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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반철학이 뭡니까? / 기다 겐의 철학 연주 반철학이란? 저자는 자신이 하는 작업을 ‘철학’을 비판하고 그러한 사고법을 뛰어넘으려는 것이라 설명하고, 이를 ‘반철학(anti-philosophy)’라고 부른다. 19세기 말 니체 이후 등장한 사상가들의 작업도 ‘철학 비판’, ‘반철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암 판정을 받고 수술 후에 요양생활을 하던 중에 가제모토 다다시와 철학을 주제로 나눈 인터뷰 형식의 대화 녹취록을 원고로 정리하여 잡지 《파도》에 연재한 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다. 초자연적 원리를 설정하여 그것을 토대로 자연을 바라보는 사고법, 즉 철학을 ‘초자연적 사고’라고 한다면, 반대로 ‘자연’에 둘러싸여 살며 그 안에서 하는 사고를 ‘자연적 사고’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반철학’은 그러한 ‘자연적 사고’를 가리킨다. 따라서 같은 ‘철학’이라도 소크라테스/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는 이른바 초자연적 사고로서의 ‘철학’과,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적 사고와, 그것을 되살려 ‘철학’을 비판하고 해체하려 했던 니체 이후의 ‘반철학’은 구별해야 한다. (24쪽.)
저자는 꼭꼭 눌러담은 절제되고 정제된 문체로 서양철학사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한줄 한줄 군더더기 없이 정보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각 챕터에 할당된 양이 많지 않아도, 하루에 한 챕터씩 천천히, 생각을 곱씹으면서 아껴서 읽었다. 중간 중간에 언급되는 문학 이야기는 책의 분위기를 밝혀준다. 역사이야기는 주로 사상가의 약력을 소개할 때 나오는 데, 이 또한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지식으로 작용해서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던 중 1851년에 런던에서 제1회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철골과 유리로만 만들어진 광대한 수정궁을 무대로 산업혁명의 정수를 모은 기술의 성과가 전시되었고 관객들은 이에 압도되었다. 이것이 자연과학적 세계관의 보급을 촉구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도스토옙스키는 만국박람회장이 된 수정궁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곳에서 본 과학과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미래사회의 모습에 위기감을 품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에는 당시 그의 감정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구절이 있다. (중략) 예술이 어두운 그늘에서 긴 발효 기간을 끝내고 비로소 개화하는 것이라면, 과학에 비추어져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나 보이게 되어 음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밝은 세계에는 새로운 예술 같은 것이 싹틀 여지가 없다. 이러한 예감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 등 이른바 세기말 예술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인식이었다. 한낮의 태양처럼 모든 것을 밝게 비춰내는 기술사회에서 기술문명은 만개하겠지만 예술은 엄청난 위기를 맞을 것이다. 니체도 이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무렵 전등은 아직 보급되지 않았지만 가스등이 보급되면서 일상생활에서도 완전한 어둠이 차츰 사라지고있었다. (201쪽.) 300쪽이 채 안되는 짧은 책안에 모든 이야기를 넣을 수 없었음을 작가 자신도 맺는 말에서 아쉬워하고 편집 형식의 한계점에대해 언급한다. 이 점은 독자의 입장에서도 특히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인터뷰 형식을 고수하거나, 아니면 담론의 산만한 느낌이 남아 있지 않게 원고를 다시 정리하는게 좋았을 것 같다.
책 중간중간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럴때마다 나는 속으로 ‘아 왜! 더 듣고 싶은데!’라고 한탄했을 정도로 몰입해서 읽은 것 같다. 결코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특히 데카르트!) 그때의 고통을 덜어주는 부분도 있었기에 책을 읽는 내내 울다가 웃고, 무릎을 탁! 쳤다가 다시 머리를 쥐어짰다. 책을 덮고 정리를 하는 지금은 정말 잘 읽었다는 만족감에 잠겨있다. 이 책에 소개된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칸트, 니체, 하이데거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고 재미있게 읽은 부분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만약 니체가 정신과 의사였다면 이런 처방전을 내리지 않았을까? 니체는《힘에의 의지: 모든 가치를 전도하려는 시도》을 통해 유럽의 니힐리즘을 병으로 진단하고 그것의 원인을 밝혔으며(제1권 유럽의 니힐리즘), 치료법을 강구하고(제2권 최고 가치에 대한 비판), 병을 치료할 궁극적인 처방전을 내렸고(제3권 새로운 가치 정립의 원리), 일반 대중에게 이 처방전을 알리려고 했다(제4권 훈육과 육성). ‘참이다’, ‘참으로 존재한다’는 말은 도달한 현 단계를 확보하고 그곳에서 안정된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서 우리가 날조한 것이지, 사실은 바뀌고 달라지면서 생성해 나가는 세계에 투영을 강요하는 ‘술어’이자 ‘기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29쪽.) “진리란, 그것 없이는 어떤 종류의 생물이 살아갈수 없는 것 같은 일종의 오류이다.” (230쪽.) 니체가 진리와 인식을 바라보는 관점은 날카롭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내가 불변의 진리라 생각하는 것을 얻기 위해 쏟아 부었던가? 실제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사람은 늙기 마련이고, 사랑이 오래 가지 못할 수도 있고, 미의 기준도 변하고, 가치관은 서로 종종 부딪혀서 깨지며,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의 범주도 확장되거나 축소된다. 인간이 그 변화를 부정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혐오과 우울증으로 가는 가장 최단코스라고 경험을 통해 장담할 수 있다. 도착점이 없어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경주에 다신 참가하고 싶지 않다. 니체가 《힘에의 의지》 제1권의 표제로 선택한 '유럽의 니힐리즘'이란 인도와 중국의 니힐리즘과 구별되는 유럽의 니힐리즘이라는 의미도 아니거니와, 단순히 19세기 후반의 유럽을 덮친 허무적 기분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유럽이라는 문화권, 또는 유럽이라는 역사적 고동체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근본적인 역사적 운동을 가리키는 명칭인 것이다. 이리하여 니체는 제1권에서 병의 증상을 진단하고 원인을 확인하고는, 제2권부터는 병을 치료하는 수단을 강구한다. (218쪽.) '니체가 진단을 내렸다'는 저자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울증, 자기 혐오 등의 삶을 갉아먹는 것들을 더이상 그대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냉철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병으로 취급받는 것을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병은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할 수 있다. 내가 힘든 이유에도 원인이 있고, 그것을 완화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슬픔의 늪에 빠져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평온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단순한 철학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예술, 문학, 역사적 지식을 곁들여 풀어나가는 저자의 이야기는 몰입도가 높고 어렵지만 재미도 있다. 두껍지 않아서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기에 읽고 나면 서양 철학의 흐름이 머릿속에 잡히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의 끝에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책들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가 소개 하는 자신의 책 여덟권 중에 한국에 번역된 책은 《반철학이 뭡니까?》와 《현대 사상 지도》 두 권뿐이다. 당장에 기다 겐의 모든 책을 읽을 순 없겠지만, 다른 책을 읽으며 철학의 세계에 빠져보려 한다. 이 책은 《반철학 입문》이라는 원제에 걸맛는 철학 입문서로서의 기능을 충실히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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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철학'은 철학에 반(反)하는 철학이다. 그렇다고 철학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철학]이 오늘날 현대인이 말하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일맥상통할 수 없으니 [고전철학]과는 다른 '반철학'을 이르는 말이고, 중세시대 아우구스투스의 '교부철학'과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으로 대표되는 [종교철학]과도 다르기에 '반철학'이라 하고, 뉴튼으로부터 시작하는 '근대과학'과 맞물린 [계몽철학]을 하던 칸트, 데카르트 등등의 앞선 철학과도 다르기에 '반철학'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반철학'은 헤겔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그 뒤를 잇는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에서도 '과거'와 다른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고 개론을 정리한 것이 바로 '반철학'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정작 '반철학'에 대한 설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즈음에 [맺음말]을 전하며,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자신이 쓴 다른 책들을 참조하라'는 황당한 결말을 보여주었다. 하도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한국에서는 뒤쳐진(번역된) 적이 없는 책들이다. 출판사의 입장에서 앞으로 '뒤쳐놓겠다'는 언급 또한 없는 상황이라 굳이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안 생긴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철학책'이라기보다는 '철학대담집'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 싶다.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내용이 글쓴이가 직접 쓰고 퇴고한 내용이 아니라 글쓴이가 '육성'으로 강연한 내용을 '녹취'한 다음에 편집하였고 한다. 그러다보니 '중복'된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철학강연은 청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본적인 개론'을 하고 또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마련인데, 이를 '그대로' 걸러내지 않고 편집을 하였단다. 그러면서 글쓴이의 입을 빌어 한다는 말이, "철학을 이해하려면 계속 반복해서 듣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하긴 글쓴이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세 번이나 읽어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자. 사범대학을 나온 아버지에게 여쭤보니, "세 번을 읽었다고? 그렇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지. 100번을 읽어보려무나"라는 답변을 들었노라고 자신의 일화를 소개해주고 있었다. 자못 '철학교수'다운 일화이기도 하지만, 독자들에게도 그러라고 은근히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불쾌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철학따위를 이해하기 위해서 100번이나 읽으라니..몰라도 그만인 것을.
암튼, 불쾌함을 감추고 계속 읽으려는데, '걸림돌'이 또 있었다. 하나는, 우리가 쓰는 '철학용어'들의 대부분이 일본에서 비롯된 점이다. 이 책의 글쓴이가 '철학용어'를 일일이 예로 들면서 비판을 하지만,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원어로 철학책을 읽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잘못 뒤쳐서 생기는 '해석의 오류'를 줄일 수 있다는 건데..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철학'을 이해하려고 유럽 각국의 언어를 통달하라고 하는 건 교수님에게나 '가능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었다. 또 하나는 바로, '일본인 철학교수님께서 오직 일본 청중(독자)들을 위해서만 철학강연을 하였다는 점이다. 알지도 못하는 일본인 '서양철학'전공 교수님을 끌어들여 설명하고, 일본문화 속의 '유명인'의 일화를 소개하는 등등 알 수 없는 '쉬운 설명'이 곧곧에 등장하여서 당혹스럽게 하였다. 더구나 이 책은 '반철학'을 설명하는 시작부터 [일본인은 철학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반철학'적이다]라고 툭 던진 문구를 끝맺음을 할 때까지 우려먹고 있었다.
어쨌든, 같은 동양사람으로서 이해할 여지가 아주 없지도 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에 애써 '한국'에 대입을 해보며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일본식 철학용어'를 바꾸는 일은 애초에 '철학적 고찰'을 다시 해보겠다는 시도를 넘어서 '우리말'에는 없는 표현을 또다시 '중국식 용어'로, 아니면 '영어식, 프랑스어식, 독일어식'으로 바꾸게 될 뿐이기 때문에 자칫 '의미없는 시도'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필요성'이 그닥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것은, 일본인과 다르게 [한국인은 매우 철학적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철학'도 잘하고, '반철학'도 잘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왜냐면 일본은 '외래사상'을 잘 받으들이지 못하며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이도코토리(좋은 것만 골라 취한다) 정신'을 발휘하여 '왜색(倭色)'을 띠기 마련인데, 우리는 '외래사상'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 '순수성'을 따지며 '원래 그대로인 것'을 추구한 뒤에야 '한국적 색채'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순수함'을 유지하려는 노력만큼이나 치열하게 다투면서 '순수성'을 따지기 일쑤인데 반해서 일본은 '순수함'을 유지하려고 다투기보다는 모두가 수용할 수 있도록 '변형'하길 좋아하기 때문에 애초에 '철학'을 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는 '유추'에 이르게 되었다. (이 단락의 내용은 책에는 없는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내용임을 밝힌다)
하여튼, 글쓴이는 '일본인'은 철학, 다시 말해, '서양철학'을 애초에 잘 이해하지 못하므로 도리어 '반철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이 애초에 '인간 본연'의 철학을 지향하므로 일본의 신토사상에서부터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일본인은 '자연 그대로'의 철학을 너무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므로 '서양철학(인간 중심)'을 몰라도 '일본철학(자연 중심)'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고 역설한다. (이 무슨 '소피스트의 궤변'같은 설명이란 말인가?)
이 책에서 그나마 읽을만한 부분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의 깨알같은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 부분이고, '교부철학'이 플라톤적이고 '스콜라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각각 '그리스도교 신앙 교리'를 정리한 부분, 그리고 칸트와 데카르트, 헤겔, 니체, 하이데거까지 '근대철학'의 계보가 이어지며 [니체 이전과 이후의 '반철학'의 성립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점이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책'을 참조하란다.
애초에 '한정된 지면'이었다면, 서론을 좀 짧게 하시던가? 중복된 내용을 좀 걸러내던가? 그도 아니면 '다음 책' 출간에 대한 안내라도 있어야 할텐데, 한국에서는 발간되지도 않은 책 목록 8권(<반철학사>, <나의 철학입문>, <마하와 니체>, <현대의 철학>, <하이데거>, <하이데거의 사상>, <철학과 반철학>)으로 '본격적인 반철학 강의'를 대신한다는 마무리는 당췌 무슨...더 가관은 '글쓴이의 제자'가 쓴 <추천사>다. 이 책에 대한 촌평을 내면서 '명연주'에 비유하였다. 내용을 요약하면, 위의 8권의 책을 <악보>에 빗대면서 자신의 스승님이 직접 연주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독자들에게 "영광인줄 알아라"라고 읊조리거 있는 듯 했다. 추천을 넘어 찬사를 날리고 있었다.
우쨌든, 이 책은 <반철학>에 관한 책이다. 비록 <반철학>에 대한 본 내용을 쏙 뺀 책이긴 했지만, <반철학>을 이해하기에 앞서서 알아두어야 할 '배경지식'을 선보여준 책으로 보면 될 듯 싶다. 비록 이 책에는 너무나도 빈약하여서 덧붙이지만 '반철학의 진짜배기'는 비트겐슈타인이랄 수 있다. [모든 철학의 명제는 헛소리다]라고 말한, 그는 '자기 이전의 철학'에 대해 '부정'하며 철학을 새롭게 쓰려고 노력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은 '반철학의 시작'이라고 알려진 '니체'도 서슴없이 비판하며, 특히 [이론보다 실천]에 방점을 찍은 철학자이기도 하다. 사실 <반철학>은 헤겔의 '정반합'에서도 잘 보여진다. [테제-안티테제-(새로운)테제]로 등장하는 것이 오늘날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철학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 '자기만의 철학'을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는 '이론'에 매달리기보다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만의 철학'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 사람은 위대한 '철학자'가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철학'은 위대한 철학이 된다. 철학에 서툰 일본인보다 철학에 능숙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의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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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적 원리를 세우고, 이를 매개로 자연을 보고 자연을 연관짓는 사고양식, 즉 형이상학이 철학이라 일컬어져온 지의 본질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철저히 자연속에서 생각하는 일본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기다켄의 <반철학이 뭡니까?>는 서문에서도 철학이 서양문화권에서 탄생한 특유의 인위적 사고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것이 일본에 철학이 없는 이유와 맥을 같이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선 철학이 서양 특유의 사고방식이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철학은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특정한 사고법으로서 인간 자신을 존재 가운데에 있으면서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초자연적 존재’라는 특별한 위치에 세우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관점으로 인해 자연은 초자연적 원리에 의해 형태를 부여받아 제작된 단순재료에 불과했고 플라톤 이래로 서양문화를 형성하는 기틀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인 플라톤의 초자연적 사고양식을 수정하여 계승하긴 했지만 이 두 사람이 그린 세계상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도 주목한다. 한 쪽은 수학적인데 비해 다른 한쪽은 생물학적이라 할만큼 대조적인 측면이 많았으며 이 세계관의 차이가 이후 서양문화의 형성을 번갈아가면서 규정하게 되었고 이러한 양상은 고대말기에 시작되어 근대까지 이어진 기독교 신학의 전개에서도 엿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바탕에서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주의의 역사적 영향을 비교한다.
또 중세를 거쳐 나타난 신적 이성의 후견을 받은 데카르트의 이성주의 철학과 18세기 계몽적, 비판적 이성주의 철학의 전개 양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대의 대표적 인물인 칸트와 헤겔 철학의 면모를 조명한다. 이후 저자는 반철학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전개하는데 그를 대표하는 인물로 19세기 후반의 니체와 20세기 하이데거를 꼽으면서 핵심적인 주장에 대해 설명을 들려준다. 니체는 플라톤 이후의 서양 철학·도덕·종교를 플라토니즘이라고 규정하면서 그것의 극복을 과제로 삼아 다위니즘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생의 개념, 즉 현상보다 한층 더 강하고 더 커지려 하는 방향성을 가진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 사상을 주장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의 저작을 통해 전통적 존재론이 존재를 피제작적 존재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이해하였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고대 초기의 존재론과 비교하면서 이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는데 주력했다고 정리한다.
반철학의 역사적 배경과 그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서양철학의 출발점인 형이상학을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와 중세, 근대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역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대담의 결과물이라는 성격에 맞게 짧지만 핵심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논지를 펼치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어렵다고 여겨지는 철학에 조금은 용이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일부분에서 앞서 언급한 내용들이 재차 인용되며 다소 중복되는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이 철학의 역사를 파악하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들이라 크게 문제삼을 것은 아니라 보인다. 반철학입문이라는 원제에 맞는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있어 니체, 하이데거, 데리다로 이어지는 반철학의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반철학이 뭡니까?』는 철학과 반철학에 대한 내용을 문답식으로 풀어낸다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양 철학 이야기가 기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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