구했다고 했던 저자 김희진 씨다. 그런데 아이를 돌보면서 다른 눈이 트이게 된다. 바로 ‘돌봄’이라는 화두다. 돌봄은 나를 알아가는 것과 맞물려 있다.
『돌봄 인문학 수업』의 추천사를 쓴 조남주 소설가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이를 생각하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위로하고 응원하는 일.”(9쪽)
처음엔 어떤 부모든 잘 모르고 시작하는 게 바로 육아다. 육아시험이 있으면 지금은 낙제 정도는 면하겠다고 솔직 담백하게 얘기한다. 『돌봄 인문학 수업』에선 자신과는 다른 이, 즉 애를 돌보는 게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와 권리라고 강조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인데 왜 이리 낯설 문장인 걸까. 요샌 혼술, 혼밥족이 늘고 있어서 그런가.
우리는 안다. 아이를 키우는 건 부모 스스로를 키우는 일이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나도 자라난다. 일종의 상호작용이다. 환자가 의사를 고치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은 정부를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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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돌보면서 부모도 성장한다
성악설과 성선설은 인간에 대한 시선을 언제나 헷갈리게 한다. 부모는 반드시 애를 돌봐야 하는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김희진 저자는 돌봄이라는 게 단순히 생존이 희박한 약한 아이를 보호하는 차원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래 문장을 보자.
“돌봄은 약한 존재에 대한 존경, 약한 존재에 대한 경탄, 약한 존재에 대한 복종은 약한 것은 함부로 해도 된다거나, 약한 것은 불쌍하다는 감수성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관계 맺음을 가능하게 하는 감수성이다.”(39쪽)
인간은 언제 인간으로 성숙하는가. 인간은 언제 자신이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가. 『돌봄 인문학 수업』에는 프로이트의 ‘아기 폐하’라는 정신분석학 용어가 나온다. 아이들은 자신이 어머니 뱃속인 태반에서 24시간 언제나 보호를 받는다. 그런데 세상에 나오는 순간 배고플 때 바로 먹지 못하고, 자고 싶을 때 즉각 잠잘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건 결국 인간적 수치심으로 연결된다. 일종의 성장고(成長苦)이다.
김희진 저자는 거꾸로 엄마와 태반에서 하나가 되었던 경험이 오히려 인간적 존엄성을 얻으려는 동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가 떠오른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언젠가 떠나보내야 한다. 김희진 저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신과 아브라함의 약속과 실천이 예전엔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식을 제사에 바치라는 신의 계시가 가혹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이 이야기가 조금은 이해된다고 밝혔다.
아이는 아이이고 부모는 부모이다. 그 사실을 깨닫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김희진 저자는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자식을 신에게 바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알아가고 있다. 신이 자신의 아이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책에는 이를 ‘의지의 낙관주의’라고 표현했다. 아이를 부모인 자신과 동일화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교육이고 인간 승리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세상을 향해가는 나침반이었다가, 때론 극복해야 한 성으로 우뚝 서 있고, 또한 어떤 때는 돌봄을 줘야 하는 약하고 외경스러운 존재가 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어머니는 또 다른 어머니의 딸이다.
저자 김희진 씨는 아이들이 공적인 자리에 많이 보였으면 한다. 그래야 공존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딸에게 고마운 건 자신의 마음속에 외롭게 자리 잡고 있는 김희진이라는 어린 아이를 종종 끄집어내주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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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를 낳아 키우고~ 양육한 기간은..
어느 덧 ... 벌써 10년!
아이를 돌보며 겨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저자의 문구가 눈에 들어와서
책을 집어 들게 된 계기다.
육아를 하며 아이의 나이만큼
성장하게 된 나..
아이를 돌보며 나 또한
정말 저자처럼 겨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의무이자 권리다!
이 말도 참 와닿았던 문구다.
육아의 즐거움. 그리고 괴로움.
이런 감정들을 모두 느끼게 해주는 아이들의 존재란 빛나는 통찰들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기까지 낳아준 부모 외에도 손과 다리와 어깨와 가슴을 빌려주는 수많은 어른들을 만나게 된다.
여러 어른들의 보실핌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
모든 인간은 자기 마음속에 자신만의 특별한 부모, 양육자의 상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돌봄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갖았다.
돌봄이란 인간의 성장, 자아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매력적인 일이라고 저자는 짧게 이야기를 한다.
돌봄은.. 결코 쉽지 않고, 고도의 정신 작업이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또 최선을 다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겨울 때도 많지만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세상 그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두 형제들을 돌보고 양육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돌봄 인문학 수업의 책 뒤에는 돌봄 인문학 워크북을 실어서 좋다.
아이를 돌볼 때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뽑아 직접 기록하게 해서 육아의 시간을 되돌아 볼 여유가 없던 부모들에게 지도 역할을 하고,
질문에 대해 스스로 적으며 답 또한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든 워크북은 기록을 하며 회상해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 귀한 시간을 가지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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