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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의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에는 총 열한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나는 전반부의 이야기가 훨씬 좋았다. 앞쪽에 실린 다섯 개의 소설을 읽으며 나의 작은 마음과 편협함과 무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소설의 줄거리를 나열하는 것보다 좋았던 부분과 오래 눈길이 머물렀던 문장을 옮기다 보면 새벽의 시간은 별 탈 없이 흘러갈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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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일 헬기를 타고 이송했더라면 살았을 아이는 배에서 배로 옮겨지면서 심장이 멎었다. 5년이 넘는 동안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엄마는 아이가 헬기를 타고 왔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국가가 그렇게 밝혔기 때문이었다. 1번이라고 부르는 청장이 아이가 탔어야 할 헬기를 타고 지상으로 왔다. 뉴스 브리핑을 하기 위해서였다. 말이 안 되는 사실 앞에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뉴스에 나와 그날의 일을 말하는 엄마와 인터뷰를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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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작가님은 러브 레플리카라는 책으로 처음 접했다. 이 책은 어느 단편에서 나오는 한 구절을 우연히 읽게 되어 보게 되었다. 단편집이 여러 개 모인만큼 마음이 따뜻해진다. 담담한 문체에서 오는 마음의 울림이 있다. 서로가 안고 있는 고민과 아픔이 모두 다르듯이 우리는 모두 틀린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현재를 살 거야. 과거의 형벌을, 잘못 내린 선택의 총합을 살지 않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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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찾아내게 된 책은 아니었어요.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지용. 단편이 모인 책이어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책을 읽은지 오래 됐다보니 책을 펴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을 읽은 친구와 또 다른 친구가, 단순히 추천히 아니라 어떤 점에서 읽어 보면 좋겠다, 라고 다시 책을 권해주어 마침내 책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기?도 쓰게 되었네요. 책은 정말로 내용이 저에게 위로를 주면서 용기도 주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추천해 주었나 봐요. 봄날에 어울리는 책이었고, 작은 마음 동호회 정말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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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작가님의 <작은 마음 동호회>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별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소설로 써내려 가고 있다. 작가님을 알게 된 것은 "붕대감기" 라는 책을 통해서였는데 그때도 정말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많았고 이 책 또한 그랬다. 여러개의 단편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승혜와 미오, 마흔셋, 피클이 제일 좋았고 많은 생각들을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후반부에 적힌 단편들은 내 스타일은 아니였지만 내용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 책은 무조건 소장가치가 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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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을 읽은 친한 동생이 말했다. '맨 마지막에 있는 「역사」를 먼저 읽어. 가제본에는 그 소설이 가장 앞에 있었거든.' 동생의 말을 따라 「역사」를 먼저 읽었다. 고통 받고 찢어질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이 소설은 차별에 맞서 싸우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나에게 윤이형 작가는 순문학에 SF요소와 판타지 설정을 차용하여 소설을 쓰는 특이한 작가다. 십년 전,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었던 「완전한 항해」로 이 작가를 처음으로 알았다. 「완전한 항해」의 주인공은 다른 차원의 '나'와 하나가 되어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항해를 떠난다. 이 소설집은 연장선이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누구의 딸이자, 누구의 엄마이며, 누구의 아내이다. 한때는 신여성이었고, 된장녀였으며, 김치녀였다. 나는 나로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늘 타인으로부터 증명되었지 한 번도 나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다. 이 소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외부와 맞서 싸우며 연대하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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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7 그냥, 선한 인물을 현실에서 보기가 너무 힘들잖아. 소설 속에서만 가끔 볼 수 있잖아. 그게 너무 좋으면서 마음이 힘든 거야.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고 당당히 인정할 수 있는 사람. 나와 다름을 틀리다 보지 않는 사람. 세상을 내 중심으로만 살지는 않는 사람. 사실 어렵지 않다. 조금만 용기를 내고,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고,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세상이 온통 전쟁터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살랑이는 꽃향기를 품은 바람을 만날 수도 있고, 가끔은 따스한 햇살 아래 푸름으로 가득한 나무 그늘에서 시원함을 만끽할 수도 있다.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조금 더 편안하고 평온하고 자주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날을 감사하다 여길 수도 있다. 작다고 해서 약한 것은 아니다 그건 내가 가진 작고 약한 마음의 눈으로 보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심지어 다정하기까지 한 작지만 강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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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작가의 <러브 레플리카>를 정말 인상깊게 읽었고 그 책에서 sf 이야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번 책도 비슷할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이 책은 더 우리와 가깝고 현실과 동떨어질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작가가 엄청나게 신경써서 써내려간 듯한 글이었고 전부 다 고민을 거듭하고 쓴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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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사회가 취하는 태도를 너무 잘 거울로 비춰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통쾌하기도하고 좋아하는 이야기다. 다른 이야기들도 잘 읽었다. 히줄라프 이야기도. 단편의 묘미겠지만 한창 무르익을 때,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을 때 끊기는 점이 너무 아쉽다. 그만큼 재미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뒷 이야기가 궁금한 거겠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잘 읽었다.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읽게 된 책인데 왜 그렇게들 추천해줬는지 읽어보니 알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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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에서 세장의 안내장을 받아왔다. 그 중 한장의 안내장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며칠 전 저녁무렵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한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으니, 우리 학교 어린이들도 자전거를 탈 땐 꼭 안전장비를 착용하라는 당부의 안내장이었다. 그 아이는 3학년이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먹을 음식을 위주로 반찬을 준비하고 거실을 정리하고 새로한 밥에서 김이 오르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늦가을, 그 날 저녁 그 집의 풍경은 포슬포슬하고 따스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을 찢고 '어떤 자비도 없이, 벽이 몸을 뚫는 고통'속으로 삶이 빠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일상은 위태롭고 삶의 틈새는 검은 아가리를 벌려 우리를 삼킬 수 있다. 언제든지... '그렇게 제법 큰 일임이 분명한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감쪽같이 오므라들고 틈새가 붙어 예전처럼 굴러가는 것이 삶'이라고 이 책속의 한 어른이 말한다. 그렇다. 그렇게 덤덤한 얼굴로 그 모든 일들을 잊도록 만드는 것이 또 삶의 다른 얼굴이다. 그러나, 그렇지만 말이다. 크고 어둡게 벌어졌다 닫힌 틈새에는 아무것도 없을것인가? 동화를 쓰는 '나'는 악몽에서 깨어나 건너편 집 '202호'의 열린 창문을 바라본다. 겨울에도 닫히는 법이 없이 열려있는 그 틈을 보면서 그는 안심한다. '나'는 몇년전 202호의 '그'와 두번 만났다. 202호 아랫쪽에서 담배를 피울 때 식초를 직접 구입해 '나'의 머리위로 들이부은 사람이 202호의 그였고, 그의 아이가 찻길에서 죽을 뻔 한 것을 살려준 사람도 202호의 그였다. '나'는 그 사실앞에서 까마득한 낙차를 느낀다. 둘은 과연 같은 인물이 맞는가? 아이를 살려준 보답으로 202호에게 나는 오리 구이를 대접했으나 그마저 순조롭지 않게 끝나버렸다. 오리 고기를 먹으며 "분리가 잘 되지 않아 언제나 지글지글 끓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던 그가 미래를 볼 수 있으며 자신의 미래는 수 많은 선의로 가득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 많은 아이들이 죽는다고만 말해두죠. 이런 나라에서 계속 터질 법 한, 그렇게 사람들이 말하는, 하지만 정말로 또 터질거라고 믿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일이" 몇 십년 후에 또 다시 일어나 그의 삶에서 행했던 모든 선함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고통이 끝내 찾아오고 만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미친듯이 그의 몸을 잡아 흔들며 " 나한테 그쪽은 그냥 착한 사람이거든요! 착한 사람한테 그런 일 안일어나고요!" 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그 말은 얼마나 힘이 없는 말인가? '그'역시 그 말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지 잘 알기에 답한다. " 믿어야겠죠. 선한 마음에는 아무 힘이 없다고, 그건 아주 작고 연약한 거라서 어떤 무서운 일도 일어나게 할 힘이 없다고요. 그래서 우리가 지켜줘야 하는 거라고요" 라고.. 하지만 나는 끝내 버틴다. 선한 마음에는 힘이 있다고, 세상이 너무 병든 탓에 타인의 선의뿐 아니라 자신안의 선의까지 의심하지만 몸을 날려 한 가정을 구원한 그 사람이 있는 한, 그 힘은 반드시 있다고. '찻길'에서 나의 아이가 그로 인해 살았듯, 그가 품은 선한 마음이 돌고 돌아 몇 십년 후, 오랑우탄 같은 누군가가 몸을 날려 '그의 딸'을 구해줄 수 있다고 우리는 믿어야 한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우리가 품고 있는 이 작고 포슬포슬하고 따스한 감자같은 일상은 언제든 삿되고 악한 것으로부터 찔려 쪼개질 것이라고. 대형참사 앞에서 구경꾼이 되지 않겠다는 그의 딸이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이건 제 일이고 제 문제라고, 저한테 저런 일이 생기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서는 절대 안된다고, 그럼 저는 천하에 나쁜 인간이라고" 하지만 그의 딸은 또 다시 반복된 그 참혹한 대형사고 앞에 자식을 잃고 그 말을 했던 것을 후회하게 된다. 대형사고가 참혹한 이유는 그 사건을 폭력적으로 구경하지 않은 그 선한 이웃까지도 어김없이 망가트리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래왔듯 이 나라에서 무자비하고 반복적인 참사가 계속되는 한 우리 안의 선한 것들과 작고 포슬포슬한 것들은 완전히 쪼개져버릴 수 밖에 없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개인이 선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벽은 '그런 참사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며 사실 또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은 한 개인의 선한 마음, 202호의 창문이 열려있듯 닫혀있지 않은 개인이 모여야 이뤄낼 수 있는 일들이 아닐까? 그런 이유로 그가 악몽에서 깨어나 202호의 열린창을 바라보는 것은, 선하고 열려있는 세상 사람에 대한 기대를 아직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끔찍하고 잔혹한 사고가 어느날 불쑥 끼어들어 밝고 포슬포슬한 인생의 빛깔을 완전히 바꿔놓을 리 없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간직한 채 내일을 향해 씩씩한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그런 최소한의 믿음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나의 두려운 마음을 읽어내듯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고 있다. "고맙게도 202호 창문은 여전히 조금 열려있다. 그래요. 저도 그런걸요, 걱정마세요. 그렇게 안심이 되는 대답을 해주려고 벌어진 선한 사람의 입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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