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페렉의 저작을 이해하는 양방향의 지도라고 할 수 있다. 1965년 『사물들』로 르노도 상을 받은 화려한 데뷔 때부터 『잠자는 남자』(1967), 『W 혹은 유년기의 추억』(1975),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1979),『생각하기/분류하기』(1985)까지 각 작품에서 페렉이 선보였던 소재, 오브제, 작법 특징 등을 두루 만날 수 있다. 1978년 메디치 상을 수상하며 걸작으로 회자되는 『인생사용법』 작업 스케치는 직접 기술되어 있기도 하다.
친숙한 소재와 그답지 않게 다소 평이한 형식이라 그의 에세이 스타일 중 가장 접근하기 쉽다. 무엇보다 글쓰기 작법에서 가장 본질적인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 '낯설게 보기'를 분류별로 한눈에 볼 수 있어 좋다. 이를테면, 도시를 볼 때 '도시인 것과 도시가 아닌 것 사이를 구별하라' 같은. 그 행위를 세분화하면 역자의 평대로 '질문하기와 생각하기, 분류하기와 기록하기, 기억하기와 상상하기'라 말할 수 있겠다. 그렇게 이 에세이는 침대에서 세계로 확장되어간다.
"즉 우리에게 좀더 가까이 있는 분명한 무엇, 세계는 더이상 계속해서 다시 가야 하는 도정 같은 것도, 끝없는 경주나 끊임없이 재개해야 하는 도전 같은 것도 아니며, 절망적으로 쌓아올린 것들을 위한 유일한 구실 같은 것도, 정복을 위한 환영 같은 것도 아니다. 세계는 하나의 의미를 되찾는 일, 지상의 글쓰기에 대한 지각이자, 우리가 그 저자임을 잊어버린 어떤 지리학에 대한 지각 같은 것이다." ㅡ<세계>
조르주 페렉(1936~1982) 책을 읽으면 늘 떠오르게 되는 파리 철학자 둘이 있다. '(소비)사회'에 있어서는 장 보드리야르(1929~2007), '공간(생산)'에 있어서는 앙리 르페브르(1901~1991). 머리맡에 장 보드리야르 책 몇 권을 두었다는 페렉 글을 읽고 싱긋 웃었다. 그들이 천착한 공간 문제보다 아마 지금 시대에는 시간문제가 더 중요한 사안인 거 같다. 주어진 시간 내 풀 수 없을 거 같은 계층 격차 문제도 그 파생이지 않을까. 공간은 여행, 이사, 인터넷, VR(가상현실) 등 어느 정도 전환할 여지가 있지만 시간은 그럴 수 없다. 죽음으로 가는 단 하나의 노선 때문에 우리는 현실의 시간에서 어떻게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상상과 이미지를 더 끌어들이는지도.
이 책에 등장하는 세계적 문인(폴 엘뤼아르, 앙리 미쇼, 마르셀 프루스트, 귀스타브 플로베르 등)의 인용들과 연계되는 페렉의 글을 읽으니 프랑스 문학은 정녕 '프랑스적'이라고 할 만한 게 있다. 콕 집을 순 없지만 '프랑스의 정신', '프랑스적 분위기'라고 해야 할 그런.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특징으로 자주 모아보는 라틴 문학처럼. 그렇다면 한국은? 나는 좀 머뭇거린다. 정작 자기 자신은 잘 모르는...이라고 해야 하나. 그보다는 계보를 형성할 정도가 있었나 싶어서다.
영락없는 도시인이고 도시-개인 소재를 주로 다루지만 페렉의 글에선 늘 다른 차원을 느끼게 된다. 페렉은 문이 없을 수도 있는 집으로, 자연 속에서 형태를 이루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을 묘사했다. 페렉의 글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처럼 인공적인 기술이면서도 돌연하고 그 리좀 같은 진행을 자연적이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신선함을 가지고 있다. 이게 내가 페렉에게 느끼는 매력이다.
45살로 짧은 생애를 산 페렉이 전례 없는 결과물을 보여주며 이토록 글쓰기에 몰두한 연유는 10살도 되기 전에 이 차 대전으로 아버지 전사, 아우슈비츠에서 어머니 사망이라는 큰 사건을 겪었던 게 가장 컸을 거다. 정신과 치료를 스스로 여러 번 받았듯 그의 실험적 글쓰기는 "나는 나를 돌아다니기 위해 글을 쓴다"(앙리 미쇼) 같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글은 우리 자신이 파편을 찾는 선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도, 우리도 불가능할 정복에 대해 말하는 문장이 아프게 공감됐다.
|
| 페렉의 사물들을 재미있게 읽고 구매한 책이다. 이전에 나는 태어났다를 읽고 재미가 없어서 사물들을 기대하며 공간으 ㅣ종류들을 샀는데 책 구성이 그냥 정말 희한했다. 재미 없다 있다를 떠나서 너무 페렉의 사상이 신기해서 읽으면서 계속 희한하네만 나왔던 책이다 |
|
에세이를 보고 싶을 때 조르주 페렉 선집 6권. 1974년작. 페렉이 ‘생전에’ 출간한 유일한 에세이로, ‘공간’에 관한 진진한 질문과 명상이 담긴 책이다. 하나의 장소, 또는 하나의 공간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영원한 장소나 공간이 있는가? 우리는 공간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기억하는가? 만약 당신이 공간으로써만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면 어떻게 말하겠는가? 평생 여러 공간을 떠돌며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은 우리를 둘러싼 여러 겹의 공간을 목록화하고 마비된 일상의 사유에 새로운 질문들로 지각의 문을 연다. 작게는 하나의 페이지에서부터 침대, 방, 아파트, 건물, 거리, 구역, 도시, 시골, 나라, 세계까지 뻗어나가며, 공간에 공간을 칭칭 감고 사는 우리를 비춘다. 프루스트에게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다면, 페렉에게는 이 소중하고 소소한 에세이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가 있다. |
|
페이지, 침대, 방, 아파트, 건물, 거리, 구역, 도시, 시골, 나라, 유럽, 세계, 공간. 《공간의 종류들》에 실린 각각의 챕터들의 제목이다. 무작위인 것 같지만 작은 공간에서 시작되어 점점 큰 공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세계 다음에는 우주로 넘어가는 것이 순리이겠지만 추상적이지만 동시에 구체적인 글쓰기를 염원하는 작가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확장이었을 것이다. 돌고 돌아 모든 공간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돌아가는 태도가 작가에게 어울린다. “글쓰기: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 무언가를 살아남게 하기 위해 세심하게 노력하기. 점점 깊어지는 공허로부터 몇몇 분명한 조각들을 끄집어내기, 어딘가에 하나의 흠, 하나의 흔적, 하나의 표시, 또는 몇 개의 기호들을 남기기.” (p.153) 게다가 모든 글의 마지막에는 ‘글쓰기’에 대한 상념이 들어 있다. 글쓰기는 페이지 이전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페이지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물질의 원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글쓰기로 지금까지의 모든 공간의 기록이 수렴되는 형식이야말로 《공간의 종류들》이라는 제목에 적절히 호응한다. 나는 이 책을 사무실 옆의 작은 카페 크문에서 사탕무 라떼를 마시며 읽었다. “1969년, 나는 파리에서 내가 살았거나 혹은 나의 특별한 기억들이 얽혀 있는 장소 열두 곳(거리들, 광장들, 교차로들, 파사주)을 골랐다. 나는 매달 이 장소들 중 두 곳을 묘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두 개의 묘사 중 하나는 장소 그 자체에 관해 행해지고, 가능한 한 가장 중심적인 묘사가 될 것이다... 또다른 묘사는 장소의 다른 차원에서 행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기억의 장소를 묘사하려고 애써보고, 그와 관련해 떠오르는 모든 추억, 즉 그곳에서 전개되었던 사건들이나 혹은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회상하려 애써보는 것이다. 이 묘사들이 끝나면 나는 그것을 봉투 안에 넣어 밀랍으로 봉인할 것이다. 몇 번인가 나는 내가 묘사하는 장소들에 남자 또는 여자 사진작가 친구를 데려갔고, 그들은 자유롭게 혹은 나의 지시에 따라 사진을 찍었으며, 나는 그 사진들을 쳐다보지 않고 (단 한 장의 사진을 제외하고는) 해당 봉투에 넣었다. 또한 이 봉투들에 나중에 증거를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 예를 들어 지하철 티켓, 음식점 티켓, 영화관 티켓, 팸플릿 등을 넣은 적도 있다.” (p.90) 책의 중간 부분에 작가의 또다른 글쓰기 프로젝트에 대한 스케치가 등장한다. 작가는 자신이 고른 열두 개의 장소에 대해 두 개의 묘사를 각기 다른 달에 작성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니까 ‘이 장소들 각각을 한 해의 각기 다른 달에 묘사하고, 이차적으로는 결코 동일한 달에 동일한 장소의 쌍을 묘사하지 않도록 유의’해 가며 십이 년에 걸쳐 288개의 텍스트를 작성한다는 계획이다. 내가 서울에서 열두 개의 장소를 골라야 한다면 카페 크문도 그 중 하나의 장소로 포함되어야 할지 모른다. “침대는 우리가 대체로 수평 자세로 머물 수 있는 드문 장소 중 하나다. 다른 장소들은 훨씬 더 특수한 용도를 지닌다: 수술대, 긴 사우나 의자, 팔걸이 없는 장의자, 해변, 정신분석가의 환자용 침대······” (p.37) 어떤 장소를 기록하는 데에는 수없이 많은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 직접 보고 직접 본 것을 그 자리에서 쓸 수도 있고, 직접 보고 직접 본 것을 나중에 떠올리며 쓸 수도 있다. 직접 보지 않은 것을 쓸 수도 있고, 직접 본 것에 무언가를 보태 쓸 수도 있고, 직접 보았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직접 보지는 못한 것을 쓸 수도 있다. 심지어 일부러 직접 본 것은 제외하고 글을 쓰는 사람도 없으란 법은 없다. “거의 어리석을 정도로, 더 천천히 접근해야 한다. 흥미롭지 않은 것, 가장 분명한 것, 가장 평범한 것,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적기 위해 노력하기.” (p.84) 어쨌든 이 모든 방식에는 관찰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제외하는 글쓰기를 위해서도 그 제외의 원재료가 될 관찰을 무시할 수는 없을 터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글쓰기가 아닌 다른 방식의 글쓰기로 만들어진 책에는 다른 독서법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라는 심정에서 덜 꼼꼼하게, 무심히 관찰하듯 책을 읽었다. 덕분에, 언제든 끄집어내어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나는 새로운 공간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